| 2007/11/19 (12:14) from 122.46.159.34' of 122.46.159.34' | Article Number : 1658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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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9403 , Lines : 29 |
| 화해, 불가능의 가능성(2007.11.13하늘뜻나누기-한신대신대원채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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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불가능의 가능성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마태복음｣ 5장 24절 영화 <밀양>의 ‘신애’는 상처 입어 자아가 파괴되어 가는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위험한 상황을 직면할 때 평소보다 빠르게 방어 동작을 폅니다. 그러나 방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처를 입으면 순간 비명을 지릅니다. 대개는 이런 방어동작이나 비명 정도로 순간의 고통은 해소됩니다. 한데 어떤 상처는 스스로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다른 이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닥친 그 불운을 어떻게든 자신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것이지요. 순간의 상처가 너무 엄청나거나 혹은 계속된 불운으로 누적된 상처에 직면하게 된 경우가 그런 때입니다. 이때 전형적인 자기 설명 방식은 대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문제 탓이라고 자책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두 방식은 각기 문제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엔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으로 자기 상처를 해소하는 전략인데, 문제는 이때 미움의 대상을 만만한 타자로 지목하여 그이에게 폭행을 가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각자가 가진 이런저런 상처가 그 만만한 대상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른바 ‘이지매’로 선정된 이를 향해 사람들이 집단 따돌림과 폭행을 가하는 것입니다. 한편 후자는 자기에게 책임을 돌리는데, 그것은 대개 성찰로 나타나지 않고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열등감과 좌절감으로 표현됨으로써 문제를 병리적으로 드러내곤 합니다. 그런데 간혹 그런 설명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환 불가능한 고통인 것입니다. 아마도 <밀양>의 신애가 보여준 고통이 그런 것이겠지요. 어느 순간 자기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타인에게 자기의 어려움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자아가 많이 훼손되었기 때문입니다. 납득할 수 없는 돌출행동이 잇따르고 주위 사람들을 당혹하게 합니다. 하여 점점 고립되어 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사회적 실어증’으로 말한 바 있습니다. 소리를 낼 수는 있되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오히려 자기를 왜곡시키는 소리인 것이지요. 영화 속의 신애는 너무 리얼하게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그녀의 돌출행동 또한 그리 당혹스럽지 않습니다. 사람들 대다수가 따가운 시선을 던지는 교회 부흥집회의 음향시설에 잠입해서 저 전설의 음악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틀어놓고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모습은 혐오스럽다기보다는 공감어린 폭소를 자아낼 뿐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신애’는, 그러한 자기 파괴에 직면한 사람은 그렇게 공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폭행을 가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고, 아무데서나 폭언을 퍼붓곤 합니다. 남자라면 아내나 자식, 혹은 여동생, 심지어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이를 어떻게 나의 가족으로, 나의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 고통의 배후를 따라가 보면 이해할 만도하고, 특정인이 그토록 자기 파괴의 수렁에 허우적댈 때까지 아무런 안전장치도 작동시키지 못한 사회의 고통 불감증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또 사회 자체가 그를 향한 가학성의 배후임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민중신학 연구자이자 잡지 편집인으로서 ‘고통’에 관한 연구와 기획에 집중해왔습니다. 사회적 실어증 상황에 놓인 이의 고통을, 그 해석의 철학적 배후를 묻지 않고 현상을 이해하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 배후에 놓인 우리 사회의 가학성, 너무 일상화되어 우리 자신이 별 죄책감 없이 가해에 가담할 수 있고, 그 대상의 고통의 신음 소리를 불편하지 않은 형태로 가공하는 온갖 사회적 장치들을 드러내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저 은폐된 시민적 가학성의 메커니즘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종종 듣는 질문은 대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제게 ‘작은 이들의 연대’ 혹은 ‘작은 이들과의 연대’에 관해 말해주곤 합니다. ‘연대’, 너무 아름다운 말이기에 감히 저항할 수 없습니다. 하여 언제나 공감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가족해체율은, 이혼율이 세계최고수준인 한국사회 일반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보입니다. 그런데 저소득층밀집지역의 가족해체의 가장 큰 원인은 ‘성격차이’가 아니라 가정폭력입니다. 기층대중이 일반 시민보다 더 폭력적이고, 더 범죄적이고, 더 심하게 알콜릭입니다. 부정적인 요소에 대한 의존성이 자기 조절능력을 상실한 현상이 더욱 현저합니다. 이때 상습적으로 폭행을 가하는 남편과 상습적 폭력의 대상인 아내 혹은 자녀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요? 아내/자녀에게 주적은 사회가 아니라 폭력적 남편이 아니던가요? 폭행당하는 아내/자식을 위해 일하는 현장활동가는 과연 폭행을 가하는 남편을 미워하지 않고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연대’의 조건은 ‘화해’일 겁니다. 그런데 화해가 과연 가능한가요. 더 큰, 더 근원적인 원인을 위해서, 그 근원적인 악을 극복하기 위해 작은 자끼리 화해하고 연대하라고 말할 수 있나요? 어떻게 말인가요? 그런데 ｢마태복음｣은 화해를 말합니다. 제가 보기엔, 이 복음서 공동체가 처한 상황은 제가 지금까지 말한 민중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유대전쟁의 처참한 좌절 직후, 라삐인 요하난 벤 자카이는 도탄에 빠져버린 유대 대중에게, 가족도 이웃도 민족도, 어떤 결속의 근거도 성전처럼 다 잿더미가 된 땅에서 전후복구의 과제를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로마황제의 재가를 받아 얌니아에 율법학교(베트 미드라시)를 세운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민족을 재결속함으로써 상처 입은 사람들이 자아를 회복하고 희망을 되찾게 하려는 것이지요. 한데 그의 화해와 결속의 프로그램이 효과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그의 후계자였던 가말리엘 2세에 의해서 입니다. 그는 요하난 같은 온건파 지도자와는 달리 매우 열정이 많은 이였습니다. 그는 ‘율법의 집’(베트 미드라시)이라는 종교적 교육기구를 ‘재판의 집’(베트 딘)이라는 행정적 사법적 기구로 확대개편하고 연대와 통합을 향한 고강도 프로젝트를 시행합니다. 아마도 그가 재구축하고자 했던 것은 유대 원리주의 체제였다고 하는 게 더 타당할 것입니다. 이때 주목할 것은 이런 고강도 통합의 프로젝트 맥락에서 유대공동체의 신앙을 표준화하기 위해 만든 18개조의 공동기도문입니다. 이 기도문은 폐쇄적인 유대공동체의 결속력을 강조하면서 제12조에서 ‘나자렛 도당’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통합을 위해 ‘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적이 바로 예수를 존경하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바로 이들에게 린치를 가함으로써 유대사회는 견고히 결속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마치 한국전쟁 이후 오랫동안 우리사회를 옥죄어왔던 ‘빨갱이신드롬’ 같이 말입니다. 단지 예수를 존경하고 그분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회당 재판소에 끌려가고 고문을 당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부인할 것과 동료를 밀고하도록 요구를 받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 일부는 재산을 박탈항하고 추방당합니다. 마태공동체가 처해있던 디아스포라 회당은 아마도 이런 원리주의적 배타주의의 태풍이 더욱 강력했던 듯합니다. 당시 이들이 살던 시리아 남부 지역은 유대 전쟁 이후 반유대주의의 열기가 아직 맹렬하던 때입니다. 유대인들로 인해 로마군에 의해 징발, 징용, 징병되어 전쟁의 고초를 겪었던 이들, 그들의 상처가 전쟁유민으로 밀려들어와 사회의 저변을 구성하고 있던 유대인들에 대한 적개심 표출되고 있던 때입니다. 그나마 유대인들이 로마 당국의 보호를 받던 회당에 속해 있으면 어느 정도 신변의 보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회당에서 쫓겨난다는 건 맹수들의 소굴로 내던져지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처지(｢마태｣ 9,36)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도 결속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자기를 밀고한 이와 자기가 밀고한 이가 공존하는 공동체를 말입니다. 상처 입은 자들이 모여, 미움과 원망이 남은 채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숱한 갈등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필경 어떤 이는 아내와 자식에게, 더 약한 이웃에게 폭행을 가했을 겁니다. 그래야만 해소되지 않은 채 남겨진 분노를 삭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부장적 공동체였기에 남자들에만 말하고 있는 복음서의 저자/지도자는 그런 이들을 향해 화해하라고 말합니다. 분을 쏟아붓는 대상이 원수처럼 여겨진다면 도리어 그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래야만 바로 당신들에게 폭행을 가했고 쫓아냈던 바리사이와 다른 이가 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바리사이들이 행한 의보다 더욱 철저히 의로와져야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두 가지 전략을 취합니다. 공동체의 상처 입은 남자를 정죄하지 않고 바리사이 같은, 혹은 시민 같은 존재로 인정해 줍니다. 아니 더욱 나은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붕괴된 자아를 고추세우려는 것이겠지요. 상처의 피해자가 아니라 의의 수행자로 주체화하려는 것이겠지요. 다른 하나는 그런 의를 위해 공동체 내의 가해의 주체로 하여금 먼저 화해하라고 합니다. 그것만이 화해와 연대의 순서라고 말입니다. 연대, 그 아름답고 숭고한 것의 불가능성은 바로 이런 전제 아래에서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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