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01/23 (12:03) from 122.46.144.152' of 122.46.144.152' | Article Number : 1660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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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9456 , Lines : 23 |
| 무너지지 않는 집(2008.1.13하늘뜻나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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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는 집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입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마르코복음｣ 13장 1~2절 20년간 프랑스에서 살았다는 한 번역가는 ‘이곳 집들은 수명이 300년이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신촌의 철길 옆 언덕빼기의 동네를 떠올렸습니다. 내가 그곳을 떠난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였고, 대학 4학년 무렵 그 동네를 다시 찾았을 때 내가 살던 집은 온데간데없었고, 심지어 동네의 형태조차 거의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0년 만에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은 장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사회의 급속한 산업화는 끊임없이 지었다 부수고 다시 짓곤 하는 과정을 무수히 되풀이 하면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가족은 월세에서 전세로, 그리고 자그마한 집이 생겼고 또 제법 살만한 주거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이 숨가쁜 격동의 세월을, 비록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꽤나 성공적으로 지내왔습니다. 신촌의 그 동네를 이사한 때부터 불과 10년도 못되는 기간 동안 아마 10번은 족히 이사를 다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덕에 집이 생겼고, 거기에서 20년간을 지낼 수 있는 안정된 삶의 터전을 얻게 된 것이지요. 아마도 우리 이웃들, 아니 이 변화무쌍한 도시의 주민들은 어떤 형태로든 지난 몇십 년 동안 몇 번의 반전과 몰락과 성공을 반복하며 그야말로 스펙터클한 체험 속에 살아왔을 겁니다. 우리사회에서 대략 지난 40년간의 역사는 그랬습니다. 학계는 이러한 우리사회의 광속엔진을 장착한 초고속 보트 같은 산업화를 ‘돌진적’(rush-to)이라는, 듣기만 해도 숨이 차오르는 용어로 묘사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돌진적 산업화의 가장 큰 수혜자 세대는 저와 비슷한 또래인 40,50대 연령층이 아닐까 합니다. 산업화와 더불어 초･증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졸업 이후, 그리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게 될 때까지 고도성장 사회의 긍정적 성과물을 비교적 가장 많이 누린 세대이니 말입니다. ‘격동 속의 안정’, 아마도 이러한 표현이 지난 40년과 그 전후시기를 구별짓는 한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이 세대의 전반적인 성공화, 안정화의 체험 이면에는 결코 적지 않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무수한 친구를 잃어버렸고, 무수한 이웃과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추억을 담은 숱한 공간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와 함께 수많은 ‘기억의 삭제’를 체험해야 했습니다. 하여 근자에 40,50대 연령층 사이에서 유행했던 이른바 ‘친구 찾기’ 캠페인은 이러한 삭제된 기억을 복원해 보려는, 세대적 기억상실증의 한 증후일 것입니다. 말했듯이 이러한 격동적인 산업화의 시대는 공간을 지우고 그곳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수없이 되풀이 하면서 전개되었습니다. 동네가 없어지고, 이웃이 없어지고, 친구가 없어지고, 이 속에서 기억이 제거되는 체험이 반복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사회 산업화의 가장 핵심적인 동력이 ‘건설업’인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건설산업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추동되는 사회를 학자들은, 일본 연구자들의 표현을 빌어서, ‘토건국가’라고 명명합니다. 건설업이 GDP의 10%를 상회하는 나라는 OECD 국가들 중 우리나라 밖에는 없고, 정부 총지출의 30%가 건설 관련 지출인 나라인 것도 OECD 국가들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최근 차기정부가 새롭게 추진하려는 대운하사업이나 보다 본격화하려는 새만금사업 등은 바로 건설 무문이 병적으로 과잉 성장한 사회다운 발전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 약간의 다른 의견을 추가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것은 이 정부의 등장이 지난 20년간의 이른바 ‘민주화의 시대’가 지나고 ‘포스트민주화의 시대’를 알리는 일종의 시대의 북소리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지난 40년간 지속되어온 토건국가식의 발전의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불연속의 요소가 여기에 게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사회의 ‘토건국가’적 성격은 공간의 파괴와 함께 기억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삶의 공간이자 기억의 공간인 집이 철거되고 또 새로 지어져 온 것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토건 욕구는 흥미롭게도 공간의 파괴가 기억의 파괴를 동반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의 하나인 김애란은 지구화의 시대에 ‘자기만의 방’을 얻지 못하고 부유하는 보헤미안이어야 하는 20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노량진’의 공간적 특징을 통해 묘사합니다. 온통 입시학원, 취업학원 등으로 채워진 도시의 공간, 이곳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기 위해 이곳에 산다고 하는 공간, 작가는 노량진은 바로 그런 곳이라고 말합니다. 한데 그녀가 묘사하는 사람들은 몇 년이 지나도, 다른 붙박을 공간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그곳에서 부유하고 있는 오늘의 보헤미안들입니다. 설사 대학엘 들어가거나 취업을 하여도 여전히 노량진의 습속에서 탈주하지 못한 현대판 한국의 ‘집시’들입니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노량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세상의 떠돌이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량진’은 삭제되는 기억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여간해선 탈출하지 못하는 폐쇄회로 같은 공간 같은 것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돌진적 근대화의 세대에게 공간의 철거는 동시에 기억을 삭제하지만, 안주할 새로운 귀속공간을 선사해주는 가능성의 장소였습니다. 한데 ‘노량진’은 철거의 공간이고 기억 삭제의 공간이지만, 하여 떠돌이들의 공간이지만, 그 철거 작업으로는 좀처럼 탈출할 수 없는 닫힌 철창 같은 공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은유입니다. 그 은유가 시사하는 현실은 궁핍의 공간을 벗어나려 발버둥치지만 여간해선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망한 여정을, 저 희망 없는 유랑을 말해줍니다. 막대한 사업비를 치러야만 하는 대운하 프로젝트는 건설사업자들과 지방토호들에게 꽤나 큰 선물보따리를 안겨줄 가능성이 있고, 잘하면 다수의 시민사회 안정계층에게 어느 정도의 떡고물을 던져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 친구를, 이웃을, 기억을 삭제하고, 나아가 생태환경과의 행복한 관계를 파괴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방’이라는 자생의 공간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시민사회의 불안정계층에게는 거의 희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은유인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토건국가가 과거 돌진적 산업화 시대의 토건국가와는 다른 요소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에 입성해서 며칠간을 성전 당국자들과 귀족들, 정치권력자들에 대항하는 하느님나라 캠페인을 주도합니다. 이제 많은 이들이 그분을 주목하게 되었고, 또 당국은 그이를 예의 주시하며 공격할 명분과 기회를 찾고자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는 자신이 생각했던 그 때가 거의 다가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즈음, 저녁때가 되어 그이가 언제나처럼 성전을 벗어나 은신처로 돌아갈 즈음, 제자 한 사람이 말합니다. ‘참 성전은 대단하네요. 볼수록 그 위용에 압도당할 것 같아요.’ 며칠 전 성전에 입성할 때 그네들은 곧 하느님나라가 도래할 줄 알았습니다. 비록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그쯤이야 예수님의 능력으로 한 쾌에 쓸어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며칠간 활동하면서 그네들은 점점 그 힘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필경 마지막 만찬을 나누던 그날 초저녁 한 제자는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두려움을 그만 발설하고 말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때 예수의 말은 통렬합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다.’ 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권력을 향한 말입니다. 바로 앞에 나온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읽으면 이는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과부가 헌금함에 지극히 작은 액수의 기부금을 헌납하는 것을 칭찬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그녀의 기부가 당시 성전 당국과 유력한 라삐들에 의해 폄하되고 있는 현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녀의 기부행위를 지배자들과 그들에게 생각이 예속된 대중은 구원을 받을 만하지 못한 열등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가난하기에 많은 기부금은 헌납할 수 없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열등한 신앙을 가진 존재, 구원에 이르는 데 부족하다는 것, 이러한 순환 논리는 그녀로선 탈출할 수 없는 견고한 체제였습니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집이 그녀를 저주의 장소로서 가둬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에 대해 예수는 다른 틀을 제시합니다. 그녀의 행위가 양이 아니라 질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그녀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욱 빛나는 신앙 행위를 한 셈이 됩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하느님에게 바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예수의 새로운 논리는 이렇게 그녀를 감금하고 있던 집을 해체해 버린 셈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집, 그 위압적인 체제의 힘의 논리에 실망한 제자의 말에 대해서, 예수는 그 집의 붕괴를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는 집, 바로 그러한 집과 예수는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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