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02/05 (22:23) from 122.46.144.152' of 122.46.144.152' | Article Number : 1661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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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9604 , Lines : 25 |
| '형, 나 좀 살려줘'(2008.2.3하늘뜻나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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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나 좀 살려줘!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달리다쿰!”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다녔다. ―｢마르코복음｣ 5장 41~42절 후배의 후배는 눈을 꼭 감고 있었습니다. 뭔가를 말해야 하는데, 필경 나를 거절하는 것 같아서, 도무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거의 애원하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쩔쩔매는 나에게 한 올의 허점도 보이지 않으려고 저렇게 완벽하게 냉혹한 연기를 하는 듯도 했습니다. 조금의 동작도 힘겨워 억지로 쉬는 숨 외에는 미동도 않는 이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아니 살짝 일그러진 표정 외에는 어떤 다른 단서도 남기지 않는 일관된 모습에서, 단지 가느다랗게 뜨던 눈을 감은 것뿐인데, 어떻게 저렇게 단호한, 범접할 수 없는 강한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나보다 더 당혹해하는 이는 후배였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말을 하며 그의 감은 눈을 뜨게 하려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끝내 그는 낯선 손님을 배려할 의지는 없어 보였습니다. 후배는 그가 수면제를 먹은 탓에 잠에서 깨지 못 하는 모양이라고 변명했지만, 잠자는 연기라고 하기엔 너무 어색한 모습이었지요. 아무리 봐도 그것은 명백한 거절이었습니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후배와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다, 어색한 배웅을 받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습니다. 그다지 절친하지 않은 후배가 나를 찾은 것은 자신의 후배에게 세례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 때문이었습니다. 후배의 후배는 말기암 환자였고, 치료 가능성은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젠 전신에 퍼진 암세포로 식사도 불가능한 상태였고, 거의 잡히지도 않은 혈관을 통해 포도당과 진통제를 주사 받는 것이 그가 몸으로 받아들이는 유일한 외부의 물질이었습니다. 동시에 그가 받아들이는 외부의 사람은 그이의 선배이자 나의 후배인 그이,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 누구도 보고자 하지 않았고, 친구나 다른 지인들의 방문도 거절했습니다. 해서 6인 병실을 드나드는 숱한 사람들 중 그를 찾은 이는 그의 보호자로 교대하며 병실을 지키는 어머니와 그의 선배, 둘뿐이었습니다. 근데 며칠 전 그가 자기의 선배이자 나의 후배인 이를 붙잡고, “형 나 좀 살려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후배는 ‘붙잡고’라고 말했지만, 그에게 그럴 힘은 없었겠지요. 필경 손은 잡은 것은 후배였을 것이고, 그는 단지 가느다란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을 뿐이겠지요.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미미한 표현을 읽어내는 것은 단지 그의 선배이자 나의 후배인 그이뿐이었습니다. 아마도 후배가 들은 그의 소리도, 다른 이는 들을 수 없는 지극히 가느다란 발성일 뿐이었겠지요. 얼핏 보면 그냥 입술이 떨리는 것에 다름 아닌 모습이었겠지만, 후배는 거기에서 애절한 소리를 감지해 냅니다. 그 둘의 놀라운 교신 능력은, 외부인 중 오직 이 사람만을 받아들일 만큼 철저히 폐쇄적인 둘 만의 교감의 소산이었겠지요. 후배는 ‘형 나 좀 살려줘’라는 소리에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에 울었고, 남에게 부탁이라곤 않던 그가 저렇게 간절히 애원하는 모습에 울었습니다. 후배는 갑자기 종교적인 결심을 합니다. 저 친구에게 세례를 주어야겠다고 말입니다. 별로 신실한 기독교인이 아니었음에도, 그 순간 세례를 받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말했던, 자기가 다니는 교회 목사의 말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오랜 동안 교신이 없던 나를 보자고 한 것은 그의 세례를 의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교회에 다니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 같다고 했지만 후배 역시 그걸 알지는 못했던 듯합니다. 장로였던 그의 부친이나 목사인 그의 친형과의 어떤 좋지 않은 사연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추정이 후배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얘길 나누었고, 남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감지할 만큼 깊은 사이인 이에게 끝내 하지 않은 말 중에 그가 교회를 싫어하는 이유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장로의 아들이고 목사의 동생이라면 필경 세례를 받았을 거라고 말했지만, 후배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설사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생을 얻을 만한 세례는 아니었을 거라며 나를 설득하고자 했습니다. ‘영생을 얻게 하는 세례’를 주는 비법을 알지 못하고, 또 그런 종교적 표현을 거의 믿지 않는, 신실한 구석이라곤 한 올 흔적도 없는 ‘엉터리 목사’인 나는 몹시 당혹스러웠지만 후배의 부탁을 거절할 도리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말기암 환자이고 곧 죽을 거라는 말에, 거절의 생각이 끼어들 자리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듯이 ‘영생을 주는 세례’라는 내게 부여된 임무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시도조차 못했으니 내게 능력이 있는지 여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나 자신은 그 여부를 알고 있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이 검증될 때까지는 심증은 있으나 어떠한 물증을 찾지 못하겠지요. 얼마 전 그의 부음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그의 아버님도, 형도, 그를 알던 여러 지인들도, 병원에선 만날 수 없었던 이들 모두가 그곳에 있거나 다녀갔습니다. 나는 세례의 ‘세’자도 말하지 못했는데, 그를 위한 추도예배 주보지가 떨어져 있었고, 발인 예배 안내장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빈소엔 ‘성도 아무개’라는 문구도 박혀 있었으며, 하얀 꽃송이가 활짝 웃는 그의 영정 앞에 나란히 누워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잠깐 보았을 때의 얼굴에선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웃음이 눈에 박힙니다. 마치 내가 실패한, 영생을 주는 세례를 이미 받았으니 걱정 말라고 말하는 듯이 그는 밝게 웃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 앞에 꽃을 놓고 기도를 하면서도 나는 가벼운 고민거리를 마음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곧 목사인 그의 형과 인사를 나눠야 하는데, 슬픈 표정을 지어야 할지 영정 얼굴처럼 웃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 앞 사람들이 헌화하고 유가족과 인사를 나눌 때, 요절한 아들의 빈소에서 그의 아버님도 그의 형도 울지 않았고, 여러 하객들과 밝은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마치 아들이 영생을 얻었으니 이 날은 잔칫날 같아야 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입니다. 또 후배가 나를 그의 아버님과 형에게 목사라고 소개할까봐 신경이 쓰였습니다. 영생을 주는 세례에 실패한 목사가 아들의 영생을 기뻐하는 장로인 부친과 목사인 형 앞에 인사를 나눈다는 것이 무척이나 껄끄러웠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후배는 자리를 피했고, 빈소를 나온 다음에야 나를 안내하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얘기를 나누다, 후배는 문뜩 공책의 한 쪽을 펼쳐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글을 쓸 줄 모르는 아이가 어눌하게 적은 그림 같은 글자 같은 게 보였습니다. 후배는 이번에도 후배의 후배가 쓴 글을 해독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후배에 의하면 그 글자는 “그 소녀를 보고 싶다”입니다. 그가 죽기 전날 밤에 쓴 일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배에 의하면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 소녀는 ｢마르코복음｣ 5장의 회당장 야이로의 열두살박이 딸이었습니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소녀를 살려달라고 회당장이 체면을 무릅쓰고 달려가 발 앞에 엎드려 예수께 간청합니다. 그러나 예수일행이 당도하기도 전에 소녀는 유명을 달리하고야 말았습니다. 집안엔 통곡하는 이들과 피리 부는 이들로 북적거립니다. 이미 장례 준비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소녀가 죽은 게 아니라 자고 있다고 하면서, 소녀의 시신을 보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마지막 기도라도 부탁할 겸 야이로는 그분 일행을 안내했겠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는 아이 손을 잡고 부드럽게 외칩니다. ‘달리다쿰’, ‘얘야, 일어나거라!’ 그토록 교회를 싫어했던 후배의 후배에게 후배는 매일 같이 성서를 읽어주었다고 합니다. 옆 사람이 들을까 소근 대듯 낭독하는 소리를 그는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특히 ｢마르코복음｣ 5장의 얘기를 읽을 땐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곳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달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그 소녀처럼 예수가 찾아와서 부드럽게 ‘이제 일어나도 돼’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목사들이 와서 입에 발린 소리로, 옆 사람이 싫어하든 말든 ‘이제 네가 영생을 얻었노라’라고 우격대는 것이 아니라, 달리다쿰이라는, 애정이 깃든 부드런 소리에 살며시 일어나 걷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는 그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이 와서 호들갑떨며 율법이 어떻고 하느님이 어떻고 운운하며, 입에 발린 말로 떠벌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 눈을 감아버린 소녀, 그러다 예수가 와서 ‘이제 일어나겠니’라고 속삭이는 말에 눈을 살며시 뜨고 사뿐히 걸었던 소녀에게서 어떤 동류성을 발고하고, 거기에서 애틋함이 솟아나왔을지도 모릅니다. 고통 앞에서 그리고 죽음 앞에 예의를 잃어버린 종교를, 의전과 교리만 남고 마음이 닫혀버린 종교 앞에서 그는 마치 시위하듯 아버지와 형을 거절했고, 또 한 명의 목사인 나를 거절했을지도 모릅니다. 후배가 알지 못하는 사연을 내가 알 도리는 없었지만, 어쩌면 그는 삼십년간 그를 둘러싼 기독교의 눈물 없는 신앙의 경험에 서서히 질려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자기의 손을 잡아주는 이를 기다렸고, 그를 따뜻하게 잡고 있는 후배의 손에 마음을 담는 말을 전했는지도 모릅니다. ‘형, 나 좀 살려줘’, 이 말은 소녀의 손을 잡은 예수를 자기도 만나보고 싶다는 하소연이었고, 어쩌면 그 말은 후배가 그에게 이미 그 예수였다는 걸 뜻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영생을 주는 세례의 집례자는 바로 그의 선배이자 나의 후배인 그이였겠지요. 그가 기다린 것은, 그가 기다린 기적은, 그가 살고 싶어 애원했던 소리의 진실은 의전만 남은 종교가 아니라 바로 그 후배와 같은 따뜻한 손길이었던 것입니다.(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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