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12/17 (00:24) from 218.237.90.196' of 218.237.90.196' | Article Number : 1664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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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9688 , Lines : 25 |
| 부자들에 관한 보고서(한백교회2008.11.2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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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에 관한 보고서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 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루가복음｣ 1장 52~53절 예수께서 죽임당했던 시기와는 다른, 아마도 10년 가까이 지난 어느 유월절기 때에, 헤로데의 손자 아그리빠 1세는 예루살렘의 예수 추종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일제검거령을 내립니다. 혐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많은 이들이 체포되었고 그 중에는 지도급 인사인, 요한의 형제 야고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묘사하는 ｢사도행전｣ 12장 2절에 의하면 이때 그는 ‘칼로 죽임당합니다.’ 체포과정에서 살해당했는지 아니면 참수형을 당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태 와중에서 걸출한 지도자인 야고보가 유명을 달리한 것입니다. 한편 체포된 이들에게 무자비한 고문이 가해졌고, 그 과정에서 숨어 있던 다른 이들도 속속 발각되었으며, 최고지도자의 한 사람인 베드로마저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처형당하기 전날 그는 탈옥에 성공한 듯합니다. 본문은 이런 탄압 정국이 아그리빠 1세의 통치에 퍽 유용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3절 “유대 사람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그는 로마 황제 칼리굴라(재위37~41년)와 어린 시절 동문수학한 사이로, 이 절친한 친구의 후광에 힘입어, 과거 조부의 광대한 영토를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정치력도 뛰어나 페니키아의 부유한 도시국가인 띠로와 시돈에까지도 일정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시리아-팔레스틴 지역의 가장 유력한 통치자이자 대부호로 부상하게 됩니다. 하여 유대를 일약 강대국의 대열에 부상하게 한 그에게 많은 시민과 대중은 환호하며 열광적으로 지지를 표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가 연설을 할 때에 대중은 “신의 소리다.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라고 열호하였다고 묘사합니다(12,21~22). 조부 못지않은 강력한 통치자로서 그는 유대 사회를 확고히 통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예수 추종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의 묘사에서 시사되고 있듯이, 이러한 대중의 광적인 동의와 지지는 사회 내의 특정 집단에 대한 폭압성의 결과이자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사회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자부심이자 기쁨인 것이 특정 소수자 집단에게는 저주이자 고통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날로 강대해가는 왕의 권세와 부는 절망의 계곡, 그 끝도 보이지 않는 나락 그 자체였습니다. 한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갑자기 죽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 23절에 의하면 “그는 벌레에게 먹혀서 죽고 말았”습니다. 세균학적 지식이 없는 사회이니, ‘벌레’란 어떤 세균성 질환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듯합니다. 그보단 독성 강한 곤충에 물려 죽은 것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법 합니다. 아무튼 이 죽음에 관한 ｢사도행전｣의 묘사는 극적입니다. 그가 자신의 업적에 기고만장하던 바로 그 순간 신의 저주가 내린 것이라고.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권세와 부를 가진 이의 최후는 이렇게 갑작스럽고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할머니는 조부 헤로데에게 내침당한 구 하스몬 왕조의 공주였습니다. 하여 몰락한 왕족이 되어 로마로 망명하면서 절치부심 가문의 부활을 꿈꾸며 살았던 그는 훗날 제국의 황제가 된 칼리굴라와 친구가 되었고, 이로써 곧 그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한 순간도 안심하지 않고 가문의 부활과 자기의 영달을 위해 앞을 향해 달려가기만 했습니다. 한데 더 많은 권세와 부를 얻으려고 갖은 수를 다 쓰고 남의 목숨까지도 함부로 했던 그는 이렇게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수포로 남기고 사라져 갑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루가｣9,26=｢마태｣16,26). 마치 그의 죽음을 두고 한 말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그의 잔혹한 폭력에 절망하던 이들은 이 한 사람의 부고(訃告)에서 신의 구원 섭리를 체험합니다. 그가 죽은 주후 44년으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지난 뒤, 로마 시에 있던 한 예수 공동체에서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저술되었습니다. 주후 66~70년, 멀리 고국에서 벌어진 반로마 항쟁으로 인해 황도 로마에서도 반유대주의가 태풍처럼 휘몰아쳤습니다. 전쟁 기간과 그 직후 혹독했던 테러의 시간은 지났지만, 제국이 부여한 전쟁 배상금조의 두 드라크마 세금은 여전히 모든 유대인들에게 부과되었고, 가혹하게 징수되었습니다. 특히 도미티아누스 황제(재위 주후 81~96)는 더욱 가혹하게 유대인을 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로마의 저술가 수에토니우스(69~140년경)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에는 “군중이 가득한 법정에서 아흔이 된 노인이 할례를 받았는지를 검사당하는 모욕을 당했고, 할례를 받은 것이 확인되면 유대인에게 부과된 세금을 지불해야 했다”고 합니다. 물론 로마시의 예수공동체의 대부분은 유대인이었으니, 그들에게도 황제의 학정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지요. 물론 그가 모반자들에게 내몰려 죽은 뒤 그에 관한 기록을 남긴 수에토니우스나 타키투스 같은 저술가들의 글들은 그에게 너무 편파적인 기억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치 네로(재위 주후 54~68년)에 버금가는 최악의 폭군황제였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은 그가 생각보다 훨씬 유능했고, 유달리 더 잔혹했던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그가 반유대주의적 태도를 가졌다고 믿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고, 또 그리 과장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시도한 황제숭배 정책이 유대인의 감정을 좀 더 격앙시킨 것 또한 분명한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들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황제의 축출과 사망 소식에 남다른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예수공동체 또한 그랬습니다. 이 공동체의 텍스트인 ｢사도행전｣은 흥미롭게도 도미티아누스의 죽음에서 반세기 전 예루살렘의 아그리빠 1세의 죽음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때 죽은 야고보 등을 기억하며, 황제 치하에서 잡히고 죽임당한 자신들의 동지들을 기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의 성서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 내리시고 /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루가｣ 1,52~53) 마리아 찬가로 알려진 이 구절에서 ‘왕좌에서 끌어 내림당한 제왕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또 ‘빈손으로 떠밀린 부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물론 아그리빠 1세와 도미티아누스가 여기에 가장 명확하게 연결되는 인물이라는 가정은 그리 무리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두 책 속에는 예루살렘의 예수공동체와 로마의 공동체가 연결되고, 그들의 기억 속에 각각 아그리빠1세와 도미티아누스가, 그리고 그들에 의해 고통당하는 이들이 서로 오버랩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공간적으로 이질적인 것이 한데 얽히면서 함축되어 있는 이 텍스트는 결국 ‘권세와 부’가 횡포를 부리는 ‘현장의 고통’을 각인하는 공동체의 느낌을 읽어내지 않으면 바로 읽혀지기 어려운 것입니다. 나아가 ｢루가복음｣과 ｢사도행전｣ 전체가 그렇게 보아야만 제대로 독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책의 서문에 공히 나온 수신자인 ‘데오빌로’라는 인물에 붙여진 호칭인 ‘각하’(크라티스테)는 팔레스틴 지역의 로마 총독이었던 이들에게도 사용된 바 있는 칭호입니다(｢사도｣ 23,26; 24,2; 26,25). 정확하게 어떤 직위에 사용되는 것인지 확정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권세와 부’를 누리고 있는 이에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컨대 이 두 책들은 권세와 부를 누리고 있는 이들에게 ‘권세와 부에 관한 소수자 공동체의 보고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보고서를 제대로 읽으려면 권세와 부의 횡포로 인한 현장의 고통을 공감하는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나는 최근 ‘쌀 직불금 제도’의 오용에 관한 국회청문회를 보면서 루가공동체의 보고서 독법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사회의 권세를 가진 부류가 부당하게 재산을 형성하여 부를 이루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입니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국회청문회는 바로 이 문제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재발을 막는 제도운용에 관한 정치적 지혜를 발견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했을 것입니다. 엉뚱한 것들도 많았지만 또한 많은 질의들은 그렇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정치적 담화들이 그렇듯이 권세와 부가 고통을 야기한 현장의 느낌보다는 정치적 이해집단 간에 정국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게임의 의욕이 과도하게 넘쳐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청문회 정치가 불가피하게 그런 식의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적나라하기보다는 숨겨진 의도로서 드러나야 하는 것일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루가공동체의 비동시적인 것을 오버랩시키는 읽기 방식으로 성서 텍스트의 다시 읽기를 시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쌀 직불금과 관련된 권세와 부의 부조리함, 그로인한 고통의 현장을 통해 이 권세와 부에 관한 보고서를 다시 읽는 것, 하여 부당한 권력의 죽음에 관한 신학적 신앙적 상상을 발견하는 것, 내가 오늘 깨달은 하나의 해석은 이런 것입니다.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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