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04/13 (09:51) from 219.254.24.112' of 219.254.24.112' | Article Number : 1668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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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9558 , Lines : 24 |
| 사랑, 독한 열정(2009.4.12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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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독한 열정 그렇게 욕을 보이고 나니, 암논은 갑자기 다말이 몹시도 미워졌다. 이제 미워하는 마음이 기왕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하였다. 암논이 그에게, 당장 일어나 나가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사무엘기하｣ 13장 15절 그녀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 몸매, 목소리, 걸음걸이, 그녀에 얽힌 모든 것이 하나하나 사랑스러웠습니다. 사람들 틈에서도 금방 그녀임을 알아 볼 수 있었고, 눈을 감고 있어도 그녀가 보였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그녀를 볼 수 있기 때문이고, 밤에 잠을 자는 것은 상상 속에서 그녀를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스케줄은 그가 꿰고 있는 그녀의 동선(動線)을 따라 짜였고, 그녀 때문에 더 열심히 운동했으며, 그녀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녀가 있었기에 그는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할 의지가 북돋아졌고, 그녀가 있었기에 최고를 위한 경쟁에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모든 행동과 생각과 계획은 모두 그녀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그녀가 이복누이동생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와 왕권을 두고 경쟁하는 이와 같은 혈족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 집은 정말 재수 없는 집안입니다. 유다 왕국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는 새똥만한 나라(요르단 동북부 바산 지역에 있는 소국인 그술)에 불과한데, 그것도 왕족 출신이라고 얼마나 있는 척하는지 아니꼽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한데 왕족이라는 점이 대신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게 그에겐 부담스러웠고 부러웠습니다. 게다가 그 녀석은 용모가 준수했고 기골이 장대했습니다. 말도 어찌나 수려한지, 감언이설에 넘어가 장자인 자기보다 그 동생녀석을 지지하기로 한 이들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고 싶은 것은, 적어도 그 즈음에는, 이복누이인 다말 때문인데, 그가 왕이 되려는 한 그녀는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녀의 친 오라비인 압살롬은 대권을 포기할 녀석이 아니고, 자기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정이었기에, 더욱 욕정은 불타올랐고, 그 마음을 다스릴 만큼 그는 야심만만한 성품도 단호함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궁이란 이런 낌새가 비밀로 지켜질 만한 곳이 아닙니다. 더구나 대권을 두고 싸우는 두 왕자의 일거수일투족은 궁의 모든 사람들의 표적이었습니다.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지만, 각자는 그 정보 하나하나를 두고 치밀한 계산을 하며, 전략을 폅니다. 암논, 이 영리하지 못한 왕의 장자는 자기의 약점을 노리면서 펼쳐지는 온갖 술책들을 간파할 이해력도 없었고, 사랑의 열정은 그나마 있는 부족한 판단력을 마비시켜 놓았습니다. 왕의 노련한 책사인 요나답이 접근해 왔습니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고 너무나 영리한 자여서 가깝게 지내고 싶었지만, 그는 자기가 아닌 왕의 책사이지요. 근데 어느 날 그가 와서 권합니다. 자리에 아예 누워 앓는 시늉을 하라고, 왕이 문병 오면 다말의 시중을 청하라고 말입니다. 그녀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그는 단박에 그렇게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간병차 방문한 이복누이를 그는 충동적으로 강간해 버립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걱정이 밀려옵니다. 가뜩이나 압살롬에게 호감을 갖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가뜩이나 그에 비해 자질이 부족하다는 말이 돌고 있는데, 누이동생을 강간했다는 소문이 나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사태가 예상되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 왕의 매서운 눈초리가 그를 몸서리치게 했습니다. 순간 그는 이 모든 것이 다말 때문이라는 생각에 빠져듭니다. 그녀를 사납게 밀치고 내쫓아 버립니다. 남자와 성관계를 맺은 한 여인이 그로부터 버림받으면 그것은 그녀의 수치이고 가문의 수치입니다. 해서 그녀는 뭇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사대부가나 왕실 여성의 법도였습니다. 암논이 그걸 모를 리 없지만, 그 순간 그것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걸만큼 열렬했던 그의 사랑은 한 순간에 재로 변했고, 그가 최고가 되고자 하는 열망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던 사랑의 열정은 한 순간에 최고가 되고자 하는 열망의 가장 심각한 장애물로 각인되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원망했고 저주했습니다. 그의 사랑, 그 ‘독한 열정’은 녹아버린 더러운 눈의 잔해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드라마 같은 얘기였습니다. 대개의 현실은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사랑의 독한 열정만큼은 결코 과장된 것은 아닐 겁니다. 조금 전 함께 나눈 한 ‘순수 청년’의 현장의 소리를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그가 겪은 사랑의 열병을 느낄 수 있으셨는지요. 그런데 그가 묘사하는 자기 서사에 접하면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를 낙천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는 별로 세상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는 세상을 그리 두려워하지도 않고, 세상과 별로 타협하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아시겠지만 그는 이른바 대안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가 다닌 정규직 직장은 잠시 근무했던 IT관련 소기업이 전부였고, 그 외에는 일종의 아르바이트에 지나지 않는 일을 해왔습니다. 놀랄만한 자기 통제력이 있고, 영리하고 순발력 있으며 다재다능한 사람이지만, 이른바 불완전고용 상황에 놓여 있고, 소득수준은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정도입니다. 다만 부양가족이 없기에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 수준이지요. 아무튼 어느 모로 보나 우리사회에서 주류에 가까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더욱이 그는 자기 꿈을 가지고 있고 그걸 향해 준비하고 있는데, 최근 환율사태로 그 꿈이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정을 장애로서 해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쿨’하게 자기 삶을 살아갑니다. 과하다고 느낄 만큼 자기 긍정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부정적인 뒷 이야기를 암시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그는 그것을 얘기하지도 거기에 매어 있지도 않습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단 하나의 예외가 있습니다. 사랑만큼은 아픔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그것만큼은 누구나 경험하는 평범함이 그를 지배했습니다. 그것은 열정이었고 아픔이었습니다. 하루를 설레임으로 시작하고 하루를 애련함으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실패의 상처를 봉합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랑의 열정과 열병은 누구나 거쳐 가는 통과의례처럼 다가왔다 지나갑니다. 삶의 커다란 동력이 되고, 가장 소중한 것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강한 충동을 일으키며, 깊은 상처를 남기며 가슴을 관통하여 지나가는 화살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랑의 종착지처럼 여기는 ‘결혼’이라는 현장으로 다가가면, 현실을 유보시키는 그 초월적인 열병은 적나라하게 세속적 가치로 환원되고 맙니다. 물론 결혼만이 사랑의 세속성을 노출시키는 요소는 아닙니다. 연애부터, 아니 연애에 대한 상상부터 그 세속적 계산법은 그림자처럼 사랑에 붙어있습니다. 사랑의 열정 자체도 그러한 계산법과 결코 분리되어 실재하지 않습니다. 결혼은 단지 그것의 하나의 적나라한 사례일 뿐입니다. 최근 결혼의 상업화 현상을 연구한 한 논문에 따르면, 2003년에 결혼예식 전후 과정을 포함하여 평균 1억 3천5백만 원 정도가 지출되었다고 추산합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급상승한 결혼비용은 이후 줄곧 가파른 증가추세를 띠고 있다고 합니다. 그 비용은 거의 대부분 부모로부터 나오는데, 그것은 부모세대 가계부채의 주요 요인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한데 이 과대지출의 배후에는 결혼시장을 둘러싼 치밀한 ‘사랑의 계산법’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산법은 사랑의 열정을 때로 녹아버린 더러운 눈처럼 만들기도 합니다. 아니 사랑의 열정 자체가 상업화되는 사랑의 계산법과 뒤엉키면서 이미 독성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알게 모르게 그 열정 속에 상처 주고 상처 받는 파괴적 독기가 함유되어 있기도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심화된 사랑의 상업화, 그것은 직접적으로 ‘사랑 마케팅’이 활성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사랑 마케팅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그 욕망은 사랑의 열정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하여 사랑의 열정은, 그 속에 담긴 사랑의 욕망은 누구나, 대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장화된 가치에 의해 잠식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사랑의 욕망이 초래할 수 있는 비극의 배후에는 시장의 원칙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암논의 욕정과 배신의 배후에는 왕권쟁탈이라는 전근대정치로서의 권력의 원리가 작동했다면, 현대인에게는 시장의 정치로서의 권력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주님의 부활을 기리면서 저는 사랑의 열정, 그것이 담고 있는 독한 성질에 대해, 사랑하던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죽게 할 수도 있는 그 독함에 대해 말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성찰하고자 했습니다. 부활을 기리는 우리의 고통은 이렇게 자본화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올빼미) <한백교회 1,323번째 모임(2009.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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