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09/16 (14:22) from 61.254.100.48' of 61.254.100.48' | Article Number : 177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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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797 , Lines : 22 |
| 낯섦과 불편함(2003.9.4감신대체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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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과 불편함 1930년대, 발터 벤야민이 당시 자본주의의 최첨단의 미학을 자랑하는 파리의 아케이드를 거닐면서 문뜩 자신을 낯선 세계를 방황하는 ‘배회자’로 느낍니다. 그 몇 년 뒤 장 뽈 싸르트르는 그의 첫 소설 ꡔ구토ꡕ에서 어제까지 일상 속에서 무감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수용되던 것들 하나하나에서 구역질을 하는, 이상한 생리현상을 이야기합니다. 불연 듯 감지된 세계의 낯섦이 몸을 불편하게 한 것입니다. 김수영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 내 몸이 아프다”(｢먼 곳에서부터｣)고, 1960년 초의 역사의 흐름에 대한 불편함을 자신의 몸에서 기억해냅니다. 저는 이 ‘낯섦’과 ‘불편함’에서 최근 민중신학의 모습을 봅니다. 이 얘기를 진척시키기 전에 먼저 단서를 달아야겠군요.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는 ‘최근의 민중신학’이란 제가 관여하고 있는 일단의 연구자 집단을 지칭하는 이른바 ‘제3세대 민중신학’에 국한된다는 것입니다. ‘세대론’은 1980년대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민중신학의 양상을 지칭하면서 처음 사용된 것인데, 이를 저희가 민중신학을 통시적으로 개념화하는 이론적 틀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이에 의하면 민중신학은, 한국 사회의 당대적인 비판담론과 대화하면서 체제에 대한 신학적 비판이론을 구성해갔다는 관점에서 규정됩니다. 그것은 신학이론이 일반적으로 신학사적인 담론적 맥락과의 대화과정에서 자신의 이론적 위상을 구성해간 것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신학적 사유 양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1970년대적 민중신학과 1980년대적 민중신학, 그리고 그 이후의 민중신학의 흐름에 관하여 논의하는 맥락에서 ‘제3세대’가 설명되는 것이지요. ‘제3세대 민중신학’은 1980년대의 경험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2세대 민중신학의 영향망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을 1990년대를 거치면서 다르게 기억해냄으로써 신학하기의 새로운 문제설정을 제기하기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다른 기억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선 1987년 이후의 일련의 흐름을 ‘좌절된 하느님나라’의 체험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민중신학의 비판자들이 흔히 오해하듯이, 하느님나라를 세속 권력 구조의 재편으로 동일시한 결과는 전혀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 나라를 향한 도정을 목적론적으로 이해하였던 신학적 신념의 좌절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목적론적 이해는 ‘선한 우리’와 ‘악한 저들’이라는 이분 도식을 통해 ‘악한 저들이 지배하는 이 세계’가 점점 지양되어 하느님나라에 근접해 가고 있는가를 물음으로써 역사를 해석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몸’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 세계의 질서가 우리의 몸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질서를 악하다고 비판할 때조차도 말입니다. 이러한 얘기는 근대성 논의와 관련됩니다. 근대란 사회의 정당화 메커니즘이 사람들 각자의 몸에 각인되는 사회 제도의 형성과 관련된 개념입니다. 근대 국민국가란 사회의 기억을 몸의 기억으로 효과적으로 전이시키는 데 성공적인 제도들을 창출함으로써, 왕-귀족국가의 전근대적 제도화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이러한 근대적인 성공적 제도화의 논리를 합리화라고 합니다. 즉 합리화된 사회일수록 몸과 사회의 기억은 더욱 불편하지 않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1980년대를 ‘좌절된 하느님나라’로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의 몸이 이 세계(의 질서)를 불편해 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목적론적 사유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적어도 잠정적인) 대안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우리가 극복하고자 했던 이 세계의 질서와 닮아 있다는, 아니 적어도 닮을 수 있다는 점을 성찰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이 세계를 비판하는 우리의 인식이, 말이, 행동이 우리가 비판해마지 않았던 자들의 그것들과 닮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 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김수영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 내 몸이 아프다”고 말해 버린 것은, 내면화된 악, 우리 몸의 일부가 된 악을 구역질하는 몸의 자정작용을 시인의 감수성이 읽어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아니 그것을 시인의 ‘영성’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요한복음｣은 세계를 각인한 몸, 세계의 일부가 된 몸, 세계를 욕망하는 몸을 비판하면서 그 특유의 담론을 구성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문서입니다. 그것을 제도화라고 해도 좋습니다. 유대교 회당의 제도화, 그리고 그것을 모방한 교회의 제도화, 아직 유대교도이기도 하고 그리스도교도이기도 한, 그러한 구분이 오늘날처럼 명료하지 않던 시대에, 아직 신조체계가 완성되지 않던 시대에, 요한공동체는 속속 제도화하고 있는 하느님나라를 열망하는 이들의 모임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댑니다. 물론 ‘몸화,’ 제도화는 이 세계를 넘어서기 위한 실천을 일상화하고 조직화하는 효과적인 장치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요한공동체는 이러한 몸화를 비판하면서 ‘영’을 이야기합니다. 이때 영은 마치 바람과도 같다고 합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틀로도 가둘 수 없는 유동적 실체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의 ‘영의 정치’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몸이 이 세계의 질서를 불편해하기는커녕 세계와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문제제기합니다. 성만찬이 ‘의전’이 되어버렸을 때, 요한공동체는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성만찬 담론을 먹거리 나눔의 사건으로 재구성된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 속에 포함시켜버립니다. 장례식으로 ‘의전’화된 미사가 예수를 생명이라고 고백함에도, 죽은 신자는 회중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고 함께 살 수도 없습니다. 이때 생명을 주는 예수라는 담론은 갈등 속에 휩싸여 버립니다. 그런데 의전은 그것을 상징화함으로써 그 불편함을 해소합니다. 이로써 삶과 죽음에 대한 일상적 담론과 그리스도교 예전은 모순 없이 만납니다. 한데 의전의 주체인 마르타가 아닌, 비의전적인 마리아의 눈물은 예수님을 눈물짓게 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대할 때 먼저 흘릴 눈물을 앗아간 의전에 대한 요한공동체의 항거입니다. 먼저 눈물을 흘리라는, 그 의미를 새기기에 앞서, 그 죽음의 이름을 짓기에 앞서, 먼저 죽음의 한에 공감하라는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와의 불편함은 요한공동체의 단절된 전통을 잇는 최근의 민중신학의 입지점입니다. 1987년 이후의 한국사회는 삐거덕거리면서도 ‘민주화’를 발전의 준거로 삼는 새로운 인식의 양상을 낳았습니다. 민주화를 유보한 발전이 아니라 민주화를 추구하는 발전이어야 한다는 문제설정입니다. 한데, 여기서 간과된 것이 있습니다. 민주화라는 게, 왕과 귀족의 권위를 시민적 대중에게 배분하는 사회적 과정을 의미한다면, 이것은 동시에 법적이고 규범적으로 누가 시민인가를 결정하는 사회 제도화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비시민의 존재의 체계적인 배제를 전제한 체제라는 것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악으로 상징화된 존재, 혹은 무능력자로 상징화된 존재 등은 그러한 비시민의 범주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부임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민주화는, 그 역사의 위대한 과정은 비시민을 보다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사회적 제도화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몸의 질서는 또 다시 야만의 은폐하는, 아니 더욱 교묘하게 은폐하는 장치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합리화된 세계 앞에서 우리는 배회자가 됩니다. 그리하여 더 발전된 세계 앞에서 우리는 낯선 자로서 남고자 합니다. 그것은 친숙한 것만을 추구하는 세상의 질서에 동화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민중신학의 몸부림이고, 친숙함의 체계에 대한 민중신학의 고발인 것입니다. 민중신학은 1990년대에 운동하는 대중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민중신학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역사의 주체이고자 하는 이들은 교회를 떠났고, 민중신학을 낡은 이론으로 지목했습니다. 여기서 민중신학은 비판적으로 신학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비판적으로 1980년대의 실천을 되새겨봄으로써 신학적 사유의 도정에 올랐습니다. 지금 민중신학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몸이 아파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은 ‘배회자’로서 비판의 공간을 찾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아직 ‘그리스도교 비평’ 혹은 ‘민중신학 비평’이라는 담론 공간이 협소하지만, 최근의 민중신학은 한국의 비판적 지식의 결핍된 부분인 비평의 영역을 되살리는 마당을 하나하나 마련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얘기할 것은, 민중신학의 비평은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지식과 제도의 해체를 논하고, 교회와 신학을 해체하고자 하지만, 나아가 그것을 그렇다고 문제제기하는 민중신학 자신을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이 인간에 의해 형상화된 자신을 죽임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이 시작된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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