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08/23 (02:38) from 211.39.63.85' of 211.39.63.85' | Article Number : 24 |
올빼미
|
Access : 2350 , Lines : 30 |
| 정당성(2000.8.20 '하늘뜻나누기' 원고) |
|---|
 Download : 00-08-20.hwp
(33 Kbytes)
|
|
정당성 에제키엘서 16장 51절 사마리아가 죄를 지었다고 하지만 네가 지은 죄의 절반밖에 안 된다. 너는 네 언니나 아우보다 역겨운 짓을 더 많이 하였다. 네가 저지른 온갖 역겨운 짓을 생각하면 네 언니나 아우는 도리어 죄가 없는 편이다. [공동번역 성서] 한 아기가 버려집니다. 탯줄 잘라 줄 사람도 없어 태반과 연결된 채 흉측한 것이 길게 아이 배꼽 밖으로 늘어져 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묻은 태지(胎脂)가 흙과 뒤범벅이 되어 아기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부모의 원치 않은 자식, 특히 딸들의 운명입니다. 지나던 사람 하나가 피투성이로 발버둥치던 아기를 데려다가 키웁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릅니다. 어느덧 그 아기는 처녀가 됐습니다. 고운 옷을 입고, 아름답게 화장한, 팔찌와 목걸이와 귀고리와 온갖 귀한 장신구로 치장한 그녀의 자태는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녀를 데려다 키운 사람은 그 모습에 반해서,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었으니, 그녀는 이제 왕비인 것이지요. 이 우화는 오늘 읽은 본문이 들어 있는 성서에 나오는 이야깁니다. 아마도 에제키엘 예언자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던 이야기인 듯합니다. 예언자는 이 우화를 끌어들여, 내용을 약간 변형하고 그 이야기의 후속부분을 창작함으로써 한 편의 풍자극을 만들어냅니다. 왕비가 된 여자가 은혜를 저버리고 마구 아무 남자들과 놀아났다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여기서 버려진 아기는 이스라엘이고, 그 아기를 데려다 정성껏 키우고 아내로 맞아들이기까지 한 이는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등 이미 이런 류의 결혼을 소재로 하는 예언자적 풍자는 새로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에제키엘에게서 주목할 것 하나는, 버려진 아기의 부모를 아비는 아모리인이요 어미는 헷 여자라고 하는 표현입니다(16,3). '아모리와 헷 족의 후손'이라는 말은 예루살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지명을 가리킬 뿐 아니라, 다윗 왕가 내지는 왕국의 지도층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이 의인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자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요컨대 유다의 왕가/지도층이 하느님을 배신하고 간음을 일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아비를 배신한 '간음' 행위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흔히 우상숭배라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유다가 간음한 상대로 특별히 에집트, 앗시리아, 바빌론 등이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유다 멸망기의 세계적 강대국들입니다. 이들에게 몸을 팔았다는 것, 더구나 화대를 받은 게 아니라 도리어 선물을 갖다 바쳐가며 음란한 짓을 했다는 비난은 간음이 단순한 이방 종교를 수입한 게 아니라 유다 왕국의 굴욕적 국제관계에 대한 예언자의 비아냥거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33). 세 번째로 주목할 것은 에제키엘 예언자는 유다의 죄를 소돔이나 사마리아의 죄와 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46 이하). 사마리아란 북왕국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유다인들에게 이스라엘이란 하느님을 배신한 대표적 국가를 뜻했습니다. 한편 소돔은 구체적인 지명이 아니라 전설상의 장소입니다. 죄악으로 인해 하느님의 심판을 받은 대표적 상징이 바로 소돔인 것입니다. 아무튼 유다인들에게 이들과 비교한다는 것은 더 없는 모멸이요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에제키엘의 말인 즉, 네 죄가 소돔의 죄보다 더 중하다고 합니다(48). 소돔의 죄라는 게, 단지 태평세월을 즐기면서 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봐주지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49). 지배층들이 권력 게임에만 몰두한 나머지 가난한 백성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뿐 아니라 외세에 주권을 넘겨주었다는 것입니다. 즉 가난한 백성을 돌보지 않은 것뿐 아니라, 외세와 결탁하는 방식으로 권력 게임을 벌였다는 비난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읽은 본문처럼, 에제키엘은 충격적인 발언을 내던집니다. 사마리아나 소돔이 지은 죄는 바로 네 죄로 인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정당화'된다),라고. 유다인에게서 이 말보다 치욕적이고 수치스런 말은 없습니다. 에제케엘 당시 유다 국가는 몰락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적으로 혹은 준강제적으로 이주된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예언자의 청중은 바로 이산집단이었습니다. 민족적 자긍심을 단단히 가져도 유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 그런 사람들을 향해 소위 사제이자 예언자인, 그들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의 한 사람이라는 자가 이렇게 저주의 말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한민족이 분단된 지 이미 반세기를 넘어섰습니다. 민족의 비극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도 올해로 꼭 50년째가 됩니다. 그런데 이번 8.15는 정말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의 감동적인 상봉이 있었고, 그것은 다른 경우와는 달리 매우 희망적인 전조임에 분명합니다. 이제 이산의 비극은 어느 정도 완화될 것 같습니다. 필시 남북의 사람들이 만나 해후를 풀 '만남의 광장'이 '올해 안'에 세워질 것이 예상됩니다. 반세기 동안 맞이하는 8.15 가운데 올해와 같이 뜻 깊은 절기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8.15 직전에 방북한 언론사 사장단 앞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했다는 발언은 의미심장합니다. 이제까지 남과 북의 정권이 모두 분단을 이용해왔다는 취지의 말입니다. 학계에서야 이미 상식이 된 것이지만, 통치자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온 것은 아마도 남과 북을 통털어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알다시피, 민족의 분단은 우리 내부에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냉전으로 치닫고 있던 강대국들의 이해에 이리저리 휩쓸린 결과였습니다. 유다의 지도층 인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반도의 지도자들은 무책임하게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이런 외부 제국들의 이해관계를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분단 정권이 탄생했습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냉전의 보금자리로 말입니다. 한국전쟁은 무책임한 정치꾼들의 협잡 행위의 소산인 냉전체제의 필연적인 귀결인 동시에, 그것을 한층 고조시킨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이제 양자는 서로를 더 이상 동족을 바라보듯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들어선 박정희 정부는 이런 맹목적인 냉전 상황을 이용해서 국가 전체를 준전시적 총동원체제로 만들었고, 이것을 자양분 삼아 산업화를 이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성공의 이면에서 비극의 씨앗이 배태됩니다. 성공 때문에 냉전의 정신은 더욱 굳어졌고 내면화된 것입니다. 냉전주의적 체제가 정당화됐고, 전국민이 냉전주의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 정권이 추진한 산업화는 재벌 중심적 노동통제형 사회를 탄생시켰습니다. 국가는 총량적 성장을 위해 빈부 격차를 극대화했고, 그로 인한 자본의 위기를 무마시키기 위해 파행적 노동관행을 정착시켰습니다. 그 결과 천민화된 자본이 자라났고, 그들이 주도한 문화는 겉잡을 수 없이 추잡한, 물욕과 부패와 이기심으로 가득한 사회를 키워버린 것입니다. 이제 이런 추악한 현실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이가 공범자가 되도록 만들어져 버렸습니다. 분명 남한의 국가는 분단을 이용해서 체제를 확고히 했고, 분단을 이용해서 과거와는 비할 수 없는 소비사회를 만들어냈습니다. 산업화에는 실패했으나, 북한 체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백대로, 적개심의 정치를 통해 체제를 굳건하게 구축해 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소돔이라면, 남한은 에제키엘이 비난하고 있는 유다/예루살렘과 같습니다. 남한은 극도로 심각한 외세 의존형 사회입니다. 정치 군사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종속의 정도는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점도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예속사회의 다양한 길 가운데 최악의 경우만을 선택해왔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자본주의의 전망은 결코 밝지 않습니다. 많은 지성들이 신자유주의의 암울한 미래를 걱정해왔던 바로 그런 모습들을 골고루 답습하면서 우리는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추잡한 사회의 하나가 되어버린 한국, 그리고 그 중심인 서울이 통일 한국의 비전을 이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하는 것처럼 통일은 문제의 해결이 아닙니다. 그렇기엔 우리의 두 체제는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러왔습니다. 양 체제의 구조화된 위기의 모습은 통일이라는 대안으로 자동적으로 해소될 것 같지 않습니다. 남북의 지도자들이 분단을, 냉전체제를 이용해서 정권의 안보를 구축하려 해왔던 것을 진작 반성할 수 있었다면 모르지만. 그런 죄악을 아직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과오는 한반도의 비극을,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의 위기를 야기한 제국주의 세력의 패덕을 가려주는 구실을 해왔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정당화해왔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 시작된 청산의 물줄기가 유일한 희망의 전조입니다. 그것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통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