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08/29 (01:37) from 210.219.90.209' of 210.219.90.209' | Article Number : 25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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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258 , Lines : 27 |
| 고액권화폐(2000.8.27하늘뜻나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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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권화폐 루가복음 3장 5~6절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높은 산과 작은 언덕은 눕혀져 굽은 길이 곧아지며 험한 길이 고르게 되는 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공동번역 성서] '고액권화폐의 퇴출현상'. 박사 실업이 한참 문제가 되던 지난 1993년, 그 문제를 다룬 한 연구는 이 현상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상적으로야 만 원 짜리 화폐나 십 원 짜리 화폐는 동등합니다. 예수님은 성전 헌금궤에 큰돈을 넣은 이보다 극소량의 헌금밖에 하지 못한 과부여인의 행위를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란 직업에 귀천을 두지 않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고, 부자와 빈자 모두가 동일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념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화폐라는 게 교환을 위해 소용되는 것인 한, 거기에는 교환가치가 필연코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요컨대 십 원과 만 원은 결코 같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화폐가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를 포기할 수 없는 한, 아무리 민주주의 이상을 들먹이더라도 그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간의 충돌을 완충하려는 사회적 제도화의 노력이 요청되며, 각종 사회적 제도는, 어느 쪽에 더 가깝든, 이러한 두 요소 사이에서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어떤 형태의 제도가 하느님나라의 뜻에 더 가까운 것일까요? 한편 현대 사회란 갈수록 전문가 집단의 고도의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하나의 개념으로 '전문가사회'라는 표현이 사용되곤 합니다. 그들은 고도로 복잡해진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 구성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공공적 질서 또한 그들의 지식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고액권화폐로 비유되는 사회적 존재들은 전문가집단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고, 이는 사회적 통합을 위해 그들이 기여하는 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보상이 그들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전문가의 대열에 서고자 노력합니다. 전문가로서의 자격조건을 구비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며, 교육체계는 그런 노력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합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만큼보다는 조금 더 많은 수의 전문인 자격자를 공급하는 것에 (공공성을 지향하는) 교육체계의 목적이 있습니다. 한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고액권화폐 같은 존재는 자신들의 희소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즉 전문가집단은 사회적 필요수요보다는 훨씬 적은 수요를 적정선으로 설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문가집단의 관점에서 볼 때 교육체계는 공급 과잉의 상황을 야기하는 장본인이 됩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사회가 직면한 위기요소의 하나는 박사 실업으로 특징지워지는 고학력자의 공급 과잉 현상이었습니다. 학생의 시각에서 교수의 수가 결코 많은 것이 아님에도, 실제로는 박사의 과잉 배출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2천년대가 시작하자마자 한국 사회가 직면한 또 하나의 위기는 의사집단의 위기의식의 극대화였습니다. 역시 사회적 필요수요에는 턱없이 모자람에도, 현실적으로 공급과잉으로 인한 위기의식이 의사집단 내에서 만연해진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최근의 의료사태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한국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의사집단이 똘똘 뭉쳐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약분업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된 이 현상의 근저에는 다양한 이유로 인해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사회적 특권을 유지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의사집단 전반이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후자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수용하기에는 의사의 공급이 과잉이라는 사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한국 의료시스템의 중요한 특징 하나를 주지시켜드리고자 합니다. 언젠가 말씀드렸듯이 한국의 의료체계는 거의 전적으로 사적 영역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우선 의료전문인이 되고자 해서 자격을 얻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거의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것입니다. 또한 병(의)원을 차리고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거의 전적으로 사적인 노력에 의해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그러다 보니 의사라는 직업집단은 공공가치 외부에서 성장하게 되었고, 거의 전적으로 사적인 동기에 의해 자신의 직업을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강이라는 것은 결코 사적인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의 자기 관리의 실패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보건의료체계의 질병 예방 및 관리 체계의 부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국가는 통치행위의 가장 중요한 안보의 목록 속에 보건의료를 넣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국가는 보건의료를 위한 공적 비용을 거의 지불하지 않아 왔습니다. 그 비용은 병원과 약국으로 대표되는 사적 자본이 맡았고, 국가는 여기서 발생하는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관료집단이 이것으로 자신들의 사적 이해를 위해 적지 아니 활용해왔던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국가의 지대추구행위라고 합니다. 대신 국가는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의 특권을 지불해줌으로써 상호공존을 해 왔습니다. 요컨대 국가/정부의 지대추구행위와 의료자본/의료전문인의 천민화는 서로 밀접한 연관관계에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보건의료의 사회적 제도는, 한국 사회의 경우, 지나치게 사사화되어 있으며, 시장 상황 속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특히 IMF체제를 거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국가의 규제가 약화되고, 거의 자유방임에 가까울 정도의 자유경쟁의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면서, 보건의료체계의 자본 종속 정도는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가령, 소액자본의 병(의)원이나 약국은 거대자본에 의해 고유의 시장을 거의 상실해 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현재의 의료사태의 표면적인 진원지인 의약분업은 정작 국민건강을 위한 제도화를 지향하기보다는 거대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속속 변형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국민 건강은커녕, 보건의료 전문가로서의 의사나 약사들은 자본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으로 사태가 진행되는데, 의사들의 '고액권화폐' 의식이 긴밀히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오늘 제가 문제시하는 주된 논조입니다. 의료사회학을 전문으로 하는 어느 학자에 의하면, 한국 특유의 의사의 엘리트 의식이 현 사태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합니다. 고액권화폐로서 자신에 대한 기대의식이 너무 과도하게 책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나친 자부심 탓에 의사집단 외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위기의식만을 표출하는 데만 열을 올리게 됐고, 그것이 '의권'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의권이 국민의 건강에 관한 권리라는 사실이 망각된 채, 의사 집단의 자존적 권리로서만 해석된 채, 의사들의 집단적 히스테리는 식을 줄을 모릅니다. 여기서 저는 자명한 해법을 다시 한번 제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성서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실현은 골짜기가 메워지고 크고 작은 산이 눕혀지는' 상태를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나라는 다양한 차이가 특권화되고 탈특권화되는 사회의 불평등성이 극복되는 것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안병무 선생은 창세기의 인간 타락 신화를 해석하면서, 공적인 것을 사유화한 데서 죄의 원형을 찾습니다. 사유화 과정은 존귀한 이와 비천한 이를 만들고 그들을 나눕니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에서 하느님나라와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체제일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체제 또한 하느님나라의 지향 가치를 실현하기보다는, 무수한 봉우리와 골짜기를 만들어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오늘날 가장 위대한 사상가의 한 사람은 '진보의 딜레마'을 고뇌하면서, 최소한 향후 50년간은 희망을 구체화할 수단도 이상도 없다고 통탄합니다. 고액권화폐는 개별적으로 명멸의 역사를 거듭하겠지만, 그럼에도 고액권의 존재는 여전히 지속될 것이며 그 위세는 더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의사집단은 현대사회에서 가치가 격하되는 고액권화폐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추정컨대 일부 의사의 퇴출을 담보로 고액권의 위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하느님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신앙의 길을 가야하는 우리는, 비록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봉우리를 눕히고 골짜기를 매우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을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의료사태에 즈음해서, '의사 대 비의사'라는 무지한 의사집단이 설정해놓은 대립구도에 휘말리지 말고, 거대자본에 종속되어 가는 건강권을 공공의 것으로 남겨두기 위한 노력은 분명 하느님나라를 위한 도정에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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