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01/05 (18:23) from 61.73.17.98' of 61.73.17.98' | Article Number : 266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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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791 , Lines : 42 |
| ‘거인’을 꿈꾸는 ‘난장이’(2003.12.14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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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을 꿈꾸는 ‘난장이’ “추측 속에서만 현실이었던 정치 비자금의 실체가 조금씩 실제 세계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측했던 대로 천억 원이 넘는 막대한 돈이 재벌들의 손아귀에서 선거 자금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놀랍게도 이 막대한 액수는 정치 비자금의 총액이 아니라 단지 대선용 비자금이었고, 모든 후보들에게 제공된 총액이 아니라 단지 한 후보에게만 공여된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재벌 기업이 조성한 비자금의 총액은 그것의 수십 배를 훨씬 넘어서는 액수라는 점입니다. 단지 한 재벌 기업이 일년간 빼돌린 비자금이 무려 4조 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던 것입니다. 결국 모든 정황은 우리의 추측에 그리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기업은 결코 압력에 못 이겨 정치권에 비자금을 상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부조리한 경제행위의 공범자로 정치권을 활용하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런 공모 관계는 요즈음 언론이 호들갑스럽게 떠벌리듯이 정부의 무능력에 근거한 사상유래 없는 부패 정국의 양상이라기보다는 보다 오래되고 체계화된 한국 근대의 구조적인 모순의 결과로 보입니다. 많은 연구자들의 진단에 의거해 말하면,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성찰적 시민사회의 성장 없이 정치와 경제의 과도한 성장이 낳은 부조리함의 결과입니다. 요컨대 최근 이른바 정치비자금 정국에서 표출된 민주주의의 위기는 한국 근대화의 성공이 담보한 위기라는 얘깁니다. 한데 정치계이나 재벌로 상징되는 재계의 부조리함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욱 저를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그러한 부조리함을 대하는 대중사회의 일반적 태도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삶이 고통스러울 때, 그리고 그것이 개선될 가망이 그다지 보이지 않을 때, 그것을 심리적으로 넘어서기 위한 ‘대체물’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종교는 그러한 대체물의 하나였습니다. 1930년대와 1970,80년대 기독교의 대부흥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대대적인 이농과 그로 인한 정서적 귀속감 상실의 위기를 ‘잘 사는’ 서양 사회의 종교에 귀의함으로써 극복해보려는 대중적인 욕망의 결과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최근의 비자금 정국에서 사람들은 현실의 억눌린 압박에 대한 분노의 배출구를 찾아낸 것처럼 보입니다. 대중 모두가 화를 내고 있습니다. 부조리한 것을 비판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그 부조리함이 지양되기 위해서는 냉정한 분석이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마치 활화산처럼 곧 터질 듯이 부글거리는 모습은 부조리함의 구조를 탐문하려는 모든 시도를 침묵하게 하고 격앙된 분노만을 터뜨릴 뿐입니다. 토론은 없고 선동만 되풀이되는 양상입니다. 여기에는 자신들이 어떤 존재에 의해 꾸며진 음모의 ‘희생자’라는 집단의식이 그 토양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원인제공자이자 가해자인 ‘거인들’ 대 피해자인 ‘난장이들’ 간의 단순 이분법적 대립틀이 이와 같은 ‘분노 담론’의 뼈대를 이룹니다. 이런 이분법에 의거해서 대중 자신과 동일시된 이른바 ‘난장이 의식’은 한국 근대화의 체제적 위기를 자기 자신이 겪는 개인의 고통과 직결시키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곧 개인의 고통은 민족의 고통이며, 거꾸로 민족의 고통이 개인에게 상처로서 체험된다는 인식에 사람들이 사로잡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거인들의 부조리함에 분노하는 것은 단순히 소외된 것에 화풀이하는 것이 아닌, 국가/민족 전체의 위기 극복인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의 원인을 당시의 화두가 된 어떤 대상에 ‘전가’하려는 이러한 집단의식에서 한 가지 더 집고 넘어갈 것은, 이때의 ‘난장이 의식은 거인을 꿈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난장이들은 거인들에 의해 자기들에게 부가된 고통이 지양된다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성공 신화’에 대한 욕망이 난장이들의 적대감 속에 뿌리 깊게 배어 있다는 얘깁니다. 이것은 발전이 없다면 행복이 없다는 조바심의 반영이고, 나아가 성장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반영입니다. 저는 한국 근대화의 가장 치명적인 특성을 바로 이러한 ‘성공주의’에서 찾습니다. 또 마찬가지로 한국 근대화와 밀접히 얽히면서 존속해온 한국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이 승리주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을 성공/승리와 직결시키는 인식론, 저는 이것을 ‘발전 지상주의적 미학’이라고 부릅니다(‘미학’이라 함은 발전 지상주의적 인식론이 사람들의 일상적 삶 속에 뿌리내려 분석하지 않아도 마치 아름답고 정당한 가치처럼 여겨진다는 점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런 발전 지상주의적 미학의 맥락에서 최근의 대중적 분노 담론을 바로 이러한 한국적 습성이 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최근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이러한 ‘난장이 의식’(그녀는 이를 ‘궁핍의 파토스’라고 부릅니다)은 한국 사회에서 독재체제의 대중 동원의 논리였다고 주장합니다. 요컨대 독재체제는 대중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체제의 발전주의적 기획에 순응하도록 하기 위해 이 ‘난장이 의식’을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또 거꾸로 난장이 의식은 독재 체제와 친화적인 사고 틀이라는 얘깁니다. 여기서 저는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떠올립니다. 그는 이 소설에서 ‘난장이’를 앞에서 이야기한 저의 용법과 다르게 쓰고 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몰락한 나치 체제에 대해 분풀이하는 독일인의 난장이 의식을 비아냥대면서, 어린 아이의 몸으로 성장을 멈춰버린 존재, 즉 진짜 난장이를 통해 난장이 의식에 사로잡힌 독일의 일반 대중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즉 이 소설은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나누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려는, 그래서 자기 자신은 나치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독일인의 위선을 고발합니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몰락한 나치 체제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된 나치의 전범들만의 것이 아니라, 독일의 어른들이 공모하여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인 난장이가 자기의 아버지‘들’을 죽게 했을 때, 독일의 많은 비평가들은 ‘전쟁 세대의 아버지들’에 대한 작가의 거부를 읽어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의 원인을 일방적으로 다른 데로 ‘전가’시키는 태도에 있습니다. 귄터 그라스가 말했듯이 그 대상이 부조리함의 극치를 보여줄지라도 말입니다. 자신은 막대한 권력의 무력한 희생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피해자/난장이 의식은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종종 교리로서 활용되어 왔습니다. 부조리함의 극점에 막대한 권력을 가진 ‘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고통을 겪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장악해버렸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이 장악당한 ‘신체’를 해방시켰다는 확신이 자기 자신이 ‘악’과 연루되어 있지 않다는 확신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부조리함의 극점인 ‘악’이 신앙적 실천 속에서 끊임없이 구체적인 대상으로 환원되어 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 체제는 이러한 악을 응징하는 존재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악을 응징한다는 심판의 담론은 항상 격정적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무성찰적입니다. 왜냐면 일단 ‘악’이라고 대상화된 존재에 대해서는 어떤 냉정한 대화나 토론의 여지가 이러한 담론 속에서는 봉쇄되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경험은 사람마다 자신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체험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결코 동일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외부의 ‘악’에 피해자라는 인식은 그때마다 구체화되는 악에 따라 동일한 피해의 체험으로 각인됩니다. 이것은 한국의 독제체제가 악의 극복을 향해 근대화에로 매진하자는 구호를 통해 대중을 체제의 하수인으로 동원했던 것처럼, 교회 또한 신앙대중으로 하여금 외부의 타자에게 분노를 전가시키게 함으로써 교회의 제도에 순응하는 존재로 동원합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그러므로, 교회의 전통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간적이든 시간적이든 교회의 전통적 상징물은 은근슬쩍 교회와 세계의 부조리함에 우리 자신을 연루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악의 관행들을 읽는 예민함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항상 어느 편과도 의견이 일치할 수 없는 세계와의 불편함을 의미합니다. 한백의 ‘서대문 시대’는 지난 시간들과는 다른 모습을 필요로 하겠지만, 그럼에도 한결 같이 필요한 예수 따름의 기본자세만은 꼭 간직해야겠습니다. 정치비자금 정국은 그러한 우리의 신앙적 문제의식을 성찰적으로 되새김질하게 하는 하나의 시금석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여기서 다시금 드러난 우리 사회의 일상화된 무성찰적 난장이 의식이 바로 우리의 선교 과제의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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