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11/20 (03:22) from 210.219.97.99' of 210.219.97.99' | Article Number : 32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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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588 , Lines : 30 |
| 터미네이터(2000.11.19하늘뜻나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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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터미네이터 성서본문: 이사야서 28장 14~15절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빈정대기나 좋아하는 자들아! 이 백성을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는 자들아! 너희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구나. "우리는 죽음과 계약을 맺었다. 저승과 협정을 체결하였다. 부서뜨리는 채찍이 지나가도 우리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거짓말이 우리의 대피소요, 속임수가 우리의 은신처다." [공동번역 성서] 1997년 말 엄습한 '경제대란'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폭풍. 그것은 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고 여겨질 만큼 굉장한 파괴력을 가졌지만, 다행히도 불과 3년 만에 그 재앙은 비교적 잘 극복되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잘해냈다'는 국내외적 평가를 받을 만큼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상황은 위기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발전 프로그램의 결함을 단숨에 극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지난 몇 년간은 한국의 잠재력이 제법 괜찮다는 희망의 전조를 보여준 기간이었습니다. 아직 충분한 연구가 바탕이 되지는 않았지만, 몇몇 연구자들은 한국 자본주의의 이러한 역량 있는 역할 수행자의 하나로 정부와 재벌기업의 '관료집단'을 거론하곤 합니다. 물론 이들은 동시에 한국 경제 위기의 장본인의 하나로 꼽히는 부류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모럴 해저드, '도덕적 해이'가 파국을 낳은 것이라는 주장이지요. 하지만 교과서적인 원론적 대응으로는 불가능한, 복잡하게 얽히고 꼬인 현실의 난해한 여건을 헤치고 가능한 최선의 방책을 찾아내어 그것을 추진해내 위기를 돌파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집단이 바로 그들이기에, 그 기여도에 대한 평가를 인색하게만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한국 근대화의 성공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한때 기세를 떨쳤던 '유교자본주의론'을 잠시 떠올려봅니다. 문외한인 제가 이 논쟁에 개입할 처지는 아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입론에 대해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가설은,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유념할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많은 연구들이 한국 근대화의 비합리성을 강조해왔다면, 이 가설은 서양과는 다소 달라도,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나름의 합리성을 개발해왔고, 그것은 한국의 전통과 서구 자본주의의 전통이 혼재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주장에서 유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소 어려운 얘기지만) 이러한 가설은, 근대화를 합리성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막스 베버 이후의 사회학'이 한국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적 합리성의 행위자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관료집단'입니다. 그러므로 서유럽과 북미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들은 한국적 합리성에 의거해서 근대화를 추진해온 주역이었다는 것입니다. 주지하듯이, 여기에는 서양의 합리성과 한국의 합리성의 대조가 전제되고 있습니다. 그 둘의 차이가 서양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의 근대화가 진행되게 된 근거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둘이 모두 '합리성'이라는 공통의 단어로 묶일 수 있다는 점 또한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베버의 표현에 의하면, 그것은 '합목적적 합리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합리성이란 의도한 바 목표를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해내는 것이 행위의 주된 기저를 이루는 사고 양식을 말합니다. 가령 어느 기업이 올해 목표를 100억불 수출에 두었다면, 그것을 위해 모든 가능한 역량을 동원하려는 태도, 그리고 그것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가능한 한 억제하려는 태도에서 이 합리성을 단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찍이 베버는 이러한 합목적적 합리성에서 자본제 사회가 문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핵심 비법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문적인 관료조직이 그 성공의 견인차였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한데, 동시에 베버는 바로 이 합리성, 그리고 그것의 행위자인 관료조직 때문에 자본제 사회의 피할 수 없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우려했던 것은 사회 전체가 하나의 '기계'로 전락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터미네이터>는, 기계로 전락해버린 세계는 바로 그 기계에 의해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는 종말론적 신탁을 선포합니다. '때가 차자' 기계가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학살하고 멸종시키리라,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여기에는 기계의 일부가 되어버린 현대인의 자화상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기계처럼 일어나서, 기계처럼 일하라!' 이런 모토가 바로 현대인을 지배하는 '제1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자본제 사회는 가장 기계적인 인간에게 최상의 융숭한 보상을 해주는 사회체제입니다. 그리고 이런 원리는 놀랍게도 베버로부터 거의 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더 없이 적절한 준거가 되고 있습니다. 가령, '지식기반사회'이라는 현실 진단이자 미래 예측의 가설은 최대한의 잉여를 창출해내는 지식을 갖추도록 요구하는 엄명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비록 지식기반사회론이 이러한 사회 비전을 통해 하나의 유토피아적 꿈을 보여주려 하지만, 어떤 사람의 문제제기처럼, 이러한 강령의 세계는 전 사회 구성원의 80%의 존재가 불필요한 '잉여인'이 될 것임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생략된 말은, 불필요한 사람들의 '비존재화'일 것입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기계가 인간을 학살하는 장면은, 20%의 필요한 사람이 나머지 80%를 제거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20'의 더 기계적인 존재가 '80'의 기계가 되는 데 실패한 존재를 제거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것은 '20'의 관료가 '80'의 '비관료'를 해고하는 우리 사회의 상투적인 구조조정 국면과 중첩됩니다.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여러 기계화된 조직 체계들에서 계속 밀려나게 될 경우, 그들은 이주노동자가 되고 노숙자가 되어, 무적(無籍)의 유랑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소속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비존재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베버가 상상한 비관적 사회상은 우리 세계에서 지금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베버는 이런 '20'의 관료적 사람을 가리켜 '정신이 부재한 전문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효과적인 구조조정이 우리 사회 회복의 유일무이한 방책이라고 주장하면서, 몇십만, 아니 몇백만의 사람을 이러한 비존재로 전락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폭탄선언을 거리낌 없이 내던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슴 아픈 심정에서 피를 토하듯 내지르는 말이 아닙니다. 담담한 표정에서 담배 연기가 코끝을 스치며 살며시 공중으로 퍼지듯, 입 밖으로 자연스레 흘러나가는 가벼운 기체 같은 소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정신이 부재한' 사람인 것입니다. '터미네이터'라는 영어 단어는 '끝장내는 자'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런 점에서 베버가 말한 '정신이 부재한 전문가'는 영화의 '터미네이터'와 동일한 존재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오늘 본문에서 이런 죽음의 사자를 가리켜 '저승과 계약을 맺은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합니다. 본문의 직설적인 표현으로는 그들이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고 하지만, 물론 그것은 이사야의 상상 속에서만 그들의 자기 묘사일 뿐입니다. 요컨대 그들을 이사야는 저승사자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로 터미네이터입니다. 명령받은 대로만 움직이며,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받은 명령이란 '인간', 즉 '기계가 아닌 인간', '기계 같지 못한 인간'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힘없는 자, 가문 없는 자, 재산 없는 자,..., 이런 자들만을 골라 그들의 적(籍)에서 삭제하라는 것입니다. 거짓 신탁을 말하든, 불법 재판을 행하든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차가운 가슴으로, 정신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 일을 수행합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명령에 대해서 그 일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존재, 그래서 그들은 합리적 존재인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여기서 베버의 경고 메시지에 유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묵시록을 경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이사야처럼, 그러한 자들과 그러한 자들의 체제에 대해 저항하는 실천가의 삶을 배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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