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03/18 (18:01) from 61.73.44.200' of 61.73.44.200' | Article Number : 342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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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216 , Lines : 29 |
| 탄핵, 그 달콤한 역겨움(2004.3.14 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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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그 달콤한 역겨움 ｢사무엘기하｣ 13장에는 다윗 왕실에서 벌어졌던 한 왕족 여인의 강간사건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다말’이라는 이름의 그 여인은 다윗이 독자적 권력을 구축하기 시작한 헤브론에서 결혼한 여섯 번 중 세 번째 부인에게서 난 공주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강간한 이는 첫째 부인의 장자인 암논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고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조인 다윗 왕실에서 첫 번째 왕위 상속자가 누구인가에 관한 궁중 암투의 맥락에서 벌어진 한 폭력 사건이라는 성격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압살롬의 누이인 다말을 강간하고도 다윗의 용서를 받은 암논은 강력한 경쟁자 집안을 공개적으로 욕보임으로써, 적지 않은 관망자들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는 정치적 성공을 거둡니다. 2년 후 압살롬은 음모를 통해 암논을 살해함으로써 경쟁자 세력을 분쇄시키는 데 성공을 거둡니다. 그렇지만, 이복형을 죽인 그의 행위는 그의 가문에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압살롬의 외가는 헤브론 시대의 여섯 외척 가문 중 갈릴래아 호수 동편에 위치한 제법 강력한 국가의 왕실 계통이라는 점입니다. 요컨대 가장 강력했던 이 외척 세력은 자기 가문을 능욕하고 가장 유력한 외척세력으로 부상한 가문의 핵인 암논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대신, 압살롬의 용서를 조건으로 다윗에게 약점을 잡힙니다. 이로써 강간 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강력한 외척을 성공적으로 견제함으로써 다윗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다말 강간 사건이라는 불미스러운 역사는 이렇게 봉합되고, 다윗의 왕국은 안정을 이룩했으며, ‘전진’을 거듭해서, 훗날 팔레스틴의 유일한 국가인 양 기억되는 역사의 승자로 기록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말’입니다. 이 여인은 강간당한 뒤 암논에게서 버림받았고, 아비 다윗 또한 암논을 보호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심지어는 친오라비인 압살롬과 자기 가문에 의해서도 정조를 잃은 여인으로 유폐된 채 평생을 살도록 강요당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심지어 이 사건을 기술하는 성서조차도 이 불행한 여인을 중심으로 이 사건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희생자의 침묵 위에서 권력 투쟁이 벌어졌고, 이렇게 희생자의 인권을 간과한 채 승자와 패자가 갈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야훼 신앙사는 초기의 기억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역사의 기억을 신앙적으로 되새기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다말) 강간의 기억’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기억을 ‘추억’한다는 것은 그것이 기억하는 자 개인의 삶 속에 의미있는 것으로 개입해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추억이란 희생자의 침묵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곧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번역 가능한 것으로 옮겨놓는 추억이라는 행위는 가해자의 시선에서만 가능합니다. 지난해 이맘때 개봉되어 흥행대박을 거두고 숱한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기까지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이라는 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에 수사관으로 참여했던 한 전직 형사의 추억, 그 살인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평론가들이 지적하듯이 영화의 관람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형사의 시선을 내면화한 채 그 사건을 추억합니다.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1980년대에 대한 자신의 기억 방식, 그 ‘추억’의 음울함 드러내고자 했다고 고백합니다. 열 명의 희생당한 여인의 목소리는 이렇게 이 사건에 관한 우리의 기억, 그 추억에서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열 명의 여인이 희생되었음에도, 그 중 한 건을 제외한 모든 살인이 영구미제의 사건으로 남겨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영화에 의하면, 군사독재 시대의 ‘불구성’에 있습니다. 감독은 자신이 인터뷰한 형사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때 우린 모두 불구였다. 절름발이 형사였다. ... 우리도 불구였고, 조직도 불구였다”고. 1961년과 1980년의 군사쿠데타는 이렇게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들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영화의 소재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곧 쿠데타 정권이 붕괴되기 직전이며, 대부분의 살인은 ‘민주화 이후’, 곧 적어도 권력구조에서는 군사쿠데타의 흔적이 청산된 이후에 벌어진 것입니다. 군사쿠데타의 주역들이 물러났어도 쿠데타의 기억은 사람들의 심성 속에 여전히 견고하게 자리하고 효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독은 우리 몸에 똬리를 튼 살인의 추억의 심성을 ‘등화관제’로 묘사합니다. 이 “인위적인 어둠을 만드는 행위”는 사실을 조작하고 은폐하는 권력의 욕망만이 아니라, 쿠데타의 기억을 심성의 일부로 간직한 우리 모두의 무의식적 욕망이라는 얘깁니다. 그 주역들이 사라진 뒤에도 그들의 시선을 은연중 내면화한 쿠데타의 추억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우리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세계의 지성으로 평가되는 어느 위대한 사상가의 말대로 사람들의 기억은 지구화된 사회에서 더 이상 죄의식의 심성이 아니라 향락의 심성입니다. 텔레비전의 리얼리티 쇼나, 심지어 참혹한 전쟁보도조자도 ‘향락’하는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려는 추세가 바로 오늘날 세계의 특징임을 분명하게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영화 <살인의 추억>이 주는 재미처럼 ‘추억한다’는 것은 일종에 기억을 향락하는 행위입니다. <실미도> 같은 영화도 야만적인 국가폭력을 향락하려는 현대인의 추억 양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겠지요. 짐짓 진지하듯 하지만, 그 속에는 1980년대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감정이 아니라, 리얼리티 쇼가 되어버린 스펙터클한 향락으로 소비하려는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지구화된 사회에서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의 이 역겨운 관행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3월 12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결의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직전 한 사람은 분신을 했고, 또 한 사람은 그날 국회의사당 뜰 안으로 몰고 온 자기 차에 불을 질렀습니다. 유사한 사건이 전국에서 계속 이어졌고, 연일 격앙된 시위대로 광장이 온통 채워지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은 국민의 진정을 호소하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어느 누구도 들뜬 사람들의 감정을 가라앉히기보다는 자파에게 유리하게 동원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12일을 전후로 한 며칠간의 추이에서 ‘탄핵’은 정치권에 한정된 담론만이 아닌 2천 년대 초 한국의 대중적 심성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고, 국민은 그들의 탄핵을 주장합니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많은 아내들은 남편들의 탄핵을, 아이들은 부모들의 탄핵을, 학생들은 선생들의 탄핵을 얘기합니다. 실재하는 문제를 ‘탄핵’이라는 언표로서 얘기하는 것은 벌써 사람들의 입에 익숙한 표현이 되었습니다. 지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청문회 때 ‘억’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진 것처럼 말입니다. ‘탄핵의 정치’은 더 이상의 대화를 중단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탄핵 이전에는 자잘못을 논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모든 논의가 탄핵이라는 말 속에 회수됩니다. 그것은 탄핵하려는 편과 그 반대편의 시선에서만 자잘못에 관한 일체의 주장들이 해석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다른 논의들은 있을 자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부부싸움에서 어느 순간 남편의 주먹이 아내의 안면을 향해 날아가면, 그때까지 적절하게 행동했든 아니든 서로 자잘못을 논할 수도 있었던 것이 그 이후 모두 폭력의 행위 속에 흡수되어 얘기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사자들간의 성찰이란 없습니다. 성찰이란 상대편, 혹은 제3자의 시선으로 문제를 읽는 데서 비롯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탄핵의 정치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게 합니다. 결국 비성찰적인 탄핵의 정치는 상대편만이 아니라, 제3자의 목소리를 침묵하게 합니다. 특히 약자들, 소수자에게서 언어를 빼앗는 경향을 낳습니다. 골방으로 유페된 다말처럼, 희생자들은 그 숱한 아름답고 숭고한 언어들 속에서 망각된 존재에 다름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등화관제가, 그 군사쿠데타의 상징적 퍼포먼스가 인위적인 어둠을 만드는 행위인 것처럼, 3월 12일의 탄핵사태도 인위적으로 어둠을 만드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될 것입니다. 자의든 아니든 그 폭력적 회의를 진행한 의장은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언하면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전진해야 한다’고 미묘한 말을 내질렀습니다. 그가 깨달았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전진’해야 한다는 말 속에는 다말을 망각한 다윗 왕국과 야훼 신앙사의 폭력 속의 성공이 함축되어 있고, 숱한 희생자를 낳으며 이룩한 1960~80년대의 그 비루한 한국의 성공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저의 우려에 대해 이렇게 위로의 말을 합니다.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기득권 유지에 맹목적인 보수세력이 역사상 처음으로 붕괴하고 합리적인 보수가 자리 잡는다면, 단절된 대화는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되기를 진정 바랍니다. 한데 제 의문은 그것으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있습니다. 그것은 성공한 집단 사이에서만 가능한 대화일 뿐입니다. 그리고 간혹 승자들이 선물 나눠주듯 베풀어준 담화의 공간에서만 희생자는 말할 기회를 얻게 되는 대화일 뿐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추억담과 같은 것에 불과합니다. 승자의 시각을 내면화한 이들의 성찰을 가장한 얼굴에서만 볼 수 있는 역겨움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사태가 이미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쿠데타의 상흔을 버벅거리며 고통스럽게 극복하려 몸부림해온 우리에게, 또 하나의 상흔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통을 전가시키는 우리의 가학성의 사회가 계속될 것이고, 희생자들의 죽음 같은 절규를 침묵하게 하는 인권침해의 정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힘겨운 투병을 시작해야 합니다. 병든 국회의원과 기득권집단만이 아니라 이미 전염되기 시작한 우리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투병입니다. 야훼 신앙사 초기에 벌어진 한 사건에 관한 역사의 추억을 극복하기 위해 천년이 지난 뒤에까지도 예수가 죽어야 했던 것처럼, 길고 고단한 고통스런 투병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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