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12/19 (09:45) from 63.106.215.4' of 63.106.215.4' | Article Number : 35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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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588 , Lines : 33 |
| 해독제(2000.12.17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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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제 이사야서 7장 14절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오복음서 1장 21~22절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예수라 하여라. ...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30~40대의 남자들이 술잔을 나누고 있습니다. 저편 구석에 앉은 이와 맞은편의 사람은 처음 본 사람들인 모양입니다. 둘은 명암을 건네주며 악수를 나눕니다. 명암은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는 기초정보를 제공해줍니다. 그곳에 적힌 상대의 소속, 직위 등에 관한 이야기가 대화의 물꼬를 터줍니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엔 그 일에 관한 지식이 모자랍니다. 이제 상대의 성씨에 관한 얘기가 다음 주제로 떠오릅니다. 가족은 어떠며, '본'이 어디며, 무슨 '파'인가, 조상 중에 어떤 분이 계신가 등등, 마치 상대방의 가족사가 매우 궁금하다는 듯 번갈아가며 서로 열성적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이윽고 군대 얘기가 이어지고, 출신학교, 고향 등에 관한 '심문'이 계속됩니다. 정밀한 호구조사를 하다보면, 적어도 어느 것 하나쯤은 서로의 결속의 고리가 발견됩니다. 순간 둘은 그 간격을 적어도 '십 리'는 좁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얼마 안 가서 그들은 동지가 됩니다. 어떤 학자는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특징의 하나가 바로 '연줄망 주의'라고 지적합니다. 누구든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동기의 하나가 바로 '더 좋은' 연줄망을 갖고자 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연줄망이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유리한 조건이라는 사람들의 집합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런저런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학습된 관념임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일상대화에서까지 연줄망 찾기 게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한겨레니, 단군의 자손이니 하는 민족 동질성을 강조하는 무수한 말들이 난무하건만, 연줄망 주의가 뿌리깊게 삶 구석까지 침투한 것은, 사람들이 민족의 연대감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민족주의가 삶의 '안전망'을 제공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그 점에서는 국가도 예외가 아닙니다. 제3공화국 이래 '총화단결'이라는 범국가적 구호는 전국토의 모든 곳으로, 모든 연령 속으로 두루 퍼졌건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국민권'이라는 허울좋은 자격증으로 안전한 삶이 구가되리라는 기대를 거의 조금도 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연줄망 중독증 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두 번째 이야기를 하려는 저의 출발점은 '연줄망 중독증'에 걸린 우리의 자기 진단에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선택한 성서 본문은 마태오복음서의 '처녀 수태'에 관한 구절입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며, 어쩌면 로마군의 사생아인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교회로선 이런 주장은 기절초풍할 얘깁니다. 교회는 처녀가 아기를 낳았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수태가 남자로 인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동정녀'란 성관계를 맺지 않은 여자를 말합니다.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이성 없이 생명을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현대의 교회가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물론 그들이 현대의 생물학적 지식에 반대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예수님만의 예외'라는 신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간과는 달리)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 예외적으로 가능했다,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신앙이 신화에 기반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신화란 사실과 허구의 판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실재에 속합니다. 신화는 분명 존재하는 것(실재)이지만, 그것이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 본래부터 허구적인 것인지를 캐묻는다고 신화의 의미가 밝혀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올 선생과의 논쟁에서 교회는 자신의 동정녀 수태 신앙이 '사실'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요컨대 교회의 이 신앙은 '사실에 기반한 신화'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한데 문제는 그것을 입증할 도리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도올 선생의 의심은 바로 이러한 교회 신앙의 약점을 바로 짚고 있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신앙을 변증하기 위해 독선 이외의 어떠한 증거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마리아의 잉태가 로마군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물론 시대 정황상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마태오복음서가 가정하는 탄생시기인 주전 4년의 경우엔, 그 가능성이 좀더 높아집니다. 왜냐면 당시 나자렛이 인접한 도시 세포리스는 그 시기에 로마군에 의해 난도질당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또 루가복음서처럼 주후 6년이라고 봐도, 로마군에 의한 수태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팔레스틴은 로마의 예속국이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막연한 가능성 외에 어떠한 정보도 그 가설에 도움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도올 선생의 도발적 발언에 대한 교회의 반발과 그것을 보도하는 몇몇 언론들의 호들갑 속에는 이러한 식의 알곡 없는 말장난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선 이 주제에 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인식은 이 신앙이 '신화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예수 탄생 신앙 신화는 그것이 사실이냐 허구냐 라는 물음으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런 질문은 동정녀 수태 신앙이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꼴이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신화로 본다는 것은, 사람들의 어떠한 바람이 예수님에게 투영됐으며, 예수님은 이러한 그들에게 어떠한 분으로 비춰졌는가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 신화적 신앙은 예수님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성서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마태오복음서는 마리아의 처녀 수태를 이사야서의 예언 말씀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한데 두 구절을 잘 읽어보면 작은 차이가 드러납니다. 이사야서의 '젊은 여자'가 '처녀'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젊은 여자'(알마)란 기혼이든 미혼이든 나이가 많지 않은 여자를 가리킵니다. 반면 마태오복음서의 '처녀'(파르테노스)는 그것의 '한' 헬라어 번역 형태로서, '미혼의 여자'를 뜻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미묘한 차이는 단지 오역의 결과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 속에는 예사스럽지 않은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서에서 이 예언의 말씀은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게 여간 어려운 구절이 아닙니다. 그 예언이 무슨 뜻일까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어왔는데, 주된 가설에 의하면 그것은 곧 등극할 왕인 히즈키야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즉 아하즈 왕의 친아시리아 정책에 대해 줄곧 강력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이사야 예언자는 왕의 아들 히즈키야에게 '임마누엘'의 기대, 곧 희망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젊은 여자'는 아히야 왕의 왕비이거나 아니면 그의 친애를 받던 여인이라는 뜻이며, 따라서 그녀는 결코 처녀일 수 없습니다. 한데 마태오복음서에서 마리아는 분명 기혼상태에서 예수님을 수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사야 예언자의 히브리어식 표현을 그대로 옮겨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행히 한 유력한 헬라어 번역본에서 '처녀'라고 번역되어 있었기에, 마태오는 그것을 선뜻 취하였던 것입니다. 한데 그 표현 속에 담긴 의미는 단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비 없는 자식은 유다 사회에서 고아를 뜻합니다. 그것은 그 아이가 사회에 '정상적으로 속해 있지 못한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냥 비정상적으로 덧붙여진 존재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그는 유다 사회에 귀속되지 못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이지요. 누구의 아들로 불리워질 수 없는 존재, 그래서 그는 태생적으로 유다인의 정상적 연줄로부터 배제된 존재입니다. 이사야서처럼 왕의 연줄을 지닌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율법에 고고한 학식을 지닌 율법학자의 연줄망에서 난 이도 아니고, 어떤 영웅의 후예도 아닙니다. 그는 아무런 연줄도 형성할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한데 이사야서가 '젊은 여자'에게서 난 아이가 임마누엘, 곧 희망의 원천이라고 말한 것처럼, 마태오복음서는 '처녀'에게서 난 아이, 곧 무연고의 존재, 어떠한 귀속성도 형성할 수 없는 배제된 존재로서 메시아가 이 땅에 도래했다고 합니다. 바로 여기에 중요한 신화적 신앙의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모세는 구약성서뿐 아니라 신약성서와 나아가 무수한 외경 텍스트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인물로서 추앙됨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예는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어떠한 중요한 역할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레위의 족보가 어떠니, 다윗의 가지에서 무엇이 나온다느니 할 때, 야훼신앙의 원조격되는 인물 모세는 아무런 연줄망의 근거도 제공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점에 선 존재, 야훼신앙의 그리스도교적 전기가 되었던 존재, 그분 예수는 어떠한 연줄망과도 무관하게 우리에게 다가온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성령으로 온 분인 것입니다. 연줄망 중독자인 우리는 그분이 처녀에게서, 아비 없이 난 존재임을 고백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때 처녀수태 신앙, 그 신화적 신앙은 우리의 중독증에 대한 해독제로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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