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12/28 (10:18) from 210.219.88.137' of 210.219.88.137' | Article Number : 36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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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470 , Lines : 28 |
| 진리와 편견(2000.12.24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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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편견 요한복음서 1장 45~46절 그가 나타나엘을 찾아가서 "우리는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 분을 만났소. 그분은 요셉의 아들 예수인데 나자렛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 그러나 그는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고 물었다. 그래서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권하였다. 대학입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대학과 다른 대학이 갈리고, 몇 개 명문대학과 비명문대학이 갈리고, 서울의 주요 대학과 지방대학이 갈리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이와 못 들어가는 이가 갈립니다. 이러한 구별짓기 장치는 크리스마스라는 소비의 축제와 결탁하면서 더욱 효력을 발휘합니다.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파트너를 고를 때의 당당함, 연인이나 가족에게 값비싼 선물을 사는 능력, 행복하고 화려한 이 축제의 전유자, 등등. 이 모든 것은 한 대학 혹은 몇 개 명문대학 출신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집니다. '별볼일 없는' 대학 출신자가, 혹은 대학도 '못나온' 자가 화려한 축제의 주인공일 경우,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부모 덕으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사기성이 농후한 근성 때문일까 등등, 순조롭지 않은 그의 내막을 상상하게 됩니다. 물론 구별짓기 문화는 대학과 관련된 담론 현상만은 아닙니다. 그렇게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문화 곳곳에서 숱하게 많은 구별짓기의 흔적들을 찾아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속담에 '개천에 용났다!'라는 말이 시공을 초월해서 널리 회자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습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그가 어디 출신인지의 문제가 인간 존재로서의 그의 품격을 결정하는 강력한 잣대가 된다는 인식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편견은 우리의 삶 속에 구축된 진리들(품격의 준거로서의)과 연결되어 있게 됩니다. 보르헤스라는 아르헨티나의 한 위대한 작가가 쓴 [알렙]이라는 소설에서, '알렙'은 직경 2~3 센티 정도의 작은 구체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웅대한 우주가 들어 있습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상상할 수 있는 한계의 구석구석까지, 심지어는 인간 존재 외부의 신비의 영역까지 온갖 것이 그 안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마치 보르헤스 자신의 자전적 경험처럼 기술되는 이 소설에서 지리한 말장난으로 일관하다가 소설의 절정에 이르러 이 구체를 통해 우주의 온갖 것을 보는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눈을 감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나는 '알렙'을 보았다. ... 바로 여기서 작가로서의 나의 절망이 시작된다."(228)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묘사할 만한 언어의 한계, 언어를 통한 묘사의 전제조건인 경험의 한계를 절감했다는 것입니다. 두쪽 45줄의 묘사에서 무려 38번의 '보았다'는 단어가 나옵니다. 무수히 반복되는 '보다'라는 동사는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와 신화를 넘나드는, 실재한 것과 상상 가능한 것과 상상조차도 불허한 것들에 관한 묘사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바로 알렙은 우주인 것입니다. 한데 그것은 불과 2~3 센티의 구체일 뿐이고, 지구에 속한 한 집의 지하실에 들어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공간의 혼란이 초래됩니다. '알렙' 속엔 우주가 있지만, 그 '알렙'은 우주 안에 있습니다. 작가 자신이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모든 지점들로부터 '알렙'을 보았고, 나는 '알렙' 속에 들어 있는 지구를, 다시 지구 속에 들어 있는 '알렙'과 '알렙' 속에 들어 있는 지구를 보았다."(232) 저는 에제키엘이나 묵시록 저자의 환상기(幻想記) 같은 묘사를 보면서, 오히려 인도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우파니샤드' 철학, 그리고 그 중의 정수인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내가 그것이고, 그것이 곧 나 자신인, 나는 우주 안의 작은 실재이지만 동시에 내 안에 우주가 있다는 성찰 말입니다. 한데, 소설 끝 부분에 저자는 후기를 답니다. 형식상, 소설의 '알렙' 체험이 있은 지 한달 후에 썼다는 기록에서, 그는 '알렙'이 존재한다는 혹은 존재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체험했던 그 알렙은 '가짜'였다는 생각을 발설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번 더 반전이 일어납니다. 일상적 공간관, 작은 것은 큰 것 속에 내포되어 있을 뿐이라는 관념을 뒤엎어버리고,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하더니만, 그러한 '범아일여'적 공간에 대한 자신의 체험은 '착각'이었다는 것입니다. 진짜는 따로 있다고 ... 착각은 '편견'의 소산입니다. 우리는 편견으로, 편협한 눈으로 세상을, 나아가 우주를 읽습니다. 우리의 편견 속에 세상이 들어 있고, 우주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대학이라는 구별짓기 장치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진리를 상상해내고, 우주의 법칙을 단정짓습니다. (예쁜 혹은 잘생긴) 외모라는 구별짓기 장치, (날씬한 혹은 건장한) 체형이라는 구별짓기 장치, 무슨 가문, 무슨 직업, 무슨 종파, ... 이러한 편견들 속에서 우주가 들어있습니다. 이러한 편견들 속에서 우리의 존재가 구성됩니다. 이러한 편견들 속에서 우리의 삶의 습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필립보와 나타나엘이라는 두 제자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화의 질을 봐선 둘은 유다 사회의 상당한 식자층에 속하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요컨대 그들은 그 사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데 있어 가장 훌륭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대화 속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편견이 담겨있고, 그것은 그들간의 대화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첫 부분은 나타나엘을 설득하려는 필립보의 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율법서와 예언서에 기록된 그분'이라고 합니다.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필립보가 제시한 논거는 당신이 기적을 일으켰다느니 무슨 말씀을 했다느니 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마치 사회학자가 1980년 광주를 연구하면서 서양의 고전적 학자의 관점을 들이대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는 그 학자의 권위에 의존해서 자신의 사건 해석의 설득력을 높이려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런 눈으로 메시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어지는 대사에서 첫 번째 편견이 나옵니다. 권위 있는 성서의 텍스트가 증거하는 이는 바로 '요셉의 아들 나자렛 예수'라고. 요한복음서가 지어진 때가 1세기 끝 무렵이니, 예수님이 아비 없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시깁니다. 이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다윗의 계보에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그분이 메시아라는 고백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 책의 지리적 배경은 유다가 아니라 소아시아입니다. 유다 문화권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저자가 필립보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라는 대사를 말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이런 표현은 저자의 의도적인 구성의 결과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시 독자는 이 말에서 쉽사리 그 편견을 읽어냈을 것입니다. 대화의 두 번째 부분은 나타나엘의 반응입니다. 그는 '나자렛에서 메시아가 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것은 구약성서나 어떤 라삐 문헌에도 나자렛이 메시아적 존재의 탄생지로서 언급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역시 식자층답습니다. 한데 여기에 두 번째 편견이 들어 있습니다. 그는 메시아의 자격을 갖춘 이의 법칙, 즉 메시아적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라면 이런 자격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난다거나, 예루살렘 출신이라거나 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라는 자가 왕실에서 태어나거나 율법학자의 집에서 태어나거나 해야 한다는 유다주의적인 일반적 관념을 그는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유다인들이 습성적으로 그런 메시아관을 가졌습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기술만 차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아비 없는 자식으로 났다는 건 하나의 역설이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 탄생을 축하한 이가 동방에서 온 이방인들(마태오복음서)이라거나 천박한 목동들(루가복음서)이라거나 하는 것 또한 역설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태어난 곳이 왕궁이나 귀족의 아름다운 규방이거나 율법학자의 권위가 묻어있는 서가 앞이 아니라, 마구간이었다는 것은 커다란 역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메시아가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불리우는 것 자체는 중대한 역설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 메시아론은 일체의 구별짓기 관념을 전복시키고 있습니다. 대화의 세 번째 부분은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다시 설득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간명하게 말합니다. "와서 보라!" 율법서나 예언서에서 고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습성화된 구별짓기 문화의 편견적 진리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네 눈으로 직접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편견으로 미리 진리를 예단하지 말고, 그를 대면하며 진리를 겪으라는 것입니다. '알렙'은 존재하나, 편견의 눈으로 본 '알렙'이 가짜였다면, 진짜 '알렙'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진짜 '알렙'을 찾으려면, 편견의 안경을 벗고 우리의 눈으로 그 진리를 대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비의 축제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 전설이 있고, 아름다운 리듬과 멜로디가 울려퍼지는 캐롤이 있고, 화려찬란한 성탄장식이 넘쳐나는 축제. 인종과 지역과 이념의 장벽을 넘어 온 인류에게 주어진/질 보편적 구원 신화가 난무하는 축제. 그러나 실은 그 이면에 구별짓기의 잔인한 미소가 가장 적나라하게 실현되는 축제. 빈곤과 풍요로 불행과 행복이 양단되는 축제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날을 기리는 우리는 어떤 '알렙'을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축하하는 메시아의 얼굴을 통해 우리는 어떤 세계, 어떤 우주, 어떤 모습의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인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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