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01/25 (01:15) from 63.106.215.40' of 63.106.215.40' | Article Number : 38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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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410 , Lines : 30 |
| 열쇠구멍(2001.1.21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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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구멍 요한복음서 9장 37~39절 예수께서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 예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공동번역 성서) 그러나 갑자기 그의 시선이 소멸하면서 그림에 생기가 사라졌다. ... 장님 같은 눈과 죽은 뱀같이 엷은 입과 뺨만이 남았다. (사르트르, {구토}) 열쇠구멍으로 누군가를 '엿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몰래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상대방의 흐트러진 모습이 들어옵니다.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아무렇게나 몸을 움직이며 춤을 추고, 괴성을 지르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열이 오른 몸을 참을 수 없어서인지 옷을 풀어헤치더니, 곧 아무렇게나 벗어 던집니다. 흉측하게 머리와 몸통과 엉덩이를 마구 흔들어대는 모습에서 그의 광란기는 절정에 이른 듯이 보입니다. 그리고는 바닥에 철썩 쓰러지면서 대자로 누워버립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정숙한 사람이 이렇게 흐트러질 줄이야..., 엿보는 자는 순간 보여지는 자의 내밀한 구석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찹니다. 이제 엿보는 자는 그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때 그는 보는 데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보여지는 자의 추함을 보는 데 집착하는 그는 자신의 '엿봄의 추함'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간, 난데없이 발소리가 들립니다.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엿보는 행위가 들켜버립니다. 그 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볼 여유 없이 황급히 도망쳤지만, 그의 머리 속엔 그 사람의 '따가운 눈초리'가 지워지지 않습니다. 보지도 못한 그 사람의 눈초리에, 그 눈초리에 대한 상상에 그만 엿보는 자는 제압당해 버렸고, 그 사람의 시선에 의해 파렴치한으로 존재가 규정되어 버립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수치스러움을 느낍니다. 싸르트르의 {존재와 무}라는 책에 나오는 일화를 제가 임의로 각색한 것입니다. 실은 어제 읽은 싸르트르에 관한 한 논문을 보면서 오래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이렇게 옮겨놓은 것입니다. 여기서 '엿보는 자'는 엿보이는 자를, 그의 존재의 됨됨이를 규정짓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이때 엿보는 자는 그를 제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엿보이는 사람이 그것을 알아차린다면, 말할 것도 없이 그는 엿본 사람에게 제압당해 버립니다. 즉 엿보인 자는 엿본 자의 '시선'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이런 주종관계는, 그러므로, 엿본 자의 마음대로, 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 사실의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엿본 자의 시선에 의해 진리가 만들어지고, 엿보인 자는 엿본 자의 시선에 의한 그 진리를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엿본 자는 자신의 진리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에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여기서 진리는 편견의 소산임이 드러납니다. 진리는 엿본 자와 엿보인 자간의 불균등한 시선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입니다. 한데, 이런 진리관이 흐트러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엿봄의 행위가 누군가에 의해 들켜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행위를 본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는 순간에 일어납니다. 물론 가상의 이야기에서처럼 그것은 누군가의 시선의 의미를 알아서가 아닙니다. 단지 그 시선에 의해 자신이, 자신의 파렴치한 행위가 들켜버렸다는 수치심만이 그를 지배할 뿐입니다. 그 순간 그는 이 미지의 시선에 의해 제압당하게 되며, 그 상황은 그가 믿고 있던 진리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이런 관점은 오늘 읽은 성서 본문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본문은 요한복음 9장 전체의 결론부에 위치합니다. 9장은 세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소경인 사람을 화두로 대화하다가, 예수님이 그를 고쳐주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바리사이와 고침받은 사람의 대화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바리사이는 그가 눈을 뜨게 된 것을 삐딱한 눈으로 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사람을 윽박지르며 말합니다. '너를 눈뜨게 한 이는 메시아가 아니라 죄인이다'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문맥에 이어지는 세 번째 장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예수님과 그 고침받은 사람이 대화를 합니다. 그러면서 본문처럼 예수님은 봄과 못봄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날 때부터 소경인 자는 누군가에 의해 항상 관찰되는 존재이지만, 그는 한번도 누군가를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는 항상 타인의 시선에 안에 들어 있지만, 그는 한번도 타인을 바라볼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즉 앞의 예에서 열쇠구멍으로 엿보인 자와 같은 그런 존재입니다. 여기서 소경인 자를 바라보는 주체는 바리사이로 나옵니다. 즉 소경과 바리사이의 관계는, 바리사이의 시선에 의해 제압당해 자신의 존재가 규정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우리는 소경이 단지 한 불행한 개인만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리사이의 시선에 의해 제압당하고 존재가 규정된 사람들 일반, 즉 바리사이즘이 지배하는 문화권의 대중을 집합적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눈을 떴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싸르트르의 또 다른 책 {구토}에 한 장면을 떠올립니다(이것 역시 싸르트르에 관한 앞서의 논문에서 봄으로써 기억한 것입니다). 한 청년이 부르주아 계급이자 지역 명사인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문뜩 그는 초상화의 사람의 눈과 마주칩니다. 그 눈은 위엄이 있었고, 광채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위압적인 눈길입니다. 순간 청년은 그 눈에, 눈의 시선에, 초상화 주인공의 눈길에, 아니 그가 표상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관점에 제압당해 버립니다. '나는 그들의 하인'일 뿐이라는 자의식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얼마후 청년은 정신을 차립니다. 다시 똑바로 초상화를 지켜봅니다. 그 눈길을 마주봅니다. 당당한 시선으로. 그러자 갑자기, "그의 시선이 소멸하면서 그림에 생기가 사라"집니다. 이에 그 초상화의 사람은 "장님 같은 눈과 죽은 뱀같이 엷은 입과 뺨"만이 앙상한 사람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성서로 돌아와 봅시다. 요한복음서의 그 소경은 눈을 뜹니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 그의 눈에 들어옵니다. 바리사이가 그를 향해 윽박지르면서, '너를 고쳐준 이는 메시아가 아니라 죄인이다'라는 말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앞못보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잘 보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는 바리사이의 시선에 의해 규정됐던 사람입니다. 한데, 이 사건을 거치면서 그는 바리사이와 논쟁을 벌입니다. 그는 바리사이가 본 것을 자신의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이 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의 눈길에 비추인 바리사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지엄한 눈을 가진 위압적 존재가 아닙니다. 그가 보는 그들의 얼굴은 죽은 뱀같이 엷은 입과 뺨만이 앙상한, 장님 같은 눈을 가진 자일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바리사이를 가리켜, 오늘 읽은 것처럼, '못보는 자'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반면 고침받은 이는 '보게 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사이가 이 말을 듣고 항변합니다. "우리들이 눈이 멀었단 말이냐?"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9장 전체의 결론적 말입니다. 즉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허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진리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엿봄에 대해, 그 수치스러운 태도에 대해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진리들이 가득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많은 지식인들이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허나 그러는 가운데 그 지식의 보유자들이 벌인 더러운 행위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타인을 향해 지엄한 표정을 지며 불순분자니 사회 파괴범이니 하며 고압적으로 소리를 질렀던 지난날의 '권력-지식'의 보유자들이 자행했던 비리가, 그 파렴치한 행위가 타인의 시선에 의해 탄로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데 그들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의 눈이 잘보인다고 말할 뿐, 수치스러움에 대해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얼마 뒤에는 지금의 권력-지식의 주인공들의 모습도 그럴 것입니다. 지금의 정치인들, 경제의 지배자들, 의사들, 법관들, 학문의 주인공들 말입니다. 민중신학자 서남동 선생은 '백성'(百姓)을 규정짓기를, "복종하는 자세를 내면화하고 거기서 자기 정체를 찾는 착각을 하는" 자라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9장의 소경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으로 남아있는 한, 지배자의 초상화의 시선에 주눅들어 있는 존재인 한, 그들은 지배자들의 파렴치함을 직시할 눈초리를 갖지 못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시 보게 되는 기적이 필요한 자입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그런 우리가 바로 눈뜸의 기적 사건을 체험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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