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04/26 (15:00) from 61.73.44.200' of 61.73.44.200' | Article Number : 385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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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403 , Lines : 46 |
| ‘죽음’ 마케팅(2004.4.11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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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마케팅 지난 주 목요일(4월 8일) 이라크에서 한국인 목회자 7명의 피랍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선 이번이 세 번째이고, 그날 늦은 밤 무사히 풀려났다는 다행스런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음에도, 왠지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인이 공격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물론 나의 편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소속했다는 ‘한국기독교복음단체연합회’가, 나로선 처음 듣는 기관임에도, 무엇을 지향하는 단체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이런 우려스런 억측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단체의 임원들의 면모를 보니 하나같이 친미주의 성향의 과격보수주의자들이었습니다. 요르단 주재 한국 대사관이 이라크 입국을 만류했음에도 그들이 몰래 그곳에 잠입한 이유는 그 단체가 주관한 ‘이라크 니느웨(모슬) 선교대회’에 참석하고자였다는 것입니다. 니느웨는 과거 앗시리아의 도읍이었고, 요나 예언자가 심판을 선포하려다가 축복의 말을 전했다는 바로 그 지역입니다. 요컨대 이러한 <<요나서>>의 이야기가 우리 시대에 다시 실현될 것이라는 확신이 그들로 하여금 위험을 무릅쓴 행동을 감행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겐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이 ‘축복의 징후’로 보였습니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고 고통을 겪고 있지만 결국 복음이 전해짐으로써 더 큰 축복을 얻을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피랍된 한국인들은 미군에 고용된 한국 기업 직원들이었고, 두 번째 피랍의 대상은 미군 납품업체 직원 그리고 호혜적인 시민단체 임원이었습니다. 즉 어떻게 보아도 이들은 이라크 민병대의 공격의 대상이 될만한 사람들은 결코 아닙니다. 한데 세 번째 납치된 기독교 목회자들은 다른 두 경우와 같이 무사히 풀려났고, 그들의 전언에 의하면, 이라크인들은 아직 한국인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두 경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즉 이들 목회자들은 미군이 해방을 선사하는 점령군이라는 자의식으로 이라크에 진입한 것처럼, 복음의 점령군이라는 자의식으로 메시아 의식에 고취된 채 승전의 심정으로 이라크로 잠입해 들어간 것입니다. 저는 같은 맥락에서 이번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맞춰 창당한 ‘한국기독당’과 어제 열린 광화문 부활절비상기도회를 눈여겨보게 됩니다. 니느웨 선교대회를 주최한 한국기독교복음단체연합회의와 비상기도회를 주최한 ‘대한민국안보와 경제살리기 국민운동본부’나 한국기독당의 주축들 간에는 참여 인사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한국기독당에 대해서는 다른 두 단체가 공식적인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 유사한 점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들이 모두 기독교 극보수주의자들이고 교회의 양적 팽창의 총동원주의에 대한 열렬한 신봉자들이라는 사실 외에도, 정치적으로 맹목적인 친미주의자들이며 광적인 반공주의자들이라는 점 등이 서로 공통됩니다. 많은 신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은 이러한 공유점들이 실은 초대형 교회들이 주축이 된 한국 기독교의 일반적인 태도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합니다. ‘메시아적 소명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우리’ 아니면 ‘악마’라는 극단적인 선악 이분법적 인식으로 타인들을 대합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가톨릭 정통 신앙에 기조를 두고 만들어진 것임에도 한국의 개신교도들이 이 영화를 그토록 열렬하게 환호하는 것은 바로 영화의 기본 구도 자체가 ‘예수냐 악마냐’라는 단순한 이분도식 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악마’로부터 대중과 나라와 세계를 구할 이는 예수에 의해 부름 받은 바로 자신들이라는 소명의식에 고취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한데 전 세계적으로 ‘민주화’라는 역사적 과정은 자신의 운명을 타인에게 위탁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정서의 형성 과정과 맞물려 있습니다. 즉 메시아적 존재에 대한 위탁의 정서는 민주화 과정과 상충되는 감정인 것입니다. 따라서 전 세계적인 민주화 추세는 교회로 하여금 신앙의 위기를 낳았고, 이런 위기에 대해 한편에선 교회가 스스로를 변모시켰지만, 다른 한편에선 민주화에 역행하는 반동적 세력으로 주체화되곤 하였습니다. 전자가 유럽의 기독교회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면, 후자는 최근의 미국 근본주의적 기독교와 한국 주류 교회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국기독당 창당발기인 대회 때 김준곤은 급속히 좌경화되는 최근의 상황에서 교회만이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논지를 폈습니다. 또 구국기도회에서 김한식은 좌익에 의해 점거되어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 처해 무너져 가는 나라를 이제 교회가 일어나서 구해야 한다고 강변하였습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반공과 친공이라는 두 극단의 가치 속에 사회의 모든 행위를 평가하고 분할 배치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규정한 ‘게임의 룰’입니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이 편’과 ‘저 편’일 뿐이며, 다르게 사유한다는 것은 위선이거나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흑과 백만이 있고, 회색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사유의 세계, 바로 이것이 민주화 과정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관점인 것입니다. 즉 사회의 구성원이 각기 다르게 존재할 권리를 인정받는 사회적 과정인 민주화에 대해 한국 기독교는 악마적 현상이라는 위기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신앙의 영역과 세속의 영역을 구별합니다. 그리고 세속으로부터 정화되는 것을 신자의 성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화된 공간을 확대하는 것을 선교로 보았습니다. 즉 선교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팽창주의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한데 흥미롭게도 정치 행위라는 세속의 과정에 대해 기독교 신앙은 참여하지도 않았지만 혐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팽창주의가 세속권력의 팽창주의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정교분리의 신앙’이 그것입니다. 한데 최근 미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는 급속하게 정치세력화하고 있습니다. 부시 정권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세력의 하나가 바로 이들 정치세력화된 기독교 근본주의자 연합이었습니다. 이런 양상은 최근 한국에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김한식이 출마했던 것이나 이번 총선의 한국기독당이 그 실례입니다. 기독교 보수주의자 가운데서 이런 시도에 명시적으로는 정교분리의 신앙을 고집하면서 반대하는 많은 이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대체로 공감하는 3.1절 집회나 어제의 부활절 구국기도회는 명백히 정치적 의제에 개입하기 위한 집회였고, 이것은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적절한 명분과 계기가 주어진다면 언제라도 정치적 세력으로 공공연히 등장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위기의식을 공감하고 있음을 자제하지 않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쟁은 곧 악을 제거하기 위한 성전에 다름 아닙니다. 여기에 한국군 파병에 대해서도 열렬히 주장하는 그들의 신앙적 동기가 있습니다. 나아가 그곳을 선교하겠다는 꿈이 분출하게 되는 신앙적 계기도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력은 오늘을 부활절로 정했습니다. 전국의 거의 모든 교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면서 축제를 거행할 것이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겠지요. 교인들은 삶은 계란을 나누어먹을 것이고, 부활을 노래하는 성가대의 열창과 더불어, 특별감사 헌금이 궤를 가득 채울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렇게 반전되어 구원의 축제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교회들은 이 구원의 담론을 정치적 의제로 풍성히 채우겠지요. 여전히 죽임에 사로잡힌, 아니 급속히 사망의 골짜기로 추락하고 있는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절박한 소명의식을 고취시키는 날이 되겠지요. 이렇게 해서 교회의 ‘죽음의 마케팅’은 절정에 도달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죽임당하는 장면의 리얼리티를 강조함으로써, 그 허술하기 짝이 없는, 왜곡과 편견 이외에는 볼 게 없을 정도인 구성과 내용으로 점철된 신파조의 3류 영화를 만들고도 엄청난 재화를 올리고 있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교회의 부활절 축제는, 아니 그 죽음의 마케팅은 역시 대단한 성공을 거두겠지요. 이렇게 해서 1년 예산의 족히 20% 어치의 기금이 마련될 것이고, 이렇게 해서 충동질된 신자들의 역사적 소명의식은 교회에 대한 신자들의 충성심의 강화로 이어지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해서 교회 내의 그 숱한 갈등의 양상은 슬쩍 봉합되겠지요. 다행히도 한백은 그런 부활의 축제, 그 죽음의 마케팅의 절정의 날에 예수님의 수난을 상상하면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축제를 할 때, 그날을 함께 공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일 수 있습니다. 마치 감정이입을 촉발하려는 드라마의 처절하게 슬픈 구조에 휘말리지 않을 때 여러 등장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그리고 드라마가 말하고 있지 않는 관계까지를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처럼, 부활절을 함께 공명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부활절 신파극에서 다루지 않는 다른 죽음들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우리는 부채에 시달리며 자살한 어느 가족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과 함께 떠올릴 수 있고, 어느 무뢰배들에 의해 강간당하고 무참히 살해당한 소녀의 시신을 기억해 낼 수 있으며, 유괴되어 숲 속에서 나뒤구르는 아이의 썩은 살덩이를 상상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니느웨 선교대회가 아니라, 제국의 폭력 앞에서 죽임당한 수많은 이라크 사람들의 무덤에서 울리는 장송곡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날을 예수 부활의 날로 기리려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기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부활을 다르게 맞이해야겠지요. 과연 우리가 그럴 수 있을까요? □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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