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06/25 (13:44) from 203.252.17.174' of 203.252.17.174' | Article Number : 4 |
김진호
|
Access : 2817 , Lines : 53 |
| 품위 유지비 |
|---|
|
품위 유지비 -------------------------------------------------------------------------------- * 통일염원 52년(1996) 1월 7일 오백 스물 아홉번째 모임 * 본문 : 마태복음 1:23 * 곳 : 한백교회당(연남동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강당) -------------------------------------------------------------------------------- 16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요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처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 17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도 그 사람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 새해가 시작된 지 어느새 일곱날이 지났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7일간 무엇을 하셨습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혹은 자기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 공동체, 조직 등에 대한 어떤 새로운 다짐을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1996년 한 해를 어떻게 경영해 나갈까? 무슨 기회가 올까, 어떤 변화가 있을까, 중점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무얼까, 이런 생각을 떠올려보지는 않으셨습니까? 대학 동창인 한 친구가 새해 셋째날, 제게 안부 전화를 했더군요.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다, 언제나 요맘 때면 종종하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래, 올 핸 어떻게 볼낼거니?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 그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응, 올 핸 차를 좀 바꿔야 겠어. 작년에 과장이 됐는데, 작은 차를 몰고 다니니까 '품위유지'가 않돼지 뭐야." 품위유지라! 매우 낯설은 용어라 생각했는데, 아주 가까운 친구의 입에서 그 애기가 나오니, 한편으론 웃음이 나오고, 다른 한편으론 '아이쿠' 하는 비명이 속에서부터 튀어나오려구 하더군요. 문뜩 '시간이 겁나는군'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품위유지'라고 하는 것은 실은,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구체적인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어떤 품격을 부부여하고는 거기에 맞는 생활 스타일을 갖고자 합니다. 우리가 입는 옷, 신발, 머리 스타일, 그밖의 액서서리, 말투, 우리가 출입하는 식당, 우리가 물건을 사는 장소 등등, 이 모든 것들이 품위유지를 위해 자기 자신에게 치루는 비용인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말에 저는 천안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거기서 제가 발표자였습니다.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준비했던 원고를 읽습니다. 이윽고 토론의 시간이 됩니다. 어느 정도쯤 논의가 진행되자 가속이 붙습니다. 이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류의 발언도 자제하지 않은 채 튀어나옵니다. 발표자는 점차 속으로 열불이 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겉으론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과 은은한 미소를 뛰우면서 모든 비판을 신중하게 듣는 척 합니다. 때로는 받아적기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이것이 토론회에서 발표자에게 부여된 '품위'라고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참아내는 일도 '품위유지비용'이 됩니다. 그제께는 매달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하는 강의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신학대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벌써 3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강의 중에 질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중엔 때로 날카로운 것들이 있습니다. 이럴 땐 속으론 당혹스러우면서도 여유있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묻는 시간에 얼른 대답을 준비해야 합니다. 질문 내용 가운데, 잘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을 최대한 은폐하면서 기술적으로 질문자의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그런 대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강의자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강의가 끝나고 뒷풀이 시간이 됐습니다. 이 친구들이 처음엔 거의 백수들이었는데, 어느덧 직장엘 다니기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하고, 작은 가게의 경영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엔 강사료도 조끔식 주더군요. 이 친구들의 사회적 품격이 점차 높아지니까, 그네들을 가르치는 제 품격이 덩달아 상승하더군요. 점점 고급스러운 장소가 뒷풀이 공간이 되고, 거기에서 정장으로 짝 빼입은 친구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부추겨 줄 땐 한편으론 멋적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뿌듯함에 젖어버립니다. 후배들이 제 품위유지비용을 지불해 준 덕에 말입니다. 여러분은 품위유지를 위해 생활 속에서 어떤 비용들을 지불하십니까? 어떤 학자는 현대사회에선, 자신의 소비활동 가운데 이러한 품위유지를 위한 비용이 매우 높게 나타나는 사람들이 폭넓게 포진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들은 '문화시민'이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이른바 이 '문화시민'의 대열에 끼어 있을 겁니다. 그러니 품위유지를 위한 비용이 필요한 항목을 작성해 본다면,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이 이 항목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화시민으로서의 우리의 품위유지를 위한 활동은 몇 가지 범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가령 이윤을 목표로 하는 조직에서의 품위유지비용은 이런 유형의 사회가 부여하는 품격에 걸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 정말 자신의 품격을 지켜주는 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3일날 제게 전화해서 올 핸 과장다운 중형차를 사야겠다고 얘기했던 친구는 이런 품위유지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특정한 가치를 목표로 하는 조직에서의 품위유지비용은 이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이 말은 이해하려면 우선 성전에 대해서 알아야 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성전이라는 것은 하느님이 거하시는 장소를 말합니다. 여러분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질 않습니까? 하느님이 거하시는 장소라는 얘기는 하느님이 장소 귀속성을 지닌다는 뜻입니다. 즉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얘깁니다. 인간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하느님이 시간뿐 아니라 공간을 초월한 분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영원한 존재이고, 부소위의 존재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신관은 고대 근동의 다른 신들과는 다른 이미지입니다. 다른 신들은 모두 장소성을 지닙니다. 즉 신은 어느 장소의 수호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이스라엘의 신관은 어느 장소의 수호신이 아니라 바로 '떠돌이들의 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정착한 뒤에도 이런 떠돌이의 신이라는 사실을 절기때마다 고백하게 합니다. 그런데 떠돌이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공간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가시적 공간을 넘어선 곳에 있는 신을 보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신을 보는, 신을 만나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막'입니다. 이 성소의 이름은 '하느님의 집'이 아니라 '만남의 장막'입니다. 그리고 이 장막은 고정된 지역에 영구불변하게 서 있는 웅대한 건축물이 아니라, 떠돌이들과 더불어 떠돌아 다니는 장막입니다. 만남의 장막, 이것은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을 상징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그 장소 자체를 거룩하게 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그 장소에 거하는 이들만을 위한 품위유지비를 지불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지불하는 품위유지비는 떠돌이들의 몫인 것입니다. 판관들의 시대에는 성막 대신 성소들이 세워집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성소는 한동안 어떤 곳에 있다가 어느 시기가 지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지곤 합니다. 그러다 왕국시대가 도래합니다. 통치자인 왕들이 국가를 세운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왕궁을 세우는 것과, 이 왕궁 안에 신이 거하는 집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만남의 장막'이 아니라, '성소'가 아니라, '신이 거하는 집' 말입니다. 그리고 이 집은 영원 불변한 것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이는 하느님을 정복하는 셈이 되고, 하느님은 이 정복자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하는 신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향해 외칩니다. '회개하라, 하느님나라가 다가왔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갈릴래아 지방에서만 맴돌며 활동하시던 그 분이, 난데없이 갑자기 예루살렘을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다 붙잡혀 처형당합니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그분이 처형당했으나, 십자가에서 난도질당해 죽임당했으나, 실은 죽지 않았고 살아계시다고 믿으면서 그 운동을 계승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승자의 한 사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당신들이 바로 성전이요"라고 말합니다. 성전이 아직 서슬 퍼런 눈빛을 휘돌리면 건재하고 있던 시절에 말입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더 이상 당신이 예루살렘 귀족을 위한 품위유지비용을 지불할 수 없음을 선언했다는 주장입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의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자신 속에서 그들과 만납니다. 고린도교회는 고대사회의 몇 안되는 이른바 문화시민의 축에 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중 많은 이들이 노예이거나 해방노예, 소상인, 장인, 그리고 아마도 고대로마의 대도시지역에서 가장 비참한 대중이었던 도시빈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을 고대의 문화시민으로 승격시키고자 합니다. 그 비용은 하느님이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덧붙여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서로 파벌짓고, 그들간에 분쟁하느라 여념이 없던 상황에서, 이들을 꾸짖으면서 이 논리를 펴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이 선물한 품위유지비를 받음으로써 문화시민이 된 사람들은 또한 그에 걸맞는 품위유지비를 스스로에게 지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과 사람간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만남이란 일방적 선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거룩함을 스스로의 몸에 지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백은 장소를 거룩하게 하는 대신 우리의 신앙, 우리의 가치를 거룩한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당 세우는 일을 최고의 가치인 양 매진하고, 높다란 단상을 세우고 그곳이 마치 성별된 특별한 장소인 양 받아들이고, 또 그 단상에 서는 사람을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성별된 존재처럼 떠받드는 어떤 전통과는 다른 방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각자가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모였던 오백 몇 십번의 모임, 이 모임에서 했던 각각의 사람들의 역할들은 하나하나가 바로 이런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불했던 우리들의 품위유지비용이었습니다. 1996년, 새해에는 우리의 이런 노력에 걸맞는, 아니 더욱 빛을 내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