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05/14 (16:23) from 61.73.44.200' of 61.73.44.200' | Article Number : 408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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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367 , Lines : 31 |
| '악녀 린디'(2004.5.9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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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린디’ 지난 한 주간 사이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진 사람의 하나가 바로 린디 잉글랜드 일병일 것입니다. 이라크의 아브 그라이브 교도소라는 생소한 곳에서 날아온 서너 장의 사진이 그녀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포로를 마치 동물처럼 다루며 모욕감을 주고,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를 자행한 미군 여병사의 모습은 너무도 경악스러운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그 장면을 히히덕거리며 디지털카메라로 남겨놓을 만큼 그녀의 가슴은 충분히 야만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미국의 일방적인 모습이 가뜩이나 눈에 거슬렀는데, 마침 이런 일이 터지니 한편으론 통쾌하고 다른 한편으론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당연히 전 세계의 빗발치는 비난이 그녀를 향해 퍼부어졌고, 그것은 미국을 향한, 미국의 비할 데 없는 추잡성을 향한 전 세계의 분노이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인 자신도 이 일에 몹시 치욕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이 사건을 가장 열렬히, 그리고 가장 치밀하게 조명한 매체는 다름 아닌 바로 미국의 언론들이었습니다. 가난한 철도 노동자의 딸로,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월마트에서 우수직원 표창을 받았으며,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 자립심 강한 모범적인 우량 시민이었다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포로수용소에서 자행한 행동은 미국인들에게 ‘수치스런 미국인’으로 기억되었습니다. 마치 전범재판이라도 하듯, 신속하게 미국 정부는 그녀를 포함한 몇 명의 군인을 기소했고, 법적 처벌의 내용과 관계없이 그녀의 상병 계급은 일병으로 강등되었습니다. 한데 미국인을 포함한 전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소된 병사들 중 유독 그녀를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미국인에게나 그 밖의 세계 사람들에게 ‘악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법으로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실은 법적 심판과는 관계없이, 사람들은 이미 이 악녀에 대한 심판을 선고해버렸습니다. 형량은 그녀가 기억에서 사라질 때까지. 이스카리욧 유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사에서 악인의 상징입니다. 스승을 배신한 제자, 의인을 팔아넘긴 죄인, 아니 궁극적으로 신이 치욕스러운 죽임을 당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그가 구제받을 수 없는 악인임을 증거합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중죄인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증거는 그에게 부과된 형량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의하면 그는 영원히 저주받은 존재로 기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데 이런 판단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어느 땐가부터 예수의 죽음을 뜻하지 않은 돌발적인 사건이 아닌 신에 의해 예정된 사건으로 해석하게 되었는데, 그런 입장에 따르면 밀고자는 육화된 신의 예정된 운명을 위해 악인의 배역을 맡은 존재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다면 유다에 대한 신앙적 증오는 공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깨끗한 구원 사건’을 기획하지 못한 신의 복잡한 심사가 심술궂어 보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발전 과정에서 유래한 딜레마입니다. 예수에게서 신의 이미지를 찾아내기 위해 그를 ‘전능한 신’으로 기억하는 순간 이런 모순은 불가피한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전능하니 실패해서는 안 되고, 당연히 죽을 수 없어야 하는데, 예수는 죽임을 당했고, 실패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편견의 역사를 넘어 그에 대한 다른 정보들을 캐물어야 합니다. 도대체 유다가 예수를 밀고한 것과 베드로가 대사제의 뜰에서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것, 그리고 체포 현장에서 제자들이 모두 도망쳐버리고 처형장에 여제자들 외에는 근처도 얼씬거리지 않았다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다른가요? 더 나아가 유다가 밀고자라는 게 얼마나 확실한 정보인가요? 다 도망쳐버렸는데, 누가 밀고했는지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마르코복음｣은 그가 게세마네에 은거한 예수에게로 대사제의 사병들을 안내했고 예수를 지목하였다고 하는데, 과연 한 집단의 주모자가 체포되는 상황이 질서정연하다 싶을 만큼 조용하기만 했을까요? 필경 난장판이 벌어졌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을 것이고, 또 일부는 체포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누가 밀고자인지를 어떻게 알아차렸을까요? 한편 바울은 왜 자신의 서신들에서 ‘배신자 유다’라는 정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얘기하고 있을까요? 많은 학자들은 ‘배신자 유다 설’은 바울 시대나 그 이후에 팔레스틴의 예수 집단 사이에서 유포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배신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최초의 제자들은 생각했던 것 같고, 그가 누구인지를 흩어진 과거의 예수 측근에 속했던 사람들의 행보에서 유추해냈던 것 같습니다. 추정컨대 이스카리욧 유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발전사에서 서서히 밀고자로서 의심받기 시작했고, 어느 때부턴가 밀고자임이 분명한 자로 모두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 때부턴가 그는 예수의 죽임당한 사건에서 악인의 배역을 맡은 결정적인 존재로서 기억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다 자신이 배신자인지 아닌지 여부보다, 그가 누구든 ‘악인’의 존재가 신앙사에서 필요하게 되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 필요성을 담고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텍스트인 ｢마르코복음｣을 보면, 그에 관한 하나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어느 결정적인 만찬 자리에서 “누군가가 나를 배신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모인 제자들 모두가 제각기, “제가요?”라고, 강한 부정의 뉘앙스를 담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그 장면에 이어지는 게세마네 동산의 처절한 기도 순간에 제자들은 모두 잠들어 있고, 체포 장면에서는 도망쳐버리고, 제자 중의 제자요 제자의 상징인 베드로는 예수를 취조하는 자리에서 세 번이나 그분을 부인합니다. 배신자는 밀고자인 유다만이 아니라 제자 모두였습니다. ｢마르코복음｣은 이렇게 제자들과 유다의 얼굴을 겹쳐놓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번번이 유혹에 넘어가고야 마는 약한 존재들, 바로 우리 자신의 얼굴을 겹쳐놓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오복음｣은 유다가 잘못을 뉘우치고 목매어 자살했다고 합니다. 돈 받고 그분을 팔아넘겼지만 그것을 쓰지도 못하고 자책감에 자기 목숨을 끊었다고 말입니다. 요컨대 이 책은 악마이긴 하지만, 얼치기 악마, ‘악마가 될 수 없는 악마’로 그를 묘사합니다. 여기서도 유다는 우리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그리스도교 신앙은 ‘악마’를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의 약함을 경고하고, 신앙적 정체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메시지가 바로 그 악마를 필요로 하는 신앙의 한 동기였던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유다는 악인으로 영원한 저주 아래 놓여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린디 잉글랜드가 악녀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그녀가 린디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녀의 엄마가 항변했듯이, “단지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그녀가) 있었던” 탓입니다. <뉴욕타임즈>가 30여 년 전의 스탠퍼드 대학에서의 실험을 상기시키면서, 교도소의 극히 불균형적인 권력관계에 놓인 사람들 사이에서 비일상적인 야만과 광기가 서로를 파괴시키게 된다고 강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아브 그라이브 교도소에선 포로를 통제할 적절한 규칙도 없었고, 오히려 병사들은 정보장교들에 의해 포로들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망가뜨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럼스펠드가 아프간 포로들은 제네바 협약에 따른 권리를 갖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과 묵시적으로 연계되었다는 혐의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 린디가 될 수 있었고, 린디는 그 많은 ‘린디’ 가운데 특별히 운이 없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녀를 세계는 왜 악녀로 기억해야 하느냐에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추악한 미국을 상징하는 무언가를 필요로 합니다. 희생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미국은 너무 강력한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희생양에게 폭행을 가함으로써 전 세계인은 미국에게 심리적으로 복수할 수 있고, 미국인은 자신의 폭력성을 속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전매 특허였던 이른바 ‘값싼 은혜’의 심리가 미국인의 무의식을 사로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녀를 도덕적이고 신앙적으로 응징함으로써, 그들은, 실제로는 어떻든 간에, 적어도 무의식적으로는 악의 공모자가 아니라 선의 편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데 저는 ‘악녀 린디’에게서 또 다른 것을 읽어내야 한다고 봅니다. 린디의 엽기적인 사진들은 요즘 광적으로 확산된 하드코어 포르노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실은 린디의 버전은 그보다 훨씬 덜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린다는 여성이고, 그녀에게 농락당하는 이들은 남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역사적으로 악녀는 종종 ‘남성에게 폭력을 휘두른/복수하는 여성’에서 선택되곤 했습니다. 린디에게서도 똑 같은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가학적이라는 역할/행위는 남성적인데, 그 장본인은 여성이라는 모순은, 그 악녀를 여성도 남성도 아닌 존재로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야만 포르노 시장의 처벌자 남성 자신은 처벌당하는 자인 남성들과 구별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녀를 악녀로 처벌함으로써, 사람들/남성들은 자신들이 포르노 시장의 열렬한 구매자이면서도, 그것의 불온성과 자기 자신을 구별짓는 계기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악녀 린디’와 ‘악인 이스카리욧 유다’에게서 동일한 논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심리적/ 신앙적 폭행을 가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보상받으려는 얄팍한 기회주의입니다. 예수를 우리의 공모자로 끌어들이면서까지 말입니다.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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