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05/03 (11:59) from 63.106.203.106' of 63.106.203.106' | Article Number : 43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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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828 , Lines : 26 |
| 죽음의 자리(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 원고200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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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자리 마르코복음 16장 6~7절 (휜옷을 입은 그) 젊은이는 여인들에게 "겁내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고 여기에는 계시지 않다. 보라. 여기가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곳이다. ○ 자,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 그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 하셨다. (공동번역 성서) 지난 3월 21일, 현대 그룹의 명예회장 정주영이 죽었습니다. 그가 평소 120살까지 살겠다고 호언한 것에 비하면 훨씬 적게 살았지만, 86세면 꽤나 길게 살다 간 셈입니다. 한국에선 제일 부자였고,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부자축에 끼는 재산가이며, 몇 명인지가 세간에 수수께끼가 될 만큼 자식을 많이 가진 인물입니다. 물론 그가 만든 기업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에 관한 '말'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안되면 되게 하라",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머리는 쓰라고 얹어 놓은 것이다" 등, 숱한 그의 어록들은 세간에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습니다. 기업가로서의 그의 영웅담은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한국 경제를 연구하는 세계 유수의 학자들은 바로 정주영을 연구하는 데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 최고의 엘리트들만이 간다는 대학에선 '정주영학'을 가르칠 예정이라고도 합니다. 그가 죽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특사와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서 33만 명이 조문했고, 사이버 조문객까지 합하면 무려 1백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또 중국 정부 및 유엔 사무총장이 애도의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고도 합니다. 이쯤 되면, 정주영은 한국 현대사의 최고의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이 인물은 세계의 폭넓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그로부터 꼭 보름 전(3월7일), 동대문야구장 공중전화부스 옆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또 다른 주검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름 없는 한 노숙자입니다. 그 주검이 보름간 방치되기까지, 쥐들에 의해 얼굴과 손 등이 쓷긴 처참한 몰골이 되기까지 그는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2월 한 달 동안 그 공중전화부스를 이용한 사람은 무려 1400명이나 되었다니, 족히 수백 명은 되었을 전화 이용자 중 누구도 그 옆의 시신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시신이 발견되고서야, 신문에 기사가 나오고서야 그에 관한 이야기가 비로소 작게나마 알려졌습니다(<한겨레신문> 2001.3.7). 48세의 노숙자 김종식. 7명의 자식 중 어느 누구도 중학교엘 보낼 수 없었다는, 찢어지게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소작일과 날품팔이를 전전했다고 합니다. 희망을 갖고 뭔가를 해보려면 번번이 세상에 속아넘어가 주저앉아버린 그는 끝내 노숙자가 되어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른 채 술로 전전하다, 영향실조와 추위로 가련한 생을 마감했던 것입니다. 정주영의 죽음 이후, 그에 관한 특집기사들을 보면서 새삼 그 인물에 관해 생각해봅니다. 그를 꽤나 싫어했던 저조차도, '과연 대단한 사람이었구나'는 경탄이 절로 날 지경입니다. 그가 평생 이룩했던 '현대 제국'이 붕괴될 날이 머지 않은 시점에 죽었음에도, 그의 부음에 즈음한 세간의 기억은, 그리고 저의 기억은 그가 살았을 때보다도 한결 호의에 찬 경의로 물들어 있습니다. 한편, 김종식의 주검 기사를 보지 못한 건 아님에도 저는 그를 보름 가까이 기억해내지 못했습니다. 한 젊은 시인(김선우, <한겨레신문> 2001.3.19)이 그의 이야기를 되새겨주기까지 말입니다. '잔인한 4월'이라는 말이 절절하던 때에 비해 비참한 군상의 모습이 적어진 건 전혀 아님에도, 봄의 화사함이 눈이 부시도록 시야를 가득 채우건만, 아직도 봄을 겨울 혹한으로만 체험하는 이들의 모습이 제 기억에서 가려진 것입니다. 부활절은 죽음을 특별히 기억하라는 절기이건만, 그것을 선포하는 직을 맡은 목사인 저는 죽음을, 죽음 같은 삶은 망각의 강물 속으로 떠내려보냈던 것입니다. 어제 시에 관한 평론을 읽으면서, 그 시인의 책 두 권을 샀습니다. 평론자가 소개한 시의 어느 표현이 제 가슴을 후벼놓았기 때문입니다. "어귀에 서 있는 서낭나무에서는 열매가 맺혔다/ 나뭇가지에 목매달린 사람 꽤 오래 익혀내던 열매다/ 흔들거리는 그는 그네를 타고 있는 거다..."(윤의섭, [나무처럼 서다] 중에서). 목매달아 죽은 이가 나무 열매로 묘사되고, 그 시신의 흔들거림을 그네 타는 것으로 말하는 시인의 지독스런 냉소의 화살이, 김종식의 주검 등을 기억하지 않은 채로 봄의 화사함을 맞는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던 것입니다. 부활절에서 죽음을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저를 사정없이 패대기쳐버린 이 시구에서 저는 정신을 차려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서 예수전(傳)의 대미(大尾)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수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복음서는 그것을 '빈무덤' 이야기로 묘사합니다. 즉 예수 부활에 관한 직접적이고 가장 오래된 묘사에 의하면 그분의 무덤에, 그분의 시신이 있어야할 그 자리에 그는 계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 온 여인들은 그분의 죽검이 있어야할 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곳에 그분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따르면, 흰옷 입은 미지의 한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소. 그분은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래아에 가 계실 것이오'라고. '죽음'은 이 세상에서 있어야할 자리를 잃어버린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자리를 이승이 아니라 '저승'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이 미지의 '다른 세계'를 상상하려 애쓰지만, 실상 그것을 알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요컨대 저승은, 적어도 우리의 표현 속에는, 이 세계의 부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제사 의식은 죽은 이가 잠시 이승에 찾아와 산 자들과 함께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그것은 실상 산 자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미사나 예배 또한 기본적으로 그렇습니다. 즉 이것들은 모두 죽은 이에게 이승의 자리를 일시적으로 제공하는 종교적/신앙적 장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이 이 세상에 자리를 상실한 것이라는 말은 곧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자리를 잃어버린 것'을 뜻합니다. 즉 망각의 존재가 바로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김종식, 그는 살아 있을 때조차도 사람들에게 기억될 자리를 잃어버린 채 존재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배신으로 체포됩니다. 그 제자는 그분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심문이 벌어지던 대사제의 뜰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강변합니다. 한편 골고타 언덕에서 예수의 모든 (남성) 제자들은 온데 간데 없었고, 그분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이 공공연히 부정하는 가운데 당신은 십자가형에 처해집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 그 순간마다 그분은 이미 죽임을 당했고, 이미 시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이미 사망한 헤로데는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나도록 당국에 의해 성대하게 치러지는 추모행사를 통해서 세상 속으로 현현합니다. 로마 황제를 비롯해서 제국의 유력한 수많은 인사들로부터 경의의 메시지가 전달되고, 그를 기리는 웅장한 건축물이 세워졌습니다. 심지어는 대중 사이에서 헤로데를 열렬히 추종하는 부류가 생겨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헤로데는 죽은 지 수십년이 지난 뒤까지도 가장 화려하게 '살아있는' 동시대 최고의 존재였던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모든 이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죽임을 당합니다. 아니 모든 이들이 그분을 자신의 기억에서 축출하려는 순간 그분은 이미 죽임당한 존재인 것입니다. 너무나 억울한 현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그분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분통 터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그들 사이에서 부활신앙이 생겨납니다. 망각되어야할 존재가, 죽어 사라져버렸어야 할 존재가 지배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호령하고 있을 때, 그리고 기억되어야 할 존재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추방당해 잊어지고 있을 때,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그분은 살아있다고 몸부림치는 외침이 바로 부활신앙이었던 것입니다. 본문은 그 신앙의 첫 주역을 여자들로 묘사합니다. 처음에 그녀들은 '죽은' 예수님의 자리를 무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모든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거기 없었습니다. 그분은 '갈릴래아'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활동하던 '그 현장'에 그분은 아직 살아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즉 '사건' 속에 그분은 살아계신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요컨대 갈릴래아에서 활동하던 그분의 이야기가 그녀들에게 기억되었고, 그 기억이 제자들과 그밖의 사람들에게 상기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신앙인 것이지요. 신문기사를 통해, 그리고 한 젊은 시인의 말을 통해 김종식은 작으나마 의미 있는 모습으로 우리 사이에서 되살아났습니다. 그리하여 김종식 부활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절 예배를 통해서 처절하게 죽임당한 노숙자의 이야기를 되새기려 합니다. 그를 기억함으로써 우리 사이에서 죽은 자들처럼 살아있는 작은 예수의 얼굴을 떠올리려 하는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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