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05/03 (12:01) from 63.106.203.106' of 63.106.203.106' | Article Number : 44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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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052 , Lines : 28 |
| 잃어버린 기억의 잔유물(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 원고2001.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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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의 잔류물 마르코복음 5장 13절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더러운 악령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을 내리달려 물 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공동번역 성서) "성서의 역사는 권력의 역사이며, 권력 기구들의 역사다." 어떤 혈기 왕성한 청년의 말쯤으로 생각하셨나요? 청년이 아니고서야 이런 과감한 말을 단언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테니, 그런 판단은 일반적으로 타당합니다. 한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은 '로버트 쿠트'라는 저명한 구약학자가 자신의 아내(메리 쿠트)와 함께 저술한 {성서와 정치권력}(원제는 '권력, 정치, 성서의 형성'임)이라는 책에서 한 말입니다. 이 책 저술(1990) 당시 그는 50대 중반을 넘어선 학자니 젊은 혈기로 한 말은 분명 아닙니다. 실제로 그는 구약학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권위 있는 학자의 대열에 선 분입니다. 위의 도발적인 구문처럼, 이 저서는 성서의 1800년간의 긴 형성 과정(주전 1250년경~주후550년경)을 '지배자들의 권력 재생산'의 맥락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유다교나 그리스도교의 정경 형성에 모두 적용됩니다. 구약성서(히브리성서)든 신약성서든 모두가 권력자나 권력기구, 혹은 권력적 제도의 산물이며, 그러한 권력 재생산을 위해 봉사해 왔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지배자의 역사다'라는 말은 그다지 새삼스럽게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인에게 성서가 지배자의 역사가 낳은 산물에 불과하다는 말은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떤 신학자도 이런 말은 자제해 왔고,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방신학자는 고사하고 보다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해 보다 과격한 민중신학자조차 이렇게 단호하게 성서 자체를 문제 제기한 적은 없습니다. 어떤 목사의 말대로, 온갖 재앙이 담긴 상자를 '단지 호기심 때문에' 뚜껑을 열어 버린 판도라처럼, 지식을 떠벌리는 데 집착한 나머지 무책임한 짓을 저지르고 만 것일까요? 성서를 이런 식으로 말해 버린다면, 도대체 신앙이 남아있을 자리는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지배자들의 권력의 장치에 불과한 것이라면, 왜 굳이 성서를 신앙의 본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교회엘 다녀야 하며, 나아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져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목사의 언짢아하는 말에, 한 젊은 신학자가 발끈합니다. 왜 위선 위에 위선을 쌓으려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는 가려진 추악함을 들추어내는 일이 학문의 바른 자세가 아니냐고 추궁합니다. 남의 위선을 들추어내는 것은 권장하면서, 우리 자신의 추잡한 모습을 폭로하는 것에 대해서는 못마땅해한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태도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제 두 사람은 쿠트의 분석이 바른 것이냐를 둘러싸고 논전을 벌입니다. 성서 연구자로서 저는 쿠트의 견해에 동조합니다. 물론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지만, 책이 성서 형성에 관한 입문서이니 만큼 그런 간소화는 불가피한 일입니다. 문제는 성서를 그렇게 보는 관점을 가지고도 신앙이 유지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한 성서학자가 '성서에 대한 교회의 착취'라는 주제의 글을 준비하면서, (역사)비평적 지식의 결여가 교회의 위기의 하나의 원천이 아니냐는 문의를 제게 해온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서가 과연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가에 관한 역사적 물음을 던지지 않음으로써, 성서로부터 교회가 벗어나고, 그 결과 성서로부터 성찰적 도전을 받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데 이 말은 절반만 옳습니다. 분명 교회는 성서에 대해 무지했고, 그 결과 자기 좋을 대로 성서를 마구 끌어들여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해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서를 비평적으로 묻는다고 해서 그런 태도가 근본적으로 지양되지는 않습니다. 쿠트의 분석대로, 성서 자체가 이미 사건들에 대한 하나의 비평적 해석들이고, 그것이 권력 재생산을 위해 사용되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유다인들의 성서 해석 전통(또는 성서 형성사)을 근본적으로 문제시한 분입니다. 곧 그분은 유다인들의 성서 형성사 자체가 권력의 역사였다는 것을 간파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다인들은 그것을 은폐하고, 계속 성서의 계율을 강조해왔습니다. 이러한 유다주의적 전통에 대한 예수님의 부정은 성서 전통 자체의 권력화에 대한 비판을 유보했던 유다 라삐 식의 방식이 위선이라고 본 결과입니다. 그토록 예수님의 투쟁은 신랄했고 발본적이었습니다. 한데 이때 예수님이 성서 전통의 근본적 왜곡을 지적한다고 해서, 그분에 의해서 성서 신앙 자체가 부정되었다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버린, 곧 지배자들의 권력 제도로 전락해버린 성전이 싸그리 무너질 것은 선언하면서도, 새로운 성전의 도래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저는 '꿈꾸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해석방식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라삐처럼 오랫동안 전해내려온 해석 전통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물론 그분이 학자였다면, 새로운 '라삐적 해석방법'을 고안하려 애썼을 겁니다. 진정한 학자는 아니지만, 학구적 진지함이 한결 돋보였던 바울은 분명 그런 대안적 해석 방식을 고안합니다. 하지만, 천박한 목수의 아들인 예수가 학문적 방식을 개발하는 것은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예수님은 '꿈꾸었습니다.' 곧 무한한 상상력으로 새롭게 보는 관점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이때 당신의 상상력의 바탕 이면에는 동시대의 '고통'이라는 대중의 절박한 삶의 자리가 있고, '해방'을 향한 민중적 염원이 터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제가 '꿈꾸는 것'으로 규정한 예수님 식의 성서 읽기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곧 그분의 새로운 읽기 방식은 성서 자체의 전통에 파묻히기보다는 자신과 동시대의 고통과 해방 염원을 성서 읽기에 개입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안병무 선생님이 '민중의 눈'으로 성서를 본다는 말의 숨은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성서를 비평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비평적 해석 방식이든 다른 읽기 방식이든 간에 우리 시대의 '민중의 눈'으로 다시 읽혀져야 한다는 것으로 수정해야 마땅합니다. 제가 오늘 택한 성서 구절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그런 방식으로 받아들인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하나의 읽기 방식을 보여줍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이야기는 게라사의 '군대악령' 들린 이를 예수님이 고쳐주는 줄거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 악령이 돼지떼에게로 들어갔고, 그 돼지들이 갈릴래야 호수 속으로 뛰어들어 수장되고 말았다는 대목입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돼지가 호수로 (40킬로나 되는 거리를) 달려가 죽었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돼지치기들이 그 장면을 목격한 뒤 사람들(아마도 돼지로 인해 먹고살던 사람들)에게 알려주자 그들이 예수님에게 떠날 것을 종용했다는 평면적 이야기 구성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천 마리가 떼죽음을 했다는 것도 사실적이지 않습니다. 한데 여기서 절묘한 상징들이 들어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악령의 이름이 '레기온'(군단) 즉 로마군대를 상징하는 용어로 되어있다는 점, 그리고 돼지란 당시 팔레스틴에서 로마 군대나 헬라적 도시민의 식용가축이었다는 점 등이 중요합니다. 요컨대 이것들은 유다 대중의 로마에 대한 적개심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 속에는 지배자들에 대한, 지배자들의 전통에 대한 민중의 해방 투쟁의 이야기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게라사의 광인이 예수를 만난 뒤 연루되었을지 모르는, 몇 마리 돼지 도살 사건이 그 배후에 실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필시 이 기억은 로마 지배자들의 전통에 대한 민중의 해방적 전통으로 간직되었을 것입니다. 제 상상으로는 마르코복음서의 시대적 배경이던 유다 전쟁 당시, 이 민담은 유다인들의 해방 투쟁의 이야기 전통으로 살아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 게라사 광인 이야기에서 잃어버린 기억의 잔류물을 찾아내려 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교의 성서 형성사에서 지배자들에 의해 권력의 장치로 재해석된 이야기 배후의 숨겨진 잔류물을 찾아서, 그 이야기의 사건을 재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운동가들에 의해서 예수님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이었습니다. 요컨대 최초의 예수운동가들은 예수님을 이렇게 기억했던 것입니다. 민중의 고난과 해방의 이야기로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보여준, 유다교의 지배자들의 성서 전통에 반해서 새로운 성서 읽기를 계승한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기억의 잔류물을 찾아내려 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라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잃어버린 기억들을 계승해서 우리 시대의 고통과 해방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신앙이라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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