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07/21 (11:48) from 210.219.89.110' of 210.219.89.110' | Article Number : 49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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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588 , Lines : 31 |
| 부음기사(2001.7.8 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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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음기사 마태오복음 2장 18절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 라마에서 들려오는 소리,/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자식 잃고 우는 라헬 / 위로마저 마다는 구나!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공동번역 성서) 그 날도 오늘처럼 따가운 햇빛으로 눈이 부셨습니다. 사람을 첩첩이 실은 군용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갑니다. 한 대, 두 대, 세 대, ..., 족히 백 대는 되어 보입니다. 소년은 이토록 많은 군용트럭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트럭 짐칸을 채우고 있는 사람은 분명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죄수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꽤 많았지만, 일반인의 차림새를 한 사람들도 못지 않았습니다. 거간은 청년이었지만, 백발 노인을 비롯해서 초로의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도 꽤 보였습니다. 트럭이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의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렸고, 어떤 이는 질식한 듯 몸이 늘어진 채 사람들 틈 속에 끼어 있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장면에 소년은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몰래 차들을 따라갑니다. 트럭이 멈춰 선 곳은 학교 뒤 야산이었습니다. 군인들은 사람들을 2열 종대로 야산으로 끌고 갑니다. 팔에 완장을 두른 반공청년단원들도 보였습니다. 그들은 군인 못지 않게 거칠게 사람들을 몰아댔습니다. 발길질을 해대고, 방망이와 총대로 사람들에게 마구 휘둘러댔습니다. 한 사람이 쓰러지자 칠발 명이 한꺼번에 쓰러집니다. 자세히 보니 칠팔 명 단위로 손이 묶여있었습니다. 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사람들은 신속하게 야산 분지에 집결하게 됩니다. 야산 한편에선 이편과 저편으로 말뚝을 박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동네에서 불려온 어른들이 부지런히 길게 땅을 팝니다. 200미터는 훨씬 넘는 길이였습니다. 말둑 사이에 끌려온 사람들이 일열로 세워집니다. 백명 정도 되는 사람을 향해 불과 2~3미터 거리에서 군인들이 총탄 세례를 퍼붓습니다. 낙엽처럼 쓰러진 사람들을, 청년단원들이 달려와 구덩이에 던집니다. 그리고 구덩이를 향해 다시 기관총이 난사됩니다. 이런 학살은 수십 차례 반복됐고, 트럭에 실려 온 모든 사람들이 사살됐습니다. 군인들의 몸은 총탄을 맞은 사람에게서 튕겨나간 피와 살점으로 뒤범벅이 되어,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였습니다. 1950년 7월 충남 대덕군 산내면 골령골에서,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이던 소년의 눈에 목격된 집단학살 장면입니다. 후에 이 사건은 '대전시 산내면 학살 사건'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때 학살된 사람은 대전교도소에 수감된 정치범과 '보도연맹' 소속 사람들 약 천 팔백여 명이었습니다. '보도연맹'이란 1949년 당시, 전국의 모든 교도소가 정치범으로 채워져 더 이상 수감할 수 없게 되자,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 사람들의 전향 및 교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로, 전국에서 무려 33만 명 가량의 사람이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7월과 8월, 두 달 사이에 평택 이남의 전국에서 이들에 대한 조직적인 집단학살극이 전개된 것입니다. 물론 교도소에 수감된 평택 이남의 정치범도 이 기간에 전원 사살되었습니다. 적군에 협력할 수 있다는 명분 아래 벌어진 이 '예방적 집단학살극'은 한국전쟁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전쟁은 어느 편이든 간에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 보복 살육전으로 얼룩지게 된 것입니다. 3~4백만 정도로 추산되는 전쟁 사망자 가운데 대다수가 민간인이었던 이 전쟁의 추잡성은 바로 이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계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벌어졌던 이 광기로 얼룩진 대량살륙전은 우리 역사에서 철저히 망각되었습니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못지 않은 왜곡이 우리의 교과서에서도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비극의 원인과 과정을 적에게 일방적으로 돌리는 이상한 '기억의 정치'가 구사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분노가 증폭되었고, 이러한 증폭된 분노를 바탕으로 해서 한국의 국가주의는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군부독재가 가능했던 것은 이러한 증오의 기억의 정치와 긴밀히 결부되었던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안보'가 이런 분노를 재생산하는 기억의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국가 안보 담당자들의 이상한 민족주의가 이런 추악한 정치술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 종종 사람들에게서 망각되고 있는 듯 합니다. 고위직 공안검사를 역임한 한 법조인은 '공산분자 하나를 잡기 위해 열 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더라도 그것은 국가 안보를 위해서 불가피한 것'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한데 바로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량 학살이 그들 자신에게선 정당화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상한 안보 담당자들의 가운데 가장 명성을 날린 사람 하나가 며칠전 신문의 부음기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오제도 검사. 한국의 이제까지의 공안검사 가운데 단연 최고의 인물입니다. 앞서 언급한 보도연맹을 결성하는 주역이기도 했고, 또 실제로 전쟁 당시 부산 지역의 민간인 학살의 주요 책임자의 하나로 추정되는 인물이 바로 그입니다. 또 전쟁 이전 최고의 간첩 검거 사건인 김삼룡 이주하 사건의 담당검사이기도 했고, 이승만 정권 당시 최고의 간첩조작 사건인 진보당과 조봉암 사건의 책임자였습니다. 훗날 국민훈장 모란장과 무궁화장을 수상했고,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말년에는 철저한 반공주의 변호사로서 명성을 날리기까지 그의 인생 유정은 국가안보의 대명사로 자리잡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한데 그의 명성은 피와 더불어 시작됐고 피를 통해서 결론지어졌습니다. 그가 명성을 휘날리며 가는 곳마다 무수한 사람들이 죽임당했고 또 무수한 사람들의 인생이 파탄나고 가족이 와해됐습니다. 그의 무덤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했을 것이며 또 누구는 오열을 했겠지요. 또한 그의 무덤 앞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가 삶으로써 보여준 철저한 반공주의적 국가안보관을 되새겼을 것입니다. 한데 그의 부음 기사를 보면서 자신의 한스런 인생을 상기하며 새삼 분노에 치를 떨었던 사람들은 과연 없었을까요? 아니 실제로는 퍽 많았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한데 그들의 소리는, 그들의 얼굴은 역사에서, 공식의 매체에서 철저히 가려졌습니다. 더구나 그에 의해 자신의 인생과 가족이 짓밟혔던 이 사람들은 이 인물이 명성을 날리다 갔으며, 그의 가족도 평탄했다는 사실에 접하며, 다시금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치를 떨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에겐 자기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아무런 수단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세상의 정의란 없으며, 정의의 수호자를 자임하는 국가란 새빨간 허구에 불과합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종교를 찾는다구요? 그들에게 종교는 과연 의지할 만한 것이었을까요? 대전의 학살사건을 목격했던 소년은 그 자리에 독경하는 스님이 있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독일 나치주의 군대에 의한 유태인 학살 당시 목사들이 배석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학살에 동원된 군인들의 정신적 혼돈을 방어해주는 데 있어 종군 성직자의 역할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종교는 군인들의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해주는 존재에 다름 아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국가에 분노하고 종교에 분노합니다. 그들은 이 가학적이고 처절한 집단범죄의 공모자였기에 말입니다. 한데 우리는 어떤가요? 분노의 증폭 장치였던 이상한 기억의 정치에 놀아났던 우리는 무책임한가요? 이제까지 권력이 기억하라고 요청한 것만을 기억하고, 권력이 망각하도록 권유한 것을 상기하려 하지 않았던가요? 이제 그 분노의 정치를 향해 비난을 가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여, 명예회복 위령비나 세우고 보상 운운하는 데 여념이 없었던 우리는 진정 이 집단학살의 공모자는 아니었나요? 혹 이런 류의 봉합으로 이 광기의 역사를 영원한 침묵의 공간으로 위폐시켜버리려는 기억/망각의 정치의 공모자는 아닌가요? 그러는 가운데 한 국가안보의 첨병이던 자 하나가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명성만을 남긴 채로 말입니다. 그를 향해 침뱉을 틈도 없이, 그의 과도한 폭력성에 역사의 심판을 가하기 전에 그는 명예롭게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퇴장한 것입니다. 이런 유언 무언의, 무식 무의식의 안보공모자들로 들끓는 세상에서, 피해자들은 메시아 탄생을 외칩니다. 그는 세상의 종말을 야기시키는 이요 세상을 향해 심판의 칼날을 휘두르는 이입니다. 모든 국가와 모든 종교와 모든 공모자들을 향해 심판의 불길을 뿌려대는 존재입니다. 마태오복음서의 대중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바로 이런 메시아의 탄생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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