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09/02 (05:47) from 63.106.206.63' of 63.106.206.63' | Article Number : 52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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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448 , Lines : 23 |
| 입법자의 코(2001.8.26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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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자의 코 느헤미야기 10장 1절 이리하여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맹약을 맺게 되었다. 우리가 그것을 기록하여 봉하고 지도자들과 레위인들과 사제들이 이에 서명하였다. (공동번역성서) -------------------------------------------------------------------------- 저는 위의 본문에 관한 주석을 오늘 다루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다음 '하늘뜻나누기'로 미루고자 합니다. 다만, 이 본문에는 에즈라로 상징되는 '율법지상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은근한 냉소가 함축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이것은 느헤미야기의 최종 편집자의 의도는 전혀 아니며, 아마도 그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이 구절을 여기에 포함시킨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는 수 없이"라는 표현에서 암시되는 것처럼, 여기에는 에즈라식의 이데올로기, 그 강력한 이념지상주의가 범할 수 있는 인간애 없는 진리 주장에 대한 어떤 이들의 문제의식이 은밀하게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에즈라식의 정책이 적지 않은 대중의 희생을 제물 삼아 추진되었다는 암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이런 시사점을 염두에 두면서 저는 오늘 최근에 있었던 대중문화에 대한 일련의 논쟁에 개입하고자 합니다. 사사롭게는 종종 얘기한 적이 있어도 공식적으론 한번도 다뤄보지 못한 소재여서, 원고 청탁을 받고 다소 당혹스러웠습니다. 기자는 가수 박진영의 6집 음반 <게임>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에 대한 그리스도교 윤리주의자들(특히 '기윤실')의 계속되는 개입에 대해 목사로서 신학자로서 의견을 말해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녀가 저를 지목해서 청탁할 땐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글을 써달라는 뜻일 겁니다. 물론 저는 그런 점에선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기에 충분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교에 대해 비판할 때 저 이상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건, 논란의 대상이 됐던 소설, 영화, 음반들 가운데 제가 보거나 읽거나 들은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텍스트들을 새로 검토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습니다. 기자에게 요청해서 팩스로 받은 공방문건들과 제가 직접 찾아낸 자료들이 꽤나 되지만, 그것은 모두 2차 텍스트일 뿐입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이것들에 대해 얼마간 알고 있지만, 고백하건대, 그것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가할 만큼은 아닙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저는 준비 안된 필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소재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이 조금은 있었고, 그것을 정리하고픈 생각에 만용에 가까운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늘 박진영과 기윤실의 논쟁에만 집중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 논쟁은 기윤실이 50여개 시민단체들(주로 그리스도교 시민운동 단체들)과 연대해서 음반 <게임>에 연소자 이용불가 등급을 내리라는 촉구를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청원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박진영과 음반회사가 반론을 펴고, 여기에 문화 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문화연대)를 포함 30여 개 시민단체가 '검열 반대'를 부르짖으면서 논쟁에 뛰어들면서, 이는 대중 문화 전반에 대한 것으로 확전됐습니다. 인터넷상에서는 더욱 격렬하게 논전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연예계 화제거리를 다루는 데 있어선 황색저널리즘인 TV 방송국과 전국일간지들까지 나서서 이 상황을 떠벌리는 데 한몫 톡톡히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 문제는 더욱 소득 없는 흥밋거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그러니 그 귀추는 별로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기윤실' 등이 이 음반에 대해 못마땅해 했던 것은 그 노래말의 성 표현이 너무 지나쳐서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유해성을 검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이런 경우 늘 그렇듯 성명서는 매우 선동적이었고, 문체는 단언적 어투(~일 수밖에 없다; ~로 가득 차 있다; ~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등)로 일관했고, 전체 작품이 아닌 문구 하나하나 몰두하는 단순함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에서 저는 '입법자의 코'를 연상하게 됩니다. 칼날같이 뾰죽한 콧날이 위쪽으로는 안경을 받쳐주면서 눈을 좌우로 나누고 있고, 아래쪽으로는 인중으로 연결된 입술을 두 쪽으로 나누어버리는 모습입니다. 그의 콧날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단지 둘로 선명하게 나뉠 뿐입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도 나눠버립니다. 따라서 하나가 진리면 다른 하나는 거짓일 뿐입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엔 대화란 없습니다. 단지 '법', 아니 자신들이 법이라고 주장하는 진리만이 있고, 그것에 대한 절대 복종만이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박진영 논쟁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랫말 몇 부분을 예로 들이댑니다. 가령, "여자가 있는 몸이지만 그대가 날 정말 원하신다면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어요"([음음음]) 같은 구절입니다. 이것은 부부의 건전한 성이 아닌 불륜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또 "방문에서 침대까지 안아주고 싶어 침대에서 바닥까지 떨어지고 싶어 머리에서 발끝까지 입맞추고 싶어"([방문에서 침대까지])처럼 성행위를 묘사한 부분들을 예로 들면서, 이런 가사들은 청소년들에게 성행위를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박진영의 반론은 사뭇 흥미롭습니다. 그는 "섹스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쾌한 소통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은 은폐할 것이 아니라, 놀이로서 소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성이란 은밀한 것이며, 부부 관계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후자는 성은 공개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의 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양자의 대결 배후에는 결혼에 대한 다른 관점이 놓여있음을 보게 됩니다. 기윤실이 결혼 제도가 성을 아름답게 지켜내는 필요조건이라고 본다면, 박진영은 결혼 제도 내에서 성이 얼마나 왜곡되고 있는지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즉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이 얼마나 난무하는지를 비아냥대는 냉소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박진영의 도발은 그런 점에서 대단히 사회비판적 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가 남녀간의 사랑의 제도화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회의 하나라는 점에서, 그의 비판적 도발은 그만큼 한국적 결혼제도의 폐쇄성으로 인해 은폐된 온갖 모순과 고통의 이야기를 까발리는 도화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기윤실의 '입법자의 칼날 같은 코'는 어느 만큼 납작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박진영 자신도 결혼제도에 투항한 사람의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가문간의 사회적 위신의 교환관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는 분명 이것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음에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가문간의 인연의 고리를 이어갈 자손을 낳아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는 훨씬 더 결혼제도의 윤리 속에 깊숙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은 그가 자유연애를 당당히 주장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시사매거진2580'이 최근 연예기획사와 연예인간의 불공정의 계약에 관한 보도 이후 촉발된 기획사와 방송사(MBC)간의 논쟁에서 그가 명백하게 전자를 편들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기획사는 연예인을 상품화할 때 '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것은 특히 사이즈로 환원된 성입니다. 연예인의 입을 통해서 성에 대한 사회적 욕망은 사랑 관계가 아니라 사이즈의 관계로 대체되었고, 이것은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성만이 사랑의 결정적 요소라는 관념이 사회의 성 담론을 지배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보여지는 성의 아름다움에 투자를 최대화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기획사가 만들어내는 스타시스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메커니즘에 대한 비판 방송에 대해 그가 기획사를 편들었다는 점은 그가 주장하는 성의 놀이가 자본주의적으로 상품화된 육체들간의 놀이로 환원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그는 비주얼 자본주의의 상품화된 성의 전도사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최근 다른 방송에서 아이들을 가수로 키우는 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환상에 사로잡힌 청소년에게 연예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미덕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참가 아이들에게 점수매기는 그의 기준은 노래와 춤에 국한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채점자인 시청자는 여기에 외모를 보다 중요시한 점수를 보태주겠지요. 요컨대 이 가수 만들기 프로그램은 노래 속에 인생을 담고, 그것을 통해 사람과 대화하는 '노래꾼'의 모습이 생략된, 노래와 춤의 기술자만이 가수로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기획사가 기획하는 가수상입니다. 즉 박진영은 여기서 기획사를 대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진영의 가부장제에 대해 그토록 신랄한 비판은 자본주의적 상업전략과 결착되어 있다는 혐의를 받을 소지를 안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 영역에서 진리인지를 강요해왔던 지난날의 '입법자의 코'가 이제 다시 대중문화를 압박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오늘날 종교의 이름으로 활개칩니다. 하지만 지난날의 독재자와 동일한 얼굴일 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문화는 모든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대화구조를 상실한 대중문화는 삶과 세계를 성찰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봅니다. 그리스도교는 신의 말걸기에서 비롯된 대화의 종교입니다. 대화성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적인 신조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대중문화의 대화성을 위해서도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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