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09/10 (08:21) from 63.106.206.76' of 63.106.206.76' | Article Number : 53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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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618 , Lines : 30 |
| 허무개그(2001.9.9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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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개그 요한묵시록 21장 10·12·25절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었습니다. ○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 두 대문이 있었고 그 열두 대문에는 천사가 하나씩 있었으며, ... ○ 그 도성에는 ... 종일토록 대문을 닫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공동번역성서) -------------------------------------------------------------------------- 한달 전에 한 정치학자가 제게 {예수는 없다}라는 책에 관한 의견을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자신을 감동시켰던 이 책이 과연 신뢰할만한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제목이 선정적인 것을 봐서 그렇고 그런 책의 하나쯤으로 생각됐지만, 그를 매달 한번씩은 만나야 하는 터였기에, 저는 그 숙제를 완수하기 위해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대답은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자 오강남 박사가 세계적으로 꽤나 명성 있는 종교학자지만, 전문 분야가 아닌 영역을 다루는 만큼 저자의 권위 때문에 후한 점수를 준 것은 물론 아닙니다. 비록 역사학적으로 정교하지는 않았지만 최근의 학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잘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교종교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예수 해석이 도처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기본 취지는 교회, 특히 한국의 교회가 고백하는 예수가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강조하려는 것은 이 책이 최근의 베스트셀러의 하나라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저술 가운데 조금이라도 학문성이 있는 책은 거의 팔리지 않는 게 출판계의 정론이라고 할 수 있는 판에, 이 책은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큼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최근 그리스도교계의 사회적 위신이 땅에 떨어져 있는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그리스도교에 대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사회적 문제의식이 여기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자의식'을 자신의 몸에 새긴다는 것을 의미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치 일본이 자신의 제국주의적 죄악을 반성하지 않는 뻔뻔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자기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윤실'의 주장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지금의 교회의 위기는 무속사상의 물량주의와 사회운동 세력의 구조결정론적 태도에 감염된 결과입니다.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왜냐면 이것은 본래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신앙은 그렇지 않았다는 주장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선교가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제국주의적이고 폭력적인지를 세상이 다 알고 인정하는 터에, 교회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개혁적 그리스도교 시민운동 단체의 생각이 이 정도인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런 수치스런 판국에 그리스도교의 성찰의식을 마비시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오강남의 진단에 의하면 그것은 '교회'입니다. 한 전직 언론인이 자신의 저서의 제목을 "교회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정한 것도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 점에서 같은 생각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비교적 권위 있는 학자의 저작인 {예수는 없다}의 교회 비판은 교회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이 점에서 최근 몇몇 종교학자들과 제가 각기 제기한 '한국 교회의 승리주의'라는 논점이 하나의 대답일 수 있습니다. '승리주의'란 수단이나 과정을 불문하고 결과/성과에만 치중하는 태도로, 성과는 양적인 개념뿐 아니라 시간의 개념도 포함합니다. 즉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크게 결실을 냈느냐에만 집착하는 자세입니다. 한데, 이러한 승리주의는 한국 근대화의 가치와 맞물립니다. 즉 한국의 파행적인 근대화와 그리스도교 신앙관은 담론적으로 서로 구조적 등가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양자는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동맹자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또 신앙이 성장할수록 이런 승리주의적이고 몰성찰적인 그리스도교적 가치 체계, 질서 체계에 순응하게 되는가,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합니다. 이런 메커니즘을 가리켜 '제도'라고 합니다. 즉, 신앙적 질서 체계는 곧 그리스도교라는 '신앙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개인과 구조 사이에 제도가 있어서, 개인은 제도를 통해서 그 질서 체계를 자신의 삶 속에 실현시키게 되고, 또 구조는 제도를 통해서 개혁되거나 온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의해 시작된 하나의 신앙 운동은 유다교 회당체제라는 신앙 제도를 부정하면서 모방함으로써, 유다교적 질서 체계를 개혁한 새로운 신앙 구조를 구축하게 됩니다. 이때 예수운동으로 전향한 사람들이 하나의 새로운 신앙 구조를 갖는 종교를 만들고, 그 종교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 사이에는 새로운 신앙 제도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역사적으로 그 제도란 '교회'였습니다. 신앙 제도로서 교회는 '예전·직제·교리'의 복합체입니다. 여기서 교회는 이 요소들의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실행을 통해서 신앙 제도로서 자리잡게 됩니다. 사람은 교회의 예전을 수행함으로써, 위계적인 직제 체계 속에 관여함으로써, 나아가 교리 담론을 낭송하고 노래부르면서,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이것들을 체험함으로써 그리스도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은 이러한 실행 속에서 교회의 신앙적 질서 체계를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에서 교회로의 길, 예수 신앙의 교회 제도로의 전개의 길은 처음부터 하나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제도화의 시도가 실재했습니다. 서양의 한 급진주의적 신약학자가 쓴, 기념비적인 저술 {팍스 로마나}는 로마 제국의 폭력성을 겪는 과정에서 하나의 종교운동으로서의 예수 운동이 어떻게 다양하게 전개되었는지를 네 가지 길로 스케치합니다. 바울의 길, 루가의 길, 로마의 클레멘스의 길, 그리고 요한묵시록의 길이 그것입니다. 국가 폭력에 직면하면서 이 네 가지 특징적인 신앙 제도화의 유형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중에서 요한묵시록과 로마의 클레멘스의 길을 대조해보면 흥미롭습니다. 동일한 시기 동일한 상황에 대해서 둘은 정반대의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클레멘스는 제국의 폭력을 예외적인 것으로 봄으로써, 제국 자체를 증오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국의 폭력성을 은폐하는 신앙 질서를 그리스도인에게 내재화합니다. 반면 요한묵시록의 길은 제국의 폭력은 '일반적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은 황제의 성향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제국이 존속하는 한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클레멘스의 길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제국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신앙윤리를 낳은 반면, 요한묵시록의 길은 무한 투쟁의 신앙 정서를 가진 반체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냅니다. 역사는 이 두 길 가운데 로마의 클레멘스의 길에 따른 교회가 주류가 되는 과정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류교회는 주변화된 교회들을 배제하고 소거시키려는 노력을 벌이면서 자신의 유일한 승계권을 강화시켜 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교회는 승리주의적 모습을 띠게 된 것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형제 살해도 할 수 있는 야비한 공격성을 신앙 질서 속에 내재화하는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 게임은 항상 경쟁 상대보다 빠른 자신의 성과를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이런 발전을 문제로 여기고 있는 우리는 요한묵시록의 잊혀진 전통에 주목하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흥미롭습니다. 화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상태에서 자신에게 세계의 비밀을 보여주는 천사를 따라 높은 산으로 오르면서 보게되는 최종 세계의 환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천상의 존재가 주는 새로운 세상의 비전입니다. 하늘, 거룩, 도성 등, 기존 제국 질서의 위계적 언술이 그래도 들어있습니다. 나아가 그 도성은 높은 성벽과 성문이 열두 개나 됩니다. 엄청난 규모와 위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제국의 비전이나 일반적인 교회의 비전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 문에 관한 묘사에서 나옵니다. 긴 서술의 마지막에서 그 위용에 대한 느낌을 단번에 깨뜨리는 말입니다. 그 성문들의 대문은 항상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개방되었다는 주장입니다. 높은 성벽이라는 차단막이 무의미해집니다. 그 위용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배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타인이 들어오게 하는 장치이고, 들어온 타인에게 행복을 약속하는 장치였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비전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현실을 비꼬는 전복의 말만 있습니다. 요한묵시록의 긴 환상의 파노라마의 최후에 이런 전복의 환상만이 비전으로 제기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한묵시록은 허무의 언술인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기존 질서에 대한 대안적 질서를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교회 질서를 비꼬는 것이고, 그러한 대안 없는 냉소를 통해서 묵시록계의 그리스도인은 대안 없이 일상적으로 계속되는 지배체제의 폭력 앞에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물론 대안 제도를 향한 모색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책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대안 없는 비판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는 없다"는 도전의 말이 오늘 우리에게 의미 있는 말인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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