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10/10 (03:03) from 210.219.89.117' of 210.219.89.117' | Article Number : 55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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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092 , Lines : 25 |
| 오금질(2001.10.7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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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질 요한복음 2장 20~21절 ○ 그들이 예수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 육 년이나 걸렸는데, 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요?" 하고 또 대들었다. ○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이었다. (공동번역성서) -------------------------------------------------------------------------- '무림일기―고수를 찾아서'라는 TV 다큐멘터리 프로를 보신 분이 계신가요? 지난 8월 20일부터 24일까지 한 회당 약 25분 정도씩 총 다섯 회에 걸쳐서 방영되었던 것이지요. 꼭 보고 싶었지만 개인 사정이 허락지 않아서 제4편만 볼 수 있었는데, 다행히 지난 주 목요일 낮에 그중 절반을 재방송했고, 다음주 목요일 낮에 나머지를 방영한다고 하니, 전부를 볼 기회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각각 태견과 태권도를 하는 두 청년이 전국의 무림고수를 찾아다니며 이들에게서 각기 다른 기예를 배울 뿐 아니라, 정신을 배우는 형식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그들이 찾아다니는 무림고수라는 이들 가운데 몇은 제도화된 문파의 달인들이었지만, 대다수는 제도로부터 떨어져나온 혹은 그런 기성의 무예 제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야인들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또 서로 다른 고수들의 단편적인 이야기 속에서 그들간을 꿰뚫는 어떤 공유점을 읽을 수도 있었다는 점도 제겐 퍽 유익했습니다. 제가 느끼기로는, 그들은 대체로 기성 무예제도의 형식을 뛰어넘으려고 몸부림하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태견 전수자인 장태식은 이런 무림고수들을 접하면서 자기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때 그의 스승이자 태견의 최고 고수의 하나라는 도기헌 교수(연세대)가 그를 부릅니다. 그리고 태견의 몇 가지 비급(秘 )을 알려주면서, 이렇게 하나의 깨우침을 줍니다. 그에 의하면, '중국 무예들의 특징은 몸의 균형에 있다는 것입니다. 절묘한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허점을 가리고, 균형 상태의 다른 동작을 이어가면서 무예의 미학을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한데 태견이나 다른 우리나라 무예들은 그와는 달리 몸의 균형을 깨는 움직임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새로운 움직임이 창조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불균형의 미학, 균형 해체의 미학이 바로 한국 무예의 특징이라는 얘기지요. 저는 그의 말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 평가할 능력은 없습니다. 문외한이지만 대개 이런 식의 단순한 비교는 그다지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하지만 그가 제자에게 던진 이 말은 중국과 우리의 무예를 정확하게 비교해주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태견 무예의 최고 경지에 오른 한 사람으로서 질서를 넘어서는 그 무엇에 태견 무예의 정수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려는 것이었다고 이해한다면, 그의 말은 '도통한' 사람의 심오함을 엿보게 합니다. 이 말에 감동한 저의 설명을 듣고는 어떤 이가 '율려 사상'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율려'란 일종의 음률인데, 그것은 인간의 질서와는 다른 '우주의 질서'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어떤 논문을 보니 신라시대 박제상이라는 이가 썼다는, 일종의 창조신화인 '부도지(符都誌)'에 의하면, 흥미롭게도 그것은, '말씀/로고스'가 천지를 창조했다는 성서의 우주관과는 다른, 음률에 의한 우주 창조론을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음율이 세계의 원천이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율려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질서가 '정음(正音)에 대한 욕망'에 의해 점철되었지만, 우주의 질서는 반대로 규정된 음계에 의해 소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온갖 '잡음의 어우러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정말 우주 질서가 그런지는 몰라도, 율려 사상은 '어떤 순정음을 향한 인간 역사의 욕망'를 해체하는 하나의 비판담론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순정음을 향한 욕망'이란 고정된 진리, 확고부동한 질서의 원리를 향한 욕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질서에 따라 세계를 구축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그 균형 잡힌 품세만으로 세상을 사는 것만이 올바르다는 억견(도그마)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이런 억견의 해체, 주도음이 없는 '잡음의 미학'에서 진리를 읽을 수 있다는 주장이 율려 사상의 핵심인 모양입니다. 또한 저는 여기서 풍물을 오랫동안 해왔던 한 사람의 말을 떠올립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그는 풍물의 기본 발동작을 '오금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무릎이 조금 굽혀진 상태에서 땅을 "차듯이 걷는 게 아니라 지근지근" 밟으면서 발을 옮기는 동작을 말합니다. 어떤 초보자는 그 동작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제게 설명하면서 "도무지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반면 그 풍물의 고수는 오금질을 하면 "어깨가 가벼워지면서 저절로 몸이 땅과 호흡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풍물의 기본 발동작인 오금질은 균형을 깨면서, 그 깨어진 균형 때문에 다음 동작이 창조되는 걸음걸이며, 그 속에서 흙과의 합일을 체험하는 '물아일여(物我一如)'의 미학을 함축하는 표현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태견이라는 무예에 관한 말과 율려라는 음률에 관한 사상 그리고 오금질이라는 풍물의 한 기본 동작에는 표현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로 꿰어지는 담론의 기조가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균형 중심주의에 대한 도전이요, 기성의 질서에 대한 거부입니다. 그것은 일탈의 미학이며, 잡음의 미학입니다. 그리하여 '정주(定住, settlement)의 세계관' 대신에 '유랑의 세계관'을 향한 예언자적 호소가 이들 담론 속에 공히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읽은 요한복음서의 텍스트는 의미심장합니다. 여기에는 '46년간이나 짓고 있다는 예루살렘 성전'과 '예수님이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는 새 성전'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단지 하나의 건축물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동시에 유다인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뜻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염원하는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며, 동시에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유다인들의 삶의 질서를 표상합니다. 곧 성전은 유다인에게는 하나의 삶의 제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성전이 무너질 것을 선언합니다. 그리고는 사흘만에 지어질 새 성전을 예언합니다. 특히 21절은 그 새 성전이 예수 자신의 몸임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하길 바랍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건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임당한 후에 사흘만에 되살아난 이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건조물은 보여지고 만져지는 실체입니다. 한데 예수님의 몸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한 그분의 몸을 보고 만진 이는 있으되, 그것은 단지 말로만 절해질 뿐입니다. 요한복음서는 그분이 떠난 이후의 공동체의 상황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참조할 것은 이 보이지 않는 새 성전으로서의 예수님의 몸을, 요한복음서 저자보다 최소한 한 세대는 앞선 시기에, 바울은 교회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로마12,5; 고전 12,12~27)는 것입니다. 보이는 대상, 만져지는 대상으로 말함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 했던 것입니다. 즉 기성 제도인 유다교 성전(-회당) 체제에 대해 새로운 질서 원리, 새로운 제도로서 교회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교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성)령'입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성령, 그 '하느님의 기운'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무엇입니다. 기원도 알 수 없고, 작동 원리도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질서관으로 보면 그것은 온통 무질서요 신비일 뿐입니다. 그래서 유다인 가운데 학식 높고 신실한 지식인 니고데모는 그것을 도무지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46년 대 3일'이라는 대비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46년간 짓고 있었고, 향후에도 한참으로 더 공사해서 유다교의 성전은 완공됩니다. 거기에는 벽돌이 필요하고, 기술자가 필요하고, 설계자가 필요하고, 그 모든 것을 위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어느 하나도 계산이 어긋나면 완성은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데 '3일'짜리 성전은 그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모든 계산, 합리적인 판단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질서를 깨야만, 균형 있는 계산법을 무너뜨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리를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성전에 관한 오늘 본문의 묘사는 기성 제도에 대해 도전하는 요한복음서 공동체의 문제의식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질서가 무질서를, 균형이 불균형을, 제도가 영을 질식시킨 세계를 직면하면서 제기하는 일단의 초기 그리스도인의 도전의식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가지의 교회의 역사에서 요한복음서의 도전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소리로 남아 있습니다. 왜냐면,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제도화는 교회를 통해서 구현되었는데, 그 제도의 역사는 영을 신앙에서 소거시킨 역사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질서'라는 그릇 속에 담겨 있는 영, 제도에 순화된 영만을 '영'이라고 규정하고, 다른 것을 이단으로 배제한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교는 영이 제거되었습니다. 오직 거짓 영, 순화된 영만 살아 넘쳐나는 종교가 된 것입니다. 영은 항상 제도를 통해서 역사 속에 구현됩니다. 그러나 제도는 그것의 규칙성을 단숨에 넘나드는, 어떠한 장치로도 규격화할 수 없는 영에 의해 도전받고 영향을 받지 않는 한, 그것은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역사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에 구원의 담론을 유포할 자격을 상실하였습니다. 그것은 영이 되살리지 않는 한 말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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