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11/22 (12:30) from 63.106.210.167' of 63.106.210.167' | Article Number : 57 |
올빼미
|
Access : 2537 , Lines : 31 |
| 버린돌(2001.11.18하늘뜻나누기 원고) |
|---|
|
'버린돌' -------------------------------------------------------------------------- 집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 야훼께서 하신 일이다. ― 시편 118편 22~23절 -------------------------------------------------------------------------- 강연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비교적 '성공한' 목사였던 한 분이 하소연하듯 질문을 던집니다. "병들어 죽어 가는 이가 찾아와서 축복기도를 부탁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거절한단 말이요?" 역시 목사인 다른 이가 연이어 목사 초년 시절 시골에서 목회할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항변합니다. "노인네들이 갓난 송아질 안고 찾아와서 축도를 부탁합디다. 처음엔 당혹스러웠지. 이게 무슨 짓인가 생각도 들었소. 하지만 안 해줄 도리도 없었지. 송아진 그들의 미래요 희망의 원천이었거든. 그걸 어떻게 거절한단 말이요?" 그때 저는 바리사이파 율사가 되어버렸습니다.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강도 높게 하고자 했던 것인데, 그래서 교회의 자의식, 교회적 신앙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게 하려는 취지였는데, 그만 교회와 목회자의 신앙 관행을 모조리 부정하는, 비판적 교조주의자쯤으로 비추어졌던 것입니다. 마치 대중에게 가혹한 노동으로부터 '쉼'을 선사하고자 했던 안식일 강령이 어느 때부턴가 교조주의적으로 이해되어 다시 사람들을 억압하는 논리로 돌변해버린 것처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잊혀진 채, 이른바 '안식일론'만이 살아 춤추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너무나 자명한 주장을 위해 예수님의 목숨이 댓가로 지불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 신학이 바로 유다주의의 근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신학이 있기에 유다 사회의 신분제가 정당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신앙 관행과 더불어 유다 신앙의 엘리트 체제가 강화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은 불가피했습니다. 그의 유다교에 대한 비판은 유다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이었던 것이지요. 한데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개념은 유다교의 안식일 개념과 유사한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방의 담론으로 탄생한 십자가 이야기가 어느 순간 억압과 배제의 담론으로 돌변했던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 모이는 자와 모이지 않는 자의 이분법이 십자가 신학의 실천적 근간을 이루었고, 그리스도교의 폭력성은 여기에서 적나라하게 발휘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제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한백에는 십자가가 왜 없습니까?" 그때마다 저의 대답은 한백에는 무려 다섯 개의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통상 십자가가 걸려 있어야 할 그곳엔 십자가가 다섯 개나 있는 그림이 있다고 말입니다. 저의 이 말은 실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교회의 전면 정중앙에 있는 단지 하나만이 유의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개라는 것은 마치 진리가 '여러 가지'라는 의미와 상통합니다. 다시 말하면, 제 대답은 교회의 십자가론에 대한 일종의 모독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한백은 십자가론에 대한 부정을 신학의 기조로 하면서 출발한 교회입니다. 구원의 상징물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판단이 바로 그런 십자가론에 대한 해체 주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실은 다섯 개 짜리 십자가가 그려진 판화보다는, 더욱 '한백스러운' 십자가의 대용물은 정면 정중앙의 '한백의 돌들'입니다. 한라산, 백두산, 그리고 금강산에서 가져온 이 돌들 말입니다. 이것들은 셋이지만, 기실 하나와 다름없습니다. 마치 그것은 두 개의 각목이 교차되어 하나의 십자가를 이루는 것과도 같이, 셋이 한 바구니에 모임으로써 비로소 그 의미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한데 어느날 이 둘들 위에 작은 돌 하나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올려진 이 돌의 정체는, 수소문 해본 결과, 아무것도 아닌 것, 요컨대 아무데서나 버려진, 아무 의미도 갖지 않는 그냥 돌에 불과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공기놀이를 위해 주워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 용도를 잘은 모르지만, 우연히 교회당 안에서 굴러다니게 되었고, 그것이 다시 우연히 한백의 거룩한 돌들 위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세 돌이 각기 다른 모양과 재질을 가진 것이지만, 그것들이 하나로 모여 한반도의 원대한 구원 담론을 이루었다면, 이 작은 돌은 나머지 세 돌과 더불어 놓인다고 어떤 의미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이름 없는 하나의 돌에 불과하고, 아무 의미 없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돌에 불과합니다. 안식일에서 십자가로, 그리고 한백의 돌들로 이어지는 의미의 구원론적 계보에 당당히 끼어들기엔 너무나 벅찬, 보잘 것 없는 버린 돌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한백의 꿈에 대한 일종의 '희화화'입니다. '우수게꺼리 만들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작은 돌은 한백의 거룩한 돌들, 한백이 지향하는 그 원대한 꿈을 담은 상징물을 향한 '의도하지 않은 어떤 모독'의 결과입니다. 누구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돌로 말미암아 한백의 상징은 단번에 부정되었습니다. 아니 한백의 꿈을 수없이 되뇌이면서도 그것에서 해방의 뜻을 읽어내지 못하고 단지 그 무게에 짓눌려 있을 뿐이던 우리 각자에게 이 돌은, 이중적인 우리에게 하나의 모독의 상징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저는 이 돌을 한백의 상징물 위에 그대로 올려놓기로 했습니다. 다른 이들과 의논하지 않은 채 은근 슬쩍 올려놓았습니다. 누군가가 그것에 이의를 제기할 때까지 말입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의 논쟁을 벌일 때까지 말입니다. 그 논쟁으로 인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삶과 신앙의 자기 반성의 언어로 읽혀지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다윗 왕조의 야훼신학의 부정으로서의 안식일, 유다주의의 안식일 신학의 부정으로서의 십자가,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신학의 부정으로서의 한백의 돌, 그리고 한백의 돌 신학의 부정으로서의 이 '버린돌'. 이러한 부정과 비판의 계보로서, 저는 이 돌의 자리를 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