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12/30 (02:46) from 63.106.221.60' of 63.106.221.60' | Article Number : 59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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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785 , Lines : 28 |
| 김옥분, 그리고 예수 (2001.12.16 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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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분, 그리고 예수 -------------------------------------------------------------------------- 예수를 초대한 바리사이 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속으로 "저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에 손을 대는 저 여자가 누구며 어떤 행실의 사람인지 알았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루가복음서 7장 39절> -------------------------------------------------------------------------- 왜 김옥분이 매춘녀가 되어야 했는지에 관해 알려진 것은 단지 가난한 집안의 딸이라는 것뿐입니다. 흔히들 마지막 선택이라고 하는 거기에 이르게 되기까지 그녀가 뭘 했는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아무튼 그녀는, 알려진 바에 따르면, 홍콩의 한 일식 주점의 매춘녀로 일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모양입니다. 또한 얼마만큼의 자산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마련할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한 남자를 만났고, 그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런 정보만으로 추정한다면, 분명 그녀는 '막다른 길'에 도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교육받지 못하고, 별다른 기술도 없고, '빽'도 없는 그녀에게 새로운 출발을 위한 기회의 무대였습니다. 한데, 그 남자에 의해 그녀는 참혹하게 피살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위장결혼하여 남편을 월북시키려 했던 간교한 간첩으로 둔갑됩니다. 1987년 1월 9일, 그 남자는 공항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기자회견을 합니다. 남달리 선한 눈을 가진 젊은이가 가슴에 손을 얹고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간간이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이 텔레비젼을 통해서 전국에 생중계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진실'을 과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공소시효 만기가 되는 15년에서 단지 두 달이 모자란 지난 11월 13일, 그는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됩니다. 알고 보니 그는 거짓 투성이의 사람이었습니다. 학벌 위조, 경력 위조, 공관원 사칭, 상습 도박, 배우자 폭행, 무역 사기, 사기 결혼, 그밖의 온갖 사기 혐의가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 따라다녔다고 해도 과언인 아닌 그런 인물입니다. 김옥분은 우연히 만난 그에게 빠져 결혼하기로 결심합니다. 한데 그것이 그녀의 최악의 선택이었음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매춘녀가 되는 선택은 아무 것도 없는 그녀의 삶에 기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한데 '행복의 조건'이라는 결혼은 그 모든 기회를 일거에 수포로 돌려버렸을 뿐 아니라, 그녀에게 간첩의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계기였습니다. 더구나 그녀가 몸을 팔면서까지 부양했던 식구들은 간첩의 가족이 되어 풍비박산되고 맙니다. 그녀의 시신은 화장되어 홍콩의 한 공동묘지에 연고자 없는 이들을 위한 무덤 속으로 아무렇게나 내던져졌습니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가치 평가와는 정반대되는 상황이 여기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불행의 끝자락쯤으로 여겼던 것이 그녀에겐 기회를 제공해주었지만,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저주를 쏟아붓고 말았습니다. 마치 일상적 질서를 반하는 자에게 참형을 내리듯 세상은 그녀를 더할 수 없이 참혹하게 심판했던 것입니다. '매춘녀'라는 것, 아마도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겐 그녀를 아무렇게나 해도 좋다는 단서조항쯤으로 보였는지 모릅니다. 분명 '간첩 수지김'이라는 은폐·조작의 배후에는 '매춘녀 수지김'라는 사실이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였을 겁니다. 그녀의 남편과 안기부 담당자들은 바로 이 사실을 자기들의 비열한 이익을 위해 이용하였다는 것입니다. 필시 그랬겠지요. 한데,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들의 이런 비열함은 바로 우리들의 편견과 공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리 세상의 법칙을 정하고 그 법칙에 따라 삶의 옳고 그름을 단정하는 태도. 여기서는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현실과 마주하며 성실하게 지냈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수지김 사건'은 정치적 은폐·조작의 사건인 동시에, 우리들의 일상적 편견이 가하는 가학적 저주의 하나의 징표인 것입니다. 향유 부은 여인 이야기는 바로 이런 문제와 씨름하는 초기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암시합니다. 특히 루가복음서의 텍스트는 이것을 매춘의 문제와 연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수지김 사건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모두 등장합니다. 요컨대 초기부터 예수님의 일화로서 잘 알려진 얘기입니다. 한데 복음서들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는 점, 특히 마르코와 루가복음서 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예수 텍스트인 마르코복음서에서 향유를 부은 여인은 아마도 어느 정도 부유한 사람이었던 같습니다. 그녀가 깨뜨린 옥합의 향유의 가치가 노동자의 일년 임금과 맞먹는 것이니 말입니다. 한데 루가는 그것을 '죄 많은 여자'로 고쳐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매춘업에 종사하는 천한 신분의 여인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그녀가 깨뜨린 옥합의 가치를 명시하는 부분이 루가에게서 빠진 것과 맞물립니다. 매춘 종사자의 특징을 '죄 많은'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런 유의 일에 종사하는 이들을 향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그녀가 왜 매춘녀가 되었는지는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또 매춘업에 종사하면서 그녀가 사는 방식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매춘을 하는 여자라는 사실만으로 그녀에 대한 평가는 충분한 것입니다. 이런 평가의 중심에는 분명 바리사이가 있습니다. 마치 한국 현대사에서 남한 사람들의 무의식적 본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반공주의의 중심에 바로 '안보담당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루가의 본문은 이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를 어떤 바리사이 파 사람의 집으로 고쳐쓰고 있습니다.(마르코에서는 제자 '시몬의 집') 요컨대 본문은 '여자 가운데 더욱 죄 많은 여자(매춘녀) 대 남자 가운데 더욱 의로운 남자(바리사이)' 간의 대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자, 오늘 읽은 본문처럼, 집 주인인 바리사이가 응얼거립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넌지시 응대합니다. '더 죄 많은 자가 더 많이 사랑한다'고. 다시 말하면, 사회적으로 더욱 심한 편견의 대상인 이가 더욱 하느님에게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데 중요한 것은 그런 사상을 단지 말하는 게 아니라, 제자 중의 제자 베드로의 구체적 행실과 빗대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 집에 들어섰을 때 당신은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주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입도 맞추지 않았지만 그녀는 ... 줄곧 내 발에 입맞추었습니다. 당신은 내 머리에 기름도 발라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 바리사이를 겨냥한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일상적 가치를 전도시키는 담론의 주창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일상적 가치는 구체적인 삶을 알기 이전에 사람을 판단하게 하는 인습입니다. 바로 그러한 인습적 가치를 전복시키는 담론이, 사람들을 그의 삶 자체에서부터 보아야 한다는 담론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사실 먼저 쓰여진 마르코복음서는 이런 예수님 상을 도처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화를 얘기하는 대목에선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길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는 여기서는 웅대한 사상 속에 구체적 현실을 묻어버리려고 합니다. 반면 루가는 그것을 내용을 변조하면서까지 다시금 되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예수님 자신으로부터 유래한 유명한 어구를 루가는 이 일화 마지막에 넣고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라." 매춘녀 수지김은 바로 그녀의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간첩 수지김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삶의 구체성이 억압된 개념의 세계 속에서 한 인간의 진실은 15년간 철저하게 묻혀졌던 것입니다. 목수의 아들 나자렛 예수는 바로 그의 신분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너무 쉽게 '그리스도 예수'로 규정되었습니다. 삶의 구체성이 억압된 세계 속에서 이 메시아의 진실은 이천년 동안이나 단단하게 땅 속에 묻혀졌습니다. 그분은 고귀한 모습을 한 신의 아들이 되어버렸고, 일상을 무시한 개념의 신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테러를 야기하는 절망의 구조가 간과된 제국주의의 수호신이 되어버렸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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