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01/08 (02:35) from 211.39.51.177' of 211.39.51.177' | Article Number : 60 |
올빼미
|
Access : 2771 , Lines : 34 |
| '절대악', 그 너머엔?(2001.12.24주님의 오심을 기리는 예배 하늘뜻나누기 원고) |
|---|
|
'절대악', 그 너머엔? 절대악 '이후'의 세상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서 탄생한 무수한 '진리들'은 '절대악'을 증오하는 열정들 속에서 탄생했고 전개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절대악 이후'의 세상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희망을 간직해왔습니다. 혹자는 '절대악 이후'를 '절대선의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대선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 '밖'에 있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 세계는, 우리의 세계 속에서 탄생했고 그 속에서 전개되어 온,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세계를 반영할 뿐인 언어의 '밖'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아는 한, 이 세계의 어떤 언어도, 그러한 세계, '절대선의 세계'를 그려내지는 못했습니다. 종교 개혁도, 프랑스 혁명도, 러시아 혁명도,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도, 그리고 팍스아메리카나 이데올로기도 말입니다. 오히려 강력한 선의 이데올로기의 주역들은, 그 주장이 더욱 강렬한 진리의 열망으로 불탈수록, 그들이 증오해마지 않던 절대악의 얼굴과 너무나도 흡사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노출시키고야 말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 그리스도의 탄생의 담론은 바로 절대악 이후의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언어입니다. 도대체 그 날에 관한 담론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요? 저는 파울 첼란의 시 속에서 그것에 관한 중대한 비밀의 실마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수용소 마당으로 모든 유태인들이 불려나왔습니다. 전 수용자들이 두 편으로 나뉩니다. 좀더 긴 대열은 가스실로 들여보내질 사람들, 그리고 좀더 짧은 대열은 밖으로 노무자로 팔려갈 사람들입니다. 스무 살이 갓넘은 그는 긴 대열로 배치됩니다. 병사들이 그 수를 세느라 정신없는 틈에 그는 슬쩍 자신의 대열을 이탈하여 다른 줄 속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대신에 재수 없는 한 사람이 긴 대열로 옮겨집니다. 저 편으로 옮겨가라는 장교의 말 한마디로 살아남게 되어 안도했던 사람은 가스실로 보내지게 됩니다. 이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청년이 훗날 위대한 시인이 된 '파울 첼란'입니다. 살아남은 그는 자신의 어느 시에서도 나치의 폭력에 대한 증오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폭력을 증언했고, 그것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그 폭력의 세상 '너머'를 꿈꿉니다. 그는 독일에서 산 적이 한번도 없었고, 작가로서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지만, 그의 모든 시는, 자신의 부모를, 자매 형제를, 그리고 친구와 이웃을 죽인 독일 사람들의 언어로 쓰여졌습니다. 그 학살을, 그 폭력을, 그 절대악을, 그 주체할 수 없는 악마성을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오늘 읽은 시는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부제에 명기된 부부는 그 수용소에서 죽임당한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시는 그들을 위한 조사요, 그 수용소에서 죽임당한 이들을 위한 조사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권력의 악마적 폭력성에 의해 죽임당한 모든 이들을 위한 조사입니다. 밤으로 삐죽거리는 꽃들의 입술, 서로 얽혀 있는 가문비나무 줄기, 말라 잿빛인 이끼, 흔들리는 돌, 끝없는 날개짓을 위하여 깨어있는 얼음산 위의 까마귀들, 바로 이곳이 자신을 포함해서 희생당한 모든 이들이 "다달아 멈춰선 곳"입니다. 독일군 장교는 그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합니다. 시인은 그것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말 하나에 / 주검 하나." '말'이라는 것은,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게 된 이래, 무수히 난무하게 된 우리를 둘러싼 소리의 일부, 즉 일상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소리에 희생됩니다. 국가 재건을 위한 고용조정 계획을 발표하는 고위 경제관료의 무표정한 '말' 속에서 수천, 수만, 아니 수십만의 사람들이 대책 없이 내몰린 무직자의 대열로 편입됩니다. '쉽볼렛'이라고 '말'해보라는 윽박지름에 '십볼렛'이라고 '말'한 길르앗 사람들은 다른 이스라엘의 사람들에게 도륙당합니다. 제국주의의 심장부에 해방의 폭탄 세례를 주자는 반제국주의적 테러리스트의 '말' 한마디로, 그 심장부에서 잡역부로 일하던 수많은 흑인, 멕시칸, 그리고 모슬렘들이, 그리고 그들에 의존해서 생계를 연명하는 그네들의 가족들이 사지가 찢겨진 시신으로 무너진 건물 속에, 냉혹한 자본주의의 생존 전쟁의 공동묘지 속에 매몰됩니다. 테러와의 성전(聖戰)을 선포한 제국주의적 테러리스트의 수괴 부시의 '말' 한마디로 세계에서 가장 연약한 나라의 백성보다 더 많은 수의 폭탄이 그곳 사람들의 머리를 분쇄시켜버립니다. 말 한마디에 주검 하나, 아니 무수한 주검들이 난무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희생자들을 향한 조시가 바로 오늘 읽은 시인 것입니다. 한데, 독일군 장교의 말 한마디에 생사를 달리하는 그 경계선에서 그는 결코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폭력의 경계선을 바꿀 힘이 없습니다. 그는 그 절대적 악마성의 현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는 그런 세상에 수용된 포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죽임당하지 않기 위해 죽임당함의 대열을 이탈해서, 팔려나가는 대열로 옮겨갑니다. 독일군의 전쟁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희생자의 대열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 대열로 옮겨가는 순간, 다른 사람이 죽임당함의 대열로 불려갑니다. 여기서 파울 첼란은 '말 하나에 주검 하나'를 낳은 폭력의 세계, 그곳의 일원일 뿐인 자기 자신을 저주합니다. 때문에 그는 외부의 악마성을 저주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공모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저주합니다. 그러나 첼란은 폭력을 비판하면서도 그것을 말하는 자신의 언어가 폭력으로 물들어있는 자기 자신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악을 저주하는 자라고 해서, 그것을 고발하고 그것을 증언하기 위해 일하는 위대한 시인이라고 해서, 결코 자신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는 살아남음으로 해서, 폭력적인 권력과 타협함으로 해서, "태초로부터 이어져 온 죄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자가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끊임없이 따라 다니며 괴롭히는 상흔을 떨치지 못한 채, 쉰 살의 나이에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가 저주해마지 않던 절대악은 역사의 무대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그 너머엔 '절대선'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시 전체는 바로 이것을 증언합니다. "나는 독소가 피어나는 것을 본다. / 모든 말과 형상 속에서." 절대악 이후에도 절대선은 없다고, 아니 모든 말 속에는 독소가 있다고. 신은 에집트 파라오의 학정을, 그 절대악을 부정하며 탈출한 이들에게 자신의 형상을 만들지 못하도록 명합니다. 절대선은 결코 제도화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절대선을 자처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자기 자신조차도 말입니다. 크리스마스는 바로 그 신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사건입니다. 무한자가 유한자가 되는 것, 바로 이것이 크리스마스 아닙니까? 신의 자기 부정, 무의 선언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뜻인 것입니다. 신이 자신의 욕망을 해체시키는 것입니다. 악을 증오하면서도 악의 반대인 자신을 절대화하는 것을 동시에 부정하는 '자기 해체의 선언'입니다. 그것은 절대선의 의미로 채워진 희망의 선포의 메시지가 아니라, 진리를 유보하는 희망, 끝없이 유예된 해방의 자리에 바로 희망의 원천이 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구원자 예수, 그가 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절대진리로 채워진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은 여전히 악으로 가득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진리를 담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서 가장 독내나는 악마성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절대진리를 사칭한 자, 그러한 욕망에 차 있는 자기 자신까지도 허용치 않는 신앙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담론인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