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01/08 (02:37) from 211.39.51.177' of 211.39.51.177' | Article Number : 61 |
올빼미
|
Access : 2903 , Lines : 24 |
| 떠돌이를 위하여(2002.1.6 하늘뜻나누기 원고) |
|---|
|
떠돌이를 위하여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 창세기 4장 9절 후반부 하느님이 카인에게 '아우' 아벨의 안부를 묻습니다.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이 말은 아벨이 어찌 됐는지 몰라서 묻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는 이미 형의 손에 처참하게 죽임 당했고, 시신은 인적 없는 들판 어느 곳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어 있다는 것을, 창세기의 독자들이 알고 있듯이, 이 이야기에 접한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하느님 또한 훤히 꿰뚫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물음의 초점은 카인의 아우에 대한 태도에 있습니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카인의 대답은 사뭇 공격적입니다. 취조자가 하느님인 이상, 답변자는 공손해야 할 터인데 말입니다. 이런 과도한 반응은 자신의 소행을 감추려는 것이지만, 오히려 바로 그런 모습이 카인의 거짓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답변 속에서 그는 또 하나의 정황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아벨을 죽인 것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도 이미 '아우를 보호할 책임은 없다'라는 사실을 그는 자명하게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얘기를 돌려야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은 흔히 첫 인간의 자제들간에 벌어진 비극적 사건이라는 데 초점을 두곤 합니다. 아직 사람들은 이들뿐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데 적어도 창세기의 텍스트 자체는 그것에 대해선 관심이 없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 본문의 배경을 이루고 있으니 말입니다. 위의 질문-대답 이야기에 이어지는 부분에서 카인은 하느님으로부터 추방선고를 당합니다. 그가 경영하는 땅이 더 이상 그에게 소출을 내지 않는다는, 이른바 '땅의 저주'가 하느님의 선고의 내용이지만, 카인이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면, 그리하여 '떠돌이 신세'가 되어 이 고장 저 고장으로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 할 것이라는 점에 있었던 것입니다. 창세기의 이 텍스트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많아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고향을 떠난 떠돌이의 삶과 정착자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를, 얼마나 극적인 운명의 갈림을 보여주는지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카인의 두려움의 호소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떠돌이 카인을 죽이려 할까? 그가 비정의 인간이라는 사실이 세간이 알려진 탓일까? 그러나 이런 있을 수 있는 물음에 대해 텍스트는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설명하려는 데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본문이 떠돌이들이 처한 일반적 운명을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떠돌이 카인의 운명이 아니라 떠돌이들은 대체로 그런 운명에 놓인다는 얘깁니다. 요컨대, 카인이 아우를 돌볼 책임이 없다는 것을 자명하게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도 떠돌이를 보호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정착자 카인 대 아벨'의 관계와 '정착민 대 떠돌이 카인'의 관계가 서로 댓구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카인의 운명의 뒤바뀜은 그가 아벨의 처지가 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갑시다. 카인은 하느님에게 항변합니다. "내가 아우를 돌보는 자입니까?" 이 답변을 좀더 해부하기 위해 우리는 카인의 아우 살해 이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텍스트는 카인이 농부였다고 하고 아벨은 양치기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독자들에게 농부와 양치기란 신분적으로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상식입니다. 이스라엘 인근 지역에는 전문적으로 양을 사육 하는 유목민은 일상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양치기란 경작할 땅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고, 생계를 위해서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다가 종사하게 되는 거의 마지막 단계의 사람을 암시합니다. 계절에 관계없이 쉴 틈 없이 매일 매일 양에 매달려야 하는 직업입니다. 게다가 온 몸에 땀과 동물 냄새와 양의 오물이 뒤범벅이 된 그들을 사람들은 마주치기를 꺼려합니다. 단지 그들의 고된 노동의 생산물인 고기와 가죽과 양털과 젖을 소비할 뿐입니다. 누군가 그것을 해야하지만, 모두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바로 고대 팔레스틴의 양치기인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신은 먹을 것이 없어도 양을 먹이기 위해 찌는 더위 속에서 풀 있는 곳을 찾아 광야를 가로질러야 하고, 이슬 내리는 밤 추위를 맞으며 노천에서 그냥 아무렇게나 잠을 자야 합니다. 아니 호시탐탐 노리는 야수로부터 양을 보호하기 위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습니다. 때로는 야수에게 잡혀먹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양고기로 굶주린 배를 채우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러기에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이런 사람을 더욱 모멸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아벨은 바로 이런 류의 처지에 놓인 사람입니다. 그는 떠돌이며 정착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텍스트는 그를 카인의 '아우'라고 여러 차레 강조합니다. 유랑자인 그는 정착자와 '동기간'이라는 것입니다. 동기살해의 원인을 카인은 하느님의 '편파성'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 없이' 아우의 제물만을 반기신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정황을 묵인한 채 본다면, 하느님의 편파성은 '괜한 편애'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여러 사상가들이 여기서 하느님의 가부장적이고 군주적인 심술 맞은 폭력성을 읽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을 자신들을 억누르는 그리스도교 체제와 세속적인 지배체제의 속성에 대한 비판적 은유로 읽으려 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그들 자신의 상황을 성서에 역투영한 것이고, 오히려 텍스트 자체에 주목하면, 이것은 하느님의 심술보다는 카인의 아우 보호 책임 방기를 문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처절한 삶의 조건 아래 놓인 이들의 운명과, 그들을 필요로 하면서도 한편으론 보호하지 않는 정착자들의 책임 방기 태도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오늘날 문제시되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떠올리게 됩니다. 1960,70년대의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정부 당국은 저임금 노동력의 지속적인 충당을 위해 광범위한 이농민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급속한 경제개발과 부의 창출이 가능했습니다. 한데 이것은 끊임없는 도시 재개발로 이어졌고,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들은 도시 변두리를 전전하는 유랑민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와중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안전한 정착민의 성공적으로 진입한 사람들이 적지 아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더 많은 사람들의 '떠돌이화'를 전제하지 않는 개발은 한국의 발전 전략에선 불가능했습니다. 한데 이것은 오늘날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전지구적으로 벌어집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광범위한 국제적인 이주노동자 현상을 야기시켰고, 그들의 값싼 저임금의 노동력을 통해서만 지구적인 자본에게 부의 재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960,70년대 한국에서처럼, 이러한 전지구적인 현상 속에서, 그리고 지금의 한국의 현상 속에서, 어느 사회체제도 자신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이들 이주노동자, 무적의 유랑자들에 대한 '돌봄의 책임'을 담보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방기할 뿐 아니라, 그들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첩첩이 쌓아가고 있습니다. 불결한 자, 범죄자, 마약중독자, 폭력배, 게으른 자, 심지어 자본의 노예가 된 노동운동의 파괴의 앞잡이 등.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러한 지구적 체제는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을 이주노동자화될 것이라고, 삶의 근거를 박탈당한 자들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초래한 돌봄 방기의 세계 속에 벌어지는 발전의 떡고물에만 탐닉하는 한 말입니다. 혹은 우리가 유랑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망각의 음모에 공모하는 한 말입니다. 하느님은 카인에게 아우에 대한 돌봄의 책임을 방기 태도를 물어 떠돌이의 징벌을 내렸습니다. 아벨의 피가 땅을 향해 하소연한 것처럼, 그가 고통의 하소연을 할 때까지 말입니다. 바로 21세기 두 번째 해를 맞은 우리의 미래란 이런 운명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