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03/04 (12:46) from 211.39.51.183' of 211.39.51.183' | Article Number : 64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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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574 , Lines : 22 |
| 문밖에서(2002.2.10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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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밖에서 떠돌이...의 인권을 짓밟지 말라 ... 에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일을 생각해 보아라. ― 신명기 24장 17~18절 금요일 저녁부터 벌써 귀성 행렬이 시작했습니다. 이미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차량 수는 현저히 줄었습니다. 어느덧 중년의 가장이 된 친구들은 집안 어른들과 아이들 선물 보따리 챙기랴, 열차표 사랴 분주합니다. 평소 전화 연락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형제 누이들과 미리 의논할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바쁩니다. 많은 경우 위에서 말한 일들은 아내들 몫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음식 차릴 일로 걱정이 태산입니다. 한편 아이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귀향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필시 세뱃돈 챙길 계획에 그네들의 마음은 한껏 들떠 있습니다. 한데 제 주변 사람들은 명절이 별로 반갑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우선 귀성 전쟁 치르려니 지레 피곤이 엄습하는 모양입니다. 선물비, 세뱃돈, 가족 행사비 등, 지출할 명목들이 아무리 줄이려 해도 줄여지지 않는 듯 합니다. 게다가 평소 핵가족에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도 싫은 것 같습니다. 제일 하고 싶은 일을 물으니, 명절 휴가 내내 텔레비젼 보다 잠자다 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아니면 아내와 자식들만 데리고 가까운 곳에 여행 떠나면 좋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친구들에겐 이룰 수 없는 꿈 같은 얘긴 모양입니다. 아마도 그들의 아네들은 명절이 더욱 부담스런 때이겠지요. 그러니 명절의 실상은 그리 축제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대가족 전통의 행사는 현대인에게 즐겁기보단 피곤한 것인 모양입니다. 한데 그럼에도 이 전통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절기임에 분명합니다. 막대한 재화가 소비될 뿐 아니라, 엄청난 인구의 일시적 이동이 벌어지니 말입니다. 물론 그 중요성은 혈통주의와 자본주의의 만남의 소산이겠지요. 자본주의 사회는 끝없는 초과이윤을 낳아야만 하는 사회입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엔 심각한 위기 상황이 초래됩니다. 물론 자본주의는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는 놀라운 비법들을 이미 개발해놓았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노동이민'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급속한 산업화가 벌어지던 1930년대, 60·70년대에 대대적인 이농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이들 이농민들은 서울 등의 도시에서 이주노동자로 편입됩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사람들을 점점 치열한 경쟁 사회 속으로 몰아갑니다.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이 상경한 때와는 달리, 조금씩 생활 기반을 갖추어갈수록 더욱 불안한 경쟁의 늪 속으로 빨려들어 갑니다. 요컨대 자본주의에 적응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자기 존재가 더욱 불안정해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이러한 존재의 불안정성은 여러 사상가들에게서 포착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자본주의적 삶의 불안정성으로부터 존재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욕구에서 여러 형태의 전통주의가 자본주의와 착을 이루며 발전할 가능성을 탐구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혈연주의에 대한 집착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것은 한국 사회의 그 참을 수 없는 남성 중심주의를 동반하였습니다. 아무튼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대부분은 근대화 과정에서 끝없이 유랑하는 이주민이 되었고, 그렇기에 존재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장소를 향해 회귀하는 습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근대 사회의 일원인 우리는 바로 그 사회의 '문 밖'에 선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미 이주민의 특성을 습득한 우리는 일시적으로 안주할 공간에서 결코 편안해 하지 않습니다. 고향에서도 우리는 '문 밖'에 선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는 불안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한편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새로운 양상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돼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골의 이농민이 아니라, 국경 밖의 외국인입니다. 이른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구화 시대엔 이농민보다는 외국계 이주민이 훨씬 초과 이윤 달성에 유익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유엔의 이천 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사회는 향후 훨씬 더 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여야만 이윤율 하락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30만 명이 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얼마전 우리의 이농민들이 그랬듯이, 언젠가는 잘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으로 자발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저임금, 임금체불, 산업재해, 직업병, 폭행 등, 세계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 가장 열악한 땅에서 그들은 열심히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혈통주의는 물론 설날만 되면 불타오르지만, 이런 명절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발휘될 곳을 찾아내려 합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바로 이러한 혈통주의가 일상 속에서 발현된 것입니다. 혈통주의가 발전해서 민족의식으로 나타나고, 그것은 외부인을 '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 밖에 선 자들은 문 안을 선망합니다. 시골 이주민들은 도시를 동경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외국인 이주노동자도 그들을 가로막은 혈통주의의 장벽 내부를 선망하고 있습니다. 명절 때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가 그것을 축제로서 즐기지 못할지라도, 이들 문 밖의 사람들은 설날의 봉쇄된 장벽 안을 그리워하면서 이날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신명기 24장의 본문은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를 줍니다. 떠돌이의 권리를 짓밟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떠돌이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소유도 없고 거할 곳도 없으며, 의지할 혈연집단도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단지 이러저러한 이유로 생존을 위해 이스라엘의 일부가 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단코 이스라엘의 문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들은 문 밖의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그들 잉여인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예전엔 바로 이들처럼 떠돌이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바로 이들처럼 떠돌이들이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주자였던 혹은 이주자의 자녀였던 우리를 기억하고, 낯선 이주민들을 우리의 축제의 '문 안으로' 초청해들여야 할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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