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03/19 (03:20) from 210.219.89.93' of 210.219.89.93' | Article Number : 65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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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535 , Lines : 26 |
| 호출(2002.3.17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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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보혜사/파라클레테)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 [요한복음] 14장 16절 '진리 혼돈의 시대!' 1990년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용어로 이보다 적합한 표현이 있을까요? 1980년대가 이른바 '진리 폭풍의 시대'였기에, 바로 이어지는 혼돈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던 탓이겠지요. 당연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진리가 어느 순간 의심스러워졌습니다. 과연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를 약속해줄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아름다운 미래를 가능케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는 의미 상실의 시대요, 가치 붕괴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기까지 우리는 그 세기말적 혼돈을 여전히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아니 실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목도하는 현실은, '아직 대안적 진리를 모른다'는 차원이 아니라, 진리 자체에 대해 근원적으로 의심하게 되는 허무주의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시대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젊은 작가의 단편소설([호출])에서 착안해서 우리 시대의 위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선교의 위기를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 [호출]은 1990년대 한때 유행이던 호출기 문화, 그것을 둘러싼 가상의 에피소드를 통해 문명에 대한 하나의 허무주의적 상상력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호출기는 '고립된 현대인'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의사소통 기계입니다. 그 속에는 상대방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대인의 열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일방향적' 교신에 그칠 뿐입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진리를 말하고, 사랑과 미움, 아름다움과 추함, 행복과 불행을 표현하지만, 호출기는 이 모든 것이 더 이상 대화를 통해서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말해진 언어의 편린들만 난무하는 세상을 패러디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1990년대와 지금의 우리 세계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호출기 속에는 '현대인의 비극'이 시사되고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의 선교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현대인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나누는 사명을 위임받았다는 것입니다. 현대 세계는 급속도로 분산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지구화'라는 말은 범지구적으로 거대한 통합의 메커니즘이 작동되는 세계를 가리킵니다. 자본의 포섭 능력은 이제 사람들의 일상적 삶, 아니 무의식까지 지배하는 전지전능 무소부재의 권력을 향해 치달음으로써,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과거와 같은 '총화'/일체성의 통합이 아니라―다원적 네트워크를 통해 구현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다원적 통합이 악마적인 것은, 소설 [호출]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상호간의 교신이 막힌 세계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어떤 대안적 방안도 발견할 수 없을 만치 말입니다. 그리하여 현대인은 절망적인 고독 속에 휩싸여 있고, 비록 대개는 그 절망조차도 망각한 채 살고 있지만, 간간이 그것에 고통스러워합니다. 한데 일찍이 서양의 한 신학자는 이러한 사회 속에서 교회의 존재를 빗대서 '신의 일식'이라고 혹평한 바 있습니다. 교회를 통한 신의 메시지는 현대 세계에서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달에 가려져 보이지 않듯, 하느님은 교회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한 신학자는 오늘 우리 시대를 가리켜 '그리스도교 해체의 시대'라고 표현합니다. 교회를 통한 선교의 유용성 자체를 근원적으로 비판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신랄한 문제 제기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부정적 역할만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회 속에서 선행을 할 때조차도 하느님의 메시지를 마치 '독백'하듯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화가 사라지고 일방향적 말만 무성한 세계 속에서 고독해하는 현대인에게 교회도 예외 없이 일방향적인 선포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다원성이라는 현대의 선교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교회의 신앙적 관행에 대한 비판입니다. 몇몇 비판적 신학자들의 견해를 해석하는 저의 주장이 너무 추상적인가요? 교회에서 노동운동의 여정을 시작했던 한 노동운동가의 말을 빌어 이야기하지요. "교회는 자본에 매이지 않는 신앙을 가르쳐주었지만, 또한 동시에 교회 제도에 순응하게 하는 멍에를 씌웠습니다." 제가 오늘 [요한복음], 특히 14장을 우리의 성찰을 위한 성서 말씀으로 택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와 관련됩니다. [요한복음] 자체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쌍방향 교신을 상실한 사회 체제에 대한 일단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도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대교 회당과 그리스도교 교회라는, 배타적이고 독백적인 주장만 난무한 제도로 변질해버린 유대교 회당과 그리스도교 교회라는 신앙 체제에 격렬하게 저항한 텍스트입니다. 이 텍스트를 생산한 이들은 예수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유대교 회당에서 추방된 일단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추방된 이유는, 단지 예수를 따랐다는 추상적인 신앙의 선택 때문이 아니라, 사마리아인 같은 사회적·신앙적 소수자들에 대해 배타적인 공동체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는 예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의 '영'의 어법은 이 점에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영은 '보혜사'(파라클레테)입니다.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떠나고 대신 보혜사가 와서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상호 교신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회당이나 교회는 선지자 혹은 교사 같은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가르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해주며 신의 축복을 대리해주는 중개자적 존재입니다. 한데 회당/교회가 제도화되면서, 공동체의 엘리트인 중재자들의 충원 과정 또한 제도화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적 의미 형성 과정 또한 제도화됩니다. 정전이 만들어지고, 정전 텍스트에 대한 표준적 해석이 고착화됨으로써, 신앙은 의미가 고정된 도그마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곧 신자들이 삶 속에서 신과 교신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신자간의 평등한 대화에 장애가 발생하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요한복음]의 영은 이러한 공동체의 엘리트주의 및 도그마주의에 대한 저항입니다. 그러한 제도화는 예수님의 나눔과 섬김의 정신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며, 서로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회당의 관행을 좇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의 하느님나라 운동은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독점과 군림의 체제에 대항하는 실천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로마 제국 및 유다교 회당과 대결하여 승리하려는 욕망에서, 세상에서 하느님의 진리를 성공적으로 실행에 옮기려는 욕심에서 제국의 관행, 회당의 습속을 따랐던 것입니다. 요한 공동체는 바로 이것에 대항한 것입니다. 대화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군림하고 지배하는 욕망으로 사는 세계 속에서, 세상은 고독한 인간들을 낳습니다. 신앙은 바로 이러한 고독, 대화 단절을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체험 위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선교 상황입니다. 여기서 신앙은 나눔과 섬김의 진리를 실천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의 일상적 삶 속에서 대화적 삶의 공간을 확대하는 실천, 바로 그것이 오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인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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