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09/18 (14:36) from 61.254.100.124' of 61.254.100.124' | Article Number : 655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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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293 , Lines : 40 |
| 연쇄살인의 추억(2004.9.12 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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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섬김의 예배공동체 / 구백아흔두 번째 모임 (2004.9.12) 연쇄살인의 추억 얼마 전 홍대 미대 여학생만을 골라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있다는 괴담이 나돌았습니다. 최근에는 비 내리는 목요일에 흰옷 입은 여자들이 무참히 살해되고 있다는 괴담이 떠돌았고, 이것은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괴담과 섞여 유포되기도 했습니다. 또 서울 강남지역의 젊은 여성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괴담 또한 최근 꽤나 폭넓게 회자되었던 얘깁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살인괴담들로 2천 년대 초 한국은 온통 들끓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이들 담론들을 수집·분석해보지는 못했지만, 얼핏 보아도 주로 젊은 여자들이 희생자라는 점과 특정 학교나 지역이 표적 선정의 조건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점 등이 주된 공통 요소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 괴담들이 속속들이 사실로 판명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일부는 실재 사건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는 점 또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벌어진 살인사건이나 실종사건들에서 통계적으로 젊은 여자들이 희생자의 절대다수라고 단정할 수 없음에도, 괴담의 희생자들이 압도적으로 젊은 여자라는 점은 최근 괴담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젊은 여자’라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약자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FBI의 자료에 따르면 연쇄살인범은 대체로 35세 미만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살인혐의자 연령인 젊은 남자에 비해 젊은 여자는 약자임엔 분명합니다. 하지만 젊은 여자보다는 노인이나 어린아이가 더 약할 테니 이런 단순한 가정은 그다지 유효한 설명이 아닙니다. 흔히 여자를 묘사할 때 중년이나 노년의 여자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젊은 여자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묘사됩니다. 특히 최근 들어 ‘나이’에 의한 이미지의 격차는 아주 격심해졌습니다. 여자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요컨대 연쇄살인 괴담의 피해자가 젊은 여자라는 점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괴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그들이 남자든 여자든)로 하여금 다른 부류의 피해자를 상상할 때보다 훨씬 더 피해자의 입장과 밀착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미국의 범죄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연쇄살인범은 삐쩍 마르고 수척한 허약 체형인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가정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적응에 실패한 자들이라는 전제에서 도출된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그를 휩싸아 버린 실패 또는 좌절의 기억이 그의 육체를 그렇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깁니다. 극도의 내향성에 정신분열증상까지 있는 그런 사람은 식사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않을뿐더러 영향섭취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며, 외모나 위생문제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게다가 집안 정돈 상태도 엉망일 것이고, 독신일 가능성이 많고, 학교를 정상적으로 마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직업도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로 추정합니다. 이런 범인 상황 추정은 보통사람들의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요컨대 연쇄살인범은 실재로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도 대단히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대중이 범죄분석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괴물적 상상’의 맥락에서 이러한 추론이 상상된다는 데 있을 겁니다. 아무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연쇄살인범은 타자화된 대상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정리하면, 최근의 연쇄살인 괴담에서 사람들은 살인범을 ‘이질적 대상’으로 보는 반면, 희생자인 젊은 여성을 단순히 약자나 피해자라기보다는 자신과 ‘동일시되는 대상’으로 기억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괴담에 관한 하나의 가설을 제안할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런 괴담이 최근 폭발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자신을 세상의 무자비한 폭력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연쇄살인의 상상이 폭력의 극한적 기억인 만큼, 사람들이 느끼는 폭력의 체감도는 극도로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쇄살인의 희생자들처럼, 사람들은 이유 모를 극심한 폭력을 체감 내지는 예감하고 있습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 체감 또는 예감되는 폭력의 가해자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특정한 악한 존재라기보다는, 사회 구조 자체가 이 무자비한 폭력의 가해자라고 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폭력의 구조는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삶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파멸의 상황, 살았으나 죽은 것과 진배없는 절망의 나락에 떨어질지 모르고, 그래서 웃을 때조차도 내면에서 나오는 즐거움일 수 없고, 항상 파멸의 예감으로 삶을 사는, 아니 죽음을 준비하며 죽음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희생자 의식은 내면에 ‘한(恨)’을 쌓습니다. ‘한’의 정서는 풀릴 수 없는 좌절감 때문에 몸에 새겨집니다. 몸에 새겨진 이 폭력의 상흔은 항상 복수를 꿈꾸지만, 복수의 대상은 너무나 추상적이거나 너무나 강력합니다. 그래서 한의 상흔은 표현할 수 없기에 의식의 영역에 남기보다는 무의식 속으로 침잠하고, 복수의 열망은 가해자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 표출될 기회를 탐닉하게 됩니다. 이런 피해자 상상이 극한적으로 발현되는 어느 지점에 연쇄살인의 괴담이 있고, 이 괴담의 가해자인 살인범은 희생자를 파멸시킨 존재이지만, 괴담 속에서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가라앉은 증오의 폭력 앞에 노출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마침 바로 이런 때 등장한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바로 사람들의 이러한 증오의 표적이 됩니다. 사건에서 유영철은 가해자이지만, 유영철 괴담에서 가해자는 괴담을 소비하는 사람들 자신인 것입니다. ‘폭력을 유발하는 고리’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폭력과 그에 대한 보복의 게임에 진입한 사람은 이 폭력의 고리에 꿰어버린 존재입니다. 일단 이 고리에 꿰이면, 사람들은 점점 복수 자체의 논리 속에 흡인되어 갑니다. 왜 복수를 하는지의 이유를 잊은 채, 더욱 가혹하게 폭력의 가해자가 되기를 꿈꾸는 ‘복수에 광분하는 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유영철은 연쇄살인 괴담을 소비하는 상처 입은 사람들을, 폭력을 유발하는 고리 속으로 끌어들이는 강렬한 유혹입니다. 그의 잔인한 살해행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자신을 증오하고 극형에 처하도록 유인할 뿐 아니라, 나아가 다른 누군가를 향해 복수의 날을 휘두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도록 폭력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복수를 꿈꾸는 ‘한’은 복수 중독증을 야기하는 마약인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안병무 선생은 전두환 심판의 국면에 즈음한 한 편의 설교에서 ‘단(斷)’의 상상력을 펼칩니다. 자신의 손이 죄를 짓거든 차라리 손을 잘라버리라고 말하는 ｢마르코복음｣ 9장 42~48절과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뜻하지 않게 곡식이 뽑힐지 모르니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는 ｢마태오복음｣ 13장 24~30절을 해설하면서, ‘한’의 복수는 철저한 ‘단’의 실천과 맞물려야 함을 강변하는 것입니다. 전두환 심판 담론은 역사 청산의 기회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짐작했지만, 검찰 조사를 통해서 하나씩 드러나는 진상을 접하면서 사람들은 몸속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복수의 칼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술수로 갑자기 찾아온 이 역사 청산의 담론은, 선생의 우려처럼, 단지 복수일 뿐 과거를 ‘단’하는 계기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두환 심판담론은 요즈음의 유영철 담론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폭력을 유발하는 복수의 고리 속으로 자발적으로 빨려들어 갔습니다. 연쇄살인 희생자들의 고통에 조금도 다가가지 못하면서도 그 사건에 대한 응징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선생이 그 설교에서 말했듯이, 젖과 꿀이 흐른다던, 그토록 열망해마지 않던 그 땅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느보 산봉우리에서 지도자 모세는 죽어야 했습니다. 대단히 흥미로운 해석입니다. 산봉우리에서 볼 수 있는 그 땅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요. 거기에서 그 땅이란 피상적인 시선의 대상일 뿐입니다. 밟아보고 농사도 짓고 목축도 해보고 집도 지어보고 나서야, 꽤나 긴 세월을 살아보고 나서야 그 땅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임에도 그 땅의 진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그 ‘착각의 산’ 정상에서 모세는 죽어야 했습니다. 온갖 우상에 대한 욕구를 청산하는 여정인 고통스런 시나이 유랑의 도정을 거치면서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기어이 약속의 땅에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신조차 그 땅을 바라보면서 미리 규정한 ‘땅의 우상’이라는 유혹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또한 우상의 욕구라는 죄의 요소에 오염되었던 것입니다. ‘단’의 대상은 외부만이 아니라 그 내부이기도 했습니다. 유영철은 이질적 타자가 아니라 연쇄살인 괴담을 소비하는 우리 내부에 살고 있는 우리의 다른 얼굴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직시하지 않는 한, 우리의 ‘한’의 복수는 단지 한풀이에 지나지 않고, 악의 청산이라는 명분 아래 수행되는 폭력의 악순환의 고리 속에 휘말려버리고 말 것입니다.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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