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06/14 (02:00) from 211.49.91.42' of 211.49.91.42' | Article Number : 66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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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554 , Lines : 29 |
| 광화문 연가, 1987 그리고 2002(2002.6.9 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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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가, 1987 그리고 2002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은 기쁜 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물건을 산 사람은 그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 ― [고린토전서] 7장 30~31절 지난 6월 3일, 저는 광화문에서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저희 일행 세 명을 포함해서 일곱 명의 관객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건물에서 일하는, 주로 중남미 출신의 일용직 청소부들이 자기들 일상의 세상과 벌였던 한 판의 작은 투쟁 이야기에 잔잔한 감동을 간직한 채 극장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간직하기엔 그날의 광화문 밤 거리는 전혀 적합하질 않았습니다.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흐름에 도로는 거의 점거되어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트럭 위에 올라탄 사람들 몇이 보입니다. 한 사람이 주먹을 위아래로 휘젓는 격렬한 몸짓을 합니다. 여기 저기에서 몇몇이 몰려다니며 제각기 고함을 내지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하나의 함성과 박수 소리로 모아집니다. 잠시 소리가 멎는 사이 오토바이가 지나가며 "빠방 빠바빵" 경적을 울립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맞장구가 다시 하나로 모아집니다. "쉬익, 빠바바바바방" 저 뒤편에서 폭죽이 터집니다. 그리고 도처에서 폭죽이 사람들의 함성과 뒤섞여 광화문 밤 거리를 휩싸안아 버립니다. 제겐 조용히 기억을 음미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날의 들떠 있는 거리는 광장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 전부를 흡수해버리려 했습니다. 1987년 6월의 광화문의 광장도 그랬습니다. 도로를 점거한 수만의 사람들의 대열이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폭죽처럼 터지는 체류탄의 소리가 거리를 뒤덮어버린 뒤, 자동차의 경적에 흩어진 사람들의 구호가 하나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트럭에 올라탄 사람의 선동 아래 수십만 사람이 고함지르며 거리를 다시 장악해버렸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독재 타도"의 구호가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비장한 표정 대신에 환한 웃음이 광장을 수놓았다는 것뿐. 하지만 반정부적이든 아니든, 카니발적이든 아니든, 15년 간격의 두 광장에는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격정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에선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감동을 음미할 기회를 잃어버린 저는, 15년 전과는 달리, 그 소용돌이에 흡인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애써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역사의 얄궂은 반복을 확인하면서, 그 기간 동안 우리가 역사에 남겨준 성찰의 처절한 빈약함에 씁쓸한 입맛만 다시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상가가 말했듯이, 국가주의는 근대의 야만성의 중심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전쟁으로, 한번도 평화라는 걸 실재의 현실로서 남아있게 못한 장본인이 다름 아닌 국가주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은 전지구적으로 그러한 국가주의를 폭발적으로 증폭시켜 놓았습니다. 언제나처럼 말입니다. 한편 월드컵은 최근에 들어서면서 두드러지게 자본의 축제임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 달 정도의 축제로 국제축구연맹은 무려 최소한 20억 달러를 벌어들이게 됐다고 합니다. 어떤 전문가는 이번 개최 하나로 한국의 국민총생산이 2% 가량 상승할 거라고도 합니다.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축구를 통해 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무수한 자본들은 예민한 촉수를 더듬거리며, 가치 증식의 더 큰 기회를 얻고자 노력합니다. 축구를 통해서 말입니다. 요컨대 국가와 자본이라는, 오늘날의 양대 권력의 축은 축구를 통해서 서로 연동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계를 조정하는 전지구적 기구가 바로 국제축구연맹이고, 월드컵은 그러한 연계가 빛을 발하는 최고의 마당인 것입니다. 한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제제기는 2002 월드컵의 한복판에 있는 우리 사회에선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월드컵이 일으키는 자본과 국가의 소용돌이 속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면서, 자본의 가치증식과 자신의 가치증식을 동일시한, 그리고 국가주의적 애국심에 자신의 욕망을 삼투시켜버린 '우리들'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늘 벌어진다는 러시아와 일본의 축구 시합은 이미 또 하나의 '러일 전쟁'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평화의 축제가 아니라, 언젠가 일어날 전쟁을 미리 체험케 하는 파괴와 공격의 축제인 것입니다. 또 내일 벌어질 한·미간의 축구 경기는 우리 사회에서 반미 정서와 곧바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자본과 국가의 축제가 반식민주의와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10이라는 1987년의 기념비적인 사건은 사람들에게서 2002년의 사건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동일시됩니다. 요컨대 사람들은 억눌린 반식민주의적 욕구를 터뜨릴 시간과 공간을 얻는 대신, 자본과 국가에게 값비싼 비용을 자발적으로 지불하는 것이라는 얘깁니다. 국가와 자본에게 동원되는 사람들, 그래서 월드컵은 국민과 상품의 소비자는 존재하되, 사람은 없는 세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바울의 말 가운데 제가 가장 주목하는 구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인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한 사람들에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관한 교훈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린토라는 도시에서 막 '그리스도에로' 삶의 방향을 전환한 사람들,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자신에게 문뜩 다가온 새로운 기회를 나누며 누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경험과 욕망이 제각각이듯, 신앙의 감동 또한 갖가지 모양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이런 다양성이 어우러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자연 지도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열정적으로 신앙공동체를 결속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들간의 견해 차이는 더욱 조절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그럴수록 공동체는 분열에 시달렸고, 열광적인 신앙 운동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다른 여러 소리가 있고, 그것이 다양한 경험에 기반한 공간, 그래서 고린토 교회도 하나의 광장이었습니다. 그 광장은 다른 주장들이 광적으로 충돌하고 있었고, 이 소용돌이 속에 공동체 성원들을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상황의 사람들을 향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현재 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살아가라고. 현실에 순응하라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진정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리 쉽사리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잠시 들떴다 금방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하나하나 내공을 다져가면서 끝내는 불타버리는 그런 것입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전 인생을 불태웠듯이 말입니다. 한데, 그는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살되, 일상을 지배하는 그 세계의 논리 안에 있되, 그 논리 안에 있지 아니한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입니다. 세계 안에 있지만, 동시에 세계 안에 있지 않은 자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국가주의 안에 있지만 국가주의를 넘어선 자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안에 있지만 자본주의 외부에 있듯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같이 그리고 따로!' 바로 이것이 바울이 제시하는 일상의 그리스도적 윤리의 핵입니다. 우리는 월드컵의 세계 안에 살고 있습니다. 원든 원치 않든 미국에 대해 한국이 이기기를 열망하며, 자신도 모르게 미국에 대한 분노심을 거기에 실어보냅니다. 또 자본의 시각적 표현인 TV를 시청하며, 알게 모르게 월드컵의 재화를 소비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논리에 자연스레 물들어버리는 자기 자신에 의문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국민 이전에, 소비자 이전에 사람의 세상을 상상하려 노력해야 하고, 그것을 훼방하는 국가와 자본에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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