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09/10 (01:10) from 211.49.91.90' of 211.49.91.90' | Article Number : 68 |
올빼미
|
Access : 2676 , Lines : 21 |
| '침묵의 소리'에서 시작하는 신앙(2002.9.8하늘뜻나누기) |
|---|
|
'침묵의 소리'에서 시작하는 신앙 김진호 야훼께서는 아벨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시고 카인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시지 않으셨다. 카인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몹시 화가 나 있었다. ― [창세기] 1장 4절 하반부~5절 상반부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깨닫게 된 진실 중의 하나는 이 말이 안타깝게도 매우 사실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이, 특히 동료를 통해 자기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상가인 르네 지라르는 이런 경쟁심은 거의 참을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인류 역사가 근원적으로 폭력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한데 실은 성서 자체도 그러한 관점에 동조하는 듯이 보입니다. 창세기의 아담의 후예들의 죄 이야기가 바로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은 아담의 두 아들 사이에서 벌어진 형제 살해 사건을 신화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살해 동기는 카인이 하느님이 동생의 예물을 받듯이 하느님이 자신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신화 해석의 실마리는 카인의 심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경쟁심에 불타 있는 그의 승리주의적 욕구가 문제의 근원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욕망했으나, 그의 욕망은 늘 가까이 있는 동료이자 형제인 아벨과의 경쟁심에서 구체화됩니다. 그런데 그의 눈엔 항상 동생이 더욱 성공적인 듯이 보입니다. 그의 욕망은 늘 좌절하고, 그는 항상 실패자로 남습니다. 그는 상처 입은 자였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그의 선택은 폭력이었습니다. 한데 이어지는 성서 본문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추방당한 카인의 후예에게서 목축 문명이 시작되었고, 금속 문명이 발전했으며, 또 악기에 의한 음악 문화가 펼쳐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육식 문화, 전쟁과 장신구, 예술 등. 이것은 국가의 등장을 상징합니다. 즉 카인의 후예의 역사는 국가 사회의 역사를 뜻합니다. 요컨대 이 성서 본문은 국가가 형제 살해의 비극적 폭력을 통해 발원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예나 지금이나 폭력의 승자에 의해 문명이 발전하고 역사가 기술되었음은 수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증언하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그것은 죽임을 통해 시작된 문화며, 시신을 양분 삼아 건설되었으며, 계속된 폭력과 살해에 의해 재생산되는 역사입니다. 폭력과 살해로 점철된 역사, 민중신학은 이것을 '죽임의 문화'라고 말합니다. 한데 죽임의 문화가 오래도록 지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첫째, 그 문화가 '폭력과 살해'로 점철된 것임을 그 사회의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떤 폭력은 성스러운 것처럼 인식되어야 합니다. 르네 지라르는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바로 거의 모든 인류 문명에 들어 있는 '희생제의' 덕분이었다고 말합니다. 즉 한 사회가 집단적으로 희생양에게 가혹한 폭력을 가하고, 그것을 제의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자기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온갖 폭력성을 제어하고 은폐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희생양에게는 침묵이 강요됩니다. 바로 이 '침묵의 문화', 그 실어증 걸린 문화를 치유하는 일을 민중신학은 '증언'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전제는, 첫 번째 전제와 밀접히 연결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바, 죽임의 문화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문화라는 것입니다. 조지 오웰이 예언한 바, 모든 것을 감시하는 '빅 브라더'의 통제 사회는 부분적으로만 실재했을 뿐입니다. 반면 보다 강력한 사회, 보다 안정된 사회, 보다 발전한 사회는 감시보다는 유혹의 장치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사회입니다. 5공화국인 시도했던 이른바 3S 정책은 감시를 통해 사회 안보를 도모하려 했던 박정희 정권을 넘어서려는 기획의 소산이었습니다. 비록 그 시대에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88올림픽, 1990년대의 소비 자본주의의 활성화, 그리고 2002 월드컵 등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유혹의 기재가 충분히 추잡하게 발전해 버렸습니다. 유혹하는 사회에 사는 사람은 감시자의 눈길을 의식해서 무엇을 하는 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망에 의해서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하는 존재입니다. 희생제의는 이러한 자발성을 낳는 하나의 유혹 메커니즘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악마는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그는 세상의 권력과 재화, 그리고 모든 것을 살릴 수 있다는 자부심을 선사하겠다고 합니다. 단 죽임의 세력과 협상한다는 조건 아래서 말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국가는 바로 이러한 유혹에 넘어간 인류의 욕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권력과 재화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국민에게 구원을 약속합니다. 오직 국가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겠다고 떠벌립니다. 국민이라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또 국가도 스스로가 그러한 존재라고 믿는 것입니다. 감시사회에서 발전한 민중신학은 아직 이 두 번째를 충분히 인식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과제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전제 아래서 죽임의 문화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죽임을 넘어 살림으로!'라는 민중신학의 지향은 이 두 가지 전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구체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며칠 후면 9.11 사건 1주기가 됩니다. 이 사건은 20세기의 모순을 그대로 안고서 시작된 21세기적 죽임의 문화의 향방을 예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미국은 이 사건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국가주의화되었습니다. 거의 전 미국 국민이 강한 국가주의를 열광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를 선과 악으로 이원화하는 냉전 시대의 국가 논리입니다. 한데 경쟁국가가 사라진 시대에 냉전이 가능할까요? 여기서 희생양 제의가 중요합니다. 바로 '악의 축'이 희생 제물로 선정됩니다. 그리고 이들을 응징하는 '거룩한 전쟁'은 성스러운 폭력으로 기억됩니다. 이로써 미국인들은 하나로 응집되었고, 전 세계가 미국의 우산 아래 결속하였습니다. 20세기 패권국가인 미국에게 있어서 지구화된 21세기는 자신의 지위에 대한 불안감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과 미국 국민은 이러한 불안감의 극복을 상상하는 지점에 위치한 '이상적 미국'을 욕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재화, 그리고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자부심으로 구축된 미국이 현실의 미국(국민)의 욕망 대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한데 이러한 도식과 쌍둥이 상태를 우리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반미주의가 어느 때보다도 고조된 한국에서 동시에 미국에 대한 선망의식 또한 절정에 달해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입니다. 제 식대로 표현하자면, 의식의 반미주의와 무의식의 친미주의가 한데 어울어져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실상입니다. 무차별하게 집안까지 침투한 9.11 보도는 지구화된 사회에서 패권주의 사회의 가치관에 우리가 얼마나 무력하게 순응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미국 국민의 의식 상태에 다가갔습니다. 또한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패권적 지위와 세계에서의 능력을 선망하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미국을 선망하는 존재인 우리는 그들의 세계 질서 체제에 가장 순응적인 사회로 남아 있으려는 욕망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리하여 희생양 체제는 한반도에서도 더욱 강고하게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살펴본 성서 본문에 따르면, 카인에 후예에게서 문명이, 곧 국가가 발생하게 되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즉 카인의 후예의 역사가 승자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의해 희생당한 이의 하소연 소리의 입장에서 폭력과 죽임의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민중신학의 세계 이해가 놓여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