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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0/05 (00:54)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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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 대한 윤리신학적 해석
가상현실에 대한 윤리신학적 해석


박충구 (감신대, 기독교윤리학 교수)
천리안: park1950

1. 이상향을 그리는 꿈과 테크노피아(Technopia) \ 37

2. 사이버스페이스 이해 \ 38
2-1 개념적 이해 \38
2-2 탈중앙화 시스템\ 39

3. 사이버스페이스 문화 \ 42
3-1 탈중앙화와 개체성의 문화 \ 42
3-2. 다양성과 다원성의 문화 \ 43
3-3. 탈대중적 합의 문화 \ 44
3-4. 변혁적 비판문화 \ 45

4. 사이버스페이스 문화 비판 \ 46
4-1. 자유주의적 성향 비판 \ 46
4-2 기술 종속의 문화 비판 \ 46
4-3. 윤리적 오용의 가능성 비판 \ 47

5. 사이버스페이스 사회의 특성 \ 47
5-1. 사회 윤리적 갈등 \ 48
5-2. 정보 인간 사회 \ 48
5-3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사회제도 \ 49

6. 사이버스페이스 문화와 기독교 공동체 \ 52
6-1. 사이버스페이스 문화의 도전 \ 52
6-2. 사이버스페이스의 도전과 기독교 윤리적 과제 \ 54

7. 기독교 공동체의 미래 \ 56

1. 이상향을 그리는 꿈과 테크노피아(Technopia)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는 인류의 역사는 미성의식(noch nicht Bewusstsein)의 실현과정이라고 보았다. 결핍을 느끼고 인식하는 원초적인 감정이 인간의 의식세계에 작용하여 낮꿈(Tagtraeume)을 꾸게하고, 그 꿈을 통하여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토피아 정신}에서 그리고 그의 주저(主著)라 할 수 있는 {희망의 원리}에서 인간의식의 희망의 원천을 추적하였다.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갈망, 그것은 윤리학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모든 인간의 시도들 속에 깊이 내재된 의식의 방향이었다.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과정을 끝없이 바라보았던 블로흐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최상의 존엄한 가치인 세상"이 역사 과정의 목표라고 보면서 이러한 표상들은 동화와 테크노피아를 꿈꾸는 과학, 그리고 완전한 세계를 바라는 종교의 내면에서 샘솟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블로흐는 역사란 목적론이 있지만 결정론적인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역사를 결정론적으로 이해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만이 과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과정 속에 있다고 보았다. 이 과정을 충동하는 희망의식의 표출은 무(Nichts)의 위협을 받고 있어서 역사적 과정이란 단순히 일직선적인 진보과정으로 이해될 수 없다고 그는 믿었다. 역사란 무의 위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협을 이겨내고 역사를 진전시킬 수 있는 충동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하였다.  
블로흐와는 달리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Hukuyama)는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에서 역사의 진보는 이제 끝나고 있다고 선언하였다. 인류의 역사는 무수한 사상과 이념을 산출하고, 도전과 응전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더 이상의 새로운 이념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정치 경제사적인 의미에서 소위 자유민주주의 이념보다 더 바람직한 그리고 더 새로운 이념은 이제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견해를 제시한 것이다. 나는 후쿠야마의 이러한 시각은 일면 이념적 발전과정에 착안한 결과에 지나치게 집중한 감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결과는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무수한 인간들의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과 삶의 질에 대한 궁극적 이상에 대한 희망의식이 결여된 사고를 하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1980년대 말 동구권의 몰락과 더불어 제기된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에 대한 규정은 무수한 미래학자들이 주장하기 시작한 후기 산업시대의 특징을 잘 담아내지 못한 단견이라 평할 수도 있을 것이라 본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역사의 진보화 과정은 아직도 과제로서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이 과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문화, 가치, 신념들 속에 담겨지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다시 한번 과거의 문화이해 혹은 윤리적 규범들만 가지고 살아내기에는 퍽 어려운 새로운 정황에 도달해 있다, 이 새로운 정황은 우리로 하여금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과정적 현실로서 의미인가, 역사의 퇴보로 방향 지어질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에 달려있다고 본다.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창조적인 충동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변모시켜 왔지만, 우리가 근래에 특히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은 인간의 의사소통 관계 형식과 내용의 변화라는 문제이다. 인류의 역사는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공간적인 "거리"를 단축시키려는 노력으로 점철되어 왔다. 원시림 속에서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의사를 전달하려는 원시인들의 노력은 봉홧불을 올리거나 파발마를 뛰우는 문화로 이어졌고,  문자 전달 방식의 발전과 모르스 부호의 사용을 통한 전신의 개발, 전화와 텔리비젼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이러한 의사 소통방식의 개발은 1980년대 초 이후 새로운 방식의 형태로 다가왔다. 인류의 의사소통의 문화사는 오늘날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혁신을 통한 의사소통 수단의 개발에 있어서 이 변화는 1980년대 개인 컴퓨터의 등장과 더불어 정보의 총체적인 매개체계인 인터넷의 출현이후 전 지구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1994년 대략 1000만에서 1500만명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었으며 1998년 초 인터넷 가입자가 1억을 넘었고 2001년에는 그 배가 될 것이라고 예측된다. 국내 이용자의 경우 지난 98년 6월 2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1995년 상업적인 인터넷을 통하여 전 세계적으로 거래된 액수가 7000만불이었으나,  2000년에는 25억5000만불이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인터넷이 활용될 수 있는 정보망 건설은 현재 모든 국가들이 앞다투어 긴급한 과제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0년까지 정보통신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데 52조원을 투입할 계획이 있다. 이제 우리는 멀티미디어 컴퓨터를 통한 인터넷 세계로 출입이 보편화되는 시대에 살면서 또 하나의 공간, 테크노피아의 한 현실인 사이버스페이스의 세계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2. 사이버스페이스 이해

2-1 개념적 이해
1980년대 초 윌리암 깁슨(William Gibson)은 멀지 않은 미래에 있을 법한 내용을 담고 있는 Neuromancer 라는 공상과학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거대한 기업이 정부를 대체하고 해커들이 데이터 안전망을 파괴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은 가시적이거나 물리적인 현실이 아닌 컴퓨터 화면을 통하여 엮어지는 세계였다. 깁슨은 그의 소설에서 그려지고 있는 이러한 정황을 가리켜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라고 불렀다. 깁슨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얻게된 이면에는 Shockwave River(1975)의 작가인 요한 부룬너(John Brunner)가 있었다고 말하였고, 부룬너는 엘빈 토플러의 {미래충격(1970)}에서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조금은 복잡하지만 이러한 이들이 예측하였던 가상현실에 대한 이해는 결국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낱말을 낳았다. 사이버스페이스란 실제 물리적인 세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추상적인 데이터의 재연으로서 교감이 가능한 환상(consensual hallucination)세계를 말한다. 사람들이 컴퓨터를 통하여 연결망에 접속하면 실제 세계와는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이 공간에서 과거에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위틀(David B. Whittle)은 Cyberspace: The Human Dimension 이라는 책에서 사이버스페이스를 세 가지 특징을 들어 정의하였다. 이를 살펴보면, 사이버스페이스란 첫째 교감이 가능한 환상상태에서 정신들이 연결되는 가상적 공간(Virtual space)이며, 둘째, 개개인이 산출한 지적 창조물들이 컴퓨터 연결망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연결된 상호작용의 개념적 세계이고, 셋째, 시·공간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으나 물리적 접근 기재망을 통하여 연결된 이들이 디지털언어와 감각적 경험을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나누는 공유된 정신의 상태이다. 이와 유사한 개념은 하워드 라인골드(Howard Rheingold)가 쓴 {가상 공동체(Virtual Communities)}에서 내리는 정의이다. 그는 "사이버스페이스란 컴퓨터를 매개로 의사소통을 나누는 이들에 의하여 낱말들과 인간관계들, 자료, 부, 그리고 권력이 드러나는 개념적 공간을 일러 말하는 것"이라 하였다.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란 현실이면서 동시에 물리적 공간을 점하지 않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가상공간을 지시한다. 이 공간은 반드시 물리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기계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은 현실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한 의사소통의 방식과 범위가 그 이전의 어떤 문화권이 가지고 있었던 것들과 대단히 다르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2 탈중앙화 시스템
오늘의 사이버스페이스의 출현은 적의 공격으로 충추적인 기능이 마비되어도 작동할 수 있는 다(多)중심적인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했던 미국 국방성의 군사 프로젝트에서 비롯되었다. 그 결과 이 시스템은 다양한 호스트 컴퓨터와 다각도에서 접속할 수 있는 기능을 고려하여 기획된 것으로 놀라운 신축성과 탄력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러한 탈중앙화, 신축적이며 탄력적인 특성이 있는 시스템은 민간영역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이용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학생들 부터 시작하여 대기업, 정부 등 모든 분야에서 이용하게 되었다.  멀티미디어의 발달과 더불어 인터넷은 가장 광범위한 사이버스페이스를 가지고 있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이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하여 우리는 오늘날 전자메일, 공지(公知)시스템, 프로그램 교환, 전자출판, 오락, 대화나누기, 교육과 연구, 상업적 활용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형식적으로 두 가지 구성요소가 있다. 그 중 한 범주는 물리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접속기재와 연결망이다. 또한 이 기재를 운용하는 프로그램들도 접속기재와 밀접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컴퓨터, 전화, 스크린, 전화선, 서버, 스피커, 마우스, 비디오카드, 사운드 카드, 모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사이버스페이스를 구성하는 다른 범주는 추상적인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자료, 정보, 문화, 가치 그리고 공유영역과 언어와 같은 것들이 속한다.
위틀은 문화란 "인종적이며 종교적이거나 사회적 집단의 독특한  전통으로 엮어진 복합체를 구성하는 관습적인 신념, 사회형태 그리고 물적인 특징들의 총체"라고 정의하면서 이를 요약하여 한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가설들과 그 가설들의 징후라고 하였다. 문화란 일종의 인위적인 형태의 것으로서 인간과 자연 혹은 물적 조건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무엇이다. 그렇다면 사이버스페이스 문화는 어떠한 가설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설들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가? 즉 인간과 컴퓨터의 만남은 어떤 문화를 초래하고 있는가? 이 물음은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관계들의 변화를 분석해 볼 때 답변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2-3 정보와 지식의 매개체
흔히 정보화 시대, 정보화 사회라 불려지는 후기 산업사회의 특징을 일컬어 엘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 즉 전자파가 파동치는 세계라고 보았다. 제 1의 물결은 농업혁명을 통한 문화의 변화를 불러온 것이라면, 제 2의 물결은 물질적 풍요를 불러온 산업혁명을 통하여 인류의 노동개념과 삶의 질에 대한 이해가 보다 보편적인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문화를 불러왔다. 토플러는 {권력이동 (Power Shift)}에서 제 1의 물결이 정치권력이 중심을 이루는 사회를 구성하였다면, 제 2의 물결은 권력의 중심부가 정치에서 경제로 옮겨가게 하였고, 이제 제 3의 물결은 권력의 중심부가 정치나 경제의 틀을 벗어나 지식과 정보가 지니고 있는 힘으로 향하게 하는 문화를 충동하고 있다고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는 제 3의 물결 속에서 권력은 고품질을 지향하고 있으며  고품질의 권력이란 고품질의 지식을 지님으로서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에서는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고품질의 지식이 요구되는 시대라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정보와 지식이 중요해지는 시대의 특성을 불러온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을 불러온 과학기술이다. 보나 나은 세계를 꿈꾸어온 인류의 기술 과학적 지혜는 시공간의 거리를 극복하여 온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고 있다. 결국 사이버스페이스는 오늘날 전 지구를 시공간적으로 제로에 가까운 연결망을 통하여 하나로 엮어진 지구 공동체 안에서 지식과 정보의 교환구조를 증대시키는 새로운 현실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2-4 지구적  광속 쌍방향 통신망
사이버스페이스는 전 지구를 빛의 속도로 연결하고 있는 거대한 그물과 같다,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는 그 본질적인 성격에 있어서 거대한 공간을 담고 있으며 그 공간사이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정보고속도로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 고속도로가 대도시를 연결하는 공적 공간인데 비하여 사이버스페이스는 컴퓨터 단말기를 가진 개인들에게 연결되어 있는 고속통신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현재 1억의 가입자들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면 1 억대의 컴퓨터가 상호 연결된 통신 그물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러한 정보 고속도로를 연결하고 있는 것은 사이버스페이스의 물리적 지원장치들, 곧 컴퓨터와 모뎀을 비롯한 내장물들 그리고 컴퓨터와 컴퓨터를 연결해주는 장치들이다.
그런데 이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속도는 광속에 버금가는 것이다. 이 속도는 사람의 음성을 통한 통신속도가 초당 55비트 정도라면, 재래식 전화를 통한 통신은 초당 600만 비트이며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한 디지털 데이터 전송속도는 초당 최저 1000만 비트에서 1억 5천 5백만 비트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재래식 전화선이 4000Hz 인데 비하여 광섬유를 이용하게 될 때에는 25조 Hz에 이르게 된다. 현재 우리는 초당 34억 비트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데, 이는 광섬유 한 가닥으로 5만 회선의 통화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용량이라고 한다. 초당 1조 비트를 처리함으로써 광섬유 한으로 가지고 7000만 통화가 머잖아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하니 결국 엄청난 양의 정보를 놀라울 정도의 속도를 통하여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인터넷을 통하여 우리는 전 세계의 방송망에 들어가 뉴스와 사건보도를 접할 수 있고 단 몇 초만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들에게 전자메일을 보낼 수 있다. 지난 1998년 9월 20일 미국 빌 클린턴 (William Jefferson Clinton) 대통령 성추문 사건에 대한 검사의 보고서가 인터넷에실려 전세계로 동시에 전해졌던 사건은 그야말로 추문사건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위력을 과시한 사건으로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신문이나 TV,  잡지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인터넷의 위력이 과시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하여 주고받을 수 있는 의사소통 내용은 다양하다. 문자 전송에서 동(動) 영상이나 음성 전송과 같은 데이터를 주고받는 일에서 시작하여 정보를 검색할 뿐 아니라, 분배하는 일,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전자상거래가 가능하다. 또한 누구든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자신의 문제를 토로하고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이제 사이버스페이스는 사적영역 뿐만 아니라 상업적 및 공적영역에 깊숙하게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가 불러오는 새로운 삶의 방식들은 새로운 문화와 윤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본다.  


3. 사이버스페이스 문화

3-1 탈중앙화와 개체성의 문화
사이버스페이스는 지구상에 있는 천만개의 호스트 컴퓨터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으나 중앙 통제적 기능이 없다. 그러므로 조직적인 견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는 탈중앙화가 특성이다. 이러한 특징은 사이버스페이스안에 1억이 넘는 개인 컴퓨터들이 참여하는 거대한 담화구조, 혹은 정보나 지식의 교환구조가 자리를 잡게 한다. 물론 컴퓨터를 조작하는 방법과 원칙에 있어서 일정한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는 전제가 있고, 컴퓨터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통한 접근기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거대한 의사소통 조직이 탈중앙화 되어 있다는 것은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었던 나와 너의 것, 우리와 그들, 내 민족과 저 민족, 내 나라와 다른 나라 라는 주관과 객관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모든 분리구조물을 넘어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거대한 가상구조 안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사귐과 이해와 배움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 안에는 국가나 정부같은 통제적 구조는 자리잡기 어려운 자유방임적 삶의 방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이버스페이스란 오늘의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정원과 같다. 이 정원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 있으며, 만일 이 사람들이 잘 가꾸지 않는다면 황폐한 정원으로 전락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문화와 윤리와 가치를 통용시켜야 하는 가는 개체 인간, 혹은 개체 참여자들의 합의에 근거한 도덕성과 이해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지만 참여자들의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다. 이 합의를 통하여 우리는 새로운 문화와 윤리적 가치들을 세워나가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 공간에는 너무나 광범위고 다양한 개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자신의 관심, 생각, 이상, 감정, 비판, 정열을 나눌 수 있다. 이 개인들은 무엇인가에 종속된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한 인간으로서 등장한다. 다만 이 개체 인간의 속성을 규정하는 것은 이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감정과 이해이다. 어떤 의미에서 개체 인간에 대한 전통적인 편견은 이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빈부의 차이, 직업, 신분, 인종, 성의 차이보다 그 개체 인간에게 있는 창조적인 생각이 다른 이들에 의하여 동의를 얻어 낼 수 있는가 아닌가에 의하여 동조자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이 개체 인간은 자신의 속성을 가지고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타아(他我)들을 만나면서 자신과 다른 개체를 인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무수한 개체성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 개체 존재들의 상호이해 과정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세계에서는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면 이 사상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적 사회 동제나 조정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이 사상은 이데올로기로 굳어져서 사회에 충격과 변화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자면 노예제도라는 것이 존속하던 때도 있었으며, 응보 사상은 십자군 원정을 촉발시켰고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진행시키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탐욕과 경쟁과 이기성을 공적영역에서 긍정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공적영역에 속하던 것들을 사사화(privatization)시켜왔다. 사고나 사상은 현실을 변화시켜왔으며 그 이면에는 문화를 형성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탈중앙화 및 개체성의 가치를 촉발시키는 사이버스페이스는 어떠한 문화를 지향하는가? 토플러는 탈대중화 매체의 등장으로 인한 탈대중화 시대의 문화가 도래할 것이라고 보았다. 신문, 잡지, 텔리비젼과 같은 대중 매체물들이 그 위력을 잃고 있으며, 이제 곧 개체매체들에 의하여 서서히 대중운동이 종식되고 개체존재의 유의미성과 존중이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토플러의 생각은 집단보다는 개인이 모든 행동과 사고와 판단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시대의 도래를 말하고 있다. 판단과 행위의 주체인 개인은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역으로 주어지는 정보와 지식을 향하여 개인적인 동의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국가의 의미나 사회의 의미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의 의사와 판단을 존중하는 사회나 국가 제도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점진적으로 강화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거대이념이 개인들을 대중으로 구성하던 논리들은 약화될 것이고, 수직적이며 위계적인 종적 질서는 수평적이며 평등주의적인 질서로 전환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전체에 대한 개인의 우위와 존엄을 인정하는 가치관이 보편화되면서 가정에도, 사회에도 그리고 모든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초래될 것이다.

3-2. 다양성과 다원성의 문화
탈중앙화, 곧 탈대중화된 시대는 결과적으로 다양성과 다원성을 수용하는 시대가 된다. 지역 분기론과 같은 전근대적 지엽주의는 지엽적 중심이라는 문화적, 혹은 정치적 축을 중심으로 존립해 왔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비판하고 있는 서구 중심적 편견과 그 편견에 무비판적으로 동의하는 비서구인의 '타아(他我)에 의하여 규정된 자기 존재'의 수용은 다양성과 다원성을 수용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다양성과 다원성이 대중적 집단을 의미하는 서구-동양의 이원적 문화론 이라든지, 한국적 혹은 아시아적이라는 광범위하고도 애매한 형용사를 사용하여 규정되는 정신적 개념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류의 개념들은 반쪽 진리를 담고 있는 유사(類似)진리이다. 다양성을 긍정하는 척 하면서 보편적으로 인류가 형성해온 가치들을 괄호에 넣기도 하고, 새로운 류의 편협한 자기 규정을 시도함으로써 과거의 낡은 유물들의  중심 축을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스페이스 문화가 말하는 다원성과 다양성이란 서구문명의 중앙화에 피해를 입은 주변화된 문화들의 자기 반성적인 다양성을 옹호하는 주장이 아니라, 철저히 상대적인 가치들을 보편화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윌리암 크노크(William Knoke)는 이러한 상대화된 문화적 가치는 광기(狂氣)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다소 보수적인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형성되었던 폭력적, 권력 중심적, 사회와 중앙화된 절대적 가치체계가 경제 권력의 다원성에 의하여 붕괴된 후 권력의 분산화를 불러와 민주적 사회질서를 가져왔다면 이제 다양한 지식과 정보의 확산을 통하여 아직도 남아있는 편견과 근거가 없이 강화된 가치들이 도전을 받게될 것이며, 동시에 탈정형(脫定型), 자유화, 사유화의 과정 속에서 개인의 의미와 존중이라는 개인주의적 가치가 보다 인간의 해방적 지평을 열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성과 다원성을 긍정하는 사이버스페이스 문화는 재래적 관점에서 본다면 과히 충격적이다. 문명의 기본 원칙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사회가 산업사회와 다른 있는 문명의 기본 논리들은 표준화에서 다양화로, 전문화에서 통합화로, 동시화에서 비(非)동시화로, 집중화에서 분산화, 극대화에서 극소화, 중앙집권화에서 지방분권화 현상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합의 과정도 산업사회에서는 대의 민주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에는 참여민주주의 방식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래 지향적이며 해방적인 가치를 향한 다양성과 다원성의 예찬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래적 지평을 폐쇄하고 있는 과거의 가치들은 도전을 받게되고 인간을 억압하고 있는 제도와 권위와 사상이 그 권위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가치와 삶의 방식들이 저마다 그 고유한 가치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 가치들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전자 민주적 합의 방식에 의하여 비판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3-3. 탈대중적 합의 문화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는 통제된 이데올로기나 사상이 그 위력을 떨치며 살아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비판적 합의를 통한 사상과 이데올로기의 검증을 이루어지게 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미국의 대표적 대중 매체라 할 수 있는 CNN은 모든 뉴스와 토크 쇼에서 클린턴 미 대통령의 성추문을 확산시키면서 그의 하야를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위력이 있는 대중매체의 의도는 비판적 개인들에 의하여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CNN은 정치 전문가, 정당 정책입안자, 그리고 무수한 성직자, 즉, 소위 전문가들을 동원하였으나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새로운 토론의 문화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얼마나 과거의 가치들에 종속되어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이제 대중의 판단을 선도하던 대중매체의 기능은 약화되고 개인의 비판적 견해가 오히려 정론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에는 이러한 흐름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정치집단이나 지도자들은 익명의 개인들에 의하여 선택받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점점 명료해 지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에 들어와 있는 익명의 개인들은 전문가들에 비하여 미래지향적이며 열려진 사회의 선도자들이 될 수 있다. 이들은 다양성을 수용할 뿐 아니라, 자기 견해의 한계와 장점을 인식하고 제시할 수도 있다. 즉 폭 넓은 세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견해를 검증하고 있는 것이다. 매스미디어에 의해 선택된 전문가들에 버금가는 전문가들부터 무명의 한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사소통이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보다 합리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에 이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장점은 전 지구적인 토론과 의견교환이 가능하다는 데에서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제 사이버스페이스를 넘나드는 개인은 한 지역의 문화와 전통과 가치에 종속된 존재로 이해될 수 없다.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한 개인은 물리적으로는 어느 한 지점에서 살고 있지만 그의 의식과 사고는 글로벌 커뮤니티의 한 멤버로서의 차원을 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 보다도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개인은 보다 더 합리적인 가치와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비판적 개인이 되는 것이다.  

3-4. 변혁적 비판문화
죤 네이스비트는 그의 책 Megatrends: Global Paradox(1994)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시대적 특징을 일컬어 '지구적 모순'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말하는 글로벌 패러독스란 통신혁명을 통하여 시간과 거리를 제로화 시킨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됨으로써 모든 사고와 행위의 단위를 글로벌하게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 종족 혹은 개인의 존재양식의 독특성을 존중하는 지역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글로벌 패러독스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로서 그는 "지역적으로 사고하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행동하라"고 권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하여 주고받는 데이터의 성격은 개체의 존재의미를 거대한 전 지구적 관심으로 확대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전 지구적 연결망 속에 주체적인 자아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의식을 더 할 것이라고 보며, 동시에 다양한 주체들이 공존하는 지구촌의 현존성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사고와 행위에 있어서 두 축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지구적인 것과 동시에 개체적인 것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를 산출한다. 그 결과 개체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지구적 가치는 의미가 약화되고, 또한 지구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 개인이나 개체적 가치는 그 의미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개체성과 지구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문화의 형성이 강조된다. 지난 1993년 9월 4일, 시카고 종교회의에서 만들어진 [세계윤리선언}은 전형적으로 두 가지 축의 사고를 종합하고 있는 윤리적 선언이다. 한스 큉(Hans Kueng)의 Global Responsibility (Projekt Weldethos, 1990) 도 이러한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뒤에 사이버스페이스와 윤리 문제를 언급할 때 자세히 논의하겠으나,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세계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 혹은 개개의 종교적 차원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개인이나, 정치, 경제적 정책, 혹은 종교적 전통은 날카로운 비판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계의 평화를 깨뜨릴 뿐만 아니라 개인의 존엄성 또한 파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요구하는 것은 자기 비판적 시야뿐만 아니라 자기 전통에 지적으로 정직함으로서 성숙을 통한 창조적인 자기변혁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개체 존재들이 지구적 연결망 속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함께 개체를 존중하는 동시에 지구적 존재의미를 공유하는 삶을 추구함으로써 창조적인 상호 성숙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4. 사이버스페이스 문화 비판

4-1. 자유주의적 성향 비판
사이버스페이스의 출현과 존재는 자유주의 전통의 흐름이 이식되어 있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사이버스페이스의 이용자들이 잘 교육받고 잘 대우받는 사람들이 라는 점이다. 따라서 글로발 네트웤이라는 말은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 영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제외시키고 있으므로 60억의 인구 가운데 1억 정도에 지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점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사이버스페이스는 자유주의적인 특성중의 하나인 강요적 팽창주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들을 인터넷에 들어오도록 강요하고 있는 현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마치 전자 자유방임주의  (electronic laissez-faire)와 유사한 것이다. 셋째, 사이버스페이스는 아이디어와 견해들을 교환의 대상으로 본다는 기본적인 시각에 기초해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자유주의의 기본적인 입장중의 하나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참여자들의 동등성을 지향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의미는 시민적 자격에 제한되고 재산과 권력과 지위의 구조에서의 차이를 은폐하는 술어가 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이 점에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환구조는 여전히 지적이며 정보에 대한 불평등, 그리고 견제적 불평등의 구조를 용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넷째, 일단 시장 경제속에 들어와 살면, 그 시장경제 구조를 벗어나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듯이 인터넷에 들어가면 나오기 어려운 세상이 된다는 점이다. 결국 사이버스페이스는 Netism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이다.

4-2 기술 종속의 문화 비판
사이버스페이스는 현대 과학기술의 산물이라고 보면서 과학기술에 의존한 인간의 의사소통구조의 연장을 비인간적인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 있다. 여기에는 첫째, 고도의 기술에 의존한 후기 산업사회는 산업사회가 이룩해 놓은 성취들을 파괴하고 있다는 관점이 작용하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하여 요구되는 세계적인 획일성이 있는가 하면 지나친 개별화 개체화로 인하여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를 제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의 효율성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둘째, 기술적 가치가 인간의 존재론적인 의미와 가치를 구축하게 된다는 점에서 기술사회의 비인간화를 우려하는 입장이 있다. 여기에는 엘룰 (Jaque Ellul)의 Technological Society(1964)과 피틀릭(E. D. Pytlik)과 같은 이들이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엘룰은 기술적인 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과, 인간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작용할 수 없는 기계자동화와 자동증대 현상을 염려한다. 엘룰의 견해를 빌어 사이버스페이스를 본다면 사이버스페이스는 중립적인 기계적 장치라 보기보다는 자체의 논리와 증식구조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기계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의 의식과 사고와 판단의 내용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나밥티스트(Anabaptist) 전통에 선 이들은 기술과학이 인간의 본성을 왜곡할 수 있다는 그들의 신념 때문에 기술 과학적 결과물에 대하여 매료되지 않는다.

4-3. 윤리적 오용의 가능성 비판
많은 이들은 고도의 전자 의사소통 구조가 인간에게 유익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더 커다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들은 예컨대 개인의 정보누출, 컴퓨터 범죄, 사이버스페이스 문화에 대한 지체와 절연으로 일어나는 갈등, 기계와 인간의 접합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기계화, 비인간화, 정보기재에서 자유로운 자연인으로 남으려 하는 이와 그렇지 않는 이들의 갈등, 정보소유 계층간의 갈등, 정보과다 문제 등과 같은 정보사회 일반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문제와 더불어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하여 급속히 전파되는 해로운 정보확산 문제이다. 여기에는 상업용 음란물의 등장이나 인터넷을 범죄조직들이 이용하는 일등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구조와 형식이 바뀔 때마다 더불어 나타나는 악의 꽃들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부수적인 악의 현실 때문에 사이버스페이스 문화에 대한 일방적인 정죄를 가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보수적이거나 근본주의적인 신앙인들은 특히 새로운 문화의 출현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문화의 출현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태도가 더욱 우려된다. 왜냐하면 사회학자 베니거(James Beniger)가 지적했듯이 사회가 급속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회의 조정능력에 위기가 오게되는 까닭이다.  이는 결국 보수적인 견해에 매달리는 지도자들로 인하여 신앙공동체가 사회안에서 자기 조정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시한다고 보겠다.
이상과 같은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비판적 시각들 외에도 정보화 시대의 다양한 문제들을 들어 사이버스페이스 문화를 비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정보 과잉시대의 문제라든가 정보검열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비판적 시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보조작과 프라이버시 문제 등등의 다양한 난점들이 제기될 수 있으나 이러한 염려와 더불어 우리는 정보화 사회의 현실이 급속도로 후기 산업사회의 논리를 대체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본다.

5. 사이버스페이스 사회의 특성

사이버 스페이스 문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가치의 등장과 변화는 새로운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문화는 신념과 사고의 습성을 담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신념과 습성은 한 사회가 담고 있는 가치구조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사이버스페이스 문화는 정보확산의 통로를 타고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나름대로의 새로운 사고와 신념 그리고 가치를 동반하게 된다. 그 내용들을 살펴봄으로써 사이버스페이스의 문화의 특성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5-1. 사회 윤리적 갈등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정보인간은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직면하게 된다. 이 정보사회 속에서 우리는 이전의 전통적인 사회와는 다른 류의 윤리적 문제를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들을 요약해 본다면 1) 정보를 생산한 이들의 권리문제, 2)국민 개개인에 관련된 정보수집과 사생활 침해의 문제, 3)정보의 정확성 여부의 문제, 4)정보획득의 정당성과 공정성 문제, 5)정보의 공정한 분배 문제, 6)정보감시와 표현의 자유문제, 7) 새로운 기술의 적용과 삶의 질에 관한 문제 등은 다양한 형태의 윤리적 긴장을 불러오는 정보화 시대의 난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는 중요한 요인은 기술 혁신을 통하여 삶의 변화가 일어날 때 윤리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삶의 영역이 대두됨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윤리적 난점들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난제들과 더불어 사이버스페이스는 형성하고 있는 지구적 통신망을 통한 의사소통 구조는 거대한 합류의 정신과 일치의 방향을 향하여 움직여 나가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자 민주주의의 등장, 지식의 확장, 선택적 자유의 증대, 개체존재의 유의미성 강조와 더불어 교제적 공동체의 확산 등이 긍정적인 요소로 생각될 수 있다.  

5-2. 정보 인간 사회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전통적으로 이해되었던 다양한 인간관, 즉 homo sapience, homo faber, homo ludens의 속성에 더하여 정보인간 (information person)의 속성을 강하게 띠게된다. 사이버스페이스속에 거주하는 인간은 정보-지식의 산출자이며 획득자이므로 정보-지식과 밀접한 생존양식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정보화사회는 정보추구의 동기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강하게 동기화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정보화 시대를 사는 이들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정보를 조정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정보를 통하여 삶의 기본적인 요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 시대의 사람들은 정보를 통하여 궁핍을 면하고 부를 얻을 수 있으며, 두려움과 불확실성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안전을, 그리고 지루함과 억압감정으로부터 벗어나 여가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삶의 무질서 대신 삶을 조정해 나갈 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삶의 방향은 이미 정보화사회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정보 서비스 산업으로 노동력이 재편성됨으로 사회의 축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될 수 있다. 농경문화 시대에는 생존과 안전이 생의 요건이었다면, 산업화시대에는 삶의 물질적 가치들이 그 중심에 있었던 것에 비하여, 정보화 시대에 첨단의 형태인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에는 지식과 정보를 통한 관념적이며 구상적 가치들이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중심 축이 되는 것이다.
정보를 통하여 생존양식을 추구하는 사이버스페이스 인간은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나는 두 가지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첫째는 정보인간이 물질적 가치에 종속되던 문화구조를 넘어서서 관념적 가치(ideational values)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창조적인 문화를 일구어 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협소한 의사소통 구조에 머물던 인간이 이제는 지구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세계로 나오게 된 것은 정보과잉의 세계에 노출된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사유와 비판과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로 볼 수 있다.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해방적 동기가 인류의 역사를 충동해 왔다고 본다면, 권력과 물질의 우상에 종속되던 자기이해를 벗어나 인간은 이제 보다 명시적인 자기이해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물론 사이버스페이스 문화가 오늘날 우리 인류 모두를 담아내고 있는 보편적인 현실이 아니라는 점은 긍정하지만, 이 문화를 통하여 인간은 보다 해방적인 지평을 열어 나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보와 지식의 증대를 통하여 인간은 보다 폭넓은 자유와 책임의 지평에서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사이버스페이스 문화를 긍정한다. 사이버스페이스 문화 속에서도 인간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문화구조를 통하여 선과 악이, 책임과 무책임이, 평화와 전쟁과 같은 양극적인 투쟁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지구적 의사소통 구조는 보다 많은 이들의 합의 구조를 산출함으로써 무지와 선동, 그리고 당파적 이득으로 인한 인간손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전 지구적 의사소통과 정보획득의 기회가 있는 인간은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 자유로운 인간은 동시에 보다 확대된 책임의 지평에 불리움을 받게 된다. 인식의 지평확대는 자유와 책임의 양과 질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보다 해방적이므로 더 큰 자유와 책임 앞에 서야하는 인간이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를 사는 인간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죄성이 자유를 남용하고 무책임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생각하여 자유의 통제나 강요된 책임보다는 불의한 현실을 불러오는 행위와 사고의 출현에 대한 방어기재를 확보하는 지혜도 있어야 할 것이다.

5-3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사회제도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가정에 대하여 비관하는 이들이 퍽 많다. 21세기 가정의 위기를 가장 심각하게 말하는 이는 크노크(William Knoke)이다. 그는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가정의 의미를 말살하고 가족 구성원을 뿔뿔이 흩어 놓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가부장주의의 몰락과 남성과 여성의 평등이 사회 경제적으로 실현된 사회일 것이라고도 예측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어느 특정한 가정관을 전제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다.
농경사회의 결혼관이 가부장적 생산능력이 있는 가장과 그에 종속된 가족구성원의 형태를 지시했다면, 산업혁명 이후의 핵가족화는 제 1의 물결 시대의 가정 개념을 붕괴시킨 것만은 확실하다. 제 2의 물결이 파동치면서 가정의 개념은 핵가족화 되었다. 그 대신 전통적인 가족 구성원들 속에 형성되어 있었던 지배와 복종의 관계는 평등과 우애의 관계로 대치되었다. 이제 제 3의 물결이 파동치는 시대에는 가족개념을 어느 특정한 형태로 규정하는 고착적 이해는 통용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원리로는 부부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공동성과 상호성이 증대될 것이며 지적 이해능력이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가정에서도 자유와 책임이 극대화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 구조 안에서 여성이 희생되고 젊은이들은 침묵을 강요당하던 억압이 있었던 것과 같이 이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에도 책임을 회피하고 자유만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이 가정을 더욱 극단적으로 파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사는 한 가정을 외면하는 자유보다는 가정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는 이들이 더욱 많을 것이라고 보며,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자녀양육, 주거조건 등 가정에 대한 합리적 책임구조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는 사회 이해에 있어서도 충격적인 것이 틀림없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었던 자기 이해가 세계시민의 의식을 가지게 됨으로써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통적인 사회의 개념은 있으나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만나는 사회는 지구적 공동체(global community)이므로 전통사회가 의존하던 파당주의, 지엽주의, 혈연 및 지연에 얽힌 사회구조는 점차 힘을 잃어 가게된다. 지배와 복종, 한편이 이기거나 진다는 양자 택일의 사고는 지구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는 가지기 어려운 사고가 된다. 따라서 공동존재, 혹은 공존의 양식을 선호하려 인종적, 이념적, 종교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사회의식이 확산될 것이라고 본다. 사이버스페이스 문화 자체가 다양성과 다원성을 용인하여 관용과 공존의 윤리를 바탕하고 있으므로 보다 평화적인 가치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이버스페이스가 그 거대한 연결망을 통하여 인류사회를 그물과 같이 얽어 놓은 결과로서 지구적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간은 그 사회 속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추상적 요소인 문화와 윤리와 가치를 새롭게 창출할 것이 분명하다. 아무 것도 확정되어 고정된 것은 없으며 지속적인 창조적 의식의 합류를 통하여 보다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평등한 사회를 지향해 나갈 것만은 분명하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재 정치적으로 무정부 상태이다. 각 국가마다 약간의 검열구조들을 가동시키고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사이버스페이스 공간을 정부 조직이 통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자유로우며, 평등주의적이고, 분권화와 개방화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뿐 아니라 자율적이며 무정부적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1996년 클린턴 행정부가 제시한 텔레컴 개혁법안을 상원에서 95%의 지지를 얻어 통과 시켰는데 이 법안에 의하면 상소리나 저속한 비어(卑語)들, 그리고 사람의 신체에 대한 저열한 표현들을 사용할 경우 25만 불까지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인터넷에는 무수하게 많은 비판이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cyberspace declaration of independence)의 형태로 쏟아져 나왔다. 이 선언문들의 요지는 제 2의 물결시대의 산물인 정부는 사이버스페이스를 통치 할 수 있는 도덕적 근거가 없으므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주장,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가 이전의 정치권력이 수행했던 것보다 나은 인간적이며 공정한 세계를 이룰 것이라는 기원들이 담겨있다. 나아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접속자들이 드나드는 공간에서 독일이나 프랑스인이 보기에는 미국의 법이란 그들의 삶의 자리까지 미치지 못하는 상대적이고 지엽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로부터의 통제적인 정치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정치는 가능하다. 소위 전자민주주의(electronic democracy)가 가능한 것이다. 이 방식은 광범위한 의사소통구조를 통하여 보다 합리적인 여론 형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강한 여론의 힘은 구체적인 정치권력 구조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정보조작을 통한 우중(愚衆)정치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입장도 있지만, 보다 폭넓은 견해를 수렴할 수 있는 사이버스페이스는 조작 당하기보다는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정치 의식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본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사이버스페이스는 다양하고 신속한 상업관계를 촉진시킬 수 있다. 디지털 기술에 의해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를 발견하는데 드는 거래비용이 줄고, 구매자와 판매자의 활동범위를 좀더 넓고 다양한 세계적인 규모의 시장으로 확대하는 비용도 줄어들에 되므로 경제전반의 효율성도 크게 증대될 것이다. 그야말로 사이버 네트워크는 정보고속도로가 아니라 그야말로 마케팅의 초고속도로가 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효율성의 증대는 경제적 구조에도 심원한 영향을 끼쳐 고속화된 마케팅 경쟁은 서비스 산업간의 경쟁을 가열시킬 것이라고 본다. 향후 더 많은 기업들이 사이버스페이스에  몰려들게 될 것이라고 보는 데,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영업활동은 저렴한 착수비용, 이미 이룩되어 있는 시장의 장점과 더불어 단기수입전망을 확실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사이버스페이스는 유통구조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올 것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으며, 쌍방향 의사 소통 구조의 확대를 통하여 원거리 및 근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이동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원격조정에 의하여 많은 업무가 처리될 수 있는 경제활동이 판매자와 소비자들로 하여금 새롭게 세상을 보게 할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불러오는 부작용들도 많을 것이다. 지구적  혹은 국가적 경제활동의 많은 부분이 신속한 쌍방의사소통 구조를 통하여 이루어 지게되면, 재래식 기업경영 방식과는 달리 새로운 기업경영 방식들이 출현할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자면 전 세계를 향하여 인터넷 상에서 책을 파는 책방들은 전 세계에 지국을 내지 않고서 전 세계의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들이 확산될 경우 전 세계적으로 많은 실업자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본다. 거대한 인터넷 시장의 출현은 다양한 사회 안의 관계를 변화시킬 것만은 분명하다.

6. 사이버스페이스 문화와 기독교 공동체

6-1. 사이버스페이스 문화의 도전
사이버스페이스는 세계 인식의 창이다.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하여 세계를 동시적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동안 지구적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세계화를 외쳤었지만, 이제는 세계화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하여 우리는 창밖에 세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인식의 창을 가진 인간은 세계적 정보를 주고받으며 조정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 어느 때보다도 폭넓은 삶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여기에 자리잡게 되는 새로운 지평은 자각과 결단의 순간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의 증폭은 문화적이며 윤리적인 가치를 산출한다.
첫째, 협의(俠義)의 진리개념에서 광의(廣義)의 진리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전에는 지역적 가치, 국가적 가치, 혹은 종파적 가치가 그 절대적인 가치를 점하고 있어, 이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였었으나 이제는 지엽적 경계를 초월하는 가치들이 더욱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특수한 가치를 절대시하는 입장들은 지양되고 특수의 상대화가 일어남으로써 다양성과 다원성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성을 긍정한다는 것은 무수한 적대적 관계의 해소를 불러올 수 있다. 편협한 사고에 근거한 차별과 불평등의 관계나 일방적인 우월성을 강조하는 승자/패자식의 사고는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윤리적 규범이 될 수 없다. 정보와 지식의 확산을 통하여 다방면에서 벌어지는 인식의 확대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의 순간을 경험하게 하여 보다 나은 윤리적 선택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공존과 평화의 윤리가 보다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할 것이며 지구적 관심사가 다수의 합의에 근거한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기독교 공동체로 하여금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진리를 향한 개방성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인간관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물리적 거리와 시간적 거리를 극복한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일어나기 때문에 이웃의 개념이 시공을 초월하여 형성될 수 있다. 전통적인 관계들 속에서는 과거에 형성된 우월성과 편견이 지속되어 다양한 형태의 불의를 산출하였었으나,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는 사회적 편견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교제가 가능하여 신체적 특징으로 인한 차별과 편견, 신분과 부를 통한 과시적 행태들은 지양되고 보다 인격적이며 정신적인 교제가 가능하다. 일부에서는 기계를 통한 교제를 우려하고, 사이버스페이스에 중독(中毒)되어 몰입하는 현실도피성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사이버스페이스는 소외보다는 더 많은 교제를 불러오고, 그 교제를 통하여 상호이해와 계몽과 성숙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견해와는 달리 많은 이들이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는 누구든지 익명으로 존재할 수 있으므로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행태가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격모독이나, 공격적인 언어사용, 사이버 포르노 몰입, 정보의 왜곡과 같은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으나, 그 빈도는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성향에 비하여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다만 미성년자들이나 청소년들과 같이 미성숙한 이들이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하여 바람직하지 않는 정보를 접하는 경우들이 우려되지만 걸러내는 프로그램(filtering program)을 통하여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다. 인간의 교제적 성격이 증폭되는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는 기독교 공동체로 하여금 다양한 삶의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성숙을 요구한다.  
셋째,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는 해방적 지식의 중요성이 증대된다. 쌍방 의사소통구조를 통하여 주고받는 정보는 개인의 생리적 욕구로부터 출발하여 안전의 확보, 소속감, 자존성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증진시키게 됨으로 불안과 위험, 외로움, 개체인간의 가치를 부정하는 제도와 문화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증진된다. 이러한 비판적 의식은 인간해방의 지평을 확대해 나갈 것이며 보다 인간다운 사회를 향한 합의를 도출하는 윤리적 자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를 사는 개인은 다양한 만남, 정보교환, 지식의 수용, 그리고 대화의 방식을 통하여 보다 인간화된 사회를 향한 해방의 길 위에 서게된다. 이러한 해방적 과제는 이전과는 다른 윤리적 사고와 판단의 확대를 요구하고, 근거리 및 원거리적 시각을 운용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즉 이곳과 저곳의 현실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보다 나은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측면에서 정보를 수용하고 조정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는 기독교 공동체로 하여금 인간 해방적 동기들을 승인하고 이를 실천하는 공동체가 될 것을 요구한다.
넷째,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는 정보생존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정보를 수용할 능력이 없거나, 수용한 정보를 분석할 수 없는 사람은 삶의 무의미와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 여기에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이 정의로운 정보 공급구조이다. 전달되는 정보는 정직하고 정확해야 하며 책임적이 있어야 한다. 뿐 아니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의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보는 인간의 삶과 부의 획득, 위험을 피하고 안전을 유지하는 일, 그리고 고통과 위험보다는 평화와 여가를 지향한 판단과 선택에 결정적인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정의의 한 요구로서 정보를 이해하고 소화해 낼 수 있는 소양을 키우는 기본적인 훈련이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global netizen의 기본여건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미 호주와 같은 나라는 이미 중·고등학교 교육구조에서 칠판과 펜을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농경시대에는 노동할 수 있는 근육질의 인간이 요구되었고, 산업사회에서는 경제원리를 터득한 인간이 요구되었다면,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인간은 정보생존 능력을 갖춘 인간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기독교 공동체로 하여금 지구적 시야를 갖춘 지식과 정보이해에 상충되지 않는 정확하고 진실한 메시지를 요구하게 된다.

6-2. 사이버스페이스의 도전과 기독교 윤리적 과제
일단 사이버스페이스는 현대인의 삶에 있어서 일종의 강요된 옵션으로 작용한다. 문화에 적대적인 태도를 선택하지 않는 한 우리는 문화의 거대한 흐름을 역류할 합리적 방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이버스페이스가 다양한 형태의 비윤리적인 요소들을 유통시킬 수 있으나, 기독교 공동체는 이 문화 자체를 거절하기보다는 이 문화를 잘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첫째,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를 하나의 가능성과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독교 공동체는 기독교 복음을 통하여 인간을 해방하라는 과제를 위임받은 공동체이다. 기독교 신앙이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성숙시키며, 변혁시켜 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면,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는 또 하나의 기회라고 볼 수도 있다. 이 기회는 기독교 공동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전근대적이며 억압적인 가치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쇄신의 기회이다. 오늘날 교회와 신학, 혹은 신학과 신앙공동체의 갈등은 교회와 신앙공동체에 대한 보호정책의 일환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지지하는 편으로 해소시켜 왔었다. 이러한 경향은 지적 성실성과 인식의 확대과정을 통한 진리 터득의 순간을 거절하고 과거의 교리와 기존의 질서를 옹호하던 습관을 양성화 한 것이다. 기독교 공동체가 이러한 습성을 지속시킬 경우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낙오자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갱신과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구태의연한 과거의 산물로 신앙공동체가 이해되어 자칫 잘못하면 문화적인 지체 공동체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협의의 진리를 벗어나 광의의 진리지평으로 나가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따라서 폐쇄적이고 독단적이며, 주관적 진리는 진리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성차별 주의와 권위주의, 보수주의를 청산하고 참여 민주적인 신앙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기독교 공동체가 복음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보다 지구적인 차원에서 인류의 구원을 선포할 것을 요구한다.
둘째, 사이버스페이스 시대 이전에도 기독교 공동체는 인간성을 보존하고 인간을 지키는 과제를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사랑의 과제로 받아들이고 실천해 왔다. 만일 기독교 공동체가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에 보다 인간다우며, 평화롭고, 정의로운 삶의 방식을 설교한다면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를 살아가는 영혼들을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에서부터 그들의 영성을 가꾸는 정원사가 될 수 있다. 보다 평화로운 공동체를 유지하고 그 공동체를 통하여 세계를 섬기기 위하여 기독교 공동체는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이원적 구조를 넘어선 깊은 자각과 연대성을 나누는 공동체로 성숙해야 한다. 이 성숙은 기독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도덕적 판단의 세 가지 형식, 즉 칭송 받을만한 행위, 일상적인 행위, 비윤리적 행위 중에서 칭송을 받을만한 행위자들로 성숙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적 자각이 보다 인간을 진리의 순간으로 인도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성숙은 사이버스페이스 시대를 앞서가는 성숙이 될 수도 있다. 오늘의 기독교는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해낼 능력 있는 종교가 될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셋째, 기독교 공동체는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악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윤리적 처방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의 환경으로서 사이버스페이스는 악하고 비윤리적인 이들에 의하여 오용될 수 있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정보의 쌍방 통행적이며 다차원적인 확산과정은 악의 통로로 이용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분석과 대안적 방안들을 제시함으로써 기독교 공동체와 사회 구성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끊임없는 기술정보를 향한 욕심과 관심을 승화시켜서 보다 영적이며 인간다운 가치를 지향하도록 설득하고 가르치는 종교교육의 과제 또한 중요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1993년 시카고 종교회의에서 제정한 [지구윤리 헌장]은 전통적인 협소한 진리의 벽을 허물고 보다 지구적인 지평에서 화해와 공존과 평화를 지향하는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윤리적 가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한스 큉(Hans Kueng)의 포스트모던 윤리는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기독교 공동체는 미래를 향하여 열려진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이 담겨있다. 종교가 과거의 산물로서가 아니라, 과거를 통하여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통로가 된다면, 종교는 분명 인간해방과 구원의 길을 오늘뿐 아니라 미래에서도 가리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변화가 불러올 미래를 외면하지 않고 이를 직시하며, 그 가운데에서 종교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다움의 지평, 지구적 실천 원리로서의 자유와 정의, 평등과 다원성, 형제·자매애, 공존과 평화, 삶의 질과 환경보전, 그리고 관용을 넘어선 일치의 정신이야말로 기독교 공동체가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에서도 앞서서 실천하고, 무수한 이들의 삶의 방향타를 잡아주어야 할 가치들이다. 이러한 가치들은 기독교 공동체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과제로서, 그리고 성숙한 실천의 지표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7. 기독교 공동체의 미래

사이버스페이스의 출현은 오늘의 세계에서 최첨단의 삶의 방식이 다가옴을 의미한다. 우리 한국 사회의 경우 범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최첨단의 문명사회를 열어나가는 무리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는 1910년까지 잔존하였던 유교사회의 봉건적 가치관이 잔재하고 있으며 산업화에 따라 이루어져야할 인권 존중사상이 보편적으로 확대되지 못한 사회라고 본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과 더불어 사이버스페이스 문화의 문턱까지 밀려오고 있다. 제1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이 함께 파동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진보된 사회의 경우 사이버스페이스 문화는 탈중앙화와 더불어 나타나는 분기화, 다양성의 요구는 이미 확보된 개인의 존재의미를 더욱 철저하게 해방시키는 역동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교회 안에서는 아직까지 개인을 향한 자유와 인권을 다양한 이름으로 유보하고 있다. 간혹 미화된 전통의 이름으로 전근대적 사회의 억압기재로 작용하였던 가치들을 그리워하기도 하는 보수주의적 세력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에 다가오는 사이버스페이스 문화는 우리에게 질서에 대한 많은 혼란과 갈등을 불러 올 것이라고 본다. 억압적이고 통제적이며 타율적인 규범들이 급속도로 무너지는 대신 훈련받지 못한 미숙한 자율성이 등장할 때 우리는 더 많은 사회적이며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스페이스 문화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하나의 역사적 현실로서 다가왔다. 이제는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중앙화된 권위주의보다는 분기된 평등성을, 사상과 견해의 차이를 없애려는 투쟁과 편견의 강화, 혹은 정죄의 태도보다는 합리적 이견이 주는 사상의 역동성을 이해해야 한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무엇보다도 정보와 지식의 선택과 활용의 폭이 넓어지는 데에서 오는 자각과 창조적인 사상의 출현이 우리를 보다 진리로 이끌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보다 많은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악의 유혹과 무책임의 지평으로 나가게 할 수도 있다. 결국 다시 한번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새로운 문명의 지평에서 보다 인간다운 지식과 문화와 윤리를 형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지평 위에는 미개한 야만인들로부터 문화화된 인간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들이 등장하고 있다. 인류가 미개함과 야만을 선택하지 않는한 이 새로운 문명의 지평에서도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는 인류의 생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쌍방 의사소통 구조의 확대로서 사이버스페이스는 의사소통의 근본적인 요구, 즉 상호 이해와 대화의 문화를 창출함으로써 타인들의 존재와 복지에 대한 선의(善意)를 불러 올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공격적이기보다는 타인을 존중하고, 강요와 투쟁보다는 사상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이, 그리고 책임적이며 창조적인 정보와 지식의 공급자들이 보편적인 동의와 지지를 얻게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가치들이 통용되는 사회의 각 단위마다 조용한 변화와 해방의 징후들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우리 기독교 공동체들은 사이버스페이스 문화가 가깝게 다가오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도전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 기독교가 인간을 섬기는 종의 자리에 서기보다는 역으로 인간의 섬김을 받는 종교로서 인간 위에 군림하는 한 이러한 기독교로 부터 이탈하는 무리들의 행렬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인간을 해방하기는커녕 포로로 삼고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근본적인 기독교의 자기 개혁의 당위가 있다.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윤리적 성향이 이미 해방적임은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사건으로서 출애굽은 오늘도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을 억압하거나 착취하는 일,  인간의 존엄성을 외면하는 사상, 제도, 이념, 그리고 종교까지도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에서는 출애굽사건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본다. 교회가 인간성을 억압하는 집단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는 본연의 사명 앞에 선 해방의 모체로서 다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거듭남을 통하여 기독교 공동체들이 인간성숙의 요람으로서, 악에 대한 진지로서,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개방된 구원의 보루로서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에서도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에서도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의 해방의 뜻을 선포하는 예언자들과 상처난 이들을 어루만지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세상에 파송하는 하나님의 교회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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