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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0/05 (01:00)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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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다가오는 영성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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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다가오는 영성의 시대  

1. 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문명사적 영성시대의 도래에로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새뮤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그의 최근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냉전체제이후, 더욱 분명하게는 서기 제 3천년대가 시작하는 21세기 세계정세를 바라보는 해석의 틀을 문명간의 충돌로 보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안 보상황에서 미국의 국익"이라는 시각에서 정치현실을 거시적으로 조망 하는 정치학적 문명론이라는 한계를 지니지만, 닥아오는 세계에서 상 호 경쟁과 충돌의 주체는, 단순한 근대적 민족국가나 정치사회적 이념집 단간의 충돌이 더 이상 아니고, 종교를 그 핵심으로 삼는 다양한 문명 간의 충돌이라고 보는 관점이 매우 이채로운 것이다. 특히 지난 300여 년간 서구문명의 보편성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도전의식을 굳이 숨기 지 아니하는 이슬람문명권과 중화문명권의 자기주장에 대하여 사무엘 헌팅톤은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의 결정적 약점은 닥아오는 새로운 문명시대가 서로 이 질적인 다양한 종교를 그 핵으로 삼는 문명간의 경제, 정치, 문화적 이질성을 강조하고 문명간의 만남을 본질적으로 경쟁과 충돌로서만 보려 는데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발상의 단초부터 정치문화를 인간집단간 의 힘의 경쟁과 충돌로서만 해석하는 그의 정치학적 시각은 매우 '현실 적'일런지 모르나 보다 거시적으로 인류문명을 볼 때 사무엘 헌팅턴의 발상법에 근본적 이의를 제기하려고 한다.
   인류는 지난 2,000-3,000년 기간동안 "문명권적 신들과 종교권역"에 메몰되어 왔으나, 인류의식이 전환하여 문명권의 문화적 중력에 유폐 당하고 함몰되어왔던 지리적 인종적 역사적 한계를 초월하는 "우주적 영성의 보편적 각성운동"으로 인류정신은 꽃피어나고 있다. 인류는 진 정한 의미에서의 문명전환기라는 의식에 공감하면서 모든 위대한 우주적 종교의 창시자 또는 먼저 깨달은 정신의 "첫 열매"가 빛을 발하던 그 성숙한 정신의 빛의 상태로 고양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지구정신은 동시 에 충만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그리고 잠정적으로 보면 사뮤엘 헌팅턴의 말대로 보스니 아 지역의 인종 종교분쟁과, 중동 이슬람문명권의 일부 패권국가들과 미국을 중심국으로 하는 기독교국의 힘의 갈등, 그리고 아프리가 부족간 의 충돌과 동북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주체의식의 고조등은 인류문명이 장 래에도 "정글의 원리"를 면치못하고 종교의 교조주의 와 근본주의를 핵 심으로 하여 발생하는 구제받을 수 없는 배타적 이원론이 승리할 것 처 럼 보인다. 그러나, 더욱 유기체적으로 얽혀 그물망같이 수렴되어가는 정보교류와 물류교류에 기초한 삶의 관계성의 확대심화, 다양한 문명체 험의 교류증진과 인간집단의 이동여행 경험의 증폭, 우리는 모두 결정적 으로 역사적 존재이며 해석학적 존재라는 인간가치쳬계의 상대성에 대한 현대인들의 상대성에 대한 자각,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포스트모던니즘 이라고 통칭되는 근대이후의 문명의식에서 인간 영성의 각성은 인류문명 의 미래를 "문명간의 충돌"과정으로서만 바라보지 않도록 우리를 추동한 다. 도리혀 우리들의 시대의식을 "문명을 창발시킨 위대한 종교적 영성 들의 지평융합을 통한 문명들을 넘어서는 영성시대의 도래"를 예견하는 카이로스로서 느끼게 한다.

2. 새로운 영성시대는 어떤 특징을 지니는가?

   우리시대가 헌팅톤이 말한대로 <문명간의 충돌>의 시대가 아니고 "문 명을 탄생시킨 위대한 종교적 영성들의 지평융합 시대"라고 규정하는 필 자의 견해도 잘못하면 단순 결정론에 빠지는 오류를 범한다. 카이로스의 식이란 "심판과 기회가 공존하는 시간"이므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 명간의 충돌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고, 충돌의 위기를 넘어서 문명을 탄 생시킨 위대한 영성들의 지평융합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그 두 가능성 은 항상 현존한다는 의식을 지녀야 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비관적인 견해에 집착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전자의 방향이 아니 라, 후자의 방향에로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져 가도록 노력하고 합심하는 일이 중요하다. 새로운 영성시대를 열어가려는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 들은 어떤 영성을 지니는 것일까?

   첫째, 새 시대의 영성은 한문글자 "靈"이라는 상형문자적 표의문자 가 상징하듯이 본질적으로 '역동적 초월의식 또는 초월체험'으로서 그 본질규정을 한다.
   역동적 초월의식 또는 초월체험이란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영물인 간이 자신을 스스로 깨우쳐 자각하기를 자기완결적인 실체론적 단자(單 子,MONAD)가 아니라, 열려있는 관계구조 속에서 상호교호하는 역동적 생명의 場 속에서 자신의 주체가 창발적으로 생기(生起)하고 있다는 의식 또는 체험을 말한다.
   이러한 역동적 초월의식 또는 초월체험을 가능케하는 존재론적 근거가 무엇이냐에 대하여 종교전통마다 이름과 그 표현방식이 다르다. 창조주, 하느님, 공, 무, 도, 브라만, 태허의 기, 준원자 에너지, 음양, 理氣 등 등. 그들이 속한 문명권의 실재관과 우주론의 패러다임이 무엇이었는가 에 따라 사람마다 그 기호방식이 다르며, 영성의 훈련방식이 다르다. 그 러나 그 모든 다름을 넘어서 모든 문명권의 성숙한 열린 종교인들이, 아 니 종교가 없다고 자처하는 무종교인일지라도 그가 새 시대의 영성을 지 닌 사람이라면 앞에서 언급한 '역동적 초월의식 또는 초월체험'을 지닌 다. 그 의식과 그 체험은 모양과 색갈과 향을 달리하면서도 사람을 능 히 자유하게 하고 어울리게 하고 협동하게 하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게 한다.

   둘째, 새 시대의 영성을 지닌 열린 마음을 지닌다는 것은 '생명가 치'를 모든가치 보다 귀중하게 여기고 생명을 살리는 '생태학적 윤리 의식'과 '생명문화'창달을 그의 궁극적 관심으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 한다.
   위의 둘째번 각성된 영성의 지향점이 강조하려는 것은 지금 눈앞에 현현하는 생명 현실재보다 더 귀중한 또다른 가치가 없다는 투철한 자각 으로 확철함으로서, 모든 정치이념,국가, 종교제도와 전통, 다른 여타의 물질적 정신적 가치를 핑개삼아 생명가치를 제 2차적 가치로서, 수단으 로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서 지금 눈앞에서 고통당 하고 소외당하는 생명 현실재를 떠나서 하나님, 불성, 불국토, 천국지옥 을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생명가치를 일단 절대적 가치로서, 가장 귀중히 여겨야 할 현실재로 서 즉증하는 순간 열린 마음을 지닌 영성의 사람들은 '역동적 초월의식, 추월체험'을 계기로하여 자연히 전 지구적 생명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 고, '생태학적 윤리'에 눈뜨게 되며, 생명을 죽이는 죽임의 문화에 저 항하면서 생명을 살리는 '생명문화 운동'에 구체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모든 진정한 종교인들이 민중들의 바닥의 삶에 투신하고 바닥에서 하 늘을 경험하고자 하는것도, '생명가치'의 지고존엄함을 자각한데서 시작 하며, 그 중생들과 죄인들 속에서 불국토와 하나님나라를 이루지 못하면 불국토와 천국은 아직 도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영원히 도래하지 못한다 는 투철한 자각에서부터 온다. 가장 물질적이 아니면 가장 영적이지 못 하고, 가장 예민한 정치적 현실의식이 없으면 가장 순수하고 거룩한 초 월의식도 없다는 역설은 참 종교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모두 지당하다고 받아 드린다.

   셋째, 새 시대의 영성을 지닌 열린 마음은 역설적 진리를 몸으로 직증하면서 '통전성', "반대의 일치'등을 실재의 참 모습으로 받아드 린다.
   '역설'(逆說,PARADOX)이란 그 문자의 뜻대로 일반적 상식적 견해와 이 론에 비추어 볼 때 거스르고 반대되는 견해 곧 억견이라는 말이다.
   "죄가 깊은 곳에 은혜가 깊다"/ "범부중생이 곧 부처다" / "비움이 곧 충만이다"/ "자기 목숨을 잃는자는 얻고, 얻고자 하면 잃는다"/ "생 멸문이 곧 진여문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등등 무수히 나타나는 종 교적 진리의 진수들은 동서종교를 막론하고 모두 역설적 표현들이다. 종교적 진리는 변증법적이 아니라 역설적인 것이다. 역설적 진리를 역설 로서 받아드리지 않고 직설로서 받아드리면 일상생활 속에서는 일대 혼 란이 오고 윤리적 가치체계는 뒤죽박죽이 된다.
   그러나 참 종교의 진리란 현실적인 리얼한 참현실을 떠난, 별난 세계 에서 노니는 도인들의 초현실적 논리가 결코 아닌 것이다. 도리혀 리얼 한 참현실을 현실 그대로 바로 보면, 앞서 예로든 여러가지 역설적 진리 명제는 역설이나 억견이 아니고 평범한 사실 그대로의 진실한 삶의 세 계 그대로이다. 새 시대의 영성의 특징으로서 '통전성' 강조나 '반대일 치의 강조'는 無明의 범부중생이나 죄인의 눈에서 보면 역설이요 통전 일 뿐, 열린 눈 맑은 맘에서 보면 사실 그대로의 평범한 진실의 현실세 계의 현상적 사실일 뿐이다.
   통전되지 못한 세계현실이 하나의 철학적 실재관으로 나타날 때 이원 론의 형태로서 자기를 나타낸다. 물질/정신, 자연/초자연, 성/속, 리/ 기, 구원사/세속사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무명에 덮힌 눈과 죄인의 맘 으로 종교를 볼 때 통전되지 못한 하나의 현실은 삼중으로 분리되어 창 조주/세계/인간, 또는 空/色/衆生心, 또는 太極/理/氣가 각노는 삼태극 적 분리현실로 나타난다.
   그러나 통전된 영성의식에서 보면 이들은 각각 이론적으로는 구별되 어야 하지만 결코 현실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지 않는, 분리될 수 없는 창발적 "현실재"의 통전적 구성원임을 깨닫게 된다. 각자는 서로에게 즉 (卽)함으로서 자기 일수 있다. 물론 그 통전성이 존재론적으로 가능하기 위해 하나님의 자기비우심, 공의 性起的 창발연기성등을 은혜의 찬미로, 또는 잔잔한 지혜의 게송으로 노래하겠지만, 실재의 통전성을 강조하려 는 영성의 자각은 오랜동안 환원주의에 쇠뇌되어 온 현대인들이 정신적 고독과 개인적 영웅주의및 요소론적 단자론적 세계관을 치유하는 치료 제가 된다.

   넷째, 새로운 시대의 영성은 다양성과 사물들의 고유한 독특성을 존중하며, 동시에 자신의 상대성과 제한성과 불완전성을 부끄러운 것 으로서가 아니라 은총과 자유의 여백으로서 받아드리는 관용정신으로 열려있는 영성이다.

   새시대의 여린 영성은 단일성이란 획일성이 아닐진데 단일성과 다양 성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님을 충분히 경험으로서 아는 영성이다. 보 편성과 특수성은 모순되거나 반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영성이 다. 다양성과 특수성이 있음으로 해서 단일성과 보편성이 가능하다는 것 을 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만유는 그것이 관념적 실재로서가 아니라 현실적 실재로서 참으로 현전하려 한다면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그 자신 안 에 담지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깨닫는자는 다양한 구체적 특수성을 획일적인 "보편적 하나"에로 수렴 통폐합하려 하지 않으며, 동 시에 다양성을 잡다한 혼돈의 세계로 방치하려고 아니한다.
   만물의 존재론적 구성원리가 그럴 뿐만 아니라, 더우기 인간 삶의 체험과정이 지극히 역사적이고 해석학적이기 때문에, 인간문명세계의 모 든 가치체계와 상징체계는 그 상대성을 지니면서 절대성을 지시한다는 것을 안다. 종교적 진리 그 자체야 영원하고 절대적이지만, 그 표현과 종교적 상징 교리 경전등등 모든 역사적 산물들은 모두 상대적인 것임을 안다.
   포스트모던니즘의 특성중 하나는 근대주의가 자연세계와 역사적 현실 세계를 해석하고 관리하는데 있어서, 합리성이라는 하나의 획일적 법칙 으로서 독단을 부렸기 때문에 존재세계는 왜곡되고 은폐되고 생명은 소 외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을 절감하고 합리성을 재해석하려는 것이다. 인간정신의 냉철한 지성 기능만이 아니라 감성과 덕성의 요소도 충분히 살려내는 과학이어야 하며, 삶의 경험은 통전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 하게 된 것이다.

   다섯째, 새로운 시대의 영성은 존재와 삶이란 근본적으로 만남이 며, 만남은 나와 다른 너를 받아드림으로서 나와 네가 창조적 변화 의 과정안에서 새로워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관계적 사건이기 때문 에 텅비면서도 충만한 "진리자체이신 신비" 앞에서, 그 안에서, 그 와 더불어 감사와 겸허의 노래와 춤을 출수 있는 영성이다.
   종교인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영성은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타 종교의 깊은 영성적 경험과 진정한 만남을 경험하면서 나의 자기정체성 을 지켜가면서도 내가 창조적으로 풍성하게 변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영성이다. 진리앞에서 두려움없이 , 역사적 통찰과 자신의 내면세계를 깊이 응시하는 사람은 인간은 "대화적 존재"이며 , "만남은 본원적"이 며, "참된 모든 삶은 만남"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은 무명에 휩싸여 있거나 우상숭배자이거나 독단 론적 근본주의자일 뿐이다.
   그런데 만남은 어차피 나와 다른 실재와의 만남을 전제하며, 나와 다 르기 때문에 만남은 의미있고, 다르기 때문에 나를 새롭게 하며, 나와 다른 것과의 만남이 있기에 나는 창조적으로 변하면서 풍요로워지며, 나 의 정체성은 더욱더 돈독해지고 깊어짐을 알게 된다. 진리를 체험한 다 양한 종교인들의 만남은 상이한 체험들의 나눔을 통해서 서로 새로운 체 험을 낳고 나를 비춰보는 거울이 되고, 세로운 견해와 관점과 체험들은 나의 이전것들과 낯설고 다른 그대로 내 안에서 나를 더 풍요롭게 하는 구성요소가 되는 것이다.
   불교인과 그리스도인의 진솔한 만남을 예로들어 말하면, 불자를 불 자이게 하는 근원적 체험과 기독자를 기독자이게 하는 근원적 체험은, 그 유형적 특성과 문화역사적 표현방식과 문화풍토적 체험자체가 서로다 를 수 있고 아니 마땅히 달라야 한다. 그런데 그들의 근원적 체험을 가 능하게 하고 떠받히는 진리 그 자체는, '진리 그 자체'를 空이라고 기호 화 하던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상징화 하던지간에, 그들의 근원적 체 험보다도 항상 더 근원적이기 때문에, 모든 종교간의 만남에서 "다름과 같음"을 동시에 체험하는 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의 근본적 정체성을 지탱 하면서도, 그것은 이미 인도의 불교가 아니다. 동북아시아 문화 역사적 풍토 속에서 유교와 만나고 노장사상과 만나고 뮤교와 만나면서 창조적 으로 변화해 왔기 때문이다. 지중해 헬라문화와 로마문명 속에 퍼져들 어간 기독교는 갈리리 예수의 복음과 초대교회의 기독교적 자기정체성 을 지탱하면서도 이미 그것은 '갈릴리의 복음'이 아니다. 지중해 헬레니 즘과 로마의 문화 역사척 풍토 속에서 헬라철학과 만나고 로마의 법과 만나고 라틴어와 만나고 이교문화와 만나면서 창조적으로 변하면서 자라 왔기 때문이다.
   이제 동아시아, 특히 한국문화와 사회 속에서, 그 사회 속에서 살아 온 사람들의 마음의 場 속에서 이 세계적 종교들은 이전의 역사 속에 서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더 깊은 창조적 변화체험을 해가고 있는 것 이다. 이 변화는 너무나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마치 대륙 판구조의 지각변동과 빙하의 녹는 과정과 해수면의 수위상승 을 사람들이 곧바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류뮨명사 속에서 최초로 벌어지는 동서 우주적 종교의 심층적 만남과 그 영성적 지평융합과정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 용기 있는 사람, 맘이 열린 사람은 그것을 알고 느끼고 체험한다. 그러한 창 조적 변화가 이뤄질 가장 적절한 삶의 시공간이 동북아시아 , 그 중에서 도 종교다원적 현상이 가장 인상깊게 살아 숨쉬는 한국 문화사회인 것이 다.

3. 한국사회에서 종교간의 만남,협동,상호 창조적 변화를 위한 과제

   한국 사회가 세계위대한 종교들의 최후 정류지이며, 새로운 지평 융 합이 활발하게 이뤄져 왔던 영성적 용광로임을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 다. 한국 사회가 종교적 다원사회라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고, 그 사실은 한민족을 세계 속에서 위대한 문화민족으로서 공헌하게 만들수도 있고 스스로 분쟁과 충돌을 통한 파괴적 민족공동체로 전락 시킬수도 있 는 두 가능성을 지닌다. 전자가 이뤄지면, 인류종교사에서 경험하지 못 했던 보다 풍성하고 심원한 종교적 영성문화가 다시 한번 한민족을 통하 여 꽃피어 날수 있고, 후자의 비극적 상태가 전개되면 정치, 경제, 문화 모든면에서 파국과 황폐화가 기다릴 뿐이다. 후자가 아닌 전자의 바람직 한 새 시대의 도래를 위하여 우리가 힘써야 할 몇가지 과제를 적시해 보 자.
   첫째, 한국의 책임적인 종교들은 자신들의 전통이 철저하게 역사적 상대성과 해석학적 패러다임에 의해 제한된, 역사와 전통문화 풍토 속에서 형성되어 온, 진리를 꽃피워 온 하나의 생명나무임을 철저히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원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이해과정 은 철저하게 '패러다임 의존적'이며 자기에게 친숙해진 사물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관점과 틀에 친숙하고 한정되 있다. 가장 객관적이고 가치중립 적이어야 할 자연과학적 세계관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님을 현대 해석학 은 밝혀주고 있다. 하물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결정짓는 "궁극적 관심" 에 관여하는 종교적 진리체험, 그 상징체계, 그 오랜 살아있는 전통이 지니는 창조적 힘과 구속력에서 완전자유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는 것 이다.
   그러므로, 심층적대화, 성숙한 종교간의대화를 위해서는 우선 남을 알 기 전에 자신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자신의 종교적 유산과 전통이 철 저하게, 그 역사적 환경, 문화풍토, 지질풍토, 언어적 인종적 특성에 의 해 각인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위대한 종교들은 진리를 진리 로서 "온전하게" 밝혀주고 있으나, 진리체험과 진리자체를 모두 독점적 으로 "완전하게" 설명해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해야 한다. 그 말은 다른 종교 전통안에서도 우리 전통에 못지않는 진리체험의 패러 다임이 있다는 사실을 열린맘으로 인전하고 함께 기뻐하는 영성을 지닌 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한국의 책임적인 전통들은 서로다른 전통들의 위대한 영적 유산들을 이해하고 창조적으로 풍요로워지기 위해 적극적인 대화, 만 남, 상호협동 프로그램을 상호 주체적으로 지속해 갈 필요가 있다. 한국의 종교인들은 서로를 너무나 모른체 편견과 독단과 잘못 입력된 자기와 다른 종교인들들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병들고 있으며, 그 결과 무한한 창조적 잠재력이 잠들고 있다. 삶은 만남이며, 만남이란 본원적 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앞절에서 확인했다.
   지난 30여년동안 세계 종교학계와 종교지도자 협의회에서는 각종 다 양한 만남의 형태에 관한 연구와 실천이 있어 왔고, 커다란 진전과 공헌 이 있어 왔음을 우리가 알고 있으나, 세계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간의 만남, 대화, 협력, 상호 창조적 변화체험이 아직도 한국사회에 서는 지극히 미미한 상태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한국종교간의 상호 대화를 위해서, 각 종단의 지도자 교육과정에서 타종교에 관한 강의 개설, 성직자및 평신도 지도자들의 공동수련회, 젊 은 종교인들의 공동 생명문화 창달을 위한 웍샾, 학자들의 학술 심포지 움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다. 만남중에서도 가장 좋은 만남이 신앙인과 신앙인의 만남이요, 正敎를 위한 만남이라기 보다는 正行을 통 한 만남임을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지금까지의 크고 작은 한국에서의 종교간의 만남이 서로다름을 확인 하고 나의전통을 너에게 알려주는 정보교환 차원이라 한다면, 이번 우리 의 만남은 한발 더 나아가, "내 안에 있는 너의 종교전통이 나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가?"를 들려주는 심층적 대화의 차원으로 발 전하기를 기대한다.
   셋째, 한국의 종교들은 한민족이 처한 생명의 위기와 질곡과 그 치 유를 위한 노력의 연대전선에서 관용, 화해, 협동, 자기희생의 모범 을 실천을 통해 제시해줘야 할 과제를 지닌다.
   분단상황에서 비인간적 통신왕래 협력체제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보 다 진솔한 노력을 우리 종교인들이 게을리 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참회해 야 한다. 북한 식량위기와 재난상황에서 북한동포돕기 운동자체도 한국 종교인들의 노력이 충분했다고 자부 할 수 없으며, 한국종교인들이 지닌 무한 잠재력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 했다는 자평을 냉철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 속에 팽대해 있는 집단 이기주의 치유, 물신숭배적 배금사 상의 극복, 인성함양을 위한 교육제도의 혁신, 생태윤리의식의 고양, 종 교적 종파주의자와 근본주의자들의 발호를 견재하고 선도하는 공동 대 책의 마련, 새로운 시대의 영성 함양을 위한 예술과 종교가 융합된 프로 그램의 개발등이 시급히 요청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 종교인 들의 상호 대화, 만남, 협동을 위한 프로그램의 실천에 있어서, T.V등 대중정보매체의 개발과 사용을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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