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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0/05 (01:00)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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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가치와 기독교
생명가치와 기독교  

생명가치와 기독교 - "생태학적 정의"(Die oekologische Gerechtigkeit)를 향한 기독교의 실천을 위하여-

김 진 박사(한신대 강사)



서 론
기독교가 생태계 문제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이에 대해 신학적 또는 신앙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생태계 문제에 대 한 서구 문명의 비판이 기독교의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 것에서 촉발되었다. 기독교가 오늘날 생태계 위기의 중 요한 역사적 원인이라는 비판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든 혹은 부분 적으로 인정하든지 이로인해 자연과 환경, 그리고 생명가치에 대 한 자기평가와 반성, 그리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지 않되는 상황 에 직면하게 된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 노력은 창조 신학의 재해석을 통한 기독교의 자연관 변화와 이것을 기반으로한 생명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기독 교의 노력은 기독교가 자연과 생태계 문제인식에 새로운 파라다 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내의 신 학적 반성이 과거에 대한 책임의식을 확산시키고, 친(親) 환경적 사고를 보편화시키는데 기여한다손치더라고 그러한 의식의 변화 가 곧바로 생태계 문제의 해결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오늘날 생태계 문제와 생명에 대한 개인의 의식 변화로 해결 하기에는 생태계의 파괴현상이 자본주의 문명구조에 의해 조직적 으로, 그리고 매우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생태 계의 파괴는 단순히 자연이나 생명에 대한 잘못된 '의식'으로 말 미암은 개개인 의도적 행동보다는 그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조정 하는 '거대한 구조적 해악'이 더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환경이해에 대한 개인 의식의 변화를 기반으로하되 그 의식의 변화만을 실천 적 대안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본 발제는 생태계 파괴라는 현상이 갖는 내면적 의미를 기독교의 신앙적 측면에서 추적하고, 생태학적 정의를 위한 기독교의 성서 적 근거와 그에 따른 실천적 장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1. 생태계 파괴의 기독교 신앙적 조망

생태계의 파괴는 일차적으로 인간 밖에 있는, 인간의 대상으로서 의 자연계의 파괴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파괴는 단순히 물질적 대상에 대한 훼손과 이를 통한 자연계의 기현상만을 지칭하는 것 이 아니다.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계에 속한 모든 존재들은 상호관 계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의 한 부분의 파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계 전체의 파괴를 의미한다. 필자는 이 생태 계 파괴가 갖는 현실적이고 총체적인 의미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 고자 한다.

첫째로 생태계 파괴는 우선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 파괴를 의미한 다. 인간은 자연과의 상호 유기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영 위해 가는 존재이다. 생태계의 파괴는 이러한 양자의 본질적인 유기체적 관계의 해체를 의미한다. 생태계의 비정상적인 순환으 로 인해 자연은 불균형의 상태에 빠지고 생태계의 자정능력이 사 라진다. 인간과 자연이 상호 실존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유기체적 관계성은 파괴되고 양자간의 분리가 더 더욱 심각해 진다. 이로인 해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이 삶에 긍정적인 작용만을 하지 않고 오 히려 인간의 생활을 위협하는 실재로 부각된다. 인간의 문명이 아 무리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이 자연현상의 부정적 영향을 감당하 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창조 세계의 보전"이라는 기독교적인 가치지향은 자연을 여전히 객체로만 파악하고 이를 인간편의 중심으로 "돌보는" 태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 과 자연과의 유기체적 관계의 정상적인 회복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 생태계의 파괴로 말미암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파괴는 다 른 한편으로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파괴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 다. 생태계의 파괴는 인간 중심적인 가치가 불러온 결과이다. 이 러한 태도는 결국 인간이 자연에 대한 태도를 넘어서 인간 상호간 에 대한 태도로 발전한다. 즉 인간은 다른 존재를 객체화시키며 이용하듯 타인을 자신의 수단적 대상물로 삼는데 익숙해지고 있 는 것이다. 또 인간이 늘상 마주대하는 자연세계와의 부조화는 인간의 이성과 감성등 내면세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되고, 이것 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피괴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고있다. 생태계의 파괴가 인간 제 관계의 파괴를 반증함과 동시에 이러한 인간성의 파괴는 순환적으로 생태계의 파괴를 가중시키게 된다. 창세기에 나타난 인간 타락기사는 인간 상호 관계와 인간와 자연 의 관계가 결코 독립적이지 않고 오히려 같은 운명임을 시사해 준 다. 이러한 사상은 인간의 타락기사에 뿐 아니라 성서 전반에 나 타난 사상이며 특히 사회정의를 외쳤던 예언자의 외침에서도 극 명하게 부각되는 사상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예언자 호세아의 입을 통해 다음과 말한다. "이 나라에는 진실도 친절함도 없고, 나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도 없다. 너희는 신의 이름을 내세 워 함부로 맹세하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살인과 도둑질과 음행 을 저지른다. 어디서나 폭력이 나무하고 살인이 그칠 새가 없다. 그리하여 온 땅이 메마르고 나라가 번창하지 못하며 온갖 생물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이 사라지고, 물고기 들마저 그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호세아 4:1-3) 이러한 선포는 인간사회의 불의와 폭력, 부도덕등은 곧 자연세계의 침몰로 이어 지고 있다는 사실을 신앙적으로 증언하고 있는것이다.

세째로, 생태계 파괴의 신앙적 의미는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인간 과 하나님과의 관계능력(Beziehungsfaehigkeit)의 상실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인간-자연의 관계'를 하나의 총체적인 관점에서 바 라볼 때 생태계의 파괴는 이러한 총체적 관계성 중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밀접한 신앙적 관계가 상실되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 면 자연의 파괴로 말미암은 생태계의 파괴는 결국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대한 파괴이며, 이는 하나님과 인간이 더 이상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형성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자연과 인간의 관계의 변화는 이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 향을 미치게 된다.

요약해 보자면 생태계 파괴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체적 관계, 인간 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의 신앙적 관계를 인간만을 중심으로 하는 힘의 의한 "일방통행"적 관계로 변질되 킨다. 즉 세 관계가 갖는 상생(相生)을 위한 자유롭고, 책임성 있 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막고 각가 소외된 실재로 인식하게 한 다. 따라서 현실 생태계의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독교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제관계의 총체적 비판에서 출발해야 하여 새로운 관계성 의 재정립과 회복을 지향하는 생태계의 보존과 치료를 시도해야 한다.

2. 생태계학적 정의에 대한 담론들

기독교는 정의를 통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회복하고 나아가 서 하나님의 평화(샬롬)가 그 사회에 실현되기를 희망하고 실천 하는 종교이다. 그 동안 세계 기독교의 진보세력은 자본주의 이데 올로기와 반(反)민주사회에서 억압받는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한 사회 정의 실천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 왔다, 국가간, 계층 간, 인종간, 남녀간의 불평등이 있는 곳에 정의는 반드시 실현되 어야할 기독교의 실천적 덕목이었다. 오늘날 기독교는 인간의 사 회구조적 관계를 넘어서 생태계에 자행되는 불의한 인간의 행위 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편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불의를 자행 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또한 인간은 자연에 불의를 지속적으 로 자행해왔다는 사실을 자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에 서 제시한 생태계의 파괴가 갖는 제 관계성의 왜곡을 회복하기 위 해 기독교의 "정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왜냐하면 기 독교에서 말하는 정의는 모든 실재들의 제관계의 정당한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빼앗 긴 자연의 권리를 되찾아 주려는 노력은 기독교가 정의 실천의 범 주에서 다루어야 한다. 정의가 없는 평화가 거짓평화이듯이 정의 가 없이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의 평화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생태계 문제를 "정의"라는 사회적 실천개념을 가 지고 접근하려는 입장에 대해서는 많은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반론은 자연이나 생태계 문제에 "정의"을 원칙적으로 적용 하려 할 때 이것의 적용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지고 이로 인해 상호 조화되지 않는 난점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즉 이러한 반론의 한 예가 이 정의의 문제를 모든 생물에 이르기까지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이다. 두 번째 반론은 정의의 문 제는 오직 인격체, 즉 인간 상호간 관계에서만 취급될 수 있는 문 제라는 주장이다. 인간의 정의는 인간과 비인격적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는 실현될 수 없고 오직 상호의 의무적 관계가 설정되는 존 재들 사이에서만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반론들에 대 해 기독교는 인간의 도덕적 본질이 다른 존재자에 대한 의무와 결 부되었을 때 그 "존재자는 일차적인 도덕적 권리"를 소유한다는 주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연 피조물도 생명의 차원에서 가치와 권리를 소유 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라는 정 언적 증언만으로도 인간외 타존재에 대한 가치와 권리부여가 가 능하며 이 때문에 인간은 존재자들의 생명가치에 대해 의무를 지 고 있어야 한다. 결국 생태학적 정의는 다른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가치와 권리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이것에 위 한 인간의 실천적 사회적 대응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생태계의 파괴라는 불의한 현상에 대해 기독교가 말하 는 정의는 어떻게 접근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의 신학과 신앙은 이 생태학적 정의를 향한 실천에 기여 할 수 있는가? 생태학적 정의의 실질적인 실천과제를 필자는 두가지 차원에서 다시금 정 리하고 한다. 첫 번째 과제는 생명가치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다. 즉 생태학적 정의 실현을 위해서 우선 창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 과 인간, 그리고 자연세계가 갖는 상호관계의 본연의 모습을 "관 계적 시각"에서 살펴 보아야 한다. 이러한 생태계에 대한 의식의 변화를 위해 창조신학을 재고찰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리고 이 창조신학의 재고찰은 신약속에서 나타나는 "만물속에 거 주하시는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러한 하 나님 창조질서에 재해석에 근거한 인식의 변화는 기독교가 생태 계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중요한 신앙적 기반이자 출발점이다. 두 번째 과제는 생태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실천 운 동이다. 이제 생태계 문제는 이미 사회, 국가의 구조적 문제로 표 출 되고 있기 때문에 생태계를 계속 위협하는 '물질 지상주의를 중심으로 물신화(物神化)된 사회 경제구조'에 대응할 실천 방법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부조리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가적으로 가 난한 나라, 한 사회안에서는 가난한 민중들이라는 사실이 생태계 문제를 위한 운동이 사회적 정의 운동으로 확산 될 필요성을 절감 해야 한다. 기독교는 이것을 교회 내, 외, 그리고 개인적, 혹은 집 단적 삶의 영역에서 구체화시켜야 한다.

결국 기독교의 생태학적 정의는 신학적 반성을 통한 의식 변화작 업과 이것를 기반으로한 생태계 문제해결에 실천적인 동기를 부 여하는 두 차원의 종합적 개념이다. 이러한 "생태학적 정의"라는 개념은 생태계의 파괴를 하나님, 인간, 그리고 자연 생태계간의 관계적 차원에서 조망하면서 인간과 자연과의 인격적 관계의 가 치를 주장하는 "생태지향적 환경론"에 대한 제비판도 동시에 수 용하는 실천적 개념이다.

3 성서에 대한 생태학적 주석

'생태학적'이라는 용어는 단지 하나의 내용이나 주제를 언급하는 말이 아니라, 문제를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인 방법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태학적 정의를 위한 증 명을 위해 성서를 생태학적으로 주석(Oekologische Exegese)하 고 해석하는 것이 작업이 요청된다.

3-1 구약의 창조신앙

하나님의 창조기사를 생태학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창조신학의 본 래의미를 회복해 내는 작업이다. 오랜 기간동안 기독교 신학은 창 조신학을 구원신학, 또 계약신학의 "부록"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창조신학의 생태학적 의미가 사장(死藏)되어 있었다.

폰 라드는 1935년 자신의 "구약 창조신앙의 신학적 문제"(Das theologische Problem des alltestamentlichen Schoepfungsglaubens)라는 공개강의에서 진정한 야웨신앙의 관 점에서 볼 때 창조신앙은 어떤 독자성(Selbsstaendigkeit)과 실질 성(Aktualitaet)을 갖지 못하고 주장하면서 오직 구원신앙에 철저 하게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신학적 주장으로 말미 암아 자연은 한낱 구속이 일어나는 '무대'로 전락했고, 인간의 타 락이 강조됨으로서 "하나님-인간(남자-여자)-다른 피조물" 위계 적 도식이 신앙적으로 정형화되었다. 이 구속신학에 따른 창조주 와 피조물의 확연한 구분은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의 공존적 관 계"에 대한 해석학적 지평을 크게 약화시켰다. 그 결과 창조신 학에 대한 구속신학적 이해 는 기독교가 반생태학적 종교로 비 판당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 늘날 기독교는 생태학적 창조신학을 재수립해야할 과제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창조신학의 생태학적 주석 "신과 인간과 자연 (우주)"를 총체적으로 통찰하는 시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까 지 창조신학을 인간 중심주의적(anthropozentrisch), 신 중심주의 적(theozentrisch), 혹은 우주 중심주의적(kosmozentrisch) 통찰 중 어느 하나의 관점에서만 시도하려 했다면 이제는 이것을 상호 관계적으로 이해하는 "우주-신-인론적 전망"(kosmotheandrische Vision)으로 살펴 보아야한다. 이것은 창조 이후 하나님, 인간, 피조물들이 한 "동산" 안에 있었다는 상징이 보여주는 "통전적 관 계"를 읽어 내는 작업이다.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창 1:1)

성서의 이러한 증언은 그 "천지"로 표현된 세계질서 총체성 속에 서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밀접한 관계성을 읽게 한다. 이러한 관계 성은 창조행위의 흐름속에서도 읽을 수 있다. 오직 신적 창조행위 만을 표현하는 히브리 말 "바라"(창조하다)는 無에서 有의 창조를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어떤 대상이나 물질에 대한 상 대적인 행위로서의 창조가 아니라 하나님 자기 자신과 내적 관계 로 말미암은 창조임을 증언한다. 즉 모든 자연의 창조는 하나님 오직 자신으로 말미암은 행위이다. 이것은 이 모든 피조물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창조행위가 시사하는 하나님과 자연피조물과의 내적 관 계성 표현은 인간 창조기사에서 보다 극적으로 들어난다. 성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으로 창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 통적으로 기독교 신학은 이 기록을 인간을 인간외 다른 피조물과 질적차별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사용했다. '하나님의 형상' 으로서 곧 "창조의 면류관"(Krone der Schoepfung)이라는 논리를 종교 적으로 합리화 시켰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의 의미는 인간과 다른 피조물의 질적 차이를 보여주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이 인간과 밀접하고도 역동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를 증언한다. 즉 하나님과 인 간의 내밀한 인격적 관계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형상을 내용적으로 살피면 "인간도 하나님처럼 자기와 다른 존재 에 참여하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한 몸을 이루고 살도록 창조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 창조의 모습 을 근거로 인간을 창조물의 우두머리격으로 보고 인간을 자연과 분리시키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이 인간창조 기사가 하나님 의 창조행위 가운데 중요한 창조행위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사실 이지만 이런 인간창조도 결국 다른 피조물의 세계 내에서의 창조 임을 나타낸다. 태초의 인간의 이름을 땅이라는 어원으로부터 "아 담"이라고 부른 것도 인간이 그 자연으로 말미암은 창조물임을 말하면서 인간이 하나님 뿐 아니라 자연과도 뗄레야 뗄수 없는 관 계를 가지고 있다는 보여준다. 이러한 차원에서 인간은 자연을 의 존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인간의 창조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자연, 그리고 그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한 동산안"에 하나님과 자연, 그리고 인간이라는 세 관계가 상호 구분은 되지만 분리됨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 상태에서 하나님의 안식은 가능했다. 하나님의 칠일째 안식은 이 삼중적 관계의 온전 성에서만 비롯되고, 또 그것을 표현하는 또 다른 창조행위이다.

3) "다스림"

창조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 관계 형성된 것은 단순 히 이 삼중적 관계가 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적 으로 "펼쳐지기 위해서" 형성된 것이다. 즉 이 관계는 창조의 뜻 과 목적을 향해 설정되어 있다. 그 창조의 뜻과 목적은 혼돈에서 질서로, 그리고 안식이라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행 위의 구조와 내용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창조의 뜻은 혼돈이 극복되고 평화의 세계 창조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 관계의 펼침의 방향은 혼돈이 아닌 평화를 향한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정향되어 있다. 평화의 세계 창조를 위해 제 관계는 단순 한 공존을 넘어 또다른 역동성을 필요로 하고 그 역동성은 상호관 계들에 대한 역할과 책임부여로 형성되고 있다. 여기서 인간에게 부여된 다른 피조물에 대한 "다스림의 권한"이 갖는 의미를 파악 할 수 있다.

인간에게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다는 성서의 증언 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이자 인간에게 주어 진 의무였다. 혼돈의 세계가 하나님의 창조행위로 말미암아 질서 잡힌 세계가 된 지금 계속해서 이 상황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다스림의 의무와 능력이 부여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갖는 다스림도 어떤 경우에도 자연세계와의 평화적인 관계유지를 토대로 펼쳐지는 행위이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 세계를 위임 받았으며, 이 인간의 다스림은 무에서 유의 창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상이 할뿐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연장선상에 있 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 다스림의 권한을 주었다는 사실 은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가 아 니다. 오히려 이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위임받고 있는 인간의 직무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다스림을 인간이 동 물과 식물을 포함하여 창조세계를 죽이고 착취하는 권리나 그 행 위의 정당성 인정 기준으로 오해할 수 없다. 이 인간의 다스림의 권한은 인간외 창조물도 같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인 식하는데 출발해야 한다.

이 인간의 창조행위로서의 다스림의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은 "하나님이 이 세상이보시기에 참 좋았다"라는 성서의 증언에 있 다. 하나님 스스로의 가치평가는 단순히 심미적인 차원에서의 언 급만이 아니라 창조된 세계의 완전한 조화를 의미한다. 그러므 로 인간의 다스림의 행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창조세계 를 계속 "참 좋게 유지시킬 의무"속에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인 간의 다스림의 가치기준이야 말로 인간의 대리권 행사를 창조의 목적과 뜻을 부합되게 한다. 이러한 이해에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 자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비로소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 이 대 리자의 역할은 세계에 대해 전권을 휘두르는 통치자의 모습으로 이해될 수 없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을 대리적으로 행사하 는 존재이며, 이를 어겼을 경우 그것은 곧 자신이 지신 "하나님의 형상"을 스스로 파괴함을 의미한다.

4) "식물을 먹이로 삼으라"

우리는 성서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이나 동물에게 준 먹을 거 리는 오직 식물이었다는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창 1: 29-30) 이러 한 성서의 증언은 인간과 동물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물 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본래 창조질서가 아님을 보여준다. 창조신학에서는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먹을 거리의 제공을 위한 '약육상식'의 논리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생 명가치에 대한 철저한 사상이 깔려있다. 이러한 성서 기자의 신 학적 주장은 생명가치에 대한 새로운 전환을 요구한다. 즉 생명유 지를 위한 명목하에서 조차 다른 생명파괴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사상이 그것이고 이러한 사상은 곧 평화사상으로 발전한다. 즉 창 조기사를 섰던 기자는 힘의 논리나 억압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인간과 동물 그리고 식물 세계의 평화적 공존이 본래의 창조질서 에 합당한 것이라고 신앙하고 있는 것이다.

이 창조의 이야기를 자연세계 입장에서 보면 자연 피조물은 하나 님을 생명을 주신 분으로, 인간을 그 생명을 가꾸어 나가는 자로 서 수용하게 되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 식물을 먹을거리로 제공한 다. 결국 인간은 다른 피조물 위해 존재하고, 또 다른 피조물도 인 간을 위해 존재한다. 이것은 이제 서로의 존재론적 연관성을 넘어 서서 서로의 현 생명을 위한 서로간의 절대적 필요성을 드러내기 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성서가 단순히 동물, 식물, 하늘, 땅 등의 구체적인 묘사만 있을뿐 인간외 다른 피조물을 묶어서 지칭하 는 어떤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 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세계를 자신의 한 대상적 집단으로서 폄하 시킬 수 없으며, 인간과 구체적으로 관계를 갖는 하나님이 창조하 신 같은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은 구체적 실재들과 관계성은 그들에 이름을 지어주는 인간의 행 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창2:9)

이상에서 필자는 창조신신학을 우주-신-인적 전망 속에서 살펴 보려 했다. 이것은 창조신학에서 표현되고 있는 세 실재의 내밀한 관계성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이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님을 위해 일방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과 인간이 자연을 위해 일방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창조이야기는 하나님 과 피조세계가 인간을 중심으로 엮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언 하고 있다. 이 세차원은 서로 분리됨이 없이 상호 영향력를 미치 며, 어느 한 차원의 파괴는 결국 다른 차원을 함께 파괴 시키는 것을 보여 준다.

3-2 그리스도 사건 속에서 계속되는 창조 사역

구약성서를 생태학적으로 읽는 작업만큼이나 신약성서 대한 생태 학적 주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약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구 원사건에 대한 신앙고백이 오로지 인간중심적으로 재구성한 '인 간 구원론'만을 주장한다면 이 또한 창조 이야기의 '곡해' 만큼이 나 위험한 것이다. 기독교가 고백하는 그리스도를 통한 칭의, 화 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희망등은 인간의 세계를 넘어서서 전 창조세계를 포함하는 우주적 차원에 까지 적용되어 야 하기 때문이다.

신약은 하나님의 창조행위가 과거의 사건이자(마가 10: 6), 현재 에도 계속 발생되고 있으며(고전 3: 6, 고후 5: 17), 미래에도 나타 날(계 21: 5) 행위임을 증거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의 시간 적 연속성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 진다. 구약의 창조 이야 기가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 관계의 출발과 전개 그 파괴를 묘사하 고 있다면 신약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제 관계의 화해와 만물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즉 기독교는 구원사건으로서의 그리스도 사 건이 또 하나의 새로운 창조행위로서 인간뿐 아니라 피조물의 온 전한 회복을 궁극적으로 지향한다고 신앙한다. 그러므로 이 그리 스도 구원사건 속에 인간과 자연 만물이 다 포함되어 있다. 바울 은 이 그리스도의 계속되는 창조행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 십니다. 만물이 그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 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오, 죽은 사람 가운데서 맨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살아나심은 그가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려고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물게 하시기를 기뻐하 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습니다."(골 1: 15-20)

위 성서말씀은 그리스도의 창조 대리권을 설명하는 말씀이다. 여 기서 그리스도는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받아 창조 권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 묘사된다.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 분 안에서 지금도 만물이 존속하고 있다는 표현은 그리스도가 이 만물의 대리 창조자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 주 고 있는 것이다. 이 성서의 증언은 기독교인의 구원에 대한 신앙 고백의 지평을 확대시켜 주며. '세계 창조의 연속성과 그로 인한 만물의 회복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이 강조된다. 이와같은 사 실은 쓰여진 "삶의 자리"를 보면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편 지가 도착한 골로새라는 지역은 오늘날 코나스(Konas)라는 지역 으로 이 지역은 기원 61녀경 전지역이 지진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폐허가 되었던 곳이었다. 이 지역은 로마의 식민지라는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자연재해라는 이중적인 삶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곳이었다. 이 서신을 받았을때에는 이 지진의 피해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모든 창조물은 말 그대로 위협을 받았고, 현 재에도 늘 서로 위협을 받으며 파괴될 수 있는 것"으로서 당시 그 리스도의 공동체 이 재앙을 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해서 이 재 앙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를 망각하게 할 수 는 없었다. 이러 한 상황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창조 대리권을 강조하면서 이 창 조의 세계가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해의 길로 들어섰음을 선언하 고 있는 것이다. 지진이라는 자연의 파괴적 행위를 경험한 공동체 에게 바울은 그리스도안에서 계속되는 창조와 그리스도와 만물이 서로 화해시키셨다는 증언으로 구원신앙을 보다 실감있게 넓혀나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파 손된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계속되는 창조행 위로 인해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망각한채 기독교가 창조 신앙의 연속성을 신앙하지 않고 인간 중심주의적인 구원관을 주 장한다면 그리스도의 구원의 총체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기독교 가 생태계의 회복을 위해 정의를 실천해야할 당위와 믿음은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총제적 구원론에 근거한다.

성서를 생태학적으로 주석하고 이해할 때 성서가 본래 반 생태적, 반 생명적 가치를 지향하지 않으며 오히려 생명의 가치를 하나님 과 인간과의 연결 속에서 그대화 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 진 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생태계의 파괴에 인식론적인 근거를 제공 했다는 비판은 성서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그 성서를 왜곡시켜 해석, 적용한 결과이다.

4. 생태학적 정의를 향한 기독교의 실천의 과제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구원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으 며, 그 그리스도 구원사건의 핵심은 인간의 구원을 포함한 "만물 의 회복"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에 대한 희망에 있다. 이러한 희망를 근간으로하는 기독교의 생태학적 정의를 위한 실 천의 영역은 크게 다음 두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첫번째로, 생태계의 위기 상황에서 오늘날 기독교인과 교회들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새로운 신앙고백을 형성하고, 그로부터 주 어지는 생태학적 정의를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교육과 프로그램 이 지속적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생태학적 정의의 실천을 위해 창조 세계에 대한 기독교인의 책임의식을 강조하고 이것을 통해 개개인 삶의 방향이 이 정의에 정향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은 지금까지 자연 파괴적인 사회구조에 직, 간접적으로 동조 한 개인의 삶에 대한 올바른 "회개"운동이다. 이 회개운동의 방향 은 크게 사고의 근본적인 전환과 구체적 삶의 형태의 변화로 나 누어질 수 있다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은 앞서 서술한 창조 이야기 와 그리스도 사건의 총제적 의미에 대한 생태학적 인식을 삶으로 체화시키는 작업이다. 삶의 형태의 변화는 이러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그동안의 습관화된 반 환경적 행동들을 고쳐나가는 작 업이다. 생태학적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개개인들의 생활 덕목으 로 우선 자발적인 경제적 절약운동, 단순한 삶의 구조형성, 생태 학적 정의를 위한 전지구적 연대의식 형성을 근간으로 다음과 같 은 구체적 과제를 갖는다: '(1) 생태학적 상호연계의 인식과 이런 한 연관관계에 대한 인식에서의 책임적 삶과 행위, 2)자연환경의 희생을 초래하는 생활관습과 소비습관의 포기와 새로운 행동방식 의 실천, 3) 상습적 부주의한 관습의 변화(예, 불필요한 폐기물 삼 가 등등), 4) 친환경적 상품에 대한 배려, 5)절제와 검소한 생활방 식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인간성(제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 대성)을 향한 인식전환, 5)새로운 능력과 실제적으로 환경을 의식 하는 풍부한 감수성의 훈련, 5) 현장에서와 보다 폭넓은 상황에 서의 환경훼손과 해악에 대한 민주적 항거를 포함하여, 환경정책 에 대한 참여를 통해 정치적 여론 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성숙 한 국민의 책임적 참여'등이다.

이러한 실천적 작업의 확대를 위해 교회내에 존재하는 교회 교육 의 장을 활용해야 한다. 즉 예배, 성례전, 세례교육, 교회학교 교육 을 통해서 생태계 회복을 위한 운동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임을 역 설해야 한다. 그리고 이 교육은 반복적으로 지속, 강화되어야 한다. 두 번째 영역은 이러한 생태학적 정의에 대한 신앙적인 이해와 고 백을 근간으로 기독교인과 교회는 이를 외적으로 다른 환경운동 단체들과 연대하여 생태계를 무시하는 온갖 사회적, 경제적 구조 에 대항하는 실천운동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러한 실천 운동은 하 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새로운 과제로 부각된다.

앞에서도 기술 했듯이 "생태학적 정의"라는 용어 자체가 생태학 을 파괴시키는 "불의한 구조와 사회관계"를 전제하는 것이다. 생 태학적 정의를 위한 실천은 개인적인 환경보호 운동 차원에만 머 무룰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실천운동은 개인의 삶 의 변화에 대한 노력과 병행해서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 적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환경운동과 일반 환 경운동은 실제 내용에 있어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기 ㄸ문에 상호 실천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일반 환경운동 단체들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인적 관리와 교육제도를 체계적으로 활용하 고, 기독교에서는 일반환경운동의 전문적이고 현실적 지식을 습 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생태계 문제와 생명문제를 위한 종교간의 연대모임이 활성 화되어어야 한다. 생명에 대한 나름대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 는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 한국의 전통종교들은 생명 사상에 대한 풍부한 토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생명에 대한 사 상적 토대가 오늘날 각 종교가 인식하는 생태계의 위기에 위한 실 질적인 실천으로 연결되고, 이것이 제 종교간의 연대로 이루어져 야 한다. 이러한 종교간의 연대 모임은 단순히 생태계에 대한 상호 통일된 이해의 확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파괴는 조장하는 기업, 단체, 정부에 대한 힘있는 압력단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각 종교들의 범 신도적 운동으 로 확산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론
오늘의 기독교의 신앙과 신학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이원 론적 인식론, 시간적으로는 직선론적 역사관, 하나님 부재의 세계 관을 거부한다. 그 대신에 자연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고, 인간 도 자연임을 인정하는 실재관, 역사의 발전은 신과 인간과 자연의 상통적 교류의 결과로 보는 역사관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이 기독교는 인간과 자연을 주체와 객체가 아닌 주체와 주체의 관계 로 파악하고, 상호 대화적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 대해 서 또한 인간과 자연은 역시 주체이다. 이러한 새로운 인식을 바 탕으로 현재 자행되고 있는 생태계 파괴의 현장에서 생태학적 정 의를 위한 실천은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의 가장 중요한 신앙적 실 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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