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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3/01/01 (09:06) from 62.104.211.66' of 62.104.211.66' Article Number :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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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노벨상




              










전통과 노벨상


김용운 교수





한국인 100명 가운데 하나 정도는 있는 지수인, IQ 130의 노벨상 수상자의 업적은 IQ 180의 업적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1997년,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미국을 앞지르고 세계 제1위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는 노벨상 수상자가 한명도 없다. 이러한 사실에서 노벨상 수상 대상자는 결코 IQ 또는 지식의 양에 관한 문제가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과학 업적과 문화 전통의 관계를 신중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하학의 정신



유럽 지성들 사이에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후 서구문명의 위기의식이 높아지면서 그 본질에 관한 논의가 일어났다. 특히 슈팽글러(O. Spengler, 1918∼1922)는 {서양의 몰락}에서 문화 문명에는 반드시 생명력에 강약 리듬이 있으며 서구문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고 그것이 위기임을 경고했다. 미래론적인 형식을 통해 그는 서구문명의 본질을 규명하는 시도를 했었다. 최근 화제를 일으킨 {문명충돌론}(S. 헌딩턴)처럼 서구정신과 타문명권 정신의 충돌을 예고하는 것도 서구정신을 묻는 또 하나의 형식으로 볼 수 있다.

1988년 3일동안 전세계의 지성들이 모여 '유럽정신의 본질(European Identity)'을 주제로 한 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그 회의의 마지막 결론을 내린 E. 모린(Morin)은 서구정신을

1. 희랍, 로마의 전통

2. 유태기독교의 전통

3. 프랑스혁명의 영향

으로 요약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련한 고찰은 제1차세계대전 직후 황폐해 가는 서구문명에 대해 위기의식을 지녔던 프랑스의 주지주의 시인 P. 발레리(P. Valéry)도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는 동양에는 없고 서구에만 있는 것을 서구정신으로 규정하고 그 첫머리에서 인간정신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물음에 답하여 '그것은 곧 꿈을 갖는 일이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꿈을 지녀 왔고 그것을 실현했으며 계속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하늘을 날고 싶다(비행기), 산을 움직이고 싶다(핵에너지), 먼 곳에 단숨에 가고 싶다(자동차), 먼 곳에 있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전화, 전자통신) 등. 이들 대부분의 꿈은 실현되었다. 한편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도 있다. 불로장생, 인류전체가 하나의 언어로 통일이 되고 평화롭게 사는 것 등.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던 바램들이다. 그러나 인류는 계속해서 꿈을 꾸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이들 미완성 과제의 실현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꿈과 실현화 사이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이들 대부분의 꿈이 이루어진 곳은 유럽문명권이었다.

발레리는 이어서 이 꿈을 실현시킨 유럽정신의 특질이 무엇인가를 물었으며 다음 3개의 영향을 받은 사람을 유럽인이라고 규정했다.

1. 로마법의 영향(법률로서 국가를 통치한다는 사상)

2. 기독교의 영향

3. 희랍의 영향, 유클리트기하학의 정신

이들 내용 가운데 모린과 발레리에게 공통되는 중요한 항목은 기하학의 정신이다.

과학적 사고에는 효과적인 틀이 필요하다. 유클리트기하학은 서구과학의 이상적인 모델로서 서양지성사의 커다란 줄기가 되어 왔으며, 그것은 수학뿐만 아니라 다윈의 진화론, 뉴튼 역학, 스피노자의 윤리학 등 거의 모든 학문의 본이 되어 왔다. 유클리트기하학을 단순히 도형의 학문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도형을 자료로 삼는 지성의 체계이며 과학의 방법논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유클리트 기하학의 명제를 생각하자.

'삼각형의 두 변의 길이의 합은 다른 한 변의 길이보다 길다.'

개는 먹이를 뒤쫓을 때 지그재그로 가지 않고 목표물을 향해 직선으로 달린다. 동물조차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는 이 명제를 굳이 위와 같은 정리의 형식으로 배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유클리트는 일단 설정한 정리의 증명이 공리(현시점에 있어서의 가능한 도전)로부터 차곡차곡 논리적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을 중요시 했다. 이것은 이상(정리, 꿈)을 설정하고 그것에 도달하는 길을 논리정연하게(합리적으로) 제시하는 체계이기도 하다.

사고력이나 발상만을 문제시한다면 한국인의 두뇌는 결코 서구인에게 뒤지지 않는다. 가령 다음의 김삿갓의 詩에서는 예리한 수학적 직관을 볼 수 있다.


可憐江浦望 明沙十里連

令人個個拾 共數父母年

( 아름다운 明沙十里의 江浦를 보라.

사람은 시계, 낱낱이의 모래알을 줍게 하고, 그 수만큼 부모의 나이를 잡수시게 하라.)


근대수학의 무한논은 '두 집합 사이의 일대일 대응'에서 출발하였다. 무한의 대상에 대소를 비교하는 계산법은 '일대 일대응'의 기본이다. 위의 시에서 김삿갓은 '모래알의 집합'과 '부모의 나이'를 일대일로 대응시키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모래알 같이 많은 나이'라는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정확한 일대일의 발상으로 근대수학의 정신을 엿보이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유클리트기하학과 같은 논리체계가 없었음으로 적극적 무한논으로는 승화하지 못하였고 한낱 발상에 머물고 말았다.






Ⅰ-2. 과학정신과 문학





전통



과학(또는 수학)과 문학은 전혀 다른 분야이다. 하지만 전통 문화의 입장에서는 문학과 과학(수학)은 하나의 전통적 사고이다.

한국문학과 서구문학을 비교하면 금방 떠오르는 몇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문학에는 서구와 같은 비극이나 서사시의 고전이 없다. 또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SF와 추리소설 분야가 저조하며,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화제가 될 때도 있다. 한국인의 정적(pathos) 경향이 이성(logos)을 앞도하는 까닭일 것이다. 이런 일은 서구는 물론 가까운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며 한국문학 특성이 우리 전통 문화의 특성을 시사한다.

서구 문학에서는 파스칼이 말하는 '섬세함과 기하학의 정신'이 줄곧 대립하고 융합하면서 과학발전의 동기를 제공해 왔다. 그것은 서구문학이 줄곧 중요한 주제로 삼아온 '知'와 '대결정신'의 전통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희랍비극은 서구 문학의 한 원류이다. 특히 {Oidipous}는 知의 탐구, 지적인 도전, 지의 한계 인식 등 [知]를 주된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그 형식은 요즘의 추리소설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한국 문학에는 이러한 전통이 없으며 이것은 한국문학계에서 과학 소설이나 추리소설의 저조함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의 서문에는


"킬리만자로, 높이 19700ft, 눈에 뒤덮인 이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 그 서쪽 봉우리에는 말라 얼어붙은 한 마리의 표범의 시체가 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아무도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로 시작된다. 이 내용은 강렬한 대결, 도전의식의 표시로 간주된다.

한편 한국의 투철한 애국자의 한 사람인 한용운은 {해당화}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렵습니다.



전자의 강한 대결정신 또는 도전의식과 후자의 '기다림'의 마음은 매우 대조적이다. 이와 같은 대조적인 태도는 문학 전반에 반영되어 저마다 문화권의 문학특성을 나타내며, 특히 서구문학의 중요한 주제인 대결정신은 때로 과학적 상상력의 가능성과 한계를 제시한다. 특히 미래에 대한 도전은 단순한 공상이 아닌 합리적인 접근에서 시도되는 것임으로 상당한 수준의 과학지식이 곁들여지고 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로 노벨상을 받았다. 한 늙은이가 하룻밤 내내 큰 고기와 힘을 겨루다 끝내 그 고기를 잡게 된다는 줄거리의 {노인과 바다}는 단순히 고기를 잡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날샌 표범이 눈덮인 19700피트의 높은 곳에 목숨을 걸고 기어코 올라가는 정신, 즉 있는 힘을 다하여 가능성에 도전하는 정신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단순이 먹이를 찾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킬리만자로의 험한 산봉우리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대결정신과 과학 업적



위대한 과학 업적을 올릴 수 있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정신은 문제 해결에 대한 집착에 있다. 노벨상 급의 업적은 '인류 문명에 기여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데 과학자의 연구 대상에 대한 집념, 열정, 자신 등의 정신적인 요소가 그것을 가능케 한다. 天才와 才士의 차이는 이 정신의 유무에 있다. 말하자면 킬리만자로의 봉우리에까지 올라가는 정신이다. 왜 오르는 것인가?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첫 등반에 성공한 히라리(S. Hillary)경의 말이다. 왜 이 문제에 도전하였는가라는 물음에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는 상보다는 '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대답한다.

비극 오이디프스의 주인공은 자신의 파멸을 가져올지도 모른 비밀을 앞에 두고 '나도 무섭다. 그러나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절규한다. 무한론의 창시자 칸토르(G. Cantor)는 '수학의 본질은 자유에 있다'는 신념으로 새로운 도전에 열정을 태우며 무한의 비밀을 파헤치다가 정신병원에서 죽어야 했다. 1993년에 해결 된 'Fermat의 마지막 정리'의 해결은 장장 360년간 모든 수학자의 꿈이었다. 도전하는 사람 모두가 좌절했고 이것에 도전하는 일은 수학자로써 성공을 바랄 수 없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와일스(A. Wiles)는 기어코 해결하고 말았다. 마치 킬리만자로의 산꼭대기에 올라간 표범이 체험한 것처럼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해서 수학적으로 부산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왜 이 문제에 도전했는가! 노벨상급의 업적은 거의 모두가 이 대결정신의 소산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기하학과 비극의 정신



한국문학에는 서구적인, 즉 희랍이나 시에굿스피아의 비극과 같은 것이 없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A. N. Whitehead)는 '비극'은 '기하학의 정신'에서 나왔다고 갈파한다. 비극이 비극일 수 있는 것은 일단 정해진 운명은 결코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데 있다. 인간은 그 운명을 모르고 오직 최선을 다해서 그 족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다가 드디어 그 족쇄 앞에 쓰러지게 된다. 여기에 인간의 위대함과 비극성이 있다. 비극에 있어서의 운명은 기하학에서는 공리가 된다. 일단 공리가 정해지면 모든 논리는 그 기반 위에서만 전개되며 그렇기에 뇌수를 말리는 사고 끝에 도달하게 되는 '해결불능'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유클리트 기하학에서는 자와 콤파스만을 사용할 수 있다. 가령 임의의 각의 3등분은 자와 콤파스만으로는 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는 임의의 각의 3등분은 기계적인 방법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수학자는 결코 그 공리를 바꾸지 못한다. 처음 이 '임의의 각의 3등분' 문제가 제기된 이후 수많은 수학자들이 이 문제에 도전했으며 드이어 2000년만에 발견한 사실은 '자와 콤파스'만을 사용해서는 불가능하다'는 명제였다. 그것은 이미 공리가 설정될 때 내재되어 온 운명적인 귀결이었다. 수학에는 지금도 수많은 난문제가 있으며 그중에는 수천 수백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수학자들이 씨름한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성인간은 기어코 이들 난제에 도전하며 불가능성을 증명할 때도 만족해야 한다. 그것은 곧 이미 공리(운명)가 정해졌을 때 좌절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의 증명인 것이다.

끝까지 운명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이 비극의 본질이며 그것이 유클리트 기하학의 기본이다. 증명이 곁들여지지 않은 근사적 해법에 있어서는 동양이 서양에 앞설 수도 있다. 실제로 고차방정식의 근사해법은 동양이 서양보다 600년이나 앞서 발명했다. 공자는 사후의 세계를 묻는 제자에게 '이승의 일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저승의 걱정은 쓸모없는 일이다'고 一喝했다. 공자가 수학자라면 엄격한 증명보다는 현실적을 근사해법을 택했을 것이다.




철학과 수학



20세기 최대의 과학 업적은 한결같이 인간 능력의 한계를 제시해 왔다.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양자의 운동과 위치를 함께 확인할 수 없다), 괴델의 [불완전 정리](수학은 자신의 체계 내의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인간은 광속도보다 빨리 움직일 수 없다). 기왕이면 '할 수 있다'라는 내용으로 과학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되는데 하필이면 '할 수 없다'라는 이들 원리, 정리가 왜 최대의 과학(수학)업적일 수 있는가? 그 이유는 희랍 이래 서구 철학의 기본인 대상의 이용보다는 본질의 유무를 중요시하는 '존재론'의 사상에 입각한 것이다. 이 생각에 의하면 수학은 '문제 풀이보다는 해의 본재 여부를 묻는 것'이 더 중요시 된다. 그렇기에 서구의 수학자들은 임의의 각의 삼등분의 가능성, 또는 페르마의 최정리의 증명가능성에 열정을 쏟아 온 것이다. 특히 수학에 있어서는 해의 존재의 유무를 묻는 존재 정리(고정점의 정리) 등을 중요시하여 각 분야마다의 기본정리로 삼는다.




카오스의 이론



최근 컴퓨터의 발달로 카오스의 이론, 넓게는 복잡계의 이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새로운 분야가 대두한 이유는 '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다. 만일 존재 정리에 관심이 없었다면 도저히 등장할 수 없는 분야이다. 옛부터 '크레타섬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다'라는 {성서}에 나온 역설(Paradox)가 알려져 있다. 이 말을 한 사람이 크레타섬 사람이라면 과연 이 말은 참인가, 거짓인가? 참이라고 가정하면 가짓이 되고, 거짓이라고 가정하면 참이 되는 이율배반의 논리 구조이다. 카오스의 이론은 이 논리 구조가 '불완전성 정리'와 일맥상통함을 보이고 있다. 옛 역설(카오스)이 새로운 수학의 빛 속에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이다. 또한 카오스 이론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는데 알고 보니 존재론 철학의 소산이다. 수학은 단순한 기교가 아닌 철학적인 문제로의 도전이다.




문학과 未來사회



합리성을 주제로 삼은 문학은 사실적 수법으로 독자들에게 자유롭고 풍요로운 상상력을 제공하며 문명의 발전과 깊이 관련되어 왔다. A. 토플러는 未來文學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未來의 이야기를 단순한 꿈의 세계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습관이다. 어릴 때부터 자유로운 공상의 날개를 펼쳐주는 일이 중요하다.

다음 주에 무엇이 일어난다는 식의 짧은 전망이 아니라 다음 시대의 인류의 문명을 상상토록하는 지혜를 길러줄 필요가 있다. 공상과학소설은 미래의 필독서로 삼아야 한다.


필자는 과학의 발전만으로 나라, 크게는 인류의 未來가 결정된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학이 현실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문학은 과학을 무시하거나 미래사회의 꿈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학은 건전한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과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과학적 수단의 구상, 또는 윤리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과학발전에 대한 경고 등 가치의식의 제기에 관한 역할도 지니고 있다.

과학기술 발명의 급격한 증가에 관해서 매우 흥미있는 통계가 있다.

'문명이라는 말이 처음 올려졌을 때부터 1945년까지의 기술적발전을 그래프로 나타내고 그 곡선의 높이를 10㎝로 할 때 1945년에서 1960년까지 불과 15년간의 과학기술의 발전건수는 13층의 고층건물과 맞먹을 정도의 높이가 된다. 레이저, 통신위성, 생명공학, 태양전지, 초음파, 등을 생각할 때 새로운 발명과 기술혁신은 더욱더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D.S. 하라시 {미래 9개의 길})

이들 과학업적은 모두 꿈에서 시작되었고 문학은 그 꿈을 전달하는 구체적 수단이기도 했다.

과학적 사고와 문학이 결합할 때의 가능성은 크게 나누어 첫째 추리소설, 둘째 공상과학소설(S.F), 세째 Utopia문학의 3가지 분야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꿈에 이르는 길



앞에서 전통에 관해서 고찰한 바와 같이 서구 문학의 고전적 작품에는 이들 세 분야가 포함되어 있었다. 희랍비극의 {오이디프스}와 추리소설, 아리스토텔레스의 {박물학}에서 과학적 문학성, 그리고 플라톤의 {국가론}과 유토피아 사상 등은 그 좋은 보기이다.

그러나 동양, 특히 한국의 전통문학에는 추리소설이 거의 없다. 武陵桃源같은 유토피아문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릉도원에 당도하는 방법은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그곳을 찾게되는 것이다. 또 許筠의 {홍길동전}은 주인공이 율도국이라는 이상적 왕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지만 그것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플라톤의 {국가론}처럼 뚜렷한 목적 아래 지성적 방법에 의한 이상적 공동체의 건설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동서문학의 경향 차이는 결코 우연은 아니며 서구 정신에 내재하는 지적탐구의 정신 방법 등이 동양에 결여되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은 목표(종결)를 설정하고 현실(가설)로부터 차곡차곡 증명해 가는 기하학의 정신이다.




과학문학의 선구자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트프에레스에게 魂을 팔고 현세적인 쾌락을 얻었다.(괴테, {파우스트}) 실제로 '마술에서 과학'이라는 말이 있다. 점성술에서 천문학, 연금술에서 화학, 점에서 확률논이 나왔다. 마술은 현실적인 쾌락을 얻고자하는 꿈이기도 하며, 문학가는 이런 꿈을 꾸고 그 길을 제시할 때도 있다. 새보다 빨리 날고 싶다는 꿈, 누구보다 빨리 계산하는 꿈, 이런 꿈을 과학이 잉태해 왔음은 앞에서 말한 데로이다. 이 전형적 보기를 포우의 문학에서 살필 수 있다.

포(E. A. Poe, 1809∼49)는 파우스트적인 지성으로 인간이 만든 어떤 암호도 풀이할 수 있다는 장담을 했었다. 그는 합리성을 문학에 도입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성은 계획적인 지적 꾸밈을 말한다. 그는 추리소설에서 解析的 능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했다. 해석이란 결론을 미리 정해두고 그것에 이르는 길을 낱낱이 밝혀 가는 과정이다.

포우의 상상력과 과학의식은 {風船으로 대서양 횡단}에서도 볼 수 있다. 풍선으로 대서양을 횡단한다는 것은 당시의 과학수준을 생각할 때, 한낱 공상에 불과했음에도 해석적 논리가 뒷받침되어 있다. 이 글의 끝 부분에서는 풍선이 유럽을 떠나 75시간만에 미국에 도달하는 부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風船이 썰물(干潮인 해안의 모래 위에 내렸다. 섬사람들이 풍선을 보고 모여들었다. 그러나 실지로 우리가 해낸 飛行, 즉 대서양의 횡단을 그들이 믿도록 하기에는 대단한 곤란이 있었다.


보통 인간이 믿을 수 없는 공상의 세계를 그는 해석력을 구사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후 {풍선으로 대서양 횡단}의 발상은 쓰에패린(F. Zepplin, 1838∼1917)의 비행성에서 실행되었다.(1900년) 또한 그는 {대소용돌이}, {함정과 추}에서 수학적 계산을 직접 이용하여 사실성을 더하고 있다.

포우의 합리정신은 전문 과학자도 아니면서 散文詩의 형식으로 {유리이카}에서 19세기 과학을 넘어선 현대적 색채가 짙은 새로운 宇宙像을 구상했고, 훗일 발레리(P. Valery)의 높은 평가를 받기까지 하였다.

포우는 전자계산기까지도 구상하고 있었다. [수학자는 해석을 하되 계산을 하지 않으며 또 棋士는 계산을 하지만 해석은 않는다. 장기는 지적 능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모르그街의 살인})라고 말하고 장기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포우의 생존시에 오토마톤(automaton=자동인형)은 당시의 지식인 사이에 적지 않는 관심거리였었다. 이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헝가리의 어느 귀족이 장기를 두는 오토마톤을 발명했다. 이 [將棋 두는 機械]는, 큰 상자 앞에 앉은 터어키 인형이 구경꾼들과 그 상자 위에 있는 盤에서 장기를 두는 것이다. 이 기계는 흥행사 메루스엘에게 그 構造의 비밀과 함께 넘겨졌다.

19세기의 중엽에 만들어진 이 오토마톤은 전자공학을 이용한 인공두뇌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문자 그대로 엉터리였다. 많은 지식인들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속임수임을 밝히려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포우는 {밀젤의 장기(Mealzel's Chess Player)}에서 그 기계가 자동이 아니라 사람이 그 장치 속에 숨어서 인형을 조작하는 것임을 밝혀 냈다. 무엇보다도 이 논문 내용은 사소한 점까지도 철저하게 규명한 예리한 추리와 논증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 글에는 당시 유일하게 존재한 바베지(C.Babbage)의 자동식 계산기를 비롯하여 모든 자동기계의 성질을 분석하고, 그 특징과 밀젤의 자동 인형과 비교하여 20가지에 가까운 관점에서 자세히 검토하고, 집요하게 그 인형이 기계적인 움직임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컴퓨터의 꿈은 '不敗의 장기 두기' 또 '모든 암호를 푼다'는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포우의 이 두 분야에 걸친 비상한 관심은 오늘날 컴퓨터와 인공두뇌 연구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포우는 {黃金蟲}으로 암호풀이를 곁들인 추리소설에 성공한다. 암호풀이와 추리소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범인이 남긴 여러 증거는 암호적인 것이며 '풀이'에 도달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암호에는 규칙성이 숨어 있으며 그것을 발견하는 작업이 암호풀이와도 같은 해석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실존주의자 이상의 시에는 매우 날카로운 수감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해석적인 방법으로 소설을 구상하지는 않았다. 이것 역시 한국적 지성의 한계일까?


3次角設計圖(線에 관한 覺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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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 . . . . . . . .



(宇宙는 冪에 依하는 冪에 依한다)
(사람은 數字를 버리라)
(고요하게 나를 電子의 陽子로 하라)

- 李 箱 -



포우의 영향을 받은 추리작가로서 두 영국인을 생각할 수 있다.

토일(Sir. A. C. Doyle, 1859∼1930)은 의사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의학이라는 과학을 통해 문학활동을 한 것이다. 그는 의사이면서 작가라는 자신의 모습을 주인공 셜록 홈즈(Sherlock Holmes)로 등장시킨 추리소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것이 성공한 이유는 그 넓은 의학에 관한 과학적 지식에 있었다.

스티븐슨(R. L. B. Stevensen, 1850∼1894)의 {보물섬}은 포우의 [황금충]과 같은 추리적인 요소를 갖는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신아라비안나이트} 등은 수학적인 구성으로 성공한 것이다. 추리소설은 그 줄거리에 수학적인 정합성이 필수적이며, 탐정소설의 기본 공리는 알리바이의 증명이다. 알리바이의 증명은 곧 인간은 여기에 있음으로써 저기에 동시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것은 수학의 함수 개념과 일치한다.

y=f(x)에서 x에 하나의 수가 주어질 때는 반드시 유일적으로 y의 한 값이 결정된다. 정해진 시간(x)에 대해서 공간상에 유일적인 자리(y)가 결정됨을 말한다. 즉 함수의 개념과 알리바이의 의미는 일치한다. 추리소설에는 수학의 해석적인 방법과 알리바이의 공리가 있다.




철학은 수학, 문학은 예언



과학에는 두 가지 전통이 있다. 알키메데스 이래의 應用을 전제로 하는 과학과 自然哲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변과학(思辨科學)이 그것이다. 문학과 과학 사이의 깊은 관계는 이 후자, 곧 思辨과학에 있다. 자연철학이나 과학적 상상이 과학화 되는 것은 수학적 논리가 곁들여질 때이다.

'수학으로 시를 쓸 수 없는 물리학자는 진정한 과학자일 수 없다.'는 말은 이론과학이 시적인 감각에 뒷받침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아인슈타인이 휘어진 광선에 관한 발상을 얻은 것은 소년 시절의 공상 내지는 시적인 감각에 의해서였다. 문학에서도 합리적인 정신 또는 기하학적 해석이 곁들여질 때 과학소설이 가능한 것이다. 1960년대 C.P. 스노가 {두 개의 문화와 과학혁명}에서 지적한 과학적문화와 인문적문화 사이에 놓인 깊은 골은 연이어 발생한 급격한 과학발전, 특히 정보화의 진행으로 서서히 메워져 가는 경향이 있다. 사유는 자연철학적인 발상과 논리에서 계시와 방법을 받아 문학으로 꽃피기도 한다.

문학은 과학 발전을 자극했으나 한편으로는 자연을 파괴하고 공해를 낳았다. 그것을 치유하는 일도 역시 문학이며, 설득력이 있는 방법의 제시는 문학자의 풍부한 과학 지식에 기반을 둔 문학적 기법일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SF의 미래구상은 비관적이며 과학 발전에 대한 제동의 필요성을 암시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통찰과 꿈이 없는 과학, 문학 활동은 위험함을 실감하고 있다. 추리소설, S.F, 미래소설에는 공통적으로 해석적 기법이 사용된다. 50년대 말 섬뾵한 핵전쟁의 결과를 사실적으로 그려 놓은 영화의 주제는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과학 발전에 대한 비관적 암시이기도 하다.

섬찍스럽기도한 21세기, 철학자와 문학자는 과학의 가능성을 통찰하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제시하는 해석적, 예언자적 능력을 요청 받고 있는 것이다.




쥬라기 공원



5000만년 전에 서식한 공룡의 피를 빨아 먹은 모기가 호박 속에 박혀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이 소설은 하크스레이의 계보에 속한다. 그 모기에서 뽑아낸 피에서 공룡의 DNA 구조를 찾아내어 공룡을 재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룡이 태어난다 해도 현재의 지구 기후는 그때와 엄청나게 달라졌으며 생태계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사실을 일절 무시해서 꾸며진 이야기의 줄거리는 과학이라기보다는 만화에 가깝다. 공상과학이기에 만화라고 한다면 그만이지만 작자의 본 의도에는 깊은 철학적인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근의 수학이론인 [카오스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카오스란 처음에는 결정적으로 전개되어 가는 현상이 어느 순간부터 확률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이며 개개의 요소의 총합은 예상 외의 결과를 나타냄을 말한다. 아무리 완벽하게 관리한다 해도 복잡한 전과정의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카오스의 특징에는 '오늘 서울의 거리를 날던 나비의 날개짓이 일으킨 바람으로 며칠 후 뉴욕에 폭풍우가 나타날 수 있다'는 나비효과가 있다. 쥬라가 공원은 결국 실패하고 카타스트로피를 맞이한다. 이 작품은 인간지성의 한계를 공룡의 재생이라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근대 수학



유클레이데스 이래 수천년에 걸쳐 절대진리로만 여겨져 온 공리는 비유클레이데스 기하학의 출현으로 그 의미를 재검토하게 되었으며 부동의 위치는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로바채프수기가 비유클리트 기하학을 제창한 이후 수많은 공리군이 등장했으며 공리가 인위적으로 구성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수학이 다양화되고 놀라운 속도로 변하게 된 것이다. 유클레이데스 기하학의 전성시대는 2000년간이나 지속되었으며 그간 사상, 질서와 생활양식이 비록 완만한 변화가 있었을망정 전체적으로 견고한 안정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 전반에 유동성이 높아지고 백년 단위의 변화가 1세대 단위로 변화하고, 10년 단위, 5년 단위라는 식으로 변화는 가속도를 더해 가고 변화 속에는 엄청난 다양성과 다원성을 내재하게 되었다. 모든 사상, 학설은 가정적이며 상대적인 가치밖에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 과학적인 대상범위에서도 분명히 현상 전개 속에 하나의 방향성을 감지할 수 있다. 개개의 현상은 그것이 소립자이건 생명이건 저마다의 현상 자체를 유지보존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러한 '개를 보존하는 경향'이 개개의 현상에 있어서 그 나름의 방향성을 가지며 전혀 통일적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멋대로의 방향에 움직이는 현상이 서로 자기를 보존하려는 가운데 충돌, 경쟁함으로서 그 운동이 전체로서 정리되어 간다. 그러는 가운데 몇 개의 특정한 현상과 경향만이 보존되고 수렴되어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서 혼돈속에 하나의 질서가 형성된다. 이런 과정 즉, 무수의 현상을 포함하는 系가 전체적으로는 보다 혼돈된 상태에서 보다 정리된 단계로 진행하는 방향성이 있다. 이 사실은 혼돈 속에서 역사가 탄생하는 과정과도같다. 이러한 방향성을 갖는 系전체의 변화를 진화라고 한다.




결론



수학(넓은 뜻의 과학)은 수학만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며, 철학, 문학, 경제 등 모든 분야와 어울려 발전한다. 개인적으로 천재로 일컬어지는 사람은 전혀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보이지 않고, 자기 분야에만 관심을 가질 수 도 있다. 그러나 대극적으로 본다면 문제의 선택 단계에서 이미 가치관이 개입하면 그의 연구 방향에 영향을 준다. 과학자로서의 성공은 기존의 틀을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의 창시자이다. 그렇기에 성공적 과학자에게 요청되는 소질은 IQ보다는
① 인습이나 기존의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  
에디슨은 초등학교 시절 '1+1=1'임을 고집했다.  
② 한가지 대상을 엉뚱한 것에 결부시킬 정도로 상상력이 강하다.  
뉴튼은 지구와 사과의 관계를 지구와 태양의 관계로 연상했다.  
③ 발상이 기발하다.  
아인슈타인은 태양광선이 산을 넘어 갈 때 휘어진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상대성 원리를 발상하는 기본이 되었다.  
④ 문제에 대한 대결정신(집착력)이 강하다.  
이와 같은 소질을 감안할 때 진정 위대한 과학자는 자신의 좁은 전문 영역에 머무르는 전문바보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노벨상급의 과학업적은 단순한 과학 지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학의 세계는 보편적일지라도 개인 차원의 과학자는 문화적 전통을 이어 받고 있다. 한국의 과학자는 전세계의 문화 전통을 소화할 때 노벨상급의 업적이 가능하고 국제적 시야에선 과학 활동이 요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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