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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0/05 (01:05)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21
Delete Modify 안병무 Access : 11953 , Lines : 39
민중신학의 회고와 전망
      민중신학의 회고와 전망



나는 민중신학을 이야기할 때 맨처음에 꼭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민중신학은 서재에서 나온 사변이 아니고, 한국의 정치현장에서 형성된 역사적인 산물이요 신학적인 귀결이다. 구체적으로는 군사정권이 수립된 이래 그들의 탄압 밑에서 그 정체를 드러낸 민중과의 만남과, 그들의 고난에 어떠한 형태로든 참여한 결과가 민중신학을 낳았다." 오늘도 역시 이 말을 먼저 전제해야겠습니다.
신학하는 일부 사람들이 군사정권을 통해서 구조악에 대한 인식에 도달했습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대체로 자유주의자였던 저들이 날로 조여드는 이 구조악을 몸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서 저들은 한동안 재래신학의 틀에서 찾아낸 주제들인 인권 혹은 자유라는 시각에서 거기에 저항해보려고 했는데 그것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습니다. 이 저항과정에서 소위 성서에서 말하는 사탄 혹은 악마라고 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권력적인 구조악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중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을 만나서 비로소 저들이야말로 이 구조악에 철저히 수탈당하고 억압당하면서도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역사의 맥을 이어가는 담지자임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민중들은 계몽의 대상도 아니고 구제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저들이야말로 생명의 원천이고 역사의 주체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은 커다란 사건인데, 이 사건은 신학자들로 하여금 재래적인 신학에서의 해방이라는 연쇄적인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들에서 충격을 받아 저 자신은 일찌기 '기독교의 탈서구화'라는 것으로 그 뜻을 발표했습니다. 그뒤 민중신학을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서남동 교수가 '反신학(anti theology)'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했습니다. 신학을 하면서 反신학이라는 모순적인 언어를 쓴 것이지요. 그러나 한편으로 이미 재래신학의 주제들에 흥미를 잃고 비신학적인 것에 관심을 해서 전통신학에서 보면 주변적인 주제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이들이 있었습니다. 현영학 교수와 문동환 교수 등이 그 범주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서구신학 내지 신학에서의 탈출(exodus)과정을 연속해서 일어나는 민중사건에 참여하는 것과 병행했습니다. 인혁당사건, YH사건, 결혼식 위장사건 등등이 일어날 때마다 많은 이들이 체포.투옥되었고, 그 가족들의 저항이 고난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이런 민중수난에 직.간접으로 참여함으로써 마침내 대학에서 한 차례 혹은 두 차례씩 쫒겨나고 혹은 감옥에 갇히고 하는 동안에 거리에서, 감옥에서 다른 얼굴의 민중을 만남으로써 신학의 Exodus행각은 가속화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학에서의 Exodus의 과정에서 해석학적 혁명이 일어났는데 -- 저는 혁명이라고 봅니다 -- 이것을 대별하면 다음 몇 가지로 촛점을 맞출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에 언급하려고 하는 것은 연쇄적으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상호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제목을 달리하더라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상충되는 것도 있습니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시각의 전도입니다. 모든 사물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보는 도식에 철저했던 재래신학적 시각에서 모든 사물을 아래로부터 보게 되었습니다. '신으로부터 인간을'이 아니라 '인간에서부터 신을', '인간에서부터 민중'이 아니라 '민중에서부터 인간' 등등 이런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래로부터 보는 입장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2차대전 이후에 형성된 칼 바르트를 중심한 위기신학 등등에서 본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이것은 역시 성서 자체에 있어서도 '격상된 예수에게서 민중에로'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민중으로부터 예수'를 조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서 안에서 '지배체제나 특히 다윗 왕조 이래로 군림하는 왕조체제로부터 가난하고 눌린 사람들'이 아니라 '그 밑에서 절규하고 신음하고 저항하는 민중의 시각에서 왕권을' 등등 모두가 그런 시각의 소산입니다.
이런 시각은 가치관을 완전히 전도시킴으로써 주변적이었던 것이 중심적인 것으로 탈바꿈되는 무수한 사건들을 연속적해서 적어도 우리 안에서 일으켰습니다. 가령 예수를 귀족화하고 왕족화하고(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던가 하는) 나아가서 신격화하는 요소들이 기독교 신학의 중심 관심사였지만, 바로 그런 것들은 낡은 가치관의 산물이고 본래의 예수에 있어서는 그의 천한 신분, 무명성, 한마디로 하면 민중성이 그의 본질을 이루고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룩함, 신성함 따위가 높은 데, 깨끗한 데, 고귀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 밑바닥에서 학대받고 천시당하는 현장의 이른 바 죄인이나 창기나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세리같은 이들의 형태 속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교회 성전 같은 종교적으로 구별된 장소가 아니라 인신매매가 성행되고 매음을 하고 사생아를 낳고 아귀다툼을 하고 있는 그런 장소가 거룩함의 산실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진실은 참 아래, 음지, 주변으로 가면 갈수록 밝혀진다는 확신을 갖게 됨으로 그런데서 신학의 주제를 찾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이 민중신학의 하나의 중요한 측면입니다.

두번째로 모든 사물의 사건성을 중요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는 데서 신학의 거점을 찾아내서 로고스 신학 또는 말씀의 신학이라고 신학의 본질성을 표명함으로써 복음서 연구에 있어서도 예수의 말씀에만 비중을 두고 마침내 성서 전체를 말로 선포한 것 즉 케리그마가 그 중심이라고 보고 있는 데 대해서, 민중을 만남으로써 그 사건성을 체험한 민중 신학자들은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로 로고스 신학에 대항하게 되었습니다. 사건은 행동하는 자들이 맞부딪히게 됨으로써 일으키게 되는 결과입니다. 삶은 움직인다는 것이고, 그것은 사건을 점철시키는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건은 운동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을 서술할 때 경험한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사건과 직결된 것으로서 바로 삶을 직접 수식없이 나타내는 민중언어입니다. 이것은 사변에서 나온 로고스와는 다른 것입니다.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말은 죽은 것입니다. 말 보다 삶은 언제나 앞서는 것이며, 거기에 진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예수의 삶을 추구하는 대신 역사의 예수를 사변화한 케리그마로 그의 삶을 은폐하려는 신학을 전면 거부하고 케리그마가 있기 이전의 예수에게로 돌아가려는 부단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역사학자들의 고고학적인 노력 혹은 복고적인 작업은 역사의 예수의 사건성을 박제화해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길을 가자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역사의 예수를 파악하는 길은 그를 사변의 대상으로 함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참여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론과 실천만을 나은 일반적인 부분에서 말한다면 언제나 실천이 앞설 때만 바른 이해와 해석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을 연구하려는 경우에 있어서도 그의 그리스도론이나 그의 신학적인 이론에만 집착해서는 그를 모르는 것이고, 그의 삶을 언제나 전제할 때만 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의 자신의 고백에서 감옥에도 여러번 갔고, 무수히 구타당하고 무수히 박해를 당했고, 마침내 로마에 의해서 체포되어서 로마에 압송되어서 그 다음에는 전설에 의하면 그곳에서 처형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그를 전제로 할 때에만 그의 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전제하면서 읽을 때만 바른 인식에 도달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세번째 주객도식의 극복입니다. 신과 인간, 혹은 인간과 자연, 혹은 자연과 역사, 나와 너, 남자와 여자 등으로 철저히 이분화하고 이 둘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애를 쓰기는 했지만 한번도 그것을 이룬 적은 없습니다. 분화된 둘의 관계를 연결시키려고 애를 썼던 대표적인 인물로 마틴 부버나 혹은 에밀 부르너나 불트만 같은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마틴 부버의 유명한 책 [나와 너]를 보면, 너도 나와 똑같은 파트너가 되어야 할텐데 주객도식에 의해서 나는 주체가 되고 너는 객체가 되어서, 자꾸 그렇게 되어 버려서 다우가 이스가 되는 문제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고민의 노출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불트만같은 사람도 하느님과 인간관계를 문제하면서 그 관계성을 '하느님을 모르고 인간을 알 수 없다' 또 '인간을 모르고 하느님을 알 수 없다'라는 전제를 안고, 하나의 사람을 추구하려니 하느님을 모르니까 추구할 수가 없고, 하느님을 추구하려니 사람을 모르니 추구할 수가 없어 결국 이야기 할 수가 없다라는 불가지론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가령 언제든지 신을 시혜자 혹은 창조자로 보고 인간을 은총에서 산다거나 혹은 피조물로 보는 이런 사고의 틀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도그마에서부터 인간이 신의 은총에 의해서 특별한 권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유도되어서 결국 예속관계 사회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특권자를 인정해주는 뿌리를 종교에서 찾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무리 공정해도 평등하지 않고, 주체와 객체로 중심과 주변으로 나뉘어지고, 그 관계를 그럼으로써 종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사고가 집단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그것을 가장 잘 이용하여 생육된 것이 국가라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국가라는 말이 왕과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권력의 모체로서 아래사람에게 적당히 권력을 분배함으로써 할 수도 있고, 회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계속 그대로 국가가 유지되어 있을 때 계속되어왔는데 교회에까지 침투되어서 사제 계급과 평신도와의 관계가 이렇게 되어버리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민중사건에서 어떤 계시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없이 너없고, 너없이 나없다. 따라서 실재 있는 것은 나, 너가 아니고 우리 뿐이다.'
그런데 한국 말에 우리라는 말은 단수가 모여서 복수가 되는 영어의 we와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라는 말의 본 뜻은 '울타리'(소우리 돼지우리 할 때 그 우리)인데, '우리'는 숙명적인 공동체, 한 울타리 속에 있은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족제도에서 연유된 것이긴 하지만 그 의미는 심장합니다. 비록 개인주의가 발달했지만 지금도 한국 사람은 우리 집, 우리 아이라고 하지, 내 아이, 내집하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 말은 낮섭니다. 외국사람들은 언제나 내집 내 아이합니다. 더구나 내 남편, 내 아내라고 하는 것은 한국 사람에게는 대단히 쑥스럽습니다. 서양사람들은 주저없이 내 남편, 내 아내 하면서, 모든 내 소유물을 표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내게 예속된 종속관계의 언어로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참 귀중한 말입니다. 예속관계가 아닌 상관관계여야 참 너와 나의 관계는 옳은 관계일 것입니다. 민중들은 지배층의 정책에 물들어서 평소에 분화된 듯해도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존재로 보여도 수난의 현장에서, 투쟁의 전선에서는 나와 너라거나 잘난 놈, 못난 놈이 없고 단지 우리만이 있습니다. 우리는 꿈과 주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창조하고 우리가 함께 투쟁하고 노동하고, 우리가 함께 싸우고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는 신념으로 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는 영웅주의 따위가 삽시간에 자취를 감춥니다. 평소에 그렇게 무서워하던 특권층으로 차압하는 관권, 관리에 대해서 일말의 공포도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해방운동을 경험했습니다. 인간사회를 계급적으로 보는 것은 바로 이런 주객도식을 깨는 데 있어서는 적절한 전략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런데 성서는 원래 나.너 라는 개체는 모르고 원래 우리만이 있습니다. 아담은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그것은 동시에 흙이라는 어원을 가졌기 때문에 자연과도 주객도식에 이끌어 맬 수는 없습니다. 아담이 땅을 지배했다, 혹은 정복한다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서구인들이 그런 식으로 해석해 왔던 것입니다. 하느님도 아담을 개체간에 우리와 같은 형상으로 아담을 즉 사람을 창조했지요. '우리와 같은 형상으로 아담을 만들자' 이런 언어를 쓰고 있지요. 그 하느님도 우리입니다. '나'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여기에서 개인 독점적인 사고는 없습니다.
구약은 왕조사가들에 의해서 편집되는 과정에서 주종관계적인 서술이 많이 도입되었으나 원래 모습인 민중전승으로서의 구약의 이야기는 그런 것이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유일신사상도, 절대자의 사상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쓰고 세상을 배회하기도 하고 얍복강에서 야곱과 씨름하다가 항복하고 손을 드는 그런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미 창조설화에서 나 아닌 우리라는 말을 썼듯이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듯이 그 이름도 야훼, 엘, 엘로힘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려졌습니다. 그게 그렇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천차만태로써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는 면도 있으나 한계존재인 사람과 똑같이 질투하고, 분노하고, 복수하고 자기편이 되어주면 즐거워하는 그런 얼굴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도깨비처럼 장난끼가 다분히 섞인 그런 얼굴도 보입니다. 구약의 야훼 하느님은 태초에 바벨 여인에세 임신을 시키는가 하면 소돔 고모라를 탈출할 때 나오다가 뒤를 돌아다 보았다고 소금 기둥을 만들어 버렸다는 것 등은 장난끼가 섞인 우리의 도깨비와 비슷합니다. 삼손에게 힘을 주어서 초인적인 능력자로 삼았다가 한 여자에게 맥없이 유혹당해서 머리카락을 잘리우고 눈알을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가 하면 갑자기 그에게 소원을 들어주어서 블레셋의 주동세력이 모인 궁전의 기둥을 무너뜨리는 힘을 한꺼번에 주어서 삼천여명을 죽여 버렸다는 것은 장난꾼 같은, 도깨비 같은 짓입니다. 크게 말하면 신도 우리 안의 일원이며, 자연과 신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세계를 창조하고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그런 세계가 구약의 세계입니다.
유일신을 고집하고, 신을 고립시켜서 절대화하고 그와 다른 말을 하면 범신론으로 매도하기도 하고, 자연과 역사일반과 신을 완전히 격리시키고 신을 절대 위치에 정착시키는 듯하지만 실재로는 피안에 추방시키고, 그 이름을 빼앗어서 민중을 억압하는 군주제도, 그후에 식민지시대에 들어가서는 기독교를 식민지화하는데 선발대로 파견할 때 기독교의 교리를 점점 주객도식을 강화해서 자기들을 주격으로 삼고, 식민지 백성들은 구경하고 떡이나 먹으라는 객체로 만드는 데 이용해 왔습니다. 신학이 이것을 뒷받침해 왔습니다. 그 증거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민중의 삶의 우리인 민중문화와 그 뿌리를 사정없이 절단.파괴하려는 시도들이 그것이었습니다. 예수에게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를 신격화하고 예배의 대상으로 하면 할 수록 인간과 자연과도 격리되고 마침내 비역사적인 존재로 무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립시킨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 종교의 귀족계급인 사제계급이 들어와 앉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심판관처럼 예수를 사실상 완전히 추방하고 자기의 독자적인 왕국을 만들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예수없는 그리스도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만큼 너무나 인간적이고 너무나 민중적인 인물을 역사에서 그리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갈릴리에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소위 민중(오클로스)에게 둘러싸여서 그들에게 거의 피동적으로 움직인 것이 그의 짧은 생애의 모습이지 군림하는 생과는 너무도 거리가 멉니다. 그의 생애에서 중요한 것으로 서술된 많은 양을 차지한 - 마가복음에 나타난 것은 보면 - 병 고치는 이야기, 치유하는 이야기를 보면 놀랄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예수가 초능력자로 군림하거나 시혜자로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혹은 옆에서부터 민중에게서 나오는, 민중과 만남으로써 스파크가 일어나듯이 일어나는 서건이 바로 치유하는 사건입니다. 그가 능동적으로 계획성을 가지고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단 한번도 이른바 그리스도론적인 신앙을 요구한 적도 없고, 어떤 윤리적 또는 종교적 조건을 내세운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특이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병이 나았을 때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네가 너를 낫게 하였다" 는 언어를 씁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론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내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내가 너를 낫게 하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예수의 진실한 대변이라고 저는 봅니다. 수난 사화에서 나타난 그의 모습은 어떤 모로 보든지 어떤 초인의 말로가 아닙니다. 가장 밑바닥에 있어서 권력자들에게 희롱당하고 피살당하는 그런 모습을 재현했을 따름입니다. 그는 홀로 수난을 이겨나갈 수 없는 듯이 그를 추종하는 민중들에게 그의 싸움을 지원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러한 시각들이 모두 민중에 의해서 민중과의 만남 속에서 터득된 것입니다.

넷째로 이원론의 극복이 가능하였습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주객도식의 극복과 연결되는 것이므로 뛰어넘겠습니다.

다섯번째로 집단성의 저항이었습니다. 이것도 위에서 서술한 것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사물의 사건성이나, '우리'의 재확인이나, 이원론을 극복함으로써 총체의 회귀나 다 집단성과 관련되며,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단성을 특히 인식하고 강조하는 데는 개인주의 또는 개인주의적인 이기주의의 극복에 역점을 두고 있는 일면, 집단성과 운동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 그 의미가 재확인되었던 것입니다. 민중이라는 것은 물론 집단개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태성인 개념이 아니라 동태적인 것입니다. 동태적이라는 것은 그 형태의 방어성과 투쟁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민중은 편파적입니다. 따라서 편파적인 눈으로 볼 때만 민중이 보입니다. 우리 편에 대해서는 무조건 관대하고 포용적입니다. 그러나 적대편에 대해서는 투쟁적입니다. 방목하는 소는 밤에 잘 때는 집단으로 모여서 자는데 머리 뿔을 밖으로 향하고 뺑돌려 자고, 말은 반대로 머리를 가운데로 하고 발을 바깥으로 하고 잔다고 합니다. 유사시에 적이 오면 말은 뒷발로 차기 위해서 이고, 소는 유사시에는 뿔로 내막기 위해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가 동적인 것입니다. 민중은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런 면을 민중운동하는 데서 보았습니다.
편파적이라는 것은 바로 전략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생존경쟁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이 집단성은 무명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주객도식에 있어서는 유명성이 큰 작용을 하지만 무명성은 집단의 공동체의 견고성에 큰 작용을 합니다. 편파적인 것은 이전의 당파성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이해관계에 얽힌 상부층의 이기적인 집단행동인데, 이에 대해서 민중은 생존권의 보호의 발판으로 된 집단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학적인 개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전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세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한 장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맥을 이어서 계승합니다. 계속되는 민중사건이 폭발될 적마다 맥이 이어져 내려옵니다. 화산맥이 있다가 갑자기 팡 터지고, 팡 터지고 하듯이 민중의 맥이 이어져 오다가 팡 팡 터지는 것입니다. 예수도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보면 화산맥의 한 활화산으로 터졌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납니다. 그 민중의 맥이 큰 화산으로 터졌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서 별로 그런 화산을 알지 못합니다. 폭발된 분화구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로부터 우리는 출발하나 그의 맥은 계석되어서 오늘에 이어집니다. 비록 그의 이름은 부르지 않더라도 민중운동 속에서 그것이 터져나오는 것은 봅니다.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고백해왔습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것은 바로 이 집단성의 역사적 계승성을 맥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들을 뿌리로 한 이스라엘이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은 역시 편파적인 신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도 예루살렘과 대립하는 갈릴리-그중에서도 민중을 편파적으로 사랑하고 그들과 제휴합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일을 위해서 분명히 갈라놓습니다. 이것은 편파성 따라서 투쟁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70년대에서 80년 사이에 민중신학으로 인해 일어난 신학적 사건들에 대해 몇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포커스들이 투쟁 또는 극복으 대상이 된 것은 계획적이 아니고 민중사건에 참여함으로써 순차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자동폭발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서구신학이 디디고 선 주춧돌들이 모두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 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신학의 exodus의 발판을 놓았고, 신학자체의 혁명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가져오고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재래신학에서 파생된 제도교회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을 제거해 버리면 서구신학은 설자리가 없다고 저는 봅니다. 이상의 민중신학의 1단계, 첫세대가 이룩한 발자취(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민중신학자들이 한 일이 아니라 민중운동이 반영된 신학적 결과입니다)를 더듬어 보았는데, 그것을 가만히 보면 그 단계는 자기 부정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exodus라고 하지만 동시에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는 안되는 그런 일들이었습니다. 즉, 자기에게서 탈출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품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단계는 세례자 요한의 운동과 비슷한 단계라고 생각됩니다. 즉 회개운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소극성을 많이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단계를 Exodus와 연결시켜보면 에집트에서 탈출한 그 단계라고 보겠는데,  그 다음 2차단계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역이 이미 바뀌었는지도 모릅니다. 광야 40년의 과정에 들어간 것이라 하겠습니다. 광야 40년의 노상이 바로 현금의 민중신학의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광야 40년의 단계가 이스라엘 민족성의 과정이라고 본다면 현금은 민중신학의 자기정당성을 확인하고 형성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첫단계는 피해자에 동참함으로 또 스스로 피해자가 됨으로 모든 것을 ??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객관성을 잃은 주관적 정열이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은 편파성과 특수성을 나타냈기 때문에 동시에 객관적인 보편성 등을 잃어버린 면이 있었습니다. 또 거기에 즉흥성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탈출한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에서 여러가지 도전을 받으며 자기를 재확인 했듯이 민중신학의 2단계는 자기를 객관적으로 재확인하는 그런 단계입니다. 이 과제가 지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까 1단계에 참여했던 주역들이 아니고 벌써 그 주역은 옮겨져 있습니다. [80년대 민중신학의 전개]라는 책을 보시면 그 주역들이 드러나고 그들의 문제의식이 드러납니다. 여기서는 많이는 못하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을 간략히 보고만 하겠습니다.
첫째가 사회과학적인 조명작업입니다. 1세대 70년대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투쟁전선에만 서있는 그런 느낌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사회과학적인 조명작업이 80년대에 들어와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아직도 계속 진행되고 있고, 다음 세대에 의해서도 진행될 것입니다. 현재까지는 이 작업이 첫단계의 작업을 심화시키지 부정적으로 나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근거를 두고 객관성을 제공하는 그런 싸움을 걸었습니다. 또 깊이 깊이 파고드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민중교회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민중교회운동은 젊은 목사들이 하고 있는데, 첫단계의 민중신학의 결과를 실험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중교회운동의 성패는 어쩌면 민중신학에 대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세째로 보편성의 인정입니다. 이제까지 민중신학에서는 민중 자체를 정의하는 것을 거부해 왔습니다. 또 보편성 따위를 요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해 왔습니다. 그것은 소위 학문적 세계에서는 인정될 수 없는 거부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관없었습니다. 남이 인정하고 안하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일이라고 열심히 뛰기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일부에서 그것을 적어도 학문분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 독일, 일본, 미국, 라틴 아메리카 일부에서 민중신학은 한국의 신학으로 그 자리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적어도 10여편의 학위논문이 한국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지의 사람들에 의해서 이미 통과되어 있습니다. 저들이 민중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더라도 그 존재자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리가 이제는 주체적으로 신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히 독일교회는 교회자체에 민중신학위원회를 구성하고 우리와 어떤 면에서 논쟁을 계속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것이 중지되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신학계와도 몇차례의 세미나를 공동주최했습니다. 미국에서도 비록 수는 적어도 민중신학에 관심하는 진지한 사람들을 만나보았고 학위논문도 여러개 나왔습니다. 그리고 민중신학 자체를 학문의 위치에서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89년에 미국에 객원교수로 가서 민중신학에 대해서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9개교단에서 학생들이 모여서 강의를 들었는데, 그보다 먼저 현영학 교수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1년 이상 민중신학을 강의했었습니다.
사회과학적인 전개, 민중교회운동, 보편성을 인정하여 세계로 퍼져나가는 현실 정도로 지금 전개되고 있는 민중신학의 외적 모습을 정리하겠습니다.

중략

민중신학을 하는데 있어서 언제나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는데 언제나 걸리는 함정이 있었습니다. 제겐 그것이 큰 골치거리였습니다. 더구나 서구적인 사고방법에 있어서 그것은 굉장히 골치거리였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像화 한다는 것, 어떤 형태를 만드는 것, 우리말로 인격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서구의  이른바 persona라는 것 -- 그게 그렇게 거리끼는 겁니다. persona를 강조하면 집단성은 의미가 없어져요. 하느님도 persona -- 像을 만듭니다. 그런데 像을 만들만들면, 그 순간부터 그 존재는 부자유해집니다. 제약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像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소위 인격화 해버렸으니까 부자연스러워져요. 그러니까 그것은 체포돼서 성전에도 갖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자꾸 차단을 시켜요. 저기 있으면 여기 없고, 여기 있으면 저기 없고, 위에 있으며 아래 없고 이렇게 되는 거지요. (뭐든지 像화 하는 것, 인격성이라는 것 -- 동양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서 동양에는 서구적인 의미의 persona로서의 신은 없습니다. 불교에도 없고, 특히 내가 관심하는 노장에도 없어요. 그래서 무신론이라고 말해요. 하지만 像을 안만들었을 뿐이지 무신론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상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가 자꾸 차단이 되버려요. 이 차단된 것을 교류시키기 위해서 성령이라는 발상이 생겼는데, 이 성령을 또 인격 -- 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령을 인격화했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니 뭐니 하는 것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상을 만드니까 꼭 같아져 버렸습니다. 신에 한계가 생겨버린 것입니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 쉽게 유통할 수 있는 그것을 만든 것인데, 그것이 상에 또 걸려 버렸습니다. persona라는 이것이 서구 사고에 있어서 자연과 신과 땅과 인간 이것을 전부 알알이 차단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령도 결국 상으로, 인격이라는 개념으로 해보니까, 그렇게 파악하면 결국 시간과 공간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오늘에 현재한 신을 결국 성전에 가둠으로써 사실상 그를 유폐시키고 독점할 수 있는 가용적인 것으로 만든 것과 같이, 인격이라는 틀은 바로 그런 감옥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좀 비약을 합니다만 최근에 제가 기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막히다' '기똥차다' 할 때의 그 기입니다. 기는 원래 바람을 뜻하는 상형문자입니다. 이것은 내용적으로 성서에 있는 그것과 똑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구약의 루아하 -- '하느님이 숨을 불어 넣었다' 할 때의 루아하는 숨, 바람, 에너지, 힘 등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이것은 기와 똑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약의 성령(푸뉴마)이라는 것도 원래 기로 번역을 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동양에서는 거기에다가 상을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절대로 어디 막히지 않고 계속 유통을 합니다. 교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란 말을 왜 못씁니까? 기란 말을 쓰면 거기에 인격이라든지 상같은 것을 배제돼서 얼마든지 통합니다. 우리는 신과의 관계도 차단하고 사람과의 관계도 차단하고 자연과도 자꾸 차단하는 서구적인 사고에서 떠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기라는 말이나 루아하, 푸뉴마라는 말은 역동적이고 이떤 데도 메이지 않는 그런 경지를 말하는 것인데, 민중신학의 앞으로의 전망과 연련해서 볼 때 기는 본격적으로 사물을  원천에서 파악하려는 그런 주제라고 봅니다. 저는 민중이라는 것은 바로 이 기의 담지자라는 가설을 갖고 어떻게 보면 신념을 갖고 지금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기는 결코 어떤 상에 비뚤어 메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기를 막는 것은, 기를 꺽는 것은 늘 권력입니다. 민중신학도 권력과의 투쟁 속에서 형성되었지만 민중의 기도 그것과의 투쟁과정에서 그 참 모습이 드러난다고 이렇게 봅니다. 성서와 일반사회에서 언제나 권력과의 투쟁으로 민중이 질식상태에서 도약을 해왔는데, 사회주의 사회에서 마저도 프롤레타리아가 프롤레타리아의 이름으로 집중화된 권력에 눌려서 신음하다가 폭발된 것이 요새 소련이나 동구라파의 모습이 아닌가 이렇게 보지요. 민중은 지금까지 정권과 싸워왔습니다. 몇차례 다른 정권이 들어서도 역시 마찬가지 모습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군사정권이 다 바뀌면 권력이라는건 모습이 달라질까? 난 왠일인지 이제 거기에도 회의가 생겼습니다. 요새 이 정권의 극도의 추태를 보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역시 권력의 악마성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두는 한 민중의 적은 권력이다. 한 정권이 아니라 권력이다. 그런데 이 권력을 배태하고 이것을 수용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은 뭐냐면 국가라는 개념입니다. 국가라는 것을 자명적인 것으로 알고 우리는 그것을 수용하고 있는데 결국 민중신학은 권력과 싸워야만 합니다. 그 권력의 성격은 여러가지로 규명되겠지만 어쨌든 집중화된 권력, 이것을 반대해야 합니다. 결국 기독교는 민중신학은 종국에는 아나키스트와 손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무정부주의자, 국가부정, 국가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이 권력이라는 것이 언제든지 행패를 부릴 수 있다. 정권이라는 있다가 언제든지 사라질 그런 것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것과 싸워야 한다. 이것이 인간을 포로로 하고, 기가 막히게 만들고, 숨을 못쉬게 만들고 한다. 이게 우리의 투쟁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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