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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3/11/10 (22:37) from 80.139.172.244' of 80.139.172.244' Article Number :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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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기초학문의 13가지 화두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물질의 근원을 찾아서





@ 물리학에서 입자가속기 도입의 의미
- 가장 작은 물체를 연구하려면 가장 큰 실험기구가 필요하다?

- 김동원(KAIST교수/과학사)

인간의 오감은 물론이고 보통 상상력으로는 도대체 얼마나 작은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작은 입자를 연구하기 위해서 반경 수십 킬로의 거대한 건축물이 필요하다면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 가장 흔히 20세기 거대과학(Big Science)의 상징물로 등장하는 입자가속기는 바로 아주 작은 입자를 연구하기 위한 실험장치이다.

189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물리학 교수였던 톰슨이 원자가 음의 전기를 띤 작은 입자들로 구성돼 있음을 밝혔다.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가장 작은 알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원자가 쪼개진 것이다. 이어 톰슨의 제자였던 러더포드는 알파입자로 다른 원소를 때리는 충돌 산란방법을 사용해 1911년에 원자핵을 발견했고, 1918년 말에는 원소의 인공변환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아주 작은 에너지밖에 동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자핵을 더 강력하게 때려서 그 파편을 연구하기에는 부적합했다. 1932년 채드윅이 발견한 중성자는 알파입자(헬륨이온)와는 달리 전기적으로 중성이었기 때문에 원자핵을 때려서 그 결과를 관찰하는 데 아주 적절한 도구였다.

한편 1930년대 미국 물리학자 로렌스는 입자를 원운동을 통해서 가속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는 그동안 미국에 축적돼 있던 고전압 기술, 무선공학, 기계공학적 지식들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록펠러 재단을 비롯한 사설재단들의 재정적 지원을 끌어들여 놀랍게도 1930년대 대공황 시대에 효율이 매우 높은 입자가속기(싸이클로트론)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로렌스의 가속기는 당시 개발되고 있었던 다른 종류의 가속기들보다 여러 가지 유리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곧 가속기의 대표주자가 됐다.

1945년 이후 세계 강대국들은 모두 거대한 규모의 입자가속기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구 소련은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서로 더 큰 규모의 가속기를 건설하는 경쟁을 벌였고, 이에 질세라 유럽과 일본도 이 경쟁 대열에 참여했다.

입자가속기의 건설과 운영은 20세기 후반 원자물리학뿐 아니라 물리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작은 실험실에서 많아야 수십 명의 연구원들이 한두 명의 교수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연구하던 방식이, 이제는 가속기 한 대에 수백 명 단위의 박사급들이 모여서 조직을 이루고 그 조직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식으로 바뀌게 됐다. 또 가속기 건설과 운영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기 때문에 국가 차원, 심지어 국가들의 연합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게 됐다(CERN이 그 좋은 예이다). 즉 정치가 과학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 것이다. 물질의 근본을 캐기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은 마침내 원자를 쪼갰고, 입자 가속기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낳았던 것이다.


@ 물질, 공간, 그리고 우주
- 티끌우주에서 무량우주를 엿본다

- 김제완(서울대 명예교수, 물리학)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더 먼 곳과 더 작은 것을 보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우주론과 소립자 과학은 급격히 발달했다. 우주에 띄운 인공위성과 허블망원경을 통해 더 먼 곳을 보게 되었고 테바트론 같은 고에너지 가속기를 써서 원자핵 속 훨씬 깊은 곳에 숨겨진 ‘극미의 세계’를 보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막막한 거대우주의 탄생비밀에 접근하고 물질의 궁극적인 요소에도 성큼 다가서고 있다.

우선 물질의 세계를 엿보도록 하자. 물질은 원자로, 원자는 원자핵과 그 외각을 도는 전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핵은 중성자 및 양성자로 이뤄져 있고 이들은 또 다시 쿼크라는 소립자로 돼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요즈음 이들이 초대칭성을 지닌 아주 작은 끈의 진동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양자라는 이론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으로 알려진 이 이론은 양자론이 플랑크공식에서 우연히 시작된 것처럼 베네찌아노(Veneziano)라는 젊은 물리학자가 소립자들이 서로 부딪치며 반응하는 모습을 잘 나타내는 공식을 우연히 발견한 데서 시작됐다.

그러나 그 공식의 물리적인 뜻을 처음 깨달은 사람은 남부(Y.Nambu)와 닐슨(H. Nilson)이었다. 그들은 핵자(원자핵의 구성요소)들이 입자가 아니라 길이가 10-13cm정도의 끈의 진동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뭉치이고 그 장력이 그램 정도이면 ‘베네찌아노 공식’을 만족시킨다는 것을 보였다[필자가 끈이론을 처음 접한 것은 디락(P.A.M. Dirac)의 1965년 컬럼비아 대학 물리학과의 세미나에서였다. 어떤 이유인지 이런 사실이 물리학사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남부의 끈이론에 있어서는 안될 소립자가 진동에서 생성되는 에너지 양자로 있어야 하고 다른 현상에 적용한 결과 실험과 맞지 않아서 끈이론은 물리학계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곧 잊혀졌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끈이론에서 떠나버린 뒤에도 칼텍의 슈바르츠(J.Schwartz), 퀸메리 대학의 그린(M.Green) 그리고 프랑스의 슈렉(J.Schrek)은 끈이론에 매료돼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 자연계의 모든 것을 통일하는 초끈이론 -

그들은 1970년대에 일부 물리학자들에 의해 설득력있게 주장된 초대칭성이론(supersymmetry)에 주목하게 됐다. 현대물리학은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 페르미온(Fermion)이라고 분류되는 스핀(소립자의 자전을 나타내는 양)이 반(半)정수인 소립자와 스핀이 정수인 보존(Boson)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전자나 쿼크같은 입자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요소이며 페르미온이고 광량자와 같이 힘을 전달하는 입자는 보존이다.

이들 모두가 에너지의 양자이고 이들은 본질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이 초대칭성이론이다. 슈바르츠, 그린 그리고 슈렉은 이러한 성질을 받아들여 끈이론을 초끈이론으로 개조했다. 뿐만 아니라 남부가 생각했던 것처럼 끈의 크기가 10-13cm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작은 10-33cm정도이고 그 장력 역시 몇 그램이 아니라 1039톤 정도라고 가정하면 놀랍게도 이런 초끈의 진동이 발산하는 에너지 양자 가운데는 우리가 알고있는 소립자들이 총망라돼 있었다.

스핀이 ½인 쿼크뿐만이 아니라 광량자도 있었고 핵력을 전달하는 스핀이 1인 글루온 그리고 놀랍게도 중력을 전달하는 스핀이 2인 중력자까지 포함돼 있었다. 이처럼 초끈이론은 이 자연계의 모든 것들을 함께 통일하는 그런 이론인 것이다.

그러나 이 초끈에 나타나는 고유진동이 쿼크와 전자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알고있는 4차원 시공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10차원 시공을 바탕으로 하는 이론이었다. 4차원 시공이라면 쿼크와 전자의 질량이 1033Gev를 넘고 이곳 저곳에서 무한대라는 계산결과가 나와서 말이 안되고 적어도 10차원이어야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공은 엄연히 4차원인데 어떻게 된 것인가?

초끈이론의 신봉자들은 나머지 6차원 공간은 너무 작아서(10-33cm정도) 우리에게 감지되지 않을 만큼 작게 축소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작게 말린 칼라비-야우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끈이론에서는 질량이 0인 극한적으로 가벼운 블랙홀이 바로 광량자라고 해석되며 큰 세상과 미시의 세상은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최근 어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11차원 시공에 있는 4차원 면이란 주장도 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활동은, 마치 영화 속의 인물과 사건들이 화면 속에만 담겨있듯이, 다차원 공간 속의 일부 면에 국한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중력만이 예외여서 중력의 법칙이 아주 작은 거리에서 거리의 역자승 법칙에서 벗어나면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화면 속의 영화배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증거라 주장한다. 아마 현명한 독자들은 지금쯤 알아차렸을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살고있는 이 거대우주의 구조는 소립자의 법칙과 무관하지 않으며 미시의 세계를 잘 살펴보면 그 속에 바로 거대우주의 비밀이 숨어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는 거대우주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빅뱅(Big Bang)’으로 알려진 표준이론은 일반상대성 이론의 바탕 위에서 전개된 물리학자들의 ‘창세기 시나리오’이다. 허블(E.Hubble)의 관측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의 관측에 의하면 우리 우주는 현재 팽창하고 있으며 그는 그 팽창속도를 측정한 것이다. 현재 거대우주는 과거의 작은 우주로부터 팽창하여 왔다는 얘기가 되고 태초에는 티끌보다도 더 작은 우주가 대폭발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이 빅뱅이론이다. 우주가 탄생하는 그 순간에는 대폭발로 인해 시공자체를 진동케 하는 중력파가 생겼고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로 표현되는 태초의 빛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 화광 속에서 원시우주의 모습 찾아 -

배경복사로 알려진 이 태초의 빛은, 마치 동물의 화석(化石)이 옛날의 모습을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듯이 팽창하는 우주의 얼어붙은 화광(化光)이 돼 지금 이 순간에도 관측되고 있다. 1967년 이 화광을 발견한 벨 연구소의 펜지아와 윌슨 박사는 노벨상을 받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천체물리학자들이 이 화광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의 옛 모습을 밝혀내려 하고 있다. 그들은 화광에 나타난 무늬를 수학적으로 분석하여 태초에 있었다는 중력파의 흔적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또 그들은 파워스펙트럼으로 알려진 기술적 분석법을 이용해 도대체 우리 우주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 체중을 알아내려 하고 있다. 태초의 순간, 티끌보다 작았던 뜨거운 우주가 눈 깜짝하는 사이에 힉스입자라는 소립자가 응고되면서 쏟아낸 에너지 때문에 1060배의 자몽만한 크기로 급격한 팽창을 했다는 소위 ‘급팽창이론’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2001년 3월 8일자 『천체물리학 속보』에 의하면 CBI(Cosmic Background Imager)팀이 급팽창이론이 예측한 골(dip)을 파워스펙트럼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몇 개월 전에는 유럽 국가들의 합동연구소인 CERN에서 힉스입자의 흔적을 보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태초의 순간을 작고 순간적으로 재생하는 거대한 가속장치인 거대하드론가속장치(LHC)가 완성될 무렵이면 우주탄생의 비밀은 더 한층 벗겨질 것이다.

실리만을 추구하는 각박한 이 시대에 이런 논의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갈릴레오의 넋두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모든 사람이 쓰고 있는 http라는 인터넷 프로토콜의 개발은 극소의 세계를 개척하려는 CERN에서 파생된 기술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눈앞의 작은 이익이 아니라 더 큰 앞날을 보는 물리학의 세계는 역시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 용어해설

[초대칭성] 초끈이론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인 페르미온과 보존이 서로 대칭적이며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것.

[초끈이론] 자연계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들이 사실은 미세한 끈으로 이뤄져 있다는 이론.

[빅뱅이론] 초기에 우주는 하나의 점과 같은 상태였으며, 이 점에서 일어난 대폭발로부터 현재의 우주가 만들졌다는 이론.

[급팽창이론] 우주 초기에 급격한 공간 팽창이 있었다는 이론. 우주 배경 복사의 균일성과 등방성 및 우주의 평균밀도와 임계값의 일치를 설명한다.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원자와 원자가 만나서



@ 21세기 과학과 환원주의적 연구방법
-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 김재영(과학문화센터 연구원)

20세기 자연과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여러 과학들이 물리학의 연구방법을 모범으로 삼아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복잡해 보이는 원자핵의 성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자핵을 구성하는 핵자(양성자와 중성자)들의 성질을 명료하게 밝힌 뒤, 이들이 어떻게 모이고 상호작용함으로써 원자핵의 성질들을 야기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물리학의 전형적인 연구방법이다.

지진학/지질학/기상학/해양학/천문학 등 물리/화학적 이론을 눈에 띄는 구체적인 현상들에 적용하는 과학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은 물론이거니와 화학이나 생물학에서도 ‘물리학적 연구방법’은 최대한 추구해야 할 모범인 양 여겨져 왔다. 예를 들어 화학적 분자결합은 개별 원자들의 파동함수들이 어떻게 혼합 오비탈을 이루어 관측되는 성질을 나타내는지를 연구하는 것을 모범으로 삼으며, 핵산 속 염기들의 배열에 의한 것인 듯이 보이는 유전 기제는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결국 게놈 프로젝트와 같은 연구방법을 통해 탐구할 주제로 여겨진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20세기 후반의 여러 과학들은 이런 ‘물리학적 연구방법’, 더 정확히는 ‘환원주의적 연구방법’에 이의를 제기했다. 기본입자를 구성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쿼크와 전자 따위를 잘 기술하는 이론들은 아원자 수준의 미묘한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매우 훌륭하지만, 이 이론들을 예를 들어 생명현상이나 고체나 분자 수준에 적용하려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어리석은 접근이 될 수도 있다. 물리학자 앤더슨은 일찍이 “많아지면 달라진다”(More is different)는 모토를 제시하면서 기본입자에 대해 아무리 많이 알더라도 분자나 고체에서는 또 다른 새로운 성질과 현상이 나타난다는 자신의 믿음을 피력한 바 있다. 게놈의 구조와 성질을 정확히 알아낸다고 해서 생물학의 모든 문제들이 곧바로(또는 언젠가) 풀리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20세기 후반의 과학은 환원주의적인지 않은 연구방법의 필요성을 강하게 요청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어떤 단백질의 구조를 모두 밝히면 그 단백질의 기능에 대해서도 모두 알게 되리라는 믿음이나, 쿼크에 대해 모두 알게 된다면 원자핵 수준의 복잡한 현상들에 대해서도 모두 알게 되리라는 믿음은 상당히 위협받고 있다. 즉 부분을 안다고 해서 그 부분들이 이루는 전체를 아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사실상 이미 원자핵 물리학에서 화학적 방법을 원용하고, 분자화학에서 생물학적 방법을 원용하는 것은 암묵적이지만 익숙한 접근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던 환원주의적인 연구방법이 이제는 그 역할을 다 했고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도 여전히 과학연구에서는 중요한 수단이 돼 줄 것이지만, 여태까지는 다소 홀대받았던 비환원주의적 방법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원자와 분자의 세계
- 삼라만상을 만드는 분자의 세계

- 김희준(서울대 교수, 화학)

시카고대학 유학 시절, 물리학과 콜로퀴엄에서 후일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대만 출신 유안 리 교수(Yuan T. Lee)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여기 양성자 두 개와 중성자 두 개, 전자 두 개가 있다고 하자. 물리학자는 이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따지지만, 화학자는 간단하게 헬륨 원자 한 개가 있다고 말한다”고 운을 떼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구성하는 쿼크들과 그 밖의 여러 가지 기본적인 소립자들을 연구하는 것은 물질 세계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면에서 그 자체로 대단히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일단 소립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들로 구성된 원자들이 어떻게 결합해 우리 주위의 물질 세계를 만들어 가는지를 연구하는 것 또한 흥미로우면서도 실제적인 과제가 된다.

왜냐하면 어차피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의 조건 하에서는 원자와 분자가 안정된 물질의 단위이고, 우리 자신도 원자, 분자를 단위로 해서 이뤄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화학 반응을 기초로 일어나는 생명 현상에서는 기본입자들이 원자, 분자들을 만들기 위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물리학은 이미 원자 하나 하나를 보고, 포획하고, 이동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원자의 성질을 이해하고 이용해서 반도체, 레이저, MRI 등 인간의 삶을 편하고 풍요롭게 하는 수많은 발견과 발명을 이루어냈다. 또한 20세기 화학은 물질 세계의 다양성을 구현하는 데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자연에 존재하는 90가지 정도의 원소 중에서 20~30가지 원소를 주로 사용해서 만들어진 화합물의 수는 2천 5백만을 넘어섰고, 그 중 많은 화합물이 의약품 및 생활용품으로 현대인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 화합물은 현대인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 맺고 있어 -

그러면 21세기 원자, 분자과학의 주 활동무대는 무엇이 될까? 아니면 일부 사람들이 염려하는 대로 물리학, 화학은 전성기를 다 보내고 황혼을 맞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19세기 말 미국 특허청장이 “이미 발명될 만한 것은 다 발명됐다”고 말하며 특허청의 폐쇄를 제안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칼라 TV,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은 꿈도 꾸지 못할 때에 말이다. 20세기가 그러했듯이 꿈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자에게 21세기에는 20세기에 이루어진 원자, 분자과학을 기초로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될 것이다.

21세기 원자, 분자과학의 키워드는 ‘나노’와 ‘바이오’다. 컴퓨터의 대중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20세기의 과학, 기술은 마이크로 단위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마이크로미터는 밀리미터의 천 분의 1이다. 세포의 세계도 마이크로의 세계이고, 반도체도 마이크로의 세계이다. 한편 20세기 물리학, 화학의 주 활동무대였던 원자, 분자의 세계는 나노 이하의 세계이다. 나노는 마이크로의 천 분의 1인데, 원자의 지름은 0.1 나노미터 단위이고, 원자가 여러 개 모여 분자를 이루면 나노미터 크기가 된다. 잘 알려진 DNA 이중나선의 지름이 2 나노미터이다. 잘 개발된 이 두 영역, 즉 마이크로 세계와 원자 세계의 중간 영역인 수십 나노 내지 수백 나노미터 단위의 나노 세계는 메조 세계이다. 소프라노와 알토 사이에 메조소프라노가 있듯이 말이다.

잘 알려진 대로 원자 세계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처럼 거시 세계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양자역학의 세계이다. 그런데 메조 세계는 양자역학의 세계와 거시 세계의 중간 성격이 드러나는 아주 재미있는 세계이다. 이 미개척 분야에서 많은 새로운 물리적 현상들이 발견되고, 첨단 기술들이 등장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메조 세계를 구축하는 데는, 실리콘 칩을 만드는 데 리소그래피(lithography)를 사용하듯이 원하지 않는 부분을 제거하는 종전의 top-down 방식을 적용할 수 없고, 원자에서 출발해서 거대 구조를 만드는 화학적 ottom-up 방식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자기 조립(self-assembly)’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가 등장한다. 수십 내지 수백 개 정도의 원자로 구성된 분자는 종전의 화학적 방법으로 디자인하고 합성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십 나노미터 단위의 메조 구조를 만드는 데는 어떤 기본적인 구조들이 분자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조합을 이루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눈송이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에는 이러한 자기 조합을 통해 이루어진 구조들이 많이 존재한다. 자연에서 지혜를 배워야 할 부분이다.

- 생체모방, 과학기술 전반에 새로운 패러다임 제공 -

20세기 중반에 분자생물학이 등장한 이래 생물학은 생명 현상을 서술하는 데서 물리, 화학의 법칙에 입각해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단계로 비약했다. 나아가 21세기의 생명과학은 과학기술 전반에 대해 생체 모방(bio-mimic)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이크로 단위에서 벽에 부딪친 기억소자 기술은 수십억 년 동안 나노 단위의 DNA에 정보를 기록하고 처리해온 생체를 모방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강철보다 강한 거미줄에 숨어있는 단백질 구조나 무한한 태양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화학 에너지로 전환하는 광합성 시스템을 흉내내는 것 모두 생체 모방의 일례에 불과하다. 환경 정화에도 수억 년 간 악조건 하에서 살아남은 박테리아로부터 비방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대되는 분야는 세포 내에서 생명의 반응들을 촉매하는 수만 가지 효소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의 상관 관계를 밝히고 이로부터 질병의 진단과 치료의 단서를 찾는 프로테오믹스(proteomics)이다.

21세기를 주도할 나노, 바이오 과학 기술의 공통점은 원자들의 집단인 분자를 다룬다는 점이다. 탄소 나노 튜브, 발광유기반도체, DNA칩, 단백질칩 모두 원자로 구성된 분자들이다. 원자, 분자를 다루는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의 유기적인 공조를 통해 21세기에도 기초과학이 인류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 용어해설

▲ 리소그래피 : 반도체 집적회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회로 패턴을 기록하는 방식. 실리콘 판 표면에 전자 빔으로 미세한 회로 패턴을 새기는 것을 말한다.

▲ top-down 방식 : 원하는 분자 구조를 얻기 위해 쓸모없는 부분을 제거하는 방식.

▲ bottom-up 방식 : 원자를 결합시켜 원하는 분자구조를 만드는 화학적 방식. 기존의 top-down 방식으로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작은 구조, 즉 나노 구조를 만들 때 사용된다.

▲ 자기 조립 : 분자가 자발적으로 모여 거대한 구조를 만든다. 이처럼 인간이 화학적으로 조립하지 않아도 스스로 분자구조를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 생체 모방 : DNA나 효소의 작용처럼 생체가 스스로 분자 구조를 만드는 방식을 모방하는 기술.

▲ 프로테오믹스 : 단백체 연구를 말한다. 유전체 연구는 지노믹스.

▲ 파동함수 : 양자역학에서 물질입자인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의 상태를 나타내는 함수.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생명의 비밀을 찾아서

        

@ DNA 연구의 의의
- 정신과 문화도 유전자로 환원된다

- 최재천(서울대 교수, 생물학)

생명의 주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 세상에 태어나 여태까지 살아왔고 지금도 숨을 쉬고 먹고 마시며 성행위를 하는 우리들이 당연히 우리 생명의 주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하버드 대학의 사회생물학자 윌슨에 따르면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만들어내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체에 불과하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생명활동의 주체는 생명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체란 누구나 한시적으로 이 세상에 출현했다 사라지는 덧없는 존재일 뿐이다. 그에 비하면 한 생명체로부터 다음 생명체로 이어지는 유전자는 영속성을 지닌다. 그래서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이자 20세기의 주요한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인 리차드 도킨스는 DNA를 가리켜 ‘불멸의 나선’이라 부르고 생명체는 그 나선이 만들어낸 ‘생존기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체들이 태어났다 사라졌지만 한번도 끊이지 않고 이어온 것은 오로지 DNA뿐이다. 지금은 비록 인간의 몸 속에, 그리고 딱정벌레와 은행나무의 몸 속에 들어앉아 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하나의 DNA 조상으로부터 갈려나온 후손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구의 생명의 역사는 한 마디로 DNA의 일대기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 생명이 존재하는 다른 행성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곳의 생명이 DNA를 기본으로 구성돼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의 생명은 DNA라 불리며 자기복제를 할 줄 아는 묘한 화학물질이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이다.

바로 이 점이 생명에 관한 모든 연구가 궁극적으로는 유전자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간단한 논리를 낳는다. 인간게놈 연구(Human Genome Project) 결과에 전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도 그 연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에 의해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그 단백질들이 만들어낸 구조와 기능에 따라 우리의 몸이 형성된다. 또한 인간의 몸을 이루는 모든 물질이 유전자로 환원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의 모든 면도 궁극적으로는 유전자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신체는 말할 나위도 없고 인류의 정신과 문화도 결국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현대 생물학은 더 이상 섣부른 유전자결정론을 신봉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전자 안에 없는 것이 갑자기 나타날 수는 없다. 한 생명체에서 다른 생명체로 전달되는 것은 오로지 유전자라는 물질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인간에게는 문화가 있어 전수되지만 문화 역시 유전자가 그어놓은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고 보면 결국 모든 것은 유전자로 귀결된다. 따라서 유전자과학은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거의 모든 학문분야와 사회현상에 폭넓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 생명체 탐구와 게놈
- 유전자, 생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

- 서정선(서울대 의대 교수, 생화학)

(1) 보이지 않는 신대륙을 찾아서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면서 생명공학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2월 발표된 인간게놈지도 초안의 완성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1억개의 염기로 된 인간게놈 전 서열구조가 밝혀지면서 인류는 자신의 몸에 대한 가장 강력한 통찰력을 갖게 됐다.

생명을 물질과 영혼으로 단순히 나눠 본다면 인간은 생명을 구성하는 물질적 근거의 대부분을 게놈 정보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생명연구에서 최소한 절반의 성공이 보장된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게놈정보는 체세포 복제기술과 함께 생명의 작동원리인 세포내 분자네트워크의 비밀을 푸는 데 엄청나게 기여할 것이다.

만일 생명네트워크가 밝혀지면 무병장수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 르네상스로부터 시작된 오백년 과학왕국의 끝자락에서 인간의 이성은 드디어 자신의 생명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이다.

무엇이 이 혁명을 추진할 것인가. 모든 혁명의 원동력은 정보가격의 하락이다. 산업혁명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시작됐다. 인간 게놈지도의 완성은 생명공학분야에서 바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도입과 같은 사건이다. 이제 모든 유전자가 밝혀졌으므로 유전자를 찾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또다시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생명연구의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된 셈이다. 생명공학혁명 또는 게놈혁명은 이제 모든 혁명이 그렇듯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영혼의 문제까지 포함해 생명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신대륙을 찾아 항해를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분명한 것은 앞으로 2,30년동안 인류는 생명공학 혁명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2) 게놈 정보와 생명네트워크

생명체는 자신의 형태를 만드는 계획을 자신의 내부에 갖고 있다. 생명의 계획은 DNA라는 유전물질내에 기록돼 있으며 DNA는 그 구성요소인 네 가지 염기의 순서로써 생명의 정보를 보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게놈이다. 간단히 말하면 게놈은 유전자 전체와 유전자 사이 서열 모두를 지칭한다.

게놈정보를 갖고 있으면 모든 유전자의 종류를 알 수 있게 돼 세포내 생명네트워크의 구성 즉 하드웨어를 파악하게 된다. 게놈정보가 알려질 때까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구성물질의 수도 몰랐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생명연구가 그동안 얼마나 심각한 무지 속에서 진행돼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개인별 DNA 분석으로 질병 예측도 -

사람의 유전자 수는 확인된 유전자 2만6천5백88개와 컴퓨터로 찾아낸 후보유전자 1만 2천개를 합쳐 약 3만 8천개 정도로 추정된다. 이중에서 특정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면 세포내 네트워크의 변화를 초래하고 기능이상을 일으켜 질병상태가 유발된다. 이렇게 되면 질병의 원인 유전자가 밝혀지게 된다.

게놈상의 염기변이는 또한 질병의 소인과 관계가 있다. 개인별 DNA 염기변이는 1천2백50개마다 한 개씩 나타나고 전체적으로는 약 2백50만개의 염기차이가 발생한다. 현재 변이 하나당 검사가격을 10센트로 잡으면 한 사람의 모든 변이검사는 약 3억원이 소요된다. 미래의학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개인별 DNA 분석을 통해 질병관련 변이를 찾아내 질병을 예측하게 된다.


(3) 게놈혁명

슘페터는 시장과 경제를 변화시키는 힘은 자본이나 노동력이 아닌 새로운 기술의 성숙과 폭넓은 응용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기술에 의한 창조적 파괴가 게놈혁명의 핵심이다. 게놈혁명의 핵심 도구들로는 DNA칩기술, 모델 동물기술, 단일염기변이(SNP)기술, 그리고 생물정보학기술이 있다. 게놈혁명의 모든 도구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하나다. 그것은 생체 내에서 수행하는 기능을 알아내는 것이다. 기능을 알고 나면 신약개발이 가능해진다. 이뿐만 아니라 단백질 3차구조분석을 통해 이 유전자 DNA조각이 어떤 네트워크에 참여할 것인지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게놈혁명의 핵심은 산업화에 있다. 원리의 발견만으로 사람들의 질병을 예측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개별 환자들의 게놈정보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어떤 비교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놈정보가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이용되려면 환자의 게놈분석이 대용량 컴퓨터에 의해 초고속으로 이뤄져야 한다. 결국 생물정보학의 체계 수립이 미래 생명공학시대를 여는 데 핵심이 될 것이다. 게놈혁명은 궁극적으로 질병의 원인치료용 신약을 개발할 수 있게 하고 개인별 맞춤의학을 가능하게 해 1백20세 정도의 수명연장이 실현될 것이다.

- 게놈혁명의 핵심은 산업화에 있어 -

게놈혁명으로 발생할 한두 가지 문제점을 검토해보자. 첫째 의학적 목적을 위한 유전정보 확보만을 법적으로 허용한다고 해도 개인정보 관리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유전정보의 공개 때문에 개인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완해 줄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둘째는 개인별 의학과 신약개발 등에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데, 과연 누가 이 재원을 공급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문제 때문에 게놈연구는 더 이상 공공부문에서 주도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산업화를 통한 시장의 자율적 통제만이 각 사회의 연구 추진속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인류가 무병장수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지 판단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생각보다 빨리 게놈혁명을 실감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4) 맺는 말

생명은 우주에서 최고로 복잡한 체계 중의 하나이다. 생명물질이 모두 밝혀지고 그 기능까지 알려지면 이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고도의 기능을 통해 생명에서의 의식출현도 규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오늘날의 생명 물질 규명과 네트워크 분석이 생명을 이해하는 데 나머지 절반의 성공을 가져온다면 영혼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미래 생명공학의 마지막 과제가 될 것이다.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생명에 대한 거시적 탐구

        

@ 거시생물학 연구의 필요성

"지식이 아닌 지혜여야"
최근 몇 년 사이에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분교와 텍사스 대학에 통합생물학을 연구하는 학과가 생겼다. 버클리 분교와 텍사스 대학에서 각각 41명, 33명의 전임교수가 주축이 되어 새로운 측면에서 생명과학을 접근하기 위해 신설한 학과인 것이다.

이 학과의 신설 이유는 그 동안 각각 독립적으로 진행된 생명과학의 연구를 통합적으로, 거시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고 수행하기 위해서다. 생태학/진화학/유전학/계통학/행동학 및 생리학의 통합적인 연구를 통해 다양한 생물계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지금까지 자연과학의 교육이 전체를 부분과 부분으로 쪼개서 나누어 분석하는 능력을 키워 왔다면 이제 21세기에는 각 부분 사이의 상호관계를 밝히고 그것을 전체적인 큰 틀에서 종합하는 생태학의 역할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생태학은 다른 자연과학에 비해 지식의 정확성이 떨어지며, 실용성에 있어서 바로 결과물을 내기 힘든 점이 있다.

우리가 생태학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지식이라기보다는 그 원리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여야 한다. 20세기에 일어난 자연과학 분야의 눈부신 발전, 특히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의 발전은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새로운 빛을 던져 주었으며 21세기에도 큰 발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1세기에는 분자생물학, 그리고 생태학으로 대표되는 거시생물학이 생명과학을 이끌고 나갈 커다란 두 축이 될 것이다. 이 두 학문분야는 연구방법론과 연구대상에 있어서는 비록 차이가 있지만 연구의 성과물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다.

또 둘 다 인류의 복지와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생태학은 지금 주어진 풍요로운 삶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인간 욕망이 초래할 수 있는 인류의 종말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지고 그 대안을 찾고 있다. 즉, 생태학은 주어진 우리의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알려진 이 지구상에서 인류와 다른 모든 생물들이 어떻게 최선의 대안을 찾아나가야 할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비유하자면 분자생물학을 현대 의학적인 치료라고 한다면 생태학은 근본적인 체질을 바꾸기 위한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생태학은 그 중요성에 비해 사람들이 그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첨단 연구방법과 장비가 그다지 요구되지 않고 사회과학과의 깊은 연관성 때문에 첨단 학문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 현실적으로 생태학은 우리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도시의 쾌적한 환경 조성과 생물 자원의 유지 및 보존 등 장기적 사회발전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용학문이다. 인류가 달이나 화성으로 새로운 생활 장소를 찾아 떠나기 전에 이 지구를 자손 만대까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 이은주(서울대 교수, 생물학)


@ 거시생물학의 의의와 가능성 - 생물학에 '정신'의 자리를 만들다
- 이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생태학)

1. 생물학의 분야들

오늘날 생물학은 많은 갈래로 나뉘어 있다. 생리학/세포학/해부학/유전학/분류학/행동학/생태학/진화생물학 등 순수 학문분야와 약학/보건학/농학/산림학/육종학/해충방제학/수산학 등 실용성이 강한 학문분야가 있다. 이런 다양성은 아마도 생물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생물들을 대상으로 할 뿐만 아니라 복합성이 다른 다양한 조직수준과 그들간의 상호관계를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유전공학을 제외한 이들 생물학 분야의 주요 특성과 과제를 전체적으로 개괄하는 것은 생물 연구의 복잡성으로 인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것을 두 가지 측면에서 서술하기로 했다. 하나는 유전공학이 아닌 생물학 분야, 즉 거시생물학의 특성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다(흔히 통합생물학(integrative biolog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유전공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이 어느 정도 성숙하면 통합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거시생물학’(macrobiology)이 더 적절한 용어가 아닐까 한다). 또 다른 하나는 그 모든 생물학이 현재 소홀히 다루고 있다고 생각되는 영역을 짚어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제안하는 것이다.


2. 거시생물학의 특성

생물학의 역사에서 나타난 연구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한 약학 및 의학 관련 연구이며, 두번째는 그저 자연이 좋아 그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관찰한 결과 수집된 자료를 정리하는 경향이 강한 자연주의자(naturalist)의 연구이다. 거시생물학은 이 중 후자에 가까우며, 전자에 비해 많은 자료를 모아 통합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특히 거시생물학은 연구에서 발견된 사실보다 개념이 더 큰 영향력을 갖는 경향이 있다. 관찰과 자료 통합에 바탕을 두고 생겨난 새로운 개념이 더 많은 연구결과를 발생시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분야에서는 다윈의 진화론 이후 그에 버금가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진화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도약하며 이뤄진다는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 theory)도 자연선택설을 조금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 다윈 이전에 기초자료가 충분히 축적된 상황에서 출중한 다윈이 매듭을 지었던 것일까, 아니면 다윈 이후에는 그런 여건이 새로 생겨나지 못한 까닭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의 정체 상태는 생물학 전 분야를 통합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진화생물학이 높이 뛰기 위해 일시적으로 잔뜩 움츠렸기 때문일까?

- 아직 다윈의 진화론 뛰어넘는 성과 없어 -

거시생물학과 유전공학은 동일한 생물학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인접 학문분야에 있어 차이점을 보인다. 유전공학은 유전자 구조 발견에 물리화학의 힘을 빌려 지금도 큰 성과를 이루고 있지만, 거시생물학은 조금 다르다. 대부분 자연현상의 확률성에 주목하고, 기후나 지질 등 환경 특성을 다루는 학문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과도 많은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거시생물학자들이 상대적으로 환경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대부분 생물의 다양성 감소를 인류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로 본다. 옳은 얘기다. 오염과 같은 다른 환경 변화와 달리 지구상에서 사라진 생물종을 되살릴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국제생물다양성협약」에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전공학도 다양한 생물이 존재할 때 생명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생물의 다양성 감소는 최근 거시생물학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거시생물학은 유전공학만큼 매력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재 거시생물학에 대한 연구비 지원은 바닥에 가깝다. 그러나 앞으로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3. 현대생물학의 빈틈

이제 편의상 세상에 존재하는 질서를 세가지 범주로 나눠 보자. 한 범주는 물리/화학적인 힘에 의해 이뤄지는 질서이다. 다른 하나는 유전자에 담긴 것으로 흔히 유전정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범주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활동한 결과 생성되는 유형/무형의 질서이다. 이 질서에서 뽑아낸 정보에 각각 물질정보, 유전정보, 문화정보라는 이름을 붙여보자(이 이름은 학문적 정의라기보다는 필자가 임의로 명명한 것이다).

이때 정신이 유전자로 환원된다고 하면 첫째 범주의 질서로부터 유전자의 서열이 결정된다는 주장이 된다. 하지만 사실상 셋째 범주에 속하는 질서는 유전자 서열로부터 유추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호랑이가 가진 문화는 유전자가 아닌 다른 ‘그릇’으로 전달된다. 사람들이 그 그릇을 어떻게 복제할 수 있겠는가? 야성을 지닌 호랑이의 존속이 유전정보와 문화정보를 통해 이뤄지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온전한 호랑이를 복제할 수 있을까? 말이 통하는 인간세계에서도 강대국이 약소국의 문화를 제대로 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여기서 첫째 범주의 질서는 물리학과 화학, 지구과학 등의 분야가 맡고 있다. 두 번째 유전정보는 주로 생물학도들이 다루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범주 중에서 인간이 만드는 질서는 인문/사회과학의 몫이다. 만약 인간을 제외한 생물들이 만드는 문화가 인간의 삶에 의미가 있다면 이 역시 연구돼야 한다. 이 부분은 물질영역을 다루는 많은 학문분야와 인문/사회과학이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따라서 이는 당연히 생물학이 책임져야 할 과제이다.

- 다른 생물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

머지 않아 인간과 다른 생물의 문화 사이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물질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생물 사이의 일그러진 관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강대종이 먼저 약소종을 이해하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의 생물학은 물질세계에 심취해 생물에서의 문화 요소를 포기했거나 한 구석에 밀어놓았다.

따라서 이제는 생물 연구에 더욱 깊은 정신영역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야 할 때다. 그 자리는 분명히 거시생물학자들이 활약해야 할 곳이다. 그들은 애초부터 물질과 문화 모두 고려하도록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생물학은 잠시 잊었던 기초학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용어해설>

* 단속평형설 : 진화적으로 중요한 대부분의 사건들은 짧은 종분화 기간에 일어나고 새로운 종들이 한 번 생성되고 나면 매우 긴 기간 동안 비교적 안정된다고 보는 이론. 도약적 진화(jerky evolution)를 뒷받침한다.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기후변화에 대한 탐구

        


@ 국제 문제로서의 기후
- 윤순진(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연구소 연구원)

- 효율성 중심의 국제 기후담화 -

기후변화는 인류의, 더 나아가 전 생물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지구적 환경문제이다. 그래서 세계 공동체의 단결된 억제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국제적인 기후안정화 협상이 형성·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기후안정화를 위한 온실가스의 감축은 비용을 수반하는 문제이며,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 및 해결능력이 나라마다 다르기에 “누가”, “얼마만큼”, “어떤 방식을 통해”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의와 갈등이 있어 왔다.

특히 지구온난화를 유발해 기후변화를 가져오는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주로 화석연료의 연소를 통해 배출된다. 선진국은 오랜 산업화 과정 동안 화석연료를 소비해 대기의 흡수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이산화탄소를 과도하게 배출하면서 물질적 부를 축적해왔다. 또 탄소집약적인 생활양식을 지녔기에 더 많은 역사적" 현재적 책임을 안고 있다. 반면 개도국은 역사적 책임에서는 자유로우나 앞으로 가속화될 산업화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현재 이들 국가 사이에서는 감축목표의 설정, 감축방법, 개도국의 참여수준 및 시기 등 다양한 이슈를 둘러싸고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1997년 일본의 교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총회에서는 「교토 의정서」를 채택, 선진국 우선감축이라는 대의 하에 당사국들에 대한 구속력있는 감축 목표에 합의했다. 또 기후 협상을 주도해 온 선진국들의 주장 - 시장의 효율성을 활용한 정책이 전지구적 온실가스 감축 비용을 줄여주는 동시에 기술개발을 촉진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온난화 억제 방법이라는 주장 - 이 관철돼 시장을 바탕으로 한 교토 메커니즘(소위 신축성 메커니즘)을 도입한다는 데 합의했다. 교토회의 이후에도 교토 메커니즘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세부규칙 마련이 기후협상에서 논의의 핵심이 되면서 효율성 위주의 경제논리는 공식적 기후담론을 주도하고 있다.

교토 메커니즘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기후시장의 형성과 활성화 및 자연의 자본화 전략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에는 경제적·기술적 성장을 진보와 동일시하고 풍부한 에너지의 공급과 소비를 앞선 문명의 지표로 여기는 ‘근대성’의 신화가 여전히 살아있다. 지금껏 전개해 온 경제성장을 향한 개발방식은 생태계에 누적적 기후변화라는 독특한 근대적 위기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경제성장을 추구하며 자연을 생산의 투입요소로, 생산과 소비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의 저장소로 인식해 착취하는 현 산업사회의 사회-자연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경제적 불평등과 환경 위기가 상호 긴밀하게 결합돼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하고 시장의 효율성에 기댄 채 시장이 담아내기 힘든 형평성의 문제를 고려치 않음으로써 선·후진국간의 경제적 불평등을 유지·강화해 나가는 경향을 보인다. 후진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어 진정한 국제협력을 통해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수긍할 수 있는 보다 형평성있는 정책, 이들이 선진국의 개발전략을 답습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이 고안돼야만 한다. 지구공동체는 지속가능한 ‘공동의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 더 늦기 전에 장기적 관점에서 형평성을 아울러 고려하는 진정한 문제해결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만 한다.


@ 지구를 전지구적 규모로 이해하라
- 김경렬(서울대 교수, 지구환경과학)

- 지구시스템과학의 탄생 -

1988년 12월 『National Geographic』은 지구 특집호 표지에 “우리는 과연 이 깨질 것 같은 지구를 구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우리 인간에게 그처럼 크고 견고해 보이는 지구가 어떻게 감히 깨어질 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하게 됐을까?

1. 깨지기 쉬운 지구시스템

1985년 남극지방의 오존구멍은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지구를 망가뜨릴 수 도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영국의 남극오존관측팀이 IGY (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인 1957년부터 실시한 관측 결과는 1980년경부터 매해 10월이 되면 오존이 줄어들며 그 경향이 해마다 더욱 심해지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 자료처리의 실수로 이 엄청난 발견을 영국에 빼앗긴 미국의 인공위성 관측팀도 뒤늦게 남극의 오존구멍을 선명히 보여주는 인공위성 자료를 발표하게 된다.

-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지구시스템의 한 요소로 지구 무대에 당당히 등장한 인간 -

이미 1970년부터 사람들의 활동이 오존층을 파괴할 수도 있음이 지적돼왔다. 그러나 이러한 극적 변화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원인이 1928년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나 애용되어 왔던 인조화합물 CFC(상품명으로는 프레온)임이 밝혀지면서, 1988년 전세계는 전례 없는 특별조치를 강구하게 된다. 오존층 파괴 물질의 사용을 전지구적으로 규제하는 「몬트리얼 의정서」가 합의된 것이다. 이는 두 차례 개정을 거쳐 더욱 강화된다. 지구가 생각만큼 그리 탄탄한 것이 아니며, 또한 사람들이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지구시스템의 한 요소로 지구 무대에 당당히(?) 등장했음을 실감한 것이다.

2. 지구시스템과학의 탄생

이와 시기를 같이하여 지구시스템을 이해하는 태도에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1986년 NASA는 지구시스템과학의 탄생을 알리면서, 지구시스템과학의 목적은 지구를 이루는 지권, 수권, 대기권 및 생물권 등 구성요소들의 상호 작용이 과거 어떻게 진화해 왔고, 어떤 기능을 하며,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계속 진화할 것인지를 기술함으로써, 지구시스템을 전지구적 규모에서 이해하는 것임을 밝혔다. 또 지구시스템과학은 향후 십년, 더 나아가 금세기를 거치며 우리의 지구는 자연적으로, 또한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지적했다.

지난 20세기는 지구과학이 정량과학, 거대 우주과학, 그리고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예측의 과학으로 도약적 발전을 이룬 시기였다. 19세기 말 지구과학의 최대 쟁점은 켈빈 경의 엄밀한 물리법칙에 기반한 수천만년의 ‘어린’ 지구관과 다윈의 진화론 등의 지원을 받는 ‘늙은’ 지구관 사이의 대결이었다. 1896년 베크렐이 발견한 방사능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됐다. 물론 45억년의 지구 진화사가 밝혀지기까지는 반세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으나, 이 발견은 지구과학을 정량과학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또 1957년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를 효시로 한 우주시대 진입은 마침내 1969년 사람의 발자국을 달에 남기면서 지구과학의 시야를 지구-달 시스템으로 넓혀줌으로써 45억년 역사의 종지부를 찍고 우주과학으로서의 그 위치를 분명히 해주었다. 이에 더하여 컴퓨터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1948년 수치해석을 통한 일기 예측이 가능해졌고, 이를 계기로 지구과학이 예측의 과학으로 자리잡게 됐다.

이러한 발전 속에서 1960년대에 자리매김한 판구조론은 지질학의 대륙이동설과 해양학의 해저확장설의 상보적 접합을 필요로 했으며, 엘니뇨현상도 남방진동(Southern Oscillation)이라 불리는 적도 태평양의 해양현상과 대기현상이 긴밀하게 연관된 것임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지난 수 십년간 지구에 대한 연구는 지권, 수권, 대기권 등 구성요소 각각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주로 발전해왔다.

NASA의 지적은 이러한 연구방향의 틀에서 벗어나 지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종합적인 지구시스템과학으로 새로이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3. 지구 온난화 - 21세기 지구시스템과학의 도전

IGY의 일환으로 1958년부터 관측이 시작된 대기 중의 탄산가스농도(킬링 곡선)는 우리 사람들이 지구를 변화시킬 수도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예이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탄산가스가 증가함으로 써 지구가 더워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1백여 년 전 아레니우스에 의해서 예언됐다. 그러나 그 자신도 가까운 장래에 이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구의 자정능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킬링 곡선은 거대 지구의 자정능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인식시켜 줬다. 컴퓨터의 발전에 힘입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기후모형들은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금세기 후반이 분명 지금보다 기온이 높으며 해수면도 수십 센티미터 높아질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파국적 효과를 염려하는 지구인들의 노력은 1988년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결성으로 잘 대변된다. 또 1992년의 리우회의, 1997년 「온실기체 감축을 위한 의정서」에 합의한 교토 당사국회의는 자신들의 파괴력을 깨달은 지구인들이 지구를 다시 가꾸어보려는 대표적인 노력이다. 그러나 파국 속에서 해산하고만 작년 헤이그 당사국회의는 이런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는 탄산가스가 바로 우리 에너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지구시스템과학은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지구시민들에게 과학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엄청난 도전 앞에 서있다. 오존층의 화학적 규명으로 1995년 노벨상을 수상한 크루첸 교수는 ‘지구라는 우주선’에 탑승한 지구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구의 자원을 개발할 때는 이 행성에 부수적으로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도 해야 합니다. 사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언어란 무엇인가  

        


@ 사회적 측면에서의 언어연구 : 새로운 화두, 언어와 의사소통
- 김창우(서울대 교수, 독문학)

언어학에서 ‘의사소통’은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의사소통은 문장의 자구(字句)적인 의미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문장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그 문장의 의미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연필 있으세요?” 하는 말은 상황에 따라 연필이 있는지 묻는 말일 수도 있고, 연필을 빌려달라는 부탁일 수도 있다. 이처럼 하나의 문장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사소통 의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언어의 의사소통 기능에 대한 논의는 이미 1930년대부터 시작됐으나, 언어의 형식과 의사소통 기능의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60년대에 언어철학자인 오스틴(J. Austin)과 써얼(J. Searle)이 개발한 화행론(speech act theory)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 이론에서는 주장, 질문, 부탁, 명령 등과 같은 언어적 행위, 즉 화행(speech act)을 의사소통의 최소 단위로 간주하고, 각 화행이 제대로 수행되기 위해 지켜져야 할 조건을 기술하고 있다.

한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대화 참여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서는 70년대 중반 그라이스(H. Grice)가 협동성의 원리와 대화 격률로 제시한 바 있다.

의사소통은 대개 여러 개의 화행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이루어지는 ‘대화’ 혹은 ‘텍스트’의 형태로 실현되는데, 대화의 규칙과 원리에 대한 연구는 60년대 말 사회학적 관심에서 출발한 회화분석론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고, 그 이후 화행론에 바탕을 둔 담화분석론과 대화문법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이론이 등장했다. 또 텍스트의 형성 원리에 대한 연구는 오래 전부터 이뤄져왔으나, 60년대에 이르러서야 ‘텍스트언어학’이라는 이름으로 체계를 갖추게 됐다. 텍스트언어학에서는 텍스트를 단순한 문장의 나열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 텍스트언어학 용어로는 ‘응집적(coherent)’으로 ― 연결된 문장들의 복합체로 보고, 텍스트가 응집성을 갖기 위한 조건들을 찾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의사소통의 관점에서 언어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지도 벌써 40여 년이 지났다. 그러나 20세기 언어학의 관심이 주로 언어 체계와 인간의 언어 능력에 대한 연구에 집중돼 있어서, 언어의 의사소통 기능에 대한 연구는 소홀히 다루어진 면이 있다.

하지만 80년대 소위 말하는 ‘화용론적 전환’ 이후 ‘언어소통’은 언어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며 급속히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연구의 역사가 짧아서 언어적 의사소통의 신비는 대부분 감춰져 있다. 언어적 의사소통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일은 언어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과 인지과학의 새로운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21세기 새로운 화두가 될 전망이다.


@ 기계도 번역을 한다?
- 신효필(서울대 공대 계약교수, 컴퓨터공학)

자연언어를 컴퓨터로 처리하고자 하는 노력은 오래 전부터 여러 학문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시작되었다. 예컨대 언어학에서는 전산언어학, 전산학에서는 자연언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전기공학에서는 음성인식, 그리고 심리학에서는 전산심리학 등으로 각각의 영역에서, 그리고 어느 정도 중복되는 연구에서 발전해갔던 것이다. 개별적으로 추구되던 이런 분야들은 연구성과를 결합해 학제적인 분야로 발전하면서 서로 통합되는 추세다. 또 기계번역 시스템 및 음성인식 시스템의 상업화와 인터넷, 웹의 급속한 보급과 이와 관련된 정보처리 기술의 발전은 자연언어 처리와 관련된 실제 시스템의 개발을 더욱 촉진시키고 있다.

- 언어의 중의성이 핵심 -

자연언어를 처리한다는 것은 자연언어가 지니는 중의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의성은 자연언어가 지니는 원초적인 복잡성에 기인하며 언어분석의 모든 층위 ― 음성/음운, 형태, 통사, 의미, 화용 ― 에서 발생한다. 이 중의성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법론과 알고리듬들이 언어학, 전산학, 심리학 등에서 활발히 연구한 결과 그에 따른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현재 자연언어 처리에 관한 연구는 대량의 언어자료를 구축,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통계화된 언어현상이나 규칙을 설정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응용 측면에서뿐 아니라 순수이론적인 측면에서도 자료를 체계화하는 기초작업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런 기초작업과 더불어, 음성인식/합성 시스템, 자동기계번역, 정보검색 등의 상용화 시스템도 등장하고 있다. 또 초보적인 수준에서 벗어나 고품질의 시스템 구현을 위해 인접 분야의 연구들이 서로 결합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영어―한국어, 일본어―한국어, 중국어―한국어 등, 다국어 번역시스템이 여러 형태로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 여러 형태의 번역도 가능 -

특히 웹과 연관된 번역 시스템의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자연언어의 특질에 기반을 둔 검색엔진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재의 자연언어처리 외에 학생들의 에세이를 자동적으로 채점하는 시스템, 음성인식 기술과 결합해 어린 아이들의 어휘력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 시각인식 기구를 장착한 컴퓨터가 비디오를 바탕으로 단어나 문장을 기술하여 설명하는 프로그램 등이 새로이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자연언어 처리의 무한한 잠재성과 응용성으로 인해 전산언어학 분야가 현재 언어학에서 첨단 분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외국의 많은 언어학과들이 이미 전산언어학에 초점을 맞추고 교과목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 분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이 분야 연구자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전개되고 있는 정보화 시대의 실제적인 욕구에 가장 잘 부합할 수 있는 자연언어처리는 인문학의 응용이라는 측면에서 한 유망한 대안으로 적극적으로 모색돼야 한다.


@ 언어를 연구하는 수많은 분야들
- 이정민(서울대 교수, 언어학)

(1) 머리말 - 언어에 대한 연구는 모든 인문학의 근본

언어학은 인간의 자연언어(한국어 등)의 본질을 연구한다. 자연언어는 인위적으로 만든 세계어(에스페란토 등)나 자바/수학기호와 같은 형식언어와 다를 뿐 아니라 순수 자연물로 보기도 힘든 경험적 대상이다. 언어는 인간에게만 있는 소리와 의미의 복잡한 연결체계이며 그 의미는 인간의 지각/의식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근래에는 언어의 구조가 바탕이 되는 인간의 ‘마음’의 구조를 탐구하는 인지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이렇듯 제반 학문분야와 연계해 언어의 본질을 탐구하는 언어학은 수학이 과학의 기초가 되듯이 인문학의 기초가 된다.

(2) 언어학의 하위 및 인접 분야

언어학의 하위 분야 중 음성학은 단위음, 성조, 억양 등을 실험을 통해 연구하는 분야로서 근래에는 컴퓨터를 활용해 많은 성과를 얻고 있으며, 음운론에서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여러가지 가능한 발음 형태 중 제약에 따라 최적의 것을 고르는 최적성 이론이 주도적이다. 통사론에서는 문장의 기저형과 표면형 사이를 관계짓고 논리 형태에 따라 의미를 해석한다. 최근에는 접속, 내포, 관계화 등의 귀환적(recursive) 규칙으로 무한히 다양한 문장의 생성이 가능한 ‘창조성’이 인간 언어의 속성임이 밝혀졌다. 특히 촘스키(N. Chomsky)의 문법 계층은 전산과학의 형식언어 이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의미론에서는 합성성 원리를 바탕으로 언어로 표현의 의미를 설명하며 양상논리적 가능세계까지 다룬다. 언어는 자연과 인공의 모든 사물을 지시 대상으로 포용하므로, 그 구조는 물질구조의 모형화인 수학의 격자 이론을 써서 분석한다. 이는 ‘모든’이나 ‘일부의’와 같은 수량 표현 연구에도 쓰인다. 사물을 묘사하는 술어의 의미는 연관된 논항과의 관계로 결정되며, 여기에는 상태 변화와 완결점 도달 여부 등의 사건구조와 시공간적 관계가 관여한다고 분석된다.

- 언어학, 자연과학, 철학 등 여러분야가 연계해 연구 -

언어학은 많은 인접 분야와 관계를 맺어 심리언어학, 사회언어학, 인류언어학, 전산언어학, 신경언어학, 생물언어학 등 새로운 분야로 분화되어 있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와 친족의 체계에 언어학적 ‘구조’를 원용하면서 “인간을 다루는 인문/사회과학 분야 중 언어학이 가장 앞서 있다”고 칭송한 바 있다. 최근에는 특히 정보기술산업의 발전에 따라 자연언어 처리에 대한 연구가 각광을 받고 있다. 여기서는 인기를 끄는 언어와 뇌의 분야를 살피기로 한다.

(3) 신경/심리언어학(neuro-/psycho-linguistics)

생성 이론은 언어습득 능력이 인간에게 유전적으로 내재하고 따라서 결정적 시기를 지나면 언어습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이 이론은, 예컨대 인간이 세 살만 되면 모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는 데 반해 사춘기를 지나 외국어를 배우려 할 때 무척 힘들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이 점과 관련해 인지과학 협동과정의 이경민 교수 팀은 『네이쳐』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사춘기 이전과 이후의 이중언어사용자의 뇌 구조에 차이가 있음을 밝혀낸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경험론을 따르는 철학자, 심리학자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아 인간의 언어습득 과정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생성 이론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언어와 관련해 타고나는 유전적 정보의 내용이 (침팬지와의 1% 유전정보 차이 중)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들이 분분하
다.

생성문법 이론의 창시자인 촘스키는 언어능력을 발달중인 두뇌에 작용하는 물리법칙의 우연적 산물로 보면서 언어의 문법이 유용성보다는 아름다움을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핑커(Pinker)를 위시한 진화론자들은 언어를 자연도태에 의한 진화적 적응의 산물이라 보고 “언어에는 기능의 수행을 위한 설계의 징후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인간의 내려앉은 후두는 언어음을 내기 좋게 설계돼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서 볼 수 없는 사래 들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현재 언어의 신경과학적 기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뇌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는 최신 뇌영상기법이 발달됨에 따라 언어처리과정에서 뇌활성화의 패턴을 밝히려는 실험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뇌가 어떻게 언어활동을 가능하게 하는가’를 밝히려면 인간의 뇌가 어떤 패턴으로 활성화되는가를 관찰하기보다는, 실제로 계산작업을 수행하는 국부적 회로의 속성을 탐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언어와 뇌의 관계, 특히 언어장애에 관한 연구는 언어학에 기초한 인지/신경심리학적 방법을 통해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하버드대의 카라마짜(Caramazza)는 언어능력이 여러 다른 형태의 지식에 걸쳐 작용하는 수많은 처리 기제들의 활동 결과임을 강조한다. 예컨대, 단어 하나를 소리내 읽는 과제조차 여러 유형의 표상을 포함하는 일이 된다. 즉 시각적, 자소적(graphemic), 어휘-철자적, 의미상의, 어휘-음운론적, 음운론적, 조음적 표상과 관련된 처리가 요구된다. 따라서 이 처리 체계의 어느 한 부문에 손상이 가도 그 과제를 처리하는 데 장애가 일어나게 된다. 읽기만 관장하는 단일한 뇌 부위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수화(手話)의 구조는 소리 말구조와 같다는 것이 언어학적으로 증명됐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편견이 심하나 수화 사용자도 소리말 사용자와 똑같은 언어 중추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똑같은 실어증이 나타남이 밝혀졌다. 실어증, 언어습득에 대한 연구는 언어이론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뇌 속에서 언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관해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4) 맺는 말

인간의 의식도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연구하는 대상으로 등장, 부각된 마당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담쌓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꿀벌의 꼬리춤 의사소통 체계를 연구한 독일의 곤충 학자는 일찍이 노벨상을 받았지만, 훨씬 더 복잡한 인간의 의사소통 체계인 언어구조를 연구한 언어학자 촘스키는 노벨상을 탄 과학자들의 칭송을 받고 있음에도 노벨상과는 무관하다. 점잖은 분야에 대한 점잖은 대접이라 할까.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욕망을 탐구한다   

        


@ 욕망의 기호로서의 몸
- 정정호(중앙대 교수, 영문학)

- 몸으로 사유하기 -

몸은 최근 들어 논의는 빈번하지만 아직도 제도권 담론의 밖에서 주변부 타자로 서성거리고 있다. 몸은 욕망의 기
호처럼 기표와 기의가 계속 미끄러져 합리적인 담론 체계를 가지기 어렵기 때문일까?

그래서 일찍이 서구 근대철학을 시작한 데카르트는 몸은 작은 악령이 깃들어 있어서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도대체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였고,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인간 주체의 영역에서 추방하였다. 경험주의 전통
의 한복판에서 몸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사유했던 흄조차도 몸에서 촉각, 미각, 후각은 무시하고 시각과 청각만
을 강조하며 몸에 대한 올바른 담론 정립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인문사회과학에서 영혼이나 마
음과 같이 보이지 않는 것의 가시성을 힘차게 강조하면서 몸과 같이 보이는 것의 비가시성을 끈질기게 옹호했다.

그러나 1980년대 서구에서 몸의 부활이 시작되었다. 인간의 몸을 단순한 생물학적 유기체로만 보지 않고 심리적,
이념적, 역사적 의미까지 내장한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몸은 전달 내용이다라는 명제까지도 가능하다.
이제 우리의 몸은 자아, 정체성, 사회, 역사, 문명의 쇄신과 재구성을 위한 가능성의 담론이 되었다. 몸은 이미 언
제나 우리의 지각과 의식 속에서 작동한다. 몸으로 수행된 구체적 경험은 사유, 통찰력, 비전과 같은 모든 것의
기본이다. 몸과 정신의 이분법적 대적 관계는 이미 그 효력을 상실하였다. 몸 속에 영혼이 거처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영혼 속에 살아가고 있다. 춤추는 사람과 춤을 구별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영혼의 집이며 지각의 토대이
며 역사의 흔적인 우리의 몸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억압된 것은 언젠가 되돌아 온다고 하지 않은가? 몸
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몸으로 사유해보자.

- 몸을 통해 새로운 담론의 창출을 -

그러나 욕망의 저수지로서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호명하는 대상으로서 몸은 자율성을 가진 주체인가? 우리의 몸은
지금까지 과잉보호되었거나 사용되지 않았고 아니면 지나치게 학대받고 착취당하기도 하였다. 우리의 몸은 자율적
으로 관리되고 자연스럽게 돌봄받기보다는 엄청난 욕망과 다양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통제되고 이용되고 재구성되
었다. 몸은 심지어 자본이 되고 권력이 되었다. 몸은 욕망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배설되는 실천의 장이며, 광고
에서처럼 자본과 상품에 의해 희롱당하는 소비의 장이며, 의학자본과 미용산업에 의해 난도질당하는 변형의 실험
장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성전환자가 인기 연예인이 되고 영국의 한 과학자가 자신의 몸에 컴퓨터 칩을 이식해
실험하는 등 몸은 이제 새로운 저항과 창조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실례로 프랑스 탈근대 페미니즘에서 말하고 있
는 ‘여성적 글쓰기’는 남성의 펜(성기)으로만 쓰는 글이 아니라 여성의 몸 전체를 사용하는 전혀 새로운 글쓰기
전략이다. 이렇게 몸의 문제가 인문, 사회과학의 담론에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몸의 문제는 인문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이다. 이 상자에서 터져나올 문제들
은 어떠한 것들인가? 포르노그라피, 미용산업 등 가부장제와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대중문화 속에서 몸이 소비·재
생산되는 양식과 유전자 조작(복제양 돌리, 인간복제), 인공장기 이식술의 발달에 따른 인간 몸의 정체성의 위기
와 해체 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과 노동으로부터의 신체해방과 몸을 즐기는 섭생의 원리에 관한 논의가
궁극적 화두가 될 것이다.


@ 인문학 내에서 욕망에 관한 논의
- 홍준기(경희대 강사, 철학)

- 학문 속의 욕망, 욕망 속의 학문 -

인간의 욕망을 학문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이 학문의 고귀함에 대한 불경한 도전으로 여겨지던 시대는 서서히 종
언을 고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금기시했던 욕망에 관해 스스럼없이 논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 라캉, 프로이트가 욕망의 지위를 승격시켜 -

물론 정신분석학을 알지 못했던 시대의 사람들도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철학사의
‘부록’에 지나지 않았던 욕망 개념을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로서 완전히 ‘승격’시킨 공적은 프로이트와 라캉
정신분석학에게 돌릴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 라캉 정신분석학은 욕망을 엄밀한 이론적 차원에서 논의한다. 간
략히 말하면 욕망은 단순한 본능적, 생물학적 욕구가 아니라 상징적 차원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 그리고 욕망은 욕구와 달리 대상이 실재하지
않으며 결핍을 중심으로 구조지워져 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은 이러한 욕망 개념으로써 의식중심주의(독단적
형이상학)와 경험주의(과학주의)라는 근대의 양대 이데올로기를 극복했다.

이러한 정신분석학적 인식론은 심리질환을 생물학적 결함으로 환원시키는 과학주의와 전통적 정신의학을 비판한
다. 기존의 ‘지배자의 담론’은 정신병, 성도착, 신경증 등과 같은 ‘병리현상’을 법률적, 도덕적, 과학적 기준
에 따라 분류, 평가하는 것에 주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와 반대로 정신분석학은 타자의 욕망과 향유에 직면한
주체가 그에 대해 취하는 입장에 따라 구조적 관점에서 병리현상을 설명함으로써 이를 ‘탈병리화’한다.

- 욕망의 '주체'는 윤리적, 정치적이기도 해 -

그러므로 정신분석학적 임상이론 및 성 이론은 동시에 ‘새로운’ 주체이론이기도 하다. 정신병, 성도착, 신경증
과 같은 ‘병리적’ 현상은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육체와 성을 욕망하고 향유하며, 타자 속의 결핍을 받아들
이는 주체의 ‘고유한’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할 수 있다. 건조한 강단철학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전통
철학은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수용함으로써 인간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사르트
르, 야스퍼스, 빈스방어 등 정신분석학적 소양을 갖춘 서양철학자들은 공허한 개념이 아니라 ‘생활세계’에 뿌리
박은 구체적인 개념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했다. 예컨대 드 왈랭스는 라캉 정신분석학과 헤겔, 하이데
거, 후설 등의 철학을 연관시켜 주체에 관한 탁월한 해석을 보여주는 『정신병』이라는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그
리고 정신분석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가장 무게 있는 비교적 최근의 연구서로써 알랭 쥐랑빌의 『라캉과 철학』
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적 주체 이론은 동시에 ‘윤리적’, ‘정치적’ 임상이론이기도 하다. 히스테리의 치료에서 출발한 정
신분석학은 지배자(의사)의 지식을 바탕으로 히스테리를 단순한 도덕적, 지적 혹은 생물학적 결함의 산물로 보았
던 정신의학의 진단 및 치료 관행을 비판, 극복했다.

인간의 욕망은 억눌러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 해방의 필요조건이다. 이 점을 처음으로 파악한 사상가들은 프
랑크푸르트의 비판이론가들이었다. 그들은 욕망의 해방과 정치적 해방을 동시에 고려하는 새로운 사회철학을 수립
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빌헬름 라이히와 같이 성 해방과 정치적 해방을 무비판적으로 동일시하는 오
류를 낳기도 했으나 비판이론가들의 사상은 현대 사회, 정치이론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비판이론의 흐름을 흡수하면서 라캉 정신분석학과 알튀세의 맑시즘을 독창적으로 적용해 정신분석학의 정치적 측
면을 가장 설득력 있게 부각시킨 사상가로는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슬라보이 지젝과 그를 중심으로 하는
슬로베니아 라캉 학파를 단연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지젝은 이미 초기 저작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욕
망, 환상 등 다양한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을 원용함으로써 사회이론의 난제 중 하나였던 ‘개인과 사회의 변증법’
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했다. 시기적으로 지젝보다 좀 앞서지만 이론의 ‘난해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상가인 바디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알튀세와 라캉의 ‘독립적인’ 제자였으며 지금은
들뢰즈에 버금가는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바디우는 일찍이 『주체 이론』이라는 저서에서 헤겔 변증법과 라캉의
기표의 논리학을 연결해 맑스주의 변증법을 재정립했으며 최근 주저인 『존재와 사건』에서는 철학, 인식론, 수
학, 라캉 정신분석학을 집대성한 방대한 철학체계를 구축했다.

- 다양한 영역에서 연구되는 '욕망' -

여기에서 필자는 정신분석학적의 개념들을 응용한 현대 인문학 저서를 읽기 전에 정신분석학의 고전을 깊이 공부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현재 문화인류학, 사회학 등 응용정신분석학 분야의 연구는 정신분석학의
고전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문학, 문화, 예술론, 미학, 비평이론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정신분석학 이론의 응용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기초
학문’으로서의 ‘이론정신분석학’ 연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프로이트로의 복귀의 의미’라는 강연
에서 라캉은 소위 ‘응용정신분석학’이 정신분석학의 본질에서 이탈한 사례가 많았음을 지적한 바 있다. 알튀세
도 지적했듯이 정신분석학 이론의 응용의 역사는 동시에 정신분석학 이론이 낳은 혁명성에 대한 ‘수정’의 역사
이기도 하다. 응용에의 ‘욕망’ 때문에 ‘쉽게 정리된’ 정신분석학 이론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원전’을 중심
으로 기초학문, 혹은 새로운 철학으로서의 정신분석학 고전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위기에 처한
인문학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으며, 물질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혹은 실용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매몰되
어 정신적 깊이를 상실한 한국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각 학문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 및 연구자들의 욕망이다.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윤리적 태도’를 통해서만 인간해방과 현실 극복을 위한 혁신적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욕망에 대해 관심을 갖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젠더(gender)  
        



@ 왜 역사가는 젠더를 말하는가 - 역사학에서의 젠더 논의
- 정현백(성균관대 교수·사학)

지난 30여 년 동안 서양에서 여성사(women's history)의 열기가 높아지면서, 종래의 역사서술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일어났다. 즉 역사서술의 근간을 이루는 사료들에서 여성에 대한 서술은 빈약하고, 여성에 대한 언급이 있
을지라도 그나마 남성 혹은 지배계급·식자층의 시각에서 자의적으로 서술되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사는
기존 역사학의 시대구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흔히 역사가들이 역사의 전환점으로 간주하는 시기들이 남
성에게나 여성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사가들은 이미 His-(s)tory라
는 용어 자체가 역사학의 남성 중심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비판하며, 역사학을 지칭하는 용어로 Herstory를 애용
하고 있다.

여성사의 열기가 이어지면서, 스콧(J. Scott)을 필두로 하여 젠더 역사(gender history)를 주창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생물학적 성을 지칭하는 sex와 달리 '사회 문화적으로 형성된 성'을 표현하는 젠더는 역사학 내에
서 양성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드러내주는 좋은 척도가 된다.

젠더의 시각에서 역사에 접근할 경우, 역사가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근대성과 여성의 관계일 것이다.
프랑스혁명의 발발을 알리는 시가전에서 여성들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거리시위에
서 여성의 참여는 남성을 상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은 정치의 장에서 사라졌는가? 근대 민주주의나 시민
권이 보장하는 시민은 '남성'이었고, 프랑스혁명이 표방하는 그 화려한 용어형제애(fraternity)의 공통된 기반은
여성을 소유하는 데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젠더의 정치화 과정은 명백해졌다. 또한 민주주의 혁명과정에서 젠더가
정치화되는 것에 못지 않게, 산업혁명 과정에서도 기존의 자본주의가 젠더를 통해 노동시장을 이원화하고 성차를
근거로 여성노동을 평가 절하함으로써 엄청난 이윤을 착복하였음도 명료하게 드러났다.

서양의 역사학 내에서 언어를 통해 '페미니즘 역사 읽기'를 시도하는 젠더 사가들은 "언어가 여성종속을 초래하
는 계서제 질서를 역사학에 부여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역사학에 차용하는 데에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하였다. 한국의 서양사학계에서도 젠더에 대한 관심은 두드러지게 높아지고 있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
난 '신문화사'의 열기도 젠더에 대한 문제의식의 확산을 도왔다. 역사학보 150호 특집에서 여성사가 젠더 역사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법론적인 제안이 있었고, '서양의 가족과 성' (서양사론 65집)에 대한 공동연구 혹은 '페미니
즘과 민족주의'에 대한 연구 등에서 젠더가 가족이나 민족 등과 연루되는 방식이 다루어졌다. 또한 여성학을 중심
으로 종군 위안부 문제 혹은 포스트 식민주의 연구와 관련하여, 젠더가 민족국가·시민권·인권문제와 연루되는
방식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한국사에서 진행되어온 여성사 연구가 젠더 개념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연구의 지평을 넓히지
는 못한 것 같다. 또한 서구에서 젠더 역사와 사회사 사이에 진행되었던 논쟁, 즉 노동사나 가족사처럼 젠더 역사
도 사회사 내에서 한 분과로 잘 연구될 수 있다는 주장과 계급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젠더의 독자적인 영역이 존
재하므로, 젠더 역사는 사회사 바깥에서 독자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논쟁 역시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아직 시작조
차 되지 않았다. 한국의 역사가들이 젠더 범주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 젠더 개념과 인문학 패러다임의 변화 - 인문학 내에서 젠더에 관한 논의
- 고정갑희(한신대 교수, 영문학)

- 70년대 여성주의에서 정립, 다양한 학문 분야의 인식론적 기초에 도전 -

젠더(gender)는 서양에서 페미니즘이론이 활기를 띠면서 등장한 용어다. 섹스가 생물학적인 성을 말한다면 젠
더는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을 의미한다. 젠더라는 용어가 섹스라는 용어와 구분되면서 성과 관련된 문제를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로버트 스톨러의 저서 『섹스와 젠더』(1968)부터였지만 젠더가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
한 것은 70년대 여성주의자들에 의해서라 하겠다. 게일 러빈의 '성·젠더 체계'(sex·gender system)와 테레사
드 로르티스의 '젠더 테크놀로지'는 젠더를 더 심화시킨 개념들이다.

- 남성 지배구조에 도전하는 젠더 -

젠더 개념은 인문학의 방법론과 내용에 강한 영향을 미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오고 있다. 여성·남성, 여
성성·남성성이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인식은 학문의 보편성과 객관성에 대한 일대 도전이었던 것이다. 이제
철학, 문학, 역사,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교육학 등 여러 분야에서 학문의 남성지배구조가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런 도전은 기존 인식론에 대한 비판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리가라이와 크리스테바 같은 여성 정신분석가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상징계·상상계라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개념틀을 해체하고자 했다. 이들은 남근선망을 자
궁선망으로, 상상계를 기호계로 대체하기도 했다. 철학에서는 지금까지 주체가 남성이었고 여성은 질료화되었다는
인식 위에서 여성철학자가 부각되고, 철학사가 새로운 인식체계에 비추어 다시 쓰여지기 시작했다.

기존 인식론에 대한 도전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여성주의적 해석으로 이어졌다. 여성의 역사가 부각되면서 보편
적 역사는 '남성의 역사'로 파악되고, 젠더 개념에 입각해 남성을 분석하는 남성의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여
성주의자들은 젠더 개념에 입각해 여성과 생산양식, 성과 계급의 관계, 공적영역의 중심인 계급과 성별 분업을 탐
구함으로써 남성들의 경제학과 계급론을 넘어서는 여성주의적 경제학의 길을 열었다. 틀거리를 다시 만드는 가능
성을 제공한 셈이다. '성의 정치'라는 개념은 가부장제, 섹슈얼리티, 성문화를 여성의 시각에서 읽어냄으로써 기존
정치 개념의 편파성을 지적하고 그것을 확대, 재편하는 데 기여했다.

그렇지만 젠더 개념이 가져온 충격은 글쓰기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인다. 남근논리와 남성중심성에 입각한 인식
론과 담론에 대항하여 일부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적 글쓰기'(ecriture feminine)라는 개념을 내어놓는다.
이 때 글쓰기라는 개념은 후기구조주의의 영향 하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세계관에 준한다. 여성적 글쓰기란 여성의
몸을 통해 사유하는 글쓰기를 말한다. 음경·남근적 글쓰기와는 다른, 여성의 성적 차이를 상징하는 모유 혹은 여
성의 성감대(온몸, 두 음순)로 쓰는 글쓰기다. 남성의 성기로 상징화되는 사회에 대항해 여성의 육체를 글쓰기의
상징으로 삼아보겠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여성적 글쓰기의 개념은 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환원론이
라는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여성의 몸이 담고 있는 역사 혹은 체험에 입각한 글쓰기라는 점에서 형식과 내용이
기존의 글쓰기와는 달라질 가능성을 담고 있다. 여성적 글쓰기는 협소하게는 기존의 문법체계를 흐트리면서, 논리
적이고 딱딱한 논문 같은 남근적 글쓰기와는 다른 것을 말하며 수다떠는 형식, 혹은 기존의 기호나 부호들을 생략
해버리는 글쓰기 방식이 그 예다. 그러나 여성적 글쓰기는 이론화되지 못했고 실천을 통해 구체화되지도 못했다.

- 새로운 글쓰기로서의 '여성적 글쓰기' -

기존의 남성중심적 젠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여성주의적 인식론은 글쓰기를 넘어 문학에서도 잘 드러난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성」이라는 글에서 "여성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서 문학가들에게 물어보라고
결론짓는다. 그리스 신화에서 피그말리온은 현실의 여성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상적인 여성상을 조각하는데, 그
조각상은 피그말리온의 아내로 변한다. 피그말리온이 문학가로 바뀌고 문학 안팍의 여성이 남성문학가와 평론가의
펜(페니스의 상징)으로 태어났다면, 여성은 어떤 기관으로 텍스트를 생산할 수 있었을까? 동일한 펜이었을까? 젠
더와 문학의 관계를 살펴보면 문학은 젠더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남성중심적인 텍스트를 생산하고 소비해 왔으
며, 특정한 성과 계급이 전유하는 문화권력의 장이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한국에서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인식의 확산은 사회 곳곳의 여성운동, 여성학에 대한 인식과 맞물리면서 가능
해졌다. 90년대 들어 성담론이 활성화되고 대학에서는 여성연구소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문
학학회로는 「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를 필두로 「한국여성문학학회」, 「여성고전문학학회」가 생겼으며 「여성
철학회」도 등장했다. 젠더학이라는 명칭도 대두됐다.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인식은 문학 비평과 창작에도 변화
를 가져왔다. '여성중심비평'(gynocriticism), '남근비평'(phallic criticism)이라는 서양 용어들이 소개되었고,
여성주의 시들(고정희, 최승자, 김승희, 김혜순 등), '염소를 모는 여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여자, '서
있는 여자'등 여성의 존재조건을 보여주는 소설들이 등장했다. 이론과 비평도 여성을 특화하기 시작했다. '페미니
즘문학론', '페미니즘문학비평'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들이 나왔고 젠더를 탐구하는 작업인 『여성문학』, 『여성과
사회』, 『여·성이론』 등이 등장했다. 『한국의 여성영웅소설』, 『여성고전작가연구』가 보여주듯이 방한림전
같은 고전과 신여성 작가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이문열의 『선택』 등 남성작가의 작품에 대한 비판
은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문단의 남성문화권력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지게 될 것이다. 가부장적인 문
화에서 보편성을 가장한 남근적 글쓰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여성주의적 글쓰기(feminist writing)의 가능성을 더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여성주의 이론과 비평 그리고 평론과 창작의 실천적 연계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한국에서는 90년대 들어 젠더 이데올로기가 널리 인식 -

여성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인문학의 다양한 영역에서 젠더의 개입이 요구된다.
젠더라는 인식소에 입각한 교육이론, 사회사상, 정치이론 등이 더 정치해지고, 한국 여성의 역사, 한국남성의 역사
가 쓰여지고, 한국 여성철학자들의 발굴도 가능해져야 한다. 민족주의, 분단체제, 제국주의, 자본주의, 종교(유교,
기독교)에 대해 젠더에 입각한 분석이 더 심화될 필요가 있고 성폭력을 이론화하는 작업도 인문학의 일부가 될 필
요가 있다.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생태주의    

        

@ 생태학적 사유가 인문학에 미친 영향 - 인문학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이어진 생태주의
- 구승회(동국대 교수, 윤리문화학)

생태(생태계, 생태학)라는 말은 '정보', '문화'라는 말과 더불어 우리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화두다. 최근에는
그냥 '생태학'이라고 쓰지 않고 '생태주의'라는 단어로 변용되고 있다. 하지만 생태주의란 다양한 분광적
(spectrum) 현상을 보이는 그리 선명하지 못한 용어다. 이것은 아주 소박한 자연보존론자, 기술지향적인 환경보
호론자, 형이상학적인 생명중심주의자(신비주의자), 혹은 반문명주의를 선언하는 급진적인 전체론자(holist)까지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태주의는 환경사상, 생태사상에 기초한 아주 느슨한 '이념의 집합'이지, 구체적
인 지향성을 갖는 개념은 아니다.

- 자연, 환경, 생태의 개념을 포괄하는 생태주의 -

생태주의는 '자연', '환경', '생태(계)', 세 개념을 포괄한다. 자연은 가치중립적인 대상 개념인 반면에, 환경은
조건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인간의, 인간을 위한 조건이다. 환경은 인간과 관계를 맺음으로써만 '유의미'하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적인 문화양식이며, 동시에 평가적 개념이기도 하다. 반면에 생태(계)라는 말은 19세기 중엽에 만
들어질 때까지만 하더라도, 순전히 생물학의 개념이었다.

그런데 지난 세기 후반부터 에콜로지(ecology)는 에코노미(economy)와 어원상의 사촌관계를 청산하고, 학문의
전 분야로 확산되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산업주의의 끝없는 자기확대에 대한 반성의 도구로써 적절했기 때문이었
다. 대지의 장엄함에 대한 경외를 주장했던 레오폴드(Aldo Leopold), 1964년 『침묵하는 봄』으로 많은 미국인
들에게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던 카슨(Rachael Carson), 시(詩)를 통해 환경파괴를 고발함으로써
환경적 관심의 대중화에 기여한 스나이더(Gary Snyder) 등은 생태주의의 확산에 기여한 선구적인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에 자극 받아 나온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 슈마허의 에세이집 『작은 것이 아름답다』 등은
지난 세기 환경운동을 촉발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 산업주의의 자기 확대에 대한 반성의 도구 -

지난 세기 6∼70년대의 환경사상은 환경적 관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공해, 오염, 보존, 보호 등 인간중심적 관
심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자연환경'을 지킬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환경문제가 사회운동을 통하
여 충분히 대중화된 후에 학문적인 접근이 시작됐는데, 후속하는 학술적인 연구는 세기말에 이르러 생태학적, 환
경적 가치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하는 정언명령의 위치에 올려 놓았으며, 심지어는 과학탐구, 거래, 기업,
매체 등 모든 분야에서 호황을 누리는 '상품'으로 과소비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생태주의의 확산은 인문학 연구에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함께 끼쳤다. 부정적인 영향은 첫째,
초기 생태사상가들은 현재를 비판하는 데 골몰한 나머지 아주 어두운 미래조망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런 경향은
인문학 연구에 강한 반인간주의적 정신을 퍼뜨렸으며, 둘째, 생태주의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포스트모던
적 문화현상과 결부되면서 인문주의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자기-파괴적인 허무주의를 끌어 들였으며, 셋째, 환경과
생태계의 위기에 대한 반성의 결과 서구 사람들이 동양사상에서 대안을 구하면서 인문학 연구가 '신비주의적인 경
향'을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

동시에 생태주의는 두 가지 잘못된 이데올로기―즉 '환경이데올로기'―로 변질되는 경우도 있는데, 하나는 환경
친화적이고, 생태 지향적인 것은 모두 좋다는 식의 생태지상주의가 과격해지면서 과거의 정치적 전체주의보다 더
위험한 '생태적 전체주의'(eco-fascism)로 되는 것이고―예를 들면 심층생태론(deep ecology), 다른 하나는 자
연관, 세계관의 변화라는 실현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처방보다는 환경-기술적 처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
기술중심적 사고'가 그것이다.

- 잘못된 환경이데올로기로 변질될 수 있지만 인문학의 휴머니즘 복원에 중요한 기여 -

그러나 이런 모든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지난 3~40년간의 생태학적 사유의 발전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히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중에서도 철학과 문학이 생태학적 사유와 특별한 친화성을 갖는다. 현대 세
계에서 주체-강화와 지배-강화를 주도해 온 이들 학문분과는 19~20세기를 거치면서 공고히 해 온 이성적 기획의
결과들을 전면 부인하는 자기모순적인 주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자기 파괴적인 경향이라기보다는
세계관 변화의 계기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생태철학, 생태비평, 환경윤리, 생태문학 등은 모던적 철학, 문학의 해
체라기보다는 '자연학적 재구성'으로서 이미 고착화된 분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밖에도 시(詩)의 해석, 도덕
판단의 정당화, 존재에 대한 질문, 기술의 역사적 진화에 대한 해석 및 미래예측 기술 등의 분야에서 지금도 무한
팽창하고 있다.

그러면 생태학적 사유가 인문학적 지평을 확대했다는 점 이외에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
는지 보자. 무엇보다도 경제생활의 변화를 들 수 있겠다. 규모의 경제에서 린(lean) 생산방식으로, 자연친화적인
생산-소비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거대한 수퍼마켓에서 소규모 직거래로 변화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세계화·
정보화와 연결되면서 급속한 탈중심화가 일어나고 있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체제중심적 삶에서 생
활세계중심적인 다양한 분권적, 공동체적 삶으로 변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개인들의 행위를 지배하는 도덕의 기
준도 변하고 있다. '경쟁', '타협', '합리성'이라는 공적 도덕은 약화되고, '연대', '결속', '관용'이 중요한 생태-
도덕적 표준으로 되고 있다. 이는 다문화주의 시대의 필연적인 공존의 논리이다.

- 생태학적 사유가 세계관 변화의 계기로 작용해 -

이처럼 생태학적 사유가 인문학과 현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 왔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성의 변화
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사회성의 쇠퇴, 그것이 현대(modernity)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때, 생태학적 사
유는 엄숙주의, 정적주의(quieticism)에 사로잡힌 인문학의 '반인간주의적 데카당스(decadance)'를 치유하였으
며, 휴머니즘의 복원에 기여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제 정념을 이성만큼이나 고상하게 생각하고, 이념을 진리
만큼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만큼이나 낭만적인 혁명을 생각하는 '사회적 개인'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들
이 바로 '포스트 휴먼'일 것이다.


@ 생태주의와 기술주의는 양립할 수 있는가 - 우리나라에서의 생태주의 담론
- 홍욱희(세민환경연구소 소장)

우리 사회에서 생태주의 담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8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인데 시민환
경단체 활동이 본격화하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주로 '재야학자'들을 중심으로 심층생태
학, 에코페미니즘, 사회생태론 등 다양한 생태주의 이론과 철학들이 소개되었으며 최근 『녹색평론』이 창간 10주
년을 맞을 정도로 생태주의 담론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확고한 기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면 생태주의가 이처
럼 짧은 기간 동안에 크게 각광받게 된 동기는 어떻게 정리될 수 있을까?

우리는 지난 3, 40년 동안 과거 선진국들이 한 세기 또는 그 이상에 걸쳐서 이룩했던 산업발전의 성과를 한꺼
번에 달성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이런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인권과 사회복지, 부의
분배 등에 대한 고려 역시 크게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80년대 후반부터 사회민주화에 대한 시대적 요
청이 봇물처럼 터지고 그 일환으로 쾌적한 환경에 대한 욕구 또한 크게 증대했다.생태주의는 비단 환경보전의 차
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민주화와 복지증진의 차원에서도 아주 매력적인 이념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는 대안이 아
니었나 생각된다.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분석할 때, 지난 반세기 동안 서구에서 풍미했던 생태주의가 과학기술만능
주의, 경제우선주의, 물질주의 등에 대응되는 이념으로서 성장했다면 우리 나라에서의 생태주의는 사회민주화의
지연과 환경오염의 심화라는 현실 속에서 그것의 개선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운동이념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 생태주의가 사회운동이념으로 자리잡아 -

따라서 적어도 우리 현실에서는, 서구에서와는 달리, 생태주의가 그 대응되는 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주의
에 대한 반대론으로 등장했다고 단정짓기 곤란하다. 그리고 사정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태주의와 기술주의, 또
는 그것들을 표방하는 인문사회학자들과 과학기술자들의 양대 진영이 서로 대립하는 일이 있을 필요도 없고 또 있
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1, 2년 동안 동강댐 건설과 새만금 사업을 둘러싼 논쟁에서 생태주의자들(시민단체)과 기술
주의자들(과학자) 사이에 첨예한 대립양상이 전개되었다던지, 최근의 생명윤리 논쟁에서 다시 한번 양대 진영이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있는 일 등은 대단히 유감스런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생태주의가 사회운동의 이념으로 등장한 이래 서구 과학계는 생태주의에 대해 줄곧 냉소적인 입
장을 보여왔는데 이는 생태주의가 처음부터 과학기술만능주의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만약 최근의 사회적 논쟁들에서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다소 경직된 태도를 고수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나타난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는 결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
니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우리 현실에서는 사회 비판에 대한 인식 자체는 과학자라고 해서 생태주의
자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으며, 환경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 또한 과학의 테두리 내에서 충분히 찾아질 수 있기 때
문이다.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정보사회   

        


@ "정보사회"의 개념과 쟁점
- 서이종(서울대 교수, 사회학)

정보사회론은 미래학적 사회개념으로서 1973년 다니엘 벨에 의해 '후기산업사회'의 유형으로 개념화된 이래 인
구에 회자되기 시작했고, 선진국에서도 1980년대 후반에야 그 모습이 나타나던 정보사회론이, '후발국의 미래는
선진국'이라는 생각에서 우리 사회에도 1985년 도입됐다. 그러나 정보사회론은 우리 사회의 성숙과정과 그 학문
적 성찰 속에서 탄생·발전된 것이 아닌, 선진국 추수형의 정부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됐으며 다분히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녔다. 따라서 1990년대 초기까지의 정보사회론은 이데올로기 비판적 연구였으며, 후기산업사회라는 거
대 담론의 이론적 소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 때의 정보사회론은 확실히 "당시 한국 사회상황과 정보사회론에
서 제기되는 사회상이 아직 여러가지 면에서 부합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
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두 가지 사회분석적 메세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첫째, 당시 산업사회학에서는
신기술로 표방되는 정보기술의 노동과정에 대한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자동화, 노동의 탈숙련화, 능력주의 인사정
책 등을 분석했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언론정보학에서 케이블 TV나 컴퓨터 매개 의사소통 등 뉴미디어론이 설득
력있게 제기돼 사회학에 앞서 정보사회의 개설서를 출간하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정보사회론은 우리 사회
에서 분석적 적합성을 가진 이론은 아니었다.

시들어가던 정보사회론은 1996년을 계기로 급속하게 현실사회 분석개념으로 정착되어 갔다. 세계사의 측면에서
탈냉전이후 이데올로기 대립이 종식되고 전지구적으로 경제전쟁이 치열해지면서 반도체, 컴퓨터 등 국소전자기술
이 적극 도입되고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의 출현으로 사회분위기는 변하였다. 이러한 현실 사회변화를 계기로 정
보사회론은 학계의 중심 연구주제로 부상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정보사회론은 아직 많은 연구과제를 안고 있다.
"고백컨대 우리나라 정보사회의 이론과 지식은 달러와 원자재만큼이나 외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최근에야 본격적인
사회학적 성찰을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정보사회론이 추상적인 이론적 개념으로부터 현실사회의 분석개념으로서 자리잡는 과정은 역설적일 만큼이나 사
회현상없는 이론수입의 전형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제야 정보사회론은 우리 사회변화를 기반으로 한 개념적 이론
적 비판과 재구조화가 가능한 시점에 이르렀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1) 정보사회론과 인프라 구축 : 기술, 정부 그리고 시장

정보사회화는 정보기술기반 위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사회변화를 통칭하며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인프라로서의 정보
기술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정보사회 형성의 출발점이다.

우리나라 정보기술인프라는 기술입국의 이념에 따라 선진국 따라잡기 전략에 기반해 구축됐다. '선진국은 우리
의 미래'라는 시각에서 정부 주도로 전자정보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자원을 집중시켰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
은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서자"라며 모험적 투자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당시 벤처기업이나 다름없었
던 퀄컴의 CDMA기술의 상용화나 미국회사가 특허권을 포기할 정도로 불완전한 ADSL을 기간망으로 구축한 결
정, IMT2000의 결정과정 그리고 또 최근의 VSDL로의 조기전환, 차세대 인터넷개발에의 투자 등이 이러한 정부
주도의 모험적 결정이라 할 것이다. "역사 앞에서 책임지겠다"는 투기적 결정을 통해 우리는 기술과 인력, 자본이
부족한 여건 속에서도 오늘날 인터넷 대국이 되었다.

물론 새로운 기술실험과 사업모델 검증을 통해 몇 가지 세계적인 아이템을 개발할 수 있다면 실패는 아니라는
우회적인 논리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분야별 엘리트들의 협력을 통해 이뤄지는 모험적 투자는 미래를 지향하는
비시장적, 반시장적 결정이며 또한 시민사회의 의견수렴과정을 건너뛴 개발독재식 결정이라는 점이 진지하게 고려
돼야 한다. 단지 모험적 투자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부중심의 모험적 투자결정이 지속됨으로써 시
장이나 시민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숙고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기술발전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그러한 투기적 투자는 더욱 더 큰 위험에 노출된
다. 경제적·기술적 격차가 클 때는 후발효과가 크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선진국에서도 실험중인 기술·제품에 먼
저 투자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모험적 투기적 경제정책은 이제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삶의
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지속되기 어렵다. 따라서 정보사회의 기술인프라 구축정책은 시장과 시민사회의
다양한 논의와 비용에 대한 고려를 통해 재고돼야 한다.

(2) 정보사회론과 정보기술활용 - 시장과 민주주의

정보기술을 활용한 전자상거래, 전자비즈니스, 전자정부, 가상교육, 원격진료, 지역정보화 등 새로운 사회현상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단위조직의 변화뿐만 아니라 네트워킹을 더욱 확대해 기업간 협력이나 이질
적인 조직간의 연계도 훨씬 더 고도화하고 있다.

기존 기업의 e-transformation이나 닷컴 기업의 붐은 전자공간을 통해 경제적 효율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그
러나 동시에 인간·사회적 측면에서 새로운 사업, 직업, 그리고 소통기회가 창출돼 사람들의 행위양식, 시민사회
의 여러 영역의 변화 또한 수반하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가 2천만 명, 이동전화 사용자가 2천5백만 명을 넘어선다
는 점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2천만 명이 북적대는 인터넷공간의 인간·사회
적 측면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인터넷상의다양한 안티사이트 소비자운동이나 대안언론은 주어진 제품을 소비하는
'수동적' 고객이나 '소극적' 유권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고 정치사회적으로 결집하는 소비와
정치의 주체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활발한 인터넷상의 커뮤니티활동은 정부정책이나 사회적 이슈에 정보를
적극적으로 교환하고 회원을 동원할 수 있는 가능성과 대기업의 횡포나 시장질서에 적극 대응하는 경향을 높이고
있기도 하다.

또 교육현장에서도 이제는 교육자 위주의 강의 못지않게 온라인 토론의 활성화, 커뮤니티기반의 수업 등 학습자
의 주장과 권리가 한층 증가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경제적 측면을 넘어 보다 거시적으로 사회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정보기술은 향후 기술논리를 넘어 보다 인간적 사회적 논리를 반영해 기술―인간 인터페이스를 한층 높이는 방
향으로 개발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정보사회현상을 보다 인간적, 사회적 삶의 질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특
히 정보사회는 조직의 통제능력을 현저하게 높여 감시사회의 성격을 증가시키며 동시에 개인의 소통능력을 급격하
게 향상시켜 개인이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을 한층 높이기 때문에 정치 뿐만 아니라 경제·사회 민주화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3) 정보사회론과 인간능력 - 정보와 지식

정보사회는 지식의 정보화를 통해, 종교적 지식독점으로부터 근대지식의 태동이나 근대지식의 과학화·응용화에
상응하는 큰 변화를 초래한다. 독점적 지식에 대한 접근을 높이고 정보의 검색, 저장과 변형이 이뤄지며 또한 다
양한 멀티미디어 정보를 통합할 수 있다. 또 지식과 정보의 사회적 활용도가 높아지고 다양한 수준의 지식전문가
들이 지식생산에 참여하며 그 경쟁이 심화된다.

그러나 동시에 지식이 정보로 변형되면서 발생하는 탈의미맥락화로 인해 의미맥락이 전혀 다른 정보들이 현상적으
로 조합(맥도날드화)되고 복사· 변형됨으로써 정보의 과다현상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정보홍수 속에서 정보
수집과 신뢰성 검증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하고 정보를 지식화할 수 있는 고도의 전문능력이 강조된다.
아무리 좋은 정보를 수집해도 그 정보에 대한 전문적 지식능력이 결여되면 쓸모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보사회
에서는 지식정보를 독점하는 전통적인 전문가가 아니라 개방적인 정보 네트워크하에서 지식생산을 담당하는 열린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러한 지식의 정보화와 정보의 지식화의 유기적 관계설정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산
업사회에서부터 지식을 체계적으로 산업에 활용했으며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고도화된 지식생산체제를 구축했다.
그들에게 정보기술은 사회적으로 축적된 다양한 지식을 공유하는 사회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식의 도입과 흡수 단계에 있었고, 지식생산과 활용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대량생산 산
업사회에서 정보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에, 고도의 지식컨텐츠가 아닌 게임이나 채팅의 장으로 전락했다. 따라서
우리와 같은 후발국의 정보사회화는 정보 공유와 활용 못지 않게 지식생산체제의 고도화 및 지식의 부가가치화라
는 비동시적 과제를 안게 됐다.

(4) 정보사회론과 제3세계 - 불평등과 토착문화의 운명

정보사회에서는 정보기술기반이 범세계적으로 확장, 심화됨에 따라 범세계적 경제활동뿐 아니라 범세계적 시민
사회의 구축이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정보기술인프라의 수준과 활용면에서 국제적 정보불평등이 나타난다. 전화
도 보급되지 않은 인구가 지구의 절반이듯, 가난한 나라는 여전히 정보기술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격차는 향후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많은 불평등을 초래해 격차해소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반면 정보기술인프라의 범세계화는 다양한 협력체계와 소통관계를 낳는다. 예를 들어 필리핀 거주 프로그래머가
미국회사의 홈페이지를 담당하고, 국가간 공동연구가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쉽게
이뤄지고 반세계화 집회에서처럼 행동의 조직화도 쉬우며, 또한 인종차별이나 여성문제 등 시민사회의 이슈에 대
한 국제적 논의나 소통이 쉽게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 교류와 침투가 그만큼 용이하게 이루어져, 헐리우
드 문화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각 나라의 토착문화의 운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우리나라에서의 영어공용화 논의도 실상은
범세계적 정보기술인프라의 문화전파를 전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어가 없으면 한국문화는 없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어의 국제적 경쟁력이 날로 줄어드는 정보사회에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진정한 범세계화, 범세계적 문화형성에 각국의 토착문화가 적극 기여해야 세계 문화가 풍부해질 수 있으며, 그
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문화 역량을 세계화하는 노력이 정보사회에서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범세계적 수준으로 확
장, 심화되는 정보사회에서 현실적인 문화변동을 예의주시하고 그 변화를 분석하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문화연구   

        

@ 문화연구란 무엇인가 - 문화적 실천의 상대적 자율성에 주목
- 정재철(동신대 교수·신문방송학)

'문화의 시대'라고들 한다. 90년대에 쏟아진 수많은 문화평론가들의 문화비평과 김대중 정부의 6개 전략 분야
중 하나인 문화컨텐츠(CT) 사업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문화'는 학술담론의 장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기존의 거대담론 속에서 주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상의 문화현상을 사회분석의 중요한 틀로 바라보는 문화연구(Cultural Studies)가 최근 인
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새로운 연구대상과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론적 탐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에 문화연구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들이 주장하는 문화의 정치성, 문화연구의 의미를 알아보고, 영국, 미국, 호주 등 세계 각국의 연구 현황과
국내 문화연구의 현황을 살핌으로써 바람직한 문화연구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1950년대 영국에서는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이나 이데올로기가 중류 계급과 차별성이 없어졌고, 대중 매체의 급
증에 따라 미국화된 대중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전통적인 문화제도에 대한 도전이 더욱 약화됐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아래 노동자 계급 출신의 호가트(Richard Hoggart), 톰슨(E. P. Thompson), 윌리엄스(Raymond
Williams) 같은 학자들은 영국의 문화·경제·정치적 영향력을 이해하고 재평가할 필요를 절감하게 됐고, 이에
따라 영국 도시 노동계급의 생활에 집중하게 되었다.

- 전후 영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태동 -

이러한 맥락에서 태동한 영국의 문화연구는 점차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문화연구는 완료되거나 단일한
이론적 입장으로 연구 전통을 구성하지 않고 문화연구의 역사 그 자체를 재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기
때문에 문화연구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데에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따라서 문화연구의 중심 연구과제를 통해 문화
연구가 무엇인가를 살펴본다면, 첫째 대중 문화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둘째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정
치·경제·문화적인 맥락에서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셋째 다음과 같은 비판적인 입장을 견
지한다.

특히 문화연구를 수행하는 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인종·성·세대와 계급 등으로 불평등하게 분열돼 있다는
비판적 인식에 동의한다. 이것은 문화연구가 기본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부연할 점은, 문화연구는 계급을 축으로 하는 경제주의적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의존하기보다는 비환원론적
마르크스주의를 모색한다는 것이다. 문화연구의 전통에서는 문화가 특정한 역사와 사회구조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
에 동의하지만, 문화가 구조나 역사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진 않는다. 문화연구는 다만 문화가 구조를 구성하고 역
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로부터 문화의 중요성을 도출한다.

- 대중문화는 갈등과 논쟁의 지형 -

이 같은 맥락에서, 문화연구가 다른 사회 비판적인 이론이나 연구 전통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점은 문화를 자
율적인 것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정치 권력이나 경제적인 요인들에 의해 외부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 자체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열과 투쟁이 일어나는 주요한 현장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 상에서 대중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즉, 대중문화는 무엇보다 의미에 대한 연속적인 투쟁이 발생
하는 갈등과 논쟁의 지형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문화의 장을 통해 사회관계의 생산과 재생산이 이뤄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연구의 관점은, 문화가 권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나 사회 집단 속에서 불평등이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문화의 장에서 의미와 의미의 생산은 사회 구조와 분리될 수 없으며, 의미의 생산/재생산
과 사회 구조 내에서 나타나는 지배의 관계는 밀접하다. 따라서 문화는 의미의 투쟁 장소가 되고, 다른 실천들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문화 자체가 실천이 되며, 독자적 산물로써 의미를 지닌다.

- 자본주의의 분열과 투쟁현장으로 문화 자체를 지목 -

이에 따라 주로 영국의 초기 문화연구 전통에서는 문화적 실천이라는 텍스트에 나타난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이
데올로기 분석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문화가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는 의미에서 이데올로기 분석은 의
의를 갖게 되고, 문화 분석으로서 의미 분석은 중요한 작업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볼 때, 문화연구의 전통 속에서 '문화' 개념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기 쉬운 고급 예술 작품과 같이 미학
적으로 정의된다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정의되며 이데올로기적이다. 따라서 문화연구에서 연구의 대상은 협의로 정
의된, 미학적·지적·정신적인 발전 과정으로서의 문화라기보다는 특정한 삶의 방식에 내재되거나 표출된 의미와
가치들로서의 문화이다.

- 문화의 장을 통해 사회관계의 생산/재생산 이뤄져 -

또한 문화가 의미와 가치들에 대한 갈등과 타협의 현장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문화연구는 문화적 실천들로서의
텍스트와 담론들, 특히 성·인종·세대·계층·지역 등에 관련된 것들이 인간의 일상적인 삶과 사회 구성체 안에
서 어떻게 생산되고 작동하는지, 일상적인 삶과 사회 구성체 안에 어떻게 삽입되고 있는지를 기술하며 동시에 그
러한 기술을 통해 발견된 문제들을 중재하고 조정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또 그러한 일들이 현존하는 권력 구
조를 재생산하거나 변형시키고, 때로는 기존 권력 구조와 투쟁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요약하면, 문화 특히 대중문화는 무엇보다 의미에 대한 연속적인 투쟁이 발생하는 갈등과 논쟁의 지형으로 간주
되며, 이러한 문화의 장을 통해 사회 관계의 생산과 재생산이 이뤄진다. 또 문화연구는 차별과 소외를 창출하는
사회·문화적 세력에 관심을 갖고, 의미화 실천을 통해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유지시키는 사회·정치·이념적 맥
락을 변화시키려는 지적이며 정치적인 연구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 문화주의와 구조주의의 결합 -

이러한 문화연구의 전통은 문화주의와 구조주의라는 두 가지 입장이 결합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문화주의는 구
조보다는 인간에, 지배 계급보다는 피지배 계급의 전략에, 이데올로기보다는 인간의 경험에 관심을 갖는다. 반면,
구조주의는 인간 실천의 결정물 혹은 궁극적인 조건으로서 문화의 구조적·이데올로기적 특징을 강조하는 연구전
통이다.
이러한 두 가지 상이한 연구 전통은 스튜어트 홀에 의해 융해되어 문화연구를 확립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계기
를 통해, 문화연구는 사회적 실천과 그것들이 담론 및 이데올로기에 표상되는 방식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에서
'문화적 실천들의 상대적 자율성과 구체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 최근의 문화연구 -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수용
- 미국, 호주를 중심으로

- 정정호(중앙대 교수, 영문학)

60년대 후반부터 정립되기 시작해 80년대 중반까지 황금기를 누렸던 영국의 문화연구는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으로 급속히 확산되어 학제적이고 통합적인 방법론으로 정착되고 있다. 이러한 정착 과정에서 몇 가지 변별성이
나타난다.

'텍스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명제에 토대를 두었던 해체론을 재빨리 수용했던 미국의 학계는 역사와 사회를
담론 속에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신역사주의와 문화유물론을 받아들였다. 이와 같은 조류에 편승해 미국은 80년대
에 영국의 문화연구를 끌어들였다.

문화연구는 이제 엄청난 속도로 문화 등의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방법론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문화비평』이 창간되었고 『차이』, 『재현』, 『사회적 텍스트』, 『문화연구』 등의 문화연구 관련 전문 잡지
들이 잇달아 창간되었다. 그러나 소위 '문화주의'에 입각해 좀더 역사적이며 경험적인 영국 문화연구에 비해 문학
비평 등 정교한 해석체계에 기반하는 포스트구조주의의 길을 걷는 미국 문화연구는 영국문화연구가 가졌던 역사
적, 사회적, 계급적 맥락과 정치적 변혁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 미국 : 학제적 성공과 비판적 관점의 약화 -

미국식 문화연구의 탈정치화는 기존 체제나 문화에 대한 저항과 위기를 제도화 또는 전략화시키지 못해, 문화연
구는 유행하는 또 다른 학문적 소비상품으로 전락할 것이다. 문화연구에서 비판과 정치적 맥락을 강조하는 스튜어
트 홀은 당혹감을 느낀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문화연구가 미국적 맥락에서와 같은 제도화에 성공한다면
문화연구는 미국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권력, 역사와 정치학에 대한 비판적 문제들을 형식화해서 사라지게 만들지
도 모른다. 미국 문화연구에서 우리는 권력 ― 정치학, 종족, 계급 그리고 성별, 종속, 지배, 배제, 주변부성, 타
자성 등 ― 을 광범위하게 끊임없이 이론화할 수 없다."

한편 호주에서는 문화연구가 철저하게 자국의 역사와 사회의 전통에 따라 발전됐다. 호주의 문화연구를 이끌었
던 토니 베넷에 따르면 호주 문화연구의 발전은 문화와 국가의 관계와 관련된 논쟁과 관련이 있다.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지금은 영연방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호주 최대의 관심사는 국가정체성의 문제이다. 초기 개척자들의
생활, 원주민, 해변, 바베큐 등 호주문화의 신화, 상징, 역사적 의미를 풀어내는 호주학과 연계성이 강하다. 따라
서 호주의 문화연구는 국가의 정체성을 위한 진보적이며 독립적인 발전의 길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문화상황에 관
심을 지니고 있다. 식민지 개척시대 이래 전통적으로 남성중심국가였던 호주에서는 페미니즘이 문화연구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영국의 문화연구가 주로 문화와 계급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과 대조적이다.

- 호주 : 문화연구의 주변부성과 보편성을 절충 -

또 호주의 문화연구는 그 지리적 관계를 강조해 복합문화주의의 역사와 실천과 연계되어 발전해 왔다. 자국내의
다민족적 요소뿐 아니라 세계화시대에 걸맞는 주위 국가들과의 문화적 상호관계를 중시한다. 이와 더불어 호주 문
화연구는 토착민인 아보리지날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토착문화형성과 토착민의 인구와 지배와 관련된
탈식민적인 연구가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끝으로 호주 문화연구의 큰 특징은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이다. 정책연구는 이제 산업으로서의 문화에 대한 관심
으로 인해 문화적 차원이 사회경영프로그램으로 배열되는 방식들을 분석한다. 이렇게 볼 때 호주 문화연구는 저항
성이 강한 영국의 문화연구와 보편적 성격을 강조하는 미국 문화연구를 모두 극복하고 절충하는, 다시 말해 문화
연구의 주변부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편화(세계화)된 생산적인 모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호주 문화연구는 한
국의 주체적 문화연구 방법 수립을 위해서도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 국내 문화연구의 현황 -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다

- 언론정보학과 영문학 중심으로 연구 … 실천성 등에 대한 비판도 제기 -

"문화연구라는 명칭은 간(間)학문적 영역이라기보다 '있지도 않은 무엇'을 있는 것처럼 거론하는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처럼 문화연구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국내에서는 문화연
구를 어떻게 정의하며 무엇을 연구하고 있을까?

- '유행을 탄 학문'? -

박명진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는 "80년대 초 비판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수입과 함께 국내의 문화연구가 시작
됐다"고 말한다. 여건종 교수(숙명여대, 영문학)도 문화연구를 "서구의 학문조류에 편승해 유입된 '유행을 탄 학문
'"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문화연구의 부상을 이론적, 학문적 필요성에서 찾는 사람도 많다. 신광현 교수(서울대,
영문학)는 문화연구를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대안적인 사회분석의 틀'을 찾으려는 노력과, 본
격예술의 위상이 약화되고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강화된 문화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한다. 이에 정재철
교수(동신대, 신문방송학)는 "민주화 이전의 상황에서 국내학자들이 정치적, 실천적 개입을 중요시하는 문화연구
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국내로 유입된 문화연구는 주로 '언론정보학'이나 '영문학'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정재철 교수는 "언론학
의 문화연구는 TV드라마에 나타나는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논하는 등 대중매체에 내재된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 중심의 연구를 해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문화연구는 언론학 내에 체계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실정이다. 소수의 전공자들에 의해 관련 커리큘럼이 운영되고 있거나 「한국언론학회」의 '문화연
구' 분과에서 매체중심의 문화연구가 진행되는 정도다.

한편 인문학, 특히 문학연구에서의 문화연구는 새로운 문예사조이자 연구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성곤 교수
(서울대, 영문학)는 문화연구가 "문학연구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전통적인 문학연
구에서 제외된 대중문학을 포용할 뿐 아니라 영화, 텔레비전, 음악 같은 일상의 대중문화도 문학의 일부로 간주해
분석하고 해석한다"고 설명한다. 또 신광현 교수는 "작가와 작품 해석에 초점을 둔 기존의 문학연구과 달리 문화
연구는 '독자'가 생산하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문화연구는 언론학, 영문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정치학, 소비자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관심을 보이
고 있고, 특히 전통적으로 문화에 대해 연구해 온 인류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김광억 교수(서울대, 인류
학)는 "국가나 종교 등을 경계로 하는 특정 집단의 지속적이고 관습적인 문화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인류학"이라
며 "'청소년문화'와 같이 탈경계적이고 현상적인 소비문화를 연구하는 것에서 인류학과 문화연구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연구 역시 참여관찰이나 현지조사와 같은 인류학적 방법론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의 국내 연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원용진 교수(서강대, 신문방송학)는 국내의 문
화연구가 "문화현상에 대한 정책적 개입, 혹은 문화 운동과는 격리된 채 추상적인 설명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
다. 또 문화연구가 인문학 위기의 극복방안이 될 수 있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여건종 교수는 "문화연구는 문학작품
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면서 문학 고유의 특징을 간과하고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송승철 교수(한
림대, 영문학)는 문화연구가 문학의 '깊이'까지 말해주지는 못하지만 "작품이해의 기초가 되는 환경적 지식을 전달
하는 만큼 문학연구의 '보론' 이상으로 격상돼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우리'의 문화연구가 필요 -

문화연구의 경계를 짓거나 그 본질을 하나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무엇보
다 현재의 논의가 공허한 담론에 머물지 않도록 국내 현실에 맞는 '우리'의 문화연구 실행이 요청된다.



@ [인터뷰] 연세대 「문화학 협동과정」의 조한혜정 책임교수(문화인류학)

- "문화생산까지도 해낼 수 있어야" -

작년 국내 최초로 문화연구와 성연구로 이뤄진 연세대 「문화학 협동과정」에 문화연구 석사학위과정이 마련됐다. 이에 「문화학 협동과정」 의 책임교수로 있는 조한혜정교수(연세대·문화인류학)를 만나보았다.



▲ 문화학 협동과정을 만든 계기와 과정은?

세계화, 소비사회 등 최근 등장한 사회 현상들은 문화연구의 개념을 모르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96년부터 협동과정을 준비했으나 교수진 부족과 지원 문제 등으로 미뤄지다가, 문화연구에 관심이 많던 김현미 교수가 온 후 적극적으로 추진됐죠. 문화학 과정을 만들 때 학과간 갈등을 빚는 곳도 있다 하지만, 연세대는 인류학에서 문화연구를 주도했고 인류학이 소속된 사회학과가 인문대학에 속해 있어 별다른 충돌은 없었습니다. 문학과의 연계도 원활한 편이죠.

▲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영문학, 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석사과정 학생 6명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개설된 과목은 문화연구 이론, 실기, 성 연구 세 개 뿐이며 나머지는 학점교류가 가능한 학교에서 자유롭게 선택, 수강할 수 있게 했죠. 성연구와 문화연구는 둘 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대안을 제시, 실현하려는 학문이기에 같이 두기로 했습니다.

문화연구를 하려면 풍부한 경험하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하자센터」나 「대안교육센터」로 가서 일을 해보게 하는 등 인턴쉽을 통한 실제 경험을 강조하고, 워크샵을 열어 서로 의견을 나누게 하죠. 논문지도 역시 이런 방식을 택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이를 '자기 언어'로 풀어나가도록 장려할 생각입니다.

▲ 문화연구를 협동과정이라는 제도권 학문으로 '가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제도권이든 비제도권이든 지금은 각자가 할 수 있는 스타일을 살려, 있는 자원을 십분 활용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성사시켜야 할 때입니다. 예전엔 「문화학회」와 같은 시도도 있었죠. 그러나 문화학은 단순히 하나의 학문 분과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관과 학문 규정을 천명하고 있어, 근대 초기에 만들어진 기존 학문 분과와 같은 방식으로 문화연구가 대학에 정착하는 것이 적합한지는 의문입니다. 이번 여름 '세계 언론학대회'에서도 이에 대해 토론할 계획이며, 이후 박사과정을 만들 것인지에 관해서도 계속 논의중입니다.

▲ 현재 관심있는 주제와 앞으로의 계획은?

최근에는 서양 연구를 번역하는 것을 넘어 아시아의 자생적인 문화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근대화, 세계화가 압축적으로 일어나 서양과 다른 문화현상을 보여 많은 관심을 끌고 있죠. 그런 만큼 한류 열풍과 같은 문화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협동과정에서는 단순히 학문적으로만 뛰어난 문화연구학자를 양성하기보다는 문화생산까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을 배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 문화연구의 미래 - 한국의 문화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 강명구(서울대 교수, 언론정보학)

한국에서 문화연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문화연구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밝히고, 그것을 넘어서는 탐구의 방향
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질문에 답해보고자 한다.

첫째, 사회구성을 설명할 때 정치, 경제, 사회 다음에 문화가 나온다. 정치적으로 이렇고, 경제적으로 보면 이렇
고, 그리고 나서 문화적으로는 이런 점도 있지 않은가, 뭐 이런 식이다. 문화연구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사회구성
을 나열 식으로 파악하는 건 틀렸다. 왜 한국사회는 부패해서 정치 때문에 망할 것 같다가도 어떻게든 유지되고,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하는가? 왜 한국인들은 극악스럽게 잘살고자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정치, 경제, 문화 영역을 별개로 나눠서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다. 문화연구는 문화정치라는
문제틀을 통해 역사과정 안에서 특정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욕망, 위로부터의 동원과 삶을 떠받치고 있는 구조의
복합을 설명하려고 한다. 따라서 문화연구란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아니라, 사회구성을 문화의 정치를 통해 아
래로부터 해명하려는 이론적 실증적 작업이다.

둘째, 문화연구를 대중문화연구나 생활문화연구라고 생각하는 오해. 이건 하나의 부분일 뿐이다. 기존 사회이론
은 이들 대중문화와 생활문화 영역을 부차적인 것이라 생각해 오랫동안 정치구조, 경제적 생산관계와 같은 거대한
구조변동에 주로 관심을 쏟았다. 문화연구는 정치와 경제영역의 한 토대를 이루는 문화의 과정을 본격적으로 탐구
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은 세계의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고 있다.
이걸 경제 따로, 정치 따로, 문화 따로 설명할 수 없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로서 인터넷 이 만들어내는 경제와 정
치 아래에 깔린 문화의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 문화연구이다. 대중문화나 생활문화를 연구하면 문화연구가 되는 게
아니다. 영화텍스트를 해독한다고 해서, 텔레비전 수용자를 연구한다고 해서 문화연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
문화나 생활문화의 배후에 숨겨진 물질적 토대와 인간 욕망의 다이나믹스(이게 문화의 정치다)가 문화연구의 탐구
대상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문화연구는 어떠했는가. 문화연구에 대한 오해도 문제였지만,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는 대
부분 문화연구가 외국이론의 소개에 그쳤다는 사실이다. 80년대 말부터 포스트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이론이 한참
소개되다가 90년대 중반 서구학자들이 모더니티 문제로 돌아가니까 다시 모더니티에 대한 논의가 90년대 말부터
한참 나왔다. 진보적 문화연구자들 사이에서 성욕망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높은데, 울산지역 노동자 문화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사이보그에 대한 온갖 이론소개는 많은데, 왜 한국인들이 핸드폰을 그렇게 많이 사용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없다(2천만대도 넘게 핸드폰을 팔아먹은 SK나 한국통신도 당연히 연구할 문제인데도 그저 잘 팔려서
장사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것은 지식생산의 식민성이 한국의 문화연구에도 관철되고 있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왜 우리는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우리의 시각으로 새롭게 묻고 탐구해야할 때 학문의 식민성
을 넘어서기 위해서 또다시 외국의 탈식민주의 이론을 소개하고, 그것을 이해하면 식민성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아
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지금 나와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왜 우리는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
아가고 있는가'를 새롭게 묻고, 그걸 탐구하는 길이다. 댄스뮤직이나 백화점 공간을 들뢰즈, 가타리를 빌어서 비평
하는 작업은 이제 그만하자. AFKN이 한국대중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른 채 푸코가 어떻고, 부르디외
가 어떻고 하는 것은 이제 넘어설 때가 됐다.


@ 문화연구 읽기 - 책과 함께 문화의 세계로

우리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으며, 최근 유행하고 있는 한
국판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기까지, 하루에도 수많은 문화와 마주친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 서태지는 왜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문화 이면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문화연구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문화연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문화연구
의 계보와 연구 경향, 그리고 중심 주제를 설명한 『문화연구입문』(그래엄 터너, 한나래 언론문화총서)을 읽어보
자. 또 대중문화의 개념에서 문화주의와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문화연구의 중요
이론들을 정리한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존 스토리, 현실문화연구)을 함께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연구 성과물에 대해 알고 싶다면 『문화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현실문화연구)와 『문화 읽
기―삐라에서 사이버문화까지』(현실문화연구)를 권한다. 박명진, 강내희 등이 참여해 롯데월드에 관한 분석부터
멜로드라마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 『문화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는 우리나라에 문화연구가 도입된 이후
90년대 초까지 나왔던 글들을 다뤘다. 그리고 『문화읽기―삐라에서 사이버문화까지』는 사회학에서 만화에 이르
기까지 90년대 후반 다양한 필진들이 쓴 글을 모았다. 더 자세한 연구 현황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조금 어렵기
는 하지만 「문화과학」에서 펴내는 계간 『문화과학』 을 추천한다.

한편 외국 학자들의 분석을 엿보고 싶다면 『대중문화와 문화연구』(한울)를 통해 문화연구라는 개념을 처음 정
립한 스튜어트 홀과 그 밖의 여러 학자들의 글을 만나보자. 『문화연구를 위한 현대 사상가 50』 (존 레흐트, 현
실문화연구)을 통해서는 피에르 부르디외,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등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다. 이 책에
서는 20세기 사상을 읽어내는 키워드인 서구 지성 50명의 생애와 사상을 문화연구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어 각
사상가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계속해서 문화연구와 관련한 실천적인 문화 운동과 개혁 이슈들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면 『대중문화연구와 문화
비평』 (이동연, 문화과학)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세계화, 민족국가, 지역통합     

        


@ 세계화와 민족국가 - 시장논리와 사회적 통합간의 긴장관계
- 윤영관(서울대 교수, 외교학)

아담 스미스는 1776년 출간된 『국부론』에서 인간을 교환 본능을 가진 존재로 규정했다. 그러한 경제적 존재
로서 인간은 자연스레 분업에 참여하고 이들이 모여 이루는 사회는 시장(市場)이라는 원리로 조직되기 마련이었
다. 자동조절 기능을 가진 시장은 조화와 균형의 낙관적 세계를 만들었고 여기에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될 여지는
작았다. 또 시장 기능이 자기팽창적으로 전 세계로 확산돼 가는 과정은 곧 상호의존과 세계화의 심화를 의미했다.

- 시장기능의 팽창과 상호의존의 심화 -

아담 스미스의 세계관으로 볼 때 세계화의 심화는 단순히 인류의 경제적 복지 증진뿐만 아니라 국제 평화로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세계화를 통해 증진되는 복지를 그 어떤 국가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에 상호의존을 단
절하는 국가간 적대행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19세기 초 영국의 노만 에인절은 상호
의존과 세계화의 심화로 더 이상 전쟁은 생각할 수 없게 됐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바로 몇 년 후에 1차대전이
발발했고 역사는 그의 주장을 배반했다.

1960년대 이후 다국적기업의 세계적 확산을 목도하면서 국가 주권의 쇠퇴를 예견했던 레이몬드 버농도, 국경
없는 세계에서 세계기업 시대의 도래를 주장하는 조지 볼이나 오마에 켄이치 같은 사람도 모두 낙관적인 스미스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세계화의 심화 속에 침식되어 가는 국가주권을 상정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초 신자유주의의 전세계적 확산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시카고 학파 중심의 이른바 주류경제학
자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세계화를 통한 시장 통합이 복지 증진과 빈곤의 구제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임을 주장해왔
다.

이러한 상업적 자유주의의 흐름과 더불어 과학기술 발전의 진보가 세계화 심화의 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과
학기술 결정론의 시각도 국가를 세계화 현상에 의해 침식당하는 존재로 간주해왔다. 예를 들어 로즈노같은 학자에
게 세계화 현상은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자체적인 운동논리에 의해 심화돼왔기에 국가가 이것을 역전시키거나 속도
를 조절할 능력은 없는 것이고 결국 국가와 국제관계는 세계화에 의해 변화할 수밖에 없는 객체로 규정되는 것이
었다.

19세기 초 영국이 산업혁명을 완수하고 입헌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었을 때 독일은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정치
적으로는 분할된 상태에서 전제정치의 지배를 받는 후진국이었다. 열등감에 잡혀있었던 후진국의 한 지식인, 프리
드리히 리스트의 눈에 보이는 아담 스미스의 세계관은 개인에서 곧바로 세계로 건너뛰는, 즉 국가라는 뿌리가 없
는 비현실적 세계주의(cosmo-politanism)이자 다분히 영국적인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

아담 스미스적 보편주의에 대항하여 민족적 특수성과 역사적 맥락을 강조한 독일역사학파 지식인들에게는 아담
스미스가 상정하듯 시장이란 정치적 공백 속에서 저절로 생겨나 세계로 확산되어 가는 것이 아니었다. 구스타프
슈몰러가 주목했듯이 시장기능의 심화는 중세 보편질서가 근대국가 질서로 대체되어 가는 과정에서 절대군주들이
의도적으로 근대국가 단위의 경제통합을 추구한 결과이자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 국가는 세계화의
심화라는 경제논리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결정짓는 독립변수였던 것이다.

이 같은 신중상주의적 시각은 이른바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오랜 전통의 현실주의적 흐름에 맥을 대고 있다. 근
대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현실주의 시각에서 볼 때 세계화란 그렇게 자유주의 학자들이 호들갑을 떨만한 새로
운 주제가 아니었다. 세계화는 2차대전 이후보다 오히려 19세기 후반에서 1차대전 이전의 기간에 더욱 심화되었
었다. 월츠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 이른바 상호의존론이란 원초적으로 불평등한 국제질서의 실상을 마치 평등한 것
처럼 호도하는 개념일 뿐이었다.

과거 몇 백년 전에 살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 못지 않게 과학기술의 발전을 새롭게 받아들였고 실제로 그 영향
도 적지 않았다. 인쇄술의 발명 덕택에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교회 문앞에 붙여놓았던 95개 종교개혁 조항은 전
유럽으로 전파 확산되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유럽의 정치질서를 바꿔놓지 않았던가? 세계화가 오늘날에만 일
어나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도 일어났고 그러한 세계화의 영향을 통제하는 능력은 과거에 비해 현재 더 발달해 있
다는 것이다. 크래스너나 길핀 같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근대국가들간의 권력이 어떻게 상
대적으로 배분되어 있느냐이고 이것에 따라 세계화는 심화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심화되기 시작한 반세계화 운동과 '20대 80의 사회'와 같은 우려에 접하고 있는 우리가 오늘날
주목해야 할 학자가,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이다. 리스트나 슈몰러와 같은 독일 역사학파의 영향을 받고 20세기
전반에 살았던 그에게 있어서 아담 스미스적인 세계관, 특히 시장의 자동조절 기능에 대한 낙관주의적 맹신은 위
험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인간을 교환 본능을 가진 존재로 상정한 아담 스미스의 인간관 자체가 아예 틀린 것이었
다.

인간은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사회적 컨텍스트 안에서 규정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경제
인류학적 조사의 결과를 보면 원시사회에서의 인간의 경제활동은 총체적 사회관계 속의 하나의 부분으로서 부속적
인 존재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3-4백년 전부터 시장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총체적 사회를 지배하고 해체
시켜나가는, 다시 말해 주(主)와 종(從)이 뒤바뀐 결코 낙관적일 수 없는 세계가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공황과 세계대전이라는 문명사적 대전환도 결국 아담 스미스적인 세계관, 즉 시장기능에 대한 맹신이 유럽
국가들의 사회적 통합을 깨뜨려 나타난 결과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오늘날 심각한 사회적 해체현상이 세계화와 함
께 진행되고 있으며(Ethan Kapstein),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한 계층으로부터 반세계화 운동이 촉발되고 있다는
것이다(Robert Cox). 러기에 의하면 2차 대전이후 세계경제질서로 등장한 브레튼우즈체제는 근대국가의 자율성
을 전제로 하는 국내복지의 추구와 국가들간의 세계화 심화를 통한 경제적 이득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른바 '내재
화된 자유주의'로 규정되었다. 이는 19세기의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와는 달리 폴라니가 주목한 국내복지의 추구를
통한 사회적 통합의 유지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일대 전기를 가져온 것이 미국과 영국의 금융 세계화정책이었다. 무역의 흐름은 자유롭게
하되 국내복지정책 추구를 위한 국가 자율성의 훼손을 우려해 자본흐름을 규제해 왔던 기본적인 틀을 1980년대
레이건-대처리즘을 통해 깨고 세계적 차원의 금융통합을 주도해나간 것이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출현이었다. 어찌
보면 사회적 통합의 중요성을 간과했던 19세기적 자유방임질서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정한 주기를 놓고 순환 반복하는 세계 자본주의의 성격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른바 구성주의자
들은 세계화와 국가란 대치관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구성하는, 즉 국가가 세계화를 형성하고 또 세계화에 의해
형성받는 관계로 파악한다. 국가는 시대에 따라 시장과 사회관계, 정치와 경제관계를 다르게 규정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국제부문과 국내부문간의 관계설정에도 변화를 가져오는 수문장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Ian Clark).

세계화 현상이 국가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면 세계화의 진행 속도는 조절 가능한 것이 된다. 그래서 로드릭은
오늘날 세계화는 위험할 정도로 앞서가고 있기에 속도를 늦춰야된다고 주장한다. 민족국가 내부에서 단일시장의
통합은 통합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작용들을 해결해 줄 중앙정부가 존재하기에 가능하고 안정적이다. 마찬가지로 세
계화를 통한 단일 세계시장으로의 통합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세계정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근대국가는
주권을 양도하기 싫어하고 따라서 세계정부는 요원하다. 결국 경제적 세계화와 근대국가 중심의 정치질서간에 근
본적인 균열이 존재하고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할 바에는 세계화의 속도를 조절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IMF
의 부채국에 대한 교과서적인 경제 처방을 놓고 벌어지는 IMF와 전직 세계은행 부총재 조지 스티글리츠간의 논
쟁도 기실은 아담스미스의 경제주의적 세계관과 폴라니적 세계관의 부딪침에 뿌리를 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세계화의 속도 조절 필요 -

1997-98년의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몇 개월만에 세계위기로 확산되고 세계공황 직전에까지 갔던 사례를 본다면
폴라니 류의 경고는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더구나 국제적, 국내적 빈부격차의 심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갈등과 불안이 테러리즘과 전쟁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 아닌가? 세계화로 치닫고 있는 경
제현실과 부작용을 감당해낼 글로벌 차원의 거버넌스의 비효율성과 불공평성으로 인해 생겨나는 공백을 메우는 대
안으로 등장하는 것이 지역통합이다. 그러나 거센 세계화의 네트워크 속에서 지역주의적 대안이 얼마나 글로벌 차
원의 충격을 막아줄 보호막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세계화와 근대국가, 시장논리와 사회적 통합간
의 긴장관계를 21세기적 맥락에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 우리는 아직도 그 해답을 모색하면서 역사의 여
행을 계속하고 있다.


@ 지역통합과 민족국가 - 의도적 선택으로서의 지역통합
- 최영종(고려대 교수, 아시아문제연구소)

현재 지역통합의 움직임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급속한 세계화의 와중에서 실제로 무역, 투자 등 경제거래
나 정치제도화가 상당 수준 지역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런 지역화 현상은 분
명 세계적 차원의 통합보다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동질성을 보유하는, 상대적으
로 소수의 국가가 참여하는 지역통합은 실현가능성 측면에서 훨씬 우위에 있다. 세계화는 일개의 국가가 단독으로
대처할 수 없는 많은 도전을 제기한다. 지역통합은 역내 자유화를 통한 효율성 제고와 역외로부터의 정치, 경제,
안보적 도전에 대한 집단적 대응을 가능케 한다는 매력을 가진다.

지역통합은 일반적으로 경제나 시장의 통합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원활한 경제거래나 시장 작동은
적절한 법적, 제도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경제통합은 필연적으로 제도적 협력이나 정치적 통합을 요구한
다. 현재 많은 지역통합 시도들은 지역제도화의 수준이나 정치통합의 정도 면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
치통합이 가장 진전된 유럽연합은 국가간 정책통합의 단계를 넘어 지역 차원의 정치제도까지 완비하고 있다. 이런
지역제도가 다수결 방식에 의해 운영될 때 정치통합은 최고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이 단계에서 국가의 역할이 사
라지고, 대신 지역제도가 국가의 주권을 양도받게 된다. 유럽연합은 아직 이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유럽연합이 웨스트팔리아 조약 이후 국제정치에 정착된 영토와 국민에 대한 통제와 외적 권
위의 국내간섭 배제라는 주권국가의 개념에 근본적인 수정을 가했다는 점이다. 현재 유럽연합에서는 영토와 국내
권위구조 사이의 현격한 괴리 및 외적 권위에 의한 국내 간섭의 일상화가 생겨났다. 특히 유럽재판소는 개인이 소
송 주체가 되는 것을 용인하고, 자신의 결정이 회원국가에 대하여 직접적 효력을 갖고, 또 EU법 우위에 근거한
회원국가의 국내법에 대한 실질적 심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국가주권의 훼손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 유럽연합에 속하는 국가들은 물론 유럽연합 그 자체도 기존의 주권국가 내지 국민국가와는 상당히 다른 모
습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영토성이 약하고, 근대 시민권 개념이 함축하는 정치적 의미(다양한 권리 및 의무를
내포)가 상당히 퇴색된 단순한 "규제국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신의 결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 회원
국 정부의 협력이 필수 불가결하다. 회원국가는 자신의 입법권에는 현저한 손상이 있었지만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유럽연합과 회원국가는 어느 한 쪽이 권력을 독점하기보다는 상호 긴밀한 분
업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다층적 지배구조" 개념의 핵심이다.

- 지역통합이 진전된다해도 국가가 소멸하지는 않을 것 -

지역통합은 국경간 협력이 만들어낸 기능적 필요의 필연적 산물이거나 출처가 불명확한 지역 공동체 의식이나
정체성이 자동적으로 초래한 결과이기보다는 국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국가는 주권상실 비용보다 더
큰 이득을 위해 의도적으로 주권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주권양도 합의서는 필요한 경우 이를 무효화하거나 원상
회복시킬 수 있는 권리를 용인하고 있다. 이것은 지역통합이 진전되더라도 국가가 점차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유화와 통합은 회원국가들이 국내 정치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한계에 점차 가까
워지고 있다. 세계화나 지역통합에 대한 불만세력은 점차 그 위세를 더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안정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서의 국가의 역할은 재평가되고 있다. 유럽통합이 직면하고 있는 커다란 문제는 바로 사회통합의 어
려움과 민주주의의 결핍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가를 통해 사회안정을 희구하는 세력의 영향력이 커지고,
국가의 정책 자율성의 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질수록 국가의 위상과 역할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 [21세기 기초학문의 화두] 인지과학      

        


@ 인간의 합리성과 비합리성에 대한 인지과학적 접근
- 김정오(서울대 교수, 심리학)

마주 오는 1차선으로 운전하는 사람들이 서로 합리적일 것이라는 인식이 없다면 사람들은 결코 1차선으로 주행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려면 그 합리적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논리나 규
칙에 어긋난 비합리적인 결정이나 판단 행동을 자주 보인다. 학생들은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 최대의 효용성을 얻
을 수 있는 예습을 잘 하지 않고, 시험 직전에 공부한다. 필자는 수강생 180여 명에게 사람이 합리적인지 비합리
적인지를 물었다. 이 중 52%의 학생들은 인간이 욕망과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사람이 비합리적이라고 했다. 그
러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됐다.

무엇이 합리적인가? 합리성에 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받아들이는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개개인의 선호
들이 일관돼야 하고, 논리학과 확률이론의 기본 법칙을 따르며, 그의 기분, 처한 상황, 자료의 제시 방식 등에 따
라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합리적 선택이란, 한 결정이 그 사람의 현재 자산(현금, 건강, 심적 능력,
사회관계, 감정 등)에 근거하며, 선택 가능한 결과에 바탕을 두고, 또 어떤 결과가 불확실해 그 우도(likelihood)
를 평가할 때 확률의 법칙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주관적 효용성이 최대인 대안을 택할 때 가치, 효용성 등으로
묶이는 욕망과 그 달성에 필요한 기대, 수단 등으로 묶이는 신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습관, 다수의 선택, 종교
적 신념에 따르거나 또는 성공한 사람의 선택을 따르는 것은 합리적 선택과 관계없다.

인간의 합리성은 사고의 이상적 모델을 논리학에서 찾는 철학, 경제주체의 합리성이 그 핵심 가정인 경제학, 그
리고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사람의 인지 구조와 과정을 다루는 심리학의 연구 대상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선택의
결과와 관련 없는 변수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한에서의 합리성, 즉 제약된 합리성과 함께 선택, 효용성, 그리고
정서를 실험으로 다뤘다. 철학, 언어학, 인지심리학, 행동경제학, 컴퓨터과학, 신경과학 등이 참여해 지능의 구조
및 과정을 연구하는 인지과학 분야는 인간의 합리성을 다중적 방법론으로 다룬다. 그 이유는 지능적 체계가 사람
이든 컴퓨터이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해 마음의 구조와 과정의 성질을 밝힐 수 있기 때
문이다. 인지과학적 접근은 한 문제를 거시적으로 개념화하며, 여러 방법을 사용하므로 각 방법의 제약이나 불확
실성을 보완할 수 있다.

(1) 비합리성의 여러 증거

인간의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추리, 판단 및 결정과정 연구에서 많이 보고됐다. "만약 카드의 앞 면에
모음이 있으면 그 뒷면에 짝수가 있다"는 규칙의 참·거짓을 판단하기 위해 모음이 있는 카드, 자음 카드, 짝수
카드 그리고 홀수 카드 중 적어도 꼭 택해야만 하는 카드들을 뽑는 검사를 한다고 해보자. 사람들은 규칙에 맞는
카드들만 고르는 확증편향을 보인다. 이 경우, 모음 카드와 홀수 카드를 택해야 그 규칙의 반증 여부를 확인하는
합리적 추론이다. 대학생의 10% 미만이 이 문제를 제대로 푼다.

한 선택이 합리적이려면 과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가능한 결과에만 근거해야 하며, 확률의 기본 법칙을 따라야
한다. 과거 때문에 비합리적 경제행동을 하게 되는 좋은 예는 매몰비용을 고려하는 선택이다. 호텔에 투숙해 유료
TV를 시청한다고 하자. 15분쯤 시청했을 때 재미없어졌다. 무료 채널 프로그램이 더 재밌어 보인다. 이 상황에서
'(ㄱ)영화를 계속 보겠다 (ㄴ)다른 채널을 보겠다' 중 하나를 택하게 하면 약 반수의 응답자들이 (ㄱ)을 택한다.
선택 행위가 미래의 성과로 결정돼야 하는데, 과거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합리적 선택이라면 같은 대안들이 표면적
으로 다른 틀로 제시돼도 그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틀효과는 사람들이 확률 판단에서 표면 정보의 영향을 많
이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당국이 어떤 질병에 대해 두 가지 방역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하자. A 프로그램을 실시하면 2백명이 생명
을 구하고, B 프로그램을 실시하면 6백명이 생명을 건질 확률이 1/3, 전부가 생명을 잃을 확률이 2/3다. 많은 사
람들이 A 프로그램을 택한다. 두 프로그램의 확률은 같지만, B 프로그램의 경우 '죽는다'는 표면 정보 때문에 위
험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A를 택하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은 확률 법칙을 따라야 한다. 추단(또는 어림짐작)으로
불리는 이 편향은 사람들이 한 사건의 확률을 추정할 때 그 사건이 큰 표본에서 발생할 기저율(base rate)을 무
시하고, 현저한 단서로 대충 판단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테러 당할 확률이 높은가? 교통 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은가?"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TV 시청에서 경험한 현저한 예들을 생각하고 테러를 당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추정은 사실과 다르다.

합리적 선택론은 사람들이 대안들에 대해 잘 정의된 선호순서를 갖고 있고, 이 순서가 선택이나 가격결정에 의
해 유발된다고 가정한다. 논리적으로 같은 절차는 같은 선호순서를 초래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
지 않다. 예를 들면, 확률이 낮은 내기에 높은 가격을 주지만, 확률이 높은 내기를 선택한다. 가격결정 또는 선택
절차에 따라 대안들의 선호가 뒤바뀐다. 이 경향은 절차불변성 가정을 위반한다. 합리적 선택론은 또한 각 대안이
효용성을 가지므로 최대의 효용성을 가진 대안의 선택을 예언한다. 그러나 그 효용성이 다른 두 대안에 새 대안을
첨가하면 갈등이 생겨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결정을 미룬다.

(2) 비합리적 행동의 설명

합리성을 믿는 연구자들은 이러한 비합리적 행동을 어떻게 설명할까? 가장 쉬운 설명은 이 행동을 주의 산만,
낮은 동기, 피로 등에 기인하는 일시적이고 임의적인 이탈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틀효과, 선호역전, 추단편향 등
은 일관되게 관찰되며, 그 효과가 매우 강력하다. 동기를 높이거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그들은 합리성에
서 쉽게 이탈한다.

사람들의 비합리적 행동은 그들이 검사 내용이나 지시를 다르게 해석했기 때문일 수 있다. 대화식으로 된 간단
한 검사의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면 규준적인 행동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통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검사하면 기저
율을 무시하는 경향은 상당히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 행동은 계속 관찰된다.

비합리성은 검사 내용이 어렵거나 추리과정이 복잡해서 겪는 정보처리의 부담 때문일 수 있다. 검사 문제를 풀
때 처리부담이 크면, 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선호역전, 틀효과, 그리고 추단이 관찰되는 검사는 간단해서 처
리 부담이 크지 않다. 검사의 난이도가 문제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합리성 검사 문제를 풀 때 쓰는
계산방식, 즉 알고리즘 때문에 비합리적 행동이 관찰된다는 주장이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증거는 다음에서 살피기
로 한다.

이러한 설명 외에도 합리성의 규준들이 부적합하다는 주장, 진화 때문에 합리적인 원리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인간으로 발전했다는 주장 등이 제안됐다. 이 설명들은 실험이나 조사 결과로 의심을 받고 있고, 합리성의 의미도
다르다.

(3) 비합리성에 대한 개인차 접근

합리성 문제는 합리적 또는 비합리적 인간의 이분법으로 볼 것이 아니라 어떤 추론체계들의 경쟁 때문에 합리적
또는 비합리적 행동이 나타나는지를 밝혀야 한다.

스태노빅과 웨스트는 많은 합리성 검사에서 관찰된 개인차를 중심으로 흥미로운 결과들을 발표하고 있다. 비합
리적 반응들이 알고리즘의 문제라면 이러한 검사 점수와 일반적인 인지능력간에 상관이 있어야 한다. 상관이 없다
면 비합리적 행동은 알고리즘의 문제가 아니다. 정적인 상관이 있으면 합리성 검사의 수행을 평가할 때 규범 모형
을 적용할 수 있다. 개인차 접근은 합리성 옹호자들이 내세운 검사 실행 상의 무작위 오류를 쉽게 다룬다. 즉 개
인들의 차이라면 이 오류가 상쇄될 것이다.

스태노빅과 웨스트는 카드 선택, 기저율 정보, 통계 추리, 삼단논법 등의 검사 점수들과 학력평가검사, 독서이해
력검사 및 문제해결검사 점수 총점의 상관을 냈다. 나중의 세 검사는 한 개인의 인지능력을 나타낸다. 이들은 또
한 반사실적 사고, 공개적 사고 등 개인의 사고성향을 측정했다. 그 결과 합리성 검사 점수와 인지능력, 또 사고
성향 간에 정적 상관이 있었다. 인지능력이 우수한 대학생들이 그렇지 못한 학생들보다 합리적인 반응을 더 많이
보였다. 이 결과는 비합리성이 알고리즘 수준에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합리성 검사 점수와 인지능력
의 상관이 크지 않았다. 이 결과는 비합리적 반응에 다른 이유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매몰비용이나 죄수의 딜레마 문제는 인지능력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가설과 자료의 관계를 고려하는 베이즈
확률로 한 사건의 확률을 추정해야 할 때 이 확률을 쓰는 사람이나 현저한 단서에 주목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인지능력이 비슷했다. 어떤 검사에서 인지능력이 다소 낮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반응을 더 보였다. 즉 검
사에 따라 합리적 규칙의 적용이 의심될 수 있다.

개인차 변수 중 자신의 인지과정을 반성적으로 관찰하며, 검사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주목을 끈
다. 이들은 어떤 규준적 원리를 깊이 이해할수록 그에 따라 반응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합리성 검사 문제를 푼
후, 그 문제에 대한 합리적 주장과 비합리적 주장을 나란히 제시하면 상당수의 피검사자들이 비합리적 반응에서
합리적 반응으로 바꿨다. 개인차 접근은 현재 생산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통적인 실험들은 몇몇 검사에
서 규준적 원리에 반하는 증거를 얻고, 그 결과와 합리성 이론을 근거로 인간이 비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개인차 접근은 열 개 이상의 검사 문제들을 많은 참여자들에게 실시하고 그 사고성향, 인지능력을 따로 측정한 다
음, 그 상관을 계산한다. 이 연구는 합리적 반응의 일관성, 변동성, 또는 불안정성을 체계적으로 관찰하게 한다.

(4) 인지과학적 합리성 연구의 전망

스태노빅과 웨스트는 합리성 연구 결과들과 이론들을 정리해 사람에게 두가지 추론구조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구조는 습관적, 총체적이며, 인지능력을 별로 요구하지 않고, 의식의 관여가 별로 없이,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다
른 구조는 규칙을 따르며 분석적이고, 인지능력을 요구하며, 의식적으로 진행돼 검토를 받는다. 습관적 추론구조
는 진화에 의한 적응체계이며, 규칙 중심의 추론구조는 욕망과 신념이 있을 때 최대의 효용성을 찾는 도구적 합리
성을 추구한다. 적응적인 의미의 합리성과 규범적인 의미의 합리성은 질적으로 다르다. 사람들이 습관적 추론구조
에 따라 검사 문제들을 푸는 까닭은 주의나 기억과 같은 인지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적응적 의미의 합리성이 그
삶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규칙 중심의 추론구조가 습관적 추론구조를 통제하면 합리적인 선택과 판단을 보이게 된
다.

인지과학의 여러 방법론은 이 두 추론구조의 성질과 활동을 각기 다른 분석에서, 그러나 개념적으로 연결되는
틀에서 밝히고 있다. 예컨대, 뇌영상 측정법과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인지실험법이 함께 사용돼 습관적 추론구조
와 규칙 중심의 추론구조에 관여하는 부위들을 보여주는 뇌지도가 작성될 것이다. 인지실험법은 반응시간을 중심
으로 합리적 선택과 비합리적 선택 배후의 정보처리 차이를 밝혀낸다. 습관적 추론구조가 규칙 중심의 추론구조보
다 빠른 선택반응을 보일 것이다. 시뮬레이션 실험은 한 인공체계에서 두 추론구조의 상호 관계를 구현할 것이다.
철학은 두 추론구조에 관한 새 물음을 제기하고, 그 해답을 개념적으로 분석하여 사람을 대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한다. 언어학은 검사문제의 형식 구조를 분석해 인접 분야에 자료를 제공한다. 이 방법론들이 상호 적용된다면,
인간의 합리성과 비합리성에 관해 더 깊은 이해와 통합적인 설명이 가능하게 된다. 이 결과들은 합리성을 향상시
키려는 노력을 좀더 효용성 있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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