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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3 (09:25) from 80.139.180.234' of 80.139.180.234' Article Number :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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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실천철학에 나타난 자유개념의 네 가지 유형
근 현대 실천철학에 나타난 자유개념의 네 가지 유형

김 준수


근대 이후 철학과 정치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자유라는 개념만큼 커다란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철학적 개념은 없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를 모든 사회질서와 제도의 규범적 출발점이요 목표로 제시했고, 이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장 강력한 사상조류의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실천철학을 둘러싼 학문적 논의에서 자유는 대개 사회에서 실지로 적용되고 있는 행위규칙과 제도의 규범적 타당성을 판정하는 척도로서 그 자체 학문적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기본원리로 간주되곤 한다. 규범학을 정초하는데 있어서 자유의 이념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론가들조차도 사실은 자유에 대한 하나의 특정한 표상을 암암리에 전제하고서 그들의 이론을 구축하고 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자유는 자명하고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따라서 어떠한 학적 설명도 불필요한 개념으로 전제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유는 실상 매우 다의적인 개념이다. 자유개념의 이념사를 잠시 돌이켜 보면 오늘날 자유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갖게 된 의미가 사실은 근대의 역사적 산물이고, 또 현재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자유의 의미조차도 실은 결코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미 헤겔은 자유개념의 이러한 다의성과 불명확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러한 자유가 … 아직 규정되어 있지 않고 매우 다의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최상의 것이면서도 무수히 많은 불화와 혼돈과 오류를 가져오고 또 가능한 모든 탈선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날처럼 잘 알고 경험할 수 있었던 적은 없다.” Hegel, Gph, 33쪽.


불행히도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언어분석학자와 경험주의적 사회학자들은 자유개념의 모호성을 이유로 이 개념을 인간행위와 사회체계를 학문적으로 설명하고 근거지우는 데 비생산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선언하고 학문의 영역에서 배제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범주적 불명확성에도 불구하고 자유개념은 철학적 반성의 중요한 대상이 되어 왔고 또 지금도 그러하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족(Autarkie)의 의미로 이해된 자유에서 모든 이성적 행위의 궁극 목표를 찾고 있다. 또 중세의 主知主義와 主意主義 간의 논쟁 및 17세기와 18세기의 경험주의적 결정론과 합리론적 자유의지론 간의 논쟁은 자유개념을 둘러싼 현대의 쟁점들을 상당 부분 선취하고 있다. 자유개념의 모호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 동안 자유의 여러 종류와 차원을 구분하는 것이 자주 시도되곤 했는데, 예를 들면 수평적으로는 의지의 자유, 행동의 자유, 물체적 운동의 자유 등이, 수직적으로는 선험적 자유, 심리적 자유, 경험적 자유, 도덕적 자유, 법적 자유, 정치적 자유 등이 구분되곤 하였다.
의지의 결정과 행위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가 이론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금세기에 들어 많은 언어분석학자, 행위이론가, 심리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어 왔다. 본 논문은 아직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는 이 문제점을 다루려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유는 최소한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주어진 이상이기 때문에 오히려 의지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증명의 의무를 지고 있다는 칸트의 주장을 상기시키는 것에 머물고자 한다. 결정론자들은 자유를 모든 의지의 결정과 행위가 인과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무지로부터 발생하는 허위문제라고 간단히 선언하거나 자유의 실재를 어느 정도 인정할 때에는 자유를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물리적 행위가능성 혹은 심리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는 동기에 의해 조건지워진 숙고능력으로 환원해버린다. 볼테르(Fr.-M. Voltaire)는 이러한 결정론자들의 생각으로부터 자유의 문제에 관한 한 인간과 개 사이에 어떠한 질적 차이도 없다는 결론을 풍자적으로 이끌어 냈다. Fr.-M. Voltaire (1764), 611쪽.
흥미로운 것은 대표적인 자유의지론자들로 알려진 독일관념론자들이 단순한 선택능력 혹은 恣意로 표상된 자유에 관한 한 오히려 결정론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Kant, KpV, A 174; Hegel, R § 15 A. 등을 보라. 칸트에 의하면 반대로 자의의 경험적 현상은 의지의 절대적 선험적 자유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제공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개별자의 任意는 … 자유가 아니다.” Hegel, ViG, 111쪽.
그들은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도덕적 당위 속에서 절대적 자발성을 가지고 低級의 욕구능력에 선험적으로 법칙을 정하여 명하거나 (칸트) 혹은 모든 이론적 및 실천적 의식행위에서 경험적인 욕구와 충동을 자율적인 목적규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재구성해내는 (피히테, 쉘링, 헤겔) 高級의 욕구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했다.
본 논문의 연구대상은 개인의 실천적 자유에 대한 개념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 역시 객관적 자유의 여러 종류와 차원 못지 않게 다양하다. 실천적 자유에 대한 유형적 개념구분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칸트에 의해 용어적으로 확립되었고 근래 버를린(I. Berlin)의 영향력 있는 저술에 의해 변화된 형태로 재도입된 자유의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의 구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 구분의 기본적인 생각은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에게까지 소급하며 Aristoteles, Metaphysik, 1075 a 19-23: “가정에서 자유인에게는 어떤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가장 적게 허락되어 있고 모든 것 혹은 대부분의 것이 질서지워져 있는 반면, 노예와 동물에게는 보편적인 것과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주 조금만, 그리고 대부분의 것은 그들의 임의에 맡겨져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은 일자를 향해 질서지워져 있다.”
이미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신의 절대적 능력(potentia absoluta Dei)을 주장하는 主意主義와 신의 질서지워진 능력(potentia ordinata Dei)을 주장하는 主知主義 간의 주요 논쟁점이었다. 이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자유가 모든 외적 그리고 내적 법칙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합리적으로 근거지울 수 없는 무규정성에 있는 것인가 혹은 잘 질서지워지고 올바른 이성에 의해 인도되어진 자기입법성에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외에도 자유의 긍정적 개념과 부정적 개념의 또다른 구분이 있는데 이 구분은 앞의 구분만큼 철학사에서 확립된 전문용어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실천철학에 대한 현대적 논의에서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부정적인 자유개념은 개인의 자유를 타자로부터 경계지워지고 그 안에서는 임의적으로 결정하고 행위할 수 있는 활동영역 안에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긍정적 개념에 따르면 타자와의 관계는 한 개인의 자유의 제한이나 단순한 확인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자유의 구성적 계기이고 따라서 개별성은 타자와의 연대적 관계 속에서 비로소 그 완전한 의미를 획득하고 실현하게 된다. 우리는 앞서의 칸트적 개념쌍을 “주관적” 혹은 “獨白論的(monologisch)”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여기서는 자유가 고립된 개별자의 관점에서 정의되고 상호주관적 관계가 아직 구성적 계기로서 자유의 정의에 반성적으로 도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먼저 독백론적으로 정의된 자유를 주관적 자기반성이나 계약모델을 통해 보편화하여 차후적으로 타자에게도 적용시키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반면 나중의 개념쌍은 상호주관적 관계를 그것이 긍정적인 양태이건 부정적인 양태이건 자유의 실현을 위한 외적인 조건으로만이 아니라 동시에 개인의 자유의 가능성의 선험적 조건으로 포착한다는 의미에서 “상호주관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라서 근대 이후의 실천철학에 나타난 자유개념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즉 ① 주관적∙부정적 개념, ② 주관적∙긍정적 개념, ③ 상호주관적∙부정적 개념, ④ 상호주관적∙긍정적 개념이 그것이다. 첫 번째 입장은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에게서, 두 번째는 칸트에게서, 세 번째는 피히테에게서, 네 번째는 헤겔에게서 전형적으로 발견된다. 이제 이 네 가지 유형의 자유개념들의 옹호론와 반론을 각각 고찰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법의 원리로서 채택될 경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를 법철학적 관점에서 간략히 살펴보겠다.
그 이전에 이러한 구분에 대해 한 가지 부연설명을 해야겠다. 버를린은 주관적∙부정적 자유개념은 개인적 자유에 관계하지만 긍정적이거나 상호주관적 자유개념은 도덕적 혹은 정치적 자유에 관계하는 것으로 덕이나 연대와 같은 다른 개념으로 표현되어야 하지 자유에 대한 학문적 정의로는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버를린의 긍정적 자유와 부정적 자유의 구분은 논증적인 면에서 심각한 약점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에 대한 학문적 정의로는 전혀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자신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자유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대립되는 정의가 아니라 실은 객관적으로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하는 두 가지 자유들의 가치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I. Berlin(1969, 121 f.)에 따르면 부정적 자유개념은 “주체, 즉 한 개인 혹은 개인들의 모임이 그가 할 수 있는 것 혹은 되고자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할 수 있거나 혹은 될 수 있도록 남겨져 있거나 남겨져 있어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인 반면, 긍정적 자유개념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것이 아닌 이것을 하도록 결정할 수 있는 통제 혹은 간섭의 근원은 무엇 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버를린은 그의 에세이에서 오직 개인의 자유를 주제로 삼는다고 미리 선언했기 때문에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만이 자유에 대한 정의로 타당하다는 것을 복잡한 논증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쉽게 정당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이미 부정적 자유개념을 그 해답으로 선취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논증은 선결 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그가 실지로 증명해야 하는 것, 즉 부정적 자유개념만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유일하게 타당한 정의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버를린의 논증은 B. Constant(1819)나 J. St. Mill(1859)의 논증에 비해 전혀 새로운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버를린과는 달리 “전통적” 자유와 “근대적” 자유간의 대립을 한 가지 자유의 두 가지 대립된 정의로 혼동하지도 않았다.
물론 상호주관적 자유관이 고전적인 철학서에서는 대개 정치철학의 영역 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본 논문이 문제 삼고 있는 자유개념의 유형들은 오직 한 가지 종류의 자유, 즉 개인의 실천적 자유와 관계된 것이다.


1. 주관적∙부정적 자유개념

앞의 구분기준에 따른다면 주관적∙부정적 자유개념은 ‘비종속성’, ‘무규정성’, ‘비결정성’, ‘외적 장애와 강제의 부재’ 등과 같은 부정적인 규정뿐만 아니라 ‘자발성(Spontaneität)’, ‘선택능력’, ‘자의적 결단’, ‘욕구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 ‘원하는 데로 살 수 있는 것’ 등과 같은 긍정적 규정까지도 포괄한다. 어느 정도의 유보를 둔다면 ‘자기 자신일 수 있음(Selbstseinkönnen)’ 혹은 ‘자기 투사(Selbstentwurf)’와 같은 실존철학적 규정이나 ‘목적 없는 행위의 가능성’과 같은 생철학적 규정 역시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규정들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공통적으로 놓여 있다. “우선 의지의 차원에서 나의 의지의 결정이 합리적으로는 추론될 수 없고, 다시 말하면 내가 무엇을 어떤 이유에선가 실제로 선택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다른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하고, 다음 행위의 차원에서 이렇게 임의적으로 선택한 것을 수행할 수 있을 때에만 나는 자유롭다.” 더 나아가 이러한 규정들은 공통적으로 자유를 하나의 이미 주어진, 그러나 그 사실적 결과가 행위자 자신에게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가능성의 상태로 파악한다. 이때 의지의 선험적 자유를 부인하는 실증주의적 이론가들은 자유의 개념을 물리적 행위수행의 상대적 가능성만으로 제한한다.
이러한 자유개념이 오늘날 폭넓게 지지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근대인의 자유에 대한 일상적 이해에 그 까닭이 있다. 이러한 자유개념은 이미 고대에서부터 산발적으로 주장되어 왔지만 자유에 대한 정당한 정의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유럽 대륙에서는 R. Descartes(1641, 47 f.), 그리고 영국에서는 Th. Hobbes(1651, 163) 이후부터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분석적 언어철학자들이 이 자유개념만을 적합한 용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규정들은 선험적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자유의 기초적인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자유는 비종속성과 자발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강제된 혹은 예정된 자유란 술어적 모순이다. 따라서 이 개념은 자유에 대한 명목적 정의로서는 충분한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헤겔은 이러한 자유를 단순한 “추상적 자유”라고 비판적 의미에서 부르나 동시에 진정한 자유의 필수불가결한 계기요 출발점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자유를 이러한 주관적∙부정적 의미로만 이해한다면 이때의 자유는 전혀 공허하거나 혹은 일정한 내용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 자유개념이 지향하는 것, 즉 주체의 절대적 자립성과 모순에 빠지게 된다. 절대적인 선험적 비종속성과 무규정성으로서의 자유는 모든 구체적 현실로부터의 추상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추상 속에서의 자유는 스토아주의자들의 ‘무관심(adiaphoria)’이 그러했듯이 주어진 현실에 대해 전혀 무기력하고 더 나아가 이를 실증주의적으로 정당화한다. 단순한 추상은 추상되어지는 것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오히려 외면화된 타자에 의해 타율적으로 구속받게 된다. 또 만약 자유의지를 경험적인 자의나 임의선택으로 이해한다면 이때의 의지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선택의 주관적 형식은 의지의 자기동일적 보편성을 지향하지만 선택의 내용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유가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충동들 중에서 지금 선호하는 것을 선택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라면 이때의 의지는 전혀 자율적이지 못하고 ‘부리단(Buridan)의 당나귀’처럼 직접적으로 주어진 대상에 종속되어 있다. 이러한 자유개념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은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 부정적 자유개념을 옹호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자인 록크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만약 이성의 인도로부터 벗어나고 우리를 열악한 것을 선택하고 행하는 것으로부터 지켜줄 모든 시험과 판단의 제약으로부터 면해 있는 것이 자유, 진정한 자유라면, 오직 천치와 바보만이 자유로운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누구도 그가 이미 천치가 아니라면 그러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 천치가 되고자 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J. Locke (1690), 265쪽.


현대의 자유주의자들이 자유를 더 이상 최고선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여러 가지 선 중의 하나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개념이 불충분한 규정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거한다.
이러한 자유개념이 법의 원리로서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주관적∙부정적 자유는 기껏해야 법의 한계개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뿐이며 실제로 이러한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의 주요 의도는 고립적인 개인을 위한 치외법권적 영역을 설정하고 보장하려는 것이다. Th. Hobbes (1651), 205쪽 이하; J. St. Mill (1859), 137쪽 이하; I. Berlin (1969), 319쪽 참조. R. Dworkin(1978, 319쪽)에 따르면 개인의 권리는 “대다수가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그것이 행해진다면 대다수에게 불이익을 줄지라도 그것을 하는 것”에 있다.
그들은 개인의 자유를 법의 목표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법의 구성원리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사실은 자유가 아니라 안전이나 질서 혹은 바로 자유에 대립되는 사회정의와 같은 것이고 법 자체는 개인의 자유를 외적으로 제한하는 강제규칙일 뿐이다. J. St. Mill (1859), 130쪽: “한 사람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한 강제와 억제에 달려 있다. 따라서 행위의 규칙들이 특히 법에 의해 부과되어야 한다.” J. Rawls (1971), 203쪽: “자유의 최상의 배열은 자유에 부과되는 제한의 총체에 달려 있다.”
여기서 자유주의와 법실증주의 간의 내적 연관이 밝혀진다. 자유와 법의 대립은 이러한 자유관의 특징을 나타낸다. 주관적∙부정적 자유는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합리적 질서를 전혀 내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과 배타적 외면관계 밖에 가질 수 없다.
폐쇄적이고 비이성적인 자유의 변증법은 타율적 강제의 지배 아래 종속되어버린다는 데 있다. 이를 헤겔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자의를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외적 강제력뿐이다. 왜냐하면 자의는 그 자체 사람들을 하나가 되도록 만들어 줄 그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Hegel, ViG, 228쪽.


주관적∙부정적 자유의 이러한 자기파괴적 변증법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누구보다도 이 자유개념을 철저히 고수했던 홉스의 리바이어던이다.


2. 주관적∙긍정적 자유개념

주관적∙긍정적 자유개념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결정론자들이 무의미하다고 간주하고 단지 자유의지의 불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제기하는 질문, 즉 “우리는 우리가 욕구하는 것을 욕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자유개념에 따르면 이성담지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자유롭다는 술어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욕구하는 것을 할 수 있다’라는 규정은 자유에 대한 올바른 정의로 불충분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홉스가 주장하듯이 단지 외적 장애에 의해서만 방해받는 것이 아니라 또한 비이성적 욕구나 충동, 성향 등과 같은 내적 장애에 의해서도 자주 방해받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인간적 자유를 유의미하게 부여하기 위해서는 직접적 욕구에 대해 비판적으로 반성하고 이러한 비판적 반성을 통해 이성적인 것으로 평가된 욕구만을 욕구하고 수행하는 반면 비이성적인 욕구는 저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프랭크푸르트(H. G. Frankfurt)는 이러한 반성적 욕구, 즉 ‘진실로’ 욕구하는 것이라고 바랄 수 있는 것에 대한 욕구를 직접적 욕구와 대비하여 “이차 단계의 욕구(second-order volitions)”라고 부른다. H. G. Frankfurt (1971), 10쪽.
그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자유란 의지와 이러한 이차 단계의 욕구와의 일치에 있다. 그런데 그의 논문에서는 아직 하나의 욕구가 진실로 욕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욕구인지를 검증하는 반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가 불명확하게 남아 있다. 만약 이 반성이 현재의 욕구를 도덕적으로 평가함 없이 단지 미래의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해 제어하는 그런 영리함의 규칙에 따른 실용주의적 숙고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프랭크푸르트의 논의는 에피쿠르스적 쾌락주의나 록크나 흄의 공리주의에 비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바로 이러한 불명확성이 프랭크푸르트에 대한 테일러(Ch. Taylor)의 비판점이다. 테일러에 따르면 이때의 반성은 동기들의 가치에 대해 질적 구별을 두지 않는 약한 평가가 아니라 동기에 대한 강한, 다시 말하면 탁월한 도덕적 평가를 수행해야만 한다. Ch. Taylor (1985), 10쪽 이하.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만 한 개인은 중요하지 않고 비이성적인 욕구로부터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욕구를 구분할 수 있고 따라서 더 완전한 자기이해와 자립성에 도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자유개념에서 본질적인 것은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잘 질서지워진 내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다. 자유란 인간이 욕구할 가치가 있고 욕구해야 할 것을 자발적으로 욕구하고 행하는 것을 말한다. 자유로운 인간은 “오직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사는 자”이다. B. Spinoza (1677), 247쪽.

이러한 자유관의 고전적인 표현이 칸트의 “자율(Autonomie)”이라는 개념이다. 칸트에 따르면 자율이란 “순수한 실천이성의 자기입법”을 뜻한다. Kant, KpV, A 59.
부정적 의미에서의 자유인 비종속성이 “비록 강제로부터의, 그러나 또한 모든 규칙의 지도로부터의 해방”인 반면에 긍정적 의미에서의 자유인 자율은 “전혀 무법칙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특별한 종류의 불변의 법칙들(즉, 순수이성의 선험적 도덕법칙들 ― 저자 삽입)에 따른 인과성”이다. Kant, KrV, B 475와 Grundlegung, B 98.
단순한 부정적 자유개념은 실천적 자유를 정초하는 데 비생산적이다. 긍정적 자유개념인 의지의 도덕적 자율만이 정언적 실천법칙을 선험적으로 줄 수 있고 인간에게 인격의 존엄성을 부여한다. 칸트에 있어서 자유와 자율은 동의어이다. 자유로운 의지란 항상 스스로를 보편타당한 윤리적 법칙에 따라 규정하는 의지, 즉 도덕적 “선의지”를 말한다. 윤리법칙에 반하는 자유의지란 있을 수 없다.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은 적어도 『도덕형이상학 기초』와 『실천이성비판』의 계획에 따르면 이러한 의지의 긍정적 자유로부터 출발했어야 했을 것이다.
헤겔은 칸트의 자율 혹은 자기규정(Selbstbestimmung)이라는 개념을 구체적 자유의 한 본질적 계기인 주관적 자유의 형식적 정의로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형식적 자유개념만으로는 칸트가 스스로 약속했던 것, 즉 선험적이며 동시에 종합적인, 다시 말하면 무조건적으로 타당하면서도 내용 있는 실천법칙을 제시하는 것을 지킬 수 없었다고 비판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피히테와 초기 쉘링이 칸트에 대해 비록 헤겔과는 다른 관점에서이지만 같은 류의 비판을 하고 있고 이 비판이 칸트에 대한 후대의 자유주의적 비판을 선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피히테와 쉘링은 인간의 자유와 신의 절대적 섭리라는 오랜 신학적 아포리를 세속화된 형식으로 상기시킨다. 즉 칸트가 생각하듯이 자유로운 의지가 윤리적 법칙을 의무감에서 따르는 데 있고 윤리적 법칙이 순수이성에 따라 선험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절대명령이라면 이러한 순수 예지계에서는 개인의 자발성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순수의지의 도덕적 자율이라는 칸트의 자유개념은 스피노자 류의 “예지적 숙명론(intelligibler Fatalismus)”에 빠져버리는 것이 아닌지 그들은 묻는다. Fichte, Wissenschaftslehre, 263쪽 각주와 Sittenlehre, 161쪽 참조.
한편으로 피히테와 쉘링은 칸트적 순수 자기규정을 기초로 해서만 절대적 자유의 체계가 가능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Fichte(Sittenlehre, 151쪽)에 따르면 순수한 무제약적 자유는 오직 “개인의 완전한 파괴와 절대적 순수 이성형식 혹은 신으로의 용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한한 자유는 우리가 추구해야만 하나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라고 한다. 피히테와 특히 스피노자주의적인 쉘링에게 특징적인 이러한 극단적인 反개인주의는 청년 헤겔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헤겔이 점진적으로 ‘자유주의적’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은 후기 헤겔이 개인의 자유의 확산과 실현을 더 이상 “인륜적인 것의 비극”(Naturrecht, 495쪽)이 아니라 오히려 근대 국가의 “엄청난 힘과 깊이”(R § 260)로 파악한다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에 대한 순수한 예지적 규정이 그 형식적 필연성 때문에 “실제적이어야 할 윤리론”을 정초하는 데 적당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Fichte, Sittenlehre, 131쪽.
이러한 이율배반으로부터의 탈출구를 피히테와 쉘링은 헤겔 이후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그러했듯이 선험적 부정적 자유로 되돌아가는 데에서 밖에 찾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쉘링은 이제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래적 자유는 자의(Willkür)라고 말한다. Schelling (1800), 577쪽.
만년의 칸트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보았던 것 같다. 『도덕형이상학』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직 법칙과 관계하는 것인 의지는 자유롭다고도 또는 자유롭지 못하다고도 일컬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의지는 행위와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는 행위의 준칙을 위한 입법(즉 실천이성 자체)과 관계하고 따라서 전혀 필연적이고 그 자체 어떠한 강요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직 자의만이 자유롭다고 일컬어질 수 있다.” Kant, MdS, B 27.


『도덕형이상학』에서 칸트의 법이론은 더 이상 의지의 자율에서 출발하지 않고 “순수이성에 의해 규정되어질 수도 있는” 자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도덕형이상학』에서의 자의의 규정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칸트는 자의를 아직도 “법칙에 맞게 혹은 그에 반하여 행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 (libertas indifferentiae)”으로부터 구분하려고 한다 (MdS, B 27).

자율을 나타내는 ‘Autonomie’라는 단어는 ‘αὐτός’와 ‘νόμος’의 합성어로서 그 어원에 있어서 자립성과 합법칙적 규정성의 통일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이 칸트의 본래 의도였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이미 룻소가 주장했듯이 법은 그것이 이성적인 한, 개인의 진정한 자유의 표현이다. 한편으로 칸트는 정언명령이 주관적 자유를 무효화하는, 외부로부터 부과된 강제가 아니라 모든 이성적 존재 그 자신의 입법임을 강조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이에 못지 않게 입법적 이성이 주관적 동기와 무관하게 전적으로 선험적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칸트의 ‘주관주의’에 대한 헤겔의 비판이 순수한 자기규정이라는 표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에 칸트의 ‘선험적 독단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비판은 자기규정이라는 사고를 문제 삼는다. 이 두 비판은 모두 일면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오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칸트의 사유는 근본적으로 선험적 자유와 자연필연성 간의 이율배반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칸트 이후의 철학에서 자유의 본질적 문제로 등장한 자유 자체의 내적 필연성, 즉 의지의 절대적 자발성과 이성의 정신적 필연성 간의 이율배반을 어느 정도는 자각은 하고 있었으나 해결은 물론이고 문제 자체를 아직 제대로 전개하지조차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의 자유개념은 절대적 독립성과 순수한 규정성이라는 두 가지 대립된 규정 사이에서 통합되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
칸트의 자유관이 주관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단지 그의 자유규정이 그 형식주의적 성격 때문에 현실적인 실행에 있어서 주관적 결단주의(Dezisionismus)에 빠지고 만다거나 혹은 이러한 자유에 기초한 도덕성이 주관적 당위에 머문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칸트의 자유개념에 결핍되어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말한 “타자존재와 소외 및 이러한 소외의 극복에 대한 진지함”이다. Hegel, Phä, 24쪽.
홉스적 인간과는 달리 칸트의 도덕적으로 반성하는 주체는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는 하지만 아직 스스로를 타자화 하지는 않는다. 칸트에 있어서 정언명령의 보편적 타당성은 단지 한 개인이 고립적 자기반성 속에서 스스로를 보편화하는 과정의 결과일 뿐이다. 그는 왜 정언명령에 의거하여 보편화가 가능한 나의 준칙이 다른 사람에게도 무조건적 타당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근거지울 수 없었다. 칸트는 물론 『도덕형이상학 기초』에서 왜 나는 자유를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이성적 존재에 부여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에 대해 그는 자유는 “모든 이성적 존재의 의지의 속성으로 전제되어야 한다”는 단정적 주장으로 만족한다 (Grundlegung, B 99 ff.).
칸트의 긍정적 자유개념이 전체주의와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는 버를린의 주장은 물론 지지받을 수 없다. I. Berlin (1969), 132쪽 이하.
그러나 칸트는 도덕적 주체를 타자와의 관계 없이도 자유롭고 자신의 자유를 자각할 수 있는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타자는 실제 법생활에서 단지 자유의 제한요소로 밖에 나타날 수 없었다. 따라서 칸트는 법을 “보편적 법칙에 따라 가능한 한, 다른 모든 사람의 자유와의 합치의 조건 아래서 각자의 자유의 제한”이라고 정의한다. Kant, Gemeinspruch, A 234.
엄밀한 의미에서의 법은 그에 따르면 강제의 권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의 『도덕형이상학 기초』로부터 피히테의 개인주의적 『자연법론』으로의 이행이 퇴행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필연적 결과임을 알 수 있다.


3. 상호주관적∙부정적 자유개념

어떤 사람은 자기활동적이면서도 스스로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자유로운 상태로 있음만으로는 자유가 충분히 규정되지 않는다. 자유는 자유로움뿐만이 아니라 자유로움에 대한 의식을 요청한다. 피히테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가 의식하는 정신의 행동을 자유라고 부른다. 행위의 의식이 없는 행동은 단순한 자발성(Spontaneität)이다.” Fichte, Bestimmung, 217쪽.


그런데 절대적 실천능력으로서의 순수의지만으로는 자유의 인식적 자기의식이 주어지지 않는다. 의지의 운동형식은 직선적인 것으로서 오직 자기 스스로를 관조하며 모든 제한을 지속적으로 넘어서기만 하기 때문이다. 자기의식은 주체와 객체의 분리 그리고 이러한 분리로부터 스스로에게로 복귀하는 반성적 운동,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이 아닌 것으로부터의 “동인(Anstoß)”을 필요로 한다. 비록 타자의 자립성이 절대적 자아가 스스로를 정립하는 근원적 행위의 결과일 뿐일지라도 자아는 오직 자립적 타자를 매개로 해서만 스스로를 대자존재로서 자각적으로 정립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제적 자유의 체계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칸트의 순수한 무한의지가 아니라 형식적으로는 자기규정적이지만 질료적으로는 조건지워져 있고 타자의 의지와 상호작용의 관계에 놓여 있는 유한의지이어야 한다. “현실적 자유”란 자아의 유한하고 객관적이며, 자아와 대립된 非我와 관계된 활동이고 예지계와 경험계 사이의 “중간능력(Mittelvermögen)”이다. 바로 이것이 피히테의 『지식학(Wissenschaftslehre)』의 기본사상이고 이를 통하여 그는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에 대한 구상을 수정하고 보완하려고 했다.
이러한 수정을 통해 피히테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이미 칸트에 의해 비판되고 극복되어진 부정적 자유개념으로 퇴행한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개념에 있어서 아직 칸트에게는 결핍되어 있었던 새로운 지평, 즉 개인적 자유의 상호주관성과 과정성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된다. 피히테에 있어서 개별성의 개념은 “교호개념, 즉 타자의 사유와의 관계 속에서만 사유될 수 있고 이러한 사유, 그것도 그 형식에 있어서 동일한 사유에 의해 조건지워진 개념이다. 개별성의 개념은 그것이 타자에 의해 완성되어진 것으로 정립되는 한에서만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가능하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나와 타자가 인정하는 바와 같이 나와 그의 것 그리고 그와 나의 것, 즉 두 의식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공동의 개념이다.” Fichte, Naturrechtslehre, 47쪽 이하.
인간은 본질적으로 類的 존재로서 오직 인간들 속에서만 본래적인 자기 자신, 즉 자유로운 자기의식적 개인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아의 자기정립은 타자의 정립에 의해 조건지워져 있기 때문에 자아는 타자와의 관계 없이는 자아일 수가 없고 타자와의 쌍방적 행위를 통해서 자기가 되어야 할 것으로 스스로를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자유는 직접적으로 미리 주어진 상태나 “이성의 사실”이 아니고 여러 중간고리를 거쳐서 스스로를 매개해가는 자기발견의 과정이다. 피히테는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철학사에 있어서 최초로 체계화된 승인이론(Anerkennungstheorie)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그의 승인이론은 후에 헤겔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피히테의 의식철학이 해소하고자 하는 이율배반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개인은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오직 자신의 의지에만 의존해야 한다. 이것이 확실할지라도 개인들은 상호 영향 아래 있고 따라서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위의 책, 85쪽.


피히테는 이 이율배반을 타자와의 상호작용이 한 개인의 자기의식의 인식적 발생을 위한 필수조건임을 발생론적으로 보임으로써 해소한다. 자아의 근원적인 절대적 자유는 상호작용 속에서 타자의 자유에 의해 제한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은 자유개념에 대해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의 무제약적 활동을 제한하지 않고는 非我의 정립이 불가능하고, 이는 동시에 자아의 실질적 정립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유한한 이성존재들 간의 상호작용의 형식은 피히테에 의하면 “교호항들 자신에 의한 쌍방적 배제와 배제되어짐”이다. Fichte, Wissenschaftslehre, 195쪽.
개별적 현존재의 정립가능성의 조건에 기초한 피히테의 부정적 상호주관성이론은 후에 등장한 사르트르(J.-P. Sartre)의 대자존재(das Für-sich-sein)의 논리의 중요 논점 대부분을 이미 선취하고 있다.
한 주체가 스스로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근원적인’ 절대적 자유를 제한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옳다. 그런데 왜 이러한 상호작용이 피히테가 주장하듯이 쌍방적 배제이어야 하는가? 피히테의 부정적 상호주관성이론은 타자와 본질적으로 관계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개체성을 오직 타자에 대항하여 주장할 줄만 아는 그러한 원자적 개별자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그가 제시하는 자유개념의 원칙에 잘 드러난다.

“나는 자립적 자아이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궁극목적이다. 나의 자립성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나는 이 목적을 위해 사용하여야 한다. 이것이 그것들의 궁극목적이다.” Fichte, Sittenlehre, 212쪽.


이에 따르면 타자는 상호작용 속에서 제한받았던 나의 근원적인 절대적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피히테에 있어서 상호승인의 과정은 단지 나의 자유를 타자에 대해 지키는 것 그리고 이것이 타자의 자유공간을 용인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쌍방적 배제의 균형을 산출해 내는 것 이상이 아니다. 이에 따라 피히테는 상호승인의 결과인 법관계를 칸트와 마찬가지로 “각자가 타자 역시 자신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조건 아래 자신의 자유를 타자의 자유의 가능성의 개념에 의해 제한하는 그러한 이성적 존재들 간의 관계”로 파악한다. Fichte, Naturrechtslehre, 52쪽.
내가 자유로운 존재로 인정한 타자 역시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계에 불과하다. 피히테는 법을 “실현된 자연법”이라고 말한다. 위의 책, 14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법을 “보편적 이기주의”에 대해 “기계적 필연성으로” 대처하는 “강제법”으로 밖에 설정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부정적 자유개념에 기인한다. 위의 책, 142쪽과 152쪽.

앞에서 논의되었던 이론들과 비교해 볼 때 피히테의 자연법론은 부정적 자유개념에 근거하여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며 법질서를 수립하려고 할 때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체계이다. 피히테에 있어서도 법은 실질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강제는 그의 자유개념에 내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법은 그 본질에 있어서 “이성법(Vernunftrecht)”, 즉 이성에 근원적으로 내재해 있는 자유의 개념으로부터 엄격한 선험적 종합의 방법으로 도출된 특정한 행위규범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아무 모순도 없다. Fichte, Rechtslehre, 499쪽.
피히테적 자아는 자아가 부정하고 배제하는 非我에 여전히 종속되어 있다는 헤겔의 비판은 어쩌면 피히테의 논점을 벗어난 것일 수도 있다. 피히테는 이에 대해 인간의 실제적 자유는 사실상 무한한 것이 아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적 일관성은 자유가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것, 즉 자아의 절대적 비종속성과 무제약적 자립성에 대한 요청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피히테는 자신이 유일하게 타당한 자유의 선험적 의미라고 주장했던 주관적∙부정적 자유를 결국 파기하고 있다. 헤겔은 이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 체계가 넘어서지 못하고 이 체계를 파괴시키는 모순은 대립자로부터의 추상에 의해 전적으로 조건지워져 있고 이러한 대립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무한성이 동시에 절대적 자발성과 자율이라고 주장되고 있다는 것, 자유로서는 이 무한자가 절대적이어야 하나 또한 이러한 자유가 오직 대립자를 통해서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Hegel, GuW, 318쪽.


피히테적 자유관의 결함은 그것이 개별적 주체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머문다는 데 있다. 자유의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개별적 주체로부터 출발하는 의식철학적 서술방식이 상호주관적 서술방식에 대해 오히려 방법론적 우위를 지닌다. 자유에 관한 한 근본적으로 외부적 관점이란 있을 수 없다. 자유는 그것이 어떠한 형식이건 간에 항상 나의 자유일 때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존재는 관찰자 시점에서 기술되어지고 경우에 따라 해석학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존재 자체는 하나의 ‘실존적’ 사태이며 따라서 오직 일인칭의 시점에서만 왜곡되지 않고 서술되어질 수 있다. 자유에 대한 모든 객관주의적 서술방식은 이러한 자유의 기본조건에서 커다란 맹점을 안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아와 非我의 관계에 대한 피히테의 변증법은 아직 주관주의적이고 관념주의적이다. 여기서 자아와 대립해 있는 非我는 단지 자아의 타자, 즉 자아에 의해 관념적으로 정립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타자로부터의 자아의 자기복귀는 운동의 시발점이었던 무관계적 개별적 자아를 재건하는 것일 뿐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피히테적 자아는 스스로로부터 관념적으로 정립한 타자에게서조차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한 것이다. 타자는 칸트적인 不可入性의 물 자체로 남고 여기서 자아의 자기규정은 중지된다. 이러한 자아는 오직 자기 자신의 제한과 타자의 배제를 통하여서만 자기동일성을 유지할 줄 안다. 피히테적 자유는 “고립되고 자기 자신 속으로 은둔한 單子로서의 인간의 자유”, 즉 “타인에게서 자신의 자유의 실현이 아니라 제약을 보는” 자유다. K. Marx (1844), 364쪽 이하.
칸트와 마찬가지로 피히테 역시 상호작용을 단지 자신의 직접적 대자존재에 고착하여 서로를 배타적으로 밀치는 대립자들 간의 양적인 공통성으로만 파악했기 때문에 대립자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타자 속에서 자신의 무제약적 자립성을 발견하는 그러한 보편성으로 스스로를 질적으로 지양하는 변증법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 칸트는 상호작용(Wechselwirkung)을 행위자와 수동자간의 “공통성(Gemeinschaft)”으로, 그리고 공통성을 다시 “다른 실체와의 상호적 규정에 있어서의 한 실체의 인과성”으로 정의한다 (KrV, B 106/111). 피히테는 이렇게 기계론적으로 파악된 지성과 자연간의 그리고 지성들간의 상호작용을 기초로 하여 자신의 자연법론과 윤리론을 구축한다.
개인주의가 선호하는 부정적 자유개념은 실은 타자 속에서 자신을 상실할까봐 두려워하고 타자 속에서 무한한 자기존재를 찾을 능력이 없는 허약하고 불안스러운 개별성이라는 오히려 ‘反개인주의적’ 가정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4. 상호주관적∙긍정적 자유개념

“자유를 마치 한 주체가 다른 주체 곁에서 자신의 자유를 제한해서 이러한 공동의 제한, 즉 쌍방적 속박이 각자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을 남겨 놓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 자유는 단지 부정적으로 파악된 것일 뿐이다”라고 헤겔은 말한다. Hegel, ViG, 111쪽.
헤겔에 따르면 자의나 임의뿐만 아니라 칸트적 의미에서의 자율 및 피히테적인 제약된 공동의 자유 역시 단순한 부정적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자유는 상호주관적으로 구성되고 이에 의해 이성적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자각되어진 자아의 절대적 자립성이다. 상호주관적∙긍정적 자유개념에 따르면 타자와의 긍정적 관계는 개인의 자유를 위한 선험적인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개념이 학문적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수긍할만한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1. 왜 타자관계는 나의 자유에 본질적인가? 2. 어떻게 나는 타자와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도 절대적 자기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이 두 번째 질문은 내용상 다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율배반을 내포하고 있다. ① 나의 의지의 결정은 이성적인 방식으로 잘 질서지워져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규정성 속에서도 절대적으로 자기규정적이어야 한다. ② 나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의 의지와 행위를 제한해야만 한다. 동시에 나는 어떠한 한계도 갖지 않고 무한한 자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첫 번째 질문의 해결을 헤겔은 피히테의 의식철학의 명제를 논리학적으로 확장하고 수정함으로써 찾으려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는 항상 의식적으로 정립된 자유를 뜻한다. 그런데 하나의 대자존재는 동시에 다른 대자존재를 정립하지 않고는, 그리고 이러한 대타존재의 계기를 매개로 하지 않고는 스스로를 구체적 대자존재로 정립할 수 없다. 따라서 타자관계는 자아의 자기관계의 산물인 동시에 자기관계의 정립의 본질적 조건이다. 이때 자아와 非我 간의 모순은 피히테가 생각하듯 단순히 서로 무관한 것들 간의 외적인 대립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아의 내적 자기모순이다. 따라서 자아는 동시에 스스로의 타자성을 부정하지 않고는 非我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와 非我의 동시적 관념화(Idealisierung)를 통해, 다시 말하면 자아와 非我 양자를 보편적 상호주관성의 계기로 삼음으로써 헤겔은 피히테의 부정적 상호주관성이론을 넘어선다. 두 번째 질문과 관계된 첫 번째 이율배반은 자율이라는 칸트의 개념을 빌어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즉 의지의 이성적 규정이 나 자신의 자발적인 입법이라면 나는 이러한 규정 속에서 법의 입법자인 나 자신의 이성 이외에 어느 것에도 종속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직접적 의지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이요 제한으로 나타나는 이성적 규정이 실은 무규정적 자기규정의 구체화 외에 다름이 아니다. 두 번째 이율배반에 대해서는 피히테는 이를 모든 이성적 존재의 행위의 예정된 조화라는 형이상학적 가설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었다. 이 두 번째 이율배반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이제 상호주관적∙긍정적 자유개념의 주요 과제가 된다.
상호주관적∙긍정적 자유개념은 상호주관적∙부정적 자유개념과 마찬가지로 타자와의 관계가 개인의 자각된 자기동일성의 가능성의 조건이라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부정적 자유개념과는 달리 긍정적 자유개념은 개인의 자유를 타자를 배제하고 경계짓는 것에서 찾지 않고 오히려 타자와 함께 보편적 동일성을 형성하고 이러한 보편성에 참여하는 것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것은 이 자유개념에 따르면 개인적 자유의 본래 영역 밖에 있는 어떤 도덕적 당위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유를 말할 때 이미 항상 의도하고 있는 것의 충족된 의미를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자유는 무규정성에 있는 것도 또 제한된 자기규정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두 규정들의 통일, 즉 자아가 “자신의 제한 혹은 타자 안에서도 자기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다. Hegel, R § 7 Z.
만약 내가 관계하고 있는 타자가 나와 동일한 자기동일성이라면 나는 타자와 관계함에 있어서 나 자신과 관계하는 것일 테고 따라서 자립적 타자 속에서도 오직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 이것이 바로 헤겔적 자유개념의 기본사고이다. 헤겔은 이러한 자유개념을 “사변적”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타자관계라는 부정적 계기 속에서, 다시 말하면 스스로와는 구별되는 타자의 자기관계와의 동일성 속에서 자신의 현실성을 갖는 그러한 자아의 무한한 자기관계가 사유되고 설정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타자는 더 이상 정복되어야 할 적이나 혹은 나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고 나의 자유를 실현시키고 확장시키는 동료이다. 헤겔은 이러한 상호주관적으로 매개된 개인의 긍정적 자유를 “타자 안에서 자기 자신에 있음(Im-Anderen-bei-sich-selbst-Sein)” 혹은 “다른 사람 안에서의 한 사람의 자유(Freiheit des einen im anderen)”라고 표현한다. Hegel, E § 431 Z. 이 자유개념을 헤겔은 E § 382 Z.에서 다음과 같이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정신의 자유는 타자의 밖에서가 아니라 타자 안에서 획득된 타자로부터의 비종속성으로서 타자로부터 도피함으로써가 아니라 타자를 극복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정신은 그의 추상적 대자적 보편성, 즉 자신의 단순한 자기관계로부터 탈피하여 하나의 규정된 현실적 차별, 즉 단순한 자아와는 다른 타자, 따라서 하나의 부정적인 것을 자신 안에 정립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타자와의 관계는 정신에게 단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정신은 타자를 통해서 그리고 타자의 지양을 통해서 비로소 그가 자신의 개념에 합당하게 있어야 할 것으로 스스로를 보존하게 되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의 개념은 외적인 것의 관념성, 자신의 타자존재로부터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이념 혹은 좀 더 추상적으로 말한다면 스스로를 구별하고 이 구별 속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있는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있는 보편자다. 따라서 타자, 부정적인 것, 모순, 분화는 정신의 본질에 속한다.”
이때 나와 타자는 동일한 정도의 강조점을 갖는다.
그런데 이러한 “사변적”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헤겔에 따르면 개인의 긍정적 자유는 자립적인 타자와의 상호적이고 균등한 인정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상호인정이란 타자로부터의 분리와 타자 안에서의 자기발견이라는 이중적 운동을 통한 두 대자존재적 자기의식들의 화해를 의미한다. 헤겔은 승인의 운동구조를 양면적 이중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상호인정이 한편으로는 타자의 이질성의 부정, 즉 자기주장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타자에 대한 이질성, 즉 자기극복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Hegel, Phä, 146쪽 이하.
상호주관적∙긍정적 자유개념은 나의 성공적인 자기관계와 타자의 자기관계가 상관적으로 서로를 전제하고 구성하며, 따라서 타자의 자립성을 인정하는 것이 타자가 나의 자립성을 인정하는 것과 똑같이 나의 충족된 자립성의 가능성을 위한 조건이라는 통찰에 기초한다. “자유로운 자는 시기하지 않는다”라고 헤겔은 말한다. Hegel, ViG, 138쪽.
자유는 그 본질상 항상 함께 나누는 자유이다. 타자가 내 속에서 자유로울 때 나 역시 타자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나의 자유를 위해서는 타자의 이질성이 지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양은 타자를 단순히 배제함으로써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배제되어진 것은 여전히 외부에서 나를 제한하는 타자로 남기 때문이다. 타자성의 지양은 또한 타자에 대한 지배에 의해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배를 통해서 타자를 파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와 함께 나는 내가 극복하고자 하는 상태, 즉 공허한 무차별성으로 회귀하고 말기 때문이다. 타자성의 지양은 내가 나의 편협한 대자존재를 자발적으로 지양하고 타자와 보편적 동일성을 형성하는 것에 의해서만 진실로 가능하다.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는 매체는 자립적 개인들이 상호인정을 통해 자율적으로 창출해 낸 상호주관적 보편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상호주관성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기관계를 구성하고 또 자기관계 속에서 동시에 타자와의 관계를 구성하는 두 주체간의 균등하고 타자요청적인 관계를 뜻한다. 이때 상호주관성의 매체가 담화이론(Diskurstheorie)이 주장하듯이 언어에만 제한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보편적 자기의식으로의 자기고양이라는 의식의 변증법이다.

상호주관적∙긍정적 자유는 인륜적 형식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공동체는 개인의 자유의 제한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의 실현이고 확장이다. 개인은 공동체에 보편적인 개인, 다시 말하면 상호주관적으로 계몽된 개인으로서 참여한다. 개인의 개별성과 사회의 보편성 간의 동등하고 투명한 관계는 개인들이 그들 간에 동등하고 투명한 관계, 즉 사회적 보편성을 자율적으로 창출해 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자유개념에 따르면 개인의 자유가 이미 상호주관적 질서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유와 법이 대립관계로 파악되지 않는다. 법은 강제의 질서가 아니라 자유의 질서이다. 법 안에서 개인의 자유는 제도적 인정과 유효성을 획득하게 된다. 자유는 법의 목표일뿐만 아니라 “모든 법의 원리이며 실체적 토대”이다. Hegel, Gph, 524쪽.
이 원리를 헤겔은 다음과 같이 표명한다.

“법의 지반은 전혀 정신적인 것이며 그의 좀더 엄밀한 위치와 출발점은 자유로운 의지이다. 따라서 자유는 법의 실체와 규정을 이루고 법체계는 실현된 자유의 왕국, 정신이 스스로로부터 제 2의 자연으로 산출해 낸 정신의 세계이다.” Hegel, R § 4.


헤겔에게도 법은 “어떤 신성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법실증주의자나 기능주의적 법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법질서의 유지와 사회체제의 안정이 사회의 최상의 목표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법이 절대적 개념, 즉 자기의식적 자유의 현존재”이기 때문이고 또 오직 그럴 때에만 법은 신성한 것이다. 위의 책, § 30.
법은 “자유의 규정이며 현존재”이다. 위의 책, § 30 A.
법이 강제적 성격을 지니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법에 의해 제한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자의, 그것도 자신과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의일 뿐이다. 법의 강제성은 법개념에 일차적인 것이 아니고 오직 자유의 “부정의 부정”으로서만 법에 부가되는 것이다. 위의 책, § 97 Z.
타자와의 상호주관적∙긍정적 관계 속에서 획득한 개인의 자유는 오히려 법에 의해 객관적 현실성을 얻게 된다. 상호주관적∙긍정적 자유개념에 기초하여 법을 이성법적으로 근거지우려는 헤겔의 노력은 ― 설사 헤겔이 그의 『법철학』에서 이 원리를 일관성 있게 전개하는 데 실패했다 하더라도 ― 법개념을 실정법의 사실적 기능에 환원시키고 “자기생산적 체계(autopoietisches System)” G. Teubner (1989).
로 독자화시키는 현재의 기능주의적 법이론에 대해 개인의 자유와 법의 존엄성을 함께 지키면서 실정법에 대한 비판적 척도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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