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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0/05 (01:07)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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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신학, 민중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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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신학, 민중사건




1970년 11월 13일 청년 전태일은 석유가 부어진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은폐된 노동자들의 처절한 절규가 활활 타오르는 그의 몸둥아리를 타고 수많은 방관자들의 가슴에 태풍처럼 몰아 닥친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에 접한 일단의 신학자들은 바로 이 '전태일 사건'에서 예수님의 사건을 본다. 비로소 그들은 한국의 민중현실에 눈이 뜨이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사건들'에 대한 신학적, 신앙적 물음을 던진다. 이들 중의 한 사람 안병무는 이러한 신학을 <사건의 신학>이라 불렀다. 이로써 사건의 신학은 민중신학의 별명이 된다.

"태초에 사건이 있었고, 케뤼그마는 그 뒤를 따른다"(안병무). 이 말은 민중신학의 <사건> 개념이 함축하는 바를 나타내 주는 핵심구다. 여기서 <사건>은 <케뤼그마>와 대립된다. 이것은 좁게는 자유주의 신학의 귀결점이자 극복점인 불트만(Rudolf Bultmann) 신학에 대한 폐기선언이며, 넓게는 근대(modern) 서구신학의 주류적 사고에 속하는 로고센트리즘(logo-centurism)에 대한 선전포고다.
근대의 부르주아적 인간지성에 대한 무한정한 낙관주의에 기반하여, <인간지성에 의한 하나의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으리라는 자유주의 신학적 믿음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를 노정했다. 첫째로, 제1·2차 세계대전을 상징적 계기로 하는 인간 지성의 무한한 자유가 잉태한 비극적 결과에 대해 자유주의 신학적 근대성은 결코 면죄부를 받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둘째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그리고 1960년대에 다시 폭발한 서구 박탈계급/계층의 해방적 실천이나, 20세기 중반 이후 폭발한 제3세계의 민족적, 계급/계층적인 해방적 실천에 대해서 자유주의적 근대성은 철저히 무능했다는 점이다.
실존주의적 신학(불트만)이나 신정통주의 신학(neo-orthodoxism)은 주로 첫번째 문제에 대한 서구신학계의 반성이요 응답이었다. 이들은 실패한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 지성을 통한 사건 해석 대신에 케뤼그마를 통한 사건 해석에서 출구를 찾는다. 요컨대 신적 존재로 선포된 자에 관한 담론(케뤼그마) 중심적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즉 이들에게서 사건은 항상 <하느님이 주체가 된 하나의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사건>이 된다. 실존주의 신학은 그 사건과 인간의 접촉점은 탈역사적인 실존을 통한 결단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한편 주로 나치즘과 대결하면서 발전한 신정통주의 신학은 인간 지성의 낙관적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인간에 대해 <절대타자>인 하느님의 절대성 궁극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건은 동시에 <하느님의 사건>이지만, 그것은 히틀러나 그를 지지한 교회의 왜곡된 인간 지성의 사건일 수는 전혀 없다. 더 나아가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 일반의 사건일 수조차 없다. 요컨대 신정통주의 신학은 인간의 도구적 이성의 필연적인 암울한 귀결(아도르노 T.W. Adorno) 및 그로부터의 돌발적인 탈출 가능성(벤야민 W. Benjamin)을 인간 지성이 아니라 절대타자인 하느님의 총제적이고 보편적인 섭리의 사건에서 찾는다. 요컨대 불트만은 전쟁에 찌든 인간의 온갖 실천을 왜면함으로써, 그리고 신정통주의는 나치즘에 저항하고 그들의 반(反) 신성을 고발하는 <역사 안의 실천>을 위해 유일하게 절대적인 수 있는 신의 배타적인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역사로부터 후퇴한다>.
그런데 <하느님의 하나의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사건>에 이르게 한 케뤼그마 중심적 해석은 자유주의 신학이 노정한 두번째의 문제에 대해서 여전히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었다.
제도화된 그리스도교가 크게 기여한 총체성 보편성의 논리는 근대적인 과학적 기술적 발전과 더불어 미시적 영역과 거시적 영역 양편으로의 영역확대를 동시적으로 구현한다. 미시영역으로의 확대란 지배계급/계층의 세계, 주로 정치이념의 세계에 한정되던 것에서 범계층 및 생활세계에까지도 이것이 확장되게 되었음을 의미하며(공간축소), 거시영역으로의 확대란 유럽이나 북아메리카만이 아니라 범세계적으로의 확장을 의미한다(공간확대). 이런 공간축소/확대 경향은 1970년대 이후 전개된 극소전자과학기술혁명과 더불어 더욱 가속화된다. 이렇게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로 확대된 영역은 서구사회의 특수한 발전과 더불어 형성된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로고센트리즘의 담론이 유통 재생산되는 담화공동체로 편입된다. 이 담화공동체는 자본의 불균등한 발전에 따른 차등관계를 정당화하는 <동시적으로 존재하지만 비동시적>이라는 <단계론적 역사관>이 통용되는 영역이다.
이렇게, 인간 지성에 대해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서구의 로고센트리즘은 구체적인 역사 현실로부터의 후퇴를 그 자체 논리 안에 내포하고 있다. 낙관주의는 인간 지성의 발전 자체가 신적 섭리를 구현하리라고 믿으며, 비관주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신의 돌발적인 개입이 있으리라고 믿기에 이들의 역사로부터의 후퇴는 그 자신에게는 역사로부터의 후퇴가 아니었지만, 로고센트리즘의 총체성 보편성 논리의 강요 아래 있는 다른 대상들에게는 자연발생적으로 주어질 유토피아를 기대하며 역사로터 후퇴해 있으라는 <식민주의적 담론>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적 로고센트리즘뿐 아니라 신정통주의적 로고센트리즘까지도 계급적 민족적 해방 실천에 아무런 답변을 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구의 급진신학들이나 제3세계의 해방적 신학 등은 앞의 두번째 문제에 대한 신학계의 반성이요 응답이었다. 민중신학은 케뤼그마 이전에 사건이 있었다는 자명한 진리를 일깨운다. 여기서 사건, 즉 <예수사건>이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케뤼그마를 통해 물음이 제기된 근저에는 자유주의신학 및 실존주의 신학의 방법론적 실패가 놓여 있다.
자유주의신학자들은 예수와 그 주변 사람들의 상호관계에서 예수사건을 보지 않고, 예수님(主)으로부터 주변 사람들(客)을 향하는 일방적인 힘의 전이라는 관점에서만 그 사건을 보려 했다. 이러한 주객도식적인 예수이해는 실증주의적인 예수상을 요구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민중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실천은 예수님 및 그 주변의 대중이 <더불어> 일으킨 사건임을 강조한다(물론 여기에는 하느님이 개입돼 있다). 이렇게 <더불어의 사건>으로 보는 관점은 방법론적 물음에 있어 <사회학적 접근>에의 문을 연다. 마찬가지로 서구의 급진신학자들이나 다른 제3세계의 해방적 신학자들도 사회학적 해석 방법을 선호했다. 예수사건 해석은 이제 더 이상 방법론적 회의주의에 떨어지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면 예수사건은 어떤 사건인가? 민중신학자들은 예수님은 언제나 기층대중을 편들었고 그들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데에 최고의 관심을 기울였음을 밝힌다. 마찬가지로 서구의 급진신학자들이나 제3세계의 해방적 신학자들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요컨대 예수사건 해석에는 민중해방의 에토스가 그 초점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사건은 민중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예수사건은 어디에서 <재현>(representation)되는가? 교회는 그 사건을 잘 재현하고 있는가? 민중신학자들은 <아니>라고 답한다. 물론 서구의 급진신학자들이나 제3세계의 해방적 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민중신학자들은 고난 현실(모순)의 담지자인 기층대중의 일상세계(민중의 사회전기)에서 예수사건 재현의 잠재성을 확인하며 나아가 <전태일 사건>에서 예수사건의 한국적 재현의 전형을 본다. 화산맥처럼 여기저기에서 돌발적으로 분출하는 제2, 제3의 전태일 사건을 목도하면서 민중신학자들은 성령(하느님의 氣)의 움직임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사건의 신학>이요, 이 사건의 본질은 <민중사건>이라는 용어로서 단언될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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