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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4 (05:05) from 80.139.165.161' of 80.139.165.161' Article Number :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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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의 철학적 결과

상대성이론의 철학적 결과
PHILOSOPHICAL CONSEQUENCES OF RELATIVITY

/ 버트런드 러셀

상대성이론 : 철학적 결과

상대성이론에서 유추할 수 있는 철학의 결과와 관련해, 상당히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새로운 과학이론이 출현할 때마다 늘 그래 왔지만, 철학자들이 나름의 고유한 형이상학적 체계에 근거해 아인슈타인의 저작을 해석하면서 이전에 비해 사고의 폭이 훨씬 더 넓어졌다고 말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경향이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된다는 말은 아니다. 어쩌면 아무데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소개한 근본적인 변화가 철학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면 분명 실망스러운 일일 것이다.

시공간

특수 상대성이론에서 오래 전에 제시한 이 개념, 다시 말해 공간과 시간의 대체물로서의 시공간 개념은 철학에서는 가장 중요하고도 색다른 경험이다. 뉴턴의 역학에서는 2개의 사건이 공간에서의 거리와 시간의 경과라는 서로 다른 구간에 의해 구분되었다. 모든 운동이 상대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이는 아인슈타인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다), 동시발생적인 사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간에서의 거리라는 개념은 모호해졌다. 그러나 다른 장소에서의 동시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회의가 제기되지 않았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빛은 유한한 속도로 여행한다는 가설을 통해 동시성은 같은 장소의 사건들에 적용될 때만 확실하며 사건들이 공간적으로 서로 떨어질수록 동시성은 점점 모호해진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그러나 이 표현은 여전히 '공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정확하지는 않다. 정확성을 기하려면 다음과 같이 기술해야 한다. 즉, 사건들은 4차원의 질서를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사건 A는 사건 C에 비해 사건 B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양적인 것과는 전혀 관계 없는 순전히 순서상의 문제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 인접하는 사건들 간에는 이른바 '구간'이라는 양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구간은 전통적인 역학에서 말하는 공간상의 거리와 시간의 경과라는 두 기능을 모두 충족시키지만, 이를 충족시키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물체가 두 사건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면, 그때의 구간은 시간꼴(time-like) 개념이다. 빛이 두 사건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면, 그때의 구간은 0이다. 둘 다 아닌 경우에는, 그때의 구간은 공간꼴(space-like) 개념이다. 어떤 물체가 한 사건'에'('at' an event) 존재한다고 했을 때의 사건이란, 그 물체의 역사를 구성하는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 시공간적으로 동일한 장소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의미한다. 두 사건이 시공간적으로 동일한 장소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4차원의 시공간 질서에서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사건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어느 순간 특정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한 장소에 몰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음을 들으면서 동시에 색깔을 보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의 인식 결과는 시공간적으로 한 장소에 있다.

어떤 물체가 시공간적으로 한 장소에 있지 않은 2개의 사건에 존재할 수 있다면, 측정 체계에 따라 시간 구간의 크기가 달라진다 하더라도 이들 두 사건의 시간 순서는 모호하지 않다. 그러나 두 사건 간의 구간이 공간꼴이라면, 이 둘의 시간 순서는 측정 체계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이 경우 시간 순서는 물리적인 사실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에 따르면 두 물체가 태양과 행성처럼 상대적으로 운동할 경우, '주어진 시간에서의 물체 간의 거리'라는 물리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사실만으로도 뉴턴의 중력법칙이 논리적으로 오류라는 사실이 판명된다. 다행히도 아인슈타인이 그 결함을 지적하고 바로 고쳤다. 그러나 뉴턴의 이론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반박 이론은 그가 주장한 중력 법칙이 확실한 입증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타당성을 확보했을 것이다.

시간만이 우주의 질서는 아니다

시간은 물체마다 달리 작용할 뿐만 아니라 우주의 유일한 질서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실체와 원인의 개념이 변화를 겪는 한편, 변화하는 상태에 있는 실체라는 표현 대신 일련의 사건들이라는 표현을 쓰자는 의견까지 제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에테르를 둘러싼 논쟁은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사건은 광파가 여행하면서 일어난다. 예전에는 이들 사건이 이른바 '에테르'라는 특정한 물질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사건은 아무 물질 '안'에서나 존재한다는 논리적인 편견을 제외하면 아무런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사건은 서로 연속하며 중심에서 이탈한다는 가설에 따르면 물질 또한 하나의 법칙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좀더 깊이 들어가보기로 하자.

물리학 법칙

에딩턴 교수는 철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하긴 하나 난해한 수학의 도움 없이는 명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대성이론의 한 측면을 강조해 왔다. 문제가 되고 있는 측면은 한때는 물리학적 법칙으로 여겨지던 것들을 자명한 이치 혹은 정의로 환원시키면서 파생된 결과다. 에딩턴 교수는 <물리학의 영역 The Domain of Physical Science>이라는 흥미로운 논문에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1).

과학의 현 단계에서는 물리학 법칙을 세 부문, 즉 동일성 법칙, 통계적 법칙, 초월적인 법칙으로 나누고 있는 것 같다. 먼저 '동일성 법칙'에는 자연 법칙의 전형적인 예로 자주 거론되는 법칙들, 이를테면 중력의 법칙, 질량 및 에너지 보존의 법칙, 전자기력 법칙, 전하 보존의 법칙 등이 해당된다. 이들 법칙에 지배받는 실재들의 구성과 관련해 순환 주기(cycle)를 조사해 보면 이들 법칙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구성을 잘못 이해하지 않는 한 이들 법칙을 위반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이들 법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세계의 기본 구조에 제한을 가하지 않을 뿐더러 지배적인 법칙도 아니다(앞의 책 PP.214∼215).

상대성이론의 주요 대상은 바로 이 동일성 법칙들이다. 이에 비해 통계적 법칙과 초월적인 법칙은 물리학의 범위 밖에 위치한다. 따라서 상대성이론의 성과는, 물리학의 전통적인 법칙들이 논리적으로는 완결된 구조를 갖추고 있으나 자연의 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낸 데 있다.

이 놀라운 결과는 수학 기술의 발달이 거둔 성과다. 에딩턴 교수는 다른 곳에서 또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2).

어떤 의미에서 연역적 추리에 의한 이론은 실험 물리학의 적이다. 지금까지 실험 물리학은 여러 가지 결정적인 실험을 통해 사물의 근본적인 성질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에 비해 전자의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이 실험 결과와 어떻게 부합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얻은 성공을 최소화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세계에서는 일정하게 유지되는 무언가가 있다. 수학은 보존이라는 이러한 특성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준다. 일정하게 유지되는 이들 존재를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유용한 일이다. 예를 들어 질량이나 에너지의 경우, 우리의 경험 속에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정하게 유지되는 양일 뿐이다. 이와 같은 관점이 정확하다면, 현실 세계에 대해 물리학이 설명해 줄 수 있는 내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다.

힘과 중력

상대성이론의 중요한 한 측면은 '힘' 개념의 제거에 있다. 이론상으로 볼 때 이는 그다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다시 말해, 고전 이론 역학에서 이미 오래 전에 받아들였던 개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력이라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바로 이 점을 해결했다. 가령 태양이 언덕 정상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행성들은 언덕 경사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행성은 정상에서 뿜어내는 신비한 힘 때문이 아니라 경사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움직인다. 물체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힘'이 작용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현재 위치한 시공간이라는 영역에서 가장 쉽기 때문이다. 관찰된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힘'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유클리드기하학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편견에서 벗어나면, 관찰된 운동이 힘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해당 영역에 적용되는 기하학의 성질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에 따르면 물체들은 뉴턴의 물리학에 비해 훨씬 독립적이 된다. 쉽게 말해, 개인주의가 늘어나는 반면 중앙 정부의 역할은 감소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평범한 사람들의 우주관이 대폭 수정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성이론과 실재론

상대성이론이 세계를 관념적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다. 엄밀한 의미에서 '관념론'이라는 용어 안에는 경험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상대성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관찰자'(observer)는 판단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사진판이나 일종의 기록 기구를 뜻한다. 상대성의 기본적인 가정은 현실적이다. 말하자면 주어진 현상을 기록할 때 모든 관찰자가 동의하는 사항들은 관찰자가 제공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실체로 간주된다는 가정이다. 이러한 가정은 상식에 근거한다. 물체의 크기와 모양은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상식은 이들 간의 차이를 무시한다. 단지 상대성이론은 이러한 과정을 확장할 뿐이다. 지구의 운동을 공유하는 관찰자뿐만 아니라 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움직이는 '관찰자'를 고려에 넣음으로써,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이 관찰자의 관점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관찰자의 관점에 그다지 많이 의존하지 않는 부분들도 있다. '텐서'(tensor)라는 방법으로 표현되는 부분이 그렇다. 이러한 방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비수학적인 용어로는 이를 설명할 수가 없다.

상대성 물리학

물론 상대성 물리학은 세계의 양적 측면만을 다룬다. 상대성 물리학이 제시하는 그림은 이렇다. 즉, 4차원의 시공간 틀 안에서는 모든 곳에 사건이 존재하며, 대개의 경우 사건들은 시공간적으로 한 장소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들 사건 간의 추상적이고 수학적 관계는 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진행되지만, 이들 사건이 우리가 뇌라고 부르는 장소 안에서 일어날 경우를 제외하면 이들 사건의 고유한 성질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뇌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곧이어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과 소리로 바뀐다. 우리는 별을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지만, 별에서 출발해 우리의 눈에 이르는 빛을 구성하는 사건들의 성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아울러 시공간 틀 자체는 그 속에 내재된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특성을 통해서만 인식 가능하다. 그러나 물리학의 논법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극도의 추상적인 추론만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식력 중에서 가장 추상적인 특성만이 객관적으로 타당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무지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어 보인다. 다른 과학이 물리학보다 더 많은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여기에서 다룰 내용이 아니다.

이처럼 빈약한 지식으로도 물리학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데 별다른 무리가 없다니 신기한 일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물리학의 세계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범위에 한해서만 중요하다. 아울러 우리가 없는 데서 일어나는 사건에 내재된 성질 역시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효과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우리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이는 전기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도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이치와 비슷하다. 물질을 실용적인 목적에 맞게 조작하는 데에는 극도로 추상적인 지식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수학 법칙에 기초한 이러한 조작 습관을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루는 데까지 확장할 경우에는 심각한 위험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화선과 달라서 행복과 불행, 욕망과 혐오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질 메커니즘을 다루는 데 적합한 마음의 습관을 관리자의 의도보다 우위에 둘 경우, 사회적으로 불행한 일이 발생할 것이다.

참고자료

A. S. 에딩턴, <우주, 시간, 그리고 중력 Space, Time, and Gravitation>(케임브리지, 1921)

버트런드 A. W. 러셀, <상대성의 A.B.C. The A.B.C. of Relativity>(1925)

주1) 조지프 니덤 편 <과학, 종교, 그리고 현실주의 Science, Religion and Reality>에서.

주2) A. S. 에딩턴의 <상대성의 수학적 이론 Mathematical Theory of Relativity>(케임브리지, 1924) p.238



http://www.sen.go.kr/jaryo/nobel/nobellist/relativit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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