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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3/12/14 (12:22) from 80.139.165.161' of 80.139.165.161' Article Number :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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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 SPAC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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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 SPACE-TIME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시공간

우리의 모든 사고와 개념은 감각 경험(sense-experience)에 의해 떠오르며, 감각 경험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사고와 개념은 감각 경험 내용의 논리적 결과가 아니라 자발적인 정신 활동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상적인 개념들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한다면, 개념과 그 개념에 대한 주장 사이의 상호 관계를 꼼꼼히 살피는 한편 개념과 경험의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

개념들간 그리고 개념과 경험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 관한 한, 과학적 개념 체계와 일상 생활의 개념 체계 사이에 원리상의 차이는 없다. 과학적 개념 체계는 일상 생활의 개념 체계에서 비롯되어 발전한 것이며, 해당 과학의 대상과 목적에 따라 수정을 거치면서 완성되어 왔다.

개념은 일반적일수록 우리의 사고 속에 빈번히 들어온다. 그리고 개념과 감각경험의 관계가 간접적일수록 개념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사용해 온 과학 이전의 개념(pre-scientific concept)의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어디'(공간)·'언제'(시간)·'왜'(이유) 그리고 '존재'와 관련된 개념들을 밝혀내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철학자들이 공을 들여오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 사유에 있어 우리는 '물이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물고기보다 나을 것이 없다.

공간

우리는 먼저 '어디' 즉 공간(space)의 의미와 만난다. 우리 개개인의 본래의 감각 경험에는 공간적인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공간이란 우리가 경험하는 일종의 물질적 대상들의 질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공간에 관한 개념들을 세우려면, '물질적 대상'(material object)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은 기본적인 논리적 개념이다. 예컨대 '옆에'·'닿다' 따위의 공간적 개념을 분석하면, 다시 말해 이 개념들이 우리의 경험의 무엇에 해당하는 것인지를 애써 분석하고 이해하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대상'(object)이라는 개념은 일단의 경험 복합체의 시간적 지속성 곧 연속성을 고려에 넣는 수단이다. 따라서 대상은 개념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대상이라는 개념의 의미도 일단의 기본적인 감각 경험과의 (직관적인) 관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이러한 관계 때문에 우리는 마치 기본적인 감각 경험이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한에서만 존재하는) 물체들의 관계에 관한 정보를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알려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원척적으로 오해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두 물체의 접촉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여기에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이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개별적인 경험을 들이민다한들 우리의 목적상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많은 물체들을 서로 영원히 접촉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물체들의 위치 관계(Lagenbeziehungen)이다. 이러한 위치 관계의 일반 법칙들은 본질적으로 기하학의 영역에 속한다. 우리 스스로 적어도 기하학적 명제들을 일정한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공허한 말들 사이의 관계로 치부하지 않는다면, 이 말은 옳다.

과학 이전의 사고

우리가 또한 과학 이전의 사고에서 마주치는 '공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에 잘 나타난다. "우리는 사고 속에서 사물을 지워버릴 수 있지만, 사물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은 지울 수 없다." 이는 마치 우리가 어떤 종류의 경험도 없이 공간 표상도 아닌 공간 개념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개념의 도움을 받아 우리의 감각 경험에게 마치 '선험적으로' 존재하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다. 한편 공간은 물질적 대상처럼 우리의 사고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인 듯이 보인다. 이러한 공간관 때문에 기하학의 기본적인 개념인 점·직선·평면은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점·직선·평면의 기본 원리는 반드시 옳음과 동시에 객관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경험적으로 주어진 (거의 무한히 작은) 세 개의 물체가 하나의 직선 위에 놓여 있다"와 같은 진술에 대해 아무런 물리학적 정의를 요구하지도 않은 채 거리낌없이 객관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증거와 기하학의 개념 및 명제의 실제적인 의미에 눈감은 이러한 맹신은 비(非)유클리드기하학이 도입된 후에야 비로소 한풀 꺾였다.

기준 물체로서의 지구

모든 공간 개념이 고체 접촉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공간'의 개념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다시 말해 '물체에 대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물체의 위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그 무엇'을 어떻게 가정할 수 있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상호 접촉 상태에 있으면서 서로에게 아무 동작도 하지 않는 물체들로 이루어진 어떤 체계(體系)가 있다면, 우리는 그 일부를 다른 물체로 대체할 수 있다. 이처럼 치환을 허용하는 성질은 '가용 공간'으로 해석된다. 공간은 강체(剛體)가 이처럼 다른 위치들을 점유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과학 이전의 사고에서 공간을 그 자체로서 단일성을 지닌 것으로 보게 된 까닭은, 아마도 하나의 물체, 예컨대 지구를 모든 물체의 위치 기준을 표현하는 기준 물체로 삼았던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면 과학적인 사고에서는 지구는 좌표계로 표현된다. 무한정의 물체들을 나란히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은 공간의 무한성을 뜻한다. 과학 이전의 사고에서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기준 물체'의 개념이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공간상의 어떤 장소나 점은 항상 기준 물체의 질점을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된다.

유클리드기하학

유클리드기하학을 잘 살펴보면 우리는 그것이 강체의 위치를 규정하는 법칙들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유클리드기하학은 물체들과 그 물체들의 상대적 위치에 관한 모든 관계를 아주 간단한 '거리'(distance)라는 개념으로 환원시키는 정교한 사고로 풀어나간다. 거리는 두 개의 질점이 구체적으로 표시된 강체를 나타낸다. 거리(그리고 각)의 동등성 개념은 일치를 포함하는 실험에 관계된다. 이것은 합동에 관한 정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유클리드로부터 전해 받은 유클리드기하학은 '직선'과 '평면'이라는 기본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강체의 위치에 관한 실험과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유클리드기하학에서 직선이라는 개념이 거리라는 개념으로 귀착될 수 있다는 점이다.1) 더구나 기하학자들은 처음에 언명한 몇 개의 공리에서 기하학적 명제들을 논리적으로 연역해내는 데에는 관심을 기울였지만, 기본 개념들의 관계를 실제 경험과 맞추어보는 데에는 그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유클리드기하학의 기초를 거리라는 개념으로부터 얻을 수도 있음을 간단히 살펴보자.

거리의 동등성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서로 다른 두 거리 중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항상 거리가 크다고 가정하자. 수의 부등성에 대해 성립하는 똑같은 공리들이 거리의 부등성에 대해서도 성립한다.

우리는 CA1을 적당하게 선택할 경우 3개의 거리 AB1, BC1, CA1과 각각의 표지(marks)인 BB1, CC1, AA1을 겹쳐 삼각형 ABC를 만들 수 있다. 거리 CA1은 이러한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상한값을 지닌다. 이 때 점 A, (BB'), C는 '직선' 위에 존재한다(정의).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개념들에 도달한다. 즉 자신과 똑같은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 거리를 똑같은 부분들로 나누는 것, 측정막대를 써서 거리를 수로 나타내는 것(두 점 사이의 공간 구간의 정의)이 그것이다.

두 점 또는 거리 사이의 간격이라는 개념을 이런 방법으로 일단 얻고 나면, 해석학적으로 유클리드기하학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음의 공리(피타고라스의 정리)뿐이다.

공간(기준 물체)상의 모든 점에 대하여 점 A와 점 B의 각 쌍에 대해, 측정수 AB = 가 성립하도록 3개의 수(좌표) x, y, z를 할당할 수 있으며 그 역도 성립한다.

이 기초로 삼아 이제 유클리드기하학의 모든 개념과 명제, 특히 직선과 평면에 관한 명제를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유클리드기하학의 엄격한 공리적 구조를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하학의 모든 개념을 어떻게 거리의 개념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위의 마지막 정리에 유클리드기하학의 전체적인 기초가 잘 요약되어 있으려니와, 경험의 기초에 대한 관계는 보충적인 정리를 통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사용해 계산한 것처럼, 똑같은 간격만큼 떨어진 두 쌍의 점들을 적절하게 선택한 하나의 똑같은 거리에 (고체 위에서)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좌표를 선택하면 되고 또한 '반드시' 좌표를 선택해야만 한다.

유클리드기하학의 개념과 명제는 굳이 강체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피타고라스의 명제로부터 도출해낼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이들 개념과 명제는 검증 가능한 내용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들은 '참' 명제가 아니라, 단지 순전히 형식적인 내용만으로 이루어진 논리적으로 옳은 명제에 지나지 않는다.

어려운 문제들

경험상의 강체와 기하학적 물체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에서 말한 기하학의 해석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은 확실한 표지들(marks)이 없어서가 아니라 위치에 관한 법칙이 온도, 압력 및 기타 상황에 의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원자·전자 등의 물리학이 가정하는 물질의 구성 요소가 원칙적으로 강체와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 그러나 기하학의 개념들이 강체와 그 부분들에 적용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된다. 이러한 까닭에 사유를 철저히 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사실의 실제 내용(real contents of facts)을 기하학과만 일치시키는 것을 허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험 내용이 기하학과 물리학 모두와 일치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겼다.

이 견해는 앞서 언급한 견해보다 공격을 받을 여지가 확실히 적고, 원자설에 대한 반박으로서 일관성 있게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다. 그러나 기하학의 뿌리를 이루는 첫번째 견해를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관계는 본질적으로 이상적인 강체는 자연의 법칙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추상화라는 믿음에 바탕하고 있다.

기하학의 기초

이제 우리는 "기하학(공간의 학설)과 그 기초에서 '선험적으로' 확실하거나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이른다. 우리는 과거에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거리라는 개념은 논리적으로 임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거리에 대응하는 어떤 것이 존재해야 할 필요는 없다. 직선이나 평면, 3차원,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유효성과 같은 개념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심지어는 연속체 가설조차도 결코 인간 사고의 본질을 반영하고 있지 않아, 인식론의 관점에서는 다른 관계들보다 순수한 위상 관계에 더 많은 권위를 부여할 수 없다.

이전의 물리적 개념들

그러나 우리는 상대성 이론에 수반하여 일어난 이러한 공간 개념의 변화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전의 물리학의 공간 개념을 위에서 언급된 관점과는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아야만 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무한히 가까운 점들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ds = dx + dy + dz

여기서 ds는 점들 사이의 측정 가능한 구간을 나타낸다. 경험적으로 주어진 ds에 대해, 모든 점들의 조합에 대한 좌표계가 이 방정식으로는 아직 완전히 결정되지 않았다. 좌표계는 직선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전2)할 수도 있다. 이것은 해석학적으로 유클리드기하학의 관계들은 좌표의 선형 직교변환에 대해 공변함을 의미한다.

유클리드기하학을 상대성 이론 이전의 역학에 적용할 때, 좌표계의 선택이 더욱 불확정적이다. 즉 다음과 같은 좌표의 치환이 또한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좌표계의 운동 상태가 어느 정도 임의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x' = x - vt

y' = y

z' = z

반면 이전의 역학에서는 위의 방정식에 표현된 것과는 다른 운동 상태들에 좌표계를 적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가 '관성 좌표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관성 좌표계에서 우리는 기하학적 관계에 관한 한, 공간의 새로운 성질과 마주치게 된다. 보다 정확하게 보자면, 이 새로운 성질은 공간만의 성질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결합된 4차원 연속체의 성질이다.

시간의 출현

이제 비로소 시간이 분명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공간과 시간은 항상 함께 나타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모두 공간좌표 x, y, z와 시간좌표 t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물리적 표현은 처음부터 4차원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이 4차원 연속체는 3차원 공간 연속체와 1차원 시간 연속체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동시성'이라는 개념의 의미는 자명하다는 착각 때문인데, 이러한 착각은 우리가 빛 때문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소식들을 거의 동시에 접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동시성의 절대적인 의미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진공에서의 빛의 전파를 지배하는 법칙 또는 맥스웰-로렌츠의 전기역학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만약 다음 관계가 성립한다면, 무한히 가까운 두 점은 광(光)신호에 의해 연결될 수 있다.

ds = c dt - dx - dy - dz = 0

또한, 임의로 선택한 무한히 가까운 시공간의 점들에 대해 ds는 선택된 특정 관성계와는 무관한 값을 갖는다. 이에 따라 우리는 하나의 관성계에서 다른 관성계로 이동할 때 일반적으로 사건의 시간값이 변할 수 밖에 없는 선형변환방정식들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따라서, 자의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 한 4차원 공간 연속체를 시간 연속체와 공간 연속체로 쪼갤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 불변량 ds는 측정 막대나 시계로 측정할 수 있다.

4차원 기하학

불변량 ds를 바탕으로 대체로 3차원 유클리드기하학과 유사한 4차원 기하학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물리학은 4차원 연속체에서 일종의 정역학이 된다. 차원이 다른 것 외에도 4차원 연속체는 ds2이 0보다 크거나 작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클리드기하학의 연속체와 다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시간꼴(time-like) 직선요소와 공간꼴(space-like) 직선요소를 구별한다. 그 사이의 경계는 모든 점으로부터 출발하는 광추 성분 ds2 = 0으로 나타난다. 만약 똑같은 시간값에 속하는 성분들만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다음을 얻게 된다.

- ds = dx + dy + dz

이들 성분 ds는 이에 상응하는 실제적인 정지 거리들일 수도 있으며,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유클리드기하학은 이들 성분에 대해서도 성립한다.

상대성의 효과, 특수 상대성과 일반 상대성

이것은 제한된 상대성 이론에 묶여 있었던 시간과 공간의 학설을 수정한 것이다. 공간의 학설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해 더욱 수정되어 왔는데, 일반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 연속체의 3차원 공간 부분이 성격상 유클리드 공간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즉,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계속 접촉하고 있는 물체들의 상대적 위치에 대해서는 유클리드기하학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관성 질량과 중력 질량이 동일하다는 경험적인 법칙은, 연속체가 비관성계와 관련해 나타나는 한 연속체의 상태를 중력장으로 해석하게 하고, 비관성계를 관성계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도록 이끌었다. 비선형 좌표변환에 의해 관성계와 연결돼 있는 그러한 계에 대해 측정 불변량 ds2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형태를 지닌다.

ds =   g{sub  }dx dx

여기서 g 는 좌표의 함수이며, 합은 11, 12,...44의 모든 조합에 대해 취해질 수 있다. g 의 가변성은 중력장의 존재에 상응한다. 만약 중력장이 충분히 일반적이라면 관성계 즉 ds2이 위에 주어진 바와 같은 다음의 간단한 형태로 나타낼 수 있는 좌표계를 찾기란 전혀 불가능하다.

ds = c dt - dx - dy - dz

그러나 이 경우에도 마지막으로 언급한 ds의 간단한 형태가 성립하는 국지적인 기준계가 시공간상의 한 점의 무한소 이웃에 존재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일반 상대성 이론이 나오기 50여년 전에 리만이 천재성을 발휘해 찾아냈으며 그가 물리학에 요긴한 쓰임새가 있으리라고 예견한 특유의 기하학으로 이어진다.

리만기하학

n차원 공간에 대한 리만기하학과 n차원 공간에 대한 유클리드기하학의 관계는 곡면에 대한 일반 기하학과 평면 기하학의 관계와 같다. 곡면상의 한 점의 무한소 이웃에 대해 무한히 가까운 점들 사이의 거리 ds가 다음 방정식으로 주어지는 국지적인 좌표계가 존재한다.

ds = dx + dy

그러나 어떤 임의의 (가우스) 좌표계에 대해 다음 식이 곡면의 유한한 영역에서 성립한다.

ds = g{sub 11}dx + 2g{sub 12}dx dx + g{sub 22}dx

만약 g 가x과 x의 방정식으로 주어진다면, 표면은 기하학적으로 완전히 결정된다. 왜냐하면, 이 공식으로부터 표면상에 존재하는 무한히 가까운 두 점의 모든 조합에 대해서 두 점을 연결하는 미소한 막대의 길이 ds를 계산할 수 있고, 이 공식의 도움으로 표면 위에 만들 수 있는 이러한 막대들로 이루어진 모든 회로망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표면상의 모든 점에서의 '곡률'을 계산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점의 최근방에 존재하는 미소한 막대들의 위치를 지배하는 법칙들이 평면기하학의 법칙에서 어느 정도나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벗어나는지 나타내는 양이다.

리만은 가우스가 발견한 표면에 관한 이 이론을 임의 차원의 연속체로 더욱 확장시켰으며,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이르는 길을 닦아놓았다. 무한히 가까운 시공간상의 두 점에 대응하는, 딱딱한 측정 막대와 시계로(시간꼴 성분의 경우에는 시계만으로) 측정 가능한 ds라는 수가 존재한다는 것이 위에서 증명됐기 때문이다. 이 양은 수학 이론에서 3차원 기하학의 미소한 막대 길이 대신에 나타난다. ds가 고정된 값을 가진 곡선들은 중력장 안에서 질점과 빛의 경로를 결정하며, 공간의 '곡률'은 공간에 분포하고 있는 물질에 의해 좌우된다.

유클리드기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공간 개념은 강체의 위치 가능성에 관한 것이며, 따라서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시공간 개념은 강체와 시계의 행동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시공간 연속체는 이들 물체(시계와 측정 막대)의 행동을 지배하는 법칙이 그 물체들이 어디에 나타나는가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에서 공간 연속체와 차이가 난다. 연속체(또는 연속체를 기술하는 양들)는 자연의 법칙에 명백하게 포함되며, 역으로 연속체의 이러한 성질들은 물리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공간과 시간을 연결하는 관계들은 더 이상 물리학 자체와 별개의 것이 될 수 없다.

시공간 연속체의 성질이 전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아무 것도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일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연속체가 시간꼴 영역에서는 무한하지만 공간꼴 영역에서는 유한하다는 견해가 유력해 보인다.

시간

물리학적인 시간 개념은 과학을 벗어난 사고의 시간 개념에 답을 제공한다. 그런데 과학 바깥의 사고에서 생각되는 시간 개념은 개인의 시간 순서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러한 시간 순서는 일차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나는 '현재',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이전의) 감각 경험의 기억과 결합된 현재라는 감각 경험을 경험한다. 감각 경험이 '이전'과 '이후'로 표현되는 시간 시리즈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험 시리즈는 1차원 연속체로 생각된다. 경험 시리즈는 반복될 수 있으며,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볼 때 반복되는 사건의 성격이 바뀌지 않은 채 일부 사건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정확하게 똑같지 않게 반복될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들로 채울 수 있는 1차원 틀이라는 시간 개념을 가지게 된다. 똑같은 경험들의 시리즈가 똑같은 주관적인 시간 간격에 대해서 답을 제시한다.

이 '주관적인' 시간에서 과학 이전의 사고의 시간 개념으로의 전환은 주체와는 상관없이 실제적인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의 형성과 관계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객관적인) 사건은 주관적인 경험에 대응하도록 만들어진다. 같은 의미에서 경험의 '주관적인' 시간에 대응하는 '객관적인' 사건의 '시간'이 있다고 생각된다. 경험과는 대조적으로, 외부의 사건과 그 사건들의 시간상 순서는 모든 주체들에 대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객관화 과정은 일련의 외부 사건들에 대응하는 경험들의 시간 순서가 모든 개인들에 대해 똑같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직접 경험하는 시각적인 인식의 경우에는 이러한 대응 관계가 정확하다. 객관적인 시간 순서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이상할 정도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은 이 때문이다. 외부 사건들의 객관적 세계라는 개념을 더욱 자세히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사건들과 경험들을 더욱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종속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처음에는 공간의 개념이 특별히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법칙들과 본능적으로 얻은 사고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개선 과정은 궁극적으로 자연과학에 이르게 된다.

시간의 측정은 시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시계는 실제적으로 똑같은 사건 시리즈(기간)를 통해 자동적으로 차례로 지나가는 물건이다. 지나간 기간(시계 시간)들의 수는 시간의 척도 역할을 한다. 사건이 공간상의 시계 바로 근방에서 일어날 경우에 이 정의의 의미는 명백하다. 모든 관찰자들은 자신의 위치에 상관없이 똑같은 시계 시간을 사건과 동시에 (눈을 통해) 보기 때문이다. 상대성 이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동시성의 개념이 공간상 멀리 떨어진 사건들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가정되었다.

이러한 가정은 빛의 전파에 관한 법칙이 발견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가 기준 좌표계의 선택(혹은 운동의 상태)과는 무관한 양이라면, 공간상에서 어떤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점들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동시성이라는 개념에는 어떤 절대적인 의미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각의 관성계에 특별한 시간을 할당해야만 한다. 만약 어떤 좌표계(관성계)도 기준으로 사용될 수 없다면, 공간상의 서로 다른 점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 결과, 공간과 시간은 균일한 4차원 연속체로 결합돼 있는 것이다.

주1) 이것은 "직선은 두 점 사이를 잇는 최단 거리이다."라는 정리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정리는 직선의 정의로서는 훌륭한 역할을 했지만, 연역의 논리적 구조와 관련해서는 아무 역할도 못했다.

주2) 직교성이 보존되면서 일어나는 좌표축 방향의 변화.


http://preview.britannica.co.kr/spotlights/nobel/list/time_spac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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