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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4/01/26 (10:14) from 80.139.162.31' of 80.139.162.31' Article Number :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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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작용과 생명세포의 일체성
-면역작용과 생명세포의 일체성-

한국생명윤리학회 심포지움(2002-06-15) 발제문




1. 철학적 접근의 필요성

줄기세포연구와 그에 따르는 윤리적 논쟁이 많이 있어 왔다. 관련 학회 및 시민단체 그리고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에서 그동안 다루어 온 논의는 (1) 윤리적 당위론과 (2) 사회적 협상론 및 (3) 임상적 실용론에서 주로 다루어져 왔다. 그 외 관련한 배아줄기세포의 특허와 관련한 경제적 가치론 및 과학자 개인의 과학탐구의 자유론이 있다.
그런 논의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철학적인 논의는 적었다. 물론 서구 철학자들에 의해서 철학적 논의가 있기는 했지만, 주로 윤리적 당위론에 대한 철학사적 배경을 말하거나 아니면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철학적 논변으로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원고는 넓게는 본질과 현상, 좁게는 존재대상과 존재작용이라는 철학적 논제가 줄기세포연구 논쟁에 어떻게 적용가능한지를 따지는 글이다. 논의의 진보적 연결을 위하여 배아줄기세포와 관련하여 관련단체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심포지엄 자료집 <인간줄기세포 연구의 가능성과 한계 및 대안>(2001년10월8일) 참조
혹은 관련학회에서 이미 논의된 부분들을 재론하지 않고 곧 철학적 논의로 들어간다.

2. 정체성 논변

정체성philosophical identity은 자기 자신을 자기이게끔 하는 자기만이 갖는 성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자아로 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먼저 검토해야 한다. 자아를 규명하는 철학적 접근태도는 다양하게 논의되어 왔지만 존재론적 범주의 차원에서 볼 때 두 가지로 나누어 논의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실체론적 자아에 대한 정체성 논의이며 다른 하나는 관계론적 자아에 대한 것이다. 실체론적 자아의 정체성 근거는 자아의 실체가 불변하며, 다른 어느 것에 영향 받지 않고 독립적이며, 타자와 서로 나눌 수 없는 최소한의 어떤 고유한 성질을 스스로 내포하는 그런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관계론적 자아는 불변의 실체론적 자아의 정체성 근거를 거부하며, 환경과의 섭동을 통해서 자아의 변화가능성을 함의하는 생태론적 모습을 지닌다. 그렇다고 해서 자아의 정체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체성의 의미가 실체적이지 않다는 뜻을 담는다.

자아의 실체론적 정체성은 사태의 주체로서 명사화된 의미에서 정의된다. 그러나 관계론적 정체성은 사태의 작용 즉 동사형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실체론적 자아는 자아의 존재를 먼저 설정한 후에 그 존재가 어떻게 행위 하는지에 대한 작용을 후차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반면에 관계론적 자아는 작용 자체가 존재에 대신하며, 자아의 존재와 자아의 작용이 처음부터 구분되지 않는다. 최종덕, “존재의 고고학 - 존재의 생물학적 원형을 찾아서”,시대와 철학 1988 ; 17호 : 237-241

철학사에서 볼 때 실체론적 정체성은 본질과 현상을 구분하여 본질의 실체성을 강조하며 그리고 그 본질이 현상에 앞서 있다. 관계론적 정체성은 본질과 현상이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며 현상과 본질을 일체화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본질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현상이 곧 대상을 규정해버리는 마흐(Ernst Mach. 1838-1916)의 현상주의와는 다르다. 현상주의는 근대 경험론 중에서도 강한 감각주의와 실체적 인과율을 부정하는 정합성cohrerence theory에 근거하는 인식론의 차원이지만, 관계론적 정체성의 입장은 여전히 존재 자체의 조건을 따지는 존재론의 차원에서 논의된다.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실체론적 정체성의 논의는 이미 생성된 존재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지닌다. 서구 존재론의 철학사에서 실체론은 헬레니즘의 이데아론과 히브리즘의 신의 존재 규정이 통합하면서 생긴 것이므로 이데아와 같이 시간초월적 존재 혹은 철저히 창조된 이후의 존재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를 품고 있는 실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 바로 발생하고 있는 과정의 생명 존재에 대하여는 적절한 언급을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창조론이 아닌 진화론에 근거한 현대 발생학의 컨텍스트를 실체론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배아줄기세포를 연구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는 먼저 생명체의 정체성을 어디에서부터 볼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논쟁이 매우 치열하다. 그 내용은 수정 순간부터 혹은 착상되는 순간부터인가 아니면 원시선 발생이 끝나는 14일 이후부터 혹은 배아세포의 8세포기 이후부터인가에 대한 논쟁은 생명체의 실체를 어디서부터 잡아야 하는가의 논쟁이다. 그러나 사실 그 논쟁은 영혼이 무엇인가 하는 형이상학적 실체론이나 이 사과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물질적 실체론의 논쟁보다 더 어려운 점이 도사려 있다. 왜냐하면 무생명의 물체에 대한 정체성 논의가 아니라 변화하는 생명체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논쟁의 속을 잘 들여다 볼 때 철학적 논리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의한 계약의 논리임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최근 복지부와 과기부 사이, 혹은 시민단체와 기업연구자 그룹사이의 의견 충돌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철학적 사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여 인간의 정체성을 구획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보면 아이와 어른, 어떤 이는 여성과 남성, 나아가 유색인종과 백인종을 구획하여 인간의 정체성을 우위 비교했던 불행한 우생학의 역사가 있어왔고 또 지금도 있지만, 차별을 의도한 그러한 구별은 사회적인 구별이었지, 철학적인 구별이 될 수는 없었다. 아이는 어른이 가지고 있는 고급의 이성을 결핍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여성이 남성이 가지고 있는 근육을 결핍했다고 해서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유색인이 백인이 지니는 제국주의의 권력을 선점하지 못했다고 해서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렇듯이 성체와 배아를 차별하는 것은 최소한 인류학적 오류에 해당한다. 인류가 대재앙을 맞아서 절대 인구수가 매우 희소한 그런 가상상황을 상정해보자. 그런 상황에서 배아를 파괴시키는 일은 분명한 범죄로 규정될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류 개체수가 너무 많아서 배아논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인류학적 오류라고 말한다. 완전과 결핍은 전체를 정의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완전과 결핍은 양적인 차이일 뿐, 질적인 차별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완전과 결핍은 공통분모의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공통분모의 요소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인간성의 공통분모가 과연 이성理性뿐인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보아야 한다.

호모 사피언스가 자랑하는 이성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분명히 구별론자의 입장이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이성만을 유일한 잣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은 바로 인간 이기주의의 극단이기도 하다. 이럴 경우 유클리드의 공리와 뉴턴 역학과 상대성이론을 발굴한 서구이성의 생산자인 바로 그 어른만이 인간 정체성의 핵심적 본질이 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결과는 구체적으로 우생학적 차별주의와 맞닿아 있다. 나치와 일본군 생체실험이라는 바로 얼마 되지 않은 역사에서, 그리고 KKK단과 같은 많은 사례에서 우리는 그 현장을 분명히 목격하고 있다. 어쨌든 실체론적 정체성의 기준으로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선을 가르는 일은 잘 따지고 보면 철학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도에 따르는 일임을 다시 강조할 뿐이다.

그렇다면 관계론적 정체성의 기준은 어떠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그것은 발생한 성체가 아니라 생명체로서 자아 형성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앞서 말했다. 그 과정은 수정 이후부터가 아니라 수정 직전 수정을 향한 운동에서부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생명은 현생 개체에 묶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생명을 이어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정자의 발생과 운동과정을 살펴본다. 생식기능이 형성되면서 정원세포spermatogonia는 체세포분열을 거치면서 정모세포spermatocyte로 전환한다. 정모세포는 두 차례의 감수분열을 한 후에 정세포spermatid가 된다. 정세포는 세르톨리sertoli 세포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비로소 정자로 되는데, 이를 정자완성과정spermiogenesis 이라 한다. 정자완성과정에는 첨체가 형성되고, 그 많은 디엔에이 끈들이 꼬깃꼬깃 축약되어 정자머리를 형성하며, 먼 여행을 하기 위한 편모와 꼬리가 형성된다. 이때 개체로서의 정자가 형성되기 직전의 상태인 세르톨리 연결상태에서 정자들은 개체의 정자가 아니라 하나의 정자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불임의 원인을 생각해 보자. 불임은 정소 조직의 파괴가 그 원인이다. 생식기 내의 염증이나 생식관의 폐쇄, 방사선 노출에 의해서 조직파괴가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선천성 기형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정자수의 감소에 의해서 불임이 되기도 한다. 요즘 소위 환경홀몬이라고 불리우는 다양한 화학물질에 의해 급격한 정자수의 감소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임상적으로 자주 보고되고 있다. 보통 한 번 사정에 3 ml 정도의 정자가 여행을 시작하는데, 정자수가 4-5천만개/ml 이하로 될 경우 불임이 확실하다. 그런데 자연상태에서는 결국 한 개체의 정자만이 한 개체의 난자를 만나서 수정이 되는 것인데, 그 많은 정자 중에서 어느 정도가 감소되었다고 해서 불임이 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를 잘 따져 보아야 한다.

실체론적 자아의 정체성은 앞에서 말한 대로 독립성과 고유성이라는 조건이 있다. 독립성이라는 조건은 대상의 개체수에 대한 셈countability이 가능하다는 말과 동등하다. ‘하나, 둘, 셋’ 하면서 셀 수 있다는 것은 그 개체들이 떨어져 있고 또한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독립성이 없이 그 개체들이 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면 실제로 그것들을 셀 수 없다. 그냥 ‘하나’ 하고 나면 셈이 끝나버린다는 말이다. 정자는 그렇게 독립적 개체로 많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르톨리 세포로 연결된 “하나”의 세포라는 前 기억을 담고 있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난소관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3억 개의 정자는 3억 개의 독립한 실체론적 개체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관계론적 정자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1억5천 개의 정자만을 생산한다면 그것은 1억5천 개의 독립한 정자가 아니라 불완전한 “하나”의 정자를 만들어 낸 것과 같다. 그래서 1억5천 개의 정자의 숫자가 실체론적인 숫자로 볼 때 불임으로 되는 것을 이해 할 수 없지만. 관계론적인 숫자로 볼 때는 불완전한 기능을 갖는 “하나”의 자아이므로 당연히 불임이 될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이유를 비로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3. 복제와 증식의 차이

실체론적 정체성과 관계론적 정체성의 또 다른 중요한 차이는 개체가 어떻게 생기냐에 따른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개체가 생기는 과정에는 복제와 복사 그리고 증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U.마투라나/F.바렐라(최호영 옮김) : 인식의 나무.자작나무,1995 : 68-73
(1) 첫째, 복제Replikation, Produktion는 같은 종류의 개체들을 같은 메커니즘에 의해 반복적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복제현상의 중요한 특징은 생산 메커니즘과 복제된 복제물이 서로 다른 체계라는 점이다.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할 때 자동차 생산라인과 그로부터 생산된 자동차는 당연히 다른 체계라는 말이다. 이때 생산 메커니즘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로부터 생산된 복제품 역시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모두 똑 같다. (2) 둘째, 복사Kopie 과정이다. 복사는 복사기에서 투사를 통해서 원본과 같은 개체를 만들어 내듯이, 원래의 모델 개체를 모방하여 새로운 개체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복제와 같이 생산 메커니즘과 복사품이 서로 다른 체계이지만, 복제물이 원본의 모습을 계속 유지하는 복제현상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복사과정에서 복사된 것을 다시 복사할 경우, 2차 복사물은 원래의 것보다 더 흐려지는 경향이 있다. 원래의 최초 모델을 갖고 계속 복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복사의 반복되는 과정에서 복사물은 최초의 원본과 많이 달라 질 수가 있다. (3) 셋째, 증식Reproduktion 과정이다. 증식은 꿀벌집이나 포도송이처럼 그것을 나누어도 원래의 것과 같은 것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내 앞에 있는 컴퓨터 자판기를 나누면 그것은 원래의 자판기가 망가지고 말지만 포도송이를 나누면 그대로 포도송이가 된다. 복제나 복사와 다른 증식현상의 중요한 특징은 생산 메커니즘과 증식물이 별개의 체계가 아니라 서로 분리되지 않는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특징은 개체 조직의 구조가 불균등하지 않고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증식현상이 바로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실체론적 정체성은 첫째의 복제와 둘째의 복사현상을 설명하는데는 유용하지만, 셋째의 증식현상을 성명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증식현상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관계론적 정체성의 의미를 수용해야 한다. 실체론적 정체성의 의미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생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며, 생산자와 피생산자는 서로 다른 것이어야만 한다. 시계와 시계공이 다르듯이, 기독교적인 창조주 신과 피조물이 서로 그 존재대상과 위격位格에서 다르듯이 실체론적 정체성 논증은 반드시 생산자와 피생산자가 그 체계와 조직에서 구분되어 있어야만 한다. 반면에 관계론적 정체성의 논증은 그 체계와 조직이 하나이며, 존재대상과 그 존재의 작용이 하나가 된다.

이런 차이를 인지하지 않은 채 줄기세포복제 논의를 할 경우, 몇몇 문제가 생긴다. 먼저 줄기세포는 증식현상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인공적인 연구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복제 현상으로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어차피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위적인 연구이기 때문에 증식을 유도할 수 없으며 인공적인 복제에 그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복제과정일지라도 생명 세포의 특징을 놓치면 안 된다. 그 특징이란 앞서 말한 “존재”와 “작용”의 일체 현상을 말한다. 생명 세포 특히 생식세포는 자연적 증식이나 체세포 혹은 인공적 수정이나 타자의 미토콘드리아에 기생한 동일 기능 세포의 핵이식 과정에서 “세포”와 “세포작용”이 일체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때 작용은 기능으로 나타난다. 생명 세포는 그 세포의 원래 기능인 적소 기능과 항기능을 같이 갖는다. 예를 들어 심장판막 세포라면 혈액의 역류를 방지하거나 혹은 심방의 순서를 맞추어 피가 도는 기능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생소한 물질에 대한 항기능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면역기능으로 나타난다. 정상인의 경우 면역기능이 표면화되지 않지만 인공심장을 대체하는 경우 면역기능이 비로소 발현되어 우리는 그것을 거부반응 혹은 부작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이성이 아니라 생명 세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부작용이 아니라 정상의 작용이다. 실체론적 정체성의 관점에 제한하여 생명세포를 본다면 세포 존재와 면역작용은 서로 관계없는 다른 것이어서 항기능 작용을 세포 현상과 구분하여 연구하게 되고, 결국 생명세포는 유물론적 세포 덩어리로 전락한다. 그러나 관계론적 정체성의 관점을 수용한다면 생명 세포의 항기능 작용을 바로 세포 존재의 현상이며 동시에 본질로 볼 수 있다.

4. 면역작용이 곧 세포의 본질

이 점은 줄기세포 연구태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침guideline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일선 연구자가 조직 이식거부반응에 대한 상당한 고민과 그에 따른 연구성과를 갖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아직 항기능 작용에 대한 연구는 매우 초보적인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연구자는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성체줄기세포는 이식거부반응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그런 과감한 발언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거부반응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 체세포 핵이식 연구가 가장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런 입장은 해당 체세포가 갖는 적소 기능만을 고려 할 때만 그러하다. 예를 들어 HHMI(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의 우(Hong Wu) 박사와 UCLA 의과대학 연구진에 의해 작년 11월 Science Express 지에 발표된 PTEN 단백질 작용의 가능성을 살펴보면 좋다. 발표 내용은 PTEN 유전자가 신경줄기세포의 성장조절자라는 것인데, 문제는 PTEN 유전자가 만드는 PTEN 단백질은 그것이 어떻게 작용할지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종양억제유전자를 결핍시키는 PTEN 유전자를 조작하여 암을 치료한다는 말은 맞지만 그것이 만든 단백질이 어떤 항기능 작용을 할 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다. 유전자까지는 그것도 발현 유전자까지는 실체론적 정체성의 관점에서 다룰 수 있다손 치더라도 단백질은 그것의 좌우방향 혹은 거울 반사형, 대칭반사형에 따라 다른 기능을 보일 수 있으므로 동일한 실체론적 존재라 할지라도 방향과 반사형에 따라 전혀 다른 작용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관계론적 정체성의 의미를 수용해야 한다는 뜻과 같다. 게놈프로젝트의 유전자 열풍에 밀려서 일반인들은 단백질의 항기능 작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하여도, 이를 알고 있는 전문 연구자들은 대상에 국한한 실체론적 정체성 입장의 연구태도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세포의 면역 반응은 자기self와 외부로부터 유입되거나 외부물질로 잘못 오인된 비자기non-self를 구분하는 생명세포의 본질적 작용이다. 최종덕. 면역학적 자아. 과학철학2000 ; 3권1호 : 139-140
비자기를 구분하는 메커니즘은 MHC (major histocompatability antigen) 발현에 의한 면역 시스템이다. 이러한 면역 작용은 가벼운 알레르기에서부터 이식거부반응으로 나타나고 이 반응을 대처하는 일이 임상의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현재 골수은행처럼 다양한 배아줄기세포 은행을 만들거나, 아니면 이식 받을 환자의 MHC 항원을 줄기세포에 심거나, 체세포를 이용한 핵치환 방법을 이용하여 이식자와 동일한 배아를 복제하여 이식자 자신의 줄기세포로 만드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핵치환 방법으로 조직적합성을 맞출 수 있고 따라서 면역거부반응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체세포 핵이식에 의한 복제술은 (1) 유전체의 메칠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2) 착상 후 기형 발생율과 유산율이 높으며, (3) 유전체의 비정상 발현이 가능하여 절대로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앞서 말한 대로 복제와 증식의 중요한 차이는 복제는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복제물이 동일하지만 증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일으킨다. 그 변화란 진화적 시간의 의미에서 변이mutation와 선택natural selection을 거치면서 후손의 발현 특징을 예측할 수 없는 자연적 표류 혹은 역사적 표류historisches Driften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하더라도 후손 생명개체로 유전되면서 어떤 유전체가 발현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생명체 진화의 역사적 표류는 시간적인 표류도 있지만 공간적 표류도 있다. 그 공간적 표류의 첫째 사례는 바로 세포의 분화조절이 연구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안 되는 경우이다. 둘째 사례는 성공한 분화인 경우에도 추후 발생하는 역분화로 인한 기형화와 이종양화의 경우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핵에다만 초점을 두지 말고 핵질 단백질에도 초점을 맞춘다면 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면역작용의 문제를 건드릴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접근을 하려면 세포 존재만을 본질적 대상으로 여기고 항기능 면역작용을 존재의 부수적인 현상으로 여기는 실체론적 사유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실체론적 사유에 매어 있을 경우, 면역의 항기능 작용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적절한 임상치료를 방해하는 성가신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세포의 입장이라면 당연한 생명의 본질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Alfred I. Tauber, The immune self : theory or metaphor?, Cambridge Univ. Press, 1997 : Chap.7
인간의 입장에서만 볼 때 잡초가 식용채소 재배에 방해되는 성가신 존재이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런 생태학적 조화인 것과 같다고 보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결국 생명은 생명의 입장에서 보아야 하며 그런 입장이 바로 관계론적 정체성 논변의 핵심이다.

이런 입장은 철학적 사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의학적 임상과 현장의 과학연구를 위해서라도 관계론적 정체성의 개념과 상황을 수용할 때 비로소 실질적인 과학적 성과가 도출 될 수 있다. 다시 원래의 논의로 돌아와서 줄기세포를 연구할 때에도 역시 면역작용이 바로 세포의 본질이라는 관계론적 사유를 반드시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 주목되어야 한다. 관계론적 정체성의 해당 존재는 그 작용이 부수적이거나 존재와 다른 것이 아니며 일체이다. 생명 개체의 증식과정이 생식세포의 본질과 현상이 하나인 것과 같다.

5. 줄기세포의 연결주의적 작용

생명세포 안에서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 사이의 관계가 바로 면역작용으로 나타난다고 앞서 말했다. 면역은 자기를 보호하려는 일종의 방어 메커니즘이다. 선천적으로 생명체는 자연면역innate immunity의 능력이 있지만, 특정 미생물 즉 외부 비자기의 침입에 대하여 특정한 면역반응을 보이는 적응면역adaptive immunity에 주목한다. 특정 비자기에 대한 반응작용을 특이면역specific이라고 하며, 이런 특이반응 작용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을 전문화라고 한다. 외부 항체에 대한 특이성 반응의 형태는 굉장히 많다. 인간의 경우 109이라는 항원에 대한 항원결정기를 구별하여 인식할 수 있는 면역 다양성을 갖는다. 면역학의 핵심은 바로 그렇게 구별하고 인식하는 메커니즘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에 있다. 수많은 비자기를 인식하고 다양한 반응작용을 하는데, 이때 반응작용에서 성공적인 반응을 하려면 반응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반응의 속도를 높이는데는 과거에 노출된 항원에 대하여 처음부터 면역반응 메커니즘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와 같은 비자기에 노출되었을 때 신속하고 정확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면역반응 작용에서 과거의 비자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신속하게 반응하는 아주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이를 면역 기억이라고 한다. 이처럼 면역반응작용의 주요 특징은 (1) 특이성, (2) 다양성, (3) 전문화, (4) 기억력을 들 수 있다. A.K.Abbas/A.H.Lichtman/J.S.Pober : Cellular and Molecular Immunology(3th ed.), Saunders Co., 1997 : 35-36
이 중에서 면역 기억에 대한 것을 줄기세포연구 논의와 관련하여 논의할 수 있다.

기억은 면역세포의 한 현상이며 작용이다. 동시에 기억은 림프구에 의해 생산된 기억세포가 갖는 본질이기도 하다. 한번 쏟아낸 수억 개의 독립적으로 보이는 정자들이 하나의 공통된 전 기억을 갖고 있다고 앞에서 말했듯이, 면역작용의 기억세포는 항원의 자극이 없어도 20년 이상의 휴지기(잠재적 면역기간)를 가질 수 있는 기억림프구memory lymphocyte이다. 기억을 제공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기억세포의 특정 분자량을 갖는 표면단백질은 분화된 다른 분자량의 단백질과 상호교환을 하면서 기억의 메커니즘이 발현된다고 추정한다. 현재로는 면역학 연구가 현대 분자화학에 종속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그 화학적 메커니즘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기억세포는 그 실체론적 세포 자체만으로 기억능력을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반응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면역작용의 기억력은 일종의 진화의 소산물인 역사적 표류에 해당한다. 그러나 기억의 역사적 표류는 특정한 환경에 작용하도록 잠재적으로 장치되어 있다. 그래서 면역세포 자체의 면역적 기억력은 그 개체 안에 국한하고, 그것도 20년 이상을 지속할 수 없으나, 작용 가능성은 즉 작용의 메커니즘은 그 세포 자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세포가 조직되어 있는 특정기관의 줄기세포 전체에 내장되어 있을 수 있다. 이 내용은 생물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라 추정된 것이다. 그러나 면역학의 많은 내용들은 아직까지도 메타퍼로서 구성되어 있음을 밝힌다. 예를 들어 생물과학자들도 흔히 사용하고 있는 자기/비자기, 면역관용, 면역기억 등은 모두 메타퍼 용어이다. 이 점이 다른 물리과학과 다른 면역학의 특성이며, 검증적 차원의 한계이기도 하다. 반면 이러한 한계는 오히려 연구와 발전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생각해도 된다.


세포의 기억은 시간적 기억뿐만이 아니라 공간적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물론 공간적 기억이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철학적 메타퍼에 해당할 뿐이다. 공간적 기억이란 한 개체의 모든 생식/체세포들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신호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생리학적 신호 개념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과학적으로 입증이 안 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최소한 뇌의 구조에서는 제거주의 연결주의connetionism와 반대되는 계산주의computationism의 일종으로서 뇌의 국소적 부위가 특정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론들. 제거주의에 의하면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특정 부위는 영원히 그 기능 외의 다른 기능들을 발현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특정 부위가 특정 기능만을 담당한다는 제거주의로서 다 설명할 수 없는 임상결과가 게속 보고되고 있다.
방식으로는 뇌의 중층적 기능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특히 성체 줄기세포에서 연결주의의 가능성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생물학적 연결주의란 세포 단위, 조직 단위, 기관 단위의 부분들이 서로 연결되어 상호 연관작용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실체론적 논변으로서는 연결주의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게 된다. 최종덕, 부분의 합은 전체인가. 소나무출판사,1995 : 92-101
단적인 사례를 보자면,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도 성체줄기세포에서 다른 기관의 세포를 배양시킬 수 있다는 뜻은 세포간 연결성이 이미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골수뿐만이 아니라 유방, 간장, 췌장 등에서 성체줄기세포 세포군이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되고 있다. 이미 분화정도가 가장 심한 뇌에서도 성체줄기 세포군이 존재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뼈의 줄기세포가 간장 세포로 분화한다는 발표와 함께(2000, Nature Medicine) 이와 유사한 결과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다. 지금까지 성체줄기세포를 보는 관점은 배아줄기세포가 지니는 엄청난 윤리적 논쟁을 회피하기 위한 대안으로서만 다뤄져 왔다. 그러나 나의 입장은 대안으로서의 성체줄기세포연구가 아니라, 성체줄기세포가 지니는 세포간 연결주의의 관점이 중요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배아 연구보다 더 관계론적 정체성의 장르에서 다루어야만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6. 예정된 죽음 - 생명의 시작

생명 개체의 정체성을 논의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자궁에 착상하는 시점을 잉태라고 하여, 그 이후를 생명의 정체성 확보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대법원
14일 이후라고 보는 견해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이미 많이 논의되어 왔지만 원시선의 발현이 정확히 13일 이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물리적 시간에 너무 집착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혹은 일란성 쌍둥이로 분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진 이후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생명의 시작점을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생명이 끝나는 시점을 반추하여 그 역을 생명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예를 들어 세포의 자연사를 보자. 항원에 의해 활성화된 림프구 중에서 일부만이 기억세포로 분화되며 나머지 세포는 아포토시스apotosis 라는 과정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 이것이 바로 외부적 염증 등에 의한 세포 괴사가 아닌 세포의 자연사에 해당한다. 호르몬 고갈이나 특이 성장인자가 자연적으로 막혀서 죽는 것 등, 이들 모두는 예정된 세포의 죽음이다.programmed cell death 이런 세포의 자연사 현상은 특정 단백질 효소의 분해과정에서 이루어지고, 또한 이런 분해과정에서 DNA 분절현상도 생겨서 자연사를 촉발한다. 문제는 질병 치료를 위해 췌장이나 간장 등의 줄기세포를 복제하여 해당 신체 조직 혹은 기관에 매우 성공적으로 이식시켰다고 가정할 때, 이 과정에서 면역체계까지도 복제이식되어 자연사 혹은 결핍 상태를 복원했다고 치자. 그럴 경우 시술자가 원했던 특정 국소 부위의 자연사 혹은 활성화 유도 세포사를 막아 줄 수는 있지만, 그것과 따라서 수반되는 그동안 억제되어 왔던 전혀 다른 모종의 발암 유전자가 재생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세포의 자연사를 방해하는 인위적인 시술은 생각지 못한 다른 종양 세포의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으며, 특이 거부반응 등의 면역체계의 이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이는 생명 세포의 연결주의 사유 그리고 관계론적 사유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7. 결론

결국 세포 자연사의 예정된 형성과정에서부터 곧 생명의 시작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는 곧 수정되는 순간부터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줄기세포 연구를 하지 말자는 것은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른 귀결이다. 이미 앞에서 실체론적 관점에서 생명의 시작점을 논의하는 것은 사실 사회적 타협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줄기세포연구는 그것이 배아이건 성체이건 관계없이 면역체계에 대한 연구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그렇지 않고 줄기세포 연구의 행로를 “생명의 시작이 언제인가” 혹은 “배아냐 성체냐” 라는 논쟁으로만 제한한다면 불을 보듯 너무나 뻔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 결과란 줄기세포 논쟁의 중요한 학문적 안내자인 김환석 교수가 자주 말했듯이 치료목적의 복제허용이 생식목적의 복제로 한없이 그리고 브레이크 없이 미끄러지는 경사길slippery slope이 된다는 점이다. 고난도의 학문적 이론과 복잡한 사회적 상황고려 그리고 아주 세심한 관련 법안들이 동원된다고 해도 연구의 진행방향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연구속도를 얼마나 늦추냐의 문제로 전락될 것이다. 현대 과학자의 연구실험실은 이미 떠나간 버스와 같다. 지나간 인간의 역사가 그런 불행했던 과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을 다시 상기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철학자가 아무리 떠들어도 일선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를 지속할 것이다. 아무리 법규정이 까다로워도 잠시 늦춰 갈 뿐, 현장 과학연구는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비관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인류의 진보인지, 퇴행인지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엄청난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줄기세포 연구가 상업화되고 있는 조짐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의 어떤 연구자가 이루어낸 줄기세포주의 발견은 참으로 대단한 과학적 성과이기는 하지만, 정식 등록 이후 배아줄기주 하나에 수십만 달러에 해당하는 연구비 지원을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배아연구에 대한 규제법안이 민주적인 합의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은 강압적으로 이루어 진 것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법적 규제장치는 자칫 수입가격만 올리게 할 우려가 크다. 지난 해 8월 미국의 NIH는 금전적 관계가 없는 배아에 대해서만 정식등록을 받아준다고 했지만, 이미 금전적 관계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험용으로만 배아줄기주 하나 당 5천 달러에 팔 수 있다는 미국의 어느 성공한 실험실의 소문은 곧 미래 상업적 교환가치의 근거가 될 것이 뻔하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나 소위 진보 사회당 정당이 보수 정당보다 줄기세포 복제논쟁에 대해 더 관용적이다. 규제를 줄이고 허용의 폭이 더 크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생명윤리자문위원회는 당연히 공익성과 민주성 그리고 인류적 당위성 등을 기준으로 법안 제정에 자문할 것이다. 민주적인 절차를 따르다 보면 필연적으로 대립적 견해가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종교계와 일선 과학계의 대립은 사실 대립이 아니라, 서로 간의 직업적 소명의 차이에서 오는 당연한 견해차 혹은 충돌일 것이다. 일선 과학자 그룹은 연구실험의 학문적 자유와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주장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정체성의 의미를 상실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역사는 반복하는 것 같다. 행복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불행의 역사도 반복한다. 그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에서 비판과 옹호 사이의 편차가 너무 크다. 그런 편차는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우리는 과거의 역사는 둘째로 놓고, 현재의 역사에서도 많은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다.


색인어 : 배아/성체줄기세포, 철학적 정체성, 생명의 기준, 면역작용, 실체론과 관계론


Gehard Vollmer, Was koennen wir wissen?, Hirzel Verlag, 1986
Michael T. Ghiselin, Metaphysics and the origin of species, SUNY Press, 1997
최종덕/이상하, “기술결과측정의 시민참여와 화이트헤드의 공재적 의사판단 구조”, 화이트헤드연구 2집
최종덕,"면역학적 자아", 과학철학 3권1호
U.마투라나/F.바렐라(최호영 옮김), 인식의 나무, 1995,자작나무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심포지엄 자료집 <인간줄기세포 연구의 가능성과 한계 및 대안>,2001년10월8일
A.K.Abbas/A.H.Lichtman/J.S.Pober, Cellular and Molecular Immunology(3th ed.), 1997,Saunders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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