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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4/01/26 (10:31) from 80.139.162.31' of 80.139.162.31' Article Number :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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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이해


월간 '말'지 1996년 12월호 인터뷰 - 서울대 물리학과 장회익 교수


글/ 김경환 기자

신과학 운동의 기수 프리초프 카프라는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가치관, 다시 말해 새로운 세계관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기존의 감수성 그리고 기존의 가치관 모두를 완전히 갱신하고 전환시켜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은 지구전체에 해당하는 거대한 규모라는 점에서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도대체 우리에게 발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인가. 우리는 그 동안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왔다. 경제개발이 본격화한 지 겨우 30여년 만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국내 총생산 규모 세계 11위에 오르는 경이적인 성장을 기록하였다.

국민들은 대부분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가슴 뿌듯하게 생각한다. 그러면 모든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일까? 앞으로도 계속 두 자리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있는 것일까? 엄청난 양의 쓰레기와 극심한 환경오염, 부의 지나친 재벌집중, 최소한의 자립기반의 무시, 기술연구개발투자의 부진, 고질적인 부정부패, 사회복지정책의 부재, 인륜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범죄, 갈 수록 커지는 빈부격차. 이런 문제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혹시 파멸의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는 급행열차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닐가? 이 거대한, 그리고 두려운 질문앞에 누구도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그 위기를 어렴풋이 인식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장회익 교수(59 - 96년도당시)는 그 복잡한 문제의 실마리를 '생명'에서 풀어 가고 있다. 물리학자인 그가 생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것이 사물을 이해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저는 물리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왜 물리학만 해야 하는가'하는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가 학문을 하는 목적은 커다란 주제, 가령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 것이냐. 또 우주나 인간이란 존재는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을 종합적으로 밝혀 내기 위한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 하나만 딱 떼어 내서 '너는 이걸 해라. 너는 저걸 해라' 하는 식인 것 같아서 불만스러웠던 거죠. 그러나 뭔가 하나로 출발은 해야겠고, 또 한 사람이 모든 걸 다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자연과학, 특히 자연의 기본법칙을 논하는 물리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의 관심은 늘 생명에 있었어요. 그래서 박사학위를 딸 무렵부터 생명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생명이라는 현상은 물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뭐냐라는 의문은 물리학 자체의 주제와도 연결이 되는 거지요. 우리 자신부터가 생명이잖아요?"

그는 캘리포니아대학 리버사이드에서 반도체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마치면서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꿀까 하고 고민할 정도로 생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가 수십 년간 연구하고 고심한 결과는 이렇다.

"도대체 생명이라는 게 뭐냐하는 문제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고전적 주제인데 아직까지도 만족할만한 답이 없어요. 우리가 상식선에서 이해하는 생명은 주로 개체생명을 뜻하는데 예를 들면 토끼, 나무, 참새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개체생명이 생명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래서 개개의 단위를 놓고 생명이 뭐냐 하고 계속 물어 들어가면 답이 나올 수가 없어요. 흔히 생명의 기원이라는 말들을 하지요. 어떤 개체생명이 언제부터 생겼느냐 하는 것인데, 생명은 임의로 만들 수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 위를 쭉 추적해서 올라가면 어떤 끝이 나오지 않겠느냐 하는 문제의식이지요. 끝까지 추적을 해 보면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이 대략 어느 시기에 어떤 형태로 만들어졌으리라는 것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유추해 보면 지구상에 약 35억년 전에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생명체가 출현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있지요. 개체라는 것은 그렇게 오랜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지, 어디를 딱 잘라 내서 따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의 전체를 한 묶음으로 본 모습이 현재 지구상에 있는 전체 생명이라는 말이지요."

현대과학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대략 1백 50억 년 전에 탄생하여 계속 팽창, 변화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태양계는 대략 50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우주적 사건들 가운데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대략 35억 년 전에 태양과 지구를 모태로 해서 출현한 생명현상이다. 지구상의 이 생명은 여러 가지 경이로운 성장과 변화를 거듭한 끝에 급기야 인간을 출현시켰고, 이 인간이 나타내는 한 특징적 생존양상이 오늘날의 현대문명이다. 따라서 그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바로 지구 위에 나타난 이 우주사적 대사건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여기서 "온생명"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가령 현재의 나를 예로 들면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적인 연결 전체를 묶어서 '나'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우리 생명 전체도 그렇게 봐야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한 묶음의 전체 생명을 부를 만한 마땅한 명칭이 없었어요. 물론 생태계 또는 생물권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경우에 신체라고 하는 의미 정도에 불과한 것이지 그 생명 전체를 정확히 표현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 명칭을 제가 처음 붙인 셈이 됐지요. 외국에서 발표할 논문을 정리하면서 글로벌 라이프(global life)라는 개념을 쓰게 되었는데, 이걸 우리말로 옮긴다는 게 참 어려웠어요. 그래서 고심하다가 온생명이라고 붙였는데 자꾸 쓰다 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요. 이 온생명이라는 개념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봐요. 말하자면 그것이 큰 생명의 기본적인 단위라는 겁니다. 온생명은 모든 생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 어떤 개체생명도 있을 수가 없어요. 온생명이 생존하고 성장하고 또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돼야 하느냐, 그리고 그것이 건강한 상태냐, 또는 병적인 상태냐, 이것을 생각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지요.

온생명과 개체생명, 그리고 보생명
장 교수는 88년 유고슬라비아 학술대회에서 처음으로 온생명이라는 개념을 발표하였다. 그래서 그는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더욱 이름이 알려진 학자다. 그의 문제의식은 계속 이어진다. 우주적 대사건이라는 사례 자체가 곧 생명인가. 그는 생명에 대한 이해가 특정사건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적 서술만으로는 그 특성이 다 밝혀질 수없다고 본다. 생명이라 불리는 특수한 존재양상은 그렇지 않은 존재양상과 어떻게 다른가. 그는 [현대사회와 과학, 그리고 환경]이라는 논문에서 생명현상을 '우주내에 형성되는 지속적 자유에너지의 흐름을 바탕으로, 기존질서가 새로운 질서의 모태가 되어,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해 나가는 그 어떤 정보적 질서의 총체'라고 규정했다.

"이렇게 등장한 개체생명들은 그 자체로서 유한한 생존기간 동안 상당한 독자성을 부여받아 활동하면서 집합적으로는 전체 생명을 형성하고 지속, 발전시켜 나가는 중요한 구성요소지요.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개체들이 다시 자신들 간의 일정한 유기적 관계를 통해 고차적인 상위개체를 형성함으로써 보다 높은 질서를 구현해 나간다는 점입니다. 세포들이 모여 상위개체인 유기체가 형성되고 다시 유기체가 모여 더욱 상위의 개체인 '사회'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생명현상이 자족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단위로 우리는 '기본적인 자유에너지의 근원과 이를 활용할 물리적 여건을 확보한 가운데 이의 흐름을 활용하여 최소한의 복제가 이루어지는 하나의 유기적 체계(보충설명 - 기본적인 자유에너지의 근원이라함은 태양을 말하고 이를 활용할 물리적 여건은 바로 지구가 되겠지요. 그 흐름을 이용하는 유기적 체계가 지구의 생명이 되는 것이구요. 장회익 교수님의 '온생명 이론'에 따르면 한 개체생명인 인간을 우주의 어느 공간에 떨구어 놓았을 땐, 생존이 불가능하지만 자유에너지 공급의 근원인 태양과 지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우주 어느 공간으로 옮겨 놓아도 스스로 존재할 수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 태양-지구 시스템은 하나의 '온생명'이 될 수있는 것입니다.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와는 이런 의미에서 약간의 범주 차이가 있지요.. - 옮긴이)'를 상정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생명의 단위, 즉, 온생명이지요."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온생명이 현대문명에 이르러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하였다. 그것은 하나의 개체생명인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주위의 개체생명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개체생명의 입장에서 '나'를 제외한 다른 개체생명은 보생명이 된다.

"온생명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필요한데 온생명의 의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온생명은 현재 엄청난 중병에 걸려 있어요. 온생명을 검진해 보면 놀랍게도 그 어느 항목 하나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 수있습니다. 우선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있으며, 지구상의 토양, 물, 대기 등의 성분과 농도들이 급격히 변함으로써 생물 생존에 필요한 물리적 여건들이 크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온생명은 개체적인 단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상당한 독자성을 가지고 생존합니다. 온생명은 개체생명을 무시하고 생존할 수 없어요. 그러한 관계에서 보생명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되지요. 하나의 개체가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보생명이라고 합니다. 우리 몸의 세포를 기준으로 할 때 나머지는 그 세포의 보생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관계가 아주 묘해요. 개체생명은 개체를 보존하려는 본능적인 성향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나머지 전체 보생명과의 관계를 잘 이루려는 협동적인 성향을 가지게 돼요. 그 둘이 서로 상반되고 모순되는 것 같지만 조화를 이루면서 생존하게 되는 거지요. 조화가 깨지면 그것은 사멸해 버립니다."

인간이라는 세포는 보생명과의 조화를 깨뜨리면서 자신의 번영만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세포와의 관계를 파괴하면서 하나의 세포만 생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지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인간이 등장하면서 온생명은 크게 변화하게 됩니다. 인간도 사실은 온생명 안에서 당연히 자기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건데, 지난 시절에는 크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어요. 자기생존을 위해 노력을 하다가 어느 순간 과학기술을 손에 쥐게 되면서 커다란 능력을 갖게 되었지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이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특정 세포가 나머지 세포들을 무시하면 그 생체가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가 없지요. 그런 대표적인 증상을 우리는 암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암세포는 자기 몸안의 신체 세포지만, 이것들이 주변과의 조화에 대한 정보를 잃고서 자체의 번영을 꾀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 바로 우리 인간 자신이 과학기술을 손에 쥐면서 암세포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어요."

비극과 희망의 동시적 존재, 인간
과학기술이 크게 발전하기 전까지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파괴는 피상적인 것이어서 그 균형과 조화를 깨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의 현대문명은 물질적 여건을 구성하는 생산기술이 현대과학과 제휴함으로써 과학기술이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생산기술을 낳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삶의 물질적 측면이 엄청나게 강화된 문명이다. 장 교수는 인간 중심의 관점은 온생명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선 온생명이 건강한 상태냐 하는 것을 충분히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태계는 기본적으로 태양에서부터 오는 에너지를 받아서 전체가 상호보완을 하면서 생존을 하는데 그 기능의 일부라도 훼손시키면 문제가 됩니다. 우리 신체도 어느 한 부분이 없어지거나 기능이 마비되면 문제가 생기잖아요? 생태계는 먹이사슬로 엮여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투쟁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크게 보면 그게 다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방법이거든요. 그런데 좁은 시각으로만 보면 '우리가 먹어야지, 먹히면 안된다'고하는 측면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지요. 지금은 인간이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주변을 주므르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관점을 계속 유지한다면 정말 문제가 아닐 수없지요. 인간 중심적인 시각을 온생명 중심의 관점으로 바꿔야 해요."

그의 설명을 좀더 들어 보면 이런 것이다. 인간을 중심에 둔 시각에서 사회를 본다면 이상적 사회란 '주어진 자연적 여건 아래 인간의 만족스런 생존을 위한 최선의 협동조직'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나 이는 사실상 이상적인 사회상이다. 이에 반해 온생명을 중심에 둔 관점에서의 사회란 '온생명을 구성하는 하나의 하부구조로서 온생명에 속하는 여타의 부분과 긴밀한 조화 아래 온생명을 지탱해 나가는 데에 기여함과 동시에 안으로는 구성원들의 안위를 보살펴 나가는 조직'이라고 말할 수있다. 그렇다면 이 두 관점은 현실적으로 어떤 차이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인간 중심의 관점에 따른 사회에서는 대외적으로는 환경의 극복과 활용을 최대의 목표로 삼을 것이며, 대내적으로는 구성원들 간의 경쟁으로 야기되는 내적 갈등의 해소에 주력하게 되겠지요. 또 온생명 중심의 관점에서는 온생명의 안위에 일차적 관심을 두고, 이것이 보장되는 범위 안에서 구성원들의 안위를 생각하겠지요. 인간의 능력이 몹시 미미했을 때는 실질적인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어요. 인간중심의 관점에서는 과학기술을 통해 대대적으로 신장된 인간의 행위능력으로 인해 온생명에 대한 심각한 변형을 유발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함축하게 되는 문제점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온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단순한 개체생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낱 자연물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일가? 마르크스는 생산력을 역사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파악했고, 주체사상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관점을 중요하게 제시하였다. 그런데 현재 인류가 당면한 여러 가지 위기는 결국 인간 중심의 관점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자연과 사회의 예속과 억압을 벗어나서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우리가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중요한 개념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런 철학적인 문제는 잘 모르지만 제가 얘기하는 온생명은 마르크스주의나 주체사상에서 제기하는 문제와 배치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온생명은 시장경제체제와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따라서 사회주의적인 사고가 몇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봅니다. 제가 얘기하는 온생명적인 관점에서 사회를 형성하고 거기에 맞는 생활을 해 나가려면 지금 이렇게 무작정 부를 추구하는 체제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거든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제한되어 있고, 그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써야 하는데 어떻게 할거냐 하는 점에서 사회평등이나 사회정의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온생명은 인간의 몸이며 생명
장 교수에 따르면 인간 존재의 중요성은 축소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커졌다고 한다. 즉 온생명이 의식을 갖추어 통증을 느껴서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한데, 사람만이 그것을 할 수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온생명의 자의식'이 곧 '인간의 온생명' 의식을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온생명을 신체라고 가정했을 때 인간은 뇌수에 해당한다.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파악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인류를 위해서 무얼 한다고 하는 일이 결과적으로는 온생명에게 커다란 해악을 줄 수가 있어요. 인류를 위해서 땅을 개간하고 많은 생산물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온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지요.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될 수도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해요.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검소한 생활을 상당히 높은 가치로 봤는데, 이제 이게 거꾸로 돼서 창피한 것이 되었어요. 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이 검소하게 사는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멸시하지요. 우리는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발전의 길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우리가 발전한다고 하는 것이 결국 우리 몸의 나머지를 왜곡시켜서 병신으로 만드는 일이었어요. 이러한 인식에서 내가 산다고 하는 것이 뭘 의미하느냐, 과연 35억년 동안이나 생존해 온 온생명을 죽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 하는 뼈아픈 각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자본주의는 무한경쟁체제다. 본질적으로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기술의 눈부신 혁신에 힘입은 바 크다. 과학자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은 어떠한 것인가.

"현대과학은 인간을 달 위에 올려 놓기도 하고, 화성 또는 태양계 밖으로도 나갈 수있게 해줍니다. 이것은 그만큼 사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그것이 지금 여러 가지 놀라운 결과를 내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기술문명인데, 문제는 별로 원하지 않는 것까지도 자꾸 건드리면서 과학이 시녀처럼 자본주의에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은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을 통해서 이대로 나간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데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놔야 합니다. 저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과학의 눈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우리 이거 할 수 있지만 온생명의 시각에서 해서는 안된다' 하는 식의 강력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은 전체 생태계가 우리에게 줄 수있는 물질적 내용의 전체를 계산할 수가 있어요. 그걸 가지고 현재 우리 인류가 앞으로 생존해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을 내다 봐야지요. 그런데 그 준비는 아무도 안하고 있어요. 이게 참 심각한 문제지요."

새로운 삶을 향하여
장 교수는 과학이 모든 문제에 해답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현재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푸는 데는 과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거시적인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치제도, 사회문화, 감성과 정서 등 사회체제와 정신영역 전반에 걸친 커다란 문제다.

"온생명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좁은 의미의 과학기술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우선 과학자들이 이러한 문제에 좀더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방식의 생활을 위해서는 기술의 방식이 많이 바뀌어야 되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생태계 전체가 균형있는 조화를 이루려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우리 감성 속에 깊이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러한 삶의 방향의 새로운 정립은 정치제도나 사회문화의 변화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이러한 모든 요소를 전체적으로 연결하는 데서 과학기술이 기여해야할 점이 많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인류의 삶의 방식을 수정하려면 사회체제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 대안은 무엇인가. 두 가지 방식이 등장하여 경쟁하였다. 자본주의 안에서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수정자본주의와 사회주의적 실험이 그것이다. "시장경제체제가 문제라고 하는 것은 벌써 몇 세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사회주의가 중요한 대안으로 등장했던 건데 자본주위와의 생산력 경쟁에서 패배하고 말았지요. 그러나 사회주의적 실험이 실패했다고 해서 시장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문제가 없어진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는 더 커졌지요. 왜냐하면 이제 그 대안조차 불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는 결국 우리가 풀어야 할 거예요. 사회주의로 못 푼다면 다른 걸 가지고서라도 풀어야 합니다. 물론 과거 사회주의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해서 될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사회주의 실험에서 조금이라도 성공을 거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중요한 것으로 보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 누가 어떤 이념과 체제로 버텨 나가든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길로 가야 하는가. 그는 모든 환경울 원시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가장 건강한 신체적 생활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체제가 자연을 건강하게 이용하면서도 자연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생태계를 온전하게 보존함과 동시에 체제 자체도 해결할 수있을까.

"결국 무제한적인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바꾸거나 최소한 그 어떤 근본적인 수정을 가하지 않고서는 다른 해결의 방법이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가 체제외적 방식으로 이를 시도할 것인가 하는 점이지요. 현실 사회주의가 축적방식에 있어서 자본주의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고 본다면 결국 현체제로부터의 점진적 변형을 시도할 수밖에 없겠지요. 인간이 희구하는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넓게 열어 놓고 이의 성취를 위한 경쟁적 활동을 최대한 허용하면서 적어도 물질적 여건에 관한 한 전면적인 협동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체제를 진지하게 모색해 볼 때입니다."

그는 보람된 삶은 물질적 풍요와 인위적 설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되는 정신적 풍요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제도 자체의 변화도 있어야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자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실천적 문제와 관련해서 인식의 전환과 확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 3의 길을 찾아서
"어떤 것을 잘 먹고 잘 사는 상태로 보느냐 하는 것은 기본적인 가치의 문제지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좀 덜 바쁘게 사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실현되려면 사람이 생존의 위협없이 살아갈 수있는 사회적인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의 소비상태를 현저히 낮출 수 있다고 봅니다. 훨씬 더 검소하게, 그러면서도 자연친화적인 삶으로 나갈 수있다는 거지요. 저도 이런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더 많이 소비도 하고, 차도 많이 타고 다니고, 많이 먹기도 했는데 이제 제 자신이 바뀌고 있어요. 자동차는 거의 이용하지 않고, 대중교통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이용합니다. 또 '내가 너무 소비를 많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면 불안해집니다."

독일 출신의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오늘날에는 바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우리의 지구 자체가 종말의 날의 도래를 에견하고 있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현재의 상태가 지속된다면 조만간 인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이미 각성된 소수의 작은 힘들을 모아 온생명의 아픔이 사회적으로 느껴지는 단게에까지 도달시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장 교수의 뼈아픈 각성의 목소리에 우리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저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물론 인간은 여러 가지 제약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인 구조나 문화의 틀 속에서 상당부분 고착되고 변형될 가능성이 있지요. 그러나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는 거꾸로 변화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는 말도 되지요. 우리가 문화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든다면 인간은 거기에 맞춰 나갈 수있는 기본적인 역량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 이 문제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사회정치적인 혹은 적절한 문화적인 기구가 만들어진다면 희망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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