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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4/01/26 (10:34) from 80.139.162.31' of 80.139.162.31' Article Number :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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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누구나 생명이 무엇인지를 안다. 생명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경험세계 속에서 비교적 손쉽게 추상 해낼 수 있는 개념이며, 일상적 언술 안에서 별로 큰 어려움이 없이 통용되는 개념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존 재들과 그렇지 않은 존재들을 비교적 손쉽게 구분할 수 있으며, 이러한 구분의 과정에서 살아있는 존재들을 특징짓는 '살아있음'의 성격을 추상해 낸 개념이 '생명'인 셈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일상적 생명 개념 속에는 이러한 추상개념으로서의 의미 이외에도 '생명 체'라는 의미의 생명 개념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고양이도 다람쥐도 모두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언술에서 나타나는 생명은 추상 개념으로서의 생명이 되겠으나, 한 고양이가 죽는 것을 보고 "한 생명 이 없어졌다"고 하거나 "바이러스도 생명이냐?"고 말할 때의 생명은 엄격히 말해서 하나의 생명체를 의미하 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개념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 무엇인가 하는 추상개념으로 서의 생명이 규정되고 나면, 이러한 생명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실제 대상에 대해 구체개념으로서의 생명, 즉 생명체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이러한 생명 개념을 경험적으로 그리고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각각의 대상에 적 용하여 생명체인지 아닌지를 구분해내는 일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과 생명 아닌 것 사 이의 경계라든가, 한 생명에서 다른 생명이 나오는 경계에 해당하는 영역에 이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마른 나뭇가지가 생명이냐 아니냐 하는 물음을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는 땅에 꽂아서 살지 못한다. 그러나 아주 조심스런 방식의 처리를 하면, 이것이 다시 싹을 피우고 소생할 수 도 있다. 마찬가지로 모체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태아가 독립된 생명이냐 아니냐 하는 물음에 대 해서도, 우리는 어느 한 쪽으로 간단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우리는 생명에 대한 과학적 고찰에 기대해 볼 수 있다. 생명에 대한 엄격 한 과학적 정의를 제시하고 이에 맞추어 생명이냐 아니냐, 그리고 독립된 생명체냐 아니냐를 논의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과학에서조차도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 생명의 정의 문제는 그간 과학 자체의 엄청난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합의되지 않은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는 것 이다.

이제 과학에서 생명을 정의함에 어떠한 어려움이 따르는지를 간단히 검토해 보고, 이러한 어려움이 생명 의 성격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 보기로 하자. 과학에서 말하는 생명의 정의는 대략 생리적 (physiological) 정의, 대사적(metabolic) 정의, 유전적(genetic) 정의, 생화학적(biochemical) 정의 및 열역학적 (thermodynamic) 정의의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앞의 세 가지는 대체로 전통적 생물 학의 테두리 안에서 생물학적 개념들을 통해 설정되는 정의이며, 나무지 두 가지는 전통적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물리 화학적 개념들을 통한 정의에 해당한다. 우선 전통적 생물학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의들부터 살펴 나가자. 생명에 대한 생리적 정의에서는 생명이 지닌 특징적 활동이라 할 수 있는 각 종 생리작용을 나열하고, 이러한 작용을 지닌 대상을 생명체라 규정한다. 즉, 먹고 배설하고 호흡하고 신진 대사를 하며, 자라고 움직이고 생식작용을 하며 외부 자극에 대해 일정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 등의 생리활 동을 지닌 대상을 생명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우리의 상식적 생명 규정에 가장 근접한 정의임 이 사실이나, 한편 생명의 다양한 현상적 성질들을 나열했을 뿐 이의 본질적 특성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 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생명이라 보아야 할 대상들 가운데는 이 가운데 하나 또는 그 이상 의 성질들을 분명히 보여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에 반해 생명의 대사적 정의는 생명의 이러한 특징들 가운데 생명의 신진대사가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 는 입장을 취한다. 즉 생명체라 함은 일정한 경계를 지니고 있는 체계로서 적어도 일정 기간 내에 그 내적 성격에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서 외부와는 끊임없이 물질의 교환을 수행해 나가는 존재라고 규정한 다. 그러나 이것 또한 너무 좁은 정의가 됨 동시에 너무 넓은 정의가 된다는 약점을 지닌다. 즉 식물의 씨나 박테리아의 포자 등은 상당기간 이러한 대사작용이 없이 존재하는 것들이어서 생명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반대로 촛불과 같은 존재가 오히려 이 정의에 따르면 생명체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생명의 유전적 정의에서는 생명의 본질적 특성이 한 개체가 자신과 닮은 또 하나의 개체를 만들어내 는 특성 즉 그 생식작용에 있는 것으로 보고 생명체를 바로 이러한 특성을 지닌 존재로 규정하려는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정의는 특히 자연선택을 통한 생물의 진화 문제와 밀접히 관련됨으로써 생명의 본질적 이해 에 한층 가까이 접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로써 포괄할 수 없는 예외가 존재한다. 예컨대 노새와 같은 특정의 잡종들은 다른 모든 점에서는 생명체와 다름이 없으나 생식 능력만은 지니고 있 지 않은 것이다.

다음에는 전통적인 생물학 개념을 떠나 보다 보편적인 용어들을 통해 생명을 정의하려는 시도들을 살펴보 자.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의 하나인 생명의 생화학적 정의에서는 생명의 특성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물질 형태가 유전적 정보를 함축하고 있는 핵산 분자들 즉 DNA 분자들과 생물체 내의 화학적 반응들을 조 절하는 효소 분자들 즉 단백질 분자들이라고 보아 이러한 물질들을 기능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체계를 생명 체라고 보는 입장을 취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예외를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종의 바이러스를 닮은 스 크라피(scrapie) 병원균은 그 자신이 아무런 핵산 분자를 지니지 않으면서도 숙주의 핵산 분자들을 교묘하게 활용함으로써 스스로의 번식을 이루어 나가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 정의가 지닌 더욱 중요한 약점은 이와는 상이한 분자적 구조를 지니면서도 기능적으로 흡사한 존재가 나타났다고 할 때 이를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 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DNA 분자나 단백질 분자와 같은 탄소 화합물이 아닌 다른 형태의 화합 물로 구성된 체계로서 생명체가 보이는 모든 기능적 특성을 지니는 것이 존재한다고 할 때, 이를 생명이 아 니라고 주장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전통적 생물학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 또하나의 정의로서 생화학적 정의가 지닌 이러한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정의가 바로 생명에 대한 열역학적 정의이다. 이는 생명을 자유에너지 출입이 가능한 하나의 열린 체계로 보고 특정된 물리적 조건의 형성에 의하여 낮은 엔트로피 즉 높은 질서를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가는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의 생화학적 정의가 생명의 소재적 정의라 한다면 이는 생명의 기 능적 정의라 할 수 있다. 이 체계가 그 어떤 소재로 이루어졌던 간에 이러한 기능만 수행할 수 있으면, 이는 생명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도 문제는 발생한다. 만일 이러한 기능을 지닌 인위적 물질 체계가 형성되어 인간의 도움없이 상당기간 안정적인 기능을 유지해 간다면 이것 또한 생명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분명히 이는 우리의 일상적 생명 개념을 벗어나는 것이 사실이나 이 정의에 의하면 생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논의 결과를 통해 볼 때 생명의 정의에 관한 한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만족스런 결과를 주고 있 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이란 대체로 생명에 대해 우리가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외연 적 내용이 명시적 정의를 통해 규정된 내포적 성격과 잘 일치하지 못한다는 데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 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일치의 원인은 어디서 찾아 불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몇 가지로 짚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생명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 이해가 아 직도 우리가 생명에 대해 직관적으로 파악한 개념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가능성이다. 생 명이란 매우 신비한 것이어서 최소한 현재까지의 과학적 탐구만으로는 그 신비에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생 각이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파악한 생명의 개념은 과연 그 신비의 정체를 꿰 뚫고 있는 것인가? 최소한 직관적으로 지시하는 외연의 내용은 논란의 여지가 없이 받아들일 만한 것인가 하면 곧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직관적 관념만을 통해 그 어떤 곳이 생 명인가 아닌가를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그 반대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우리의 과학이 생명의 본질을 포착했음 에 반해, 우리의 경험적 직관은 아직 이에 이르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가능성이다. 생명에 대한 직관적 개념 은 분명히 우리의 일상적 경험을 통해 얻어졌으며, 이는 시간/공간적으로 우리의 경험 영역에 국한된 것이라 는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공간적으로 이의 미시적 구조 및 생태적 성격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고, 시간적으로 다시 이의 발생적 연유 및 진화적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확대된 이해를 통해 드러난 생명의 개념이 기왕에 파악된 소박한 생명 개념과 반드시 일치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생명 정의를 어렵게 만드는 데에 크게 몫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생명 의 정의가 어려워지는 이유를 완전히 설명할 수가 없다. 생명의 정의에 나타나는 외연과 내포의 불일치는 반드시 경험적 직관과 과학적 정의 사이의 불일치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생명의 생화학적 정의에 나타나는 예외로서의 스크라피 병원균의 경우는 과학적으로 정의된 내포와 과학적으로 파악된 외연 사이의 불일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얻어지는 결론은 일상경험에서는 물론 과학적 이해에 있어서도 생명의 내포와 외연을 일치시킬 개념적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과학적 이해가 이러한 작업을 수행해낼만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분 부분으로서의 과학적 이해는 이를 하기에 충분한 정도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결합하여 생명의 전체적 모습을 파악하고 이를 의미 있는 개념구조로 전환시킬 전반적인 개념정리 작 업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뒤에 논의할 이야기를 미리 요약해 본다면, 과 학을 통해 그간 파악된 생명의 모습은 개체생명이 아닌 총체적 단 일체로 이해되어야 마땅한 성격을 지니는 것이나, 이에 대한 응분의 개념적 정리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개체생명이란 오직 이 단일체와의 관련 아래서 그 정당한 존재성이 인정되는 생명의 부분적 국면에 해당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정의하려 던 기존의 모든 시도는 이 개체생명을 중심으로 생명의 특성을 파악하려는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며, 그간 에 발생한 문제점들은 바로 이러한 개체생명의 틀 안에 생명의 총체적 모습을 담아 보려는 시도에서 나타난 불가피한 개념적 모순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이 파악한 생명의 참 모습은 어떠한 것인가? 이를 위해 먼저 생명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경 위부터 간단히 살펴 나가자. 현대과학의 눈을 통해 본다면 우리 우주는 대략 150억 년 전에 탄생하여 계속 팽창 변화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 가운데 대략 50억 년 전에 형성된 우리 태양계에서는 태양과 지 구 사이에 이른바 자유에너지의 흐름을 통해 그 어떤 부분적 질서 형성의 계기가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처 음에는 일정의 동적인 비평형 준안정상태라고 할 물질 순환계 즉 원시 기후 시스템이 이루어졌으며 이 안에 서는 하나의 시공간적 국소 질서가 계기가 되어 유사한 국소 질서를 자체 촉매적으로 형성하는 일이 가능하 게 된다. 여기서 질서라 함은 그 어떤 물리계의 거시상태가 지닌 '부 엔트로피(negative entropy)의 정도를 말하는 것이며, 특히 '시공간적 국소 질서'라고 할 경우 시공간적으로 제약된 하나의 물리계에서 주변에 비 해 상대적으로 낮은 엔트로피를 지닌 그 어떤 거시 상태가 일정한 공간적 경계 안에서 일정한 기간동안 유 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상에 이러한 상태가 형성된 후 일정 기간 경과한 지금부터 대략 35억 년 전에 해당하는 시기에 이르 러서는 이러한 연계적 국소 질서의 존속률이 1을 넘어서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즉 하나의 국소 질서가 그것의 유지 기간 내에 평균 하나 이상의 유사한 국소 질서를 촉발해내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이때 하나의 국소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주변 상황의 함수이며, 따라서 약간씩의 변형을 지닌 후속 국소 질서들 가운데에는 주변 상황에 좀 더 잘 적응하여 좀더 오래 지속되며 좀더 효과적으로 후속 질서를 촉발해내는 것이 있고, 또 그렇지 못한 것이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후속 질서 특히 주변의 상 황에 좀더 잘 적응하는 질서일수록 그 질서의 크기 즉 부 엔트로피의 값이 큰 것이 되리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

일단 이러한 상황이 이루어지면 하나의 국소 질서가 계기가 된 질서의 연계가 약간씩의 변형을 겪으면서 다양한 형태로 광범위하게 펼쳐져 나갈 수 있게 되는데, 우리가 흔히 생명이라 부르는 현상이 바로 이러한 성격을 지닌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 그 자체를 바로 이러한 현상이라고 이해하더라도 사실상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지구상의 생명은 대략 35억 년 전에 국소 질서의 존속률이 1을 넘 어서는 상황을 기점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를 계기로 이어져 내려온 후속 질서의 총체를 일러 생명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를 다시 한번 요약해 보면 생명이란 "우주 내에 형성되는 지속적 자유에너지의 흐름을 바탕으로, 기존 질서의 일부 국소 질서가 이와 흡사한 새로운 국소 질서 형성의 계기를 이루어 그 존속률이 1을 넘어 서는 연계적 국소 질서가 지속되어 나가는 체계"라고 규정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체계'라고 할 때 이는 이러 한 추상적 질서의 체계를 의미할 수도 있고, 이를 구현하고 잇는 물리적 체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 만일 전 자의 의미를 따른다면 추상개념으로서의 생명 개념에 가까운 것이 될 것이고, 후자의 의미를 따른다면 구체 개념으로서의 생명 즉 생명체에 가까운 것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 두 의미를 구태여 구분하지 않고 문맥 에 따라 양 쪽으로 모두 사용하기로 한다.

일단 생명의 개념을 이와 같이 정의하고 나면, 이 지구상에는 태양과 지구 사이에 형성되는 지속적인 자 유 에너지의 흐름을 바탕으로 대략 35억 년 전에 하나의 생명이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지속적인 성장의 과 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주 내에는 이것 말고도 바로 이러한 의미의 생명이 어 떤 다른 곳에 형성될 수 있으며 바로 이 순간에도 그 어떤 곳에 이러한 생명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 다. 그러나 지구상에 나타난 이 생명은 우주 내에 가능한 여타 생명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 된 실체를 이루고 있으며, 이를 우리는 기존의 생명 개념과 구분하여 '온생명(global life)'이라 부르기로 한다.

이러한 온생명이 기존의 생명 개념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지구상에 나타난 전체 생명을 하나하 나의 개별적 생명체들로 구분하지 않고 그 자체를 하나의 전일적 실체로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생명의 이러한 정의 속에는 개별적 생명체들에 해당하는 '국소 질서'의 개념이 이미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생명의 정의 속에 나타난 핵심 사항은 이러한 국소 질서들 사이의 관계, 즉 선행 질서와 후속 질서 사이에 그 존속 률 1을 넘어서는 계기적 관련이 마련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국소 질서 자체보다는 이들 사이에 성립 하는 이러한 연계적 관계가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온생명이라 함은 생명 개념의 핵심 사항을 이러 한 '관계'에 놓고 이를 현실적으로 구현해내는 체계에 대해 부여한 명칭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온생명의 정 의 속에 등장하는 이러한 국소 질서의 중요성 또한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이러한 관계의 형성을 위해서는 이미 이 국소 질서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독자적 개념 규정이 필요 하며, 여기서는 이를 '온생명'과 구분하여 '개체생명'이라 부르기로 한다.

생명에 대한 이러한 과학적 이해와는 달리 우리의 일상적 경험은 일차적으로 오랜 분화의 과정을 겪어 형 성된 개체생명들을 접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게 되며, 따라서 생명의 개념도 이를 중심으로 형성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연계 속에 이루어진 생명의 전모를 보지 않고 이러한 개체들 속에 반영된 생명의 성격 을 정형화하여 이를 다시 각 개체에 대해 정의하는 형태로 부여하려 할 때 적지 않은 무리와 어려움이 따르 는 것이다. 다소 과장된 비유로 말하자면 이는 마치도 자동차의 여러 부품들을 살펴보고 이들이 모여 나타 내는 자동차라는 특성을 각 부품들에 대해 부여해 보려는 시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온생명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개체생명들은 그 정체가 언제나 명백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자유 에너지 흐름을 기반으로 마련된 그 어떤 전체적 질서의 틀 안에서 하나의 상대적 구획 가능성만을 지닌 존재 단위로서 결 과적으로 후속 개체생명의 형성과 온생명의 전체 질서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 그 어떤 의존적인 존재인 것이 다. 특히 이들의 초기 형성 단계에서는 이들과 선행 개체생명 그리고 주변의 여건 사이에 명백한 구분이 어 려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예컨대 바이러스의 경우와 같이 이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생명으 로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오랜 논란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생명 안에서 개체생명이 지니는 중요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나의 질서라는 입장에서 볼 때 온생명은 실로 엄청난 질서의 구현체이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자유 에너지 흐름 속에서 놓 인 하나의 물리계로서 이러한 정도의 높은 질서를 스스로 이루어낸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생명은 유한한 기간 안에 이러한 높은 질서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 로 이러한 개체생명들의 기여에 의한 것이다. 개체생명들이 지니는 중요한 기능의 하나가 바로 자체의 생존 유지 기간 이내에 자신과 대등한 개체생명을 평균 하나 이상 형성해 내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 자체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나, 자유에너지의 공급을 받는 지구의 여건 아래에서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이러한 기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것은 생각됨직한 일이다. 그런데 가장 간단한 형태의 이러한 개체생명이 일단 마련 되고 나면 자연선택의 방식을 통해 그 후속 개체생명들이 보다 정교하고 복잡한 형태를 지닌 기구로 '성장' 해 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온생명이 만일 이러한 개체생명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 다면, 이것이 그 어떤 기적에 의해 현재와 같은 높은 수준의 질서를 부여받았다 하더라도 이를 유지해 나가 기가 극히 어려울 것이다. 엔트로피의 지속적인 증가 경향으로 인해 그 구성요소들의 노쇠가 불가피할 것인 데, 이것이 대체가능한 개체생명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러한 노쇠를 도저히 만회해 낼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말하자면 하나의 기구에 대해 그것의 물질적 연속성을 포기하는 대신 그것이 지닌 정보적 연속성을 취하는 책략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우리는 '생명의 개체화 책략'이라 부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개체생명들이 모두 동일 수준의 내적 구조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다층 적 존재양상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우리가 세포들을 일차적인 개체생명이라 할 때, 이들로 구성되는 유기체들 즉 다람쥐나 전나무와 같은 동식물 생물체들은 한층 높은 이차적 개체생명이 된다. 그리고 다람쥐 나 전나무 등의 개체들이 속한 생물의 종들은 이들보다 또한층 높은 개체생명의 예가 된다. 사람의 경우 하 나하나의 세포로서의 개체생명, 각각의 개인으로서의 개체생명, 그리고 인간이 속하고 있는 생물학적인 종 즉 인류로서의 개체생명 등의 다층적 개체생명의 구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어떤 개체생명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자유에너지의 원천인 태양- 지구계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음은 물론 비교적 안정적인 주변의 특정 여건 아래에서만 그 생존이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체생명은 불가피하게 하나의 의존적인 존재 단위가 된다. 오직 태양- 지구계와 같은 항속적인 자유에너지 원천을 그 안에 품고 있는 '온생명'과 같은 존재만이 한 생명으로서의 자족적인 존재 단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그 어떤 생명체에 부가적인 조건이 없이 명 백한 독자적 존재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 이는 오직 '온생명'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이를 다시 한 개체생명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이 개체생명의 생존은 필연적으로 온생명의 생존과 함께 이 루어지는 것이며, 자신의 생존이 자신을 제외한 온생명의 나머지 부분에 결정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된다. 그 러므로 하나의 개체생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온생명에서 그 자신을 뺀 나머지 부분"은 그 개체생명의 생존 을 위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부분이 되며, 이를 우리는 해당 개체생명에 대한 '보생명(co-life)'이라고 부르 기로 한다. 한 개체생명의 입장에서는 그 보생명의 여러 부분 가운데에서도 특히 긴밀한 연관을 지닌 인접 부분이 직접적인 중요성을 지니며 개체생명과의 상호관계가 멀어짐에 다라 그 중요성의 정도가 감소하는 것 이 사실이다. 예컨대 신체를 구성하는 한 세포의 입장에서 보면 그 신체 내의 여타 부분이 보생명으로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임에 반해 지구 반대 쪽에 있는 다른 어느 생물체의 몸은 이것에 대한 보생명으로 서의 관련이 훨씬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의 개념에 대한 이러한 고찰이 어떤 현실적 중요성을 지니는가? 여기서는 두 가지 점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 하나는 생명을 이해함에 있어서, 개체생명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생명과 보생명의 관계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실상 보생명에 대한 고려가 없이 개체생명에 대해 그 자 체로서 '생명이다', '아니다'하는 논의는 큰 의미가 없다. 예컨대 꺾어진 막대기가 생명이냐 아니냐를 그 자체 만 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땅에 꼽힌다고 하는 보생명과의 결합 가능성이 주어졌을 때 이는 생명이 며 그렇지 않고 내팽개쳐질 때 이는 이미 생명이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도 그의 보생명인 여타 생물의 생체 내부에 침투할 수 있을 때 생명으로서의 기능을 지니는 것이 되나 이와 분리된 존재로서의 바 이러스는 여타의 대형 분자 덩어리와 아무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개체생명이 지닌 여러 성질들도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언급한 '생명의 개체 화 책략'을 인정한다면 개체생명들은 주어진 여건 아래서 스스로의 생존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 존재이며, 이를 위해 이들은 이른바 본능의 형태로 개체생명 자체를 보존하려는 일종의 생존의지를 지니게 된다. 그러 나 생존을 위한 모든 활동은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생명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를 위해 각각의 개체는 개체로서의 생존을 유지해 나감과 동시에 보생명과의 원만한 공존 상태 를 지속시켜 나가려 한다. 즉 개체생명은 그 보생명과의 관계에서 개체 생존에 유리한 그 무엇을 얻어내려 함과 동시에 이와의 공존 유지를 위한 생태적 배려도 함께 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즉 개체생 명은 생존경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협동'도 함께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생명 개념에 대한 이러한 구조적 이해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또 한가지의 중요한 점은 온생명 안 에 놓인 인간의 위치를 좀더 명백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온생명과 독립된 독자적 존재가 아니라 온생명의 한 부분으로 하나의 개체생명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함께, 인간은 온생명 안에서 매 우 중요하고 특별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 역시 이러한 생명의 세계 즉 온생명 안에서 그 보생명과의 관계를 통해 생존해 나가는 하나의 개체생명임이 분명하며, 따라서 인간의 생존 방식 또한 개체생명이 일반적으로 지니는 보편적 생존양상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다. 오히려 인간은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까다로운 제약조건을 지니는 존재이다. 생태계적 위치에서 볼 때 인간은 최상위에 속하는 존재여서 그 어느 생물종 보다도 더 깊고 광범위한 생태계적 의존성을 지니고 살아 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그 보생명과의 종적 그리고 횡적 관계에 있어서 그만큼 더 깊고 광범위할 수밖 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이를 우리와의 한 몸 즉 우리의 보생명이라 생각 하지 않고 단지 환경이라 생각해 왔다. 현대문명이 환경적 위기를 맞이하는 것이 다분히 이러한 시각의 차 이에 연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온생명 내의 한 개체로써 단순히 온생명에 의존하여 그 생존이나 유지해 가는 존재가 아니 다. 의식과 지능을 지닌 존재로서의 인간은 최초로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지니게 된 집합적 지식을 활용하여 자신이 속한 생명의 전모 즉 온생명을 파악해내는 존재가 된 것이 다. 온생명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내부로부터 자신을 파악하는 존재 가 생겨났다는 것은 곧 자기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결 국 온생명은 35억 년이란 성장과정을 거쳐 비로소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며, 이 의식의 주 체로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온생명의 의식 주체로서 마치도 신체 내에서 중추신경계가 지니 는 위치에 해당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이는 생명의 역사에 있어서 생명의 출현만큼이나 중 요한 의의를 지니는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아직도 온생명 전체로서의 건강한 생존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무분별하게 그 보생명을 파손함으로써 온생명 자체에 대해 암적인 질환을 유발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 오늘 우리가 생명에 대한 바른 이해를 보다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당위성이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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