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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4/02/12 (19:53) from 80.139.163.211' of 80.139.163.211' Article Number :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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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



1. 에른스트 블로흐와 신학

에른스트 블로흐는 신학자들도 매우 고맙게 생각해야 할 철학자이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그는 우리를 안심시키고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젊고 나이든 많은 신학자들은 그가 죽기 전 여러 해 동안에 넥카(Neckar) 강변의 집으로 몰려들었으며, 그를 마주보고 작은 탁자 앞에 앉아서 질문을 주고 받았으며(어째서 그러한가?), 그런 후 그들은 이전보다 더 희망에 가득 차서 제 길로 돌아갔다! 그에게는 허영심과 거만함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다가간 모든 사람들마다 신뢰와 형제사랑의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또 그는 자신의 일과 그 시대의 질문에 너무나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가까이 한 사람들은 무책임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그와의 정신적 사귐 속에서 신학자들도 그 자신의 성서적인, 다시 말하면, 유대교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희망의 지평을 다시 발견하기 시작했으며, 그 자신의 비판적인 희망의 실천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에른스트 블로흐를 알게 된 것은 그가 75세의 고령의 나이였을 때였다. 그가 죽기 전날의 마지막 대화시간까지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그의 사상의 원초성이었으며, 달리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의 존재의 천진스러움(어린이 같음)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쉽사리 잊어버리는 것, 즉 단순한 질문과 무한한 놀라움을 가슴에 품을 수 있었다. 그는 이것을 1918년의 "유토피아의 정신"(Geist der Utopie) 이래로 "순간적으로 경험하는 어두움"이라고 불렀다. 이 원초성의 창조적이고도 무진장한 현존(現存)으로부터 그는 질문했고, 사고했으며, 이야기했다. 이 현존 안에서 그는 참으로 진실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사물에 주목했다. 그는 사람들이 단지 똑같은 것만을 보는 곳에서 변화를 깨달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악보도 발견하지 못하는 곳에서 음악소리를 들었다. 그의 생활세계는 그가 해독하려고 애썼던 자취들, 표지들과 신호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를 열어 줄 수 있었다. 그의 모든 저서들의 거의 매 소제목마다 단순한 것, 가까이 있는 것, 자명한 것을 말하고 이에 대해 깊이 놀라는 것으로써 시작한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나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야 존재하는 자들이 된다."라고 "자취들"(Spuren, 1930년)의 첫 페이지는 말한다. 그의 철학 전체를 포괄하는 문장은 세 개인데, 모든 사람들은 이 문장들을 이리저리 섞어서 자신의 생활, 희망, 고통, 고독과 사귐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959년의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는 바로 이 태고의 형이상학적인 질문들과 함께 시작하여, 다음과 같이 진행한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이것은 인간의 희망에 관한 질문이다.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가?" 이것은 전혀 다른 것의 도래에 관한 질문, 종말론적인 질문이다. 세계의 미래에서, 자신의 죽음에서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가? 블로흐는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할 때에 자꾸 질문했다. 그러므로 단순한 것, 즉 우리가 질문하고 싶은 것을 질문하는 것, 우리가 바라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가장 어렵게 여겨진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이제 단순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에른스트 블로흐에게서 이 어려운 질문들은 다시금 쉬운 질문들이 되었다. 이것은 그가 지니고 있는 해방적인 힘이었다. "가장 깊은 것을 생각하는 자는 가장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한다." 이 점에서 그는 횔더린(H lderlin)을 닮았다. 그리고 그의 "희망의 원리"가 결국 보편적으로 확장된 범주인 "고향"에서 성취되기를 바란다는 사실은 블로흐가 간직했던 어린이의 광채를 되돌아보게 한다.
신학자로서의 에른스트 블로흐, 이것은 신학자들에게,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의 친구와 그의 적들에게 하나의 도발적인 주제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억누를 수 없는 적절한 주제이다. 나는 우리의 첫 만남을 잘 기억하고 있다. 이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1959년 겨울 부퍼탈에서 라이프니찌의 철학자가 강의를 끝낸 후였다. 우리는 연기가 자욱한 한 맥주홀에 앉았다. 나는 조금 순진하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블로흐 씨, 그렇지만 당신은 무신론자가 아닙니까?" 이 질문을 받자 그는 눈을 번쩍이며 쉰 목소리로 저돌적으로 말했다: "나는 하나님 때문에 무신론자입니다." 이 역설 안에는 하나님과 투쟁한 그의 긴 역사가 들어 있다. 이 역설 안에는 두 가지, 즉 프로메테우스와 욥, 모세의 우상금지와 십자가에 못박힌 자의 외침,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신비신학과 맑스주의의 종교비판과 또 개인적인 것이 들어 있다. 블로흐는 공식적이거나 교회적인 "신학"에 종사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유토피아의 정신" 때문에 "혁명적인 영지주의"의 이단적인 신앙에 충실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1918년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의지 안에서 하나가 되어" "맑스주의와 종교"를 "묵시록의 추수축제" 안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이로써 그가 의미한 것은 궁극적으로 성취된 인간의 자기만남이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라는 바울의 말을 그가 즐겨 인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그의 첫 저서("유토피아의 정신")를 마감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은 "하나님을 불러내는 우리의 철학과 기도로서의 진리"의 손에 맡겨져 있다. 어떤 철학자가, 언제 그의 철학을 일컬어 "하나님을 불러낸다"고 하였으며, 기도로써 그의 저서를 마감하였는가?! 단지 신학자들만이 그렇게 하고, 신학자들 중에서도 단지 소수만이 그렇게 하며, 이들도 오직 드물게 그렇게 한다.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영광의 나라를 향한 이 메시야적 열정은 그의 모든 저서를 이끌어 가는 하나의 동기로서 느껴질 수 있다. 물론 그는 나중에 이 메시야적 희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주저했다. 그리고 귀족교회(Herrenkirche)와 종교적 체념에 대해 비판할 때, 그는 점점 더 엄격해졌다. 하지만 그가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쳤던 저서 "그리스도교 안의 무신론"(1968년)에서도, 부제가 말하듯이, 궁극적으로는 정치적으로도 믿을 수 있는 "엑소더스와 하나님 나라의 종교"의 형태가 여전히 압도적으로 지배한다. 계급지배의 분석과 기존하는 민중소외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맑스주의와 또 이러한 비참을 극복하는 능력으로서 가난한 자들에게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묵시록에 대한 종말론적 희망이 하나로 어울려져서, 그 어떤 페이지도 내버릴 필요가 없고, 모든 페이지마다 제 몫을 충실히 감당한다.
이렇게 블로흐는 60년대에 신학자들에게 왔고, 신학자들은 그에게 왔다. 그 이래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왔고, 사회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왔다. 가난한 자들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의지 안에서 하나가 되어, 그들은 무리의 화를 무릅쓰고 견고한 요새를 버렸으며, 목자들과 요새 지휘관들의 진노를 불러들였다. 민중 소외의 공동적인 실제 문제에 개입하면 할수록, 그들은 자신들에게 확신을 주는 하나님 나라의 영을 더 많이 느낀다. 상호 간에 정직하게 비판하는 일은 이 일을 위한 조건이다.
블로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오직 무신론자만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철두철미한 무신론은 이 세상의 우상들과 신들로부터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좋은 무신론자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대체종교, 인간숭배와 정부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그 당시 블로흐는 자신이 "공여제품(供與製品)"이라고 칭한 것을 즉시 받아들였으며, 그가 "그리스도교 안의 무신론"이라는 저서로써 의도했던 바를 모토에서 두 비판적인 문장으로 해명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콜라즈(Collage)를 통하여 맑스주의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새로운 혼인관계를 맺으려고 하였다: "맑스는 말했다: 급진적이 된다는 것은 사실의 뿌리를 파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사회적인) 사실의 뿌리는 인간이다. 요한일서는 인간이라는 뿌리를 그 어떤 것의 원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그 어떤 것을 위한 규정으로 생각하면서 다시금 말했다: '장차 우리가 무엇이 될 것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드러날 때면, 우리는 그분과 같아질 것임을 안다. 이는 우리가 그분이 계신 모습 그대로 그분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블로흐는 말했다: "만약 이 두 본문들이 서로를 읽었거나, 서로 한 번 만났더라면, 만물 안의 소외와 그 극복 가능성이라는 실제 문제 위에도 탐구적인 빛과 유토피아적인 빛이 다같이 비추었으리라." 이 결합은 60년대의 유럽의 "정치신학"에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못지 않게 이 결합은 니카라구아의 그리스도인들과 산디니스트들을 소모사 독재에 저항하는 하나의 공동 해방전선으로 불러들였다. 에른스트 블로흐라는 이름은 맑스주의적 비판과 그리스도교적-메시야적 희망의 이러한 결합을 대변한다.
에른스트 블로흐 - 주먹을 높이든 늙은이 - 는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대해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경험을 갖고 있거나 이 단어를 단지 사적인 소원의 꿈으로써 채우는 많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수수께끼가 되었다. 분단된 독일에서 사회주의에 관한 논의는 여기서 표현되는 억압과 광란증세 때문에 일반적으로 매우 불쾌한 것이었다. 에른스트 블로흐가 다양한 형태의 사회주의를 섭렵했다는 사실은 열광시키면서도 동시에 실망시켰고, 환영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경멸을 받았으며, 새로운 희망을 주면서도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하기를 꺼리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은폐된 이데올로기적 수수께끼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매우 단순하고 아주 명확한 것도 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도덕의 이름 아래 오래 동안 추구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Politische Messung, 1970). 도덕 때문에, 자신을 존중하라는 칸트의 정언적 명령(定言的 命令)과 순수한 요구 때문에, 에른스트 블로흐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평화주의자가 되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맑스주의자가 되었으며, 1961년에는 동독의 독재주의적 사회주의를 버렸고, 서독에서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를 위해 싸웠으며, 인간에게는 자기만남을 가능케 하고 세상에게는 동일성(정체성)의 고향을 가까이 가져다 줄, 범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공산주의를 희망했다.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기 전까지 블로흐는 도덕주의자였다. 그는 분노와 전투적인 희망 속에서 항상 이러한 흠 없는 도덕주의자였다. 도덕 때문에, 즉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을 위하여, 그는 사회적 유토피아를 현재화했다. 도덕 때문에 그는 미래가 있는 자연법, 즉 "억눌리고 모욕당하는 자들"을 위한 정의의 유토피아를 발전시켰다. 도덕 때문에 그는 오늘 날 통용되는 "곧은 길"과 "높이 든 머리"의 상징을 그렸다. 도덕, 인권 그리고 자기존중의 문제로서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공산주의는 실로 거꾸로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실제로 존재하는 민주주의 그리고 아직은 전혀 존재하지 않지만 이제 실현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으로서, 즉 그 "인간적인 얼굴"에 대한 질문으로서 도덕을 제기한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그가 죽음, 불멸 그리고 부활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종종 신학자들로부터 질문받았다. 그가 자신의 저서, 인터뷰와 개인적 대화에서 이 질문에 대해서 항상 냉정하게 대꾸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죽음 위에 아무런 덮게(idola mortis: 죽음의 우상)도 덮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에게서와 마찬가지로 그에게서도 죽음은 "철저한 반(反)유토피아"와 비밀, 즉 "아직 해명되지 못한, 표상불가능한 무(無)"였다. 하지만 그는 위를 향한 하나의 결합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소리나는 침묵"인 음악에서 "절대적인 침묵"인 죽음과의 결합을 발견했다. 나의 아내와 내가 방문했던 그의 사망 전날 밤에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음악 베토벤의 피델리오 서곡을 다시 들었다. 마지막 악장에서 포로들의 해방을 알리는 트럼펫 소리는 늘 그의 마음을 매우 사로잡던 소리였다. "베토벤은 여기서 메시야의 도래를 미리 알린다. 감옥 주위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자유, 유토피아적 회상, 위대한 순간이 펼쳐지고, 성취된 희망의 별이 여기서 지금 빛난다..."
에른스트 블로흐 자신의 저서는 사로잡힌 자들, 억눌린 자들 그리고 죽은 자들을 위해 울리는 저 트럼펫 소리와 함께 오는 미래를 알리는 그러한 메시야적 서곡이다. 블로흐는 소외, 착취, 억압과 죽음 가운데 사로잡힌 자들을 "희망에 사로잡힌 자들"로 만들었다. 죽음에 맞서서 그는 "모든 일에 흔들림이 없는 자세"(non omnis confundar)를 굳건히 지켰다(PH 1388). 이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 예배의식서에서 유래한 말이다: "In te, Domine, speravi, non confundar in aeternum"(주여, 나는 당신을 바라보오며,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2. 메시야 사상, 종교 그리고 무신론

에른스트 블로흐가 1961년에 라이프니찌로부터 튀빙엔으로 이주해 오기 일년 전에 나는 그의 저서 "희망의 원리"를 서독에서 "메시야 사상과 맑스주의"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려고 했다. 비록 1960년대에 학생과 시민, 노동조합과 정당, 교회와 학교로 하여금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생활의 개혁을 목표로 일어나게 한 것은 그의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였지만, 나를 개인적으로 사로잡았던 것은 그의 메시야 사상이었다. 나는 그 당시에 질문했다: "블로흐(희망의 원리)에게서 메시야 사상이 맑스주의를 이겼는가, 아니면 메시야 사상이 맑스주의에 졌는가?" 오늘의 나라면, 더 이상 그처럼 '이것이냐 아니면 저것이냐?'라고 묻지는 않았을 게다. 메시야 사상은 그의 사회주의를 총괄하는 전망과 내적인 동기인 것같이 여겨진다. 그리고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는 오늘 날의 자본주의의 비참 앞에서 메시야 사상의 현재적인 역사적 형태인 것같다. 베냐민(W. Bennjamin)은 1919년에 그의 친구 게르숌 숄렘(Gerschom Scholem)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블로흐는 지금 그의 주저서, 이론적 메시야 사상의 체계에 몰두하고 있다." 메시야 정신은 사회주의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도 그 경직화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양자를 더 큰 미래의 전망으로 열어 준다. 이 정신은 양자를 "유동상태 안으로" 인도하고, 지금까지 중재되지 않은 대립요소들을 중재한다. 그것도 오직 "유동상태 안에서"만 그러하다.

a. 종교사의 메시야적 해석

"희망이 있는 곳에 종교가 있다. 하지만 종교가 있는 곳이라고 항상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희망의 원리" 53장에서 블로흐는 대 종교들, 특히 초기의 이른 바 "창설자 종교"(Stifterreligion)의 메시야적 해석에 착수했다. 블로흐에 의하면 대종교의 특별한 의미는 그 종교가, 종교적 비밀과 나란히 그리고 그것과 함께, 비밀을 계시하는 "창설자의 종교적 비밀 안으로의 자기투신(自己投身)"을 경배한다는 사실에 있다. 모든 종교행위의 출발선 상에 있는 예외적인 인간적 초월은 신적 초월에 속한다. 그러므로 창설자 종교에서 창설자의 유일회적인 종교행위는 처음으로 일어난 것으로 간주되고, 모방의 모범으로 높여지며, 여기서 경험되는 초월과 함께 중재의 싸크라멘트(성례전)로 경축된다. 물론 중재자 자신은 그가 중재하는 바로 그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직 그를 통해서만 중재되기 때문에, 그는 이것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목표와 주도적인 능력이 된다는 의미에서 본질적 의미를 획득한다.
블로흐는 창설자가 종교적 비밀 안으로 자신을 "점점 더 많이" 투신하는 일에 관하여 종교사적으로 말한다. 종교발전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작위적(作爲的)인 것이다. 자기 자신을 "절대 종교"로 이해한 그런 종교로부터 볼 때, 이런 이해는 작위적인 것이다. 블로흐는 헤겔의 이런 주장을 수용한다. 비록 그가 - 헤겔과 같이 - 그리스도교를 "절대 종교"라고 천명하진 않지만, 그는 그 자체로서 "종교사의 완성"에 관해 묻는다. 이것은 그 자체로서 종교사의 지양(止揚)을 의미한다. 종교사의 완성을 향한 이러한 열망은 전형적으로 "메시야적"이다. 이러한 열망은 자신의 종교적 경험을 절대화하고 다른 모든 경험들을 상대화하는 일로 인도하기도 하지만, 역사의 완성 불가능성을 경험하고 자신의 경험을 상대화하는 일로 인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면성은 블로흐의 설명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는 저 "종교적 비밀 안으로의 자기투신"이 모세에게서 처음으로 일어났고, 예수에게서 "완성된" 것으로 본다. 모세는 시내 산의 종교행위를 통하여 이 산의 하나님을 그의 백성의 "엑소더스의 빛"으로 만들었다. "우리 위의 하나님"이 변하여 "우리 앞의 하나님"이 되었다. 높은 하늘의 주님이 변하여 장차 이 땅 위에 세워질 그의 영광의 나라가 된다.
예수는 그의 희생을 통하여 "인간의 재판관"인 초월을 돌파하고, 이를 하나님의 나라로 유토피아화한다. 이로써 블로흐는 아직도 헤겔의 궤도 안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인간의 신의식(神意識)의 역사(歷史)가 곧장 하나님의 자기의식(自己意識)의 역사로 간주되지 않고, 인간의 신의식의 역사가 메시야적인 "전체성 안의 희망"을 궁극적으로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는 헤겔과 다르다.
블로흐에 따르면, 포이어바하와 함께 하나의 새로운 "종교의 인간론"은 그 만기(滿期)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헤겔과 포이어바하를 넘어서서 블로흐는 하나의 새로운 "종교의 종말론"을 요구한다. 블로흐는 포이어바하와 함께 "인간 때문에" 종교적 상징을 탈신화화(脫神話化)한다. 하지만 블로흐는 포이어바하에 맞서서 종교적 상징을 현존하는 인간에게로 가져가지 않는다. 오히려 블로흐는 현존하는 인간이 참으로 중요시하는 것, 그가 그의 실존의 무한한 핵심에서 갈망하는 것, 순간의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는 그를 비추는 것, 즉 그의 진정한 미래로 종교적 상징을 가져간다. 블로흐가 종교를 탈신화화하는 것은 단지 "인간 때문"만은 아니고 "하나님 때문"이기도 하다. 이 양자의 결합 안에서 종교의 이 탈신화화는 하나님과 인간이 원래 원하는 것 때문에 이루어지는 하나의 종말론적 탈신화화이다. 즉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영광 안의 사귐이고, 유대교적 카발라 신학에 따르면 열째 세피로트(Sephiroth)의 계시, 카보드(kabod), 독사(doxa), 즉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라는 말로써 메시야적으로 신앙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라는 말로써 원하는 것과 "자연"이라는 말로써 의도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제거되지 않는다. 이것은 희망 안에서 보존되고 공개된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인간적-종말론적이고 그런 점에서 폭발력을 지닌 메시야 사상이 나온" 이상, 또 그런 한에서, "희망이 있는 곳에 종교가 있다"는 블로흐의 기본명제는 그리스도교를 "종교의 본질"로 이해한 그의 생각으로 인도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신론과 그의 종교비판이 의도하는 것이 바로 똑같은 내용, 즉 인간적-종말론적이고 그런 점에서 폭발력을 지닌 메시야 사상인 이상, 또 그런 한에서, "희망이 있는 곳에 무신론이 있다"는 반대명제도 역시 타당하다. 이것은 블로흐의 "상속받은 종교", 그의 "메타(超)-종교"의 양면성이다. 왜냐하면 이 "상속받은 종교"는 죽었다고 선언되는 것을 상속받는 것을 의미할 수 있고, 이러한 관점에서 비종교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종교에 의해 단지 약속되기만 한 것의 성취를 의미할 수도 있고, 그런 점에서 종교 이상의 것일 수 있다. 그러기에 블로흐는 한 곳에서 이 미래를 일컬어 "종교가 없는" 것이라고 하고, 두 페이지 앞에서는 "단순히 종교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이 이중적 의미는 메시야적 완성의 열정을 나타내는 하나의 전형적인 표시이다. 즉 이 열정은 한 숨에 끝장내고(be-enden) 그리고 완성해야(voll-enden) 한다. 따라서 만약 블로흐의 무신론이 철저하려면, 그리고 대리적 만족으로 도피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에 맞서서 "하나님"을 옹호해야 하고, 우상숭배인 하나님의 형상들, 이름들과 개념들에 맞서서 아직은 알 수 없는 영광 중의 하나님의 출현을 옹호해야 한다.

b) 메시야적 희망과 구체적 유토피아

"모든 것은 오로지 생활 속에서만 반복하고,
영원히 노쇠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환상뿐이다.
예전에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것,
그것만이 오로지 결코 노쇠하지 않는다."
(Fr. Schiller)

블로흐의 메시야적 희망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그가 사용하는 목표의 표상(表象)은 변동적이고, 유동적이며, 가변적이고, 불분명하다. "전체성", "폭발적인 완성", "가장 완전한 존재"(ens perfectissimus), "동일성의 고향", "존재 속의 아늑함", "자연의 변모(變貌)"가 언급되고, "하나님의 나라"도 늘 거듭 언급된다. 그것은 신비적으로 "수정(水晶)"으로 해석되고, 성서적으로 "영광"으로 여겨진다.
"중생"(重生)과 "전적인 타자(他者)로의 도약"은 이 세계, 그 법칙들과 습관들에 반해 이 미래의 조건들이다. 이런 맥락 안에서 블로흐는 즐겨 "가장 제약받지 않는 유토피아", 무제약자의 유토피아에 관해 말한다. 이것은 교차하는 표징들과 신호들 속에서 미리 통고되지만, 아직은 아무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것은 "순간에 경험되는 어두움" 속에서 신비적으로 경험되지만, 아직 갱신되지 않은 세계 안에서는 보여질 수 없고 파악될 수 없다.
이러한 전체성의 메시야 사상, 영광 혹은 동일성의 나라를 블로흐는 "땅과 하늘의 소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미래를 역사 안에서 선포하는 메시야 사상은, "모든 피조물의 극복되지 못한 허약성(虛弱性)"과 "자연환경의 극복되지 못한 비매개성(非媒介性)"에 돋친 가시를 항상 날카롭게 함으로써, 가능한 모든 사회 중에서 가장 나은 사회를 통해서도 성취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잘 알다시피 블로흐는 행운의 사회주의적인 유토피아, 민주주의적인 사회주의를 통한 그 실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정의의 유토피아, 인권과 민주주의를 통한 그 정치적 실현을 특별히 묘사했다. 그러나 그는 이것들을 "유토피아의 전체성"으로부터 취해 온, 그리고 - 따로 떼어져 고찰되고, 고루하게 편협화되는 곳에서는 항상 -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나간 부분적 유토피아로 여긴다.
만약 "유토피아의 전체성"이 없다면, 이것들은 그 맥락과 그 최상의 의도를 상실한다. 즉 "유토피아의 전체성"에서는 하나의 절대성이 선취된다. "이 절대성 안에서는 사회적인 모순들이 아닌 다른 모순들도 폐기되며, 지금까지의 모든 맥락이해도 달라진다." 블로흐는 메시야적 유토피아나 심지어는 종교적 희망의 상징들까지도 세계 내재적인,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실제적 유토피아로 환원하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이러한 구체적인 부분적 유토피아를 "유토피아의 전체성" 안으로 통합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여전히 종교적이었다.
두려움 때문이든 희망 때문이든, "계급 없는 사회"에서는 종교가 매장될 것이라고 가정했던 자는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저서의 결론에 실망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적대주의적이지 않는 사회는 모든 세상적 재주를 손에 꼭 붙잡을 것이다. 이 사회는 경제적-정치적 무상황성(無狀況性), 무숙명성(無宿命性)을 설정한다. 그렇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서부터 지겨움과 권태의 노쇠(老衰)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무가치성이 더욱 더 확연하게 나타난다. 무(無)로부터 온 사자(使者)들은 계급사회로부터 나오는 그 단순한 가치들을 상실하였고, 아직은 널리 표상할 수 없는 하나의 새로운 얼굴을 가진다. 그렇지만 그들 안에서 깨어진 목표도 역시 새롭게 파고든다." 그래서 "계급 없는 사회"를 향한 블로흐의 유토피아적 전망은 "앞을 향한 온갖 꿈과 우리의 곤궁한 파편적 삶의 역결합(逆結合)"으로서의 새로운 종교의 환상, 우정과 투철한 것과 형제사랑과 어려운 것을 진지하게 여기는 새로운 교회의 환상, 이웃과 연대하는 보편성과 아침을 향한 개방성의 환상과 함께 끝난다. 그리하여 "교회는 대낮까지만이 아니라 대낮이 지나서도 살 수 있게 된다." 이 교회는 실로 "미신이 없는 그리고 계속 전진하는 교회"이다.
다시금 두려움 때문이든 희망 때문이든, 블로흐가 분명히 나사렛 예수를 사회의 반역자나 정치적 혁명가로 정형화한다고 가정했던 자도 역시 적지 않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실로 예수의 설교에서 메시야적인 하나님의 나라 사상은 갈릴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 억눌리고 멸시받는 자들 가운데서 사회운동으로서 영향을 떨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에게 충격, 가치의식과 희망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의도한 내용과 범위를 보면, 그것은 특정한 사회적 유토피아와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해방의 복음은 이 초라한 자들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나타난 필연적인 형태로서, 요한계시록이 선포하듯이, 그 자체 상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땅과 하늘의 모든 체제를 무너뜨릴 것, 즉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취한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고전 2, 9).
메시야 사상의 무제약적이고도 전적인 희망의 내용은 하나님과 또 하나님 나라의 상징들 안에서 공포된다. 그것은 새롭고 실제적인 사회적 유토피아와 정의의 유토피아를 항상 자극하며, 정의를 위한 민중의 해방운동과 투쟁을 부추긴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것을 넘어가며, 이를 관통하면서 인간들을 계속 전진시킨다. 이로써 여기에 구체적인 유토피아와 또 유토피아보다 더 큰 것이 존재한다. 여기에 실제적인 혁명과 또 혁명보다 더 큰 것이 존재한다. 혁명적 충격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적인 실체(Gotthypostase)의 혁명에도 불구하고, 실로 그 어떤 혁명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기에 혁명을 다시금 전복시킬 바로 이러한 혁명 때문에, 메시야적 희망의 잉여(剩餘)가 생겨나게 된다. 메시야 사상은 실제적 유토피아의 생산을 통하여, 그리고 주관적, 객관적으로 가능한 것과의 중재를 통하여 구체화된다. 그것은 그 자신의 내재성을 항상 초월한다. 그것은 항상 그 자신의 성취를 계속적인 미완(未完: Nch-nicht)의 유동성 안으로 이끈다.

c.메시야적 희망과 무신론

"무신론이 없다면, 메시야 사상의 자리는 없다."고 블로흐의 테제가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무신론"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의 존재, 실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서의 하나님은 모두가 미신이다"라는 글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만약 종교가 희망이 아니라면, 만약 그 상징들이 저 "무제약적인 유토피아"의 상징들이 아니고 희망의 운동으로 이끌지 않는다면, 종교 그 자체는 미신이다. 블로흐의 무신론은 "하나님", 즉 스스로 존재하는 독자적 "존재"로 실체화된 전체성의 상징에 대해 결연히 저항한다. 만약 하나님이 절대적인 자로 생각되고 영원한 자로 경배된다면, 희망은 마비된다. 그러므로 세계의 창조자와 세계의 통치자, 하늘의 권능과 왕적인 권세의 표상은 희망의 심판 아래 처하게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하나님을 포함하지 않는다. 즉 이러한 종교적 타율성과 그 사물화된 실체는 교회의 신학 안에서 완전히 해체된다. 그러나 이것이 해체되는 것은 신학이 지금까지의 피조물, 그 인간학과 사회학의 문지방을 스스로 뛰어넘어 등장할 때이다."
더 큰 희망을 위한 블로흐의 무신론은 적어도 세 가지의 동기를 갖고 있다.

1. 첫 근거는 땅의 미래를 발견하기 위하여 하늘을 땅으로 가져오는 메시야적 희망이다. 블로흐의 무신론은 결코 환원적 무신론(Reduktionsatheismus), "거짓 계몽"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범상성(凡常性)에 제한되는 것도 전혀 아니다. 또 포이어바하와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사는 단지 환원적 무신론을 미래화하려는 것만도 아니다. 맑스가 쓴 저서의 절정(絶頂)에서도 그러하듯이, 블로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오로지 종교에 대한 기능적 비판일 뿐이지 종교의 본질에 대한 비판이 아니며, 그렇기에 그는 또한 하나님 신앙을 메시야 사상의 의미 안에서 기능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긴다. 만약 하나님 신앙이 미신적인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미신이 되는 셈이다. 만약 하나님 신앙이 자유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만약 그 신앙이 경험들을 종교적으로 고정시키고 그래서 미래를 향한 메시야적 초월을 방해한다면, 그것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경험, 실천과 분석을 통하여 하나님 신앙이 해방하고 자극하고 동기를 주면서 현실적인 비참을 실제로 극복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이러한 기능적 비판은 사라진다. 하나님 신앙의 실천에 대한 비판은 실천에 의해서 반박된다. 이것은 맑스와 블로흐의 기능적 종교비판의 동일한 차원이다.

2. 이러한 차원의 배후에는 다른 하나의 차원이 드러난다. 그것은 모세의 형상금지의 동기이다. 바알화된 야훼종교에서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형상금지를 통하여 야훼와 바알 사이의 경계선을 날카롭게 그었다. 그리스도교가 지배하던 세계의 정치적 종교들 가운데서 십자가의 신학과 십자가를 뒤따르는 삶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우상화를 비판했다. 블로흐의 무신론은 유대교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존재를 표상화하는 것을 철저히 금지한 모세의 형상금지의 인상 아래 있다. 종교적 경험으로부터 종교적 표상들이 만들어진다면, 이 표상들은 이 경험을 확정적으로 기술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이 표상들은 경험을 고정시키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새로운 경험으로 나아가는 길을 차단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험은 상징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른 경험으로 초대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자신을 개방시키고 초월의 운동으로 초대하려고 한다면, 늘 열려 있고 유동적이어야 한다.
기원의 신화는 사람들을 언제나 다시금 동일한 기원으로 데려간다. 이것은 전체의 회복(restitutio in integrum)을 형상화한다. 종말론적인 표지들은 사람들을 항상 동일한 것으로부터 탈출케 하고, 새로운 삶의 경험으로 초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변화의 표지들로서 그 자체로서 변화될 수 있는 표지들이다. 블로흐의 상징론에서는 "새로운 삶(incipit vita nova)"을 나타내는 상징들에 대한 편애가 드러난다. 그가 종교적 상징들을 종말화하기 위하여 탈신화화하는 것은 유대교의 메시야적 전통 안에 근거한다.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하면, 억압하는 신들과 마귀들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땅은 인간적인 것이 되고, 살 만한 것이 된다. 메시야의 시대가 온 누리에 형상금지를 실현할 것이라는 것은 메시야 사상의 이념이다. 메시야 시대는 세계를 너무나 변화시키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이 형상들 안에서 중첩되고 소외된 세계를 버릴 수 있게 되고, 그리하여 이 세계 안에서 고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3. 그리고 이러한 형상금지의 차원 배후에는 세 번째의 메시야적 차원이 드러난다. 카발라 신학의 전통에 따르면, 메시야적 세계는 비유가 없는 세계가 될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비유와 비유의 대상이 더 이상 서로 관련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더 이상 모방할 필요가 없고 더 이상 모방할 능력도 없는 한 존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창조, 신앙과 경험, 의식과 존재의 거리는 사라진다. 바울의 종말론도 이러한 환상을 포함하고 있지 않는가? 모든 권세들이 멸절되고 죽음이 멸망당하면, 그 때에는 "하나님이 만유 안에서 만유가 될"(고전 15, 2) 것이다. 하나님이 "만유 안에서 만유"가 되면, 그 때에는 상징들, 비유들, 표상들과 실체들을 통하여 연결되어야만 했던 하나님과 세계 간의 존재론적인 거리는 사라진다. 모든 것 안에 거하고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이질성(異質性)과 인간의 하나님 소외는 끝장난다. 그러므로 거기서는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이질성과 인간의 소외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의 상징들과 비유들도 끝장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역사적으로 저 고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포로가 된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것들은 "이방에서 부르는 주님의 노래"(시 137, 4)이다. "만유 안에서 만유가 되는 하나님"은 더 이상 모방할 능력이 없고, 모방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대변될 필요가 없고, 그 어떤 것으로도 매개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환상은 비유들과 상징들, 표지들과 암호들을 무용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가까움이다.
이 점은 신학적 개념들에도 적용된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은 역사적인 엑소더스 경험에 근거해 있고, 만물에 충만한 영광을 미리 지시하지만, 아직은 이스라엘이 탈출해 나온 이질성과 노예생활에 참여하고 있다. 영광 자체는 - 유대교의 카발라 신학에 따르면 - 지금까지는 그 원천에서 나오지 못한 빛 안에서 빛난다. 아무도 보거나 듣지 못한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세계를 변화시키고 변모시킬 것이다. 역사 안에서 필연적으로 소원(疎遠)해진 하나님 표상들과 관련시킬 때, 하나님의 나라는 "무신론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지는 저 하나님 표상들은 메시야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그러한 표상들은 무용하게 될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블로흐의 진술들이 이중적이고 모순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이 부분에서 그는 여전히 메시야적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하나님을 내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테제를 무관심하게 보지 않으려고 한다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모순되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대단히 양면적이다. 만약 이것이 단순한 환원(還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나라는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라고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을 메시야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면, "하나님"은 세계 밖에서 그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서 세계 안에 머무는 영광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로부터 분리되고 세계 밖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실제로 더 이상 내포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다음과 같은 문장도 역시 이러한 양면성을 갖는다. "이러한 종교적 타율성(他律性)과 사물화되지 않은 그 실체는 교회의 신학에서 완전히 해소된다..." 이것은 인간의 자율성으로 해소되지 않고, "교회의 신학"으로 해소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존재한 피조물의 문지방"을 넘어선다고 말하는 그 다음의 문장이 가리키듯이, 그리고 헤겔과 유사한 내용에서 추측하건대, 이것은 "우리 안의 하나님"인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 안에 내주(內住)한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영의 임재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 안에서 종교적 타율성과 사물화된 실체는 실제로 해소된다.
"엑소더스의 하나님이 나라의 하나님으로 완성되고, 야훼가 이 영광 안으로 해소된다"는 문장도 역시 내 생각으로는 메시야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엑소더스의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나라의 하나님으로 완성시킨다. 그렇다면 이 완성은 역사적으로 계시되고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진 야훼의 형태가 영광의 형태로 "해소되는 것"이다. 예언자들의 환상에 따르면, 그 영광은 "온 땅에 충만하다"(사 6, 3).

3. 메시야 사상의 대가(對價)

게르숌 숄렘은 "유대교의 메시야 이념"에 관한 그의 논문 끝부분에서 유대 민족이 세계에 선사한 이 이념 때문에 치러야 했고 지금도 여전히 치르고 있는 대가를 언급했다. 메시야 이념의 강점은 유대인의 유랑생활(디아스포라)이라는 약점을 수반한다. 유대인은 메시야적인 귀향을 꿈꾸었기 때문에, 유배생활 중에서도 역사에 집착할 마음을 갖지 못했다. 이방인들 가운데서 흩어져 살았던 유대 민족은 메시야적 희망 때문에 생존을 지탱할 수 있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유대인은 "내년에는 예루살렘으로"라는 희망 속에서 살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은 현재에 마음을 다 뺏겨 살 수는 없었다. 메시야 이념은 잠정적인 것과 임시적인 것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다. 잠정적인 것과 임시적인 것은 자신을 내어 주지 않고 보존하며,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다. "희망 속에서 산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기도 하다." 유대교에서 메시야 이념은 그 어떤 것도 궁극적으로 행할 수 없고 성취할 수 없는 "유예된 삶"을 강요했다. 유대인이 구체적인 것에 어쩔 수 없이 집착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아우슈비츠를 벗어나 시온으로 귀향한 후였다. 물론 이 귀향은 시오니즘(Zionism)이라는 메시야적인 색깔을 띠고 있었지만, 일종의 종교적인 초역사(超歷史: Metageschichte)에 빠질 순 없었다.
블로흐의 철학적 메시야 사상도 역시 세계를 유동적인 것으로 이끌고 간다. "주어진 종교적 유산의 정수(精髓), 즉 이 종교의 전체적 희망의 회상(回想)이 되겠다는 그러한 깨달음-양심(Wissen-Gewissen)은 동시에 세계를 굉장히 유동적으로 이해하며, 세계가 희망이 믿는 그 굉장한 것을 향해 나아간다고 이해한다. 이 희망은 '세계는 좋은 거야'라고 믿는 능동적인 희망을 부추긴다." 메시야 이념에 의해 세계와 세계경험이 이끌려 들어가는 이러한 유동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블로흐는 "열려 있는 세계과정", "과정적 질료"와 "지구의 실험 세계"의 상징들을 풍부하게 섞어 가며 사용한다.
이것은 한 편으로는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그 어떤 것도 궁극적이지 않다. 모든 것은 열려 있다. "아직 일루(一縷)의 희망은 있다." 희망은 실망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희망일 수가 없을 것이다. 오직 희망만이 실망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 어떤 실망에 의해서도 파괴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은 그 어떤 것도 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게르숌 숄렘이 언급한 약점도 있다. 그 어떤 것도 궁극적으로 행해지지 않으며, 모든 것은 잠정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유동성" 안에서 사는 삶, 더욱이 "굉장한 것"에 대한 희망의 "굉장한 유동성" 안에서 사는 삶은 오직 "늘 유예된 삶"일 수 밖에 없다. 모든 발언은 개방적이고, 모든 사상은 유동적이며, 모든 행위는 취소가능하다. 모든 것은 모름지기 "실험"일 뿐이다. 실존의 핵심은 포기되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보존하고 억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하기 때문에 항상 잠정적인 이러한 메시야적 생활와 사고 안에는 궁극적인 것, 구체적인 것에 대한 망설임 없는 투신, 무조건적인 것에 대한 쉼없는 헌신은 어디서 그리고 무엇을 통하여 이루어지는가?
비록 우리가 희망 안에서 사는 메시야적인 삶을 유예된 삶이라고 부정적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선취된 삶이라고 긍정적으로도 평가하고, 잠정적인 것의 역동성 안에서 사는 삶을 늘 "아직은 현실이 아닌 것"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지금 벌써 가능한 것"을 통해서도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질문은 "희망의 원리"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비판으로서 여전히 남아 있다.
유대교적 전통에 따르면, 메시야 시대는 옛 세계의 죽음의 고통과 새 세계의 탄생의 고통과 더불어 시작된다. 그리스도교적으로 보자면, 이 시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더불어 만인을 위해 대리하는 이 한분에게서 이미 시작되었다. 탄식하는 피조물에게 메시야 시대를 열어 주고 소외된 인간에게 메시야적인 삶을 열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비밀 안으로 자신을 던져 넣은 예수의 투신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이 세계의 내적인 비밀 안으로 자신을 던진 그의 투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희망은 오로지 구체적인 것에 대한 온전한 자기투신을 통해서만 실천된다. 이 투신은 유동상태도 아니고, 열려 있는 과정도 아니고, 단순한 실험적 생활태도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메시야의 십자가와 부활의 빛 안에서 살고 죽는 역설이다. 그렇다면 이 현실 안에서의 사랑의 성육신이라는 역설적인 반대운동이 없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 안에서의 현실의 초월도 없으며, 생명의 희생이 없다면, 새로운 지평으로의 전진도 없다. 성육신 운동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희망의 대상만이 되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여기서 이미 체험된다. 십자가에 달린 분과의 사귐 안에서 희망하며 사는 참된 생활은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는"(고후 6, 9) 삶으로 밖에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성의 역설이 없다면, 가능성의 변증법은 오로지 하나의 가능한 변증법으로만 머물고 만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을 신학적으로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특히 1985년의 변화된 세계상황 안에서, 철학적 근거를 갖든 신학적 근거를 갖든, 희망 자체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60년대 초반인 그 당시에 우리에게 확신을 주고 우리를 열광시켰던 것은 행동 속의 희망, 능동적이고 전투적인 희망이었다. 승리에 이르기 위하여 이 희망은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에서 세계과정의 우호적 경향들과 동맹할 수 있었다. 오늘 날 우리에게 거역할 수 없이 분명해진 점은 우리가 마지막 시대(귄터 안더스)에, 다시 말하면 핵으로 인한 인류의 멸망이 언제나 가능한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시대에, 대량참상과 아사(餓死)가 "제3세계" 국가의 국민들을 덮친 시대에 살고 있고, 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가능성은 객관적으로는 더 제한되고, 주관적으로는 더 분명해졌다. 즉 "마지막이 가까왔다." 그러나 이것은 행동 속의 희망이 저항 속의 희망으로 변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실로 넓은 가능성 영역은 좁은 위험 영역 안의 변증법적인 희망이 되어야 한다. 실로 변증법적인 가능성의 희망은 역설적인 "희망에 맞선 희망"이 되어야 한다. 오늘 날 진정하고도 인간적이며 신적인 희망은 단지 "그것은 가능하다"고만 말하지 않고, 제일 먼저 다음과 같이 말한다: tamen(그럼에도 불구하고)!

몰트만 저, 이신건 옮김,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역사(1998, 대한기독교서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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