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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0 (16:07) from 80.139.162.26' of 80.139.162.26' Article Number :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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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몸, 그리고 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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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몸, 그리고 의례

                                             박상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 서론

이 글의 목적은 몸과 그의 구체적인 실천인 의례가 종교 안에서 연결되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사회문화의 변화와 종교현상의 연결 고리를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현대사회에서 몸은 상징과 주체의 이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은 문화적․사회적 성격을 읽어낼 수 있는 상징인 반면, 구체적인 실천 행위를 통해 자기 정체성 혹은 자기 실현의 주체로서 드러난다. 몸은 개별 인간 및 종교집단과 사회문화적 환경과의 상호반응의 장이자 매체인 의례에서 상징과 주체로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몸을 일종의 문화상징으로서 해석하고자 할 때, 또 다른 몸의 성격인 그의 주체적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 몸은 단순히 생명력을 유지하는 유기체적 물질이 아니라, 사회적․종교적 행위에 의해 문화가 살에 새겨지고, 역으로 문화를 재구성하는 주체적인 몸으로 이해된다. 몸은 인간의 욕망을 구체적인 행위로 표현하는 도구이자, 한 사회의 공유된 의미체계들을 분석해 낼 수 있는 문화 코드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화상징으로의 몸과 그의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의례를 종교학의 분석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종교학의 연구 영역을 문화이론의 영역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더군다나 종교를 고정된 실체로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나의 운동으로서 이해한다면, 그 변화의 중심에서 기능하는 몸에 대한 분석은 종교학의 관점에서 중요한 분석대상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 글이 특히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문화적 환경과 몸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몸에 각인된 관념들의 변화를 종교와 연결시켜서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현대 신종교, 또는 뉴에이지종교(New Age Religion)에서 몸과 그의 구체적인 실천인 의례를 축으로 발생하는 종교현상을 종교학에서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그 해결의 가능성을 의례에 대한 새로운 논의에서 모색하고자 한다.  
  
2. 몸에 대한 시선들   

몸에 대한 시선은 종교와 사상, 관습 등을 포함한 사회문화의 환경에 따라 다양하다.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쾌락주의자들은 쾌락이 축복 받은 삶의 시작이자 종국이라고 간주하고, 비록 정신적 쾌락에 비해 수준이 낮지만, 육체의 쾌락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반면에, 동시대의 오르페우스교(Orphism)에게 몸은 순수한 영혼을 감금하는 무덤으로 여겨졌다. 그들에게 몸은 금욕의 대상이었고, 영혼은 정화되어 사멸의 육체에서 벗어나 신의 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한편,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몸은 그리스도와 아담의 원죄를 중심으로 성스러움과 속됨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몸에 대한 분석은 특정 종교 혹은 사상들이 몸의 구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혹은 몸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지 하는 관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몸이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관념이나 우주론과 구원론 등의 교리적․신학적 입장에서 몸을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간주하는 논의들을 접할 수 있다.
최근의 종교학에서 몸에 대한 관심은 신학적․교리적 차원의 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윌리엄 라프뤼르(William R. LaFleur)는 몸에 대한 종교학의 연구주제로서 6가지를 제시한다. William R. LaFleur, "Body", Critical Terms for Religious Studies, ed. Mark C. Taylor,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pp.36-53.

첫째로 종교적 신념체계와 의례를 통한 자연적 몸의 유지와 신체의 변형에 대한 연구이다. 그에 의하면, 자연적인 몸을 유지하고 준수하려는 입장은 유교에서 찾을 수 있다. 유교는 효와 조상숭배라는 신념체계에 근거한 자연적 몸의 유지를 강조한다.
이와 반대로 몸의 변형을 추구하는 신념체계가 존재하는데, 몸의 변형방식에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신체의 일부를 잘라 내거나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할례, 문신, 금식, 태형, 입술이나 발의 점진적인 변형 등이다. 다른 하나는 직접적인 신체의 물리적 변형 없이 신체 변형을 추구하는 것으로, 요가, 몸의 치장, 가면쓰기 등으로 변형을 추구하는 태도이다.
둘째로 종교학의 연구주제는 현대의학 기술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성형수술, 인공수정, 복제, 임신과 피임의 용이성, 장기이식, 안락사 등은 근대적 가치관에 기초한 신체 일부의 제거나 몸의 재형성을 야기한다.
종교학의 세 번째 연구주제는 두 번째의 주제와 맞물려 있다. 한쪽으로는 서구사회에서 현대의학이라는 합리적인 ‘놀이하는 신’(playing God)의 강력한 역할에 대한 이념적 비판이  제기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현대의학에 의한 장기이식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일본의 종교집단이나, 인공유산에 대한 반대하는 가톨릭과 같은 종교집단들이 존재한다. 현대의료 기술에 의한 합리성이 몸에 침투하는 이 영역에서 생명윤리나 종교적 신념의 정당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넷째로 종교집단과 사회의 지배집단에 의해 실행되는 권력관계를 종교학은 분석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계보학적 분석을 통해 병원, 감옥, 광인의 수용소 등에서 실행되었던 권력기제의 속성을 밝혀 내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집단의 경우도 명백한 검증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섯째로 비서구사회의 종교집단의 시각에서 현대의학의 인위성은 서구 그리스도교의 세속화된 형태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근대적 사유체계인 육체와 정신의 분리는 인간을 영과 몸으로 분리하여 영 중심의 사유체계를 낳았던 서구 그리스도교에 기반하고 있다. 중심 영역인 정신 혹은 영적 세계로부터 육체를 배제함으로써 육체를 조작하고 변형시킬 수 있는 과학의 실험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교학의 분석 대상은 종교학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향한다. 왜 종교학은 종교제도와 신념체계, 의례에 나타난 몸의 변형과 폭력의 물음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가 하는 자기 비판의 성격을 띤다.
윌리엄 라프뤼르는 종교학이 소위 종교에서부터 사회문화에 이르는 스펙트럼 사이에서 펼쳐지는 몸을 다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의 주장에서 종교현상과 사회문화현상의 두 영역이 몸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메리 더글라스(Mary Duglas)는 몸의 상징성을 통해 사회와 종교의 관계 방식을 제시한다. 더글라스에 의하면, 고대 유대인에게서 음식규범과 청결규범이라는 분류체계 Mary Duglas, Purity and Danger: An analysis and concept of pollution and taboo, (London, Boston and Henley: Routledge and Kegan Paul, 1980[1966]).
에 의한 성과 속의 구분은 한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고대 유대인이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을 구분했을 때, 그 분류의 방식은 의료 유물론자(medical materialist)들의 견해처럼 위생학의 차원에서 논의된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의 체계적인 분류체계에 기초한 것이다.
고대 유대인이 이런 규범들에 의해 불결한 대상을 규정하는 행위는 단순히 육체적 감각에 기인한 지각현상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공유된 분류체계에 기초한 행위인 셈이다. 음식규범과 청결규범이라는 학습과 훈육을 통해 몸에는 그 사회의 관념과 규범이 새겨지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몸의 성격, 즉 일정한 형식을 지닌 인식체계, 혹은 사회적 문화적 관념에 의해 구성된 ‘몸의 스키마’(body schema) 앞의 책, p.36.
가 이루어진다.
문화상징으로서 몸의 성격은 원시사회에서만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더글라스의 분석처럼 몸이 한 사회의 상징으로서 사회체계와 문화의 의미층들을 반영한다면, 그러한 몸의 역학은 현대사회에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브라이언 터너(Bryan S. Turner)는 현대사회의 소비주의의 특징인 쾌락, 욕망, 차별화와 유희를 후기산업사회, 후기포디즘(postfordism),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다양한 과정에 의해 생산된 문화환경의 일부분으로 규정한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그의 현대사회에 대한 성격 규정보다는 그와 같은 문화환경에서 드러나는 ‘몸의 이미지’(body image)이다. 대표적인 예를 터너는 서구사회의 청년문화에서 발견한다. 그에 의하면, 다양한 신체 부위에 매달린 고리, 문신, 장식물 등에 의한 몸의 변형은 새로운 청년문화로서 ‘신부족주의의 집단상징’(collective symbol of tribal belonging) Bryan S. Turner, The Body & Society: Explorations in Social Theory, (London, Thousans Oaks and New Delhi: Sage Publications, 1999[1996]), pp3.-4.
인 것이다. 청년들은 파편화된 사회구조, 경제적 부, 취업, 대중매체, 문화상품 등에 직면해서 자신의 욕망 내지 욕구를 몸의 변형을 통해 드러낸다. 그들에게 몸은 문화환경에 대응하는 하나의 기획(project)으로 인식된다.
욕망의 기획으로서 몸은 ‘다이어트’(diet)와 ‘성형수술’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좋은 몸의 이미지는 자기 이미지(self-image)에게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보기 좋다는 것은 성적인 매력을 의미한다.”는 생각은 다이어트와 인간의 정체성과의 관계를 말해준다. 타자에게 매력적인 존재이기 위한 여성들의 ‘살빼기’와 ‘얼굴 고치기’는 의료기술, 세계의 패션, 소비주의와 맞물려 있지만, 단순히 ‘성적 매력’을 발산하려는 욕망의 분출만은 아니다.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몸매 관리와 성형수술에 남성까지 가담하는 사회현상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사회에서 몸의 변형은 소비-자본주의사회에서 파생된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터너의 말처럼, 서구사회는 전통적인 서구사회의 ‘아폴로적인 체제’(Apollonian system)에서 감각과 쾌락주의에 기초한 ‘디오니소스적인 비교’(Dionysian cults)의 변종(變種)들의 세계인 포스트모던 사회로 이행했고 앞의 책, pp.23-24.
, 또한 몸도 중세의 ‘금욕주의적인 몸’(ascetic body)에서 초기 자본주의사회의 ‘노동하는 몸’(labouring body)을 거쳐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욕망하는 몸'(desiring body)으로 이행되었다. Bryan S. Turner, 앞의 책, p.2.
즉, 사회구성론자(social consturctionist)의 주장대로, 몸은 하나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앞의 책, p.27.

몸의 역사는 몸이 사회문화의 체계 속에서 구성되어왔고, 그 구성방식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권력기제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서구사회의 고대와 중세에서 몸을 통제하는 주체는 종교였다면, 초기 자본주의사회와 후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각각 국가권력과 소비-문화산업이다. 초기 자본주의사회에서 몸은 합리적인 도구로서 노동력에 기초한 생산관계에서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적절한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보건체계, 식생활, 인구 등의 영역에서 몸은 지배집단의 통치 대상 Anthony Synnott, The Body Social : Symbolism, Self and Society, (London and New York : Routledge, 1993), p.26.  이러한 몸의 정치학의 구체적인 사례는 영국에서 찾을 수 있다. 1853년 영국의회는 1795년 제너(Jenner)에 의해 계발된 천연두(smallpox) 백신을 아동에게 강제 접종시키는 조항을 인준했다. 앤토니 시노트(Anthony Synnott)는 이러한 영국의회의 조치를 몸의 정치적 해부(political anatomy)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전환점으로 간주한다. 그에 의하면, 영국정부는 의회결정이 이루어지기 10년 전부터 인구, 대중과 개인에 대한 권력을 확대해 왔다. 입법부는 공장과 탄광의 노동조건과 주택에 관한 관여했고, 지방의회나 시의회는 쓰레기 문제와 공동묘지, 물과 음식의 질, 그리고 환경문제들을 법적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1853년에 이루어진 의회의 결정은 질적․양적으로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기초로서 생산력의 증강이라는 국가정책에 의한 몸의 정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후로 영국은 전염병예방조항(1866)을 통해 창녀들에 강제검사를 실시했고, 예방접종조항(1871)을 통해, 그 접종 대상을 아동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했다.
이 된 것이다. 이와 반대로 후기 자본주의사회에서 몸은 소비주의(consumerism), 상업주의(commercialism), 쾌락주의(Hedonism) 등의 문화환경 속에서 욕망의 주체로서 재구성된다. Bryan S. Turner, 앞의 책, pp.3-5. 그러나 터너의 시각에서 욕망의 주체로서 몸은 사회문화로부터 완전한 자율성을 획득한 주체가 아니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몸은 소비와 쾌락의 기제들에 의해 걸려 있는 제한된 존재일 뿐이다.
       
사회구성론자의 시각에서 몸은 사회문화의 환경에 의해 훈육되고 통제되는 객체로서 이해된다. 몸의 문화적 상징성은 그 사회문화의 다양한 요소들을 반영하는 일종의 ‘거울’일 뿐이다. 비록 ‘사회적 몸’(social body) 내지 몸의 정치(body politic)의 논의가 자연적인 몸의 규정에서 사회적 몸으로 이행함으로써, 몸의 구성방식을 둘러싼 권력관계와 몸에 대한 비판의 흐름을 형성하고, 페미니즘(feminism)에서 여성해방운동의 한 전략을 구성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몸의 주체적 성격 자체에 대한 분석은 집중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마가렛 로크(Magaret Lock)와 낸시 쉐퍼-휴이즈(Nancy Scheper-Hughes)는 지금까지의 몸의 논의와는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몸을 개별적인 몸(individual body), 사회적인 몸(social body), 몸의 정치(body politic) 등 세 영역으로 분류하여 설명하면서, Magaret Lock and Nancy Scheper-Hughes, "Rituals and Routines of Discipline and Dissent", Handbook of Medical Anthropology, ed. Carolyn F. Sargent and Thomas M. Johnson, (Westport, Connecticut, and London: Greenwood Press, 1996), pp.45-46.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개별적인 몸은 직접적인 감각을 통한 경험의 주체라는 현상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적 몸은 자연, 사회, 문화를 생각하기 위해 몸을 자연상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몸의 정치는 출산, 성, 질환 등과 같은 영역에서 몸의 규제와 복종, 그리고 통제와 관련되어 몸을 분석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이 세 영역의 몸은 마음이 담긴 몸’(mindful body)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들에 의하면, 몸을 물질과 마음으로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유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에서 시작하여 데카르트(René Descartes)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앞의 글, pp.46-47.
자연에서 추출된 인간의 고차원적인 본질인 합리적 정신은 인간의 몸을 포함한 자연을 객관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특히, 생물학에 자유로운 실험정신을 불어넣어 유물론적인 의학의 사유체계에서 몸을 해부하고 실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첨예한 몸과 마음의 분리는, 비록 20세기 초 정신치료(psychiatry)와 심신의학(psychosomatic medicine)을 통해 몸과 마음을 재결합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환자가 겪는 고통의 문제를 완전히 심리적인 원인이나 기질적인(organic) 문제로 환원시켜 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마음이 담긴 몸’의 개념을 통해서 이러한 이분법적 함정을 비켜가려는 그들의 입장에 대해 앤드류 스트라더른(Andrew J. Strathern)은 그들 역시 그 함정에서 완전히 탈출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Andrew J. Strathern, Body Thoughts, (Ann Arbor :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6), pp.2-4.
그들이 몸은 ‘물리적이며 동시에 상징적인 인공물(artifact)’ Magaret Lock and Nancy Scheper-Hughes, "The Mindful Body", Medical Anthropology Quarterly 1(1), 1987, p.7.
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했을 때, 몸을 마음과 분리된 실체로서 별도의 의미와 측면들을 수반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스트라더른은 ‘마음이 담긴 몸’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신체화’(embodiment) 앞의 책, p.2.
라는 용어를 주장한다. 신체화는 구체적으로 여기에 상호 현존하는 인간과 그들이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감각과 감정들의 완전한 결합을 의미한다. 그가 제시하고 있는 신체화의 개념은 메를로-퐁티(Maurice Meleau-Ponty)의 현상학에 기초한 것이다. 스트라더른은 메를로-퐁티의 철학이 지닌 장점을 데카르트적인 이분법의 극복에 있다고 본다. 앞의 책, pp.36-39.

그의 해석을 따르면, 메를로-퐁티는 일차적으로 인간의 모든 정신작용은 몸의 특성에 의해 제약된다고 본다. 그가 몸의 특성을 말한 것은 지각의 과정이 단순히 순수한 감각의 인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이데거(M. Heidegger)의 개념대로 ‘세계 내 존재’(Being in-the-World)라는 상황과 부딪치면서 이루어진다. 메를로-퐁티는 ‘장’(field)과 ‘지평’(horizon), ‘위치’(position) 등의 개념을 사용하면서, 지각은 언제나 인간 주변의 모호성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상황이나 장에 의존해 있는데, 그 장은 바로 문화적 요소들과 통합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기억’(memory)은 ‘과거의 지평’(the horizon of past), 혹은 선험적 학습과 연관을 맺는다. 메를로-퐁티는 그 기억의 신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지가 잘린 환자의 예를 제시한다. 그 환자는 사지가 잘렸음에도 가끔 그 부분을 느낄 수가 있는데, 이런 사실은 지각인 신체적인 기억(bodily memory)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트라더른은 이런 메를로-퐁티의 사유가 단순히 모든 지각행위를 기억의 영역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비판에 반대한다. 그는 메를로-퐁티가 상황, 혹은 장에 제한된 신체적인 기억을 언급한 것은 역사적으로 몸에 새겨진 성격, 혹은 지각 그 자체의 성격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메를로-퐁티의 목표는 몸의 개념을 단순히 대상과 기계적인 물리학에서 떼어내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point of view on the world)으로 재정의하려는 데 있었다.
메를로 퐁티의 몸 이론에서 중요한 부분은 자연, 사회, 문화 등의 환경에 대해 반성을 통한 몸의 적응에 있다. 일차적으로 몸은 미세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조광제, 「타자론적인 몸 철학의 길」, ꡔ몸 또는 욕망의 사다리ꡕ, 이거룡 외, (서울: 한길사, 1999), pp. 156-160.
구조화된 몸은 환경과 일치될 때만 자유롭게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데, 몸과 환경의 불일치에서 반성적 사유가 일치를 위한 매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메를로-퐁티가 제시한 몸은 환경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자신을 적응시켜 나가는 생각하는 몸 내지 주체적인 몸이면서, 타자와 상호 주체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토대인 셈이다.

3. 몸과 종교

현재의 몸 연구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신체성(human physicality)에 대한 표현과 상징들에 대한 관심과 몸의 담론적 텍스트 구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어떻게 몸이 보여지고 묘사되는지 많은 것을 알려 주지만, 몸이 서술되고 구성되도록 허용하는 주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Philip A. Mellor and Chris Shilling, Re-forming the Body : Religion, Community and Modernity, (London: Sage Publications Ltd, 1997), p.5.

이런 점에서 종교학은 문화상징으로 몸과 그의 구체적인 실천의 장으로서 의례를 분석할 때, 의례라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몸이 주어진 환경을 스스로 재구성하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앤토니 기든슨(Anthony Giddens)는 현대사회의 특징을 ‘자아 정체성’(self-identity)과 ‘성찰성’(reflexivity)의 개념으로 표현한다. 과거에 인간은 전통적 질서체계가 제공하는 범주에 의해 수동적으로 정체성을 확립해왔다면, 탈전통 혹은 후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선택적인 삶의 방식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성찰적 기획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전통사회가 향유했던 권위의 몰락, 과거에 일상적으로 경험되었던 출산과 죽음, 광기, 성(sexuality)의 영역들로부터의 격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 대한 의존, 영상매체나 언론을 통한 매개된 경험 등은 분절화된 사회의 성격을 말해준다. Anthony Giddens, ꡔ현대성과 자아정체성: 후기현대의 자아와 사회ꡕ, 권기돈 역, (서울: 새물결, 1997), pp.151-161.
이런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신을 형성하기 위한 성찰적인 삶의 양식이 요구된다.
현대사회의 성격은 그의 ‘몸의 성찰성’ 앞의 책, pp.177-189.
이란 개념에서도 잘 나타난다. 몸은 단순한 실체가 아니라, 외부의 상황과 사건에 대응하는 하나의 실천양식으로서, 일관된 자아 정체성을 유지하는 과정의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과거의 문화환경에서 몸은 전통적인 기준에 의해 제약되었다. 비록 전통사회에서 인간은 화장이나 의상의 양식을 통해 몸의 욕망을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그 폭은 한정되어 있었다. 반면에 현대사회에서 몸은 몸이나 그에 기초한 행동은 환경에 의해 주어진 대로 고착되지 않는다. 몸은 자신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수단이자, 그를 통해 자아 정체성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에서 ‘몸 관리’가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는 것이다. 성형수술, 다이어트, 규칙적인 운동, 명상, 요가 등은 이러한 몸 관리의 수단이 된다.
앤토니 기든슨이 제시한 ‘현대성’(modernity) 내지 ‘현대사회’의 성격은 종교의 영역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소위 뉴에이지종교는 몸과 마음의 이분법적 도식을 폐기하고, 전일적인 몸을 강조하면서 의례 내지 수행 중심의 종교생활을 추구한다.
마리오나 보먼(Mariona Bowman)은 뉴에이지종교의 특징을 ‘치유종교’에서 찾는다. 뉴에이지종교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혹은 구원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치유받기 위해서 혹은 치유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그 해답을 “전일적 치유”와 “자기 치유”(do-it-yourslef)에서 치유의 방법을 발견한다. Mariona Bowman, "Healing in the Spiritual Marketplace: Consumers, Courses and Credentialism", Social Compass 46(2), 1999, pp.181-189.

뉴에이지종교가 제시하는 치유의례의 중심 코드는 사회적․문화적 환경에 대한 몸의 재구성이다. 그들은 파편화된 사회구조와 칼날에 의해 양분화된 감성과 이성, 과학과 종교, 몸과 영혼, 그리고 현대성이 지닌 모호함과 불확실한 세계, 그리고 몸의 욕망에 대한 통제 방식을 치유의례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이런 뉴에이지종교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들의 전략이다. 우터 하네그라프(Wouter J. Hanegraaff)에 의하면, 뉴에지종교는 일차적으로 현대물리학, 정확하게 신과학의 관점과 설명들에 주목한다, 그 이유는 Wouter J. Hanegraaff, New Age Religion and Western Culture: Esotericism and the Mirror of Secular Thought, (Leiden, New York and Köln: E.J. Brill, 1996). p.62.
신과학이 영적 세계를 정당화할 수 있는 방식들을 제공하며, 둘째로 기존의 과학이론들을 반박할 수 있는 무기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신과학은 실험결과 자체에 대한 의미보다는 그에 대한 철학적․종교적 해석에 주목한다. 즉, 신과학은 과학의 분석과 그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무시하면서 하나의 목표, 즉 “통합된 세계관”(unified worldviews), 앞의 책, pp.63-64.
유기적․전일적․생태학적 세계관 Fritjof Capra, The Turning Point: Science, Society, And the Rising Culture,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82), pp.81-82.
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통합된 세계관에서 물질과 정신의 구분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현대물리학은 물질과 빛은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밝혔다. 현대물리학은 더구나 한 실체가 입자나 파동 중의 하나로 나타나도록 만드는 것은 관찰자의 의식을 포함한 실험환경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처럼 의식이 물질세계의 현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과학의 관점은 뉴에이지 종교집단에게 매력을 주는 부분이다.
물리적인 우주는 신과학의 통합적 세계관에 의해 영적으로 포장된다. 신과학을 지지하는 자들에게 우주는 시계처럼 주변의 환경과 상관없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닫혀진 체계가 아니라,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관계하는 열려 있는 체계로서, 그리고 스스로를 조직하는 살아 있는 체계로서 간주된다.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주는 마음 혹은 신(God)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신이나 우주정신은 실체로서의 신이나 정신이 아니라, 관계의 유형으로서 존재한다. Wouter J. Hanegraaff, 앞의 책, pp.136-139.

신과학이 전일적 치유나 자율적 치유의 관념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캐더린 알바니즈는 그 예로서, 리차드 겔버(Richard Gerber)의 “진동의학”(vibrational medicine)과 디팍 초프라(Deepak Chopra)의 “양자치유”(quantum healing)를 제시한다. Catherine L. Albanese, "The Magical Staff: Quantum Healing in the New Age", Perspectives on the New Age, edited by James R. Lewis and J. Gordon Melton,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2), pp.75-78.
리차드 겔버는 양자역학의 이론들을 토대로 빛, 혹은 전자기력이 응결된 상태를 물질로 간주한다. 인간의 몸도 물질이기 때문에 빛이 응결된 상태이고, 따라서 인간의 몸에는 생체에너지가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치유는 인간의 몸에 있는 에너지를 활성화시킴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에너지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우주의 법에 일치하여 몸을 진동시켜 우주의 자연적 에너지와 공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디팍 초프라는 인간의 의식이 신체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따라서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영역, 즉 파동에서 입자로, 또는 입자에서 파동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처럼, 의식은 육체에, 육체는 의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게 육체와 정신은 분리된 영역들이 아니라, 상호관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쌍으로 간주된다. 그는 이런 몸의 성격을 “생각하는 몸”(thinking body) 혹은 "양자역학적 몸"(quantum mechanical body)으로 표현한다. Deepak Chopra, Quantum Healing: Exploring the Frontiers of Mind/Body Medicine, (New York, Toronto, London, Sydney, and Auckland, Bantam Books, 1989), pp.106-107.

치유와 관련해서 뉴에이지종교의 특징은 채널링(channeling)이다. 채널링은 말 그대로 영적인 접촉(spiritual contact)을 의미한다. 비록 채널링은 새로운 현상이라고 볼 수 없지만, 외부에 존재하는 영적 실체가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인간 자신과 우주를 해석한다는 점에서 뉴에이지종교에게 중요한 의미와 기능을 한다. 또한 그 정보에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담겨 있다는 점은 뉴에이지 종교집단의 치유의례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4. 몸과 의례

우리가 몸을 생각하는 방식이 아닌, 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몸의 보여주는 세계는 종교학의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게 된다. 더구나 몸이 사회문화의 변동과 함께 다양한 성격들을 띠고 있다면, 그 사회문화에서 전개되는 종교문화에서 몸의 변화하는 측면들을 읽어낼 수 있다. 또한 몸의 변화는 종교의 신념체계와 의례의 변화를 고려해서 살펴보아야 할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의례를 정의할 때, 의례를 전통과 결부시키면서 ‘옛날 것’(ancient), ‘불변하는 것’(unchanging)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John D. Kelly and Maratha Kaplan, "History, Structure and Ritual",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 vol. 19(1990), p.120.
이런 입장에 있는 의례연구는 주로 의례의 절차와 상징에 대한 분석에 집중하고, 또한 의례를 단지 사상을 표현하는 역할에 국한시킴으로써 의례에 대한 입체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강돈구, 「종교의례 연구의 경향과 과제」, ꡔ종교연구ꡕ, 제17집, (1999), p.5.
 
최근의 의례연구는 사회문화의 변동에 대한 의례의 반응, 사회체제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의례, 의례를 통한 문화의 이해 등에서처럼 의례연구의 주제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John D. Kelly and Maratha Kaplan, 앞의 글, p.121.
, 또한 종교의례와 사회적 의례의 성격이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입장 강돈구, 앞의 글, p.11.
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의례연구의 흐름은 사회문화의 변동과 맞물려 있는 변화하는 몸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의례분석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캐더린 벨(Catherine Bell)에 의하면, 의례에 대한 분석은 세 가지 흐름에서 진행되어 왔다. Catherine Bell, Ritual Theory, Ritual Practice, (New York and Oxford: Oxford Universty Press, 1992), pp.13-17.
첫번째 의례에 대한 분석은 막스 뮐러(Max Müller), 에드워드 타일러(Edward B. Tylor), 제임스 프레이저(James Frazer),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등의 이론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종교의 기원이나 종교적 신념의 보편성을 추구했던 그들에게 의례는 필수적인, 그러나 종교적 신념이나 이념을 표현하는 이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두 번째 의례분석은 소위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는 에밀 뒤르껨(Emile Durkheim)과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뒤르껨은 의례와 신념을 사회통합이라는 기능론적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양쪽 모두의 측면에서 종교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뒤르껨은 여전히 분석의 우선 순위에서 종교적 신념을 먼저 고려함으로써 초기의 이론들의 관점을 보여준다. 또한 모스는 종교현상과 관념이 어떻게 사회행위로부터 도출되었는지를 추적하면서 의례가 사물, 사람, 사건 등을 성스럽게 만드는 방식을 분석했다. 세 번째 의례분석은 의례의 상징체계, 혹은 의례의 기능들을 주요 분석대상으로 삼는다. 에드문드 리치(Edmund Leach), 빅터 터너(Victor Turner),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 등에 의한 의례분석은 단순히 성과 속, 혹은 사회와 종교의 도식에서 의례를 보려는 관점에서 벗어나, 의례를 문화분석을 위한 중심코드로 인식하려는 동기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심리학이나, 의사소통이론, 연극이론으로까지 확대되어 논의되고 있다.
의례분석의 흐름을 논의하면서 캐더린 벨은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즉 대부분의 의례분석들은 시종일관 사상(thought)과 행위(action)의 이분법적 대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실상 의례분석들은 사상과 행위 가운데 어느 한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논의되거나, 아니면 양자의 대립을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수행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캐더린 벨은 인류학이나 종교학에서 분석된 의례들이 왜 이런 이항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중국철학에서의 몸에 대한 로저 에임즈(Roger T Ames)의 분석 Roger T. Ames, "The Meaning of Body in Classical Chinese Philosophy", Self As Body in Asian Theory and Practice, edited by Thomas P. Kasulis with Roger T. Ames and Wimal Dissanayake,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3), pp.159 이하.  
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중국철학과 서양철학의 차이점을 병립론(polarism)과 이원론(dualism)에서 분석한다. 서구철학의 이원론은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와 무로의 파괴(destructio in nihilum)라는 우주론에서 근거한다. 즉 세계의 본질적인 의미와 질서를 주관하는 비결정적이고 무조건적인 힘, 혹은 창조주와 그에 복종하고 의존적인 피조물과의 이원적인 관계에서 서구철학사의 다양한 이원론들은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철학의 병립론은 두 개의 상호보완적인 항들로 구성된다. 두 항들은 상호 존재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들로서, 자동 발생적(auto-generative)이고 자기 결정적인(self-determinate) 성격을 지닌다.
몸(body)과 마음(mind)의 관계를 보는 입장에서도 서양철학과 중국 전통철학은 차이를 띤다. 서양철학에서 몸과 마음은 형상과 물질, 혹은 정신과 물질이라는 대립 구조 속에서 분석되어 왔다. 그래서 몸은 언제나 정신이나 영혼의 순결을 위해 정화되고 부정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반면에 중국철학에서 몸과 마음은 전혀 다른 종류가 아니다. 로저 에임즈는 몸과 마음의 상호관계성은 중국어의 이중적 성격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후(厚)는 물질의 두꺼움과 함께 너그러운 마음을 표현한다. 반면에 박(薄)은 두께가 얇다는 것과 함께 인정머리 없는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의 분석에서 보다 시선을 끄는 부분은 몸과 의례가 연결되는 과정이다. 그는 중국어로 몸이 신(身), 체(體), 형(形)으로 표현되며, 각 단어에는 물리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로저 에임즈는 신(身)이 신(伸)과 신(神)이란 단어와 의미론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즉 신은 물리적인 몸을 지니면서도 자아(self)를 소유한 몸이라는 측면에서 살아 있는 몸(lived body)를 의미하며, 또한 신(神)을 향해 뻗는(伸)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중국어에서 몸은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두 번째로 그는 형(形)을 천지와 음양의 기운이 드러난 곳을 의미한다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중국 전통철학에서 인간의 몸은 두 측면에서 고려된다. 다른 하나는 천지와 음양의 기운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마음(意)이다. 즉 인간은 천지와 음양의 기운으로 생명과 몸의 형태를 받지만, 그 몸은 동시에 인간의 마음에 의해서 다시 규정된다고 본다. 그러나 마음은 인간의 몸을 규정하는 또 다른 존재의 질서가 아니라, 인간을 우주와 조화시키도록 하는 원천(wellspring)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중국전통의 사유에서 몸은 결정되어진 사물이 아니라, 과정(porcess)에 있는 실체로서 이해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로저 에임즈는 중국 전통의 사유에서 몸이 물리적․정신적 의미를 함께 담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체(體)를 의례(禮)와 관련시켜 분석한다. 여기서 체(體)는 제기(祭器: ritual vase)를 뜻하는 풍(豊)을 매개로 예(禮)와 연결된다. 즉 체와 예는 모두가 풍자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의를 취하는 유기적 모습(organic form)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로저 에임즈는 고대 중국학자들은 예를 정의할 때 체의 의미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체와 예라는 단어 모두 질서나 순서를 의미하는 제(第)에 의해 자주 정의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태도는 예의나 예절을 올바름을 뜻하는 의(義)와 제(第)를 연결하여 몸의 적절한 순서, 올바른 절차에 따른 몸짓으로 정의하려는 관념을 보여준다. 그리고 형식을 통해 구체화된 예의나 예절은 문화의 전통으로 계승된다. 즉 예의의 개념은 체라는 몸과 함께 논의되고, 따라서 예의의 행동은 문화적 전통을 구성하기 위해 축적된 의미와 가치의 신체화(embodiment) 혹은 형식화(formalization)를 의미한다.
로저 에임즈의 분석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몸과 의례라는 두 코드를 중심으로 사회와 종교의 영역에서 예의, 혹은 예절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이다. 중국의 전통적 사유체계에서 몸은 단순히 신념을 반영하는 도구나 매체가 아니다. 몸은 천지와 음양의 기운에 의해 생성되고, 또 우주의 법칙, 즉 이(理)와 조화를 이룰 때, 외형의 측면에서는 예(禮)로 규정되고, 내면의 측면에서 덕(德)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몸의 관점에서 의례의 본래적인 의미는 사회와 종교의 두 영역 모두에서 동일하다. 다만 구체적인 의례의 종류에 따라 의례의 성격이 차이를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전통적 사유체계에서 의례는 몸짓과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라, 몸짓 자체에서 드러나는 성격을 구체화한 것뿐이다.
탈라알 아사드(Talal Asad)의 분석 Talal Asad, Genealogies of Religion: Discipline and Reasons of Power in Christianity and Islam, (Baltimore and London: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3), pp.55-79.
을 따라가면 서구의 의례이론들이 사상과 행위라는 이분법의 도식에서 전개되는 과정을 보다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서구에서 의례(ritual)란 용어는 17세기 중반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는 1771년 ꡔ브리태니카 백과사전ꡕ(Encyclopedia Britannica) 초판에서 의례는 “종교의식들을 집행하고, 특별한 교회, 교구, 수도회, 혹은 그와 같은 곳에서 신성한 예배를 실천하는 데 지켜야할 질서와 태도를 규정한 책”으로 정의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반면에 의식(rite)은 “각 나라에서 신성한 예배를 집전하는 특별한 태도(manner)”로 정의된다. 즉, 의례나 의식은 종교적 실천, 특히 그리스도교의 예배와 관련되어 정의되고 있다. 그러므로 의례는 일종의 지침서(manual)의 성격 앞의 책, p.58.
을 띤다.
그러나 의례의 정의는 1910년의 11판 ꡔ브리태니카 백과사전ꡕ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서술된다. 탈라알 아사드는 의례의 정의를 변화시킨 주요 요인중의 하나를 우선 신앙과 의례를 차별화 하는 종교개혁의 논의들에서 찾고 있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올바른 신앙이 올바른 실천보다 훨씬 가치가 있고, 이런 점에서 의례는 신화보다 원시적(primitive)이다. 이런 의례와 신념의 차별화 속에서 의례는 교리(dogma)를 상징하는 행위로 정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11판에서는 초판과 달리 의례와 의식을 구분하지 않는다.
탈라알 아사드는 초판과 11판의 결정적인 차이는 19세기의 인류학의 이론들의 영향때문이라고 본다. 인류학 이론들은 자신들의 시선을 그리스도교에서 다른 종교들로 돌렸고, 그들로부터 의례의 실천적․상징적 요소들을 발견해냈다. 즉, 의례는 어떤 것을 표현하고 상징하는 것으로, 또한 개별적인 의식과 사회집단과 관련된 “정형적인 행동 양식”(a type of routine behavior)으로 간주되었다. 더 나아가 이들 이론들은 의례의 기능을 사회학적․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의례의 영역을 종교에서 사회와 문화로 확대시켜 놓았다. 그리고 의례는 “외적인 기호”(outward sign)와 “내적 의미”(inward meaning)의 관계 속에서 해석되어지는 상징체계로 간주된다.
여기서 탈라알 아사드는 인류학자나 민족지학자들의 분석 태도에 담긴 권력적 속성을 논의한다. 이들의 목적은 의례라는 구체적 행위들에 감추어져 있는 의미들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해석 과정에서 인류학자나 민족지학자들이 스스로 의례의 상징들을 확인하고, 동시에 그것들을 해석하는, 즉 분석 의뢰자(analysand)와 분석가(analysist)의 역할 Fiona Bowie, The Anthropology of Religion, (Oxford and Massachusetts: Blackwell Publishers Inc)., 2000, p.156.
을 독차지할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탈라알 아사드는 이 해석과정에서 숨겨진 권력관계를 그리스도교의 성서주석(exegesis)과 대조하여 설명한다. 즉, 그는 성서의 문자들이 지닌 상징과 의미들은 교회의 권위에 기초하여 수행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로저 에임즈와 탈라알 아사드의 서구 의례이론에 대한 비판에서 드러나듯이, 서구의 의례이론은 대체로 상징분석에 집중하거나 의례를 실천하는 몸의 주체적 성격을 간과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현대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대응하는 뉴에이지종교, 신종교, 그리고 전통종교가 몸을 중심으로 취하고 있는 의례를 분석하기 위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캐더린 벨(Catherin Bell)과 로이 라파포트(Roy Rappaport)의 의례이론을 통해 몸의 구체적인 현장으로서 의례에 대한 분석을 모색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의례이론이 지닌 장점은 의례를 종교의례를 포함한 사회적 행위로까지 확대하며, 의례를 주어진 환경에 대한 대응양식으로서 본다는 데 있다.
의례는 몸짓이다. 그러나 동일한 몸짓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즉 의례로 만드는 것(ritualization) Catherine Bell, Ritual Theory, Ritual Practice, p.7.  
은 그 몸짓을 다른 몸짓과 차별화하려는 전략 속에서 진행된다. 그 차별화는 성스러움과 일상성의 구별, 자연과 문화의 구별, 개인과 사회의 구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실천될 수 있다. 그러나 그처럼 일상의 몸짓을 의례의 몸짓으로 전환하는 방식에는 하나의 영역에서 어떤 다른 영역으로 이전한다는 의미가 놓여 있다. 그러므로 의례화는 미지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위해 길을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Tom F. Driver, The Magic of Ritual : Our Need for Liberating Rites that Transform Our Lives and Our Communities, (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1991), p.16.
그 의례화를 통해 소리와 몸짓, 시간과 공간, 일상의 물건들은 의례의 목적에 따라 적절히 재구성된다. 즉, 의례가 실천되는 환경 Catherine Bell, 앞의 책, p.99.
이 갖추어 지는 것이다.
캐더린 벨은 의례화를 “어떤 행위를 다른 행위와 전략적으로 구분하는 사회 행위”로서 간주한다. 즉, “흔히 시시한 다른 행위와 비교해서 보다 특권을 부여하고 구별짓도록 유도하고, 배합하는 행위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Catherine Bell, 앞의 책, pp.73-74.
그러므로 의례화라는 관점에서 의례는 단순히 어떤 대상을 표현하거나, 모방하는 판에 박힌 행위(routinization)라는 소극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개념, 즉 “실천”(practice)으로 규정된다. 왜냐하면 의례화란 구성된 환경, 즉 사회문화적 구조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일종의 복잡한 반응장치(biofeedback)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캐더린 벨은 실천의 “구속적 헤게모니”(redemptive hegemony) 앞의 책, p.81.
를 주장한다. 즉, 실천은 객관적 외부세계를 마주하고, 진행중인 세계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구체적인 전략을 통해 수정하고, 거기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의례를 실천으로서 본다면, 의례는 단순히 상황에 영향을 받거나, 그에 대한 표현으로서 이해할 수 없다. 실천으로서 의례는 독특한 자신의 전략에 따라, 세계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의미체계와 상징체계를 보여준다.
로이 라파포트(Roy A. Rappaport)는 의례가 참여자의 육체적․심리적․사회적 위치와 관련된 정보를 전달한다고 보고, 전달하는 그 행위를 “색인적 전달”(indexical transmission), 그리고 그 정보의 성격을 “색인적인 것”(indexical)으로 규정한다. 또한 그는 의례의 색인적 성격이 의례 참여자의 현재적 상황을 알리는 목록들을 의미한다면, 의례의 중심을 이루면서  변함없이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정보는 “정전적인 것”(canonical)이라고 규정하면서 구분하여 설명한다. Roy A. Rappaport, Ecology, Meaning and Religion, Richmond and California: North Atlantic Books, 1979, p.179.
    
로이 라파포트의 이론은 뉴에이지종교에 대한 분석에서 많은 점을 시사한다. 뉴에이지종교는 현대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위해 동양종교 내지 사상과 서구의 민간종교, 그리고 신과학 등에서 신념체계와 의례를 종합하면서, 현대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적응방식을 몸에 기초한 의례를 통해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의례의 색인적인 요소들을 통해 주어진 환경의 성격과 구조와 그에 대한 종교적 대응방식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5. 결론

종교학은 현대사회에서 의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몸의 세계를 간과할 수 없다. 전통종교의 예전과 상징분석에 한정된 의례분석은 사회문화의 정보를 담고 있는 몸의 변화와 함께 형성되는 새로운 의례들의 분석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또한 사회문화의 환경과 반응하는 몸의 주체적 행위와 의례의 상관관계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
과거 훈육과 통제의 대상으로서 인식되던 몸의 성격은 신종교, 혹은 뉴에이지종교(New Age Religion)의 의례들을 통해 잠재능력을 개발하고, 영성을 획득하며, 신체의 건강과 병을 예방하는 자율적 몸의 실천으로서 전환된다. 뿐만 아니라, 전통종교인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경우에도 현대인의 종교적․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불교의 수행방식을 채택하거나, 과거 가톨릭의 영성훈련 방법을 재구성하거나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 사회와 문화에 용해된 ‘현대성’의 성격을 새로운 영성의 추구로 이해할 때, 몸은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알리고 있다. 육체와 정신, 이성과 감성, 전통과 현대, 남성과 여성 등의 기계론적 이원론에서 벗어나 그 양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상호교섭의 주체로서 몸은 작동하고 있다. 또한 그 몸의 성격을 통해 사회문화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몸은 문화상징으로서 존재한다.
이처럼 현대사회와 문화 속에서 종교적 몸짓에 대한 분석은 몸짓에 내포되어 있는 다양한 종교적․사회적․문화적 장치들과 그의 상호작용을 포착할 때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뉴에이지종교를 포함한 종교집단에서 몸의 기술을 통해 행사되는 권력 메카니즘도 고려되어야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분석은 연구자의 또 다른 과제로 남아 있다.
종교와 몸, 그리고 의례

                                             박상언(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국문초록>

이 글의 목적은 몸과 그의 구체적인 실천인 의례가 종교 안에서 연결되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사회문화의 변화와 종교현상의 연결 고리를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현대사회에서 몸은 상징과 주체의 이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은 문화적․사회적 성격을 읽어낼 수 있는 상징인 반면, 구체적인 실천 행위를 통해 자기 정체성 혹은 자기 실현의 주체로서 드러난다. 몸은 개별 인간 및 종교집단과 사회문화적 환경과의 상호반응의 장이자 매체인 의례에서 상징과 주체로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종교학에서 논의되었던 기존의 몸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현대성의 물음과 함께 제시하고 있는 윌리엄 라프뤼르(William R. LaFleur)와 브라이언 터너(Bryan S. Turner) 등의 이론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로 사회와 종교에서 몸을 육체와 정신의 기계론적 이분법에 근거해 수동적인 혹은 객관적인 대상으로 규정했던 기존의 이론들을 비판하고, 몸과 정신의 전일적, 혹은 통합적인 개념에서 새로운 종교문화가 형성되고 있고, 그에 대한 분석의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셋째로 몸의 문화상징으로서의 성격과 함께 그의 주체적인 성격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의례에 대한 논의를 캐더린 벨(Catherin Bell)과 로이 라파포트(Roy Rappaport), 로저 에임즈(Roger T Ames) 등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in http://www.aks.ac.kr/bk21/religion/2001grad/%B9%DA%BB%F3%BE%F0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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