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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1 (00:46) from 80.139.191.99' of 80.139.191.99' Article Number :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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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코메니우스의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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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평화를 위한 코메니우스의 신학과 교육사상과의 관계성”


                  발표자: 이숙종 박사(강남대 교수)



    


    


    “Comenius intended through his educational procedures all men
    to have a clear awareness of their needs, namely a clear goal
    in life, not only for the betterment of this life, but also for the
    hereafter. His education was intended to popularize the sublime
    goal of the rediscovery of humanity and the reconstruction of
    human society.“
    Wearer of the UNESCO-Comenius-Medal Sook Jong Lee, Yongin-Shi, 2001   l




    

    
     일시: 2001년 12월 3일(월)
     장소: 홀리웨이 신학연구원





       “평화를 위한 코메니우스의 신학과 교육사상과의 관계성” 본 논문은 2001년 10월 4-6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코메니우스학회(Deutsche Comenius- Gesellschaft)에서 발표된 것을 번역 보완한 것임.

                
                                                     이숙종(강남대 교수)

I. 서론
   
     존 아모스 코메니우스(1592-1670)는 17세기에서 가장 저명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17세기를 전후로 발전된 다양한 신학사상과 경향의 영향을 받아 그의 교육사상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더욱이 그의 실천적인 종교․신앙생활과 1628년 이후 42년 동안 망명생활로 인한 개인생활의 경험이 그의 신학과 교육사상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물론 그는 직접적으로 신학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교육사상의 기초가 되는 신학적 특징은 성서해석에 남달리 뛰어난 재능과 깊은 통찰력을 나타내는 모든 인류의 물질적 영적 생활의 향상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코메니우스가 헤브론에서 신학을 연구하고 있었을 때, 칼빈주의자인 John Fisher(1546-1625)와 그 당시에 가장 저명했던 Heinrich Alsted(1588-1638)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는 Fisher로부터 모든 지식의 규범인 성경가 최고의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Alsted로부터 모든 지식의 종합인 범지혜(pansophia)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더욱이 코메니우스는 저명한 루터교 신학자인 Vlaentian Andreae(1587-1654)로부터 천년왕국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코메니우스는 그의 교육사상에 관한 수많은 저들 속에서 그의 독특한 신학적 특징과 요소들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성향은 그의 대부분의 저서들이 성경을 중심으로 해석한 신학적 표현들과 인용의 포괄적인 활용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소명을 가진 신학자” 혹은 “제 삼의 엘리야” 2) “hominen vocatione thelogum", "the third Elijah" (John Amos Comenius, The Labyrinth of the World and the Paradise of the Heart. ed., by The Count Lutzow. London: Aldine House, 1900. p. 284).
로 부르면서 성경에서 예언된 참된 평화를 위한 인간성의 회복과 새로운 사회의 실현을 기대하였다. 따라서 그의 신학과 교육이 지향하고 있는 평화사상은 현대사회에서 재해석되어 실천되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한 실제적 경험과 활동을 통하여 현대사회에서 적용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1665-1670년에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그 당시 강대국이었던 영국과 네델란드를 포함하여 예수공동체(the society of Jesus)를 결성을 기대하는 『엘리아의 서원』,Clamores Eliae를 저술하였고, 1667년에 개최된 브레드(Brede)의 평화회의에 연설한 내용을 중심으로 『평하의 천사』,Angelus Pacis를 저술하여 암스텔담에서 출판하였다. 그는 본 저서에서 인류의 평화의 개념과 국제기구와 조직을 통한 국가간의 안전보장의 강화, 그리고 평화론의 논의와 토론을 통하여 상호 이질성과 차별성을 극복하려는 미래의 원대한 전망울 제시하였다(李淑鍾, 『코메니우스의 敎育思想』.敎育科學社, 1996), pp. 65-66.      
그의 신학적 형이상학과 교육사상의 핵심은, 이러한 의미에서, 세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II. 교육사상의 신학적 기초

   코메니우스 신학의 주요한 주제는 인간성의 회복과 인류 공통체를 위한 교육사상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는 인간교육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신학의 주제로서 하나님, 인간, 자연의 상관관계성을 체계화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우주 만물의 창조자로서 인간과 자연과 성경의 저자로서, 그리고 “자연”을 하나님께 가장 근접하게 접근할 수 있는 하나님 지혜의 현시이자 생명의 책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합리적인 존재인 동시에 타락한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코메니우스의 신학은 하나님, 자연, 인간을 포괄하고 있는 삼원적 체계를 정립하여 교육사상의 기초로 제시하였다.

1. 하나님의 속성
    
   첫째, 코메니우스는 하나님을 무(無)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로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들이 상호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상을 창조하였다. 하나님은 우주 안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유지되며 생존할 수 있는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우주창조 그 자체는 절대적으로 완전하며 그의 솜씨의 완성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물들을 함께 연합하며 통일하신다-하늘과 땅, 천사들과 모든 사람들, 모든 축복들과 모든 사물들이 그 자체의 영원성을 나타내고 있다.”  John Amos Comenius, The Way of Light. trans., by E. T. Campagnac(Liverpool: The University Press, 1938), p. 25.

   창조주로서 하나님은 실제로 하늘과 땅에 있는 가시적이며 비가시적인 모든 사물들을 통치하며 지배하는 절대적인 주권자가 된다. 왜냐하면 우주 안에 있는 물질적이며 영적인 모든 것이 하나님을 통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무한하며, 어디에서나, 혹은 주변의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축이 되신다.”  J. E. Sadler, J. A. Comenius and the Concept of Universal Education(New York: Barnse & Noble, Inc., 1966), p. 40,
코메니우스는 플라톤(Plato)의 말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지고한 선이시며, 모든 존재를 능가하는 최상에 있으며, 모든 창조가 지향하고 있는 자연을 능가하여  존재하신다.”  John Amos Comenius, The Great Didactic. trans., by M, W. Keatinge(New York: Russell & Russell, 1910), p. 47.

   하나님 창조의 최상의 걸작품은 그의 형상으로 만드신 인간이며, 인간은 하나님을 위한 예배와 찬양을 통하여 그의 영광과 뜻을 나타내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있다. 실제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신 모든 피조물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세상에는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풍요롭게 제공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창조의 모든 축복과 행복을 영위할 수 있다. 인간 창조에 의한 하나님과 인간과의 인격적 관계는 명령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명령을 순종하며 활동하는 인간과의 상호인격성을 나타낸다.
    하나님 창조의 또 다른 걸작품은 자연세계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제시되어 있다. 자연과 성경의 저자로서 하나님의 이해는 코메니우스의 독특한 신관(神觀)과 관계하여 그의 교육사상의 중요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저서인 성경과 자연과의 관계를 통전적 일치의 관계로 해석하고 있다. 즉, 자연의 모든 사물들에 계시되어 있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표현되어 있는 “진리”와 일치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연의 진리는 하나님 창조에 의하여 성경의 진리를 해석하며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자연은 하나님으로부터 현시 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의 창조에서 간결하고 명쾌한, 그리고 확고한 성경의 진리가 재해석되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성경의 모든 병행구절들과 비교하여,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해석되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지각된 사물들과 일치하는 진리들을 증명하는 모든 근거들을 제공한다.”  John Amos Comenius, The Analytic Didactic. trans., by Vladimir Jelinek(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3), p. 79.

   둘째, 코메니우스는 하나님을 인간의 몸을 입으신 화육자(Incarnator)로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영(靈)으로 존재하신 하나님은 스스로 모든 사물들의 완전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창조의 본래적 인간의 형태를 회복하여 순종할 수 있는 그의 본래적 전형(典型)으로 인간세계에 오신 것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육신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조이전에 계획하신 구속을 위한 아름다운 현시였으며, 나아가서 인간과의 계약(covenant)을 성취하기 위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실제로 모든 인류의 온전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의도이자 관심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신령하게 보존하려는 그의 통치(govern- ment)의 의미이자 목적이 된다.”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II-The Doctrine of Creation(EDinburgh: T.C.T. Clark, 1961), p. 39.

    예수 그리스도는 최상의 권위자로서 지고한 제사장, 예언자, 왕으로 간주하여 그의 능력으로 모든 사물들을 일관성 있게 배열하고 유기적 관계성의 근원으로 설정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물들의 중심으로서 모든 인류의 교사이자 스승(master)로 설명하고 있다.  Great Didactic. p. 246. cf. Mt. 17:5; 18:8.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죄악을 극복하여 제거하기 위하여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의 완전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세상에 모든 인류의 구원과 소망의 확증을 보여주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현대적 의미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완전성의 정점이자 극치인 “오메가 포인트”  Teilhard de Chardin은 미래에 예수의 재림을 오메기 포인트(종극점)으로 제시하였다. 그때에 영적으로 통합된 인류가 태초에 창조된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Teilhard는 교육과 자연신학의 기본적 평가에서 코메니우스와 유사하다(Rudolf K. Kempl, "The Trinitarian System in the Works of Comenius." in Comenius. ed., by Vratislav Busek. Czechoslovak Society of Arts and Science in America, 1972, p. 72).   
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믿음이요 사랑이며, 소망이요 구원의 본래적 유일자요 인도자가 되신다.
    셋째, 코메니우스는 하나님을 독특한 형식으로 역사(役事)하시는 모든 지혜의 근원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속성인 정의, 자유, 권위와 일치하여 완전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께 접근하여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정의, 자유, 권위의 실천을 통하여 가능하게 된다. 하나님의 속성을 수렴하는 온전한 방법은 조화의 원리에 의하여 인간의 가슴에 신령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자연의 이치와 일치한다.  ibid., p. 65.
하나님은 태초에 이러한 방식으로 인간에게 그에게 보다 가까이 접근하여 지식을 추구하며 그의 지혜를 분별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피조물들을 관찰하여 종류대로 구분하고 각기 다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부여하였다. 인간을 위한 이러한 하나님의 분명한 배려와 관심은 실제로 인간이 모든 사물들의 노예가 아니라, 창조주에게 직접적으로 순종하는 충성스러운 피조물이 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스스로 지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에 모든 인간을 위해 생명의 지혜로 채워주셨기 때문에, 그의 무한한 지혜는 인간의 다양한 철학과 지식을 포함하고 있다.  Way of Light. p. 118.

    하나님의 모든 지혜는 인간을 위한 진리와 지혜의 정점이자 참된 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시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인간의 지도자이며 참된 지혜의 전형이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배우고 모방하여 절대적인 완전성과 실천적 생활규범을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의 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지식의 출발점과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철저하고 완전한 지혜의 근원과 모든 사물들의 진리와, 나아가서 지혜와 진리를 얻을 수 있는 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코메니우스는 하나님을 우주의 창조자와 인간구원을 위한 화육자로서, 그리고 모든 지혜의 근원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속성을 세 가지 차원으로 제시함으로써 그의 교육사상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독특한 신관을 정립하였다. 그가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의 삼원적 속성은 하나님을 인간 교육과 지식의 근원으로 정립하려는 그의 신학적 형이상학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신관은 전통적 신학의 경향과 내용으로 간주하여 왔던 하나님의 속성의 이해보다 인간과의 직접적인 인격적 관계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완전성과 인간교육을 위한 주도적 역사(役事)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2. 인간의 속성
   
   첫째, 코메니우스는, 무엇보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인간을 그의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설정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 창조의 중심으로서  소우주(microcosm)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서 “인간”이라는 말은 모든 종족과 인종, 민족과 백성, 개인과 가정을 포함하는 우주적 의미로 사용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인간관(人間觀)의 출발점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항상 신-인적 속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지고한 목적과 잠재력을 가진 가장 고상하고 우월한 존재가 된다. 지고한 존재로서의 안간은,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창조자의 형상을 가지고 그의 지혜와 우월성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코메니우스는 그의 『대교수학』제 일 장의 표제(標題)에서 인간을 “모든 피조물 중 가장 지고하며 가장 절대적이며 가장 우월한 존재”  Great Didactic. p. 25.
로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인간창조 이래로 인간은 하나님과 동일한 형상과 영원불멸의 속성을 내재하게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신령한 씨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의 정당한 권리에 의하여 인간은 세상의 부패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신령한 속성뿐만 아니라, 모든 가시적인 피조물들과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이 동등한 신적 형상을 공유하여 동일한 방법으로 동일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코메니우스는 하나님은 모든 인종과 백성들 사이에 구별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동등한 권리와 독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인간창조 이래로 준비하신 동일한 목적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그의 인간이해는 인류의 통합과 통일성의 근본적 요소, 즉 인간에게는 “공통된 인간성의 자연적 통일성”  Matthew Spinka, John Amos Comenius, That in Comparable Moravian(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3), p. 109.
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코메니우스는 인간을 자연사물들의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 존재,” 혹은 “이성적 존재”로 이해한다. 하나님께서 동일한 질서와 목적으로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우주의 질서에 따라서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본유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영으로 인간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합리적 존재로서 다른 피조물보다 우월한 속성을 소유하고 있다. 인간의 우월성은 인간의 몸이 영의 자각과 활동을 위한 본질적 통로가 된다는 사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육의 적합성은 영의 강화와 활동에 달려있으며, 영의 적합성은 육의 훈련과 편달에 의해 성취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몸과 영의 상관관계에서 인간은 자신을 알고, 모든 사물들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을 지향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합리적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Will S. Monroe, Comenius and the Beginning of Edcuational Reform(New York: Arno & The New York Times, 1971). p. 85.

     인간이 자연의 모든 사물들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만물의 중심에서 주위의 모든 것을 반영할 명쾌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메니우스는 합리적 존재로서 인간이 모든 사물을 이해하여 배울 수 있는 기본적인 세 가지 능력(faculties)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이 본유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세 가지 능력은 이해력(ratio), 언어(oratio), 행위(operatio)로서 모든 사람이 모든 사물들의 지식과 진리의 본질을 터득하여 합리적이며, 도덕적이며 신령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Way of Light. p. 203.
인간의 세 기능은 사고를 위해 사물을 관찰하고, 관찰한 사물을 분류하거나 명명하며, 그리고 사고하여 언어로 전달한 것을 실천적 행위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세 기능을 원활하게 활용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관찰하는 눈(eyes), 보조자 기능으로서 언어(language),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언어로 전달한 것을 실제로 수행하는 손(hands)을 부여하였다.  John Amos Comenius, The Pampaedia, John Amos Comenius on Education.trans., by Mrs. Iris Urwin(New York: Teachers' College, 1954), p. 218.
따라서 모든 인간은 세 기능을 통하여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여 알 수 있는 지식과 지혜의 기반을 잠재하고 있다.
    셋째, 코메니우스는 인간을 타락한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이미 논의한 대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났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그의 본래적 형상을 상실하게 되었다. 인간은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소외되어 죄의 길에 이르게 된 것이다. 또한 인간의 타락은 자연세계를 사막과 같이 황폐하게 만들어 자연세계의 파괴를 초래하는 재앙을 자초하게 되었다.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의 세계를 배우며 올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이성력의 활용과,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교통할 언어의 능력과, 그리고 실천적 과제들을 수행할 기술의 활용과 행위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그 자신으로부터,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모든 것을 지각하며 갈망하는, 그리고 새롭게 미래를 지향하는 권한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코메니우스는 타락한 존재로서 인간을 매우 낙관적 견해로 이해하면서 여기에서 인간의 본래적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확실한 이유와 방법을 발견하려고 하였다.  Great Didactic. p. 48.
그것은 인간의 내면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잠재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인간의 잠재력과 자연적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인간교육의 출발점이 된다. 다시 말하면, 타락한 인간이 본래적 형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두 가지 힘인 “이성의 빛”과 “신앙의 빛”에 의해 가능할 수 있다: “두 가지 내면세계의 빛, 이성의 빛과 신앙의 빛, 이 양자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는 인간성 회복의 근거가 된다.”  Labyrinth of the World and the Paradise of the Heart. p. 218.
여기에서 코메니우스는 본래적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이 영원한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성을 정립할 수 있는 인간교육의 가능성과 전거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이 새롭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실마리로서 교육은 타락으로 인한 인간의 영속적인 혼란과 죄악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는 필연적인 단계가 된다.

3. 자연의 속성       
   
   첫째, 자연은 하나님의 속성의 반영으로 묘사된다. 코메니우스는 자연을 하나님의 지혜를 가장 근접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물들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개념들과 속성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모든 것은 하나님을 통하여 존재하며 유지될 수 있다: “하나님 없이 자연이 존재할 수 없으며; 자연은 하나님의 모방이며: 자연은 하나님의 딸이다.”  R. F. Young, Comenius in England(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32), p. 364
자연세계는 모든 피조물 속에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우주적 섭리와 선하심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령한 지혜의 형상화이자 상징이 된다. 인간은 자연을 통하여 모든 사물들의 정확하고 분명한 기준과 규범을 터득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을 통하여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지혜 있는 것과  무지한 것을, 그리고 진실된 것과 거짓된 것을 분별할 수 있다. 코메니우스는 세네카(Seneca)를 인용하여 “일상적 실수로부터 이끌어 내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의 위치에서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지혜“  Great Didactic. p. 93.
로 강조한다.   
    자연의 본질적 특성은 실제로 세상의 모든 구조와 조직을 함께 연결하는 조화이자 질서이다. 자연의 모든 것은 철저하게 조화와 질서의 원리로 존재하며 유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은 꽃으로부터 큰 별에 이르는 자연의 모든 것은 조화와 질서의 강력한 힘으로 운행하는 동일한 운동을 나타낸다. 자연은 이러한 조화와 질서의 원리에 따라서 스스로 허용하고 있는 그 자체의 법칙인 다양성과 특성을 수용하고 있다.  Way of Light. p. 151.
자연의 이러한 기초적 법칙에 의하여 모든 사물들은 상호 순응하며 다양한 피조물 사이에서도 혼돈과 충돌이 없이 조화와 질서를 유지하며 생존한다. 심지어 개체의 사물이 특수하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조화와 질서가 곧 사물들의 정신이 되기”  Great Didactic. p. 93.
때문에, 다른 피조물들과 공통성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자연의 “질서”는 자연의 특정한 부분이나 분야가 그 자체의 적합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다른 부분들과 분야들을 배열하고 유지하는 자연의 기계적 원리로서 이해될 수 있다.
    둘째, 자연은 하나님의 생명의 책(living book of God)이다. 하나님의 속성과 지혜를 계시하는 자연은 인간이 완전하게 되기 위한 필요한 모든 구조와 장치를 제공하고 있다. 자연의 모든 사물들은 실제로 인간의 활동과 욕구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주의 각 부분에 내재하고 있는 모든 지식의 탐구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 자연이 인간에게 성장과 감정과 교육의 선물로 제공되는 것은 인간이 실제적으로 자연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곧 인간이 자연과 연합하여 세계의 진화에 매우 중요한 단계가 될 수 있기”  Dagma Capkova, "The Recommendation of Comenius Regarding the Education of Young        Children." in C. H. Dobinson. ed., Comenius and Contemporary Education(Hamburg: UNESCO   Institute for Rducation, 1970), p. 21.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책으로서 자연은 인간의 교육을 위하여 다양한 사물들을 나열하여 제시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다 Way of Light. p. 118.
고 주장한다. 자연의 모든 사물들은 인간이 교육하고 배우기에 필요한 훈련과 실례와 장치들을 제공한다. 자연은 모든 인간이 지성적 지식을 얻고, 도덕법칙과 조화를 이루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적합한 양육과 교육의 유일한 자리가 된다. 따라서 가시적인 자연세계 그 자체는 인간의 생식과 양육과 훈련을 위해 창조된 유일한 목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모든 피조물들은 인간과 관계하고 있는 한 모든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시적인 세계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위대한 책이다.”  ibid., p. 5.

    그러므로 인간은 세속적 저술들을 의한 사변(思辨)적 논의와 논쟁 대신에, 하나님의 생명의 책인 자연을 탐독하여야 한다. 그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의 책에서 기쁨과 유익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자원들과 소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방치될 수 없기 때문에, 배양되어야 하며 그 과정들은 정확하게 알려져야 한다. 자연 사물들은 그 자체가 지혜의 근원을 제공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교육의 자원이 되어야 한다. 자연의 질서와 그 과정 자체가 인간교육의 모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참된 교육의 방법과 원리로서 활용될 수 있다. 코메니우스는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은 온전하게 활동적이며, 그것이 존재하고 있는 곳마다 완전하게 제시되기 때문에, 교육에 대단히 적합한 것”  Pampaedia. p. 129.
으로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자연의 모든 사물들은 인간을 위한 지식과 도덕성과 종교에 필수적인 자원으로서, 그리고 교수법의 원리와 인간발달의 모형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코메니우스는 하나님의 생명의 책으로서 자연세계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인 성경의 내용과 비교하여 분석하였다. 자연과 성경은 동일하게 하나님 창조의 전지전능과 섭리를 해석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자연은 모든 성경의 이해를 위한 견고한 기초와 참된 상황적 방법(the contextual way)이 된다: “성경은 더욱 보편적인 언어로, 그리고 자연은 특별한 실례로 언급한다.”  Way of Light. p. 118.
그는 또한 자연과 성경과의 긴밀한 관계성의 이론을 해석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창조된 사물들은 성경의 각 구절의 참된 의미를 계시하며, 또한 성경은 그 속에 모든 창조의 해석과 현시에 의해서 자연세계를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성경의 모든 내용은 자연의 생성과 조화와 일치시키고 있으며, 또한 자연을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모든 상징들의 과정으로 해석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ibid., p. 120.
이와 같은 그의 해석학적 의도와 관심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손으로 기록한 성경과 함께 하나님의 생명의 책에 나타난 자연의 형상들을 면밀하게 탐독하게 하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자연세계에 계시된 모든 진리는 그의 말씀 속에 표현된 진리를 설명하며 해석하는 일과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코메니우스의 신학의 내용과 체계를 논의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우주의 정신이자 중심으로, 인간을 우주의 해설자로서, 그리고 자연을 창조주의 신령한 거울이자 계시로 정립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신학의 구성체인 하나님, 인간, 자연의 범조화(panharmony)와 통전성(integrity)의 이해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제시하고 있는 범조화는 “섬광의 빛으로 마음의 눈을 채우며, 인간의 감각으로 진리를 경외할 수 있는”  ibid., p. 228.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 범조화의 원리는 인간에게 우주의 신비한 실재를 이해하고 탐구할 수 있는 신학적 근거와,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추구할 수 있는 교육의 중요한 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III. 교육사상을 조명하는 신학적 전망

    코메니우스는 우주의 중요한 핵심적 속성들인 하나님, 인간, 자연을 본래적으로 상호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그의 실제적인 신학적 성찰과 사고에 근거하여 그의 신학의 본질적 요소들을 그의 교육사상의 핵심적 내용으로 체계화하였다. 첫째, 코메니우스의 자연관은 자연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자연의 해설자인 인간과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그 이유는 자연의 창조와 존재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을 통한 인간의 번영과 축복을 위한 것이며, 동시에 인간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의 모든 사물들은 인간교육의 정확한 자원으로서 인간의 번영과 구원을 위해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식의 보고(寶庫)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에 불변의 자연법칙과 일치하는 “이성의 빛”과 “신앙의 빛”을 새겨놓았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점진적으로 그를 향하여 그의 뜻에 온전하게 순종하도록 영원한 영(靈)을 제공하였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의 부패로부터 부단히 새로운 질서를 실현하려는 창조적 과제를 하나님과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 실제로 인간은 새로운 창조적 과제의 성취를 위한 지식과 이해의 능력뿐만 아니라, 갱생의 능력과 변화를 위한 영성 혹은 경건성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 인간, 자연과의 조화와 상관관계성을 근간으로 하는 코메니우스의 신학은 인간교육의 중심적 내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교육을 위해 창조하신 세 가지 속성들을 독특하게 배열하거나 병행하는 신학적 구조를 형성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위해 부단히 계발하여 개혁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창조주와의 인격적 상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우주의 중심으로, 인간을 하나님과 자연사이를 매개하는 직접적인 위치에 있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인 자연은 창조주의 마음이자 거울로 묘사하고 있다. 코메니우스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속성의 상관성을 논의하면서 그의 신학과 인간교육과의 연결점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을 자연의 저자로서, 인간을 자연의 해설자로서, 그리고 자연을 하나님의 계시이자 인간교육의 직접적인 자원으로서 삼자의 상호관계성을 설정하고 있다.     
     코메니우스는 그의 신학과 인간교육과의 관계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그의 저서 『빛의 길, Via Lucis』에서 세 가지 신학의 주제를 세 가지 학교, 즉 자연의 학교(physical school), 인간의 학교(metaphysical school). 하나님의 학교(hyperphysical school)로 변형하여 해석하고 있다.  ibid., pp. 15-16.
그는 세 학교들을 통해서 모든 인간이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위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연의 학교는 다양한 형태의 피조물로 채워져 있는 이 세상을 의미한다. 자연의 학교에서 자연의 모든 사물들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가 계시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거주하고 있는 자연은 인간의 최초의 학교가 된다. 따라서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일차적 학교인 자연의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두 번째 학교인 인간의 학교는 첫째 학교와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마음속에 교훈의 주제와 저서들과 교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들은 곧 인간의 마음에 잠재하고 있는 개념(notions)과 본능(instincts)과 기능(faculties)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학교를 제정한 이유는 모든 인간이 교육을 통하여 자연사물들의 모든 지식을 배우며 교육할 수 있도록 다양한 소재와 자료들을 활용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세 번째 학교인 하나님의 학교는 어떠한 피조물이나 인간이 가르칠 수 없는, 곧 모든 사물 위에 있는 하나님만이 가르칠 수 있는 학교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결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모든 것을 성령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속에서 알 수 있도록  가르치신다. 이 학교의 교재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저술된 최초의 신령한 영감들이다. 이러한 하늘의 신탁(神託)들을 가르치는 중심적 교사와 해설자는 곧 성령이 되신다. 세 학교들의 공통된 특성은 곧 모든 인간을 교육하기 위한 것으로서 첫째 학교에서는 사물들이 가르치며, 둘째 학교에서 인간 자체가 가르치며, 그리고 셋째 학교에서는 하나님이 가르치신다는 사실이다. 즉 모든 인간은 사물들에 의해서, 인간 자신에 의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서 가르치며 배울 수 있다.  ibid., p. 16.


IV. 평화를 위한 인간교육      
  
    코메니우스는 교육이란 인간이 즉각적으로 정확하게 응답해야 하는 일련의 연속적인 하나님의 활동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종말론적이며 구속적인 전망에 비추어 곧 도래할 실천적인 프락시스(praxis)로 믿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는 정치-사회적 억압과 종교적 박해 속에 살았던 그 시대에서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진정한 평화를 발견할 수 있는 참된 교육의 실현을 기대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교육이 인간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종교 신앙적인 구속적 사건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의 교육의 개념과 이해가 곧 그가 경험했던 종교적 박해와 망명으로 고통 당했던 실제적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그의 확실한 교육의 신념을 발견할 수 있다.
    코메니우스의 교육의 체계와 이해에 비추어, 무엇보다, 개인을 위한 교육은 세상에서 새로운 차원의 생활과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필연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그의 당대의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불안으로 인한 극한적인 세계의 정세에서 구속적인 교육의 기회를 발견하지 못하였지만, 그는 높은 수준의 영적 활동과 지성적 생활을 추구하는 방법을 모색하여 왔다. 그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모든 인간을 위한 교육의 기본적 개념은 인간의 내면세계의 변화와 동시에 모든 인류의 복지와 번영이 보장되는 “선한 사회”, “선한 공동체”의 건설과 성취를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코메니우스의 참된 인간교육은 모든 인간의 새로운 인간성의 회복을 통하여 새로운 공동사회의 도래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는 참된 인간교육을 모든 인간이 세속적인 멍에와 억압과 구속과 착취와 박해에서 해방되는 구체적인 사건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였다. 그는 인간교육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적 빛인 낙원(paradise), 즉 평화의 소유하고 동시에 그들의 사회가 새로운 공동체, 평화의 사회로 정립되기를 기대하였다. 그에게서 내적 빛의 개념은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하여 그의 마음속에 영적인 성숙과 영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의미한다. 그는 인간이 살고 있는 외적세계의 불안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곧 내면세계의 조화와 변화로 인식하고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과 방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1623년에『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낙원』, The Labyrinth of the World and the Paradise of the Heart를 저술하여 1631년에 출판하였다.  Comenius completed this book, the greatest and most celebrated work of this period of literature in 1623 and published it for the first time in 1631 at Leszno in Poland where he lived in exile. The main theme of this book was to seek for the paradise of the heart to which Christians could escape as an allegory written by St. Augustine's City of God and John Valentine's The Christianopolis.   
 
    코메니우스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교육이 지향하여야 할 방향, 즉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추구하여야 할 기본적 문제로서 마음의 평화를 제시하였다. 그는 그 당시 전쟁과 재난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던 세상을 “미로”(labyrinth)라는 은유로 표현하였다. 그에게서 미로와 같은 세상은 무질서와 부조화, 이기심과 불규칙, 전쟁과 갈등, 어리석음과 부패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그가 그 당시의 세상과 사회현상을 “미로”로 표현하였던 이유는 이러한 은유적 표현법을 통하여 그가 경험하였던 인간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Labyrinth of the World and the Paradise of the Heart. p. 7ff.

    그러나 코메니우스는, 무엇보다, 인간이 아무리 세상의 재난 속에서 고통 당하고 있다하더라도, 세상의 미로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참된 교육을 통하여 내면세계에서 하나님과 연합하여 마음의 낙원과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인간의 마음의 평화는 외면세계의 탐구와 관찰로서 아니라, 내면세계 속에서 부단히 하나님께 순응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내면세계에서 마음의 평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과정은 현 세상의 고통과 혼란으로부터 도피가 아니라, 세속적인 현실세계를 극복하려는 부단한 자신의 결단과 함께 하나님의 뜻에 전폭적으로 위임하는 신앙적 태도에 달려있는 것이다.
    코메니우스는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과정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참된 인간교육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인간에게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하는 참된 교육은 이 사회의 모든 혼란과 부패를 변형시킬 수 있는 신령한 힘을 제공할 수 있다.  Ibid., p. 268.
그는 인간의 내면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마음의 평화는 외면적으로 동시에 새로운 사회공동체의 도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교육을 통하여 실현될 수 있는 새로운 사회공동체는 인간성의 변화와 함께 하나님을 지향하는 내면세계의 평화의 유지에 의하여 가능하게 된다.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실현을 제시하는 인간교육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전체적 생의 과제가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벗어나게 할뿐만 아니라, 도래할 모든 시험과 고난을 극복하는 참된 빛을 제시한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준비와 확장에 앞장서게 된다. 더욱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를 통하여 영원한 빛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의 전쟁이 없으며, 더 이상의 인간의 탐욕과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 우주적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빛을 주신다.”  John Amos Comenius, Orbis Pictus. Intro. by John E. Sadler(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8), p. 245.
왜냐하면 스스로 빛으로 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실천하였던 구속적 방법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평화를 제시하시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하늘 나라가 있고, 하늘 나라가 있는 곳에 영원한 기쁨이 있으며, 영원한 기쁨이 있는 곳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된다.” Labyrinth of the World. p. 245.

    코메니우스는 그의 신학적 전망에 근거하여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한 평화교육사상을 제시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세속적인 일에서 해방되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하게 될 때, 인간의 평화가 실현되는 새로운 사회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또한  새로운 사회공동체는 미래에 도래할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 실현될 수 있는 사회라고 확신하였다. 따라서 그의 새로운 사회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그의 궁극적 관심은 인간의 내면세계의 변화와 개혁으로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미로에서 해방할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과제에 달려 있다.  J. E. Sadler, op cit., p. 94.

    코메니우스는 인간의 내면세계의 평화와 새로운 사회와의 관계성을 모색하는 중요한 매개가 참된 인간교육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의 도래와 실현이 곧 그로 하여금 예언된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상에 이상적인 사회가 어떠한 형태로 실현될 것인가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마음의 평화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코메니우스의 이상은, 현실적 감각으로 볼 때, 극단적인 환상에 머물 수 도 있겠지만, 그는 성서 신학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실현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인간 마음의 평화와 새로운 사회공동체의 개념은 사회 생물학적 진화론과 그리고 세계평화의 정착에 대한 그의 예언적 믿음에 근거하여 종교적 신앙과 사회윤리와의 관계성을 자연스럽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Joseph Needham, ed., The Teacher of Nations(Cambridge: At the University Press, 1942), p.    32.
그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의 집(the house of creation)에 채워주신 풍성함이 모든 사람들의 교육을 위해 적합하도록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참된 인간교육을 통하여 질서 있는 새로운 사회공동체가 곧 실현된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다.  Oskar Kokoschka, "Comenius, The English Revolution and Our Present Plight," in Joseph       Needham. p. 63.


V. 맺는 말: 코메니우스의 중요성

     코메니우스의 신학은 인습적인 교리에 경직되어 있는 전통적이며 근본적인 신학이 아니다. 그의 신학은 오히려 모든 다른 신앙들을 포용하는 자유적이며 진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신학은 중세기의 신학적 경향인 루터사상과 칼빈주의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지만, 특정한 교파와 교단의 교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 새로운 개혁신학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지금가지 논의한바와 같이, 그의 신학의 주요한 특징은 하나님과 자연의 질서를 일치시키고, 하나님의 인격적 속성에 비추어 인간을 해석하며, 나아가서 향상된 인간생활을 위한 교육과 계몽을 통하여 마음의 평화와 새로운 사회공동체의 실현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신학의 구조와 형식은 하나님의 책인 성경, 하나님의 창조인 자연세계, 그리고 하나님의 책과 자연의 해설자인 인간을 중심주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의 신학의 독특한 이해를 통하여 자연과 성경의 내용들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지식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구원에 이르는 세계 평화를 위한 실제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분리가 없는 양자와 완전한 관계성의 회복이 코메니우스 신학의 우주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의 삼원적 속성인 하나님, 인간, 자연의 모든 지식과 관계성을 포괄하는 그의 신학의 범위에 의하여 모든 인류의 구원이 성취될 새로운 사회공동체를 예시하였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독특한 신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에서 모든 인류의 평화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Daniel Murphy, Comenius: A Critical Reassessment of His Life and Work(Cambridge:Irish Academic Press, 1995), pp. 249-257.

    끝으로,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코메니우스로부터 발견하려면 무엇보다 21세기의 특징과 그 문제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면서 대두되는 가장 큰 문제는 첫째, 과학적 기계기술의 진보가 멈추지를 않고 심오한 이중적 가치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현실, 둘째, 인간의 존엄성과 실존이 철저하게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위협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극복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셋째, 현대인이 역사를 전망하며 다루고 있는 방법, 다시 말하여, 미래를 기대하며 형성하고 있는 역사의 방법론은 비관론과 낙관론 사이를 오가고 있다는 점이다.  Uwe Voigt, "Comenius and the Experiences of the 20th Century," in Werner Korthaase, Sigurd   Hauff. ed., by Comenius und der Weltfriede(Berlin 2001 DCG-MS Drucke), p. 51.

   이전의 세대에서 인간생활의 문제는 과학적 통찰력과 기계기술의 변혁에 의존하여 일관성이 있게 변화되어 왔다. 이러한 과정은 일정하게 추진되어 인간에게 새로운 소망과 기대를 가지게 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면, 현대인은 디지털 망(digital networks)에 의하여 어느 때든지 그리고 어느 지역이든지 초월하여  항상 모든 분야의 지식에 접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통신기계기술과 다양한 교통수단에 의하여 인간을 분리시켰던 그리고 한 문명과 다른 문명의 관계에서 차별을 지었던 장벽을 허물게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발전의 역동성을 멈추게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인간이 기계기술의 혜택이 없이 자신만의 생활을 추구하게 될 때, 이것은 지식의 역동성을 포기하는 것이며 무모한 경쟁에서 아무런 대안을 찾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들은 인간의 생활과 다른 형태의 모든 생활에 전반적인 간섭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사회의 기계기술문명은 현대인에게 항상 애매모호한 길을 제시하면서 문제의 분명한 대안을 발견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예를 들면, 기계기술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현대인에게 이러한 가능성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인이 기계기술에 의하여 자연을 전체적으로 분석하여 그것을 파악하여 정복하였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파생되는 어떠한 윤리적 문제들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기계기술은 지구에 대단한 위협, 다시 말하면, 인간이 거주하고 있는 생태체계에 엄청난 위협을 가져오고 있다. 또한 기계기술이 비이성적인 테러와 같은 행위에 남용될 때, 인류에게 치명적인 파멸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대의 기계기술이 인간의 할용을 위해 포괄적인 지식과 정보를 얻게 하는 반면에 동시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대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기계기술의 문제와 한계성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다. 현대의 다양한 지식을 탐구하는 일에 지대한 능률성을 주고 있는 인터넷의 셔퍼들은 그들의 한계성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그것들이 알고 있는 그 이상의 것을 알지 못한다: 알기를 원하는 것만을 알 수 있으며, 할 수 있는 것만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현대사회의 사이버 세계는 현대인에게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거대한 “미로”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이것의 해결을 위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면 반복되는 오류를 빠지게 되고, 자동화의 “매체”(agents)와 “악마”(demons)에 의해 오도되는 것이 자명한 일이다.
    현대사회의 이와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우리는 일방적인 것을 지양하고 쌍방의 긍정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는 확신을 요구하여야 한다. 이러한 확신은 묵시적인 비관론에서 위기의식을 정당하게 자각하게 하며, 나아가서 세계화의 문제해결을 위한 지식과 방법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도 일깨워 줄 것이다. 현대사회는 미로와 같은 전쟁 중에 있으며 그 결과로 인한 인류의 파멸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현대인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는 인간의 구조적이며 제도적인 제한성에서 초래하게 된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사회적 제도와 기계기술의 제한성에서 만들어 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만들어 놓은 이와 같은 구조적이며 제도적인 문제의 해결은 그것들을 초월하거나 그 범주에서 해방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방안에서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곧 새로운 소망과 기대를 위한 이유들을 추구해야 하는 과제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인류의 역사를 교육과 학습의 역사  Way of Light. p. 106.
로, 인간의 통신수단을 지식의 성장과 진보에 필수적인 것  ibid., pp. 2-3.
으로, 기계기술을 쌍방을 연결하는 수단  ibid., p. 106.
으로,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구조의 포괄적인 통찰력  ibid., pp. 107-108.
으로 탐구하여야 한다. 현대인이 이와 같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문제들을 다루는 방법을 알게될 때만이, 인간의 존엄성과 마음의 평화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새로운 방법과 대안은 현대인들로 하여금 복잡한 정보세계의 미로에서 공동의 선을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공동체의 실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강연자 소개
* 학력
연세대학교 신과대학(B.A)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신학석사(Th.M)
미국 Drew 대학교 신학대학원신학석사(S.T.M.)
미국 뉴져지 주립대학교(Rutgers)교육학박사(Ed. D)
학술진흥재단 선정 해외파견교수(Rutgers, Princeton Seminary 1996-1997)
강남대학교 신학대학장 및 신학대학원장 엮임
현 강남대학교 신학부 기독교교육학교수 신학대학원장

* 저서

『현대사회와 기독교교육』(대한기독교서회, 2001)
『기독교와 현대사회』(공저, 강남대학교 출판부, 1998)
『友園의 敎育思想』(강남대학교 출판부, 1998)
『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교육과학사, 1996)
『기독교교육사』(공저, 도서출판:교육목회, 1994)
『기독교교육』(공저, 대한기독교교육협회, 1992)

* 번역서

코메니우스 저,『빛의 길』(여수룬, 1998)
루이스 세릴 저, 『기독교교육의 발생』(대한기독교서회, 1994)
코메니우스 저, 『분석교수학』(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2. 학술진흥재단번역지원)
존 웨스터호프 3세, 『기독교신안과 자녀양육』(대한기독교서회, 1991)
코메니우스 저, 감수 및 해설『세계최초의 그림이야기』(씨앗을 뿌리는 사람, 1999)

      
   
                                         











평화와 코메니우스의 신학사상

  [ 다운로드 : 평화와코메니우스의_신학사상 ]

  참조 : (神學思想 제67집, 한국신학연구소)

in http://sheep.kangnam.ac.kr/~kccs/mai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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