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icle Bank

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4/03/04 (21:58) from 80.139.172.122' of 80.139.172.122' Article Number : 288
Delete Modify 강대석 Access : 11445 , Lines : 140
현대 과학기술문명의 위기를 둘러 싼 철학논쟁
Download : science-discussion.hwp (7 Kbytes)
새한철학회  논문집
철학논총 제33집 2003․제3권




현대 과학기술문명의 위기를 둘러 싼 철학논쟁  
- 맑스주의와 실존주의를 중심으로 -

강  대  석(대구가톨릭대)


[한글 요약]

이 논문은 과학과 기술의 문제를 둘러 싼 현대철학, 그 가운데서도 실존주의와 맑스주의의 논쟁을 분석하면서 이들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현대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상반적으로 파악했는가를 밝혀보려 한다. 양 방향의 철학이 모두 현대인의 삶에 미치는 과학 기술의 부정적인 효과를 논하지만 맑스와 엥겔스는 과학 기술의 해독이 기술 자체에 있다기보다도 그것을 이용하는 사회구조, 특히 생산관계에 있다고 보는 반면 야스퍼스와 하이데거는 기술의 본질 혹은 존재의 본질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철학’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것은 항상 자본주의의 발전과 연결되어 있다. 그거나 오늘날 그것은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그것이 현대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의 문제가 오늘날 중요한 세계관의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이론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실천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앞의 논쟁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기술문제에서 철학적인 중립을 지킬 수 없다. 기술과 사회구조의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을 때 우리는 기술철학의 문제에서 공허한 논쟁에 빠지게 된다.


주제분야:기술철학, 맑스주의, 실존주의
주 제 어:인간소외, 존재망각, 차축시대, 실존






1. 머리말

인류의 역사는 자연과의 투쟁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발전되어 왔다.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탐구해 내어 그것을 인간의 삶에 유용하게 이용하였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주어진 자연을 밑받침으로 제2의 자연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사회다. 인간사회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과학과 기술문명의 발전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르네상스의 시기에 나타났던 현대적인 과학발전의 시작은 근세문명을 이끌어 준 획기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그것은 중세의 봉건주의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를 성립시키는 기초를 만들어 주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은 다시 한번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특히 원자력의 개발, 유전공학, 정보화산업 등의 발전은 인류의 역사발전을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삶이 항상 더 풍요로워지는 것만은 아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순과 갈등을 많은 철학자들이 문제삼았었고 오늘날에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철학자들은 직접․간접으로 이 문제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현대철학의 양대 핵심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으며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오는 모순의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상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맑스주의와 실존주의의 과학문명에 대한 입장, 다시 말하면 기술발전에 대한 그들의 철학적인 입장을 비교해보고 그 장․단점을 지적해보려 한다.      


2.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일반적인 두 입장

근세에서 인류가 만들어 놓은 과학문명과 그것을 밑받침해주는 계몽주의 철학에 대한 평가에서 그 후의 철학은 일반적으로 상반되는 입장을 드러내주고 있다. 그 하나는 인류의 과학문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인류의 역사발전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유물론적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문명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인류의 역사발전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관념론적 경향이다. 앞의 방향은 맑스․엥겔스에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맑스주의자들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태도이다. (맑스주의 이외에도 모든 과학을 이용하여 자연과 우주를 정복하려하는 과학맹신주의의 입장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존재하지만 여기서는 이에 관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뒤의 방향은 쇼펜하우어를 중심으로 하는 낭만주의 철학에서 출발하여 생철학을 거쳐 현대 실존주의철학에서 나타나는 태도이다. 물론 이 두 입장이 정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겹쳐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경향을 간추려볼 때 이들 입장은 서로 상반된다고 말할 수 있다.
앞의 입장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현대사회의 모순을 분석하고 극복하려 한다. 이들은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는 계몽주의의 합리적 사고를 수용하면서 과학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고 과학의 발전을 통하여 인간의 사회가 점점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념을 견지한다. 뒤의 입장은 계몽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철학전통을 불신하면서 비합리주의적인 세계관을 내 세운다. 이성 대신에 신화를 중시하기도 하고 과거의 신비주의로 되돌아가기도 하며 동양의 종교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 양 방향의 사조에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성에 대하여 나름대로 비판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과학기술문명과 자본주의의 발전은 직결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의 방식이나 진행에서 그 입장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그것은 바로 이 양방향의 철학적인 차이가 상반되기 때문이다.


3. 맑스주의의 과학기술문명 비판

1)맑스․엥겔스의 입장

엥겔스(F. Engels, 1820~1895)가 이미 『원숭이가 인간으로 전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이 한 역할』에서 인간이 동물의 상태로부터 인간으로 변화하는, 다시 말하면 자연의 상태로부터 사회의 형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도구와 노동이 한 역할을 강조하였는데 그것을 기반으로 맑스(K. Marx, 1818~1883)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생산활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그러므로 인간의 사회생활 속에서도 생산활동이 기초가 되고 있음을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생산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새로운 노동수단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인간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킨다. “노동자는 노동수단을 스스로와 노동대상 사이에 끼워 넣는다... 인간은 사물의 기계적, 물리적, 화학적 특성을 이용하여 그것을, 스스로의 목적에 합당하게, 다른 사물에 대한 작용수단으로 나타나게 한다.” K. Marx, Das Kapital, Erster Band, in: MEW, Bd. 23, S. 195.
노동을 수행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기술을 통해서 노동대상이 되는 자연과 관계한다. 그러나 기술만이 인간과 자연을 중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이 생산관계이며 그러므로 과학기술문명에 철학적인 고찰에서도 생산관계의 문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맑스의 주장이다. 맑스에 의하면 생산은 독자적인 영역으로서가 아니라 ‘일정한 사회적 발전단계에서의 생산’ K. Marx, Ökonomische Manuskripte 1857/1858, in MEGA, Abt. II., Bd. 1. S. 22.
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맑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총괄하여 ‘노동과정의 기술적 조건’ K. Marx, Ebd., S. 225.
이라 정의한다. 맑스주의에서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항상 사회적 요구와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고학과 기술을 결코 사회문제와 독립되어 있는 그 자체의 영역으로 고찰하지 않는다. 과학과 기술이 인류의 행복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의 문제도 그러므로 생산관계의 문제와 연관시켜 해명한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사회구조의 문제와 연관되고 현대과학문명의 위기를 현대자본주의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연관시켜 해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맑스는 우선 확대 재생산과 경쟁의 요구로 인하여 자본주의가 생산기술의 혁신이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여한 자본주의의 공적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주의적인 기술의 발전에서 오는 부정적인 결과를 파헤친다. “결국 기계의 도입은 사회 속의 노동분화를 강화하고 공장 안에서 노동자들의 작업을 단순화했으며 자본을 집중시키고 인간을 조각 내었다.” K. Marx, Das Elend der Philosophie, in MEW, Bd. 4. S. 155.
기계가 노동자들의 경쟁대상이 되고 결국 노동자들의 생존조건마저 파괴하였다. 대기업은 노동자들을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모순으로부터의 해결방식, 다시 말하면 인간이 기술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자본주의적 사회구조 안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맑스주의의 주안점이다. “어떤 기술의 발전도, 어떤 화학적인 발견도, 생산에 대한 어떤 과학의 응용도, 어떤 교통수단의 개선도, 어떤 새로운 식민지도, 어떤 이민도, 어떤 시장의 개척도, 어떤 자유무역도, 이 모든 것을 다 합쳐도 결코 노동대중의 비참함을 제거할 수 없으며, 반대로 노동 생산력의 새로운 발전은, 현대의 잘못된 기초 위에서는, 사회적 모순을 심화시키고 그 상반성을 첨예화하는 데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K. Marx, Inauguraladresse der Internationalen Arbwiterassoziation, in: MEW, Bd. 16, S. 9.


2) 19세기 ‘기술철학’에 대한 맑스주의의 비판

현대의 맑스주의 철학도 맑스․엥겔스의 입장을 근거로 하여 오늘 날 자본주의 시회에서 나타나는 ‘기술철학’(Technikphilosophie)과 논쟁한다. 19세기 중반에 독일에서 형성된 ‘기술철학’은 기술에 대한 이전과 달리 기술의 본질문제를 철학적 고찰하려 한다. 다시 말하면  문화철학에 포함시켜 포괄적인 ‘기술의 이론’을 제시하려 한다. 여기서도 새로운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고찰된다. 신칸트학파, 실증주의, 생철학, 철학적 인간학, 실존주의, 비판적 합리주의, 비판이론 등이 ‘기술철학’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기초로 하는 현대 맑스주의 이론가들은 이러한 부르조아 기술철학이 기술의 문제를 독자적인 영역으로 절대화시켜 자본주의의 사회구조에서 나타나는 모순을 은폐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맑스주의에서도 기술및 기술과학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의 문제를 그 자체로 독립시켜 고찰하지 않고 항상 사회관계와 연관시켜 고찰하려한다. 다시말하면 생산력 및 생산관계의 요소로서 고찰하려 한다. “과학을 사회와 사회발전에 봉사하게 한다는 것은 오늘 날 모든 사회적 발전을 위한 현실적인 요구로 나타난다. 그렇다, 오늘 날 어떤 사회도 고학적․기술적 발전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존속할 수 없다. 더 나은 방법과 모델과 대안으로써 자본주의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요구는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모순의 기초가 되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안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적인 생산관계가 필요하다는 사실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려 한다.” S. Wollgast (hrsb.), Technikphilosophie, Berlin 1984, S. 9.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맑스주의의 해석과 연관하여 우리는 여기서 나타나는 3가지 특징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기술의 문제를 사회문제로서 고찰하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을 그 자체로 절대화시키지 않고 항상 사회발전과 연관시켜 고찰하면 사회발전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생산관계이므로 기술의 문제를 생산관계와 연관시킨다. 다시 말하면 기술문제에서 그것이 문제되고 있는 사회의 경제구조를 밝힌다.
둘째, 이러한 전제아래서 기술자체의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 그것은 기술발전의 역사, 기술의기능과 목적 등을 기술의 구조 안에서 밝히는 일이다.    
셋째, 기술의 최종목적이 결국 전체적인 사회발전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기술발전의 휴머니즘적인 혹은 윤리적인 측면을 고려한다.         


4. 실존주의의 과학문명비판

현대 산업사회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인간의 물질적 토대를 엄청나게 개선하였지만 그와 함께 인간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특히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국제적인 경쟁이 심화되고 생산원료의 획득이나 생산품의 판매시장을 개척하면서 국가간의 이익이 마찰을 일으키고 결국 인류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었다. 전쟁은 패배자나 승리자에게 모두 심각한 상처를 안겨주며 양 차 세계대전을 목격한 서구 지식인들은 인간의 내면적인 문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실존철학이라는 나타나게 되었다. 실존철학은 현대산업사회에서 파괴되어 가는 인간의 내면성을 구출하려 한다. ‘본래적인 자기’를 ‘실존’이라는 이름아래 규명해 내려 한다. 그러므로 실존철학에서는 대치될 수 없는 개별적인 인간의 독자적인 가치를 회복하려 하며 이러한 가치가 홰손 되는 근본 원인을 찾으려 한다. 많은 실존철학자들 현대인의 인간성 상실의 책임을 과학기술문명에 돌리고 있다. 다음에서는 실존철학을 대표하는 두 사람, 곧 독일의 실존철학자들인 야스퍼스(K. Jaspers, 1883~1969)와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의 현대과학기술에 대한 입장을 요약해보려 한다. 물론 앞에서 요약한 맑스주의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연관시키는 방향에서이다.   

1) 야스퍼스

기술문제에 대한 야스퍼스의 언급은 이미 1919년의 『세계관의 심리학』에서 나타난다. 여기서 야스퍼스는 ‘자연기계적인 세계상’(naturmechanisches Weltbild) Karl Jaspers, Psychologie der Weltanschauungen, Berlin 1960, S. 158.
을 비판했는데 이러한 세계상은 진보와 발전을 신뢰하는 유물론적인 철학으로서 참된 철학과 상반된다고 주장한다.
야스퍼스는 1931년에 현 시대를 진단하는 중요한 저술을 내었는데 『시대의 정신적 상황』(Die geistige Situation der Zeit)이 바로 그것이다. 독일의 한 대안운동(alternative Bewegung) 이론가는 이 책 안에 ‘현대문명비판의 모든 동기가’ Peter Glotz, ‘Staat und alternative Bewegungen’, in: Stichwort zur . Hrsg. von Jürgen Habermas, Bd. 2, Frankfurt a. M. 1980, S.474.
거의 들어있다고 말했다. 독일 나치정권이 발생해가던 무렵에 야스퍼스는 대중을 파괴하는 집단질서가 당시 사회의 중요한 모순임을 간파하였다. 이러한 집단사회는 개인이 스스로의 길을 가지 못하게 방해한다. 국가와 사회 안의 기술과 조직이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을 제한한다. “조직은, 대응세력에 의해서 제동이 걸리지 않을 때, 그것이 보장하려고 하는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파괴한다.” Karl Jaspers, Die geistige Situation der Zeit, Berlin 1931, S. 48.
야스퍼스가 의미하는 ‘대응세력’(Gegenkräfte)은 대중의 집단조종을 거부하는 지식인들이다. 그것은 삶을 방관하는 허무주의적인 태도를 벗어난다는 의미를 지닌다. 집단질서를 통해서 조종되는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또 하나의 방법은 인간의 내면화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내면화 속에서는 경우 집단조종이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스퍼스는 내면화 속에서 인간이 고립되는 것만으로 인간의 본래적인 자아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실존적인 교제를 통해서 그것을 극복하려 한다. 야스퍼스에서 실존은 ‘자기 자신’, ‘초월’, ‘다른 실존’과 연관성을 맺어야 한다. 야스퍼스에서 실존은 과학적인 세계 속에서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현존’(Dasein)을 극복할 때만 가능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가 한계상황의 체험이면 현존적인 인간으로서의 ‘난파’(Scheitern)이다.
야스퍼스는 그의 현존분석을 1949년에 낸 『역사의 시원과 목적에 관해서』(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에서 과학기술문명과 연관시켜 전개한다. 야스퍼스에 의하면 기술의 발전이 세계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세계사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기술은 최초로 인류에게 문화발전의 가능성을 열어놓았고 인류역사에서 기원전 5세기경에 최초로 문화가 꽃을 피웠다. 인류문화가 정상에 도달한 시기를 야스퍼스는 ‘차축시대’(Achsenzeit)라 불렀다. “이러한 세계사의 축은 기원전 500년경에, 기원전 800년에서 200년 사이에 나타난 정신적인 과정 안에 놓여있는 것 같다." Karl Jaspers, 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 München 1966, S. 19.
그것은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물론 19세기에서 시작된 과학과 기술의 혁신은 제2의 차축시대를 예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것은 달성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현대과학의 시대는 제1의 차축시대에서 획득한 인류의 정신적인 유산을 손상시키고 있다. 기술시대가 들어서면서 인류의 문화가 퇴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기술시대가 현대인의 위기를 조장하였다. 이러한 위기로부터 탈출하는 길은 현존을 극복하고 실존을 획득하는데 있다.
야스퍼스는 기술시대를 비판하면서 기술의 의미를 규정한다. “기술은 인간이 궁핍으로부터 벗어나고 그의 요구에 합치되는 환경을 얻기 위해... 과학적 인간을 통해 수행되는 자연지배의 과정이다.” Karl Jaspers, Ebd., S. 129.  
기술은 먼저 도구를 의미하며 이 도구를 사용하여 인간은 자연을 이용한다. 기술은 인간을 자연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기술의 발전이 경제구조나 사회구조를 변화시킨다. 기술을 통하여 자연이 인간의 생활에 인간의 생활에 알맞게 변화되어 가는 가운데 인간의 역사가 흘러간다. 기술은 독자적이고 신비적인 자체의 근원을 갖는다. 기술의 발전에서 작용하는 인간의 역할이 학문이다. 학문을 통하여 인간은 발명을 해 간다. “현대 기술문명의 발생에서 그러므로 자연과학, 발명정신, 노동조직이 불가분 하게 연관되어있다.” Karl Jaspers, Ebd., S. 136.
이들 3요소는 그러나 각각 독자적인 근원을 갖는다. 기술을 발전시키는 학문인 과학은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영역이다. 과학과 기술이 과학기술적인 세계를 만들어 낸다. 3번째의 노동조직이 사회정치적인 문제와 연관되는데 야스퍼스는 여기서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인간이 기계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을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 노동조직의 문제가 제기 된다고 말한다. 야스퍼스는 이렇게 하여 현대인의 위기를 기술문명의 위기로 바꾸어버린다. 인간은 전차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며 정신적인 가치를 상실한다. 인간정신의 창의성 대신에 기능주의가 들어선다. 현대인은 전통이나 고향을 상실한 채 어디서나 대치될 수 있는 기성품과 같은 인간이 된다. 혹은 본능적인 향락을 추구하는 천박한 인간이 된다. 상식이 지배하는 대중 속에 몰락하고 여론에 의해 좌우된다. 기술시대는 차축시대와 정반대이다. 정신적인 궁핍, 인간성의 상실, 창의성의 부족 등이 기술시대의 특징이다.  
야스퍼스가 진단한 현대기술사회의 특징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밝혀내는데서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야스퍼스는 기술과 사회구조사이의 연관성을 무시해버리고 기술과 과학의 독자성을 절대화 시킨다. 야스퍼스는 과학기술문명에서 오는 현대인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과학적인 처방을 제시하지 못한다. 객관적인 사회법칙을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스퍼스에 의하면 기술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기술에 대하여 갖는 태도가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내면에 호소하면서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 “기술은 수단일 뿐이며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인간이 기술로부터 무엇을 만들어내고, 기술을 어디에 사용하고, 어떤 조건에서 기술을 지배하고, 기술을 통해서 결국 인간의 어떤 본질이 나타나는가가 중요하다.” Karl Jaspers, Ebd., S. 161.
인간의 절대적인 본질을 가정하면서 현대기술문명에 대처하려는 야스퍼스의 태도는 매우 비합리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이다.
            
2) 하이데거

하이데거의 기술과학은 그의 문화철학을 특징지우는 중요한 부분이다. 문화철학 혹은 사회철학은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에서는 현존분석이 중심을 이루지만 여기서도 ‘공존’(das Mitsein), ‘일상인’(das Man)과 같은 ‘실존지’(Existenzialen)들은 인간의 사회적 성격을 들어내 주는 표현들이다. 이 책에서 하이데거는 사회를 주관, 곧 현존의 단순한 요소로 변화시키는데 이러한 사회관에서는 인간의 사회화 형식들이 그 물질적 기초를 상실한다. 하이데거를 비롯한 실존철학자들은 지난 세기의 문화철학자들(Simmel, Tönnies)과 달리 사회와 개인을 대치시킬 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순과 불안을 파헤치려 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문화의 발생은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필연적이다. 다시 말하면 운명이 인간의 노력을 결정하며 그것은 비합리적이므로 개념적인 분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합리성이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노력은 퇴락의 징후이다. 1930년대부터 하이데거는 개인의 존재가능성보다도 존재의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하이데거는 스스로의 문화철학이 지니는 근본 사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존재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나 인류의 역사도 아니고 존재자나 존재에 대한 인간관계의 역사도 아니다. 존재의 역사는 존재 자체의 역사 바로 그 것이다.” M. Heidegger, Nietzsche, Bd. 2, Pfullingen 1961, S. 489.
이 말은 결국 하이데거가 구체적인 문화의 발전역사에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기술의 문제를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적 시대‘의 문제와 연결시켜 다룬다. “‘기술’(die Technik)이라는 이름은 그러므로 여기서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제목의 의미와 일치되는 방향에서 이해된다: 완성된 현이상학(die vollendete Metaphysik)” M. Heidegger, ‘Überwindung der Metaphysik’, in: M. Heidegger, Vorträge und Aufsätze, Pfullingen, 1954, S. 80.
하이데거에 의하면 ’형이상학적 시대‘가 서구문화를 특징지우는 존재역사의 한 시기이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을 단순히 하나의 사유방식이나 철학적 개념으로 간주하지 않고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현상으로 간주한다. 형이상학은 인류의 존재방식이고 존재, 자연, 다른 인간이나 스스로에 대한 관계를 표현하는 형식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의 역사는 2 시기로 구분된다. 첫 번째 시기에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아직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논리학이나 윤리학이나 물리학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유와 도덕은 우리시대보다 더 나았으며 자연에 대한 지식도 더 심오했다. 두 번째 시기가 형이상학의 시기다. 이 시기가 구체적으로 언제 시작되었는지 하이데거는 분명히 말하지 않지만 여하튼 서구문화의 역사는 형이상학의 시기와 더불어 시작하였다. M. Heidegger, Nietzsches Wort “Gott ist tot”, in: M. Heidegger, Holzwege, Frenkfurt a. M. 1950, 243 참조.  
형이상학적 시대의 본질은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에 관해서 묻는데 있다. 이 시기에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 낸 사물과 관계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인간이 산출하지 않는 존재를 망각한 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시기가 바로 '존재망각'(Seinsvergessenheit)의 시기다. 이 시기의 인간에게는 대상이 객관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사유적 존재’(cogito)로서 대상에 대한 주관의 역할을 한다. 이 시기에 주관과 객관이 분열된다. ‘형이상학적 시대’의 본질은 주관주의다. 인간이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서고 자의식이 최고에 도달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려 한다.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노력으로부터 근세문화의 중요한 특징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면 할수록 인간은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사고에서 멀어진다. 초기 그리스인들의 사고가 근원적인 사고에 가까웠고 현존의 존재가능성을 가장 잘 이해하였다. 이에 반해 근세적인 사고는 계산적인 사고이며 계산을 통해서 자연을 지배하려 한다. 근원적인 사고가 사라지면서 인류의 문화가 발생하였다. 유물론이 나타나고 유물론은 기술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 기술은 본질상 존재를 망각하는 존재의 역사에서 나온 운명으로서 형이상학적 시대의 완성이기도 하다.
기술의 본질을 형성하는 형이상학적 시대의 종말이 니체(Nietzsche)의 철학과 더불어 시작되지만 니체의 ‘권력의지’(Wille zur Macht)도 형이상학을 극복할 수 없었다. 그것도 주관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권력의지의 본질은 의지 자체로부터만 파악될 수 있다.” M. Heidegger, Ebd., S. 82.

하이데거의 기술파악에서 노동의 문제가 나타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노동은 인류의 역사나 본질과 무관하다. 노동은 오히려 실존을 지향하는 인간에게 방해물로 나타난다. 노동이 바로 형이상학적 시대의 중요한 특징이다.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하이데거로 하여금 전 인류의 문화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역사적 진보에 대하여 염세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한다. 과학도 문화의 한 요소로서 기술과 함께 세계의 황폐화를 야기한다. 계산적인 사고가 과학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계산적인 사고는 존재자를 인식하는 것이며 존재를 그 자체로 이해하는 데로 나아가지 못한다. 사물의 객관적 본질을 밝히려는 과학은 소외 혹은 존재망각의 현상에 속한다. 존재의 이해를 위해서는 일반적인 과학이 아니라 해석학이 필요하다. 기술과 과학은 다 함께 인간의 소외된 활동형식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기술의 도움으로 인간의 본질적인 힘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하이데거는 기술자체와 기술의 본질을 구분한다. 소외된 형태로서의 기술을 하나의 자연과정으로서 이해한다. 기술의 본질은 어떤 것을 산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열어주는데 있다. 기술과 기술적인 소외는 그러므로 하이데거에서 사회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이다.
기술시대에 나타나는 존재망각으로부터의 구출이 하이데거에 의하면 외부로부터, 다시 말하면 존재자체로부터 나온다. 기술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거부하는 ‘태연함’(Gelassenheit) 속에 그 가능성이 들어있다. “기술시대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경이로운 일이지만 단순하면서 조용하다. 우리는 기술적인 대상들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끼어 들도록 허용하며 동시에 결코 절대자가 아니며 더 높은 것을 지향해있는 사물로서 외부에서 그 자체로 존재하도록 한다.  나는 기술세계에 대하여 동시에 긍정과 부정을 하는 태도를 옛말을 빌어 사물에 대한 태연함이라 부르고 싶다.” M. Heidegger, Gelassenheit, Pfullingen 1960, S. 25.
하이데거의 ‘태연함’은 종교적인 대용품과 같다. 최대한의 이익을 억기 위해 자본가가 개발하고 이용하는 기술에 대하여 태연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그것을 옹호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것은 일종의 염세주의적이고 운명론적인 체념과도 같다. 결국 하이데거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철학의 역할을 부정하고 나선다. “이것은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단순한 인간적인 의미와 노력에도 해당된다. 신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가능성은 사유와 시속에서 신의 출현을 위해 준비하거나 신이 부재한다는 것을 목격하면서 몰락을 준비하는 것이다.” “Nur noch ein Gott uns retten", in: Der Spiegel, 23/1976, S. 209.
                


5. 맺는 말

인류는 기술의 발전 없이 발전할 수 없고 생존을 계속할 수도 없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인류는 파멸할 수 도 있다. 전쟁의 위협이 항상 살아있으며 새로운 전쟁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전대미문의 파멸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 본 것처럼 현대의 많은 철학자들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것이 인간의 행복과 불행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였다. 맑스주의나 실존주의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 철학에서 이 문제가 어느 다른 철학에서보다도 심각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에서 오는 해독의 하나가 소외문제이고 맑스주의와 실존주의에서는 이 문제도 다루었다. 이들은 모두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과학발전을 발전을 수반하는 부정적인 현상에 눈을 돌렸다. 그러나 맑스주의가 과학과 기술의 문제를 사회문제로서 다루면서 거기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현상을 사회의 정치경제구조문제와 연관시키는 반면 실존주의에서는 과학기술의 문제를 독립시키거나 인간의 운명과 관계되는 영원한 문제로 다룬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에서도 서로 상반된다. 맑스주의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문제가 주로 한없는 이익을 추구하려는 자본가의 이기심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변화시킬 때만 이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는 반면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의 생각여하에 따라 혹은 절대자의 힘에 의해서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은 현대인의 소외문제, 평화문제, 환경문제, 여성해방의 문제에도 적용된다. 맑스주의의 해결방식이 너무 경제중심적이며 인간의 내면적인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 할 수 있다면 실존주의의 해결방식이 너무 추상적이고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오는 부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매우 바람직하며 인간의 삶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모든 철학은 항상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우려야 할 것이다. 특히 서구의 과학문명을 많이 수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며 그러므로 이들 두 철학의 문제제기와 해결방법을 깊이 음미해야 한다. 오늘 날 누구도 과학기술의 발전을 거부하고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H. Beck, Kulturphilosophie der Technik, Trier 1969.
L. Mumford, Mythos der Machine, Frakfurt a. M. 1978.
H. Sachsse, Anthropologie der Technik, Braunschweig 1978.
F. Rapp, Analytische Technikphilosophie, Freiburg 1978.
G. Ropohl, Eine Systemtheorie de Technik, Wien 1979.
H. Ley, Technik und Weltanschauung, Berlin 1971.
H. H. Holz, Zur Kritik der bürgeröichen Technikphilosphie, Frankfurt a. M. 1980.
S. Wollgast(Hrsg.), Technikphilosophie, Berlin 1984.
K. Marx․F. Engels, Weke, Berlin 1956ff. (MEW)
K. Marx․F. Engels, Gesamtausgabe, Berlin 1975ff. (MEGA)
K. Jaspers, Psychologie der Weltanschuungen, Berlin 1960.
J. Habermas(Hrsg), Stichwort zur , Frankfurt a. M. 1980.
K. Jaspers. 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 München 1966.
M. Heidegger, Sein und Zeit, Tübingen 1963.
M. Heidegger, Nietzsche, Pfullingen 1961.
M. Heidegger, Hozwege, Frankfurt a. M. 1950.
M. Heidegger, Gelassenheit, Pfullingen 1960.
, 23/1963.







[Abstract]

Die philosophische Auseinandersetzung um das Problem der Krise der modernen Technik und Wissenschat
-Zwischen Marxismus und Existentialismus-

Kang, Dae Suk (Catholic of Daegu Univ.)

In diesem Aufsatz handelt es sich um das Problem, wie die Wissenschaft und Technik in der modernen Philosophie aufgefaßt wird. Hauptsächlich behandelt wird hier die Auseinandersetzung zwischen der Existenzphilosophie und dem Marxismus um die Entwicklung der Technik und deren Einfluß auf das Leben der modernen Menschen.  Marx und Engels nach besteht die Gefahr der technischen Entwicklung für die Menschheit nicht im Wesen der Technik an sich, sondern in der Gesellschaftsordnung( vor allem in den Produktionsverhältnissen), in der die Technik ausgenützt wird, während  sie Jaspers und Heidegger nach im Wesen der Technik bzw. im Wesen des Seins verankert ist.
‘Technikphilosophie’ im engeren Sinne ist ein Produkt des Kapitalismus. Sie war stets mit dessen Entwicklung verknüft. Heute ist sie aber ein globales Problem geworden. Die mit dem wissenschaftlich-technischen Fortschritt der Gegenwart verbundenen Probleme, seine Wirkungen auf die gesellschaftliche Existenz und Entwicklung gehören zu den zentralen weltanschaulichen Problemen unsrer Epoche. Dieser Zusammenhang ist nicht nur von theoretischem Interesse. Er besitzt auch unmittelbare praktische Bedeutung für die Gestaltung der zukünftigen Gesellschaft. In diesem Sinne können wir bei der obengenannten Auseinanderetzung viel lernen. Heute darf man in der Philosophie dem Technik Problem nicht mehr neutral bleiben. Man kann sich in die leeren Gedanken verlieren, ohne den innerern Zusammenhang von Technik und Gesellschaftsstruktur ins Bertacht zu ziehen.    


Key Words : Technikphilosophie, Marxismus, Kapitalismus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