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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0/05 (01:11)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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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과 생태 문제
해방신학과 생태 문제

김항섭(우리신학연구소)

1. 기독교는 생태 위기에 책임이 있는가?


린 화이트(Lynn White Jr.)는 {생태계 위기의 역사적 뿌리}(1967년) 라는 저서에서 '올바른 환경운동을 하려면 자연 황폐에 큰 책임이 있는 유대교-기독교 전통과 근본적으로 단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적지 않은 여성 생태신학자들은 유대교-기독교의 창조신화가 무질서적인(chaotic) 여성적 원리를 무너뜨리고 제거한 질서중시적인(orderly) 남성적 신의 승리라고 규정짓는다(Hugo Assman, {도전과 기만}, 55쪽). 이에 반해 메츠(J. B. Metz)는 기독교가 생태 문제를 다루는 것은 교회의 '보완적인 윤리적 의무'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의 본질적인 과제라고 주장한다. "정의, 평화와 창조 보존은 기독교 교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토대"이고 "땅이 없으면 하늘도 없다"고 강조한다({Concilium}, 236호, 8쪽).

이러한 상반된 주장 앞에 해방신학은 전자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도 이 비판이 성서, 특히 창세기에 대한 잘못된 이해 바탕한다고 지적한다. 린 화이트 등은 창세기의 '땅을 정복하라'(1장 28절), 인간만이 유일하게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되었다(1장 26절) 등의 성서 구절에 바탕해 기독교 전통이 자연에 대해 완전히 냉담한 인간중심적 사고를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보프는 이 창세기 1장을 해석할 때 거의 3천년 전에 쓰여진 이 본문의 문화적 틀과 오늘날의 문화적 틀의 차이를 고려해 해석해야 하고 창조와 인간의 사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른 창세기 본문(2장)과 관련해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본문에 따르면 하느님은 인간을 에덴 동산으로 데려가 동산을 '가꾸고 보존하도록'(돌보도록) 했다(2장 15절 참조). 여기서 "인간은 자연의 친구이고 자연과 더불어 일하며('돌보다'의 의미) 자연을 보존하는 '선한 천사'이지 '땅의 정복자'가 아님이 명백하다"({생태, 세계화와 영성}, 46-47쪽)고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2장 본문은 1장 본문에 일정한 제한을 가해 창조와 인간 사명의 참 뜻을 드러낼 수 있었으나 권력과 파라오적 사고를 지향하는 서구 문화 맥락에서 받아 들여질 수 없었고 따라서 죽은 글이 되거나 관념화되었다. 보프는 또한 오히려 이 본문들보다는 육체와 세상을 경시하고 쾌락과 성과 여성적인 것을 불신하며 세상과 무관한 하느님을 선포하는 기독교 내 지배적인 신학전 전통이 인간의 자연 파괴에 더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보프는 또한 기독교 전통에서의 이러한 부정적 요소들을 상쇄하는 "긍적적 요소들, 즉 육화 신비, 성사, 특히 성체성사를 통한 물질 긍정, 세상과 물질과 인간의 육체적 변모로서 부활, 하느님의 표지를 간직하는 우주의 성사적 특성, 존재들을 형제자매로 맺어주는 창조 신비, 프란시스코 성인과 클라라 성녀 그리고 그 추종자들이 실천한 감동적인 형제애 신비"(같은 책, 47쪽) 등을 오늘의 상황 속에서 복원해 내면서 올바른 생태 질서 수립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스웨덴 출신 신학자로 83년부터 코스타리카의 DEI 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헷슈트룀(Ingemar Hedström)도 땅은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창조한 '집'이고 우리 인간은 이 집의 '선한 관리인'이라는 것이 창조의 참뜻이라고 주장한다({우리는 대균형의 일부이다}, 97쪽). 그러나 보프와 달리 이 창세기 2장에 대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에 따르면 19절(아담이 동물 하나 하나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인간의 활동 대상으로 여김을 의미한다(같은 책, 99쪽).

구티에레스, 후벵 알베스 등과 더불어 해방신학을 일구었고 힌켈라메르트와 함께 경제신학을 주도하는 우고 아스만(Hugo Assman)은 보다 더 솔직하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적 특징을 갖는 인간중심주의 형성에 기독교가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주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어쩌면 이 인간중심주의가 '현실 성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단순히 성서 왜곡으로 간주해버리면 논의의 끝이 없다. 왜냐하면 역사적 기독교의 일부를 형성하는 폭력적이고 희생적인 특징을 갖는 수많은 왜곡을 해독해내야 하기 때문이다"({도전과 기만}. 따라서 아스만은 이러한 성서 왜곡의 악영향을 부인함이 없이 창세기 1,1-2,4(사제적 문헌)을 더 먼저 쓰여진 2,4-25(야휘스트 문헌)의 관점에서 언급하고 비판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과제라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아스만은 린 화이트 류의 생물중심주의(biocentrismo)가 역사를 소홀히하는 극단적이고 신비적인 자연주의에 빠지는 또 다른 환원주의의 오류를 범할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해방신학은 생태 문제를 방치했는가?


매덁 폭스(Matthew Fox)는 해방신학이 당장 긴급한 문제, 즉 제3세계 주민의 단순한 생존 문제에 몰두해 여성 문제, 생태 문제 등이 갖는 도덕적·전략적 중요성을 과소평가했고 가부장적 인간중심주의에 압도되었다고 비판한다({Criation Spirituality}, XI쪽).

이러한 비판에 대해 우고 아스만은 비참이나 가난보다 더 반생태적인 것은 없다고 못박으면서도 명백한 생태학적 언어를 구사하는 논의 부재라는 점에서는 이 비판에 겸손한 개방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스만은 "해방신학의 중심 주제는 생명의 긍정이고 '죽음의 세력'에 반한 투쟁이며 이것은 생태학적 문제를 완벽하게 포용할 수 있는 기준의 모태를 이룬다"({도전과 기만}, 59쪽)고 주장한다.

따라서 해방신학의 생태학적 논의를 보려면 먼저 삶의 신학을 주도적으로 전개해 온 경제신학적 논의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3. 경제신학과 생태 문제


경제신학은 '생명의 하느님', '삶의 하느님'을 고백하는 기독교 전통에서 출발한다. 즉 하느님이 생명의 하느님이라면 또한 인간 생명(삶)의 하느님일 것이고 따라서 인간의 구체적 삶의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하느님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이 가능성에서 소외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가난은 단순히 물질적 삶의 파괴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측면에서의 파괴를 의미하지만 물질적 요소의 소외가 없는 가난은 없기 때문에 삶의 하느님은 또한 삶의 물질적 요소의 하느님이기도 하다. 그런데 물질적 요소의 생산과 재생산을 다루는 것이 경제이므로 신학은 모두를 위한 삶(가난한 이들의 선택은 '우선적'인 것이지 배태적인 것이 아니다)이라는 기준 하에 현실 경제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판단이라는 과제를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일 출신으로 60년대 이후 중남미에서 활동해 오고 있는 프란스 힌켈라메르트(Franz Hinkelammert)는 특히 자본주의 경제의 물신성과 그에 따른 인간 희생에 대해 비판한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자본 물신은 단지 인간 희생에 그치지 않고 자연 파괴도 가져온다. 따라서 그는 모든 이를 위한 삶이라는 대전제 아래서 사도 바오로의 육체 개념 -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육체적 연계 - 과 맑스의 자연관 - 인간은 자연의 일부, 즉 자연적 존재이고 자연은 인간의 확장된 몸, 객관화된 사회관계이다 - 에서 출발해, 자본의 논리에 내재된 자연관과 그에 따른 자연 황폐와 파괴를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자본의 자연은 "지극히 상품적인 자연이고 구체적 현실로서의 자연은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상품의 역동성에 일치하는 법이 자연법이다. 이 상품적 자연에서 자유는 가격과 기업의 자유이다. 이 자연은 인간의 구체적 삶의 가치들을 오히려 자연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따라서 사실상 그 존재를 부인한다. … 구체적 현실로서의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는 인간이고 사용가치인 것에 반해 이 기업가적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는 가격, 상품, 기업이다."({죽음의 이데올로기적 무기}, 1977, 165쪽).

이러한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기업들의 경제 전쟁은 단지 인간 뿐 아니라 그와 함께 자연도 파괴한다. 즉 '초토화하는 전쟁'이다. "현재 제3세계에 거대한 삼림토벌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들은 이미 사막으로 변해 버린 고향 땅을 얼마 전에 등진 수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사하라와 이디오피아 지역의 굶주림 문제는 서로 간에 전쟁을 벌이는 자본주의 기업들의 이러한 땅 파괴에서 오는 결실이다."(같은 책, 161쪽).

따라서 이러한 자본의 논리는 인간과 자연의 삶을 진정으로 보장하려는 이들을 비난하고 공격한다. 이 논리는 "제3세계 국가들이 삶의 토대로서 자연을 보호하고 돌보는 것을 '자연에 반하는 행위'로 본다. 따라서 국제통화기금은 시장개방을 통해 자유로운 자연 약탈을 허용할 때까지 제3세계 국가들을 계속 공갈 협박할 것이다."(같은 책, 166).

힌켈라메르트는 이러한 비판에 바탕해 이윤을 경제적 결정 기준으로 삼는 자본주의 경제나 경제성장을 기준으로 삼는 사회주의 경제와 다른 대안적 경제, 즉 완전고용과 소득재분배를 통해 인간 삶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환경보호, 산업발전과 평화라는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형태의 계획경제를 주장한다({민주주의와 전체주의}, 1987, 1부 3장 참조).

경제신학 외에도 베네수엘라의 뻬드로 트리고는 {창조와 역사}(1987)라는 저서에 명백한 생태학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창조와 가난한 이들의 선택 사이의 결합을 시도하면서 올바른 생태신학적 관점의 싹을 틔운다.


4. 해방과 자연


성서에 따르면 하느님의 계시는 역사에서 이뤄진다. 자연은 이 역사가 실현되는 곳이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언급없이 환경에 관한 어떤 성서 사상도 전개할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 속에서 체험한 하느님은 해방하는 하느님이었다. 따라서 성서의 자연관은 인간, 특히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밀접한 관련 하에 전개된다.

자연은 모든 이의 삶과 자유를 위한 이스라엘 백성의 투쟁 과정에서 '희망의 동반자와 투쟁의 동지'(Luis Mosconi, "… 나무들이 손뼉을 치리라(이사야 55,12)", 50쪽)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자연관은 출애굽에서부터 나타난다. 에집트의 착취와 억압에서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길을 열어 준 홍해 이야기, 가나안 땅을 향한 고된 행진 도중 마라에서 쓴물이 단물이 되어 목마른 백성의 목을 축인 이야기(출애굽, 15,25), 만나로 굶주림을 채운 이야기(출애굽 16,13-30) 등. 이처럼 자연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유와 삶을 향한 모험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한 어머니였고, 아버지였고, 투쟁의 동반자였다"(같은 논문, 51쪽).

해방신학자들은 인간과 자연의 이러한 관계의 풍부한 실례들을 억압과 착취에 반해 일어섰던 예언자들의 글에서 찾는다. "하늘아, 기쁨으로 외쳐라 …. 땅 속 깊은 곳아, 큰 소리로 외쳐라. 산아, 숲과 모든 나무들과 함께 기쁨으로 외쳐라. 왜냐하면 야훼께서 그의 백성을 구제하셨기 때문이다"(이사야 44,23). "하늘아, 기쁨으로 외쳐라! 땅아 기뻐하라! 산들아, 기뻐 소리를 질러라. 야훼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고 그 천대받은 자들을 극진히 사랑하셨다"(이사야, 49,13). 즉 백성이 자유로울 때 자연도 자유롭다.

이러한 자연관에서 볼 때 자연의 황폐는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언자들은 자연의 황폐를 논하면서 사람들의 태도에서 이러한 상황을 야기한 원인들을 발견했다. 예언자들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자연 착취와 그 황폐화를 발생시켰다고 보았다"(Tea Frigerio, "환경에 관한 성서적 성찰 시론", 41쪽). "이 땅에는 사랑하는 자도, 신실한 자도 없고 이 하느님을 알아 주는 자 또한 없어 맹세하고도 지키지 않고 살인과 강도질은 꼬리를 물고 가는 데마다 간음과 강간이요, 유혈 참극이 그치지 않는다. 때문에 땅은 메마르고 주민은 모두 찌들어 간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도 함게 야위고 바다의 고기는 씨가 말라 간다(호세아 4,2-3).

브라질의 산드로 갈라지(Sandro Gallazzi)도 다니엘서를 분석하면서 다니엘이 6일동안 동굴 속에서 사자와 지내면서 모든 피조물과의 평화라는 낙원적 만남을 실현한 것은 예언자들의 갈등없는 세계에 대한 꿈, 특히 이사야서 11장 6-8절에서 모든 갈등의 원조격인 뱀까지 자기 자리를 갖고 더 이상 두려움을 유발하지 않는 그러한 세계에 대한 꿈의 실현이고 이는 신약에서 마르코 복음사가에 의해 "그 동안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1,13)로 표현되었다고 말한다. 이렇듯 성서에서는 하늘과 땅, 천사, 짐승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자의 선을 위해 협력한다. 그러나 갈라지는 이러한 생태적 평화가 "고도로 그리고 반드시 정치적인 것이다. 모든 억압 형태에 반해 야훼와 야훼 프로젝트에 충실하는 자에 의해 획득되는 평화이다"("주님은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 주셨고 죽음의 손에서 빼내 주셨다(다니엘 3,88)", 21-22쪽)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모스꼬니는 결론적으로 성서의 사상을 이렇게 정리한다. "a) 보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이들, 억눌린 이들의 해방이다. 이 해방은 자유로운 삶을 갖는 백성에 관한 프로젝트이다. b) 자연은 거기서 백성의 삶과 자유를 위해 봉사하고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 … 따라서 삶과 자유를 위한 가난한 이들의 투쟁 전망에서 모든 생태 문제를 보고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망에서 벗어나면 남용, 왜곡, 조작이 있게 된다. 발전, 이윤에 대한 우상숭배가 생겨 난다. 또한 자연에 대한 정적인 관점을 갖게 된다. 여기서 자연은 박물관에 보관된 한 작품으로 축소된다. 손댈 수 없는 어떤 것으로 간주된다"("… 나무들이 손뼉을 치리라(이사야 55,12)", 51쪽).


5. 창조와 인간의 사명


이스라엘 백성은 억압과 착취의 유배지에서 새로운 출애굽,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꾸면서 이를 창세기에 담는다. 새로운 세상은 혼돈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조화를 이룩하는 하느님 말씀으로부터 나타난다. 하느님 말씀에 복종할 때 세상의 모든 요소들은 제자리를 찾아 간다. 거기서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여자와 남자의 사명은 "창조된 것의 질서를 보존하고, 조화를 유지하고, 조화 속에서 모든 존재들이 번성하고, 생명이 꽃을 피우고 발전·진화하도록 하는 것"(Tea Frigueiro, "환경에 관한 성서적 성찰 시론", 45쪽)이다.

그런데 보프에 따르면 역사상 지배적인 기독교 신학은 역사적, 제도적 이유 때문에 구원의 신비에 더 큰 관심을 쏟았고 이 창조의 신비를 깊이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지배적인 기독교 신학과 달리 항상 창조와 구원을 연결지을려고 노력이 있었고 이 노력은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보아벤투라(Boaventura), 스코투스(Duns Scotus), 오캄(Guilherme de Ockham), 지상적 현실을 다룬 현대 신학(세계신학, 정치신학, 해방신학), 그리고 희랍정교의 신학 등에 나타나고 있다({생태, 세계화와 영성, 48쪽).

이러한 전통에 서서 보프는 창조를 '신적 표현의 놀이', '하느님 사랑의 춤', '하느님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본다. 여기서 모든 존재는 하느님의 사신이고 그의 대표이며 성사이다. 따라서 "존재 사이에 계급적 질서도 없고 독점적인 하느님 대표도 없다. 모든 존재가 하느님 사랑 자체에서 나온다"(같은 책, 같은 쪽). 인간은 이 창조의 위에 군림하지 않고 창조의 안에 그리고 끝에 있다. 인간은 창조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났다. 세상은 인간에 앞서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은 인간에게 속하지 않는다. 그 창조자인 하느님께 속한다.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의 모상에 다라 창조된 인간은 이 창조에서 독특한 자리를 갖는데, 그것은 인간에게 동산으로서 주어진 세계를 가꾸고 돌보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창조와 갖는 관계는 기본적으로 책임성의 문제이고 윤리의 관계이다"(같은 책, 같은 쪽). 그러나 보프에 따르면 이 책임성은 "세상에 대해 결정하거나 하지 않는 인간적 자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 이전의 것이고 피조물적 존재로서 인간 안에 새겨져 있다"(같은 책, 같은 쪽).

따라서 인간은 자신 안에 새겨진 신적 역동성에 따라 창조에 대해 활동하는 자이다. 다시 말해 "단지 세상을 실현할 때, 노동과 돌봄의 형태로 세상 안에 자리할 때만이 인간일 수 있고 자신을 실현할 수 있다. 여기에 파괴적이고 지배적인 어떤 요소도 없다. 오히려 심오한 생태학적 시각으로 볼 때 인간은 노동을 통해 진보하고 변혁할지라도 창조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운명지워졌음을 말한다"(같은 책, 49쪽).


6. 창조와 구원


보프는 이러한 창조신학적 관점에 설 때 구원신학의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고 본다. 구원은 창조와 인간 소명에서의 균열을 전제한다. 인간은 창조를 가꾸고 보존하지 않음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모든 피조물이 해방을 위해 신음하고 울부짖는다고 말한다(로마서 8,22). 여기서 구원은 이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창조의 복원이다. 구원은 "창조를 다시 취해 시간의 화살을 다시 설정하고 피흘리는 상처가 아물도록 하는 것이다"(같은 책, 같은 쪽).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성서적 계시, 교회, 교도권, 성사는 상대적인 것으로 창조 복원이라는 더 큰 대의에 봉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창조신학적 관점을 상실할 때 "성서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근본주의), 교회의 역할을 부풀리거나(교회중심주의), 아니면 성사의 기능을 과장한다(성사주의)"(같은 책, 같은 쪽).


7. 삼위일체론과 생태학적 하느님


생태학은 데카르트에서 뉴톤으로 이어지는 근대 기계론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모든 사물이 서로 관련되고 의존하면서 하나의 총체를 이룬다고 본다(F. 카프라, {변혁점}, 특히 9장 참조).

보프는 이러한 생태학적 시각에서 출발할 때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하느님은 성부이고 성자이고 성령임을 고백한다. 이 삼위의 하느님은 영구히 공존하고, 서로 다른 신이나 동시에 한 하느님이며, 영원하고 무한하다. 이 삼위는 동시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어떤 선재성, 종속성 또는 후재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 세 명의 서로 다른 신이 있으나 이 세 신 사이에 삶의 연계가 있고, 사랑으로 서로 얽혀 교차하며, 셋이 하나로 통일되는 영원한 관계를 이룬다. 이 삼위의 하느님은 단 하나의 일치의 신이고 관계의 신이고 사랑의 신이다"({생태, 세계화와 영성}, 50쪽).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 또한 삼위의 하느님 사이의 이러한 관계와 일치해 전개된다. "세상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하나이고 서로 얽혀 있고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세상은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같은 책, 같은 쪽). 따라서 하느님은 모든 존재, 모든 관계, 모든 생태계에 내재한다.


8. 우주와 인간 안에 거하는 성령


생태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현대 물리학과 생물학의 기여에 따르면 우주는 영속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에너지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에너지의 고도의 복잡한 형태가 생명 체계이다.

보프는 기독교 전통에도 이와 같은 현실 이해, 즉 에너지, 생명으로서의 현실 이해를 가능케 하는 범주가 있는데, 성령의 상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예언자들을 고무하고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을 열광케 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열정으로 채우는" 성령은 "우주를 충만케 하고 우주의 구조를 지속적으로 쇄신한다. 성령은 예수가 인간에 육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피조물에 거주한다"({생태, 세계화와 영성}, 51쪽).

보프는 성령의 이러한 편재성(遍在性, omnipresenca)을 표현하기 위해 옛 시인을 인용한다. "성령은 돌에서 잠자고 꽃에서 꿈꾸며 동물들에서 잠을 깬다. 남자들 안에서 잠을 깨고 있음을 알고 여자들 안에서 잠을 깨고 있음을 느낀다". 보프는 '모든 곳에 편재하는 성령'(Spiritus ubique diffusus)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4세기와 5세기의 라틴 교부와 희랍 교부들, 특히 두 그레고리오(Gregorio Nazianzeno와 Gregorio de Nissa), 바실리오(Basilio)와 베드로 다미아노(Pedro Damiano), 그리고 에수의 우주적 현존을 말하는 샤르댕(Teilard de Chardin) 등에서 성령의 편재성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볼 수 있다고 한다({같은 책, 51쪽).

이처럼 우리 기독교인은 우주를 자신의 신전, 활동과 현현의 장소로 삼는 성령을 이해할 때 우주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질 수 있고, 이런 식으로 자발적 우주적 자연이나 역사 과정과 결부된 영성의 출현에 기여할 수 있으며, 생태학적 신비를 기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프는 본다.

떼아 프리제리오도 로마서를 인용해 피조물, 인간과 성령이 새로운 것을 잉태하면서 고통 속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읍니다. …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주십니다"(로마 8,22-26). 이 본문을 통해 볼 때 "사도 바오로는 인간의 새로운 삶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역동성은 우주 전체에 미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환경에 대한 성서적 성찰 시론", 41쪽).


9. 만유재신론: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


보프는 성령의 우주적 편재성에 대한 이해는 옛 기독교 전통의 만유재신론(萬有在神論, panenteismo)의 복원을 가능케 하고 이 만유재신론은 생태 문제에 대한 풍부한 신학적 해석을 제공해준다고 주장한다. 이 만유재신론은 모든 것이 신성의 일부로 단 하나의 신의 서로 다른 모습이다는 범신론(panteismo)과 다르다. 만유재신론은 하느님과 피조물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동시에 서로 구별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즉 "모든 것이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현존한다 … 하느님은 각각의 현실을 자신의 신전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역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 있다. 우리는 결코 하느님께로 가지 못하고 결코 하느님한테서 나오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하느님 안에 있고 따라서 '우리는 그 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 가기'(사도행전 17,28) 때문이다"({생태, 세계화와 영성}, 52쪽).

보프는 이러한 만유재신론에서 출발할 때 세상과 하느님이 하나로 어울러지는 새로운 영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우리는 최고의 애정으로 우주를 껴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삼위일체의 하느님 자체를 껴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체험에서 통합적이고 전체론적(holista)이고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새로운 영성이 태어난다"(같은 책, 같은 쪽). 그리고 이러한 영성은 "인간 영혼이 세상과 무관하게 하느님을 알 수 있다면 세상은 결코 창조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한 서구 최대의 신비가인 에크하르트(Eckhart)의 통찰과도 일맥상통한다.


10.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역사적 기독교는 인간중심적이고 남성중심적 사고에 바탕해 오늘날의 생태계 위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그에 반해 자연과의 통합을 모색한 긍정적 측면의 영성적 전통을 이어왔다. 보프는 생태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된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성인에서 자연과의 형제애를 실천적으로 산 모범적인 전형을 찾는다.

프란시스코 성인이 뛰어난 시적 감각으로 자연과의 친화력을 보여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인은 심오한 감정이입을 통해 "사물의 마음을 느끼고 그 존재론적 전언을 해독해내며"(같은 책, 53쪽) 인간과 자연이 성부의 안에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보편적 형제애를 노래했다. 그래서 성인은 "해와 달, 불과 물, 잡초, 심지어 병과 죽음까지 형제자매라는 달콤한 이름으로 불렀다"(같은 책, 같은 쪽). 프란시스코 성인은 이러한 우주적 형제애의 신비에서 출발해 모든 사물을 존중과 경의를 표했다. "나무를 자를 때에도 다시 싹을 틀 수 있도록 완전히 자르지 말도록 형제들에게 요청했다. 겨울에는 벌들이 배고파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안쓰러워 벌들에게 꿀을 주기도 했다"(같은 책, 같은 쪽).

그러나 보프에 따른 프란시스코 성인의 독창성은 이러한 외적 생태학을 내적 생태학(정신생태학)과 연결해 '매혹적인 우주적 신비'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 있다. "그의 삶의 종반에 가장 높은 우주적 황홀경을 표현하는 '해 형제'에 대한 노래를 지었다. 이 노래를 지었을 때 그는 거의 장님이 되고 중병으로 시달렸다. 사실상 장님이 된 눈으로 해와 달, 바람과 물, 불과 땅 등 볼 수 없는 요소들을 노래한다. 이 요소들은 절대적 통합의 상징과 전형으로서 그의 내면에 있었다. 이 노래는 하늘과 땅, 모든 존재와 함께 하는 인간, 그리고 인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빛나는 태양과 같은 하느님을 연결하는 우주적 결합을 노래한 것이다"(같은 책, 53-54쪽).

보프에 따르면 프란시스코 성인의 또 다른 독창성은 "가난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 중의 가난한 이들 - 나환자와 오늘날의 에이즈 환자 - 에 대한 선택, 그리고 그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산 선택과 피조물에 대한 온정을 하나로 엮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를 문둥병자와 구비오(Gubbio)의 늑대에게 이끈 바로 그 사랑으로 길거리의 가난한 이를 포옹하고 새들과 이야기한다. 그는 이 세상이 불평등의 왕국(Regio Dissimilitudinis)임을 아나 그렇다고 삶을 비통에 내맡기지는 않는다"(같은 책, 54쪽).


11. 몇가지 생태신학적 과제


지금까지 해방신학 안에서 전개되어 온 주요 생태신학적 논의를 주제별로 간략히 살펴 보았다. 해방신학자들은 올바른 생태 질서 추구가 기독교 신앙에 본질적인 것임을 명백히 한다. 특히 가난한 이들의 해방에서 출발하는 생태 문제 접근은 환경 문제를 사회 문제와 분리하는 '모호한 환경론적 논조'를 지양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제1세계의 보수적인 환경론자들은 자연보호 자체가 마치 선인 것처럼 인간의 사회적 역사적 현실을 외면한다. 오늘날 생태계 위기는 종말론적 위기라는 점에서 위기에 대한 낭만적인 이해,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를 뒤에 감춘 모호한 논조가 갖는 독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경우에 따라선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류의 논의에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방신학적 생태 문제 접근은 '환경 악화가 비참의 지속과 증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비참을 제거하고 나중에 생태 문제를 다룬다'는 식으로 생태 문제를 부차적 요인으로 간주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해방신학자들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아직 논의 초기 단계이므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보완되거나 심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올바른 생태질서이고 이 생태질서에 대해 성서나 성전이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로 충분치 않다. 무엇보다도 왜 하느님이 보기에 좋았던 올바른 생태 질서가 파괴되었는가, 파괴로 이끈 주된 힘은 어떤 것인가, 생태질서를 복원하기 위해 기독교는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채워져야 한다. 니카라구아 '신학과 사회 연구소'(CIEETS)의 선언문은 국내 자본과 다국적 자본, '무차별하게 인간과 자연자 착취를 전개해 온 부당한 국제경제질서'를 자연 파괴를 주범으로 본다(Ingemar Hedström, {참새들이 되돌아 올까?}, 255쪽). 자본은 인간과 자연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몰록과 같다. 그런데 자본은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고도 자기만이 올바른 생태 질서를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장기적으로 사적 소유권이 환경의 가장 효과적인 보호자이다"(R.L.Stroup/J.S.Shaw). 이러한 역설은 자본의 물신성, 또는 우상성을 전제할 때만이 이해가 가능하다. 우상은 인간을 희생 제물로 원하면서 인간의 삶을 보장한다. 따라서 "대다수 세계 주민을 경제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무용한 존재로 배제하는 시장경제 논리 문제를 생태계 문제의 핵심에 놓아야 한다"({도전과 기만}, 53쪽). 즉 자본의 물신성을 벗기고 인간과 제도, 인간과 자연 사이에 올바른 자리 매김을 할 때만이 하느님이 보기에 좋았던 참된 생태 질서를 복원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 인용 문헌


1. Sandro Gallazzi, "Ele nos livrou do Hades, nos salvou das garras da morte(Dn 3,88)", in Biblia e Ecologia, Estudos Biblicos 38, Ed. Vozes, Petropolis/Brasil, 1993.

2. Antonio Cruz & Airyon Otávio, "O profeta Elias e a seca - Uma questao ecologica", 같은 책.

3. Ana Maria Rizzante Gallazzi, "E Jave passeava pelo jardim(Gn 3,8)", 같은 책.

4. Tea Frigerio, "Esboco de uma reflexao biblica sobre meio ambiente", 같은 책.

5. Luis Mosconi, "… E todas as árvores baterao palmas(Is 55, 12)", 같은 책.

6. Irmas Capuchinhas, "Ecologia: Canto de louvor - grito de SOS", 같은 책.

7. Leonardo Boff, Ecologia, Mundializacao, Espiritualidade: A emergencia de um novo paradigma, Ed. Ática? Sao Paulo/Brasil, 1993.

8. J. B. Metz외, Concilium: nao há ceu sem terra(브라질판), n. 236, Ed. Vozes, Petropolis/Brasil, 1991/4.

9. Julio de Santa Ana, "Igrejas e meio ambiente", Tempo e Presenca, N. 261, CEDI, Rio de Janeiro/Brasil, jan-fev/1992.

10. Franz Hikelammert, Democracia y Totalitarismo, DEI, San Jose/Costa Rica, 1987.

11. Franz Hinkelammert, Las Armas Ideologicas de la Muerte, segunda edicion, DEI, San Jose/Costa Rica, 1981(제1판은 1977년에 출간).

12. Pedro Trigo, Criacao e Historia, Colecao Teologia da Libertacao, Ed. Vozes, Petropolis/Brasil? 1988.

13. Frei Betto & Leonardo Boff, Mistica e Espiritualidade, Ed. Rocco, Rio de Janeiro/Brasil, 1994.

14. Hugo Assman, Desafios e Falácias: ensaios sobre a conjuntura atual, Ed. Paulinas, Sao Paulo/Brasil, 1991.

15. Ingemar Hedström, Volveran las Golondrinas?: La Reintegracion de la creacion desde una Perspectiva Latinoamericana? segunda edicion, DEI, San Jose/Costa Rica, 1990.

16. Ingemar Hedström, Somos Parte de un Gran Equilibrio: La Crisis Ecologica en Centroamerica? 4ª edicionn, DEI, San Jose/Costa Rica, 1993(제1판은 1986년에 출간).


- 이 글은 {공동선}, 1994년 11-12월호에 발표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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